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마태19,23-30)

2025. 8. 18. 오전 7: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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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9일 화요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마태19,23-30)

 


1독서<이스라엘을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판관6,11-24)

11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제르 사람 요아스의 땅 오프라에 있는 향엽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12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기드온이 천사에게 물었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저희 조상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으셨더냐?’ 하며 이야기한 주님의 그 놀라운 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

14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15 그러자 기드온이 말하였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16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러자 기드온이 또 말하였다. “참으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면, 저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18 제가 예물을 꺼내다가 당신 앞에 놓을 터이니, 제가 올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이에 주님께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19 기드온은 가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잡고 밀가루 한 에파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기는 광주리에, 국물은 냄비에 담아 가지고 향엽나무 아래에 있는 그분께 내다 바쳤다.

20 그러자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렇게 하였더니,

21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내밀어, 그 끝을 고기와 누룩 없는 빵에 대었다. 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22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23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그래서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라고 하였다.

 

<화답송>시편 85(84),9.11-12.13-14(9ㄴㄷ) 주님은 당신 백성에게 평화를 말씀하신다.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들은 다시는 어리석게 살지 않으리라.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복음<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마태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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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제1독서(판관 6,11~24ㄱ)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내밀어, 그 끝을 고기와 누룩없는 빵에 대었다.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없는 빵을 삼켜 버렸다.그리고 주님의 천사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 라고 하였다. (21-24)

 

판관기 6장 20절에서 기드온은 주님의 천사의 지시를 들은 후, 그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되었을텐데도 다른 말은 일체 하지 않고 그대로 신속하게 순종했다.

여기서 보면 기드온은 주님의 천사를 대접하기 위해 예물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기적(표징)을 보기 위한 예물로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먹을 음식을 그렇게 많이 가져올 리가 없고(판관6,19), 사람이 먹을 음식을 그릇이나 쟁반에 놓지 않고 천사가 시키는 데로 바위 위에 그대로 놓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 삼켜 버렸다' (21)

 

'나와'로 번역된 '왓타알'(wathaal; and there rose up; flared)의 원형 '알라'(alla)는 연기, 식물, 사람 등이 땅이나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동사이다.

 

그리고 '삼켜 버리다'로 번역된 '왓토칼'(wathokal; and consumed)의 원형 '아칼'(akal)은 밥이나 음식을 먹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러자 그 바위(반석)로부터 그 불이 올라와서 먹어버렸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 본문은 인간의 힘으로나 자연 현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음을 보여 준다.

바위 즉 돌덩어리에서 불이 나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는 기이한 현상이며, 주 하느님께서 그 일을 행하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둘째, '불이 삼켜 버렸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사르다'는 뜻을 가진 '사라프'(sarap)로 쓰이지 않고, '음식을 먹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칼'(akal)로 쓰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위에서 올라온 그 불이 그 위에 있는 예물을 사람이 음식을 모조리 먹어버리듯이 흔적도 남김없이 모두 태워버렸다는 것을 강조한다.

 

세째,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이러한 기적을 베푸심으로써 주님의 천사는 기드온이 요청한 표징(판관6,17)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와같은 놀라운 기적(표징)을 통해 기드온에게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6,12)는 확신을 갖게 하셨던 것이다.

 

한편 판관기 6장 22절에서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에서 '알고'에 해당하는 '와야레'(wayare; and when perceived; realized)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레'(yare)의 원형인 '라아'(raah)의 기본적인 의미는 '보다'(see)이다.

 

하지만 이 동사는 눈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알게 되다'(신명33,9)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 동사가 '알다'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단순한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의미까지 함축한다(이사6,10).

 

그러므로 기드온이 여기서 그에게 나타난 분이 주님의 천사인 줄 알았다는 것은 이제 그의 마음속에  분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모두 확신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로 번역된 '아하흐'(ahah) 큰 슬픔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조상들로부터 신앙을 전수받고 교육을 받은 기드온은 하느님을 뵌 자는 죽게될 것이라는 사실 (탈출33,20)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주님의 천사'로 뵈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판관6,23).

 

이것은 기드온을 비롯한 그 당시 사람들이 하느님의 천사를 하느님과 같은 권위를 가진 존재, 혹은 하느님의 분신(分身)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판관13,21.22).

