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사 축일] 하느님의 천사들 (요한1,47-51)

2025. 9. 28. 오전 6: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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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9일 월요일

[대천사 축일] 하느님의 천사들 (요한1,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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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었다.>(다니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화답송>시편138,12.2ㄱㄷ과 3.4-5(1) 주님,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제 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에,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한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니,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이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주님, 세상 임금들이 당신 말씀 들을 때, 저들이 모두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주님 영광 크시오니, 주님의 길을 노래하게 하소서.

 

복음<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1,47-51)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대천사 축일 독서 (다니7,9-10.13-14)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0)

 

다니엘이 환시 가운데 본 하느님의 옥좌에서는 이글거리는 불이 마치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본문에서 '뿜어 나왔다', '퍼져 나왔다' 에 해당하는 '나게드 웨나페크'(naged wenaphek)는 두 단어 모두 능동태 분사형으로서, 불이 하느님의 옥좌로부터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모습을 강조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심판이 계속해서 진행된다는 지속성을 임시한다.

 

또한 '그분 앞에서' 라는 표현은 불꽃이 하느님의 몸 속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좌정해 계시는 그 옥좌로부터 나온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 흘러나오는 불의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다니엘은 마치 강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이렇게 흘러나오는 심판으로서의 불은 세상 나라들, 특히 작은 뿔이 상징하는 적 그리스도를 심판하는 불이다. 이 불은 적 그리스도를 포함한 모든 악한 세력들에 대한 심판을 끝날 때까지 하느님의 옥좌에서 게속해서 흘러나올 것이다.

 

한편, '백만'과 '억만' 에 해당하는 '엘레프 알르파임'(elep allpaim)과 '립보 랍베완'(ribo rabbewan)은 고대 세계에서 형언할 수 조차 없는 많은 숫자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천사를 나타내는 데, 이처럼 헤아릴수 조차 없을 만큼 많은 수를 들고 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그 명령을 수행하는 소임을 맡은 존재들이다. 이 문맥에서는 특히 심판과 관련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대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문에서 '그분을 시중드는 이' 에 해당하는 단어 '예샴메슌네흐 '(yeshameshunneh)는 문자적으로 '그들이(백만) 그분을 시중들고 있다' 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이곳밖에 사용되지 않지만, 문맥상 수많은 천사들이 하느님을 시중들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확실하다.

또한 본문에서 '모시고 선' 에 해당하는 '예쿠문'(yequmun)은 문자적으로 '그들이(억만) 모시고 서 있다' 라는 의미이다. 천사들은 하느님과 나란히 옥좌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지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하느님 옥좌 곁에 서 있으면서, 하느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동시에 그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숫자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위엄을 드높여줌과 아울러 하느님의 권세와 능력, 그리고 그분의 역사하심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크고 광대무변함을 암시한다.

 

한편,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되면서 책들이 펼쳐진다. '책들'에 해당하는 '씨프린'(siprin)은 어원상 '기록하다', '계산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싸파르'(sapar)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여러 권의 책들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심판대에 펼쳐져 놓인 이 책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말들이 다 기록되어 있는 책이며,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생명책이다. 

 

모세는 이 생명책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탈출32,32), 사도 요한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말하였다(묵시21,27). 또한 사도 요한은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책으로서 그들의 행위가 기록된 책 언급한다(묵시20,12).

 

본 문맥에서는 이 두가지의 책 가운데서 행위를 기록한 책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본문은 하느님께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심판이 행위를 기록한 책에 근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심판이 절대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매우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대천사 축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천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사두가이들)과 인정하는 이들(바리사이들, 에세네파)로 나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제자로 부르신 자리에서 천사의 존재와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세 대천사 축일에 오늘 복음을 봉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자신을 보았다고 하시자 곧바로 그분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 고백합니다.

