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收穫)할 일꾼 (루카10,1-9)
제1독서<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2티모4,10-17ㄴ)
사랑하는 그대여,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화답송>시편145,10-11.12-13ㄱㄴ.17-18(◎12) ◎ 주님, 성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
복음<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루카10,1-9)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2티모4,10-17ㄴ)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1)
음침하고 축축한 로마의 토굴 감옥에 수감되어 말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있던 노(老)사도 바오로 곁에 여전히 남아 있었던 인물이 바로 루카였다.
루카는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서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여행에 동행했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단순히 동행한 정도가 아니고 팔레스티나에서부터 로마까지의 멀고도 험난한 해상 여행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도 바오로를 수행하였다.
그는 사도 바오로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였다.
또한 그는 콜로사이서 4장 14절에서언급된 대로 '사랑하는 의사'이기도 했다. 그는 감옥에서 죽음과 대면하고 있는 노(老)사도였던 사도 바오로의 건강과 안위를 돌볼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을 지닌 의사였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사도 바오로의 제1, 2차 로마 수감 생활 동안 그와 함께 있어서 (콜로4,14; 필레몬1,1,24; 2티모4,11)서신을 대필하기도 한 비서요, 신실한 친구이기도 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 선교사, 의사, 비서, 친구로서 사도 바오로와 언제나 함께한 진실한 주님의 종이었다.
이제 티모테오가 올 것임을 확신한 사도 바오로가 그에게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방문할 때에 '마르코를 데려올 것'을 요청한다.
요한 마르코는 예루살렘 출신으로서(사도12,12) 사도 바오로의 제1차 선교 여행에서 사도 바오로 일행을 떠나 개인적으로 행동했던 불명예스러운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사도13,13).
제2차 선교 여행 때 사도 바오로는 이런 전력이 있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동행을 거부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바르나바와 결별하기도 했다(사도15,36~41).
그러나 콜로사이서 4장 10절이나 필레몬서 1장 24절을 참고하면, 마르코는 사도 바오로가 1차로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에 그와 함께 있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베드로 전서 5장 13절에 따르면, 마르코는 사도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한 후, 이전의 사도 바오로와의 반목을 털어버리고 다시 그의 신실한 협력자가 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서로 반목했던 자들이 복음 안에서 다시 화해하고, 한 뜻으로 주님 복음을 위해 힘쓰는 모습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일 것이다.
한편,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마르코와 동행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이유는 마르코가 사도 바오로 자신의 일에 유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원문을 보면,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일'을 '디아코니안'(diakonian)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이 단어는 교회와 관련된 봉사, 또는 하느님 나라와 관련된 봉사와 일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것을 볼때,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복음 선포에 마르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 오십시오.'(13)
사도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가져올 것을 부탁한 것은 외투(겉옷) 이외에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로 번역된 '타 비블리아, 말리스타 타스 멤브라나스'(ta biblia, malista tas membranas; my scrolls, especially the parchments)였다.
여기서 '책들'로 번역된 '타 비블리아'는 일반적으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지칭하는 단어이지만, 본문에서는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이라는 문구로 한정되어 있어 양피지 책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양피지 책들'로 번역된 '멤브라나스'(membranas)는 라틴어의 '멤브라나'(membrana)로 표현되는 단어로서 '얇은 가죽'을 뜻한다.
무두질한 가죽이 페르가모에서 최초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parchments'로 표기되는 양피지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즉 여기서 언급된 '멤브라나스'는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 가죽 위에 필사한 책'을 뜻한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가죽 종이는 파피루스에 비해 훨씬 비쌌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들, 곧 일반적인 책에는 파피루스가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사도 바오로가 가져오기를 부탁한 '양피지 책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학자는 이것을 재판을 대비하기 위한 로마 시민권 증명서라고 하기도 하며, 다른 학자들은 희랍어 구약 성경이나 주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 추정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은 말년의 사도 바오로가 특별히 보기를 원한 귀중한 내용의 책임에는 틀림없다.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하신 말씀을 오늘 복음에서 듣습니다.
오늘 축일을 기리는 루카 복음사가는 특이하게도, 내용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개의 제자 파견 사화를 전합니다.
하나는 ‘열두 제자’의 파견과 관련이 있고(9,1-6 참조), 다른 하나는 오늘 복음에 해당하는 ‘일흔두 제자’의 파견 이야기입니다(10,1-12 참조).
후자는 루카 복음에만 나타나는데, 루카는 왜 열두 제자의 파견 외에 일흔두 제자의 파견을 또 이야기하였을까요?
그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는 데에, 열두 명의 파견만으로는 그 수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더 많은 이의 파견으로 더욱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이미 믿음을 가지게 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 널리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복음 선포에 헌신할 일꾼들이 어느 시대든 늘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소자들이 크게 감소하는 위기에 맞닥뜨려 있습니다.
