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수요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의 비유 (루카19,11ㄴ-28)
제1독서<창조주께서,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2마카7,1.20-31)
그 무렵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20 특별히 그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21 그는 조상들의 언어로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하였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 찬 그는 여자다운 생각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우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22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23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24 안티오코스는 자기가 무시당하였다고 생각하며, 그 여자의 말투가 자기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워하였다. 막내아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임금은 그에게 조상들의 관습에서 돌아서기만 하면 부자로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며 벗으로 삼고 관직까지 주겠다고 하면서, 말로 타이를 뿐만 아니라 약속하며 맹세까지 하였다.
25 그러나 그 젊은이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그 어머니를 가까이 불러 소년에게 충고하여 목숨을 구하게 하라고 강권하였다.
26 임금이 줄기차게 강권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설득해 보겠다고 하였다.
27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을 기울이고 그 잔인한 폭군을 비웃으며 조상들의 언어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들아,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나는 아홉 달 동안 너를 배 속에 품고 다녔고 너에게 세 해 동안 젖을 먹였으며, 네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기르고 키우고 보살펴 왔다.
28 얘야, 너에게 당부한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29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30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젊은이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오? 나는 임금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소. 모세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주어진 법에만 순종할 뿐이오.
31 히브리인들을 거슬러 온갖 불행을 꾸며 낸 당신은 결코 하느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화답송>시편17,1.5-6.8과 15(◎15ㄴ) ◎ 주님, 저는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 주님, 의로운 사연을 들어 주소서. 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 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 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
○ 계명의 길 꿋꿋이 걷고, 당신의 길에서 제 발걸음 비틀거리지 않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
○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
복음<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루카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 (2마카7,1.20-31)
"너희가 어떻게 내 배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준 것도 내가 아니다.(22)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29)
마카베오서 하권 7장은 어떤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를 전한다.
일곱 아들은 각기 임금 앞에 불려가 고문을 당하며 왜 자신이 고통을 달게 받는지 설명한다.
어머니는 두 시점에서 개입한다(2마카7,20-23; 26-29)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들의 뒤를 이어 죽는다(2마카7,41).
어머니와 아들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유다인의 정체성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실천 사항들, 곧 할례, 안식일 준수 그리고 음식에 관한 법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죽는다.
순교자들이 엄청난 고통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보존한 동기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다.
둘째 아들은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시키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7,9)라고 말한다.
셋째 아들은 자기 혀를 내밀고 손을 내뻗으며 "이 지체들은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고 희망하오."(2마카7,11)라고 말한다.
넷째 아들은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한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2마카7,14)라고 지적한다.
끝으로 어머니는 일곱째 아들에게 조언하며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꼐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2마카7,29)하고 말한다.
마카베오 하권 7장 30-38절에서 일곱째 아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화해하시기 전에 그들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이 고난을 받게 하신다고 말한다(2마카7,33).
그는 순교자들의 고난으로 "온 민족에게 정당하게 내렸던 전능하신 분의 분노가 끝나기를" 간청한다고 말한다(2마카7,38).
이 말은 마카베오 하권 제4부(2마카10,10-15,39)에서 길게 전개되는 속죄 제물의 사고를 도입하는 것이다.
마카베오 하권의 설화 구조에서 고난을 통해 배우는 가르침과 순교자들의 죽음이 갖는 속죄의 가치로 인해 하느님께서 유다 마카베오 때 이스라엘을 쇄신하시고 예루살렘의 성전을 정화하실 수 있게 된다.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잘하였다, 착한 종아!’
복음(루카19,10-28)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자케오 처럼 하느님의 사랑, 길을 잃은 죄인들이다.
11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덧붙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예수님)이 왕권(생명, 구원의 권한)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하늘)으로 떠나게 되었다.
= 하늘가는 길 잃은 죄인들을 구원(救援)할 수 있는 권한이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 열 사람이 각각 받은 ‘한 미나’는 하느님께서 열을 하나로 주신 것이다. 곧 선악의 여러 계명을 사랑 하나로, 한 계명으로 주신 것인데(갈라5,14) 그 사랑 하나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으로 얻는 왕권, 권한이다.
