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부활 때에 받을 보답 (루카14,12-14)

2025. 10. 31. 오후 2:37:46

글자


20251103일 월요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부활 때에 받을 보답 (루카14,12-14)


뷰어 이미지


1독서<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로마11,29-36)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화답송<시편69,30-31.33-34.36-37(14) 주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제게 응답하소서.

가련한 저는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하느님, 저를 도우시어 보호하소서. 하느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감사 노래로 그분을 기리리라.

가난한 이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신다. 그들이 거기에 머물며 그곳을 차지하고, 그분 종들의 후손이 그 땅을 물려받아,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 살리라.

 

복음<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루카14,12-14)

12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연중 제31주간 월요일독서 (로마11,29-36)

 

사도 바오로는 개인적인 구원의 감격과 축복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자기 동족이요 혈육인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기 때문이다.

"왜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면서, 눈동자처럼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은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사도 바오로는 이 구원의 딜레마 앞에 서서 고민한다.

 

이윽고 사도 바오로는 이스라엘을 하느님께서 버리신 것은 이스라엘 때문 만이 아니요,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사도 바오로는 구약의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서를 읽으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기도하던 중에, 하나씩, 하나씩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신비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로마서 9-11장에 기록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 보면, 꼭 한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경우를 본다.

그 한 사람을 찾다가 고생한 경험이 다들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한 사람이 돌아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더군다나 단체가 버스로 여행할 때, 그 한 사람을 찾을 때 까지 전체가 고통스럽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한 영혼은 찾으실 때까지 고통스러우시다.

그런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만 구원하실 수 있는가?

전 이방인을 구원하려면, 이스라엘이 희생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이스라엘의 실패, 저주, 완악함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그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놀라운 구원의 계획과 신비를 발견한다.

 

우리는 평소 메시아 예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부정, 불신과 배척에 대해 미워하고, 못 알아 듣고, 그 댓가로 2000년동안 그들이 벌과 고통을 받아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의 관점은 다르다.

우리 이방인들이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희생 때문이니, 그 희생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육이 잘 되고 축복받는 모습을 보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돌아 온다는 놀라운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과 신비에 대해, 우리 인간의 좁은 머리로는 온전히 깨달을 수 없으니 단지 놀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누군가 공동체안에서 희생해야만, 가족 모두가, 공동체가 다  구원을 받는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33-35)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36)

 

36절의 말씀안에서 <그분>대신에 <주님>을,<만물>대신에 구원받은 <나>를 대입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주님에게서 나와, 나는 주님을 통하여, 나는 주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주님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아멘.>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만일 누군가에게 맛있는 식사를 한 끼 대접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지 떠올려 봅시다.

그동안 이래저래 신세를 져 온 은인들이 아닐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움을 준 형제나 친척, 업무와 관련된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직장 동료,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 주고 조언해 준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한편 내가 잘 보여야 할, 또는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장 상사, 영업에서 매우 중요한 고객, 존경하는 스승님, 그 밖에도 사회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위의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과 이루는 관계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상호적 관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을 받았으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또 무엇을 받을 기대감에 먼저 주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은 그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일 뿐, 그에게 무엇을 주거나 베풀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우리식으로 바꾸어 봅시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보답이 예상되는 초대는 하지 말고, 오히려 보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이들, 곧 ‘나와 상관없는’ 이들을 초대하라고 주문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논리에 따르면, 보답이 예상되는 초대는 그 보답을 받음으로써 끝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보답은 더 크고 유익하므로, 차라리 그것을 얻고자 현세의 보답을 포기하는 편이 훨씬 복되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이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님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 결과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느님 나라의 보상 점수는 그렇게 계속 쌓여 갑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4,12~14)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13~14)

 

루카 복음 14장 13절에서 '장애인들'과 '다리저는 이들'로 번역된 '아나페이루스' (anapeirus; the crippled; the maimed)와 '콜루스'(cholus; the lame)는 원래 둘 다 동일하게 '절름발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두 단어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먼저 '아나페로스'(anaperos)는 신체의 일부분이 잘려 나갔거나 그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불구자'를 가리킨다면, '콜루스'(cholus)는 신체의 일부분의 기능이 불완전한 것을 가리킨다.

