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불행하여라, 바리사이들아! (루카11,42-46)

2025. 10. 14. 오후 3: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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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일 수요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불행하여라, 바리사이들아! (루카11,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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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로마2,1-11)

1 ,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심판이 진리에 따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3 ,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심판하면서도 스스로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하느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4 아니면, 하느님의 그 큰 호의와 관용과 인내를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그분의 호의가 그대를 회개로 이끌려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5 그대는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진노와 계시의 날에 그대에게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6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7 꾸준히 선행을 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8 그러나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격분이 쏟아집니다.

9 먼저 유다인이 그리고 그리스인까지,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환난과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10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11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시편62,2-3.6-7.9(13ㄴㄷ) 주님, 당신은 사람마다 행실대로 갚으시나이다.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구원이 오리니, 내 영혼 그분을 고요히 기다리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희망이 오리니, 내 영혼아, 그분을 고요히 기다려라.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백성아,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이시다.

 

복음<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루카11,42-4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2,1-11)

 

"그대는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진노와 계시의 날에 그대에게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5)

 

로마서 2장 1-5절은 자신도 동일한 죄를 범하면서도 이방인을 판단하는 유다인들의 악한 모습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6-16절은 하느님의 심판이 이방인이나 유다인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온다는 사실을 심판의 기준과 근거를 가지고 논증한다.

 

로마서 2장 5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들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이유를 분명히 제시한다.

그것은 '화해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나오는데, 원문대로 번역하면 '다만 네 완고함과 회개할 줄 모르는 마음 때문에'가 된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잠언16,2; 예레17,10)의 눈에 비친 유다인들의 내적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회개로 나아가는 기회로 삼지 않고, 도리어 그 자비심을 외면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죄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유다인들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첫번째 이유는 그들의 '완고함'이다.

여기서 '고집'으로 번역된 '스클레로테타'(sklleroteta)의 원형 '스클레로테스'(skllretes; hardness; stubbornness) '굳음'이라는 뜻인데, 유다인들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거대한 장애물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뻔뻔스러웠고, 완고하고 도리에 어두운 마음에 지배되고 있었다.

죄에 대해 뻔뻔스럽게 되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첩경이다.

 

'경화증'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sclerosis'의 어원이 '스클레로테타'라는 단어의 어근이라는 것은, 마치 동맥 경화증이 인간 육체의 건강에 있어 치명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완고함이 인간의 영적 건강에 있어 치명적임을 잘 보여준다.

 

유다인들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두번째 이유는 '회개할 줄 모르는 마음'이다.

'회개할 줄 모르는'으로 번역한 '아메타노에톤'(ametanoeton)의 원형 '아메타노에토스'(ametanoetos; impenitent; unrepentant)는 부정 불변사 '아'(a)와, '회개하다'(마태3,2)라는 뜻의 동사 '메타노에오'(metanoeo)의 합성어이다.

 

그런데 '메타노에오'(metanoeo)는 접두사로 쓰여 '다르게' 혹은 '후에'라는 뜻을 지닌 '메타'(meta)와 '깨닫다'(마태16,9), '생각하다'(에페3,20)라는 뜻을 지닌 동사 '노이에오'(noieo)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다르게 생각하다', '후에 깨닫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아메타노에토스'(ametanometos)는 잘못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깨닫지도 못하고 돌이키지도 않는, 즉 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영혼의 세 가지 기능(역할)이라고 하는 '영혼 삼사'인 지성, 정서(감정), 의지의 모든 상태의 마비 현상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음으로 슬퍼하며 의지와 행동으로  돌이키는 이들에게만 유효하다.

그렇지 않고 어떤 동기에서든지 죄악을 범하고도 완고한 마음으로 그대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계속 유린하고 있었다.