그 이타(利他)의 사랑이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계약, 진리로 자신의 생명임을 깨달아 마음에 믿음으로 간직하고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굳게 지키는 일을 하라고 주신 것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간직해야할 사랑의 계명, 새 계명이다. (성경에서 열(10)과 하나(1)는 같은 의미다)
(요한17,2-3)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 많은 사람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생명, 빛, 구원이신데 말이다.(요한1,9-11)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깨달음)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하나가 열임을, 열이 하나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 상태가 구원, 진리의 길이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 ‘잘하였다, 착한 종아!’라는 칭찬이 없다. 하나로 다섯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를 다섯으로 가지면 모세 오경, 율법이다. 이 종은 그 율법, 그 다섯을 잘 다스려, 그 다섯으로 다른 차원의 다섯을 깨달아 열로 갖고, 그 열이 하나임을 깨닫는 일을 다시 해야 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 사랑을 십계명으로 다섯, 다섯, 두 돌판에 주셨다.(신명4,13) 그 옛 계명과 새 계명, 옛 계약과 새 계약을 뜻한다. 곧 옛 것이 죽음의 법임을 깨달아 생명의 법, 그리스도 안에 새것이 되어야 한다.(갈라3,24-25 2코린5,17)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聖經)을 고이 모셔 놓고는 세상에서 배운 도덕과 윤리의 삶으로 사람들에게서 들은 ‘상선벌악’의 하느님으로 그냥 섬겼다는 것이다. 그러면 두려움의 신앙을 살 수 밖에 없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 성경(聖經)을 모르니, 사랑 그 하나의 계명을 모르니, 곧 죄인들의 마음 밭에 씨로 오셔서 썩어지시고, 그 길을 잃은 죄인들에게 열매로 하늘의 생명을 주시러 오신 그리스도의 희생, 사랑을 모르니, 두려운 하느님이 된다. 그것이 진리를 벗어난 불의(不義), 죄(罪)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 말씀을 이자로 불려줄, 곧 말씀, 문자 안에 감추어진 실체, 내용인 ‘잃어버린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사랑’, 그 하나를 더 깨닫고 믿게 해 줄 성령(聖靈)께 의탁함이다. 성령께서 끄시는 말씀 나눔의 모임에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 나눔의 모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구역, 반 모임, 또한 진리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말을 나누는 친목(親睦)의 모임이 되어 버렸다. 올바른 모임, 단체를 찾고, 만들어야 한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각자가 받은 한 미나가 자신들의 생명, 구원 이었다. 그것을 ‘깨달으라.’ 주신 것이다. 깨닫지 못해 믿지 못하면 없는 것이다. 그것이 빼앗김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희생(犧牲), 그 크신 사랑을 헛되게 하는 큰 죄악이 된다. ‘다섯 미나’를 갖은 이는 언급하지 않으신다. 건너야 할, 버려야 할, 율법(律法)이기 때문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 ‘한 미나’를 잃어버린, 곧 선악(善惡)의 말로 죄인(罪人)이 된 이들을 구(求)하시는 일을 하시러, 십자(十字)나무에 달리시러 길을 가심이다.
원수(怨讐)는 그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주님의 사랑을 새 계명(誡命), 새 계약(契約)으로, 진리(眞理)로 믿지도 의탁(依託)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한 미나’를 고이 묻어둔 사람이다. 깨닫고 믿기 위한 벌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필리3,18-19) 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의 마음에 충만하시어 믿음을 위한 깨닫는 일을 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연결하여 ‘미나의 비유’를 설명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올 때,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행하실 ‘심판’을 예고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처럼 제자들도 하느님 나라가 갑자기 닥쳐오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저자는 기대나 조급함을 경계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고자 완수하여야 할 사명이 제자들에게 맡겨졌음을 비유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이 비유에서 왕권을 받아 오려고 길을 떠나는 주인은 열 명의 종에게 한 미나씩 나누어 줍니다.
유다 화폐 단위 미나는 백 데나리온이며, 한 미나는 당시 일꾼이 백 일 동안 일하여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한편 돌아온 주인은 종들에게 나누어 준 미나를 어떻게 관리하였는지 묻습니다.
첫째 종은 열 배로, 둘째 종은 다섯 배로 늘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작은 일에 충실하였던 종들에게 각각 고을을 맡깁니다.
그러나 다른 종은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게으르고 악의에 찬 종의 말대로 그에게 혹독한 판결을 내립니다.
물론 이 비유에서 마지막 종에 대한 주인의 처우가 조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결정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한 불충한 유다인들에게 내려질 심판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 비유 이야기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냉혹한 심판자’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자기부인(버림)이 현세의 순교(殉敎).
