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르6,34-44)

2026. 1. 4. 오전 11:28:58

글자

20260106일 화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마르6,34-44)



1독서<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화답송>시편72,1-2.3-4ㄱㄴ.7-8(11)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산들은 백성에게 평화를, 언덕들은 정의를 가져오게 하소서. 그가 가련한 백성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에게 도움을 베풀게 하소서.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복음<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마르6,34-44)

예수님께서는 34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주님 공현 후 화요일 제1독서 (1요한4,7-10)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4, 8.10)  

 

사도 요한은 요한 1서 4장 7절 후반절에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고 말했는데, 이제 반의적 대구를 이루는 요한 1서 4장 8절 상반절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자기 스스로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임을 밝힌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의 실천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아야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하느님을 모르고서는 참된 사랑의 의미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로 번역된 '호티 호 테오스 아가페 에스틴' (hoti theos agape estin)에서 '호티'(hoti)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요한 1서 4장 7절의 이유, 즉 거듭(새로)나서 하느님을 아는 자들이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드러낸다.

그리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표현은 하느님과 사랑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보여준다.

즉 하느님이 아니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이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결정적 증거는 바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독생 성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인류 구원의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 놓으신 사건이다.

'이렇습니다'로 번역된 '엔 투토'(en tuto; 여기; here)는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사랑의 출처와 기원, 사랑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전치사구를 이끌고 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기원과 출처가 하느님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의 본질이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먼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셨는데 그 사랑은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해 독생성자를 속죄제물로 보내신 사건을 통해 분명히 입증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명 안에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명의 기원이 된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에 나타난 사랑의 본질이요,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모범이다(4,11).

 

또한 사도 요한은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라는 부정적인 내용을 먼저 언급함으로써 긍정적인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랑의 출발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구현된 하느님의 계획과 마음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지극히 작은 응답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

본문에는 로마서 5장 1절과 10절에 나타난 사상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속죄 제물'로 번역된 '힐라스몬'(hillasmon; to be the propitiation)의 원형 '힐라스모스'(hillasmos)는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분리된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를 가리킨다.

'속죄제'는 피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 피의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구약 시대에는 '양'이나 '염소'의 피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어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지 못했다.

따라서 완전하고도 영원한 제사가 드려지기 전까지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한 온전한 화해 제사를 계획하시고 속죄제물을 준비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화해 제물이기 이전에 속죄 제물이 되셨다.

죄인들의 모든 죄를 속죄하실 뿐만 아니라 화해 제물이 되셔서  하느님의 원수였던 자들을 그와 화해시키셨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화해와 속죄제사에 대한 사도 요한의 이같은 진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사실성과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을 간접적으로 경계한 표현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여기지 않던 자들을 향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설파하면서, 화해 제물이 되신 십자가 희생 제사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 제물로 보내신 사건과 그로 인한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에서 두 모습을 떠올립니다첫째는 시편 23(22)편이 노래하는 목자와 양 떼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쫓아온 큰 군중을 가엾이 보시고 제자들을 시켜 모두 푸른 풀밭에 백 명 또는 쉰 명씩 무리 지어 자리 잡게 하십니다.

목자의 인도를 받으며 풀을 뜯는 초원의 양 떼들과 매우 비슷합니다.

어디에 풀과 마실 물이 있는지 잘 아는 목자와 함께라면 메마른 광야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구약 성경의 오경이 묘사하는 광야를 행진하여 가는 열두 지파 진영의 모습입니다.

낮 동안 그들을 안내하던 구름이 내려와 멈추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질서 정연하게 무리 지어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모세는 많은 것이 부족한 광야에서 백성들의 고충을 하느님께 가져가 아뢰고하느님께서는 이에 응답하시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백성의 가엾음을 외면하시지 않고 빵의 기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제자들의 가난한 봉헌물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시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의 기도를 바치신 다음 당신 양 떼들을 배부르게 하셨지요.

아버지 하느님의 도우심과 제자들의 가난한 봉헌이 함께한 선물과도 같은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6,43).

신명기 28장 5절의 축복 말씀이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너희의 광주리와 반죽 통도 복을 받을 것이다.”