사도 바오로는 이에 대해 가차없이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믿는 이들 가운데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계속 죄를 떠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는데, 이것은 심판날에 자신에게 내릴 진노를 쌓는 것임을 알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속히 그 죄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진노와 계시의 날에 그대에게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최후 심판의 날에 내릴 진노는 하느님의 공의에 따라 집행되지만, 그 진노를  불러 일으키는 당사자는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제공하시는 자비를 오히려 죄짓는 기회로 삼으면서 완고함과 회개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로마서 2장 5절에서 '진노의 날' 

즉 '헤메라 오르게스'(hemera orges; the day of wrath)는 2장 16절에 진술된 '사람들의 숨은 행실들을 심판하시는 그 날', 즉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있을 공의로운 최후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한편 '이루어지는'으로 번역된 '아포칼륍세오스'(apokallypseos)는 '계시'(revelation)라는 의미를 갖는 명사 '아포갈륍시스'(apokallypsis)의 소유격이다.

 

이것은 진노의 날에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 즉 공의로운 심판이 어떤 것인지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전한다.

 

그것은 곧 '진리에 따른 심판'(로마2,2.3)이며, 외적 조건이 아닌 내적 실체를 보고 행하는 심판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심판'(로마2,11)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그날에 지금 사도 바오로에 의해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있는 유다인들의 그 악한 실체를 보고 심판할 것이다.

 

여기서 '그대에게'로 번역된 '세아우토'(seauto)는 재귀대명사로서 '바로 너 자신에게'(for yourself)라는 뜻이며, 스스로가 자신의 심판거리를 바로 자기 자신 속에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쌓고 있습니다'에 해당하는 '테사우리제이스'(thesaurizeis; are storing up)는 돈과 재물을 저축하는 것처럼 쌓아가는 것을 뜻한다(마태6,19; 루카12,21; 야고5,3). 

이 동사는 현재 시제로 쓰여 당시 유다인들이 계속하여 자신들에게 내릴 심판거리를 쌓아가고 있음을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단어는 문법적으로는 직설법으로 사용되어 평서문을 이루고 있지만, 단순히 사실 자체에 대한 묘사로 그치지 않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강한 부정의 명령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수요일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당대 유다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할 것 같은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불행하여라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오늘 복음에 따르면그들은 십일조의 세세한 규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에는 혈안이 되어 있지만정작 그 규정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구현해 내야 할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회당이나 잔치에서는 언제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즐기며 언제나 높은 사람 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드러나지 않는 무덤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시신을 봉분 없이 평평하게 매장하고서 어떤 표식도 해 놓지 않은 그런 무덤을 뜻하는데그것이 무덤인 줄 모르고 밟거나 접촉한 유다인들이 결국 부정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민수 19,16 참조).

성화의 직무자들이 오히려 자신의 더러움으로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고서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받습니다.

지켜야 할 세부 규정들을 잔뜩 만들어 놓고서정작 사람들이 그 규정들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움을 주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판은 시대를 넘어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을 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갈구하며 높은 자리를 탐하는 욕구계명이나 규정의 본질을 망각한 채 형식적 준수만을 강조하는 태도겉과 속이 다른 모습경건함을 가장하는 태도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고충과 힘겨움을 외면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만일 이런 모습들이 우리에게도 있다면예수님께서 불행하다고 선언하신 그들 못지않게 우리 또한 매우 불행한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말씀그 사랑에 머무르는 신앙(信仰)인가?

 

복음 (루카11,42-46)

42 “불행하여라너희 바리사이들아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 자기 이름, 자기 의(義)를 위한 온갖 종교 행위를 하면서 성경 말씀 안에 들어있는 당신 외아들(獨生子)을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어주신, 그리고는 영원한 용서(容恕), 하늘의 생명을 약속하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의지(依支)하지 않는 것, 개의치 않는 것, 큰 불행(不幸)이다.

 

(1요한4,9-10)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로 하늘의 용서, 생명을 현세에서부터 살게 하신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유다1,21)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 ‘깨달으시오, 낳으시오’다 * ‘종교 행위를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지켜주신다. 그러니 성경을 모르고는, 나를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절대 나를 지킬 수가 없다.

 

43 불행하여라너희 바리사이들아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사제들뿐만 아니라 하느님 사랑 안에 사는 이들은 신자들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대접(칭찬, 섬김, 칭찬)을 받으려 하면 안 된다.

 

(1요한3,16-17) 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 재물을 나누어 받는 구원이 아니라, 영원한 용서,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알기에, 받았기에 목숨인 재물(마음)을 나누는, 내어 놓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을 목숨과 생각, 정신, 힘을 다하여 사랑한 결과(열매)인 것이다.