독서(2마카베7,1.20-31)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 돼지는 부정(不淨)한 짐승이기 때문에~
참조~(레위11,7) 7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 오늘 일용할 양식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을 열고 받아 들여 새김질, 곧 되새기지 않는, 기억(記憶)하지 않는 그 잘못된 신앙(信仰)을 비유한 것이다. 말씀을 받고도 되새기는 묵상, 기도하지 않는 것, 부정(不淨)한 것이다.
20 특별히 그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 말씀을 늘 되새겨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희망(希望)이 있다는 것이다.
21 그는 조상들의 언어로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하였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 찬 그는 여자다운 생각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우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 조상들의 언어, 남자다운 용기,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로마4,17-18)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23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 - 지기부인(自己否認)이다
24 안티오코스는 자기가 무시당하였다고 생각하며, 그 여자의 말투가 자기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워하였다. 막내아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임금은 그에게 조상들의 관습에서 *돌아서기만 하면 부자로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며 벗으로 삼고 관직까지 주겠다고 하면서, 말로 타이를 뿐만 아니라 약속하며 *맹세까지 하였다. 25ㄱ 그러나 그 젊은이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 자신들에게 절하면- 세상의 명예(名譽), 풍요(豊饒)를 약속한 사탄의 유혹(誘惑)과 같다(루가4,6-7참조) 말씀으로 지기부인(自己否認)이 된 사람만이 흔들리지 않는다.
25ㄴ그래서 임금은 그 어머니를 가까이 불러 소년에게 충고하여 목숨을 구하게 하라고 강권하였다. 26 임금이 줄기차게 강권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설득해 보겠다고 하였다. 27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을 기울이고 그 잔인한 폭군을 비웃으며 조상들의 언어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들아,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나는 아홉 달 동안 너를 배 속에 품고 다녔고 너에게 세 해 동안 젖을 먹였으며, 네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기르고 키우고 보살펴 왔다. 28 얘야, 너에게 당부한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29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순교(殉敎) - 현세에는 지기부인(自己否認)이다.
30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젊은이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오? 나는 임금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소. 모세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주어진 법에만 순종할 뿐이오.
복음(루카19,11ㄴ-28)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12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 벌이- 일용할 양식으로 주신 그 말씀을 매일 먹고, 마시고, 되새겨,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그 벌이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希望)에 찬 삶을 살아, 이웃(가족)에게도 전(傳)하여 살리는 그 이웃사랑, 그 벌이를 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인(주님,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을 비유하신 것이다. (요한1,9-11참조)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말씀을 먹고, 마시고, 되새겨,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에 찬 삶을 살아 이웃(가족)에게 전하여 하늘의 용서로 살게했다는 것이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 성경(聖經)책을 고이 보관(保管)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사람의 규정(規定)과 교리(敎理), 그 법의 신앙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을 모른다. 두렵고 무서운 하느님으로 오해(誤解)하게 되어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 창조(創造) 사흗날에 씨의 말씀을 오해(誤解)한 것이다.
(창세1,11) 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빈 땅이 어떻게 씨를 맺겠는가. 그런데 하느님께서 땅에게 ‘씨 있는 과일나무를 그것도 제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냉혹한 분으로 생각한 것이다. 땅(자신)을 위해 씨(예수)가 스스로 들어가 썩어져 열매(구원)를 맺었음을, 그리고 그것을 ‘땅이 맺었다’ 했다고, 하느님께서 해 주신 그 자비(慈悲)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말씀을 되새기지 않았으니 존재(存在)하지 않은 것을 존재하도록 하시기 위해 당신 아드님을 희생(犧牲)시키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오해(誤解)한 것이다.
22ㄱ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 사랑과 자비(慈悲)의 하느님을 믿으면 용서(容恕)가, 법(法)의 하느님으로 믿으면 심판(審判)이다. 내가 믿는 대로 된다.(마태9,29)
22ㄴ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 모르면 배웠어야지 하시는 것, 깨닫게 해 줄 곳(성령)을 찾았어야지 하시는 것이다.
(에페5,15-18) 15 그러므로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17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18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 깨달음과 믿음, 구원의 그 이익(利益), 이자(利子)를 주실 성령(聖靈)을 청하고 구(求)해, 그 성령에 취(醉)해야 한다.(요한14,26 1고린2,10참조)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 땅들을 위해, 곧 빈 땅들을 위해 구원(救援)의 열매를 맺으시러, 스스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려 예루살렘(땅)으로 들어가시는 길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당신으로 충만하게 취하게 하시어 성모님처럼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하느님의 자비를 찬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9,11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가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11ㄴ~13)
사실 루카 복음 19장 11절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비유 하나를 말씀하신 것으로 나온다.
