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09일 금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나병이 가셨다 (루카5,12-16)
제1독서<성령과 물과 피>(1요한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답송>시편147,12-13.14-15.19-20ㄱㄴ(◎12ㄱ)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복음<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루카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 공현 후 금요일 제1독서 (1요한5,5-13)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5~6)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5)
'누구입니까'로 번역된 '티스 에스틴'(tis estin)에서 의문 대명사 '티스'(tis)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설의법적 표현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승리를 매우 구체적이며 개인적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원리와 수단이기는 하지만(1요한5,4), 삶속에서 실제적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는 주체는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본문에서 '이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호 니콘'(ho nikon)에서 '니콘'(nikon)은 현재분사로서 계속적으로 '쳐부수는 자','정복하는 자'라는 뜻이다.
즉 완성적 차원의 승리가 아니라 계속되는 전투에서 계속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계속되는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많은 이단들의 속임이 있었는데, 그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나감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그리스도론적인 메시지와 함께 당시에 있었던 이단들을 염두에 두고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6)
사도 요한은 이제 요한1서 5장 6~9절에서 육화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확실한 믿음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물'로 번역된 '휘다토스'(hydatos)와 '피'로 번역된 '하이마토스'(haimatos)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다.
첫째는 물과 피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둘째는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물과 피로써 수난을 상징한다는 견해이다.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절의 물과 피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연관시켜 해석하였다.
세째로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심과 동시에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사건과 마지막 생애를 마감하실 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건이라는 견해이다.
이 세번째 견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인간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께서 물세례(수세; 水洗)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고,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인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셨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생활 활동의 시작을 상징하는 물과 공생활 활동의 완성을 상징하는 피란 표현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행하신 활동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새 성경은 '오신'으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오신 분'(호 엘톤; ho elthon)이다.
'엘톤'(elthon)의 원형 '에르코마이'(erchomai)는 기본적으로 '오다'(come), '가다'(go)란 뜻인데, 여기에서는 부정 과거 분사로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이미 우리에게로 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당시 이단들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이 세례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증명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영어의 'not~but'의 용법과 같이 전자를 부정함으로써 후자의 긍정적 의미를 보다 강조하는 '우크~알르'(uk~all)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만이 아니라'에서 '만'(only)에 해당하는 '모논'(monon)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물' 단 하나와만 연관시키는 자들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영지주의 이단 가운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떠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공생활 기간 잠시 동안만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했다고 보는 견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즉 사도 요한은 '단 하나 그것만'이란 매우 강한 배타적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이단 사상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며, 또한 '우크'(uk)란 부정어를 사용하여 이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특히 후반절의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로 번역된 '엔 토 휘다티 카이 엔 토 하이마티'(en to hydati kai en to haimati)에서는 '토'(to)란 정관사와 더불어 '~안에'란 뜻이 있는 전치사 '엔'이 '물'과 '피'란 단어 앞에 개별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물'뿐 아니라 '피'도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며, 둘 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됨을 역설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증언하시는 분'으로 번역된 '토 마르튀룬'(to martyrun)의 원형 '마르튀레오'(martyreo)는 법적 용어로서 어떤 사실을 공적으로 증언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사도22,5; 1코린15,15).
여기서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성령의 역사(役事)를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곧 성령께서 친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을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튀룬'(martyrun)은 현재 분사이므로, 그 증거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요한15,26; 16,13.14).
'성령은 진리입니다'로 번역된 '호티 토 프뉴마 에스틴 헤 알레테이아'(hoti to pneuma estin he alletheia)를 직역하면,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because the Spirit is truth)가 된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그 성령이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며, 그가 진리 자체이시므로 그가 증거하는 내용 역시 진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역시 진리인 것이다.
성령께서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내용이다(요한14,17).
한편 본문의 시제는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그리스어에서 직설법 현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변치 않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령이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님 활동 당시에도, 초대 교회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변치않는 진리임을 나타낸다.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온몸이 나병에 걸린 사람 하나가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부정한 자로 여겨져 마을 바깥에 살아야 하는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
예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5,13). 그러자 곧 나병이 나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지상 여정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지만 모든 병자를 고쳐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성사적’입니다.
치유 기적들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치유되기를 바라시고 또한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3요한 1,2)라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영적 구원, 현세의 부귀, 건강이라는 세 가지 축복이 모두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다며, 이러한 삼중 축복(삼박자 축복)만이 참된 복음이며 복음의 진수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여정은 성사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말하는 요한 묵시록의 다음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21,4).
완전한 치유와 위로는 하느님을 온전히 뵙는 그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의지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지상의 순례자들입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나병 환자를 치유.
(루가 5,12-16)
루가 5장, 12ㄱ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 살이 썩고, 뼈가 잘려나가도 고통을 모르는 것이 나병입니다. 곧 죄로 영이 죽어가는데도 그 죽음의 고통을 모르는 죄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병환자는 자신의 병(죄)을 고쳐주실 분을 찾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자신의 영이 죽어가고 있음을 인식하지도, 아니 관심도 없이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 병, 죄를 드러내시려고~
히브4,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드러내심입니다.