 

한글 새 성경은 이러한 장애의 정도의 차이를 '장애인들'과 '다리저는 이들'로 번역하여 구분했다.

 

이들은 신체 장애로 말미암아 가난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대접을 받아도 아무 것도 갚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경제적인 무능력자들이었다.

 

오직 여기서만 나타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대접하라는 명령은, 자비를 베풀 때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루카 복음서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여자와 어린이와 죄인 및 이방인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소외된 자들에 대한 루카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복음 14장 14절의 의인들이 부활하는 시기는 직접적으로 '보답을 받을' ('갚음을 받을'; '안타포도테세타이'; antapodothesetai; will be recompensed; will be repaid) 시기를 가리키며, 또한 '행복할'('마카리오스 에세'; makarios ese; you will be blessed) 시기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시간적으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부활 시기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비유가 잔치를 베푼 자에게 주는 비유이지만, 본문의 말씀은 성도들의 모든 삶에 있어서 그 초점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의 보답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답을 받는 자가 될 것을 교훈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세에서 아무 것도 보답할 수 없는 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마치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마태6,20; 19,21).

 

그리고 여기서 '의인들'은 '악인들'과 대조되는 개념인데, 종말의 날에 부활하여 하느님의 축복과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을 가리킨다.

 

 


20251103일 월요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은 빗자루 수사로 널리 알려진 마르티노 데 포레스(1579-1639)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성인은 리마의 로사(1586-1617) 성녀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산 인물로서 그 지역에서 함께 큰 사랑을 받는 분입니다.

두 성인 모두 참회와 기도의 삶을 살았고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을 정성을 다하여 돌봄으로써 페루 사회사업의 기틀을 놓았지요.

에스파냐계의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리마의 로사는 1617년 선종한 뒤 1671년에 클레멘스 10세 교황께서 시성하시어 아메리카 대륙의 첫 번째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파냐계 귀족 출신의 기사와 유색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나 혼혈에 사생아였던 마르티노는 1962년에 이르러서야 성 요한 23세 교황께 시성되었습니다.

그 또한 살아 있을 때 이미 성인으로 여겨졌고 사람들의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데도 리마의 로사 성녀보다 삼백 년이나 뒤에 성인품에 올랐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루카 14,12)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에게 보답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가 대가와 보답을 바라는 셈법이 아닌 순수한 사랑에 이끌리기를 바라셨기 때문이겠지요.

마르티노 성인의 시성이 리마의 로사 성녀보다 늦었다고 하여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교회 또한 세상이 기준으로 삼는 시각과 셈법에 길들여질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사인가잔치인가피인가물인가?

 

복음(루카14,12-14)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 아침은 왜 뻐져 있을까? 오늘 본문을 초등학생 수준, 곧 도덕과 윤리로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하느님의 뜻, 길에서 벗어날 수(하마트리아-죄) 있기 때문이다.

*사제께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것은 좋은 일이나 내가 보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 즉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은 하나도 칭찬받을 일이 아니며, 되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도덕, 윤리의 가르침이 하느님의 뜻, 길을 벗어난 것이다.(이사55,8 29,13 1코린2,9 티토1,14 참조)

*본문은 바리사이에게 하신 말씀이다. 저녁은 어둠을 아침은 빛을 뜻한다. 곧 저녁의 식사는 율법의 제사, 제물인 죽은 고기를, 아침의 양식은 율법을 대속하시고 생명을 주는 진리의 빵이다.

 

(탈출16,12)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고기에는 양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신다. 저녁의 고기는 죽음을, 아침의 양식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민수11,33) 33 그런데 그들이 고기를 다 씹기도 전에주님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셨다그래서 주님께서는 매우 큰 재앙으로 백성을 치셨다.

= 그러니까 바리사이 에게는 아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이다. 곧 율법(제사, 윤리)을 열심히지킨 그 인간의 의(義)는 죄를 알 뿐(로마3,20) 하늘의 의(義),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죽음으로 결론 맺기 때문이다.

