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열두 제자 파견 (마태9,35-10,1.6-8)
제1독서<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비를 베푸시리라.>(이사30,19-21.23-26)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1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23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24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대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화답송>시편147,1ㄴㄷ-2.3-4.5-6(◎이사 30,18) ◎ 주님을 기다리는 이는 모두 행복하여라!
○ 우리 하느님을 찬송하니 좋기도 하여라. 마땅한 찬양을 드리니 즐겁기도 하여라.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네. ◎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네.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 지어 주시네. ◎
○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고 권능이 넘치시네. 그 지혜는 헤아릴 길 없네. 주님은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땅바닥까지 낮추시네. ◎
복음<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9,35-10,1.6-8)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이사30,19-21. 23-26)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20)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 하리라." (26)
이사야서 30장 18절, 19절에서는 징계중에 있는 남부 유다 백성들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기다리신다는 것과 응답하여 주실 것임이 약속되었다.
이제 이사야서 30장 20절 이하 22절에서는 이러한 남부 유다 백성들에게 계시의 회복과 더불어 신앙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 예언된다.
먼저 이사야서 30장 20절과 21절은 이러한 계시의 회복이 스승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 선언된다.
그 가운데 서두에 나오는 이사야서 30장 20절은 남부 유다 백성들이 이방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할 것임을 암시하는 예언이다.
이것을 나타내는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에 해당하는 '레헴 차르 우마임 라하츠' (lehem tsar umaim lahats; the bread of adversity and the water of affliction)은 문자적으로 빵, 곤경 그리고 물, 고난이라는 의미이다.
원문에는 소유격을 나타내는 연계형이 사용되지 않았고, 빵과 곤경이 동격으로 그리고 물과 고난이 동격으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이라는 형태로 이해해야 본문의 앞뒤가 맞게된다.
빵을 먹되 곤경 가운데서 먹는 빵, 물을 마시되 고난가운데서 마시는 물은 사실상 곤경과 고난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20)
본문은 주님께서 남부 유다 백성들에게 육체적인 고통은 주시지만, 영적인 은혜는 거두어 가시지 않겠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육체적으로 어려울 때에 이러한 영적 은혜마저 사라진다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고난의 때에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스승이 남아 있어서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밝은 내일을 가르쳐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본절에 나타나는 백성들이 비록 고난을 당하지만, 마음이 겸손하여 주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들은 이사야 예언자 당시 주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남부 유다의 정치 지도자들이나 백성들과는 다른 경건한 사람들이다.
한편 여기서 '너의 스승'에 해당하는 '모레카'(moreka)는 '스승'(교사)을 의미하는 단수 명사 '모레'(moreh)에 2인칭 소유격 접미어가 결합된 형태로서 '너의 스승'(your teacher)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어떤 영역본에서는 '스승'에 해당하는 영어를 대문자로 표기하여 이 '스승'이 주 하느님이심을 명확히 했고, 어떤 영역본에서는 '스승'에 해당하는 영어를 복수형으로 번역하여(your teachers) 본문의 '스승'이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예언자들임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의 번역이 어느 것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레카'가 문자적으로 '너의 스승'이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백성들을 지도하시고 교훈하실 때 직접 하시지 않고 그의 예언자들을 통해 하시기 때문에, 동시에 '너의 스승들'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본문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교훈하실 것임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백성들의 영적 스승이 되는 것이다.
한편 남부 유다 백성들의 눈이 그들의 스승을 뵙게 된다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하느님을 뵙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자신들을 지도하시며, 하느님의 대리자인 예언자들을 보내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뜻이다.
예언자들은 그들 가까이에서 그들을 지도하며, 하느님의 뜻을 그들에게 매우 분명하게 가르칠 것이다.
이것은 이것을 듣는 남부 유다 백성들도 영안(靈眼)이 밝아져 하느님의 모든 뜻을 분명하게 깨닫고 순종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 하리라.'(26)
여기서는 치유와 빛의 개념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강조되고 있다. 이 두 개념은 모두 주 하느님의 축복을 상징한다.
여기서 상처가 난 '당신 백성', 즉 '암모'(ammo; his people)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하느님의 모든 영적인 백성을 의미한다.
다만, 이사야 예언자가 당시의 남부 유다 백성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백성들, 즉 미래의 교회 시대에 하느님의 백성이 될 모든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들이 받을 '상처', 즉 '셰베르'(sheber; the breach of; the bruises of)는 본래 깨뜨려 부수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샤바르'(shabar)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깨짐','부숴짐'을 의미한다(레위21,19; 잠언17,19).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살면서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주님 대전에 받은 징벌 뿐 아니라, 신앙 때문에 세상에서 당할 박해와 환난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종말의 날에 그들의 모든 상처를 싸매주시며 치유해 주실 것이다.
또한 본절 후반부의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에 해당하는 '우마하츠 막카토'(umahats makkatho; the wounds he imflicted)는 징벌을 당하고 환난을 당해 난 자리, 즉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포괄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고치실 것을 약속하신다.