반죽 통의 축복이 사렙타 마을의 과부에게서 이루어졌다면광주리의 축복은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빵과 물고기의 기적’은 네 복음서에 모두 언급되는 유일한 기적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은 마르코 복음이 전하는 놀라운 빵과 물고기의 기적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장정만 헤아려도 오천 명이나 되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시니, 제자들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자신들의 한계와 무력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들을 먹이려면 적어도 이백 데나리온은 필요한데, 가진 것이라고는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목자 없는 양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그 빵과 물고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던 제자들이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찹니다.

 

푸른 풀밭에 앉아 모두 배불리 먹은 이 식사는 단순히 굶주림을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식사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네’(시편 23[22],1-2 참조).

예수님께서는 부족함을 충만함으로 바꾸시는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삶에서 부딪히는 부족함과 한계를 생각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부족함과 한계를 지닌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하신다는 사실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그분께서는 부족함을 풍요로움과 충만함으로 바꾸시고, 그 선물을 나누어 주시고자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오늘도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다

 

(요한1서 4,7-10)

사랑하는 여러분서로 사랑합시다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 그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받는, 그 사랑을 서로 하라 하심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말하는 이가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 예수님의  대속 그 음으로, 그 죽음 안에서 죄의 없음의 존재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고린도2서 5,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대속),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 주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깊은지 인간의 감정, 능력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받는 존재이지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이 당신 외아들을 인간들의 속죄 제물로 내주시는 그 사랑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랑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랑이기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 사랑,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힘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세상의 모든 죄악보다 더 큰 사랑입니다.

 

요한묵시록 1,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 14 한 번의 예물로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피, 그 십자가의 단 한번의 죽음, 그 예물로 죄인들이 영구히 완전하게 되는 하늘의 사랑입니다.

그 하늘의 사랑은 모른 체 인간들의 사랑을 위한 신앙을 산다면?

 

로마서 10,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사랑)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사랑)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구원은 못 받는다 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 그 참 의로움을 찾아야지요.

 

아모스 5, 4 정녕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집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를 찾아라그러면 살리라.

 

스바니아 2, 3 주님을 찾아라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의로움을 찾아라겸손함을 찾아라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 주님의 분노는 인간의 의로움으로 피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법규의 실천 곧 십자나무 하나의 희생, 대속 그 하느님의 약속을 진리로 믿었을 때입니다. (탈출15,25 요한14,6)

 

마태오 6,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요한 8,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교회는 하늘의 의로움, 겸손이신 그리스도를~~ 그분의 말씀, 사랑 곧 진리의 성령을 담으러 오는 곳입니다.

아멘♡♡♡

 

 

  

 주님 공현 후 화요일 복음 (마르6,34-44)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1~42)

'찬미를 드리신'에 해당하는 '율로게센'(eulogesen; blessed; gave thanks)의 기본형 '율로게오'(eulogeo)는 '축복하다'(1코린4,12), '찬미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직설법 부정 과거로 쓰였으므로, 직역하면 '그가 찬미하였다'이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일반적으로 식사할 때 감사 기도를 드린 것과 같이 양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찬미를 드리신 것이다(마태26,26; 루카24,30).

예수님의 감사와 찬미는 성부 하느님께 돌려 드려지고 있지만, 이 기적을 가능케 한 권능은 예수님 자신의 신적 속성 가운데서 나온 것이다.

 

공관 복음의 병행 구절에서는 모두 여기처럼 '율로게오'(eulogeo)동사를 사용하였지만 (마태14,19; 루카9,16), 요한 복음에서는 '감사하다'는 뜻의 '유카리스테오'(eucharisteo) 동사를 사용하여(요한6,11)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가 간구가 아니라 '감사'였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빵을 떼어'

 

'빵을 떼어'에 해당하는 '카테클라센 투스 아르투스'(kateklasen tous artous; broke the loaves)에서 '빵'을 '아르토스'(artos)의 복수 '아르투스'(artous; loaves)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빵 한 개로 여러 조각을 낸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빵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셨음을 나타낸다.