12ㄴ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자신이 땅, 흙의 존재임을 인정, 고백하는 또 자신의 병(죄)을 치유(용서)해 주실 주님이심을 아는 병자입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 예수님의 손, 덮으심의 재창조의 손입니다. 깨끗하게 재창조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일치가 되면 이루어집니다.
1요한3, 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의 뜻인 나무 하나의 희생(탈출15,25) 곧 대속의 십자가를 믿는 것, 계명지킴입니다.
요한16,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니~
마태6,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치유하시어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 치료약이 당신의 죽음 깨끗한 피 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의 의로움 그 열쇄, 곧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3,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하신 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요한17장~) 하느님과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 나병환자 악성피부 환자가 바치는 예물입니다.
레위14, 11 정결례를 거행하는 사제는 정결하게 되려는 사람을 이것들과 함께 만남의 천막 어귀, 주님 앞에 세운다. 12 그리고 사제는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끌어다 기름 한 록과 함께 보상 제물로 올리는데, 그것들을 주님 앞에 흔들어(기쁘게) 바치는 예물로 드린다.
= 흠 없는 어린양의 죽음, 곧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그 피로 깨끗해짐에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 우리가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 예물만이 용서,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그 그리스도의 피로 받는 용서, 구원이 아님 보이는 예수님의 육의 치유만을 전할까봐, 간증이라는 것을 할까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 하십니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병의 치유를 바라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질병, 고난 그 시련 속에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뜻, 일하심이 있기에 그 육의 치유를 위한 것은 신앙의 목적, 방법이 아닙니다.
로마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喜怒哀樂)이 함께 작용하여 선(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떠가십니다.
탈출20,3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제1계명)
=직역하면 ‘나를 다른 신으로 있으면 안 된다.’입니다. 요즘 받는 요한1서 말씀의 결론이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5,21)로 끝납니다.
믿는 대상이 잘못된 것이 ‘우상’, 믿는 방법이 잘못된 것을 ‘미신’이라 합니다. 그래서 예수무당 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로 올바른 방법으로 새 생명, 곧 구원, 용서를 위한 올바른 신앙을 삽시다.
요한14,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길이 생명(용서, 구원)의 올바른 방향, 방법,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기도(올바른 기도)
마태6,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아멘 -*^ㅇ^*-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복음 (루카5,12-16)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3)
루카 복음 5장 12절부터 15절까지는 나병환자 치유 기사이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산상설교를 마치신 직후에 일어난 사건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의 제1차 갈릴래아 활동 기간 가운데 산상설교가 주어지기 이전에 있었던 사건이다(마태8,2~4; 마르1,40~45).
그리고 마태오 복음에서는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라고 되어 있고(마태8,2), 마르코 복음 역시 '와서'라고 되어 있다(마르1,40).
이것은 나병환자가 동네 밖에서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레위13,45.46)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본문은 마치 나병환자가 동네 안에 있다가 예수님을 보고 다가와 엎드린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루카 복음사가가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서와 같이 그 정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병환자가 동네 밖에 있다가 예수님이 계시는 동네에 들어온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당시 사회적 통념이나 정결례법으로는 나병환자가 부정하게 취급되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은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나병환자에게 몸소 손을 대시며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대셨다는 것은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엾이 여기는 마음(마르1,41), 즉 측은지심(연민의 정)과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그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셨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행동 가운데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깨끗하게 되어라'에 해당하는 '카타리스테티'(katharistheti; be clean)는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 '카타리조'(katharizo)의 과거 수동태 명령형이다.
그런데 '깨끗하게 되다'라는 말 속에는 깨끗하게 되는 대상의 상태가 불결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 불결함의 이유는 일차적으로 '나병'이 전염성이 강한 불결한 병이기 때문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이러한 표현가운데에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병은 레위기의 정결에 대한 규정(레위기13장과 14장)과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나병(악성 피부병)은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고, 죄의 속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카 복음 5장 13절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셨다는 뜻과 더불어 그 나병환자의 영적 질병인 죄의 문제까지 해결하셨다는 뜻까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만이 이러한 전인적 치유가 가능하며, 예수님을 제외하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온전한 치유를 베풀 수 없다.
2026년 01월 09일 금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수원교구에는 ‘성 라자로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의 초대 원장은 ‘한센인(나병 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경재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은 평생을 한센인들의 치료와 복지를 위하여 애쓰셨습니다.
한센인들에게 의식주 문제만을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시고, 자립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다양한 기술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시며, 한센병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려고 힘쓰셨습니다.
한센인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자 전 세계를 다니셨고, 그 과정에서 ‘국제 거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과 신부님의 삶을 함께 묵상해 봅니다.
복음 속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만나 뵙자 온몸과 온 마음으로 간절히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절박함을 외면하시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루카 5,1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깨끗해지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세가 정한 예물을 바쳐 세상에 증거가 되라고 하십니다.
