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루카6,1-5)

2025. 9. 5. 오전 7: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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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6일 토요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루카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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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 없게 해 주셨습니다.>(콜로1,21-23)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3 다만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화답송>시편54,3-4.68(6)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하느님, 당신 이름으로 저를 구하시고, 당신 권능으로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하느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입이 아뢰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소서.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복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콜로1,21-23)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없고 나무랄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2)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로 번역된 '엔 토 소마티 테스 사르코스 아우투 디아 투 타나투'(en to somati tes sarkos autu dia tu thanatu; in the body of his flesh through death)는 번역하면 '그의 살의 몸 안에서 죽음을 통하여' 가 된다.

 

보통 '육체'를 표현할 때 '소마'(soma) 혹은 '사륵스'(sarx)중 한 단어만으로도 표현 가능하고, 그런 표현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굳이 두 단어를 다 쓰고 있다.

 

이러한 중첩적 표현으로 사용한 이유는초대 교회 때부터 유포되고 있었던 그리스도가 육체가 아닌 영이라는 주장과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죽음을 겪지 않고 다만 죽은 것처럼 보였다는 가현설(Decetism)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 역시 그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예수님께서 육체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목마르다'(요한19,28)라는 십자가상의 말씀을 기록하였고, 육체의 죽임을 당하지 않고 단지 고난당하고 죽은 것처럼 보였다는 가현설에 반박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숨이 끊어진 예수님의 옆구리를 군사 하나가 창으로 찔렀고, 그때 '피와 물이 나왔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던 것이다(요한19,34).

 

이러한 그리스도의 육체의 수난과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이것은 무려 700여년 전 이사야 예언자의 구체적인 예언을 통해 이미 예고된 사건이었다(이사53,1-5).

 

'거룩하고 흠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본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독생 성자를 피흘려 죽게 하신 목적 무엇인지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성도들과 당신과의 화해만을 원한 것이 아니다. 화해한 성도들이 영적 성숙을 통해 점점 성화되어 하느님 대전에 어떠한 부끄럼도 없는 완전한 존재로 서기를 원하신다.

 

첫째'거룩하고'로 번역된 '하기우스'(hagius)의 원형은 '하기오스'(hagios)이다. 이 단어는 '봉헌된', '하느님께 성별된'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산 제물을 뜻한다(로마12,1.2).

하느님의 어린양의 보배로운 구속 성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에서 깨끗해진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하느님의 어린양을 위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둘째, '흠없고'로 번역된 '아모무스'(amomus)의 원형은 '아모모스'(amomos)이다. 이 단어는 부정 접두어 '아'(a)와 '흠이 있는'이라는 뜻의 '모모스'(momos)의 합성어로서 일점의 티도 없는 깨끗한 상태를 뜻한다.

마치 방금 세탁한 흰 옷과 같이 조금도 더러움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묵시7,14). 특히 이 단어는 유다인들의 정결 의식 묘사할 때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하느님께 바쳐지는 일체의 흠이 없는 최고의 제물을 뜻한다.

 

셋째,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번역된 '아넹클레투스'(anengklletus)의 원형은 '아넹클레토스'(anengklletos)이다.

이 단어는 부정 접두어 '아'(a)와 '책임지우다', '결점을 찾아내다'라는 뜻의 '엥칼레오'(engkalle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어떤 일에 대하여 결점이나 비난, 문책같은 것이 없는 상태로서, 특히 비난받을 만한 죄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흠없고'라는 단어보다 그 의미가 몇 배나 강한 단어로서  단순히 흠이 없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한 제물을 말한다.

 

사도 바오로는 서목 서간에서 이 단어를 사용해 봉사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인 원로와 감독 등이 이러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며(1티모3,10; 티토1,6.7)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종말의 심판 때에 이러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1코린1,8) 말 한 적이 있다.

위의 세 개의 형용사는 결국 성도들이 하느님 대전에 가서 서게 되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밟아나갈 성화(聖化)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와 같이 변하게 될 성도들의 영광스런 모습(로마8,29.30; 에페4,13)이 성도들을 부르신 하느님의 목표이며 십자가 죽음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을 통해 독생 성자를 십자가에 넘기시고 그들을 양자로 삼으셨지만,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된 이후에는 거룩하고 흠없고 나무랄 데 없는 모습으로 성장해 가기를 원하시며,  완전히 성화된 사람을 천국으로 맞아들이실 것이다.