기드온은 그가 요청한 표징(판관6,17)을 보게 되자, 기쁘기 보다는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슬퍼하면서 그 슬픔을 '아하흐'(ahah)라는 감탄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판관기 6장 23절의 '안심하여라'로 번역된 '샬롬 레카'(shallom leka)는 한글 성경에서 명령형으로 번역했지만, 원문 성경은 '너에게 평화'로 번역될 수 있는 단순 선언문 내지는 감탄문이다.

즉 '레카'(leka)는 주어가 아니라 '너에게'라는 의미의 전치사구이며, '안심하여라'는 동사 명령형태로 번역된 '샬롬'(shallom)은 '평화'를 의미하는 명사이다.

 

하느님께서는 두려워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너에게 평화!'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안심을 시켜 주시는 것이다.

평화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께서(이사9,6; 하깨2,9) 직접 기드온의 마음에 평화를 선언하시는 것이기에, 이것은 반드시 평화의 열매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판관기 6장 22절의 '슬픔'을 가리키는 '아하흐'(ahah)와 여기서의 '평화'를 가리키는 '샬롬'의 대조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평화와 안위를 가져다 주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심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슬퍼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또한 주님의 천사는 이제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음성으로 들려진 그를 향한 '샬롬', 곧 '평화'의 선언은 기드온에게 말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판관기 6장 24절의 '주님은 평화'로 번역된 '예흐와 샬롬'(yehwah shallom; The LORD is Peace)은 직역하면 '주님은 평화이시다' 또는 '평화의 주님'이다.

지금 기드온이 자신이 쌓은 재단의 이름을 '예흐와 샬롬'으로 지칭한 것은 판관기 6장 23절에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건내주신 말씀이 '샬롬'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디안 족속의 압제와 핍박을 두려워했던 그에게 이제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기드온이 주님의 천사를 뵙고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며, 앞으로 이스라엘에 평화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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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매일묵상 

 

많은 이가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바늘구멍”이 아니라 ‘바늘 문’으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바늘 문의 원어인 ‘라피스’는

낙타가 등을 구부리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짜기나 작은 출입문을 뜻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낙타”(카멜론)가 아니라 ‘밧줄’(카밀론)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낙타가 바늘구멍이 아니라 작은 문을 빠져나가는 것이 되고,

낙타가 아닌 밧줄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하여 부자의 하늘나라 입성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의 원문을 변형시켜 해석한다고 하여 듣는 이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이 구절이 ‘불가능성’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부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 심지어 가난한 사람도 스스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지상의 생명을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았듯이,

영원한 생명도 선물로 받는 것이지 내 손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부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구약 성경을 보면, 부자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욥 이야기의 배경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자는 하늘나라에 가지 못할까요? 그의 생각이 하느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富者)는 많이 가짐으로써 만족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에 하느님께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마음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룬 것에 더하여 그분께서 좀 더 도와주시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위안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부가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으며 재물을 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가 꼭 붙들고서 삶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하늘나라는 부(富)를 믿고 의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마음과 태도를 요구합니다.

많은 좋은 것들을 붙들고 누리며 살다가 유일하게 좋은 것,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불행을 자초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주님의 힘()으로


복음 (마태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부자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두 번이나 거듭 말씀하신 이유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 제자들도 가진 것이 있었다. 자신들의 배(陪)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부자는 돈(錢), 재물(財物)이 아니다. 어제 앞절에서 공부 했듯이 하늘의 대속, 그 사랑, 그 하나의 계명을 열 개(십계명)로 열심히 지켜 쌓아온 그 자기 의로움이 큰 사람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공부(工夫)해 보자~
(루가16,13-14)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 바리사이들은 돈보다 자신들의 체면, 명예, 의를 자신의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이 돈을 좋아했다고 전(傳)한다. 예수님께서 그 돈의 실체를 말씀하신다.

(루가16,15)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 인간들의 명예를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사람들의 칭찬, 높은 영광을 받는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부자인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어떻게 가능하게하실까? 그 부자(富者), 곧 그의 스스로의 의로움을 고집하는 죄인을 위해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그의 대속의 제물로 죽이시고 그 죄인을 살리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복음을 듣고도 계속 고집하면 그 부자를 가난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도 계속 고집하면 그 부자를 가난하게 하시는 것이다. 곧 인간의 의로움, 그 높은 자리가 교만임을 깨닫고 인정하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그 교만의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셔서 작게 만들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게 하신다.  그렇게 구원하신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 자비다.