어쩌면 이경재 신부님의 마음도 나병 환자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같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눈에 보이는 깨끗함만이 아니라 영혼의 깨끗함, 또한 그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 마음의 눈도 열어 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나병 환자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영혼의 순수함을 잃어 가는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는 말씀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2026년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나병환자 처럼 예수님을 찾은 나
(루카5,12-16)
12ㄱ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 온몸이 썩어 들어가도 고통을 모르는 것이 나병(문둥병)이다. 곧 자신의 죄로 영이 죽어가도 고통을 모르는 그 영적 병이다.
(묵시3,1) 1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12ㄴ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얼굴을 당에 대고 엎드렸다.- 자신의 얼(영)이 병(죄)이 들어 티끌(없음)일 뿐임을 인정하는 낮은 자세다. 자신이 찾아간 예수님이 자신의 나병을, 곧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으신 그리스도임을 아는 병자다.
(잠언31,20) 20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 그의 더러워진 죄의 얼이 깨끗해 졌다. 그것이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신 일이다. 주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육의 치유로만 받는다면 헛된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그것보다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다.’ 가 문맥상 맞지않나? 그것은 나병환자- 그간 손으로 지은 죄를 용서하시려는 것이다. 죄의 본질은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던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다.
다시,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깨닫지 못해 인간들의 선악의 계명으로 받아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한, 그것이 모든 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창세3,22)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 반드시 죽어야 할 나병환자다. 그런데 죽어야 할 그 죄인을 오늘 살려주신다. 회개도, 그 어떤 행위도 없이 그냥 용서하셨다. 그 안에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 진리가 숨겨져 있다. 그 이유도 진실도 모르면서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다”라고만 말하면 안 된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 모세의 명령, 사제가 한 그 일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예물을 바칠 수 있다.
레위기 14장,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례 법(1~32절) 중에서 ‘사제는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끌어다, 그 피를 깨끗하게 되려는 사람에게 일곱 번 뿌린다.’ 그렇게 속죄 예식을 거행한다.(12-16절)
(레위14,19-20) 19 곧 사제는 속죄 제물을 바쳐,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하게 되려는 이를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한다. 그러고 나서 번제물을 잡고, 20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제단 위에서 바친다. 이렇게 사제가 그를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하면, 그는 정결하게 된다.
=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분의 피로 깨끗해진 것이다. 율법(선악)의 모든 잘못을 씻어주는 구원의 새 계약의 피다.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히브10,18.22)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십자가)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 나병 환자가 예물도 없이 깨끗해진 구원의 신비,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로 드리는 우리의 창조의 목적인 그 삶을 살게 된 것이다.(이사43,7)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물을 드리는, 곧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거룩해진 자신을(히브10,14) 깨끗한 예물로 가사로이 바치는 하느님의 듯인 예배의 삶인 것이다.
(로마12,1)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로,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씻겨 깨끗해진, 그래서 제사 예물이 필요 없게 된 그 진실은 모르고 그냥 치유의 예수님을 전하면 큰일 나는 것이다. 큰 잘못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진실, 그 구원의 진리를 모르고 전하면 모두가 제사 예물 드리는 그 종교행위의 신앙으로,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그 이타(利他)의 사랑, 그 은총, 은혜를 몰라 신앙의 열매인 죄에서의 해방(자유, 쉼)이 아닌 두렵고 무거운 짐 같은 구원 없는 그 헛된 신앙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 사람의 잘못, 죄를 드러내시어 그 죄를 용서로 살리시는 것이 말씀이시다.(히브4,12참조) 그러나 그 예수님의 말씀이 복음이 아닌, 인간들의 입(맛)에 맞춘, 그 소문으로 나간 것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육신의 병을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온 것이다. 곧 육신의 만족을 위해 온갖 종교행위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다. 그것이 손을 내밀어 하느님의 계명으로 따먹은 죄의 습성인 것이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 예수님은, 말씀은 그런 곳을 떠나신다.
(이사1,14-15)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제물의 피, 제사행위)로 가득하다.
독서(1요한5,5-11)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 손을 내밀어 따먹은 그 세상의 선악의 법으로 드러나는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다 갚으시고 자유를 주셨음을 믿는 것, 그래서 그분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 생명의 진리임을 (요한14,6) 믿음으로 고백하며 의탁하는 삶, 그리고 그 진리를 이웃에게 전하는 삶,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 피(제사)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대속)을, 물(생명수)은 구원을 다 이루시고 새 생명을 주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성령께서는 그 모든 것을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셨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 하느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이루셨고, 성령께서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신 것, 세위가 하나의 뜻으로 하나로 있는 것, ‘삼위일체’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 하느님 말씀으로 오셨으니 그 구원 말씀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저희가 모신 말씀에 더욱 맛 갖은 삶,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천주의 성령님! 티끌일 뿐인 저희를 하늘의 존재로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