 

한편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로 번역된 '파라스테사이'(parastesai; to present)는 '옆에'라는 전치사 '파라'(para)와 '두다'라는 뜻의 동사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로서 '곁에 두다', '가까이에 두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느님 가까이에 성도를 둔다는 의미인데, 일차적으로는 마지막 종말 심판 때에 성도들이 부끄럼과 두려움 없이 하느님 대전에 서게 될 것이라는 미래적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이차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의 매일의 삶, 일상의 삶이 하느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예배의 산 제사로 봉헌되어야 한다는 현재적 의미가 있다(로마12,1).

 

성도들은 마지막 날 주님 심판 대전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 날마다의 삶 속에서 하느님 대전에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부단히 봉헌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매 순간 그리스도 가까이에 자신의 삶을 두는 거룩한 하느님 대전의 삶, 즉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을 살아야 한다.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창조(創造)의 목적은 안식(安息)이다.

(안식(安息)은 재창조새창조안식씨밧일곱 번 말하다)

 

복음(루카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 예수님과 안식일, 그리고 밀과 그 밀(빵)을 먹는 제자들, 그 관계(關係)와 의미(意味), 정신(精神)을 말씀 하시려 하신다. 미리 먼저 알고 가자 - 뒤 5절에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安息日)의 주인(主人)이다.” 하셨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안식일의 주인 앞에서~ 안식일을 율법의 행위로, 교리로 지키는 그 헛된 자신들이 옳은 줄 알고 오히려 따진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모습이다. 그 벗어난 자리에 내가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성전)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 구약은 신약의 예표(豫表)이니, 율법의 제사 빵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니 영원한 사제요 성전(聖典), 그리스도이신 당신과 함께 먹고 하는 일은 다 옳다고 하시는 것이다. 제사(祭祀)빵(밀)은 모든 이에게 먹혀야 하는 것이 목적(目的)이다.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확인(確認)하자.

 

하느님의 안식(安息)부터 보자~

(창세1,31. 2,1-2)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 창조는 육(6)일에 다 이루셨다. 그런데 이레(7)날의 쉼까지가 창조(創造)라는 것이다.

 

(창세2,3)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안식때문이다.

= 이렛날(7)의 쉼이 완전한 복(福)이며 거룩이다. 그래서 이렛(7)날의 쉼, 안식까지가 창조라는 것이다. 곧 육일간의 창조는 안식을 향한 것이고, 그 6일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쉼(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육(6)일간의 창조를 보자~

(창세1,2)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있는 상태가 어둠(흑암,黑暗)이다. 곧 빛(말씀, 씨)이 없어 비어있는 그 어둠(죄)의 상태, 없음의 우리의 모습이다. 그 어둠들 위에 하느님의 영(靈)이 감돌고(라하프 - 덮으심) 계심으로 창조가 시작된다.

*첫날- 빛 *둘째날- 윗물 *사흗날- 땅을 위한 씨의 희생, 모두 하늘을 뜻하며 그렇게 하늘, 셋(3)을 세우시고 *넷째날- 해. 달, 별 *다섯째날- 아랫물에 온갖 종류대로 생물들을, *여섯째날- 짐승들과 사람으로 완성(完成)하신다.

첫날과 넷째날은 빛의 하나 됨이며, 둘째날과 다섯째날은 물의 하나 됨이며, 사흗날의 씨와 여섯째날의 사람(흙)을 짝하여 하나를 이루셨다.

그러니까 하늘의 생명의 빛, 물, 씨가 땅으로 내려와 땅의 어둠의 빛, 죽음의 물, 흙(없음)의 사람과 하나 되어, 그 죽음인 없음 들이 생명, 있음의 하늘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창조, 하느님의 뜻이다. 그 없음의 존재들은 자신들이 있음(하늘)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주신 것이 하느님의 창조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필요한 빛, 물, 씨. 그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으신 후,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바로 다음날 안식을 주신 것이다.(그것을 믿는 것이 창조, 창조론이다.) 하느님께서 다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를 통해~ 흙, 그 없음의 존재들을 하늘의 존재로 완성하시겠다는, 그 사랑을 담은 것이 하느님의 창조다. 창조 6일 동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곧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 모든 것을 깨닫고 ‘아!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구나.’를 깨닫고 하느님만을 바라고, 의지하여 한 몸이 될 때 안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어둠인 우리는 빛이신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없다. 빛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인데, 그분 역시 빛이시기에 그냥 들어오실 수가 없으셔서 십자가라는 대속을 통해 들어오신 것이다. 곧 십자가에서 어둠, 그 죄의 대속으로 죽으시고 당신의 생명(빛)을 우리에게 넣어 주셔서 어둠인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쉼,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십자가의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어 그분과 하나, 한 몸이 된다면, 곧 육(肉)을 부인(否認)하는 그 죽음으로 예수님의 지체로 붙어 영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이 안식을 사는 재창조인 것이다. 그러나 없음의 그 피조물들이 아담 처럼 자신의 힘, 지혜, 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르겠다고, 스스로 안식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망상, 어리석음, 교만이다. 그들이 율법주의, 인본주의인 바리사이와 세상이다.