 

(1요한2,5) 5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사랑)을 지키면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 그러나 잘 안되기에 기도하는 것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 온갖 종교 행위로 자신의 뜻(이름)을 빛낸 그 모든 것의 결과가 땅속(무덤)에 묻힐 뿐인 영원한 죽음이라는 말씀인데, 곧 그 자기의 뜻(이름)을 위한 의(義), 착한 행위로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사랑으로 거저 받는 의로움을 받지 못하도록,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로마3,24- 참조)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 지도자들 자신에게 하신 말씀임을 알아듣지 못한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7,7-9)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티토1,14) 4 유다인(사람)들의 신화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온갖 성사, 전례 행위가 중(重)하다고, 지키라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의 계명으로 주면서.... 그렇게 배웠다. 성당을 다니면서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사랑, 은혜의 말씀보다 성사, 전례 행위의 중요성만 배웠다.

너무 힘들고 아파, 찾았을 때 오히려 ‘무거운 짐’만 지고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매달렸고,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았고, 만났다. 그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고서 ‘무거운 짐’같은 신앙에서 자유로와 졌다.

그리고 나와 같이 하느님 사랑을 몰라, 무거운 짐 같은 신앙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과 하느님의 사랑(말씀)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이들보다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 이상한 소리 한다고 핍박하며 자신의 의(義), 뜻을 위한 열심을 더 부린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을 미리 알려 주셨기에 핍박을 받아들이고 있다.

 

(요한15,18)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마르8,35)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1코린15,1-2) 1 형제 여러분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 하느님의 말씀, 계명인 복음을 인간들의 계명에 잃지 않고 받는 구원이다. 그것이 말씀(복음)을 지키는 실행이다.

 

(야고1,25) 25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복음)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2요한1,7-11)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9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잃는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10 누가 여러분을 찾아가 이 가르침을 내놓지 않으면그를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인사하지도 마십시오. 11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그의 나쁜 행실에 동참하게 됩니다.

 

☨ 보호자 성령님! 헛된 사람의 교리와 규정, 계명(티토1,14) 그리고 그릇되다 하신 세상의 죄, 의, 그 심판에 잃지 않고(요한16,8) 늘~ 말씀(복음)안에 머물게(지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복음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나와 이웃과 나누는 큰 계명을 실천하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11,42-46)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46)

 

루카 복음 11장 46절은 율법 교사들이 저주를 받는 세 가지 이유중에 첫번째 이유이다.

그들은 자기 어려운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지 않는 파렴치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힘겨운 짐', '지기 어려운 짐'은 무엇인가?

 이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에 대한 원로들의 전통과 율법 교사들의 해석을 가리킨다.

 그들은 심지어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에 대한 십일조 규정을 세부적으로 제정했고(루카11,42), 그 결과로 당대 사람들이 십일조를 내기 위해 땔감까지도 계산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해석을 '율법' 자체보다도 우월한 것으로 여겼고(루카11,37), 하지만 이들의 해석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었고 복잡하여 일반 사람들이 일일이 암기해서 지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부담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면서도, 자신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마태23,3).

 

여기서 '대다'에 해당하는 '프로습사우에테'(prospsauete; touch)는 가볍게 만지거나 살짝 건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현재 직설법의 형태로 부정어 '우'(u; not)과 함께 쓰여마치 무거운 짐에 손가락 하나 살짝 건드리지도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율법 교사들의 파렴치한 악행이 관행처럼 계속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들의 이러한 모순되고 불의한 모습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율법 교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율법의 의무를 무겁게 부과하면서도,  자신들은 전혀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다른 사람들이 율법 준수의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일 때, 그들은 그 짐을 덜어 주기 위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251015일 수요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이찬우 다두 신부)

 

우리는 고해성사를 볼 때 저는 안 그러려고 하였는데 …….’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그 사람에 대하여 고해하기도 합니다

본당에서 어울리는 사람들, 때로는 가족들이나 친한 친구들, 회사 동료들과 지내며 갈등을 겪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고해하면서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될 때도 있지만, 자기 잘못은 없다는 듯이 상대에 대해서만 말하기도 합니다

머리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함을 알면서도 결국 그렇게 하고,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립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불행 선언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불행을 말씀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로는 정의와 사랑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당 문을 두드리는 사람 가운데는 예수님의 복음을 알아듣고 찾아오기보다는 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신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실망해서 다시 성당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는 말한 것을 삶에서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싶게 만드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찬우 다두 신부)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舊約은 新約으로 반드시 完成 되어야.