당시 라삐들은 후기 유다이즘에서

선악과나무와 동일시되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자주 성경과 율법을 연구하였는데,

나타나엘은 그동안 간절히 진리를 찾고 구원을 열망해 온 자신의 내적 투쟁을

예수님께서 꿰뚫어 보셨기에 온전히 승복하여 그분을 메시아라고 고백한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나선 나타나엘에게 앞으로 “더 큰 일”,

곧 제1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가 선포한

“사람의 아들”에 관한 계시의 실현을 몸소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조 야곱이 꿈에서 보았던 대로 천상과 지상이 이어진 세상(창세 28,10-17 참조),

곧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통하여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가 온전히 완성되는

세상을 직접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작은 믿음은

그분 곁에 머무르며 보고 듣고 배우는 가운데 점점 더 큰 믿음과 확신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주님의 제자인 우리도 그분께 눈과 마음을 두고 그분 곁에 충실히 머무를 수 있도록,

오늘은 특별히 대천사들에게 전구를 청합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하느님 사랑의 도우미요 중개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버린 뒤, 늦가을 마지막 잎새를 바라볼 때, 가까운 이들로부터조차 이해받지 못할 때, 배신을 당하고 오해를 받을 때,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소외 당할 때,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는 메마름을 경험할 때 실존적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혼자일까요?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서 주님의 계획을 알리고 그분의 명령을 전달하는 전달로 인간의 구원에 개입하도록 파견된 존재입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께 봉사합니다(다니 7,9-10.13-14). 또 그들은 교회가 악의 세력에 맞서 펼치는 싸움에 간여합니다(묵시 12,7-12ㄱ).

천사라는 명칭은 본성이 아니라 직무를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 중요한 것을 전하는 이들을 대천사라 하고 덜 중요한 것을 전하는 이들은 천사라 일컫습니다. 천사론에서 믿을 교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각의 대상인 세상과 우리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것뿐입니다.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갖는 미카엘 대천사는 천상 군대의 우두머리로서 종말의 큰 싸움에서 사탄에게 승리합니다(묵시 12,7 이하). 하느님께서 당신 외에 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시려고 강력한 행위를 취하실 때에 파견되는 천사가 바로 미카엘 대천사입니다.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을 갖는 가브리엘 대천사는 신약성서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루카 1,11-17)과 예수님의 탄생(루카 1,26-38)을 알립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파견된 것은 “만군의 하느님이시고 전쟁에 능하신 분께서 세상에 오시어 겸손하게 나타나셨지만 ‘하느님의 권세’로써 높은데 거처하는 악령들과 싸우게 되리라는 것을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한편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뜻을 갖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그 치유의 직무를 통해서 토비아의 눈을 만지어 그의 눈에서 눈멀음의 어두움을 몰아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이 탓에, 계절 탓에, 환경의 변화나 심리적 충격 때문에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 때문이든 일 때문이든 심하게 고통스럽고 불편한 것을 맞닥뜨리면 사람이 싫어져 무인도에라도 가고 싶고 일상을 벗어나고 싶기도 합니다. 이런 체험은 혈연의 형제보다 더 끈끈한 형제애를 살아야 하는 수도원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생명을 지니고 이 땅에 있게 된 것도, 매순간 숨쉬며 살아가는 것도 모두 내 밖의 ‘타자’(他者)의 손길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어디선가 말없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이들의 천사 같은 손길 때문에 이렇게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靈)이신 하느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구원 업적을 이루어나가시고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나아가 천사들을 보내주시어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 선 안에 머물도록 이끌어주시며, 어떤 순간에도 함께해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선, 고통 중에 건네지는 위로의 말, 절망 중에 희망의 빛을 주는 격려, 소외되고 지쳐 있을 때 함께 해주는 관대함 등은 천사의 손길인 셈입니다. 단 한 순간도 하느님의 손길 없이 살 수 없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지혜일 것입니다.

늘 다양한 방법으로 천사를 보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도 또 다른 천사가 되어 이웃에게 다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고독사(孤獨死)가 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함께해주는 천사, 사랑을 전해주고, 빈자리를 채워주며, 가진 바를 나누는 천사가 됨으로써 모두가 하느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해지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복음 (요한1,47-51)

 

베델에서 꿈꾸는 야곱과 층계(사다리);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기28, 12)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48)

 

요한 복음 1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고 말씀하신다. "I saw you while you were still under the fig tree."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 포도나무 아래에 있다, 올리브나무 아래에 있다' 라고 하면, 그것은 묵상기도 중에 있다, 명상중에 있다는 말로 알아듣는다.

