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6,24-28)

2025. 8. 7. 오후 1: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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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8일 금요일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6,24-28)


   

1독서<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신명4,32-40)

모세가 32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35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36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주셨다. 또 땅 위에서는 당신의 큰 불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너희가 불 가운데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다.

37 그분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38 그리하여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내쫓으시고, 너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오늘 이처럼 이 땅을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이다.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40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화답송>시편77,12-13.14-15.1621(12) 저는 주님 업적을 생각하나이다.

저는 주님 업적을 생각하나이다. 그 옛날 당신이 이루신 기적을 생각하나이다. 당신의 모든 행적을 되새기고, 당신이 하신 일들을 묵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의 길은 거룩하옵니다. 하느님처럼 위대한 신이 어디 또 있으리이까? 당신은 기적을 이루시는 하느님, 백성들에게 당신 권능을 드러내셨나이다.

당신 팔로 당신 백성을, 야곱과 요셉의 자손들을 구원하셨나이다. 당신은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끄셨나이다.

 

복음<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또는,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독서(1코린 2,1-10)와 복음(루카 9,57-62)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1독서 (신명4,32-40)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39~40)

 

본문에서 사용된 '하욤'(hayom) 즉 '오늘'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현재의 시점과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역사가 과거에 묻혀진 고고학적인 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언제나 현재의 시점에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로 번역된 '하셰보타 엘 레바베카'(hashebothael lebabeka)에서 '하셰보타'는 '돌아가다'란 뜻의 '슈브'(shub)의 사역형으로 '다시 돌이키다', '다시 회복하다'란 뜻이며, 전치사 '엘'(el)은 돌이켜야 되는 방향을 말해주고, '레바베카'는 '너의 마음'이란 뜻이다.

따라서 '너의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다'는 뜻으로 새 성경에서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로 잘 번역되었다.

이것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결코 과거 한 순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부패하고 타락하기 쉽고 하느님을 멀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항상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에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새롭게 마음에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의 땅 이집트에서 이방의 문화와 종교에 둘러싸인 채로 430년을 살아온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가나안 땅 역시 거짓된 이방의 신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현재라는 시점에서 마음에 항상 하느님께서 유일하신 분이란 사실을 새롭게 다짐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오늘날 종교 다원 주의의 물결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신명4,35)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본문에서 관계 대명사 '아셰르'(asher)는 '그래야(그래서) ~ 하도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즉 '아셰르'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말해주기 위해 쓰인 관계 대명사이다.

한편, '잘되고'로 번역된 '이타브'(itab)의 원형은 '아타브'(yatab)로서 '좋은'이란 뜻의 '토브'(tob)와 어근이 같은 말이며, 거기에 전치사 '레'(le)와 함께 쓰여서 '~에게 잘 되어가다', '~에게 기쁨이 되다'란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주어는 바로 앞에서 다룬 내용 전체, 즉 '모세가 명하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는 행동'이다.

이런 의미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너희와 너희 자손들에게 기쁨이 되고 좋은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과 하느님 백성의 삶의 행복은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결과는 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자신의 복(福)에 관련시키는 자기 중심적인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하느님 중심의 차원 높은 신앙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곤경의 날에 우리는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근심과 곤경 가운데 더욱더 주님께 다가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군중들은 예수님을 자신들 곁에 붙들어 두려고 하였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루카 4,42). 그리고 그분께 매달리고 그분께 손을 대었습니다(루카 6,19 참조).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은 생명을 얻으려는 행동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아시고 반기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그런데 그분의 말씀에는 역설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오히려 그것을 잃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7).

또 당신의 이런 선택을 씨앗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생명을 얻으려면 오히려 생명이 죽음에 이르도록 철저히 경멸해야 한다는 말씀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에게는 정말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환난을 이겨 내고 생명을 얻은 이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묵시12,11).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지만 대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시험(試驗)이 여전히 많은 신앙인에게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곧바로 십자가를 향한 여정을 걸으셨고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그러고는 부활하실 것이라는 당신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복음서는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합니다.