 

복음(루카11,42-46)

42ㄱ 불행하여라너희 바리사이들아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 향의 원료는 제사용 채소들이다.(탈출30,34참조)

 

42ㄴ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 겉으로 드러나는 제사는 드리면서, 속(내면)을 위한 진리는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39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제사와 윤리그 옛 계약으로 자신의 소원를 위한 신앙을 살 뿐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저 받는 하늘의 생명용서의로움에는 관심이 없었음이다.(로마10,1-4참조)

 

43 불행하여라너희 바리사이들아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회당, 장터, 곧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인정받기를 좋아 했음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혐오하신다.(루가16,15)

 

44 너희는 불행하여라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 자기(自己) 의로움으로 자신의 더러움을 드러내는 것이 의다. (에페5,12-13참조) 인간의 의라는 것은 하느님 앞에 허무요 위선(거짓)일 뿐이다.(이사57,12 64,5참조)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율법은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다.(로마3,20) 그래서 그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께 돌아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믿어 그분의 의를 전가 받아 ‘구원에 이르라.’고 주신 것이다.(갈라3,24)

그러나 율법교사, 신학자들은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열심히 지켜 세상 복도 받고, 그 열심한 종교 행위의 자가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라고 가르쳤기에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것이 ‘학자들, 지도자들이 무거운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았다.’ 하신 말씀의 진의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육의 행실, 곧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이라는 것이다.(이사64,5 개짐 ☞더러운 걸레)

그리고 *십일조☞ 십일조는 땅의 것, 인간의 열심, 의로움, 돈이 아니다.(요한6,27 마태6,33-34참조) 십일조는 하늘의 양식, 재물인 하느님의 열심, 의, 말씀이다.

 

(말라3.10) 10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내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넘치도록 쏟아 붓지 않나 보아라.

 

(요한4,34) 3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더러운 죄인들의 구원인 ‘아버지의 뜻, 말씀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완수하시고, 곧 하늘의 양식인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고 아버지께 돌아가심’이 우리의 십일조로 드려지심이다. 그러므로 죄인(罪人)인 우리가 주님께서 이루신 양식, ‘십자가의 복음’으로 하늘의 복, 생명을 넘치도록 받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하셨나? 예수님게서 아직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곧 십일조로 드려지시기 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내는 헌금은 십일조가 아닌,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자비, 크신 사랑에 감사로 우리의 목숨고하 같은 돈을 정성으로 내는 것이다.

그 헌금이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에 사용이 되도록, 곧 이방인 뿐만 아니라 영적 고아, 과부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로 주어 하늘의 생명을 받게 하는 것, 그것이 신명기 14장에서 말씀하신 십일조 안에 감추어진 진의다.

구약에 머물면 모든 것이 헛 것이 된다. 구약은 신약으로 반드시 완성 되어야 한다.

 

(갈라5,22-25)

22 성령의 열매는 사랑기쁨평화인내호의선의성실, 23 온유절제입니다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 직역하면 성령이 주는 열매다. 곧 육의 행실 위에 성령이 주시는 열매를 덧입는 것이다. 죽을 것을 생명이 삼키도록 말이다. (2코린5,4)

물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십일조로 드려지셨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더러운 걸레’임을 깨달아야 한다. 곧 자기 버림, 자기 부인의 삶, 신앙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보호자 성령께서 영원토록 이끄신다.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 곧 믿고, 의탁하는, 갈망하는 것이다.

 

☨ 영원한 보호자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는 성령님의 성전입니다저희가 성령님의 사랑기쁨평화인내호의선의성실, 23 온유절제를 입고 있음입니다육의 더러움죽을 행실을 계속 삼키고 계심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심입니다.(로마8,10) 깨닫고 믿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봉헌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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