당시 예수님의 일행은 예루살렘 입성을 바로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제자들 및 청중들이 예수님과 자캐오와의 대화를 듣고 있는 현장에서 미나의 비유가 주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루카19,10),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및 청중들이 이제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로서, 자신들에게 현세적 부귀영화와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과 자유를 찾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시려고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화폐의 단위 사용, 등장 인물의 숫자의 차이가 있고, 루카 복음사가만이 사람들이 귀족이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보고를 첨가하고 있으며, 또한 비유가 주어진 시기가 마태오 복음은 예루살렘 입성 후이지만, 루카 복음은 입성 직전이라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이다.
또한 탈렌트의 비유가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명과 은사에는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에 대해 충성을 다하면 동일한 상급인 구원이 주어질 것임을 강조한 반면에, 미나의 비유는 최종적으로 실현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기회를 선용한다면, 그 선용한 결과에 따라 상급도 차등있게 주어질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비유는 예수님께서 각기 다른 시기에 주신 다른 비유인 것이다.
이 비유에서 '귀족'에 해당하는 '안트로포스 유게네스'(anthropos eugenes; a men of noble birth)에서 '유게네스'(eugenes)는 '좋은'(good)을 의미하는 접두어 '유'(eu)와 '출생', '태생'을 의미하는 명사 '게노스'(genos)의 합성어로서 '태생이 좋은'(well-born), '고귀한 혈통'(of noble raw)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어떤 특정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가상 인물이다.
귀족이 먼 고장으로 떠나가 왕권을 받아 올 때까지는 아직 임금이 아니다.
여기서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느님께 가신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음,
즉 그의 부재(不在)를 의미한다.
귀족이 가는 목적은 왕권을 받아 다시 오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오려고'에 해당하는 '휘포스트렙사이'(hypostrepsai; to return)는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다'는 의미를 지닌 '휘포스트레포'(hypostrepho)의 부정사로서, 영광과 존귀와 위엄의 본래 지위를 받아 가지고 다시 되돌아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이 용어는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재림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며,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관과 통치자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오실 것이다(마태24,30).
한편 루카 복음 19장 13절의 '종'에 해당하는 '둘로스'(dulos; servant)는 '둘루스 헤아우투'(dulus heautu; his servants)에서 나온 말로서, 귀족이 부른 종들이 자기 휘하에서 자신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종들임을 나타낸다.
원래 '둘로스'(dulos)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노예'를 가리키며, 여기서 '자기자신의'(heautu; his)가 첨부된 것은 오직 주인만을 위해서 살아야 됨을 보여 준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또는 모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을 가리키는데,이들은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복음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재능에 따라 차등을 두어 종들에게 탈렌트를 분배한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귀족이 열 종들에게 각각 한 미나씩 균등하게 배분해 주었다.
또한, 두 복음서에서 각각 다른 화폐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탈렌트'는 '미나'(mina)의 화폐 단위보다 더 높다.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이고, '미나'는 100데나리온의 가치이므로, '미나'는 '탈렌트'의 60분의 1정도이다.
여기서 귀족은 종들에게 그것을 주면서 '벌이를 하여라'고 말한다.
'벌이를 하여라'에 해당하는 '프라그마튜사스테'(pragmateusasthe; occupy; put the money to work)의 원형 '프라그마튜오마이'(pragmateuomai)는 '사업하다'라는 뜻으로서 상업적 거래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귀족은 한 미나를 종들에게 주며, 먼 고장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그때까지 이 돈을 활용해서 사업을 하여 이윤을 남기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장사, 사업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귀족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암시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있을 것에 대한 암시로 이해한다.
마태오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는 차등있게 탈렌트가 주어진 것을 통해 사람에 따라 소명과 은사의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 반면에, 루카 복음의 '미나의 비유'는 동일하게 한 미나씩을 줌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신 것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재능과 시간을 잘 활용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이윤을 최대한도로 남기기를 원하신다.
2025년 11월 19일 수요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은 ‘미나의 비유’입니다. 어떤 귀족이 길을 떠나며 종 열 명에게 한 미나씩을 맡깁니다.
다른 종들은 그것을 가지고 저마다 이익을 냈는데 한 사람은 그냥 수건에 싸서 두었습니다.
주인, 곧 하느님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냉혹하게 거두어 가시는 분으로 여겨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마구 다루시는 냉혹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오해가 그 종의 마음을 위축되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을 올바로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한 어머니를 만납니다.
