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간 월요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루카1,46-56)

2025. 12. 20. 오후 6: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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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2일 월요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루카1,46-56)



1독서<한나가 사무엘의 탄생을 감사드리다.>(1사무1,24-28)

24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화답송>1사무2,1.4-5.6-7.8ㄱㄴㄷㄹ(1)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주님 안에서 제 마음이 기뻐 뛰고, 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드나이다.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에, 제 입은 원수들을 비웃나이다.

힘센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아이 못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저승으로 내리기도 저승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주님은 비천한 이를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가난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높이시어, 존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복음<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루카1,46-56)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대림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1사무1,24-28)

 

사무엘 상권의 첫째 부분인 1-7장은, 이스라엘에 닥친 위기가 무엇이고 그 위기를 사무엘이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다룬다.

 이스라엘에 닥친 위기는 두 가지, 곧 지도자의 부재라는 내적 위기와 필리스티아인들의 침략이라는 외적 위기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도자는 실로의 사제 엘리였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 필리스티아인들의 침공을 막아내기는 고사하고, 집안 단속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하였다.

 

 이스라엘은 에벤에제르의 전투에서, 실로에 모셔 두었던 주님의 궤(계약의 궤)를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뺏기고 엘리의 집안은 몰락하였다. 이스라엘 안에 주님의 현존을 확인해 줄 사제직과 계약의 궤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를 극복할 우선적 대안으로 주변 민족들이 이미 오래 전에 받아들인 왕정의 도입 절실하게 요청하였다.

 땅을 확보한 이스라엘은 그 땅을 지켜줄 현실적 제도 찾고 있었다. 임금과 더불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줄 예언직도 중요한 직책으로 떠올랐다.   

하느님의 말씀과 현존이 약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언자들이, 외적의 침입과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임금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켜 준 인물이 바로 사무엘이다.  

 

오늘 독서는 자식이 없던 한나가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한 아이 즉 사무엘을 낳게 되었는데, 사무엘을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에 데리고 가서, 주님께 봉헌의 서약을 하는 내용이다.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가 드린 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1사무1,26-28참조)  한나가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 아들을 주님의 것으로 되돌려 드리는 이야기이다.

 

 봉헌(dedication)은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거룩한 목적으로 쓰임받도록, 사람, 물건, 장소를 속된 것에서 분리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성별(聖別)이란 말로 쓴다.  

하느님 편에서 그러한 목적으로 간택하여 쓰실 때에는 축성(consecration)이란 말을 쓴다.

 어쨌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께 되돌려 드린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절대권 즉 주권을 인정해 드린다는 것이다.

 

 기도해서 얻은 아이인 사무엘의 존재, 생명, 성품, 탈렌트, 신앙, 시간등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돌려 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축복과 놀라우신 간섭과 역사로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쓰임받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사무엘은 충실한 하느님의 도구요, 나지르인으로써 예언자적 역할을 종신토록 잘 수행한 것으로 나온다. 

이 뒤에는 어머니의 봉헌과 신심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외적 재화(물질, 돈, 토지), 내적 재화(신망애 삼덕과 성령의 은사등 초자연적 은혜) 우리 영혼, 육신, 심령, 가정과 사업체, 본당 공동체, 조국, 환경 등 하느님께 되돌려 드릴 것이 많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부채, 마음의 상처, 병고,원수등도 봉헌의 대상이 된다. 이런 것을 예수 성심 혹은 성모 성심께 봉헌 했을 때, 우리 구원과 성화를 위해,주님과 어머니께서 그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오늘 아기를 낳지 못하는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자식인 사무엘을 봉헌하는 것은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의 부모인 즈카리야, 엘리사벳의 성소와 더불어 구세주의 모친이신 성모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동정 수태를 예고하는 사건인 것이다.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  하느님과 함께 하면, 아니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면 불가능이 없다는 교훈이 구세사 안에서 하나 하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우리 존재와 생명의 절대권(주권)을 가지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있는지~~~

 그래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되돌려 드려서, 다시 하느님께로부터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하느님 뜻에 맞게 모든 것이 새롭게 재편성 혹은 개편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봉헌은 그러기에 세례성사때 한 서약의 갱신이요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성탄 시기에 봉헌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자.