물론 학령 인구 자체가 줄어든 영향도 있겠지만,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는 해가 갈수록 큰 폭으로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이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련히 아시고 일꾼들을 부르시겠지.’ 하며 수수 방관하는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됩니다.
그 일꾼들을 주님께 청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할 이들을 지속적으로 키워 내는 일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성소자 육성을 소홀히 생각한다면, 이는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들을 많이 보내 주십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교회의 일꾼이 꼭 성소(聖召)자들에게만 있다고 보는 게 문제입니다.
수확할 일꾼은 우리 모든 성도(聖徒)들의 몫이기도 하지요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모든 것의 힘인 성령(聖靈)을
복음(루카10,1-6)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 예수님으로, 그분의 뜻으로 가는 제자들이다.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수확할 일꾼, 곧 예수님의 대속을 진리로 구원을 완성하실 하늘의 존재 천사, 성령이다.
(마태13,39)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 천사를 하느님, 영과 혼용해서 쓴다.(판관6,11.14) 묵시(14,15-)에서는 하느님께서 수확하신다.
(요한15,26)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로마8,1-2.16)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 하느님의 영, 성령을 청하고 성령께 의탁해서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하늘의 용서, 쉼, 평화를 주라는 말씀이다.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 자신의 뜻, 생각, 힘을 의지하지 말고 ~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 성령께서 주실, 믿게 해 주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로 얻는 하늘의 용서, 쉼, 평화다.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성령께서 주신)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 그 평화를 받아 누리려면, 지키려면 영과 진리, 곧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4,23-24)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로마12,1)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예배(禮拜)- 히브리어 “아바드” 노예가 주인을 섬길 때 ‘섬기다’에 쓰인 단어다. 고대사회의 노예의 주인은 그 노예(종)의 생명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그 노예는 주인 앞에서 재산이나 인격이나 이름조차도 주장하거나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종인 내가 사라지고 오직 하느님만 드러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헬라어로는 ‘프로스큐네오’ 프로스(어디어디를 향하여), 큐네오(입을 맞추다) 이 단어는 노예가 주인의 발에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의 입맞춤을 할 때 쓰였던 단어다. 그러니까 깊은 애정과 마음을 가지고 주인, 하느님의 발에 정성껏 입을 맞추는 행위다.
또다른 헬라어 ‘라투리오’가 있다. 이 단어는 섬기는 대상의 유일성을 가리키는 단어다. 영원히 한 주인만을 섬길 때 쓰는 단어다. 그러니까 예배의 대상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그 예배 받으시는 분의 영광을 위한 행위여야지 내가 힘으로 여기고 있는 것들을 동시에 구하는 행위는 예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과 우상(자신의 뜻)을 동시에 섬겼던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나를 버렸다” 말씀하신 것이다. 영어로 예배(월쉽worship)는 가치를 뜻하는 worth와 신분을 뜻하는 ship의 복합어이다. 그러니 최상의 가치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께 나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예배’란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하느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한다는 중요한 멧세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는 어떤 예배의 삶, 어떤 미사를 드리고 있는지- 모든 것, 모든 길은 성경 안에 있다. 먼저 성경을 깨달아 아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 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루카10,1~9)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2~3)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갑작스런 도래와 함께 그때 올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의 준엄함에 대해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루카12,12)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직접 전해 듣고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 고을들이 그렇지 못한 소돔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런 심판의 엄정섬을 전제하고 급격하게 온다면, 시급하게 선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추수하는 행동은 그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모으는 종말론적인 과업을 뜻한다.
여기서 '수확'에 해당하는 '테리스모스'(therismos; harvest)는 '수확'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수확의 대상인 거두어 들여야 할 곡식 및 수확의 과정을 의미할 때도 사용된다.
무르익은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수확은 농경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주제이다.
