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20,27-40)
제1독서<예루살렘에 끼친 불행 때문에 나는 죽어 가네.>(1마카6,1-13)
1 안티오코스 임금은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페르시아에 있는 엘리마이스라는 성읍이 은과 금이 많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2 그 성읍의 신전은 무척 부유하였다. 거기에는 마케도니아 임금 필리포스의 아들로서 그리스의 첫 임금이 된 알렉산드로스가 남겨 놓은 금 방패와 가슴받이 갑옷과 무기도 있었다.
3 안티오코스는 그 성읍으로 가서 그곳을 점령하고 약탈하려 하였으나, 그 계획이 성읍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4 그들이 그와 맞서 싸우니 오히려 그가 달아나게 되었다. 그는 크게 실망하며 그곳을 떠나 바빌론으로 향하였다.
5 그런데 어떤 사람이 페르시아로 안티오코스를 찾아와서, 유다 땅으로 갔던 군대가 패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6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앞장서 나아갔던 리시아스가 유다인들 앞에서 패배하여 도망치고, 유다인들이 아군을 무찌르고 빼앗은 무기와 병사와 많은 전리품으로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7 또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역겨운 것을 부수어 버리고, 성소 둘레에 전처럼 높은 성벽을 쌓았으며, 그의 성읍인 벳 추르에도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8 이 말을 들은 임금은 깜짝 놀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던 대로 일이 되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9 그는 계속되는 큰 실망 때문에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닥친 것을 느꼈다.
10 그래서 그는 자기 벗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
11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네. ‘도대체 내가 이 무슨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내가 이 무슨 물살에 휘말렸단 말인가? 권력을 떨칠 때에는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
12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 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13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화답송>시편9,2-3.4와 6.16과 19(◎15ㄷ)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찬송하며,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
○ 제 원수들이 뒤로 물러가고, 당신 앞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져 갔나이다. 당신은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없애셨으며, 그 이름을 영영 지워 버리셨나이다. ◎
○ 민족들은 자기네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자기네가 쳐 놓은 그물에 제 발이 걸리네. 가난한 이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 ◎
복음<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20,27-40)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31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제1독서 (1마카6,1-13)
그래서 그는 자기 벗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버렸다네. 나는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네. '도대체 내가 무슨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내가 이 무슨 물살에 휘말렸단 말인가? 권력을 떨칠 때에는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10-13)
마카베오 상권 5장 1절~7장 50절은 유다의 군사 지도력의 둘째 단계를 드러낸다.
이것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다윗이 한 것처럼(2사무8장,10장참조), 셀류코스와 동맹을 맺은 민족들과 다른 모든 원수와 싸우는 것이다.
그들은 남쪽의 이두메아(1마카5,3-5,68), 요르단 강 동쪽의 암몬과 길르앗(1마카5,6-13.24-51), 북쪽의 갈릴래아(1마카5,21-23), 해변의 평원 지대(1마카5,66-68)을 포함하여 모든 지역을 공격한다.
그들의 전투는 그 지역에서 과거에 유다인들에게 해를 끼친 데 대한 보복이나 유다인들에게 미래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려는 것으로 제시된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그 공적으로 인해 유다인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이민족들 사이에서도 큰 영예를 받지만, 그들과 별도로 군사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은 패배한다.
마카베오 상권 5장 55~62절에서 요셉과 아자르야가 그렇게 하려고 했다가 크게 패배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들의 후손이 아니었기"(1마카5,62) 때문이다.
한편, 마카베오 상권 6장 1~17절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임금의 죽음을 다룬다.
이스라엘에 대한 박해로 악명이 높았고, 세상의 권세를 자랑하며 하느님을 모독하던 그는 유다의 군대가 승리하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된다.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역겨운 것을 부수어 버리고, 성소 둘레에 전처럼 높은 성벽을 쌓았으며, 그의 성읍인 벳 추르에도 그렇게 하였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1마카6,7-8ㄱ).
지금까지는 무소불이의 권한으로 자신이 원하던 대로 일이 되던 것이 이제 하나 둘 뜻대로 안되니까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여 우울증<melancholia; tristimonia; depression; 심기증(心氣症)>에 빠져 죽게 된다.
안티오코스는 마카베오 상권 6장 10-13절에서 자기의 측근들을 불러 놓고, 자신에게 계속해서 불행이 닥치는 이유가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하고 유다 주민들을 죽인 벌 때문이었다고 진단하면서 자신이 죽게 되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측근 가운데 하나인 필리포스를 대리인으로 뽑아 그에게 온 왕국을 맡기고 죽는다.
하지만, 리시아스는 그가 죽은 것을 알고, 자신이 어릴 때부터 키워 온 안티오코스의 아들 어린 안티오쿠스 왕자를 인티오코스 5세(에우파로르) 임금으로 세우고, 어린 임금 안티오코스 5세의 후견인으로 자처하게 된다.
그러니까 유다인들에게 해를 끼치고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했던 안티오코스 4세의 뜻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사제 김상우 바오로)
오늘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사두가이들과 예수님의 부활 논쟁을 다룹니다.
당시 유다교에는 여러 분파가 있었는데, 사두가이들은 죽음 이후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바리사이들은 그 나름의 부활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지만 모두 자식 없이 죽었다면, 부활 때 그는 누구의 아내가 되냐는 것이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의 질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답하십니다.