그리스도를 뒤따라 사는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고 부활해야 한다는, 신앙의 여정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살기를 원하는데 죽어야 하는가?’ ‘행복을 원하는데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신자는 고통이 아니라 사랑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고통을 동반하며, 희생을 요구합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이고 선물의 표지입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만이 할 수 있음

 

복음(마태15,21-28)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 마귀가 들렸다는 것은 정신분열, 질환을 뜻하지 않는다. 마귀 들림은 뱀의 선악의 유혹을 먹고(창세3,5) 그 선악의 논리로 세운 율법과 세상 인간들의 계명, 말로 세상의 것, 사람의 일 만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한다.

 

(마르8,33) 33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로마3,19) 19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 그 인간들의 선악의 논리에 하늘의 선이 악을 품고 죽어 생명을 주는 그 진리의 말씀이 대답하실 수 없음이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 길 잃은 양들- 유대인들이 아닌 하느님께서 친히 세상에서 뽑아 선택한 이들이다.

 

(요한17,6)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주님만이 아신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 자기버림, 부인의 자세다. 곧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그 진리를 청함이다.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이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주님은 이 고백을 기다리신 것이다. 하느님께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이다.

 

(코헬3,18-19)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19 사실 인간의 아들들의 운명이나 짐승의 운명이나 매한가지다. 짐승이 죽는 것처럼 인간도 죽으며 모두 같은 목숨을 지녔다. 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모든 것이 허무이기 때문이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자신이 짐승일 뿐임을, 그래서 주인(주님)의 상(식탁, 제단)에서 떨어지는 빵(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음을, 존재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 참으로 큰 것’이며 구마의 힘, 곧 마귀의 거짓 말(靈)이 쫓겨남이다.

 

오늘 본문이 어떤 말씀에서 연결됐는지 봐야 한다.~

(마태15,3.6.8-9)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또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6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9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그래서~

(요한8,43-44) 43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으로 가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들었음이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뱀)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창세3,5-6)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

= 모든 사람(아담)은 뱀의 선악의 유혹을 먹고 하느님처럼 의 삶, 곧 자기의 뜻, 의, 영광을 희망하며 사는, 그것이 본성이 된 ‘마귀 들린 자’로 태어난다. 그래서 코헬렛이 모든 인간은 짐승일 뿐이라 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그것을 깨달아라. 주신 성경이다. 그래서 신앙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본문 28절에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왜? 많은 이들이 자기의 뜻, 욕망,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며 믿는 것이라 하기 때문이다. 곧 세상(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기에 영원한 땅속(地獄)에 갇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고4,4) 4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1요한2,17)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1요한4,1-2) 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죗값으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모든 이들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 평화, 안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고 의탁 하는 삶 또한, 그 구원자를 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 영광 드리는 신앙을 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뜻,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로 죽으셨음은 믿으나, 세상의 평화, 안식, 육신의 건강을 주시는 그리스도라 믿으면 하느님께 속한 영이 아니다. 세상의 말을 따르며 믿는 것이다.

 

(콜로2,8)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영원한 어둠, 땅속을 향하게 하는 인간들의 선악에 의한 신앙이 아닌, 영원한 빛, 하늘에 들어갈 하느님의 말씀, 진리를 깨닫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18주간수요일 복음(마태15,21~28)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3~24)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26~28)

마귀가 들린 딸을 둔 부인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제는 제자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호소한다.