 

(로마1,20) 12 다시 말하면내가 여러분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분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통하여 다 함께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골로1,15-16)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히브1,2-3)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요한12,23-24)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하느님의 뜻을 이루실 십자가의 대속, 그 때이다. 예수님께서 땅, 세상에서 밀, 씨앗으로 오시고 먹히셔서 세상 죄인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고, 하느님의 자녀로 하늘의 생명,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함께 모여 하느님께 찬미,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 정신이다.

그 안식의 의미, 정신을 모르고, 교리(敎理)로, 의무(義務)로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면 하늘의 대속, 그 주님의 죽음, 그 사랑을 모독(冒瀆)하는 것이다.

 

☨은총의 천주의 성령님! 안식(安息)은 나를 버렸을 때 이뤄짐을, 오늘 심어주신 말씀(씨앗)이 자라나 안식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가난한 이가 남의 밭에서 아직 추수하지 않은 곡식을 얼마간 잘라 먹는 것은 율법상 허용된 일입니다(신명 23,26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바리사이들은 그것이 ‘안식일에 행한 노동’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관련한 명백한 규정이 오경의 율법에는 없으며, 바리사이 자신들이 지키던 구전 율법을 근거로 내세운 것이었습니다.

구전(口傳) 율법을 집대성한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금지된 서른아홉 가지 노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안식일에 꽃이나 열매를 잘라서는 안 된다거나 알곡 한 톨도 까부를 수 없다는 세부 규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확과 탈곡에 관한 이런 규정들은 본래 노동을 금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소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거룩한 빵을 합당한 절차를 통하여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에 이 거룩한 빵을 속인인 다윗과 그의 일행이 허기져 먹은 일이 있었는데(1사무 21,1-7 참조),

바리사이들이 이를 두고는 아무 비난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윗의 주님’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께 사람이 만든 안식일 규정들을 덧씌우고 속박하려 들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아집과 완고함을 짚어 깨우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경직된 사고와 잣대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옥죄고 단죄하는 마음으로는 주님의 길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는 길’(제1독서 참조)은, 비록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뜯어 먹을지언정,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가까이에서 황금빛 밀밭을 자유로이 따라 걷는 그 삶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이다.

 

(루카 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 뒤 5절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신다. 그러니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열매), 곧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인 빵(밀 이삭)을 먹는 행위는 올바른 것이다.

 

(요한6,35)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12,23-24)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예수님께서 땅, 세상에 밀알로 오셔서 죽어 세상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이 되셨다는 것, 안식일의 그 예수님의 죽음으로 얻는 생명, 그 안식의 의미를 모르고 주일을 교리로 지키는 그 행위에만 열심하게 되면 헛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랬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안식일을 법의 행위, 전례행사로 지키려는 그들은 정작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 다윗은 배가 고픈이(죄인)들이 먹는 그 하느님의 빵(대속, 자비)으로 먹었던 것, 당시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안식법을 적용시키지 않았다.(200주년 주석성서 참조)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안식은 하늘로부터 받는 죄의 용서로 누리는 자유, 쉼, 그 안식인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늘의 죄의 용서는 사람의 아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주일 성찬례에서 예수님의 몸을 파스카의 살과 피로 먹고 마시는 그 전례행위에 만족한다면 안식일(주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루가22,16참조)

예수님의 몸과 피는 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어야 하는 것, 곧 육이 아닌 영으로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이다.

 

참조~(요한6,63)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아멘~!!!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복음(루카6,1~5)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5)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2장 27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략하고 있다.

또한 마태오 복음에서 장황하게 기록된 안식일에 대한 해설 부분인 마태오 복음 12장 1~8절도 생략했다.

 

이것은 루카 복음사가에 있어서 안식일 규정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이방인 독자들에게 안식일 규정을 깊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생략하고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만을 나타내어도 제자들의 행위가 충분히 변호되기 때문이다.