여기 '낫게'에 해당하는 '이르파'(irpha; heals)의 원형 '라파'(rapha)는 일반적인 치료와 회복의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사람의 힘만으로 치료될 수 없는 질병이나 재앙이 내릴 때,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치유하시는 것을 나타낼 때 종종 사용된다(창세20,17; 탈출15,26).
이 단어에는 '용서'의 의미까지 함축되어 있으며(이사19,22; 53,5; 59,18), 이같은 하느님의 치유의 역사가 이루어졌을 때에는 다시는 아픔이나 눈물도 상처도 없는 완전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다.
끝으로, 본문은 주님께서 치유해 주시는 은총이 내리는 그날에 생겨날 놀라운 일이 예언되는데, 그것은 하늘의 대표적인 광명체인 달과 해의 빛의 광도가 더 커질 것임을 지적한다.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의 뜻은 밤이 소멸될 것이라는 사실을 연상하게 한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할 때, 진리의 빛이 과거에는 달빛처럼 희미했으나 이제는 해와 같이 밝고 찬란하여 누구나,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진리 안에서 거닐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아울러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의 뜻은, 히브리어에서 '일곱'(7)은 완전수로서 완벽함을 상징하므로, 햇빛이 더 이상 더 밝아질 수 없을 만큼 완전하게 밝아진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는 것은 하루의 빛이 일곱 번 더해지는 정도의 밝은 빛을 의미하며, 이것 역시 완전한 빛을 상징한다.
이러한 것들은 영적인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진리의 빛이 찬란하게 비추신다는 사실과 더불어, 주 하느님께서 친히 이러한 완전한 빛이 되심으로써, 해와 달의 비추임이 필요없는 상태가 될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묵시21,23).
이것은 결국 종말의 날, 어두움의 세력인 악(惡)이 완전히 소멸되고, 오로지 빛과 진리만이 지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온전히 성취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활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오늘 독서는 이러한 예수님의 활동에 대한 예언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이 말씀은 길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마태 5—7장 참조).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리라.”
이 말씀에서도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마태 8-9장 참조).
예수님 눈에는 당신께로 몰려드는 군중이 마치 목자 없는 양들처럼, 사나운 이리의 위협을 피하여 다니며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된 양들처럼 보이셨나 봅니다. 그래서 몸소 그들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다음의 시편 구절처럼 양들을 한데 모아 바른길로 인도하는 참된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신다’(시편 23[22],1-3 참조).
참된 스승이시며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고쳐 주시는 일에 전념하셨다면, 그분에게서 파견되는 제자들의 임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보듬으며, 주님의 위로를 전하는 일꾼들을 양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회의 사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소의 꿈을 키우는 이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수확할 밭’의 일꾼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많은 젊은이가 응답할 수 있도록, 마음 모아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대림 제1주간 토요일]
권한, 하늘의 용서, 치유, 그리고 구마의 힘은 말씀인 것.
복음(마태9,35-10,1.5-8)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 하늘나라의 문인 하늘나라의 복음으로 고쳐 주셨음 이다. '목자없는 양들 처럼'이라 하셨으니, 복음은 목자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요한10,9.11)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하늘 문, 길을 잃어버린 양(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목자 예수 그리스도!
(2티모2,8)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 죄인들의 죄로 죽으셨고,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려 되살아나시어 하늘나라에 데리고 들어가시려는 그리스도, 들어가시려는 그리스도! 그것이 복음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으로 새롭게 된다. 곧 하늘의 평화, 자유, 안식, 생명, 구원, 용서, 치유의 “예”가 되신다.
(2코린1,19)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히브1,3) 3 아드님(예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이 구원의 복음을 받지 못하면 본문의 사람들처럼 율법(제사와 윤리)과 거짓 사도들의 헛된 가르침, 곧 땅(세상)나라의 가르침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된다. 내일(영원한 시간)의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8,24)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로마15,12) 12 이사야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이의 뿌리에서 줄기가 돋아나리니 그가 일어나 민족들을 다스리고 민족들은 그에게 *희망을 걸리라.”
(히브6,18-19)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맹세로 보장)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따르는 많은 이들이 무거운 짐, 희망이 없는 가르침에 시달리기에~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땅, 세상 나라에 가르침이 아닌, 하늘나라의 복음을 진리로 가르칠 일꾼을 청하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의 감동적 이야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근거로 가르칠 일꾼을 청하라는 말씀이다.
즉 복음을 올바로 깨닫고 믿게 해주실 성령께 의탁하여 십자가의 복음만을 듣고, 구원을 간직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말씀의 힘인 용서, 치유, 구마의 권한이다.
그래야 거짓 가르침을 쫓을 수 있다. 그래야 거짓 가르침으로 허약해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어 새로움 삶, 생명으로 살릴 수 있다.
