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0일 수요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품삯 한데나리온 (마태20,1-16)
제1독서<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판관9,6-15)
6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
7 사람들이 이 소식을 요탐에게 전하자, 그는 그리짐 산 꼭대기에 가 서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스켐의 지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그대들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
8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9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10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12 그래서 그들은 포도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14 그래서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15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화답송>시편21,2-3.4-5.6-7(◎2ㄱ) ◎ 주님, 임금이 당신 힘으로 기뻐하나이다.
○ 주님, 임금이 당신 힘으로 기뻐하나이다. 당신 구원으로 얼마나 즐거워하나이까! 당신은 그 마음의 소원 이루어 주시고, 그 입술의 소망 내치지 않으셨나이다. ◎
○ 은혜로운 복으로 그를 맞이하시고, 그 머리에 순금 왕관을 씌우셨나이다. 그가 당신께 살려 달라 빌었더니, 영영 세세 긴긴날을 주셨나이다. ◎
○ 당신 구원으로 그 영광 크오며, 당신이 존귀와 영화를 내리시나이다. 그를 영원한 복이 되게 하시고, 당신 앞에서 기쁨이 넘치게 하시나이다. ◎
복음<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20,1-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또는,베르나르도 학자 기념일 독서(집회 15,1-6)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판관9,6~15)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판관9,15)
판관기 9장 15절은 요탐의 우화 중에서 백미(白眉)라고 본다. '와서 ~피하여라'로 번역된 '뽀우 하쑤'(bou hasu; come and take refuge)는 명령형이 연속으로 쓰인 반복 명령구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두 명령어가 '와우'(wau)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뽀우 하쑤'는 '오라! 피하라!'는 의미로서, '와서 ~피하여라'는 한글 새 성경 번역의 어감보다 명령의 강도가 훨씬 세다.
여기서 '피하여라'는 의미로 번역된 '하쑤'(hasu; put your trust; take refuge)의 기본형 '하싸'(hasa)는 위험을 피해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시편7,1; 2사무22,31; 잠언30,5).
가시나무에는 태양의 뜨거운 빛을 가릴 만한 넓은 나뭇잎이 없다. 그래서 그늘을 만들 수 없으므로, 자기 그늘에 피하여 보호를 받으라는 가시나무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언어도단이다.
오히려 주변 나무들이 그에게 가서 피한다면 열기를 식히기는커녕 온 몸이 가시에 찔려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우화는 스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운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고발하는 것이다.
'불이 터져 나가 ~ 삼켜 버리리라'
'삼켜 버리리라'로 번역된 '웨토칼'(wethokal; and consume; and devour)의 원형 '아칼'(akal)은 '삼키다', '먹다'는 의미로서, 기본적으로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이다(탈출16,35).
'불'(fire)을 의미하는 명사 '에쉬'(esh)와 함께 '사르다'(burn)는 뜻으로 쓰이는 동사 '사라프'(sarap)가 있음에도 불구하고(탈출29,34; 레위9,11), 여기서 굳이 '아칼'(akal) 동사를 쓴 것은 사람이 음식을 단숨에 먹는 것처럼 불이 향백나무들을 집어 삼키듯이 살라 버릴 것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즉 '에쉬 ~ 웨토칼'(esh ~ wethokal)은 불이 모조리 태워 소멸시켜 버릴 것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상징적 의미는 스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우지 않으면, 아비멜렉이 그들을 모조리 진멸시켜 버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런 비유적 표현을 통해 요탐은 아비멜렉의 포악성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탈무드에는 팔레스티나 사람들이 10가지 정도나 되는 다른 종류의 나무들을 향백나무라고 불렀다고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에레즈'(erez)라는 단어는 오직 레바논의 향백나무만 지칭할 뿐, 다른 나무들을 지칭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 나무는 주로 건축용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목재가 크고 굵을 뿐 아니라 부패에 강하고 해충으로 인한 파손을 막아 주는 훌륭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백나무는 성전의 내부 장식용으로 쓰였고(즈카3,7), 배의 돚대(에제27,5), 종교 의식(레위14,4.51.52; 민수19,6)의 용도 등에 사용되었다.