하지만 '수확'이란 예수님께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의 여러 국면들을 설명하는 좋은 소재였다.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이미 복음을 받아들일 소지를 미리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확을 기다리는 완전한 무르익은 곡식과도 같다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따라서 여기서의 예수님의 명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나라로 빨리 들어오게 하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루카 복음 10장 2절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 시급한 데 비해서, 이 일을 몸소 행할 일꾼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안타까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또한 지금 파견을 받고 있는 일흔두 제자들의 책임이 중대하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인에게 또 다른 일꾼들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로 번역된 '데에테테'(deethete; ask; pray)는 단순히 '요청하다'는 의미 이상의 '기도하다', '간구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테오마이'(deomai)의 부정 과거 명령법으로서, '너희들은 간구하라'는 매우 간절하면서도 강력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천국의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할 당시의 그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시는 주님의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말씀이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사실은 루카 복음 10장 3절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16절에는 제자들을 상징하는 단어가 '양'('프로바타'; probata)이라고 되어 있는 반면에, 여기서는 '어린 양'('아렌'; aren; lamb)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사가보다 이 단어를 통해 제자들의 '연약함'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양은 목자의 보호가 없으면 이리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짐승이다. 또한 '양'이 착한 것의 상징이라면, '이리'는 악한 것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양과 같은 제자들이 이리 떼와 같은 세상의 악한 세력들과 영적 싸움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가운데로'에 해당하는 '엔 메소'(en meso; among)라는 전치사구는 이미 그 자체로 '가운데'라는 뜻이 있는 '메소'(meso)와 '~안에'라는 뜻의 전치사 '엔'(en; in)이 결합되어 '한가운데 속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어린 양과 같이 연약하고 착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교하기 위해 험악하고 공격적인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복음 전파자들은 험하고 공격적인 세상 속에서 마땅히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마태10,16).
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이찬우 다두 신부)
여행을 떠나려면 준비할 것이 참 많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놀 것;. 여행지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너무 비싼 물건들도 있어 이것저것을 사며 챙기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준비할 것들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여행 자체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쓰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여럿이 같이 여행을 갈 때, 여행 준비에 몰두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출발하기 직전까지 혹시라도 빠진 물건이 있는지 챙기다 만나기로 한 시간을 놓치고, 나머지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 좋지 않은 기분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한 여행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하지 않을까요?
함께 여행하는 목적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 완벽한 상태로 여행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명의 제자들을 지명하시어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보내십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가라.’고 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떠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제자들에게 고생하라는 뜻으로 그러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목적에 더 신경 쓰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자들의 목적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그 자체에만 온전히 신경 쓰도록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합니까?
불필요한 것에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지쳐 버리지는 않는지요?
(이찬우 다두 신부)
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수확할 일꾼
독서(2티모4,10-17ㄴ)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 모두 자신을 버리고 떠났기에 마음이 춥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투와 양피지 책, 성경을 요구한다. 마음의 외로움을 주님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하느님 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대 데레사-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아멘)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코린4,11-12)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복음(루카10,1-9)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제자들을 수확할 일꾼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수확할 일꾼- 하늘의 영(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씀이다. (마태13,39) 곧 자신들의 생각으로 그 누구도 판단,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양(羊)으로 가서 이리 떼 가운데서 죽으라는 말씀, 곧 오래 참고 하느님께 맏기라는 말씀이다.
(2티모2,23) 23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물리치십시오. 알다시피 그것은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티토3,9) 9 어리석은 논쟁과 족보 이야기, 분쟁과 율법 논란을 피하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무익하고 헛될 뿐입니다.
(유다1,9) 9 미카엘 대천사도 모세의 주검을 놓고 악마와 다투며 논쟁할 때, 감히 모독적인 판결을 내놓지 않고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란다.” 하고 말하였을 뿐입니다.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원하는, 받을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힘이 주는 평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의 헛됨을 깨닫고 부인할 때, 말씀, 곧 칼(히브4,12)로 잘라낼 때 얻어진다.
(마태10,34)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평화(에이레네-두 마리 소가 한 방향으로 가는 것).
우리는 세상이 주는 평화를 위한 방향을 고집하기에 하느님께서 하늘의 평화를 위한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 있다면 참 평화로 들어가도 있다는 것이다. 선택 받은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친히 끌고 가시어 주님의 십자가가 주는 참 평화를 얻습니다.
(요한14,27)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 예수님이 바라는 평화는 단지 갈등과 다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삶이기도 하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 사람들의 칭찬, 대접을 받지 말라는 말씀이다.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 모든 음식은 정결하다는 말씀이다. 율법이 말하는 부정한 음식은 없으니 가리지 말고 먹으라는 말씀이다.(사도11,5-9)
(사도11,9)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골로2,21-23) 21 “손대지 마라, 맛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합니까? 22 그 모든 것은 쓰고 나면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규정으로, 인간의 법규와 가르침에 따른 것들일 뿐입니다. 23 그런 것들은 자발적인 신심과 겸손과 육신의 고행을 내세워 지혜로운 것처럼 들리지만,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 가까이 왔습니다.(엥키겐- 이미 와 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이십니다. (루가17,21) 곧 하느님의 말씀, 영광, 힘, 지혜, 하늘의 의, 평화, 기쁨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1코린4,20) 20 하느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1,5)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3,19)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12,43) 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기억합시다~(루가16,15)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1베드5,6-7) 6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7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아멘.
☧ 성령님!
산란한 마음과 겁나는 모든 일을 의팍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주님의 평화에 의탁합니다. 관념이 아닌 믿음의 열매맺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