 

'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케'(syke; fig tree)는 이스라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종이며, 유대 민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도 나타난다.

보통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그늘이 짙어서 그 무성한 가지 아래 앉아 율법을 배우고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 경건한 유대인들의 오래된 관습이었다.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예수님의 지적은 그가 메시야의 오심을 희망하면서 경건한 생활에 힘썼음을 알게 한다.

특히 '있는 것을'로 번역된 '온타'(onta; when you were)는 현재 분사 시제로 그가 계속해서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이 일을 했음을 나타낸다.

 

그가 이같이 하고 있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았다'고 하신다.

여기서 '보았다'에 해당하는 '에이돈'(eidon; I saw)은 시각으로 감지한 것을 나타내는데, 카나 출신인 나타나엘이 경건하게 묵상에 잠긴 모습을 신적(神的) 전지(全知)로 이미 보셨던 것을 말한다. 

 

우리들은 이런 성경 말씀에 대한 전지식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이길래 나타나엘이 놀라운 반응을 나타내면서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1,49) 라는 신앙 고백을 할까? 하고 의아해한다.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묵상기도를 하고 있을 때 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타나엘의 놀라움과 신앙고백의 반응은 자신의 영혼의 속,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기도 내용을 알아차리시고 다 알고 계시는 분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 밖에 더 계시는가?  

 

바로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야이시다라는 말이다.

 

아마 나타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약속된 메시아가 과연 오셨는가? 도대체 세례자 요한은 누구이며, 예수라는 분은 누구신지? 아버지 하느님께 물으면서 묵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하늘이 열리고'로 이어지는 말씀은 창세기 28장 10~22절의 '베델'에 있었던 야곱의 경험을 연상시키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나타나엘에게 그 역시 야곱처럼 하느님의 크신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가 시작되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데 모아진다는 것이다(에페1,10).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개자(중재자; 중보자)로서의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완전한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다(1티모2,5).

그리고 '사람의 아들' 즉 '인자'(人子)는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 유래한다.

 

그곳에서 '인자'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백성의 이상적인 대표로서의 천상적 인물인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세나 능력을 강조하실 때에 이 명칭을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호칭을 사용하실 때에는 자신의 인성(人性)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신적 기원 및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암시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인자'위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계속적으로 하느님과 친교하면서 크신 영광 가운데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것을 회화적인 표현으로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은 천주 성자 이신데, 같은 하느님으로서 성부 하느님 사이에 천사가 왜 필요하겠는가? 

이것은 육신을 취하신 예수님의 현재 위치이신 이 세상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영적인 차원에 계시는 성부 하느님 사이의 간극을 의미하는 말이다.

 

동시에 성령의 도구인 천사들이 성자 하느님과 성부 하느님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은, 여기 나타나엘의 묵상기도를 포함해서 지상에서의 모든 기도가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부 하느님께 봉헌되며, 또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의 기도의 응답도 반드시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다는 명명백백한 진리를 계시하시는 내용이다.

또한 성령의 도구인 천사가 날개가 있다면, 단번에 성부 하느님께 오를텐데, 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은 우리도 완덕(完德)의 근원이시고 모범이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길이 'step by step'(한 단계 한 단계씩) 서서히 이루어진다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시는 완덕(完德)과 성덕(聖德)에의 진보나, 은총과 은사를 받아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봉사하는 일도 서서히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너무 욕심을 내거나 예수님을 앞서 가거나 서둘러서는 안되고, 한 단계 한 단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밟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20250929일 월요일

[대천사 축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 사람의 아들 위에서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은 베텔에서 꿈으로 하느님을 뵙게 된 야곱의 체험을 떠오르게 합니다(창세 28,12.16-17 참조).