여기서 '향백나무들' 즉 '아르제'(arze; the cedars)는 '에레즈'(erez)의 복수 연계형이다. 이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은 아마 높은 지위에 있던 이스라엘의 대신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시나무와 같은 무가치하고 해로운 아비멜렉이 유익하고 사회에 요긴한 대신들을 진멸한다는 것은 큰 죄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가 구원받고, 행복하며 기뻐하는 세상을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상이나 공로의 종교에 익숙합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이는 복을 받고, 그러지 않는 이는 벌을 받는다는 생각에 익숙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그분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열심과, 그 과정에서 오는 많은 고난을 감수함으로써(“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과연 이것이 하느님의 의로움입니까?
오늘 복음은 하느님 방식의 의로움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여 줍니다.
포도 수확철이 되면 대개 보름 안에 포도를 다 따야 해서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복음서에서 포도밭 주인은 이른 새벽부터 일찍 광장에 나가 일꾼을 모읍니다.
주인은 네 차례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약속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십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포도밭에 와서 일한 사람은, 자기처럼 많이 일한 사람은 많은 보상을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사람은 (자기보다 더) 적게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먼저 일하며 수고한 우리는 한눈팔지 않고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이른바 ‘죄인들’ 또는 “맨 나중에 온 저자들”에 대하여 차마 말 못 하는 시기와 질투, 부러움을 안고 살지는 않습니까?
포도밭 주인의 정의를 따라가 봅시다. 하느님의 생각은 모든 이가 행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새로운 행복이고 참된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먼저 부름받은 우리가 먼저 행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감사할 것입니다.
이것은 밭에 묻힌 보물을 먼저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도 같습니다.
적게 일하는 행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포도밭 주인처럼 부지런히 형제들을 찾아갑시다.
우리 주인의 방식으로 그들을 대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마태20,1-16)
1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천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 하느님 나라는 하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일꾼, 곧 당신께 영광을 드리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이사43,7)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 하늘나라의 품삯은 한 데나리온, 즉 하늘의 생명 그 하나를 받는, 그 하나를 깨달으라는 오늘의 말씀이신 것이고 그 하나를 받는, 깨달은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 정당한 삯, 참 진리는 하나인 것이다.
5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그 부족한 사람을 뽑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심
(마태11,25)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 하느님은 한 데나라온 곧 하늘의 생명 그 하나를 주시는 분, 포도밭 일꾼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는 일을 하는 것으로, 하느님은 노동을 시키시려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한 데나리온, 그 하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부르신 것이다.
포도나무의 가지로 포도 열매를 맺도록, 곧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로 하늘의 생명, 그 열매 하나를 맺으라는 것. 외아들- 독생자(모노게네스- 하나를 갖은 이)
(요한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일꾼이 자신(세상)의 뜻을 버리고 포도나무의 가지로 붙여지는 그 일을 하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본분이다.