 

 

 

 

[대림 제4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성모님의 인사말 소리에 엘리사벳의 태 안에 있던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던 것처럼(어제 복음 참조), 엘리사벳의 칭송을 들은 성모님의 마음도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기’ 시작합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마니피캇’(성모의 노래)이라고 하는 이 아름다운 노래로 기쁨을 표현하시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님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이라는 시골에 사는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여인에게서 그토록 큰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성모님께서 당신 체험을 바탕으로 고백하시고 찬송하시는 주님께서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통치자들부유한 자들보다는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에게 더 마음을 쓰시고오히려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심오한 뜻을 펼치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그제 복음).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으로 고백하십니다낮은 자리로 내려가 겸손한 마음으로 가장 높으신 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을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히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이제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으로 불리시며모든 세대가 그분의 행복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하십니다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어제 복음). 행복은 다른 길에 있지 않습니다성모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주님께 순종하며 그분 말씀이 실현되리라 굳게 믿는 것그것이 바로 행복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불행의 길은 어떤 것일까요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4,11).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십니까사람이 되신 겸손함으로 다가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곧 맞이하게 될 우리의 마음속 생각이 교만하여지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애 끓는 사랑으로 생명을 키워내는 자궁

 

(루카1,46-56)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 비천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구원자)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엄청난 말을 듣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엘리사벳을 찾았을 때, 성령으로 가득 찬 엘리사벳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확신의 찬사를 드린다.

 

(루가1,42-45) 42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43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44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 이 말에 마리아는 확신에 찬 믿음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찬송을 드린 것이다.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 피조물인 자신(쓴물)에게 창조주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하시고 구원자 예수님을 낳게 하시는 그 큰일이다.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그 큰일이 얼마나 큰 은총(은혜)인지 자각한다면, 믿는다면 하느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 자비(宮恤) -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애가 끓는 사랑의 마음과 생명을 키워내는 여자의 子宮을 뜻한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 교만한 마음을 부수시는 것, 자비(궁휼)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 통치자를 끌어내리심도 비천한 이를 높이심도 자비다.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 굶주린 이,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 빈손으로 내치시는 것, 자비다. 좋은 것-토브,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니 좋았다 하신 그 좋았다, 토브.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목적대로 완성되어 존재하는 상태가 좋은 것- 토브다. 부수심도, 끌어내리심도, 내치심도, 좋은 자비라는 것이다. 하늘로 완성하시기 위해 세우시고 올리시는 자비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적 소돔과 고모라를 파멸하실 때, 당신의 천사들을 롯에게 보내시어 가족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경고의 말씀을 하시지만~

(창세19,16) 16 그래도 롯이 *망설이므로 그들은 보다 못해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끌어 내었다. 야훼께서 롯을 그토록 불쌍히 여기셨던 것(자비)이다.

= 세상의 화려함이 좋아 망설일 때, 그 화려함에서 끌어내리심, 하느님의 자비다. 구원, 새 생명을 주지 못하는 세상의 욕망, 힘에서 끌어내시고 부수셔서 다시 살리시려는 자비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그 자비로 꼭 찾으신다는 것이다. 그 자비 안에는 용서가 들어가 있다. 당신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내주신 그 아픈 사랑이다. 죄인들에게 하늘의 새 생명을 시기 위해 찢어지는 그 아픈 사랑의 마음으로 이루신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마리아는 성령 충만한 엘리사벳의 말을 듣고 그 하느님의 자비를 기쁨으로 찬송한 것이다. 그렇게 석달을 함께 지냈다. 숫자3은 하늘의 숫자다.(성경의 숫자는 말을 한다.) 마리아는 구약(모세오경-5)의 엘리사벳에게 신약의 진리(하늘-3)를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이다.

그 모습이~ 후에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모습이다. 예수님이 열두살이 된 후에도 사람의 관습에 따른 신앙을 살아 예수님을 잃었던 것이다.(루가2,41-참조) <숫자 12는 완성된 하늘교회, 백성을 뜻한다.>

사람의 관습에 따른 신앙은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모습이다.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을 안다 하면서도 그 하느님의 뜻으로 살지 못하고 인간 중심의 삶, 내 뜻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속죄 제물로 구원자 예수님께서 오실 수밖에 없으셨다.