(루가1,51-55)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에게는 시련(試鍊)으로 올 수 있다.

(히브12,7-8)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8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
= 시련은 아버지 사랑의 표현(表現)이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받겠냐고 한다. 여전히 세상 이야기로 듣는 베드로 이다.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 새 하늘과 새 땅, 하느님 나라다(묵시21-22장 참조)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아버지나 어머니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 십자가의 예수님만이 진리, 예수님께만 선, 의, 생명, 구원이 있다는 그 복음 때문이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면(들어가면)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세상의 돈, 명예, 의로움이 큰 사람이 첫째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나라에서 꼴찌가 된다. 십자가의 의로움만을 의지하는 이들은 세상이 볼 때 어리석은 꼴찌 같아 보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첫째가 된다.

(루가16,19-21)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성전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제단)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 사제의 옷이다. 호화로운 대접을 받는다(19절) 부자의 제단(제사)에는 먹을 양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생명의 양식을 바랬지만 없었다는 것이다. 둘 다 죽어, 라자로는 천국으로. 부자는 저승(지옥)으로 갔다.

(루가16,25)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명예)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꼴찌)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보다 성당 활동으로 바쁜 사람이 첫째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꼴찌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신앙생활을 산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님! (독서) 기드온에게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 나에게) 신의 능력, 힘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니 ‘너의 고집, 불만, 자아, 교만의 힘을 빼라’ 하시는 말씀으로 듣게 하소서. 그래서 님의 힘으로 주님 안으로 들어가 하늘이 되게 하소서(아멘) 오늘도 함께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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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9,23~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3-24)

 

마태오 복음 19장 23절에서 30절까지는 앞의 마태오 복음 19장 16~22절에 기록된 부자 청년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다.

특히 오늘의 말씀은 물질을 모든 가치의 척도로 삼는 물질만능주의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큰 경계가 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어려울 것이다'로 번역된 '뒤스콜로스'(dyskolos; hardly)는 영어의 'mis'나 'un'과 같이 '어려움', '반대', '방해' 등을 뜻하는 접두사 '뒤스'(dys)와 '음식'이란 뜻을 지닌 '콜론'(kolon)의 합성어로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찾기 어려운'이라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 '어렵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부자가 보통 사람이 겪지 않아도 될 또 다른 재물이라는 장애가 있으므로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하늘 나라'에 해당하는 '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ten basilleian ton uranon; the kingdom of heaven)이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10장 23절과 루카 복음 18장 24절에서는 모두 '하느님의 나라'에 해당하는 '텐 바실레이안 투 테우'(ten basilleian tu theu; the kingdom of God)로 나온다.

 

양자는 모두 같은 의미이지만, '하늘 나라'는 내세적 의미가 좀 더 강하며, '하느님의 나라'는 내세적 의미와 더불어 현세적 의미가 있다.

'바실레이아'(basilleia)는 공간적, 장소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통치', '다스림' (reign; govern), '왕다운 지배권'이라는 뜻이 있는 용어이다. 

즉 부자는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지금 현재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통치하심에 순응하기도 어렵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본문인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들어가다'가 미래형으로 되어 있으나, 루카 복음에서는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물질적인 부자 뿐만 아니라 건강한 자, 명예나 권력을 가진 자와 같이 세속적인 측면에서 누리는 것이 많은 자는 자연히 이러한 것들에 쉽게 의존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통치를 받기도 힘들며, 또한 장차 천국에 들어가기도 쉽기 않은 것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더 쉽다'에 해당하는 '유코포테론'(uekopoteron; easier)은 비교급이다.

즉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전자가 더 쉽다는 뜻이다.

이러한 비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먼저 '바늘 구멍'(바늘 귀)에 해당하는 '트뤼페마토스 라피도스'(trypematos raphidos; the eye of a needle) 예루살렘 성에서 주로 밤에 이용되던 속칭 '바늘귀 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문은 입구가 너무 좁고 낮아서 낙타가 걸어서는 통과할 수 없었고, 지방이 들어 있는 물혹과 더불어 짐을 지고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했다.

따라서 낙타는 모든 짐을 내려 놓고 무릎을 꿇은 채 이 문을 통과해야 했으므로, 그것은 너무 고통스럽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이런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통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낙타'에 해당하는 '카멜로스'(kamelos; a camel)를 '밧줄'을 의미하는 '카밀론' (kamilon)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다.