여기서 '돌려 보내십시오'에 해당하는 '아폴뤼손'(apolyson; send ~away)은 고쳐주지 않고 쫓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빨리 고쳐서 보내 버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제야' 혹은 '그러나'라는 접속사 '데'(de)로 시작되는 24절에서 제자들이 고쳐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부하시는 예수님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소리지르다'에 해당하는 '크라제이'(krazei; she keeps crying out)는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서 그 여자가 계속해서 소리질렀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요청을 한 것은 가나안 여자가 불쌍해서가 아니고,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듣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며, 당시 유다 율법주의자들의 반발로 인해 많이 위축되어서 잠시라도 휴식을 하고 싶은데 방해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24절에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쿠'(oiku; of the house) 원형 '오이코스'(oikos)는 일차적으로 '건물'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배타적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다인을 '집밖에 있는 자'와 '집안에 있는 자'라는 상징적 의미로 구별하기 위해 '오이코스'(oikos)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잃은'으로 번역된 '아폴롤로타'(apololota; lost)는 '~로 부터'라는 의미를 지니는 전치사 '아포'(apo)와 '파괴하다'는 뜻을 지닌 '올뤼미'(olly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파괴하다', '죽이다', '멸망하다'는 뜻이 있는 '아폴뤼미'(apollymi)의 완료 분사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의 결과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것을 표현한다.그러니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로부터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잃은 양이었고, 지금도 영적으로 죽어서 잃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잃은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우선적으로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때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에게 요청에 대한 거부의 뜻이 있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여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한 것이다.

한편, 26절에서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각각 '자녀들'과 '강아지들'에 비유되고 있다. '자녀들'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children's)은 '해산하다'(루카2,6)라는 뜻이 있는 '틱토'(tikto)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을 가리키는 매우 친밀감이 느껴지는 용어이다.

반면에 '강아지들'에 해당하는 '퀴나리오이스'(kynariois; to dogs)의 원형 '퀴나리온'(kynarion)은 일반적인 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퀴온'(kyon)의 작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개 가운데 작은 개나 강아지를 뜻하며, 여기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런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나라에 거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안에서 기르는 개라고 할지라도, 자녀들과 동일하게 대우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자녀'와 '강아지'를 대비시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음에 대한 우선권이 유다인에게 있다는 뜻이지, 이방인이 복음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27절에 가나안 여자는 '그렇습니다'로 번역된 긍정과 동의를 나타내는 '나이'(nai; yes; truth)라는 말로써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은 이어지는 또 다른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가나안 여자는 겸손하게 집안에서 기르는 개가 누리는 혜택을 자신도 누릴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그러나'로 번역된 '카이 가르'(kai gar; but even)는 앞선 문맥을 보충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관용적인 표현인데, 뒤이어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말로서, 이방인들 역시 유다인에 이어 하느님의 은총에 동참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다.

당시 유다인이 이방인에 대해 심한 배타적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도10,28), 하느님의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영적 지각을 지니고 있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오 퀴나이, 메갈레 수 헤 피스티스'(O gynai, megale su he pistis; O woman, you have great faith!)가 바로 원문의 내용이다.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대해 너무나 감격한 예수님의 감정이 '오'(O)라는 감탄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크구나'로 번역된 '메갈레'(megale)의 원형 '메가스'(megas)는 영어에서 '큰' 혹은 '백만 배'를 나타내는 접두사 '메가'(mega)의 어원으로서 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위대한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다.

끝으로 이어서 예수님께서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네가 바라는 만큼 네게 이루어질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고, 이것은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비례하는 큰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뜻이 된다.

특히 여기서 '될 것이다'에 해당하는 '게네테토'(genetheto; be it; is granted)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서 단번에 이루어지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라 가나안 여자의 딸은 바로 그 시간에 단번에 고침을 받는다.




 

 

2025년 08월 08일 금요일

[연중 제18주간 금요일(김상우 바오로 신부)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대단한 영광처럼 보일지라도적어도 그에게만은 피하고 싶은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모든 이가 인정하는 영광의 십자가라면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기꺼이 지겠지만속내 모르는 이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는 말 못 할 고통을 낳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주님께 여쭙게 됩니다이것이 제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지그러고는 주님께 용기를 청합니다이 길을 기쁘게 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다른 사람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십자가를 팽개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십자가는 무엇보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입니다다른 이를 의식하는 한 십자가는 빛을 잃고 맙니다.