율법이 금지하는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임금 앞에서 그 어머니는 자신의 일곱 아들을 이렇게 격려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2마카 7,22).
“나는 모른다.”, “내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아들들에게 하느님을 분명하게 가리켜 보입니다.
사람과 만물을 만드신 온 세상의 창조주를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을 이렇게 격려합니다. 확신 가득한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아들아,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얘야, 너에게 당부한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7,27-29).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성경에서 1과 10은 하나로 완전(충만)을, 5는 모세오경(율법)을
문자보다 숫자가 먼저 있었다.
독서(2마카7,22-23)
22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23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 아멘! 힘을 주소서.
<화답송>(시편17,4-5.8.15) 4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고 저는 당신 입술에서 나온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계명의 길을 5 저는 꿋꿋이 걷고 당신 길에서 제 발걸음 비틀거리지 않았습니다. 8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15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을 뵙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으로 흡족하리이다. ~아멘.
복음(루카19,11ㄴ-28)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 하느님의 왕권(王權)을 받아 재림(再臨)하실 예수님 당신을 비유(比喩)하심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權限)을 받아오신 주님이시다.(마태28,18)
(요한17,2-3)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알고, 아는 것, (야다 함께 눕다 한몸을 뜻한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 ‘벌이를 하다’ 말씀을 아는, 깨닫는 일,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깨닫는 그 벌이를 하라는 것이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율사들)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벌어 들였다’, ‘하나’와 ‘열’은 같은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곧 율법의 열(10)계명은 한(1)가지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사랑, 그 하나다. 곧 피로 맺는 새 계약(契約)이다. 이웃에게 구원(救援)이라는 이익(利益)을 준다. 이웃 사랑이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만들었다’ 주님은 깨닫는 벌이를 하라 하셨지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라’하지 않으셨다. 하나로 다섯을 만들었다는 것, 곧 사랑, 그 하나의 계명을 다섯(모세오경, 율법)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율법은 제사와 윤리, 도덕으로 구원의 힘, 믿음, 용서, 자유가 없다. 곧 손해보는 일로 만든 것이다.
(갈라3,23-24)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갈라4,4-5)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우리 모두가 율법(律法), 곧 자기 열심, 의(義)에 만족해하는 헛된 신앙을 살고 있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 율법에 멈추면, 만족하면 영생(永生)은 없다. 율법으로는 죄(罪)를 알 뿐이다. 그래서 칭찬이 없다.
(로마3,19) 19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 그러나 죄가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얻는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믿는 우리는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총(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로마6,14)
하느님은 손해보는 벌이를 해도 야단치지 않으신다. 자라는(커가는) 성장 과정이기에 기다려 주신다. 자기 열심(제사, 의)을 믿는 우리 모습이다. 곧 하느님의 열심, 의(義)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자라야 한다.(에페4,13-16)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ㄱ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 내가 하는 말이 내 운명을 만든다. 곧 사람의 길, 방볍의 말을 하거나 옛 계약, 율법(윤리)을 말하면 심판을, 피의 새 계약, 십자가를 진리로 말하면 용서, 생명이다.
22ㄴ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 은행, 이자를 받지 말라 하셨는데? 비유임을 놓치지 말자.
율법, 세상의 가치관(세계관) 이라는 너울이 눈을 가려 말씀을, 하느님을 오해(誤解)해서 마음이 완고해진 사람이다.
(2코린3,14-18) 14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각이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옛 계약을 읽을 때에 그 *너울이 벗겨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15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 사실, 율법 그 안에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음이다.(루카24,27)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이익을 남기든, 손해를 보든,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일하지 않는 자를 싫어하신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 앞서 묵상했듯이 다섯 미나, 곧 하늘의 생명에 대한 믿음을 가리는 율법에게는 더 주지 않으셨음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가지고 있는 한, 미나의 가치를 모르면, 없는 것, 곧 빼앗김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 예루살렘으로 오르시는 길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함 이라고 했다. 왜? 주님을 미워하는 원수(怨讐)들까지 살리시려고..... 옛 계약 율법은 ‘원수를 깊아라’(레위24,20) 하지만, 새 계약, 진리의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다.’ (마태5,44) 하느님의 은총이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회개(悔改)하면 산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요한1,17)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아버지!
‘벌이를 하여라’ 하신 깨달음의 중요성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닮게, 하나되게 하소서. 의탁하나이다. 보호자 성령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