그것이~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땅, 세상 나라의 사람들의 감동적 이야기로 가르침을 받으면 어찌 구마와 하늘의 치유(용서, 생명, 구원)를 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하늘의 복음, 곧 길 잃은 양들,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는 착한 목자의 대속,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복음 선포로 고쳐 주셨듯이 복음으로~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하늘나라의 대속, 그 용서의 복음을 몰라 죄 의식으로 앓는 그 죽음의 상태인 이들, 그리고 영적 나병인 자신의 죄로 영이 죽어가는 데도 고통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늘의 대속, 하늘나라의 복음을 주어 살리라’는 말씀이다.
*꼭 기억합시다.~
(티토2,14)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 선행, 구원의 믿음과 복음 선포다.
구약에서부터~
(탈출19,5) 5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이제 오늘날에는~ 착한 목자의 죽음, 곧 ‘그리스도의 피의 새 계약’을 진리로 믿으면, 그리고 고백하면(선포하면) 하느님의 사람, 하늘이 된다.
(신명4,20) 20 그러나 너희는, 주님(야훼)께서 도가니(지옥) 곧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셔서 오늘 이처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 백성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용서, 치유, 구마의 권한인 말씀을 잃지 않고 구원의 복음으로 지키게 해 주소서. 그래서 병들어 허약한 저와 이웃이 하늘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복음(마태9,35~10,1.5ㄱ.6~8)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36)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he; he was moved with compassion)는 '~을 불쌍히 여겨 마음이 움직이다'라는 뜻이다.
우리 말로는 '보기에 답답하고 딱해 걱정하고 안쓰럽게 여기다'이다.
이것은 단순히 감상적인 느낌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죄와 질병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들을 향해서, 인간들을 지으셨고 또한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의 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단순히 감정상의 측은함이나 연민의 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마태오 복음 9장 36절의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군중들을 보고 가엾게 여기신 이유가 나온다.
이것은 구약의 즈카르야서 10장 2절의 '사람들은 양 떼처럼 방황하고 목자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구절과 비슷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자없는 양'의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신약의 여기뿐만 아니라 구약의 민수기 27장 17절, 역대기 2권 18장 16절, 열왕기 1권 22장 17절 등에서도 발견되는 드물지 않은 표현이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결핍 상태에 있었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구심점도 없었다.
이런 차원에서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을 포함하는 온 우주의 갈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며, 방황하는 인간들을 바른 길로 구원할 약속된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이미지가 영적인 목자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2025년 12월 06일 토요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복음서는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감정을 묘사하는데, 연민, 곧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기적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열쇠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라는 표현은 그리스 말로 ‘창자가 움직이다.’라고 표현됩니다.
‘뱃속, 창자’는 구약의 전통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우리말에서도 ‘마음’을 뜻하지요.
창자를 뜻하는 옛말 ‘애’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가리키면서 ‘애가 탄다.’, ‘애간장이 녹는다.’ 등으로 간절함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그저 상대를 가엾이 여기시는 감정에 그치시지 않고 시달리고 기가 꺾인 이들을 위하여 행동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느끼시는 연민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시작입니다.
삶 전체를 내주는 헌신으로 이어지는 연민이지요. 우리는 고통받는 이들을 볼 때 연민을 느끼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하거나 부담스러워서 그냥 눈을 감아 버리지는 않나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듯이 우리에게도 당신의 일을 함께 하자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로 성령의 힘과 권한을 주셨고, 성체성사로 당신과 일치하는 가운데 그 힘을 새롭게 하십니다.
수확을 위한 일꾼을 꼭 사제 성소자나 축성 생활 성소자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헌신하려면 지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먼저 필요합니다.
거저 받은 주님의 연민과 사랑에 힘입어 주님의 일을 함께할 준비가 되었나요?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측은지심(惻隱之心)
복음(마태9,35-10,1.5-8)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하늘나라의 복음(福音)?- 복음이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셨음인데, 곧 빛인 하늘이 어둠인 세상에 빛(생명)을 주시기 위해 구원자로 오셨다는 것이 복음이다.
(루카1,68-69.78-79)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빛, 구원자)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죄를 대속하여 속량하시고 자유, 평화를 주시는 십자가의 복음이다.
(로마4,25.5,1)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1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1코린15,3-5)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2티모2,8)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하느님의 일이다.(요한6,29)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 하늘나라의 복음, 곧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줄 목자가 없어 병에 시달리며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로 깨닫고 믿게 해 줄 일꾼? 성령(聖靈)을 청하라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수확물을 분별할 수 없으니 말이다. (1코린2,9-10 마태13,27-29) 또한 속이는 더러운 영의 거짓예언자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어리석음으로 만들어 버렸다. (1요한4,1 1코린2,14)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성령께 의탁하여 옛 것을 새것으로 고쳐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이들이다. (에페1,4) 우리는 알 수 없으니 모든 이들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하느님의 뜻,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우리 가운데에 계심’이다. 그 예수님의 말씀 권한으로~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 그래서 그분과 한 몸이 되지 않는 것이 새 것이 되지 못한 앓는, 죽은, 나병환자, 마귀들림인 것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오늘 나의 복음은 이것이다.
독서(이사30,20.25-6)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말씀)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내 안에 모든 어둠이 사라진다는 말씀이다.
☧ 아버지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