부활을 믿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의 대답에 맞장구를 칩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언어로는 하느님 나라를 완벽하게 설명하거나 이해하기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실 때, 다양한 비유를 쓰시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 신앙은 머리로 이해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과 비교할 때 피조물 인간은 상대적으로 어린아이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으로 구성된 2차원에서 입체적인 3차원을 이해할 수 없고, 3차원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4차원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의 이성과 지식은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올바르게 소통하며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 여정을 내딛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부활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복음(루카20,27-40)
끝은 시작입니다.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생사를 넘어 오늘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을 삽니다. 주님을 닮아 아름답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히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밝히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은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34-36)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된 하늘 나라입니다.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은 이미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천사들처럼 천상 생활을 앞당겨 살아갑니다.
삶이나 자연을 통해 이런저런 아름다움을 체험할 때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도 어렴풋이 듭니다. 사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천상 아름다움의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상에서 이미 하늘 나라 천국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믿음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사람 눈에 죽음이지 하느님 눈에는 모두가 당신 안에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늘 나라의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아멘.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마카베오기 상권 1-4장에 나오는 역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 원정에 나서 넓은 영토를 손에 쥡니다.
그는 열두 해를 다스린 뒤 부하 장군들에게 그 땅을 나누어 주고 죽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왕조의 후손 가운데 성전을 약탈하고, 이스라엘의 율법과 풍습을 금지하며 우상을 세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유다 전쟁에서 계속된 패배 소식을 듣고는 실망하여 죽어 가는 임금입니다.
그에게서 우리는 악의 전형적 모습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바로 남들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힘으로 강요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다름과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마구 짓밟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사제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은 용감히 일어나 율법과 성전에 대한 열정으로 맞서 싸워 침략자들의 군대를 몰아냅니다.
비록 적은 수였지만 그들은 이집트를 치신 하느님의 놀라운 힘과 업적을 기억하고 의지하였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군대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에 달렸다고 굳게 믿은 것이지요.
마타티아스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는 전쟁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듭하여 마침내 성전의 치욕을 벗겨 냅니다.
역겨운 우상의 제단을 허물고 율법의 규정대로 새로운 제단을 만들어 봉헌합니다.
자신의 힘과 군대만을 믿었다가 좌절하고 절망하여 죽음에 이르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와, 오직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며 외세를 몰아내고 성전을 정화하여 봉헌하는 유다 마카베오는 뚜렷이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복음(루카20,27-40)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우리(나)는 믿는가? 부활(復活)을 준비하는 신앙(信仰)을 사는가? 현세의 삶을 위한 신앙을 사는 것은 아닌지요.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자식, 아들)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 하느님 나라의 성가정(聖家庭) 모습이다. 영원한 죽음에 갇혀야 할 죄인(罪人)이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풀려나 그분과 혼인(婚姻)하러 가는 하느님 나라다.
(마태22,2)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아들 야곱을 *낳았다. 그리고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다. -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의 뜻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뜻을 깨달은 이들을 ‘살았다’고 하는 것이고, 그 깨달아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자식(산 이들)으로 보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위한 삶을 살아가려 하기에 스스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반드시 후사(後事) - 자식(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聖經)은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이들을 ‘죽었다.’고 ‘죄인, 짐승’이라고 하신다.
(이사1,2-3) 2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아들들을 기르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 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 모든 피조물(被造物), 우주 만물이 하느님의 뜻을 위해 그분 뜻대로 살아가며 움직이지만, 인간만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拒逆)하며 원수(怨讐)로 살아간다고 하신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 그러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믿어야 할) 하느님의 뜻(일)은? 자신의 뜻, 현세의 것을 이루려 육의 양식을 위해 열심을 부리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罪)를 품으시고 대신 죽고 살리시어, 하늘의 새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의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 이시다.(요한1,9-14참조) 그러나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믿으려,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를 앞세운다.
(요한6,28-29)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죄인(짐승)들의 생명의 양식(糧食)으로 보내심을 믿는 것이다.
(요한6,38-40)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 아버지의 뜻, 그 뜻에 죽기까지 순종(順從)하신 예수님을 진리(眞理)로 깨달아 믿는 것이 구원(救援)의 길이다.
(갈라1,4)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 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 그래서 우리도 성모(聖母) 마리아처럼 아들을 낳아야(깨달아야)한다.
(루가2,7)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짐승들의 먹이통에 누우신, 깨끗하고 따듯한 여관(旅館)에 들어가지 못한, 그 작은 아기가 구원자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곧 구유의 아기가 하느님의 뜻으로 구원의 진리, 새 계약의 말씀으로 오신 구원자 그리스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루가2,34) 또~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쓰러지게 하신 후 일어나게 하시는, 곧 육(肉)의 교만(驕慢)을 죽이시고 영(靈)으로 살리시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그분이, ‘구원의 진리’이심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산 자,’ 곧 하느님의 자식(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그 길이 진리(眞理)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오늘 독서(1마카베오 6,13) 안티오코스처럼 세상의 권력(權力, 명예, 힘)을 떨칠 때에 쓸모 있고 사랑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육(肉)의 영광을 위해 따르게 되면, 곧 현세(現世)를 위해 믿는다면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마르8,31-33)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대속)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꾸짖다)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 하느님의 일(뜻)을 위한 죽음이다. 성경(聖經)의 모든 말씀과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奇蹟)과 표징(標徵)등, 모든 일이 땅의 일, 사람의 현세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 하느님 나라의 일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곧 어제 확인했듯,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며, 그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 아드님을 속죄(贖罪) 제물로 내주신, 인간의 지각(知覺)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사랑, 자비를 깨닫고 하느님께 감사(感謝)와 찬미(讚美)로 영광(榮光)을 드리는 것이다. 그들이 ‘산 이들’인 것이고, ‘그들의 하느님’ 이시다.
(로마6,3-5)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하늘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 아멘
*본문 38절을 다시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는 기도(祈禱)로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