일꾼(자신)들의 육의 행실, 그 가치는 구원의 열매가 아니라는 것. 사람의 의로움은 개짐(쓰레기. 오물, 똥)일 뿐이기 때문이다(이사64,5참조)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 하느님의 뜻, 계명을 모르니 자신의 뜻인 세상의 방법으로 따진다. 성경 말씀을 그렇게 인간의 계명 지혜로 보기에 하늘의 생명 그 하나를 많은 이들이 못 받는다 하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일꾼들이 그 세상의 가치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목자들은 구해낼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에제34,4-6) 4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5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6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 온갖 질병 곧 죄 의식으로 시달리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덮으심에 계명, 그 말씀으로 용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규정과 교리, 세상의 법으로 가르쳐 병들게 했다고 하시는 것, 그래서 진정한 참 목자가 없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으로 넘겨져 세상 사람과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목자는 신자들을 그 세상의 죄와의 법을 진리로 가르쳐 구원과 관련 없는 삶으로 세상과 하나로 그릇된, 헛된 신앙을 살게 했다는 것이다.(요한 16,8참조)
구원은, 하늘의 생명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을 진리로 믿어 얻는 것이지 인간의 행실, 의로움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 하느님은 하늘의 생명 그 하나만을 약속 하셨지, 땅의 생명(재물, 일)은 약속하지 않으셨다(마태6,7~ 루가12,14참조)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후하심, 곧 십자가의 대속으로 거저 얻은 용서, 의로움, 그 은총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후하신 용서를 받지 못한다. 그러니 그 예수님의 의로움이 아닌 사람(세상)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고 있는 것이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 보이는 많은 일을 한 그 사람이 첫째 같지만~그 일은 구원에는 꼴찌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시는 것이다.
참조~(이사45,24-25)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그러니~(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1베드2,24-25)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하늘, 예수)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25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아멘.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20,1-16)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요?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5)
한글 새 성경은 '나에게 합당하지'에 해당하는 '엑세스틴 모이'(eksestin moi; It is lawful for me)의 번역을 생략했는데, 포도밭 임자의 행동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뜻이 있으므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내게 합당하지 않느냐?" (Is it not lawful for me to do what I will~?) 라는 뜻이 된다.
원문대로 하면, 자신의 소유를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은 합당한 행위였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마음대로 하신다 하여도 그것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은 절대 공의로우며 인간에게도 유익이 되는 선(善)한 것이기에, 인간이 왈가왈부할 성질이 못된다는 것이다.
'내가 후하다고 해서'에 해당하는 '호티 에고 아가토스 에이미'(hoti ego agathos eimi; because I am generous; because I am good)에서 '에고'(ego; I)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었다.
'에이미'(eimi; am)란 동사에 주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에고'(ego)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후하고 관대하며 선한 자가 바로 포도밭 임자(주인)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가토스'(agathos)는 '윤리적으로 선하다'는 뜻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하여 너그럽다'는 의미도 지닌다.
말하자면, 놀고 있는 자를 고용하여 넉넉한 품삯을 준 포도밭 임자 자신의 행동을 가리킨다.
한편, '후하다고'를 의미하는 '아가토스'(agathos)와 대응되는 단어로서 '시기하는'으로 번역된 '포네로스'(poneros; envious; evil)는 '비열한', '무가치한'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즉 의인인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은혜를 베푼 것을 도덕적으로 비열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비록 늦게 포도밭에 왔지만 동료가 후한 대접을 받은 것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마땅한데, 이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우월감을 타인과 비교하여 드러내기를 좋아할 뿐, 하느님의 입장에서 내려지는 크나큰 사랑을 볼 줄 모르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아담과 하와의 본성적 요소가 만드는 세속적인 가치관과 기준은 항상 하느님의 뜻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한 안목으로 볼 때, 모든 인간들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얻어 입어야 하는 죄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세속적이고 본성적인 가치관으로 바라보며, 자기 우월감을 확인하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은 바로 세속적이고 본성적인 가치관으로 감히 하느님의 주도권에 대해 판단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2025년 08월 20일 수요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포도밭 일꾼을 사려고 집을 나선 밭 주인의 이야기에 빗대고 있습니다(마태 20,1 참조). 그리고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20,16)라는 복음 마지막 절은 덧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말씀이 19장 30절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비유에서는 포도밭 주인이 맨 나중에 온 일꾼들부터 맨 먼저 온 일꾼들까지 차례로 품삯을 주는데, 중요한 것은 모든 일꾼이 같은 액수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당시 마태오 복음사가가 속한 교회 공동체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해 봅니다.