거기서 야곱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28,17)라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이 체험과 고백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시면서,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집과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당신이심을 나타나엘이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약속은, 예수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요한 1,49)라고 한 나타나엘의 신앙 고백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집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나타나엘보다 먼저 예수님을 체험하고 나서 그에게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1,45)라고 알리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초대한 필립보가 없었다면, 이 신앙 고백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중요한 만남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한 말은 하나의 선포였기에, 그는 나타나엘에게 천사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천사를 가리키는 그리스 말 앙겔로스의 본뜻은 선포하는 사람, 전달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천사를 만납니다. 그 존재가 사람이든, 하늘의 존재이든 우리를 참된 선이신 주님께 이끌어 줍니다.

만일 나도 누군가를 주님께 이끄는 역할을 한다면 천사입니다. 오늘 하루 천사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청해 봅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대천사 축일]

 

복음을 인간의 지혜로 풀면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 거짓이 된다.

 

복음(요한1,47-51)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예수님께 오는 것이 거짓이 없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2코린5,17)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 먼저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못 맺는(우리가 먹는 것은 꽃이지 열매가 아니다) 잎만 무성한, 곧 율법, 옛 계약의 무성한 행위를 뜻한다. 그 옛 것에 나타나엘이 예수님, 당신쪽으로 오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것으로, 거짓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마지막 때의 계시인 하느님의 이름, 뜻, 길로 살아가고자 갈망했다는 것이다.(미카4,1-5참조)

 

(미카4,4-5) 4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고 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지내리라만군의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5 정녕 모든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 신의 이름으로 걸어가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언제까지나 영원히 걸어가리라.

= 인간의 뜻, 소원을 들어주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구원과 상관없는 거짓된 자기 신이다. 포도나무는 신약을, 무화과나무는 구약을 모형한다. 곧 신,구약이 두 권이 아닌 한 권이듯,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한 나무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용서, 의(義)를 주는 십자 나무이다.

 

(루가14,26-27)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아내와 자녀형제와 자매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제 십자가? - 현세의 육의 삶이 아닌 내세, 곧 영의 구원을 위해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 십자가로 지고 사는, 그 십자가 아래에서는 모든 죄가 없어져,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히브10,22참조) 율법이 드러낸 모든 죄, 거짓을 품어 없애시고, 자유로 쉼의 주님께 오는 것이(마태12,8) 거짓이 없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그 한 가지를 말한 것이다.(요한7,21)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 ‘무화과나무로’- 더 큰 일을 깨닫게 될 것 이라는 말씀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 위로 하늘을 오르내리는 더 큰 일이다. 하늘은 어떻게 열리고, 예수님 위를 어떻게 오르내리나?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욕망을 위한 선악의 법으로 유혹한 뱀의 거짓을 먹은 아담의 범죄 이후로 사람이 스스로 들어갈 수 없도록 좁아진 하늘 문이(창세3,24) 예수님,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인 십자가로 열리고, 죽었던 이들이 살아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열린 하늘로 들어 올려짐’을 말씀하심이며(마태27,20-52) 현세(땅)에서도 하늘을 미리 살 수 있음을 말씀하심이다.(루가17,2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에는, 배고플 때 양식을 주셨고, 아팟을 때 병을 고쳐 주셨고, 풍랑이 일때는 풍랑을 물리쳐 주심으로 보호해 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승천(昇天)하시고 남겨진 제자들은 믿음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렇게 지금(현세)은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아 믿음으로 살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히브11,3)

사람의 길, 지혜로는 안된다. 하느님의 계시, 지혜이신 다른 보호자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한다. 그러면 위협 받지 않고, 곧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십자 나무, 그 새 계약의 나무 아래에서 하느님의 영원한 용서, 자유, 안식을 살게 된다.(요한14,16.29)

우리는, 하느님의 지혜, 진리의 영, 성령을 믿고 사는가? 인간(땅)의 길, 지혜를 믿고 사는가?

 

(로마8,9-10) 9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의로움(믿음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이 모든 말씀을 깨달아 믿고 살며 전하는 것,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가 해야 할 “더 큰일”이다.

 

(에페1,16-19) 16 기도(祈禱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지혜진리의 영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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