 

한편 빵을 떼는 행위는 유대 관습에 의하면 주인이나 가족의 웃어른이 식사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나눠 주신 것은,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께서 그 주인으로서 잔치를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사람의 육신 생명이 빵으로 지탱되듯이, 예수님 당신이 인간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분이시며, 당신 자신이 영혼 생명의 주인이시고, 당신 없이는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투스 펜테 아르투스 카이 투스 뒤오 익튀아스; (tous pente artous kai tous dyo ichthyas;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es)로 남자만도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화는 성체성사의 예표가 된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여기서 사용된 동사 '파라티토신'(paratithosin; set before)의 기본형 '파라티테미'(paratithemi)는 '곁에'를 뜻하는 전치사 '파라'(para)와 '두다'는 뜻의 동사 '티테미'(tithemi)가 결합된 형태로 '곁에 두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이 동사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 '계속적으로 사람들 곁에 갖다  놓고 있는' 현재 진행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사람들이 오십 명씩 또는 백명 씩 앉아 있었기 때문에, 각 무리가 다 먹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한 번에 빵을 다 갖다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모인 무리가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이었기 때문에, 계수에 들지 않는 어린 아이들과 여자까지 합치면 엄청난 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 많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나눠 주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계속적으로 예수님께로 가서 빵을 받아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반복적인 수고를 거듭해야 했던 것이다.

 

'배불리'

 

동일한 표현이 마태오 복음 14장 20절에도 나온다. 이 동사가 '에코르타스테산'(echortasthesan; were satisfied; were filled) 으로 원문에 나오는데, 여기처럼 수동태로 사용될 때에는 '배부르게 먹다'는 뜻으로서 실컷 먹고 배부른 상태를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배푸신 양식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시편23,1).

  

 

  

20260106일 화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이철구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마르6,34)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르쳐 주셨을까요? 재물과 권력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방법을 알려 주셨을까요?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군중을 돌려보내 저마다 먹을 것을 구하게 하자고 예수님께 건의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6,37) 하시며,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6,38)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가르치신 것은 분명 하느님 나라의 진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핵심은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함께 들었을 제자들은 그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이 몇 개 있느냐?” 하고 물으시면서 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가지고 있는 빵의 개수를 확인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받은 것을 돌아보라는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곧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나눌 때 부족함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진 것이 많은지 적은지가 아니라 나누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주님께 받은 은총이 얼마나 큰지 먼저 생각하고,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철구 요셉 신부)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먼저가 나중이 된 신앙의 삶

 

복음(마르6,34-44)

34ㄱ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있었으나 진리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곧 구원의 양식믿음을 위한 양식을 얻지 못해 가엾은 이들이다.

 

34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에레모스-광야)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제자라는 이들이 예수님 밖의 헛된 양식을 먹게 하라는 것이다.(마태12,47-49참조) *<광야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양식인 것. (신명8,1-3)> 제자들은 군중들을 빨리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그레서 말씀 드린 것인데........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많은 군중을 먹일 수 있는 큰 돈이 없었을 것이다그러면 그럴만한 돈이 없는데요 저희 스스로는 구할 수가 없는데요“ 하고 주님께 말씀을 여쭈었어야 했다그러나 제자들은 군중에게 했듯이 자신들이 스스로 해결하려는 생각이 앞서 예수님께 볼맨 소리를 한 것이다.

현세의 우리들도 주님께 말씀드리며 여쭈어 볼 줄 모른다사건문제가 생기면 먼저 자신이 해결하려 한다그러나 안 풀리고 힘들 때 하느님을 찾는다하느님 보다 자신을 더 믿는다는 것이다우리는 1등(먼저), 하느님은 2등(나중)이라고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의 글이 떠오른다.

그런데 제자들의 능력 없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을까병행 요한복음 6,6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시험해 보려고 했다물론 떨어뜨리려는 시험(페이라죠)이 아니라합격 시키기 위한 시험(도끼마죠)이였다그동안 함께 동행하며 배웠지 않은가.....

