[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호수 위를 걸으시다 (마르6,45-52)

2026. 1. 6. 오후 3: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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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7일 수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호수 위를 걸으시다 (마르6,45-52)



1독서<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4,11-18)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화답송>시편72,1-2.10-11.12-13(11)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복음<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마르6,45-52)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45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주님 공현 후 수요일 제1독서 (1요한4,11-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좇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8)

 

여기서 '두려움'으로 번역된 '포보스'(phobos)는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뜻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큰 기적과 기적적인 일앞에 사람들이 보인 두려움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마르4,1; 루카2,9; 요한7,13).

또한 가까운 미래에 닥칠 고난과 환난으로 인한 두려움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묵시18,10).

 

요한 1서 4장 18절 후자의 의미로서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진 두려움을 나타낸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하느님의 임재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가진 자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이 영적 담대함을 가진 자는 심판 때 죄인들이 갖게 되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된다.

사도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완전한'으로 번역된 '텔레이아'(telleia)의 원형 '텔레이오스'(telleios)는 '온전한','성숙한'이라는 뜻이다(1코린14,20; 콜로4,12; 야고3,2).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통해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인 사랑안에서 성도들이 목표로 삼고 이루어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완전한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삶속에 실현하는 사랑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랑은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의 두려움조차 쫓아낸다.

 

한편 '쫓아냅니다'로 번역된 '엑소 발레이'(ekso ballei)는 '밖으로 내던지다'라는 뜻이다.

먼저 '내어'로 번역된 '엑소'(ekso)는 장소적 이동을 뜻하는 전치사로 '안에서 밖으로'라는 뜻이며, '좇아' 번역된 '발레이'(ballei)의 원형 '발로'(ballo)는 '던지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엑소 발레이' 내부에 있는 어떤 것들을 밖으로 던져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의 완전한 사랑이 그 사람 내부에 있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자신의 생각과 마음 밖으로 던져 제거한다는 뜻이다.

 

참된 사랑안에 머무는 자에게는 궁극적인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그는 그것을 담대하게 극복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랑과 두려움은 서로 공존할 수 없다. 사랑이 지배하는 자에게 두려움은 설 자리가 없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두려움은 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할 수 있다. 즉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형벌이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혼동해서는 안된다.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가지는 그분께 대한 합당한 존경의 감정이지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심판을 두려워하는 죄인들이 갖는 감정으로서 그곳에서는 반드시 합당한 형벌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이 형벌을 인식함으로 인하여 더욱 더 두려워지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이 형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벌' 번역된 '콜라신'(kollasin)의 원형 '콜라시스'(kollasis)는 신약에서 본절과 마태오 복음 25장 46절에 단 2회 사용되었다. 마태오는 이 단어를 최후의 심판의 날, 죄인들이 받게 될 영원한 벌 가리킬 때 사용했다.

 

여기서도 '콜라신'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죄인들에게 내려질 영원한 지옥벌 뜻한다.

한편 본절에서 사랑과 두려움을 대조하며 공존할 수 없는 관계로 묘사하면서 사도 요한은 하느님께 대한 비정상적인 두려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있어서 큰 장애물임을 시사하고 있다.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김동희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모두 흩으시고는 기도하시러 산에 가십니다.

저녁 무렵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맞바람을 만나 고생합니다.

실제로 큰바람이 불면 호수에서도 1미터가 넘는 파도가 일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유령이라 착각하고 비명을 지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용기를 내어라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하고 안심시키시며 배에 오르십니다그러자 풍랑이 멈춥니다.

그렇게 빵의 기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제자들이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어둠을 헤치고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6-18)라는 확신에 찬 고백을 들려줍니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서로 사랑하자고 합니다울리히 샤퍼(U.Schaffer)의 시에

김종성(사도 요한신부님이 곡을 붙인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이라는 생활 성가를 소개합니다.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아무도 그대가 준 만큼의 자유를 내게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대 앞에 서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 (중략)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이 모든 것을 당신 앞에 하나 되어 노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들으며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돌아보면 어떨까요.

 

(김동희 모세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어제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통하여 놀라운 권능을 보여 주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놀라운 권능을 보여 주십니다.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을 돌려보내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고자 산에 가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벳사이다로 향합니다. 

그런데 배가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자 맞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제자들은 위험에 놓입니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모습과,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멎는 상황은 그분의 신원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분께서는 자연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이 능력은 창조주 하느님만이 지니신 능력이므로,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맞바람에 노를 젓느라 고생하는 제자들에게 가시려는 것입니다. 

멀리서도 예수님의 시선은 위험에 놓인 제자들을 향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험에서 구출하십니다. 

‘새벽녘’은 바로 구원의 시간입니다(시편 46[45],6 참조).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하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지릅니다. 

멀리서도 위험에 빠진 제자들을 보시고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대비되는 제자들의 모습, 그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신앙 여정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고요한 시간도 있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폭풍의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고한 믿음으로 노를 젓는다면, 우리의 배는 세찬 바람과 거친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목적지에 다다를 것입니다. 