다른 이가 인정하는 십자가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한낱 자신만의 영광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를 이해하고주님께서 나를 지켜보시듯 말없이 나의 등을 도닥이며 격려해 주는 소중한 벗들을 떠올립니다.

벗들의 십자가를 보며 그들의 외로움과 괴로움을그들의 아름다운 결단을 나 또한 소중히 여기고 보듬으려고 노력합니다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듯이.

저마다 짊어진 십자가는 달라도 서로 이해할 때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내가 나의 십자가로 힘들어하는 바로 그 순간이 어쩌면 나의 십자가와 벗들의 십자가와 주님의 십자가가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시간일 것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세상적인 自我를 버리는 것이 十字架를 지는 삶이다.

 

복음(마태16,24-28)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말씀하신후에~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베드로처럼 사람의 일로 따르지 말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 따라 오라는 말씀이다. 곧 사람의 뜻, 소원을 위한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주님의 새 계약의 십자가로 지고 따르라는 말씀이다. 현실의 내 십자가로 나의 죄성을 보고, 주님의 십자가로 가는 것이다.

 

(히브9,15) 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자신의 뜻, 소원을 위한 첫째 계약의 제사와 윤리의 신앙을 고집하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 곧 하늘의 용서, 의(義), 평화, 안식, 생명을 잃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 살고, 살아 계신 능력의 예수님을 섬기면 죽는다. 그 십자가의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로마6,6) 6 우리는 압니다우리의 옛 인간이(자기 否認으로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하느님의 뜻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버림否認하는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제께서>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면 영적인 자아가 죽고,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면 세상적인 자아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데, 이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기 위해서 세상적인 자아를 버리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하늘의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지고 살았다면 ‘선악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십자가를 지고 살았다면 ‘용서, 자유, 구원의 심판’을 받는다.

 

(에제7,27) 27 임금은 슬퍼하고 제후는 절망을 옷처럼 입으며 이 땅에 사는 백성의 손은 떨리리라나는 그들이 걸어온 길에 따라 그들을 다루고 그들의 판결에 따라 그들에게 판결을 내리리라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묵시20,12) 12 죽은 이들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죽은 이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 책들, 여러 계명, 여러 법, 그 옛 계약의 책으로 ‘심판의 책’이다. 또 다른 하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얻는 생명, ‘구원의 책’이다.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얻는 하늘의 생명, 그 한가지만을 약속하신 한 권의 책이다.(루가24,27 요한5,39 사도28,23 참조) 

그 하나, 한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땅의 목숨을 위한 도덕과 윤리의 여러 계명, 말씀이 적힌(구약46+신약27) 책들로 보면, 가지면 심판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 ‘서 있는 사람’ 하늘을 향해, 곧 하느님의 뜻을 향해서 서 있는 사람은 성경말씀을 통해 말씀을 깨달아 죽기 전부터 하늘나라를 살 수 있다는 말씀이다.

 

(루가17,20-21)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보라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우리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 곧 하느님의 뜻,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이다.(요한1,1-5.9-14참조)

 

(요한1,4-5.14) 4 그분(말씀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세상속에서(가운데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요한3,17-19)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옛 계약의 죄를 대속하실 새 계약(생명의 빛)으로 우리 가운데 보내셨기 때문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말씀새 계약)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사람들은 빛(하늘)보다 어둠(세상)을 더 사랑하였다.

= 성경을 통해 자신의 흙(죄)됨, 어둠임을 깨닫고 스스로 빛 인척 했던 자신을 버리고(否認) 우리가운데 계신 참 빛,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새 계약) 안으로 들어가 하나 되는 것이 용소, 평화,안식, 구원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에게 듣는 마음을 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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