 

착각하지 말자~

영성체 후 기도☞  성체를 말씀으로, 새 계약으로 받아 모시는 것, 구세주를 기쁨으로 맞는 믿음의 삶이다.(루기22,20참조),

오늘 예물기도에서☞  “주님의 교회가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 구원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깨달아 믿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히브10,16-18.22)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십자가로 얻는 용서, 그 피의 법, 새 계약이다.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십자가)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다시~ 앞49절로 돌아가 보자.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 마리아만이 아니라 우리(나)에게 하느님께서 말씀을 잉태하게 하시고 구원자 예수님을 깨닫게 하신 그 큰일, 그래서 땅의 티끌(먼지)인 내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큰일이다,그 큰일이 오늘 우리(나)에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오늘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예수)으로 우리(나)를 새 사람으로 새 창조하신 것이다. 우리의 것,우리의 속셈을 드러내 부수시고 비워내시어 하느님 당신의 사랑을 채우셔서 이루신 새 창조인 것이다. 애끓는 사랑으로, 하늘의 생명으로 키워내신 하느님의 자비다.

 

☨천주의 성령님 감사합니다. ~아멘!!!

 




대림 제4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46~56)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1~52) 

 

루카 복음 1장 51절의 '팔'로 번역된 '브라키오니'(brachioni; arm)는 단순히 신체의 한 부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야드'(yad)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구약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신명26,8; 시편89,13).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는 '권능'으로 번역된 '크라토스'(kratos; mighty; trength)와 함께 사용되어 하느님의 크고 무한하신 힘과 능력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한편 '교만한 자들'에 해당하는 '휘페레파누스'(hyperephanus; the proud)는 '~위에', '~을 넘어서','~이상의' 등의 뜻을 가진 전치사 '휘페르'(hyper)와 '나타나다','자신을 나타내 보이다' 등의 의미를 가진 '파이노'(phaino)의 합성어에서 파생한 단어로 '하느님 앞에 자신을 지나치게 내보이는 자들',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이것은 루카 복음 1장 50절의 '경외하는 이들'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 결과 또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그분의 자비가 대대로 미치지만, 반면에 그를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흩어지는' 심판이 따른다는 것이다.

 

'주님이신 그분께 맞서는 자들은 깨어진다'(1사무2,10)는 한나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루카 복음 1장 51절에서, 마리아는 현명하게도 교만한 자를 치시는 하느님의 성품을 정확히 깨닫고, 자신의 모습을 비천한 계집종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높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루카 복음 1장 52절은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거름 더미에서 일으키시어 귀인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1사무2,8)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이 문장은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통치자들'과 '비천한 이들', '끌어내리시고'와 높이셨으며'이다.

 

권세있는 자와 비천한 자에 대한 하느님의 공평하신 심판을 다루고 있는 이 구절은 이러한 단어들의 대조를 통해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여기서 '통치자들'로 번역된 '뒤나스타스'(dynastas; the rulers; the mighty)는 '주권자','통치자' 등을 의미하는 명사 '뒤나스테스'(dynastes)의 복수이므로 '권세있는 자들'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왕좌에서'로 번역된 '트로논'(thronon; their thrones; their seats)는 그 권세자들이 앉는 '옥좌들'(보좌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끌어내리신다'는 것은 비록 세상 가운데서 권세있는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마음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을 얼마든지 그  보좌에서 내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임을 밝히는 것이다.

 

한편 '비천한 이들'로 번역된 '타페이누스'(tapeinus; the humble; them of low degree)는 '낮은 지위의','천한','겸손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형용사 '타페이노스'(tapeinos)의 복수형이므로 '비천한 자들'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 단어는 앞의 '통치자들'과 대조를 이루며, 직접적으로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의미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들을 가리킨다.  

 

결국 이러한 표현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비록 그들이 세상 가운데서는 낮고 천한 자들일지라도, 당신 앞에서 겸손하며 당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높이시는 분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좀더 높은 지위와 권세와 명성을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안달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느님 대전에는 도무지 의미없는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먼저 하느님 대전에 자신의 한계와 분수와 피조성을 인정하는 겸손한 모습을 가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들어 높이 쓰실 것이기 때문이다.

