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8일 목요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마리아의 향유(香油) (루카7,36-50)
제1독서<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1티모4,12-16)
12 아무도 그대를 젊다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니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사랑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십시오.
13 내가 갈 때까지 성경 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하십시오.
14 그대가 지닌 은사, 곧 원로단의 안수와 예언을 통하여 그대가 받은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15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일에 전념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가 더욱 나아지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십시오.
16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일을 지속해 나아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화답송>시편111,7-8.9.10(◎2ㄱ) ◎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 그 손이 하신 일들 진실하고 공정하네. 그 계명들은 모두 참되고, 진실하고 바르게 이루어져, 영원무궁토록 견고하네. ◎
○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보내시고, 당신 계약을 영원히 세우셨네. 그 이름 거룩하고 경외로우시다. ◎
○ 주님을 경외함은 지혜의 근원이니, 그렇게 사는 이는 모두 슬기를 얻으리라. 주님 찬양 영원히 이어지네. ◎
복음<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루카7,36-50)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38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어제 독서에서 보았던 것을 오늘 복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소란한 꽹과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기도와 단식과 자선도 실천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 무엇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하느님께 드리는 것, 자신의 공로를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거나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실천한 율법과 기도와 단식과 자선은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반면 그의 집으로 예수님을 찾아와 발을 닦아 드린 여자는 선행도 공로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알았기에 많이 사랑하였고, 그 사랑은 천국에서까지 남아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의 죄가 사라지고 나면, 예수님께 보여 드린 그 사랑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루카 7,47)라는 말씀이 눈에 띕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가 큰 사랑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지 않고,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에 큰 사랑을 드러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순전히 인간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면 그 사랑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업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출발점은 하느님이십니다.
먼저 사랑하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도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으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고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신자들이 자신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서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았기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 7,36-50)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 식탁은 제단을 의미한다. 바리사이의 식탁, 곧 옛 계약의 율법의 제단(제사)에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앉으신 것이다.
사도가 말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사흗날에 되살아나신 그 기쁜 소식, 복음, 용서 의 새 계약이 앉으신 것, 율법과 상관없는 하늘의 의로움이신 분(로마3,21)
(로마3,24-25)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그 기쁜 소식, 복음을 들은 죄의 여자가 예수님을 찾는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 자신의 입(말)으로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하시는 대속의 죽음, 곧 구원의 십자가의 길을 가실 그 진리의 발에 자신의 모든 것(향유)을 던진 것이다. 자신의 죄를 버리고 목숨을 의탁하는 것이다.
그 같은 진실, 죄의 덮으심,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사랑)을 모르고~ 자신의 열성, 자기 의로움의 제사를 드린다면, 그 제단, 식탁을 고집 한다면 , 하느님의 용서를 몰라 다른이의 죄를 볼 뿐이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 앞에서 묵상 했듯이 죄는 그리스도의 죽음, 그 피로 얻는 것, 그 대속의 고해 성사가 아닌 죄를 몇가지 골라 드린 고해성사라면 용서 받았음의 기쁨이 나올까?
오늘 복음 환호송처럼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곧 하늘의 안식, 자유는 모른다는 것이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으로 제사를 완성하신, 그래서 더 이상 예물이 필요 없고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하게 하신 그분의 피의 새 계약, 십자가로 받는 용서, 그 복음은 모르면서 매일 제사를 드리는 신앙은 헛된 것이다.
(1코린15,2)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 구원, 곧 용서와 하늘의 생명은 기쁜 소식, 그 복음(말씀)을 믿어 받는 것이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우리의 식탁을~ 매일, 매식마다 감사의 식탁(제단)으로 그 제단의 양식으로 먹으면 어떨까? 식탁위에 오르는 모든 양식(피조물)이 말씀으로 창조되어 자라나고 지어진 것, 곧 생명의 양식, 말씀 양식인 것이다. 그 말씀으로 먹는다면~ 그 피조물 안에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대속의 죽음, 그 사랑이 들어 있으니까~~
감사의 잔치(에우까리스띠아-미사)가 아닌가~~그리고 그 식탁에 앉는 ‘나와 너’가 그 용서의 양식(말씀)을 먹는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는 매일, 매식 감사(미사)의 삶을 사는 것이다.
(지혜16,24-26) 24 피조물은 자기를 만드신 당신을 시중들며 불의한 자들을 징벌하는 데에는 그 힘이 팽팽해지고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에게는 득이 되도록 그 힘이 느슨해집니다. 25 그래서 피조물은 그때에도 온갖 형태로 바뀌면서 궁핍한 이들의 바람에 따라 모든 이를 먹여 살리는 당신의 선물로 쓰였습니다. 26 그리하여 주님,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여러 가지 곡식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이들을 돌보는 당신의 말씀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아멘.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복음(루카7,36~50)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6)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7)
루카 복음 7장 46절에는 이중 대구 구조가 나타난다.
즉 '기름'에 해당하는 '엘라이오'(elaio; oil)와 '향유'에 해당하는 '뮈로'(myro; ointment; perfume), '머리'에 해당하는 '텐 카팔렌"(ten kephalen; head)과 '발'에 해당하는 '투스포다스'(tus podas; feet)가 대칭되는 개념이다.