자연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니신 참하느님,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나를 죽여 남을 살리는 완전한 사랑.

 

(마르6,45-52)

45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 앞 절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 율법, 육(죽음)의 빵을 예수님께서 받아 품으시고(대신 죽으시고) 그 죽음으로 하늘의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으로 바꿔 주셨는데~ 모든 사람이 그 생명, 영의 양식이 아닌 육의 양식으로 먹었던 자리, 그 육의 신앙에서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떠나보내신 것이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의 빵을 육의 빵으로 먹었을 때 일어날 고난의 일들을 경험하게, 그리고 가르치시기 위한 기도를 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으로 아버지의 뜻과 방법으로 하시려고 기도 하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 제자들이 겪을 시련을 아셨을 텐데 혼자 뭍에 머무르셨다. 때를 기다리신 것이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 호수(바다)는 삶의 시련, 고뇌의 풍랑이 이는 세상을 뜻한다. 그 삶에서 구하시려 하늘의 희망, 생명의 빵을 주셨던 것이다. 그 육, 세상의 풍랑을 예수님께서 밟으시고, 누르시고 오신 것이다. 그런데 그냥 지나가시려고 하신다. 물론 의미가 있다.

 

하느님을 보신 것이다.

(탈출12,23) 23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을 치러 *지나시다가,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피를 보시면, 그 문은 거르고 지나가시고 파괴자가 너희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 어린양의 피, 곧 예수그리스도의 피다. 그분의 죽음으로 파괴자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

 

(탈출34,6) 6 야훼께서 그의 앞을 지나가시며 외치셨다. '나는 야훼다. 야훼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공동번역성서)

=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사랑과 진실(진리)이 그 풍랑의 바다를 밟으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풍랑의 삶을 누르신다는 것이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 성경 말씀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그 피로 모든 죄를 씻어주신 자비와 은총의 그 십자가의 사랑, 진리로 깨닫지 못하고 인간들의 계명으로 받으면, 하느님은 유령 같은 무섭고 두려운 신이 되어 버린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 ‘나다’~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탈출3,14)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 ‘있는 나’= ‘야훼’ 같은 의미다. 구원의 약속, 사랑, 자비, 의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물 위를 걸으실 때는 왜 멎지 않았을까?~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 빵의 기적과 물 위를 걸으신 기적과 같은 뜻, 같은 의미라는 말씀이다. 빵의 기적에서 율법, 그 육(죽음)의 빵을 받아 드시고(죽으시고) 대신 당신의 생명을 빵으로 그들을 살리셨듯이, 예수님께서 그들 대신 죽으시고 그들을 살리셨다는 말씀이신데, 예수님께서 그 당신의 구원의 표징을 요나의 표징으로 말씀 하셨었는데-

 

(요나1,11-12.15 2,1) 11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지자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12 요나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이 큰 폭풍이 당신들에게 들이닥친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15 그러고 나서 그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자, 성난 바다가 잔잔해졌다. 2,1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다.

= 풍랑으로 곧 죽어야 힐 배 안에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졌던, 그리고 그 죽음의 물에 사흘 낮과 밤을 있었던 요나, 하느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고, 죽어야 할 니네베 사람들에게 복음을 주어 살렸던 그 요나가 구원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우리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스스로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땅속에 사흘 낮과 밤을 지내신 그 예수님의 사흗날의 죽음과 부활, 그 구원의 표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배(교회)에 오르시자 풍랑이 멎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자들이 살게 되었던 것이다.

 

(루가11,32)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 요나보다 더 큰 이, 요나가 한 일의 실체이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 예수님을, 그분의 대속의 사랑을, 구원의 진리로 믿고 간직하는 것, 그 진리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 주는 것, 그래서 너와 내가 함께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내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1요한4,10-11. 16-17)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 예수님의 대속, 그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을 하는 것, 사랑의 완성이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 인간의 사랑은 심판을 거르는 그 완성을 이룰 수가 없다. 하느님 사랑, 그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 심판을 이기는 완성된 사랑이며 예수님 처럼 사는 것이다. 본문 사랑 앞에 ‘그’를 붙여 그 사랑, 그 하느님의 사랑으로 묵상하지않고 그냥 사랑으로만 받는다면 자칫 인간의 사랑으로 받게 되고, 그러면 하느님의 사랑(義,善)과 상관없는 구원이 없는 세상, 율법과 같아질 위험이 있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인간의 그 자기 의로움, 그 사랑으로는 구원에 이룰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인간의 사랑, 의로움- 중요하지만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 계명을 둘로 주신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으로, 그 중에 하늘의 것을 선택하라고 하신다.

(신명30,19)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천주의 성령님! 닫혀있는 저희 모두의 눈과 귀를 여시어 살게 하소서. 의탁합니다.~아멘!!!