소수의 몇몇 사본이 이 입장을 취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밧줄이 바늘 구멍(바늘 귀)을 통과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이런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20250819일 화요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산을 팔지도 예수님을 따를 결단을 내리지도 못하여 마침내 슬퍼하면서 떠나갔지요.

오늘 복음은 그 뒤에 이어집니다.

앞부분에서는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19,23)라는 말씀을, 뒷부분에서는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19,29)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부자는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일까요?

부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따르고자 가족과 토지를 버린 이에게 주어질 보상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 답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재화 자체가 구원의 걸림돌이라기보다 그것을 사회적 약자들과 나누지 못하는 탐욕스러운 마음이 문제입니다.

둘째, ‘부자라고 할 때 물질적 의미뿐 아니라 심리적, 영성적, 관계적, 사회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하지만 인간관계나 사회성 측면에서 철저하게 외톨이일 수 있고, 물질적 여유는 없어도 심리적 영성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질 보상으로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19,28), “영원한 생명”(19,29), ‘하늘 나라’(루카 22,30 참조) 등 여러 표상이 쓰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신 말씀처럼, 가장 큰 보상은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요?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可能하다.

 

복음(마태19,23-30)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 부자는 구원 받기가 어려움을 강조하신다. 부자는 율법주의 자들을 비유하심이다. 곧 앞 16-22절, 하느님의 계명을 행위로 지킨 그 자기 의(義)를 가치로 여긴 부자를 말씀하심이다. 곧 ‘자기 의’를 팔아야(버려야, 부인해야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가르침이다.

 

제자들은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자비의 하느님께서 부자의 재물, 곧 사람의 의를 부수셔서 가루로 만들어 바늘구멍을 통과 시켜서 구원하시는 가능이다. 물론 세상 재물을 가진 부자도 포함 되지만 모든 부자가 구원인, 자기 부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제(司祭)께서>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즉 하느님보다 세상적인 부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부자란, 일반적으로 하느님보다 세상적인 부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아버지나 어머니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심판하는 심판권을 받는다. 그리고 백배- 완전 수, 완전한 하늘나라, 하늘의 참 가족을 받는다. 그곳은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 영원한 빛의 나라다. (묵시21,4)

 

율법의 무력함을 알자~

(로마7,1) 1 형제 여러분여러분이 율법을 아는 사람들이기에 말합니다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위에 군림한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 율법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윤리다.

 

(갈라3,24)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 믿음으로 받는 의(義)다.

 

(히브10,1)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바로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없습니다

 

(야고2,10) 10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조목이라도 어기면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새 계약의 효과를 알자~

(히브7,19) 19 사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은 희망이 주어져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갑니다

= ‘더 나은 희망,’ 율법(옛 계약)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고, 무죄로 하늘의 의, 생명을 주시는 새 계약의 그리스도시다.

 

(로마5,15-17) 15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사실   사람(아담)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6 그리고  선물의 경우도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는 다릅니다 번의 범죄 뒤에 이루어진 심판은 유죄 판결을 가져 왔지만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하느님의 은혜)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17 사실   사람의 범죄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아멘.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이 세상에서는 율법이 참(眞)인 것 같다. 곧 사람의 의가 첫째인 것 같다. 세상의 재물, 명예, 영광이 첫째 같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꼴찌’다.

우리의 죄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저 받는 의는 보이지 않으니, 마리아처럼(루가10,41-42) 말씀 안에 머물러 필요한 한 가지를 깨달아 행위의 열심을 부리지 않게 되니 꼴찌 같아 보인다. 인간의 열심, 행위로 받는 구원이 아니다.(에페2,8-9)

세상의 의, 영광은 곧 사라질 것으로 영원한 하늘의 의, 영광을 모형할 뿐이다. 하늘의 거룩한 백성으로 지어져 가는데 쓰이는 교육용 도구요, 교보재 다. 그런데 영원하지 못한, 곧 사라질 세상의 것을 붙들고, 온 시간과 힘을 낭비(집착)하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부수셔서 없애 버리실 수밖에 없으시다. 살리시기 위한 구원의 자비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1요한2,15-17) 15 여러분은 세상도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로마10,1-4) 1 형제 여러분 마음의 소원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율법의 실체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다 이루어졌다”가 된다.(로마8,3-6참조)

 

은총(恩寵)이신 천주(天主)의 성령님!

성모님처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게 하소서마음에발길에 충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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