하늘의 생명은 율법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죽음,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완성된다. 아니 되었다. 율법(저녁)은 아침,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인 것이지 그곳에 머물며 만족 해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사 음식을 위해 서로 초대하지도 말고, 그 제사 음식으로 대접 받지도 말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모두 허무요 헛된 것으로 결국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곧 잔치(미사)를 제사로, 서로를 위해서 드리지 말라 하시는 것이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장애인들다리저는 이들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 저녁식사에서 잔치라 말씀하신다. 잔치(미사)는 죄인들이 돌아와(회개) 그리스도와 혼인하는 기쁨의 잔치다.(회개는 반성의 차원이 아니다)

 

(루가5,32)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14ㄱ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

= 하느님께서 보답해 주시니 복(福)이다.

 

14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 율법의 제사, 그 옛 계약의 나를 버리고 의인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그분을 진리로 받아들여 한 몸이 된 이들이 그분으로 부활 할 때 함께 부활 될 것을 말씀하심이다.

 

(로마6,4)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 율법, 세상적 그 옛 사람의 죽음을 뜻하는 세례(洗禮)다. 그들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복을 받음이다.(2코린5,17)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 인간의 뜻을 위해 먹고 마시는 *제사(祭祀)가 아니라 성령(聖靈) 안에서 누리는 구원의 완성인 기쁨의 *잔치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말씀의 전례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수, 생명의 물을 먹는 것이고, 성찬의 전례는 제사를 완성하신 새 계약의 피를 먹는 것이다. (루카22,20)

문제는 물로 시작해서 피로 마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말씀(물)을 먹고 마셔서 생명을 얻는 미사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피(포도주)와 고기(성체)를 먹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는 것이 문제다. 물에서 피로 순서가 바뀌면 하느님의 뜻, 길을 벗어난 것으로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된다.

 

그것이 이집트의 재앙(災殃)이다.

(탈출7,20-21) 20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그가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 물을 쳤다그러자 나일 강 물이 모두 피로 변하였다. 21 강에 있는 물고기들은 죽고 강은 악취를 풍겨이집트인들이 강에서 물을 퍼 마실 수가 없었다이집트 온 땅에 피가 흥건하였다.

= 이 이집트의 모습은 현세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모형(模型)이다. 곧 인간들의 뜻을 위해 열심히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인간들의 열심히 진리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첫째이나 하늘나라에서는 꼴찌다.

저녁식사의 고기에서 아침양식인 진리의 말씀으로 마쳐야한다. 곧 제사에서 잔치로 마쳐야 한다. 저녁을 건너 아침으로 시작되는 것, 그것이 생명(生命), 창조(創造)다. (창세1,5. 8. 13. 19. 23. 31.참조)

 

(시편42,2) 2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제 영혼이 당신(말씀)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영원한 진리의 성령님!

저희들의 생각을 깨고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루카14,25-33)25.11.04조회 12[연중 제31주간 화요일] 하늘잔치에 초대받은 당신 (루카14,15-24)25.10.31조회 11[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부활 때에 받을 보답 (루카14,12-14)25.10.31조회 9[모든 성인 대축일] 眞福 八段 (마태5,1-12ㄴ)25.10.30조회 9[연중 제30주간 금요일] 水腫 병자 치유 (루카14,1-6)25.10.29조회 10[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서 (루카13,31-35)25.10.28조회 11[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門으로 (루카13,22-30)25.10.28조회 7[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열두 사도 (루카6,12-19)25.10.26조회 8[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안식일 법 (루카13,10-17)25.10.25조회 14[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무화과나무의 비유 (루카13,1-9)25.10.24조회 12[연중 제29주간 금요일] 時代의 徵兆 (루카12,54-59)25.10.23조회 10[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성령(聖靈)의 불 (루카12,49-53)25.10.21조회 12[연중 제29주간 수요일] 항상 준비하라. (루카12,39-48)25.10.21조회 9[연중 제29주간 화요일] 행복하여라, 깨어 있는 종들! (루카12,35-38)25.10.19조회 11[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어리석은 부자(富者) (루카12,13-21)25.10.17조회 15[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收穫)할 일꾼 (루카10,1-9)25.10.16조회 11[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위선(僞善)을 조심하라. (루카12,1-7)25.10.16조회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