 

 


 

   주님 공현 후 수요일 복음 (마르6,45-52)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1)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 11장 28~31절에 나오는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시는 분이 예수님임을 확인하고, 자신도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 물 위를 걸었지만, 바람을 보는 순간 두려움으로 결국 물에 빠진 사건을 생략하고,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자 풍랑이 그친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이 기사만을 묘사하더라도, 제자들의 불신앙과 예수님의 하느님 아들로서의 신적인 능력을 부각시키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르시니'에 해당하는 '아네베'(anebe; he climbed into; he went up)와 '멎었다'에 해당하는 '에코파센'(ekopasen; ceased; died down) 두 개의 부정 과거 동사가 접속사 '카이'(kai; and)에 의해 연결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두 개의 동사를 연결하고 있는 접속사 '카이'(kai)는 여기서 거의 동시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사용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마자 곧바로 바람이 멎게 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느님 아드님 되심과 초자연적인 능력이 잘 드러나는 실례로서, 당신이 자연을 초월하며 주관하는 '자연의 주'이기도 하시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여기서 '놀라'에 해당하는 '엑시스탄토'(eksistanto; they were completely amazed)의 기본형 '엑시스테미'(eksistemi)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두다'는 뜻의 동사 '히스테미'(histemi)가 결합된 형태로서 그 어원적 의미는 '어떤 물건을 밖에 두다'이다.

이 동사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정신을 잃다'는 의미가 되며, 성경에서는 '정신이 나가다','미치다'(2코린5,13), '놀라다'(사도8,13) 등으로 번역된다.

 

여기서도 이 동사는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 동사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 사용되어, 정신이 나가 어안이 벙벙해하는 제자들의 상태가 어느 정도 계속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6장 50절의 '겁에 질렸던 것이다'는 표현과 6장 52절의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신 사건을 믿음과 신뢰의 차원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공포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제자들의 성숙하지 못한 신앙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20260107일 수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우리는 이상과 현실이 달라서 괴로워합니다. 누구나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삶은 하루하루가 경쟁이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가는 이가 많을 것입니다. 이런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무엇을 위하여 용기를 내야 할지조차 가늠할 수 없어, 때로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이는 삶의 풍랑 속에 우리를 버려두시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표현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삶의 현장에 함께 계시며,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내미시는 그 손을 붙잡을 용기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외면한다면, 우리 마음이 완고해져 주님의 손을 잡을 용기조차 낼 수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용기 내어 주님의 손을 잡읍시다. 때로는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아도 괜찮습니다.

멈춤이 뒤처짐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어 당당히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과 함께 사랑의 길로 나아갑시다.

 

(이철구 요셉 신부)

 

 


 

2026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나를 죽여 남(원수)을 살리는 차별이 없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다.

 

1독서(1요한4,10-18)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 아드님을 내어주신죽게하신 사랑(아가페)이다.(로마5,10)

 

11 사랑하는 여러분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의 열매가 이웃사랑 이라는 것이다곧 최선을 다하여 마음시간재물을 나누는 것이다그러나 사랑의 실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이 빠진 우리의 사랑 실천은 자기 의로움으로 쌓여 하느님의 사랑에서 멀어져 하늘의 용서구원의 열매가 없게 된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서로 사랑이다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곧 십자가의 복음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그래서 서로 하느님의 용서 사랑으로 살라는 것이다그렇게 모두 하느님과 한 몸이 되어우리에게서 사랑이 완성된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한15,3)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말씀)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13ㄱ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곧 당신을 주셨다는 것이다()의 존재가 하늘()이 된 것이다.

 

13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 하느님과 한 몸임을 알 수 있다.

 

(1코린6,17) 17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지혜말씀그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이 되시어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오신 독생자 예수님이시다.(요한3,16)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사랑이 완성(完成)된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그 십자가의 대속그 사랑을 진리로 믿고이 세상에서 그 사랑을 의지하고 사는 것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는 것이다.

심판날에 변호해줄 사랑은 그 사랑 뿐이며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이 세상을 이긴다세상을 이기시고 승리를 전가 시켜주신 주님 사랑 안에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1요한2,1) 1 나의 자녀 여러분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남아있지않게 하려는 것입니다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십자가의 승리로 죄의 상태로 남아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8그래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그 완전한 사랑 앞에 두려움은 없다두려움은 법(심판)이 준다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인 하느님과 하나 되지 못한 사람이다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그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위한 사랑인 것이고그것을 믿는 것이 사랑이 완성된 것이고그 나에게는 죄벌도두려움도 없다그러니 해보는 거다. “사랑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나와 사랑 받는 내가 싸워가며 해 보는 것이다하느님 안에서주님 안에서, 벌리는 영적전쟁인 것이다넘어져도 괜찮다쓰러져도, 실패 해도 괜찮다승리는 예수님께서 해 놓으셨으니까중요한 것은 해 보는 거.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하느님은 그것을 바라신다그랬을 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신 사랑그 하느님께 감사로 드리는 영광이 나온다.

 

(로마7,22-25)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 감사영광드림이 신앙의 최종 목적지. (이사43,21)

 

☨ 구원의 보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넘치게 하소서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힘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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