 

 

 

 

 20251222일 월요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한나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아들 사무엘을 봉헌하고자 사제에게 가는 내용인 오늘 독서와, 한나의 찬가로 이루어진 화답송은 복음에서 듣는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의 예표입니다.

한나가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사람들의 운명을 뒤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을 죽이시기도 살리시기도 하시며, 낮추시기도 높이시기도 하십니다(1사무 2,6-7 참조).

한나는 그런 주님의 은총을 체험합니다.

교회가 날마다 시간 전례의 저녁 기도에서 부르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주님 안에서 인간적 가치들이 뒤바뀜을 선포합니다.

주님께서는 권력과 부유함을 내세우는 교만한 이들을 내치시고 겸손과 비천함과 가난을 고백하는 이들을 선택하십니다. 마리아의 공로는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깨달은 데에 있습니다.

이 노래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이야기의 뒷부분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예고 부분과 예수님 탄생 이야기 사이에 자리하기에 기대와 성취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이 노래에서는 주님께서 하신 약속이 이미 이루어졌음이 선포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구세주이시자 전능하신 분 그리고 거룩하신 분이라는 그분의 속성을 한 낱말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비입니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이야기는 특별한 방식으로 잉태한 두 여자가 만나 단순히 서로 격려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리아가 신약의 구원자를 엘리사벳이 속한 구약으로 모셔 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구원자를 모셔 갈 때, 마리아처럼 복된 이가 될 것입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22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

 

마니피캇은 축복의 讚歌

 

복음(루카1,46-56)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ㄱ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이에게 한 큰일 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드님을 흙의 먼지일 뿐인 비천한 피조물에게 잉태하게 하신 일이다. 곧 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성육신화(聖肉身化)다.

 

(요한1,14) 14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요한4,2-3.15)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 곧 육(肉)을 입으시고 죄의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오셔서 비천(卑賤)한 나와 한 몸이 되는 큰일이다.

 

(요엘2,21) 21 땅아(죄인들아!, 로마노야!), 두려워하지 마라.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큰일을 하였다.

 

49ㄴ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말씀)으로 배불리시고 *부유(교만)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사제☞ 마니피캇은 보통 노래가 아닙니다. 마리아처럼 작고 비천한 사람들을 칭찬하고 축복하는 찬가입니다. 교만하고 오만 불손한 권력 자들을 경고하는 노래입니다. 굶주리는 이들을 배불리겠다고 약속하는 노래이고 죽어도 나누지 않는 부자들을 내치시겠다는 노래입니다.

결국 마니피캇은 작고 가난한 사람, 고통 받고 착취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해방을 선포하는 노래요, 나눔 없는 부자들과 높은 자들, 그릇된 지도자들을 향한 저주의 노래입니다.

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끌어내리시고 높이시는 것, 배불리시고 내치심, 그 모두 모든 이를 구(求)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사랑, 자비(慈悲)다. 그것이 주님의 길이다.

 

(이사40,3-8)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세상)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굶주리는 이)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교만)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말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 내 마음 안에 간직한, 잉태되신 말씀만이 남아 나를 구원하신다. 비천한 우리에게 하신 큰일이다. 그러나 육의 욕망(慾望)의 자리에서 끌어내리시고 빈손으로 내치심, 육적인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고난(苦難), 슬픔으로 하느님께 받는 훈련(訓練)이다. (히브12,6-11)

그래서 하느님께 버림받는 것같다. 매일 말씀 안에 머물러 하느님의 약속인 구원, 생명, 위로의 말씀을 먹어야한다. 곧 하느님의 힘인 사랑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방법, 길만 생각하게 되어 세상의 노예(奴隸)로 벌망, 죽음에 갇히게 된다. 희망, 생명은 하느님에게만 있음을 간과(看過)해서는 안된다.

 

(이사49,14-16) 14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16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

 

(요한10,27-30)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 내 안에 말씀께서 함께 겪는 시련, 고난, 훈련이다.

 

(이사53,3-5)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예수, 임마누엘)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아멘! )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하느님의 큰 일이 다 이루어진 지금, 우리는 고난, 시련, 눈물이 영원(永遠)히 없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 아버지!

사람들은 고통의 삶이 큰일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제 고통의 삶에는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며 당신께서 자녀로 만드시는 큰일임을 저는 압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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