나중에 신앙을 받아들인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그들보다 먼저 부르심을 받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이 비유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께 같은 금액의 품삯, 곧 하늘 나라를 보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한편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20,13)에서 “친구여”로 옮겨진 그리스 말은 가까운 벗이나 상대방을 점잖게 부를 때 쓰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에는 이 호칭이 세 번 나오는데, 모두 처신을 잘못한 사람, 곧 혼인 잔치에 초대 되었지만 예복을 갖추지 않은 사람과(22,12 참조), 스승을 배신할 유다를(26,50 참조) 부르시는 대목에 쓰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 “친구여”라는 부름은 묵상 거리를 줍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워 다른 이에게 시기와 질투를 드러내지는 않나요?
하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우리는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하고 있나요?
혹시 유다처럼 나의 명예나 이익만을 찾으며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지는 않나요?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손해보는 합당한 계산
복음(마태20,1-16)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 하느님 나라 백성은 하느님께서 직접 찾아 나서신다. 인간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로와 안심을 주시는 말씀이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삯이 한 데나리온, 곧 하나라는 것인데, 십계명을 열 개로 지킨 인간 스스로의 수고와 의로움이 아니라 그 계명을 어긴 모든 죄를 대속한 의로움, 곧 하느님 사랑이신 십자가의 그리스도 한 분이면 된다는 것이다. 외아들(모노게네스 - 하나로 갖은 자) 구원의 삯은 한 데나리온 예수다. 십계명의 모든 계명은 하늘의 대속, 그 사랑을 담고 있는 하나의 계명이라 했다. 오늘 그 하나를 위한 비유 말씀이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 얼마나 볼품, 힘, 능력이 없어 보였으면 저녁때까지 뽑히지; 않았을까? 그런 못난이를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 자비의 눈으로 뽑으신 것이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 투덜대는 일꾼을 친구로 부르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합당한 한 데나리온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믿기로 하느님과 합의한,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 인간의 계산법으로 절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세상 힘의 원리, 말을 간직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면 절대 살 수가 없다. 천국이 지옥이 된다. 세상의 진리(1+1=2)로는 절대 하늘의 진리(1+1=1, 한 데나리온)를 알 수가 없다.
세상,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다.
다시, 하느님의 계산법은 손해 보며 퍼주시는 무한한 용서다. 하느님의 힘은 사랑이다. 외아들을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사랑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진리, 지혜는 십자가다.
아침 일찍부터 일(신앙)한 사람이나 저녁 늦게 잠시 일(신앙)한 사람이나 똑같이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 그 하나(한 데나리온= 예수)로 구원하신다. 그러니 세상의 원리로 하느님을 보면 하느님의 손해 보심, 후하심이 부당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똑똑하다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첫째로 일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 일하심이 못 마땅하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서 꼴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꼴찌가 염치없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곧 염치 없이 많은 빚(죄)을 용서 받으면 그저 하느님이 감사할 뿐이다.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루가7,41-43)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 죄뿐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자기부인(自己否認)이 된 자가 그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하느님나라에서 첫째가 되는 것이다.
(예레17.9)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 예수님께서 오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가르치시고 달래시어 야단쳐서 될 일이었다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땅에 내려오셔서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다. 가망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곧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씻어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옛 계약, 계명을 대속하시고 흘리신 그 구원의 새 계약의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것이다.
(로마8,3)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히브10,9-10.14)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 단 한 번의 죽음, 전지전능하신 피다. (주 예수님! 더러운 저, 당신피로 씻어 주소서 그 한방울만 이라도 온 세상을 모두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 - 성토마스)
*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로마8,10.16)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계명)을 지키지 못해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죄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손해 보시는 하느님의 계산(새 계약)으로 당신 아드님 예수를 우리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그 십자가의 죽음, 그 구원의 삯인 한 데나리온으로 하늘의 영원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합의한 손해 보는 계산, 그 새 계약을 정당한 법으로 이웃과 함께 살 수(선택) 있는 힘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