당신께 의탁하여 함께 하시기를 바라셨던 것이다당신과 한 몸하나임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제자인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우리의 빛(생명)이신 예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그분 안에 살아야 하는 어둠(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서도17,28)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세상), 어둠(죽음)들의 양식이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시편23편의 말씀인 푸른 풀밭에 쉬게 하시려는 것이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어둠(죽음)들의 빵을 받고곧 죽음을 받아먹고 대신 빛(생명)의 양식으로 바꾸어 그들을 살릴 수 있게구원할 수 있게된 것에 찬미를 드리신 것이다그것이 주님께서 하느님께 받은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받은 그 새로운 생명의 빵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내 배()를 만족시켜줄 빵이 아니라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한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으로 먹어야한다곧 모세오경(5), 그 율법을 뜻하는 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그 죽음의 양식을 예수님께서 가져가시고 (숫자5,2는 죽음을 주는 법심판을 뜻한다대신 당신의 생명()을 내주신 그 구원의 말씀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것이 본문 39절에 쉼(안식)을 주는 푸른 풀밭에서 먹는 말씀 양식이다.

 

(시편23,1-5) 1 주님은 나의 목자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대부분 이 부분만을 기억하며 좋아한다그러나~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하느님의 막대와 지팡이구원으로 이끌어 줄 하느님의 약속인 말씀이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어둠의 골짜기재앙이 없는 것이 아니다다만 그 어둠의 골짜기재앙에서그리고 원수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그러니 내뜻()을 채우려만족하려고 하느님 말씀을 의지하려 한다면 시련고난의 때에 넘어지고 만다.

하느님은 그 모든 일곧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희로애락을 통해 선구원을 이루시는 분(로마8,28)이시다.

(하늘)이 어둠()을 뚫고 들어와 어둠을 빛으로 만들려면 빛과 어둠모두 함께 희생고난을 통과해야 한다곧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그분의 희생과 우리의 모든 것이 어둠의 행실임을 인정하고 버리는 그 우리의 고난이다그렇게 하나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 37절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신 말씀을 가지고 다른 곳에서 하신 말씀을 묵상해 보면 예수님께서 원수를 용서해라사랑해라” 곧 원수를 용서해라사랑을 주어라고 하신다또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신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사랑이 없지 않은가그래서 주님우리에게는 그 사랑이 없는데요그 힘이 없는 거 아시쟎아요하고 말씀 드려야 한다그랬을 때 미리 마련해 놓으신 용서사랑을 주신다곧 십자가의 대속당신의 용서사랑이다그리스도의 대속그 십자가의 복음을 서로 나누는 것서로 용서하고 사랑을 나누는(주는)것이다.

주님의 용서사랑을 먼저 받지 못하면곧 깨닫지 못하면믿지 못하면 진실된 인간의 용서사랑 또한 할 수 없다그 선지식을 가지고 독서 말씀을 보자.

 

1독서(1요한4,7-10)

7ㄱ 사랑하는 여러분서로 사랑합시다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서로 하라는 것이다곧 복음으로 사랑을 알고믿고서로 알려주어 나누라는 것이다.

 

7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다시)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내가 죽어남을 살리는 이타의 사랑이다인간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이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해야 하는 사랑이다.’ 그래서 그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주님의 사랑만이 참 구원의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우리의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그 용서사랑으로 저희가 거저 하늘의 존재가 되었음을 알았으니 그 하늘의 합당한 삶을 살도록 저희 안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루카4,14-22ㄱ)26.01.06조회 6[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호수 위를 걸으시다 (마르6,45-52)26.01.06조회 8[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르6,34-44)26.01.04조회 12[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하늘나라 (마태4,12-17.23-25)26.01.04조회 10[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1,29-34)26.01.02조회 10[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요한1,19-28)26.01.01조회 18[세계 평화의 날] 그 이름 예수 (루카2,16-21)25.12.31조회 9[성탄 팔일 축제 제7일]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요한1,1-18)25.12.26조회 14[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속량을 기다리는 이들 (루카2,36-40)25.12.26조회 19[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주님께 봉헌 (루카2,22-35)25.12.25조회 11[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보고 믿었다. (요한20,2-8)25.12.24조회 7[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아버지의 영 (마태10,17-22)25.12.24조회 9[주님 성탄 대축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요한1,1-18)25.12.24조회 7[대림 제4주간 수요일] 즈카르야의 찬미 (루카1,67-79)25.12.22조회 6[대림 제4주간 화요일] 세례 요한의 탄생 (루카1,57-66)25.12.21조회 9[대림 제4주간 월요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루카1,46-56)25.12.20조회 10[대림 제3주간 토요일] 예수탄생 예고 (루카1,26-38)25.12.19조회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