 

본절과 관련지어 연상되는 레위기 23장 3절에 의하면, 안식일은 주 하느님께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안식일의 소유권을 메시야인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권한을 월권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즉 '인자'(人子)가 곧 안식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형식적 규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운 바리사이들에게 올바른 권위로 책망하실 수 있는 것이다.

 

원문을 보면, '인자'에 해당하는 '호 휘오스 투 안트로푸'(ho hyos tu anthropu; the Son of Man) 앞에 '안식일'이란 뜻을 가진 '투 삽바투'(tu sabbatu; of the sabbath)를 먼저 기록하고 있다.

희랍어에서는 언제나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문두에 두는 경향이 있다.

루카 복음사가도 본문에서 쟁점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자'보다 앞에 둔 것이다.

 

 

 

 

 


  

20250906일 토요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 6,2)라고 비판합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유다인들에게 중요하였는데, 제자들은 수확하는 행위(“뜯어”[6,1])와 타작하는 행위(“비벼”[6,1])를 함으로써 안식일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 일행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시며(1사무 21,1-7 참조) 제자들을 변호하십니다.

유다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에는 안식일 법을 어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다윗과 그 일행의 행동이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것으로 여겨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입장이었기에 예수님께서 그 예를 드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제자들이 한 행동은 자기 생명을 구하는 다급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여러 지방을 돌며 설교를 하셨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자주 배고팠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기를 보면 다윗이 배고팠다는 말은 나오지 않고 정황상 그렇게 볼 수 있을 뿐인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배가 고팠다라는(루카 6,3 참조)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예수님께서 민감하게 알아차리시고 그들의 행동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도 안식일 법, 곧 하느님 법의 근본이 자비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자비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복음(루카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 인간의 눈, 생각으로 보면~ 그저 ‘밀밭사이를 가로질러 가며 심심풀이 삼아 고작 밀 이삭 몇 가닥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을 따름이다.’ 라고 볼 수 있지만, 성령의 이끄심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지나가신 길에서 제자들이 일을 했고, 예수님께서 가로질러 가셨다는 것은 대속(代贖)의 피(血)로 생명, 안식을 주는, 곧 죽음을 없애신 ‘파스카 제사를 뜻한다.(탈출12,13.23. 27,19.33)

그래서 그 주님이 지나가신 곳을 따라가며 한 일, 곧 밀 빵으로 ‘생명의 양식인 말씀’으로 오신 분을 먹은 것이기에 제자들은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에제20,37) 37 너희를 목자의 지팡이 밑으로 지나가게 하면서계약의 의무를 지우겠다

= 말씀을 제사와 윤리, 그 법으로 고집하는 이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대사제로 오셨고, 그 대사제의 직분으로 우리 구원의 일을 완성하셨다.(히브9,11-12) 요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됨, 완성, 곧 안식을 깨닫고 있다.

 

(2코린1,19) 19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되시면서 “아니요!”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그분께는  “!” 있을 따름입니다

 

(2코린5,17.21)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2코린3,14) 14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각이 완고해졌습니다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계약을 읽을 때에  너울이 벗겨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에페1,3-5.7.9-11.13) 3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없는 사람이 되게  주셨습니다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에페2,21-22)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결합된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지 않는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일 뿐이다.

사랑? -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는 것이다. (2요한1,1 3요한1,1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영원한 쉼, 안식이다.

그래서 세상의 것으로 쉼, 안식을 누리려 종교 행위에 열심을 부렸던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심한 욕을 하셨던 것이다. (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은 당시에 가장 큰 목욕적인 큰 욕 이였다.) 아담을 유혹에 빠트렸던 ‘저주의 뱀’ 때문이다.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스스로 정한 선악의 지혜, 그 인간의 논리, 인간의 힘으로 안식에 이르려는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있는 것이 독사의 자식이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크심(있음)과 인간의 작음(없음)을 인정하는 ‘헤아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흙의 먼지일 뿐인 없음의 인간이 어떻게 올바로 깨닫고 헤아리겠는가....

  

(지혜9,17-18) 17 당신께서 지혜(예수) 주지 않으시고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성령)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그렇게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참조~

(1코린1,23-24)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 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요한14,26) 26 보호자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깨닫게 주실 것이다

= 거룩하신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로 안식,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신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뜻을 통찰하시는 거룩하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인지 그리스도를 통하여한가르침인지’ 분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와 안식이 되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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