'기름'과 '향유'는 모두 기름의 일종이지만, '향유'('뮈로')는 그 앞에 종종 '값비싼'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것처럼 매우 값진 기름이다.
반면에 '기름'은 때로는 램프의 기름이나 병자를 치료하는 약, 때로는 머리와 몸에 붓거나 바르는 등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기름이다.
이것은 당시 올리브 나무로 뒤덮였기 때문에 붙여졌던 '올리브산'이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값싼 물건이었다.
당시 '향유'를 부을 때에는 일반적으로 머리에 부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값싼 '기름'조차도 붓지 않은 바리사이 시몬과 값비싼 향유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머리에 붓지 못하고 예수님의 발에 부은 여인을 비교하심으로써 그녀의 겸손과 헌신을 칭찬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원문은 '호티 에가페센 폴뤼'(hoti egapesen poly; for she loved much)이다. 여인의 사랑과 헌신적 행위가 죄를 용서받게 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죄의 용서는 순전히 하느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하느님께서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이것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있어 논란이 되는 구절이다.
그래서 여기의 '호티'(hoti)를 '내가 너에게 말한다'로 번역된 '레고 소이'(lego soi; I tell you)에 걸리는 종속절로 보아서 '내가 그녀의 많은 사랑함에 대해 말하는데'로 번역하여 '호티'(hoti)이하의 절을 그녀의 많은 죄의 용서의 근거가 아니라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근거로 보기도 한다.
루카 복음 7장 47절과 48절에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용서받았다'에 해당하는 '아페온타이'(apheontai; are forgiven)라는 새로운 단어이다.
이 단어의 원형은 '아피에미(aphiemi)인데, 이것은 '보내다'라는 뜻의 '히에미'(hiemi)에 '~로 부터'를 의미하는 전치사 '아포'(apo)가 합쳐진 형태로서, '~로부터 떼어 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여인이 자신을 억누르던 죄('하마르티아이'; hamartiai; sins)와 이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주위의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음을 표현한다.
과거의 허물과 실수, 죄악이 현재나 미래에 미치는 결과까지 완전히 백지화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아피에미'(aphiemi)를 통해서 여인은 죄인의 신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고, 이러한 공적인 선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죄의 용서의 권한과 권세를 갖고 있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2025년 09월 18일 목요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인 시몬의 집까지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여인은 그 고을에서 소문난 죄인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손가락질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바리사이의 집, 곧 경건함을 열심히 추구하는 사람이기에, 가면 경멸받을 것이 뻔한 그 사람의 집을 찾아갑니다. 굉장한 각오를 하였을 것입니다. 미움과 경멸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에 모든 것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갑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거기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 발치에 서서 참회의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지극한 존경과 감사와 사랑의 표시로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부어 발랐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 만남이 개인적이었든, 군중 속에서 그분 말씀을 듣는 정도였든, 그 만남은 마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커다란 위로와 희망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하여 빚 탕감과 사랑에 관한 말씀으로 설명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큰 죄인임을 압니다. 어찌할 수 없는 처지임을 압니다.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자신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심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받은 그 사랑은 다시 주는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 7,48)라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심으로써 그가 마을 공동체 안에서도 새 삶을 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신성모독이라고 비난받으시며 신변에 위협이 올 수 있음에도 아랑곳하시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위선(僞善)의 포장(包裝)을 풀자.
복음(루카7,36-50)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 소문으로 들은 크신 분을 대접할 수 있는 힘, 자신감이 있는 바리사이다.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래서 사람들의 높은 평가로 자기 의로움의 힘이 있는 사람이다.
그와 반대인 여자가 있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죄인임을 아는 사람의 자세다. 마음 뿐만 아니라 전 재산(향유)을 다 부었다. 자신의 머리(카락)로 발을 닦아드릴 수 있음에 눈물로 감사를 드린다. 곧 예수님의 발이 자신의 죄를 위한 길(道)임을 깨달아 알고 입을 맞춘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바리사이는? 나는?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 자신의 잘못(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다른 이를 쉽게 판단한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 머리에 기름을 부음은 메시아임을 인정,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죄인)는 기름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 곧 그분의 발길이 메시아의 길임을 고백한 것이다.
(마르14,8)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 깨달음과 진실된 회개로 사랑했기에 할 수 있는, 드러난 태도이다. ~척하는 위선이 없다. 깨달음에 의한 온전한 자기부인(버림)의 모습이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 적게 사랑함~ 제사와 윤리지킴의 그 종교 행위로, 곧 ‘예수님을 초청한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 만족하고 있는, 그래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바리사이에게 하신 말씀이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믿음이다.
*사도 바오로의 고백을 보자~
(갈라2,19-20)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율법의 의로움이 헛된 것임을 , 그래서 죽을 죄인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필리3,3-12) 3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좋은 세상적 스팩이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10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11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보호자 성령님! 여자보다, 바오로의 삶보다, 바리사이로 살고 싶은 마음을 보게 하소서. 괴로워할 줄 알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그래서 나를 당신의 것으로 차지하신 분의 발에 입맞추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