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씨뿌리는 사람릐 비유 (마태13,1-9)

2025. 7. 22. 오후 9: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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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3일 수요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씨뿌리는 사람릐 비유 (마태13,1-9)

   


1독서<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탈출16,1-5.9-15)

1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3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5 엿샛날에는, 그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면, 날마다 모아들이던 것의 갑절이 될 것이다.”

9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주님께서 너희의 불평을 들으셨으니, 그분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하고 말하십시오.”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이 광야 쪽을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화답송>시편 78(77),18-19.23-24.25-26.27-28(24)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시험하며, 욕심대로 먹을 것을 달라 하였네. 하느님을 거슬러 그들은 말하였네. “하느님이신들 광야에다, 상을 차리실 수 있으랴?”

그분은 높은 구름에 명하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어, 만나를 비처럼 내려 그들에게 먹이시고, 하늘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네.

천사들의 빵을 사람이 먹었네. 주님이 양식을 넉넉히 보내셨네. 하늘에서 샛바람 일으키시고, 당신 힘으로 마파람 몰아오셨네.

그들 위에 먼지처럼 고기를, 바다의 모래처럼 날짐승을 내리셨네. 그들 진영 한가운데에, 천막 둘레에 떨어뜨리셨네.

 

복음<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마태13,1-9)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제1독서 (탈출16,1-5. 9-15)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엿샛날에는, 그날 거두어 들인 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면,  날마다 모아들이던 것의 갑절이 될 것이다."  (4-5)

 

'이제 내가'로 번역된 '히느니'(hinni; Behold,I)는 '나를 보라, 내가 이제 중대한 일을 너희 앞에 보일 것이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에 대해 하느님께서 이제 놀라운 방법으로 즉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기적을 통해 그들의 원망을 해결하시겠다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

 

'비처럼 내려줄 터이니'로 번역된 '마므티르'(mamtir)는 '(비를)내리다'(창세2,5; 이사5,6)라는 뜻을 지닌 동사 '마타르'(matar)의 강조 능동형 분사이다.

이처럼 행동의 계속을 나타내는 분사형이 사용됨으로 인해 '계속해서 (비를) 내릴 것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

 

원문은 동사 자체에 '억수같이 쏟아지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하느님께서 양식을 계속적으로 그리고 풍성하게 공급하실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지금 주님께서 원수 이집트를 징벌하시고 그 백성들에게 권능의 은총을 베풀어 노예의 신분에서 구원해 내신 하느님의 손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이 요구하는 양식을 비처럼 충분히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그 백성에 대한 오래 참으심(예레15,15; 로마9,22; 2베드3,9)과 더불어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자비로운 보살핌을 보여주는 것이다(느헤9,15; 시편78,24-25 ; 105,40; 요한6,31.32; 1코린10,3).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로 번역한 '웰라케투 떼바르 욤'(wellaqetu debar yom)에서 '모으다', '거두다'로 번역된 '라케투'(laqetu)의 원형 '라카드'(laqat)는 '모으다'(gather)(창세31,46)라는 뜻으로 광야 지면에 흩어져 있는 만나를 모으라는 말이다.

 

그리고 '떼바르 욤'(debar yom)는 '일'(1열왕15,5), '것'(탈출9,4)등을 뜻하는 명사 '떼바르'(debar)와 '낮'(창세8,22), ''(창세1,5)를 뜻하는 명사 '욤'(yom)이 함께 쓰여 '날의 것' 즉 '하루의 것'이라는 뜻이며, 이것은 곧 '하루 동안 먹을 분량의 양식'을 의미한다.

 

'시험해 보겠다'라고 번역된 '아낫쎈누'(anassennu; I may prove them)는 '시험하다'(창세22,1; 1열왕10,1)라는 뜻을 지닌 '나싸'(nassa)의 강조 능동형 1인칭 단수 미완료형에 대명사 접미어가 불은 형태로 '내가 그를(그 백성을)시험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시험하다'로 번역되는 '나싸'는 '유혹하다'라는 의미보다는 '입증하다'(prove), '검증하다'(test)라는 의미를 지니는 동사인데, 여기처럼 강조형으로 사용될 때는 대개 어려운 상황을 통해 그 대상의 진가를 입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 구절은 매일 하루 분량의 양식을 거두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고 쉽지만은 않은 일임을 암시한다.

 

이것은 양식을 거두는 노동이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 분량 이상의 식량을 거두고자 하는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해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하루 분량을 거둔다 하더라도, 다음 날을 위해 그것은 남기거나(탈출16,19.20) 엿샛날에 안식일을 예비해서 이틀 분량을 거두지 못해서 안식일을 어기는(탈출16,27)등 만나와 관련된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여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입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 거두어 들인 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면'

 

'장만해 보면'으로 번역된 '웨헤키누'(wehekinu)는 '세우다'(잠언3,19), '견고케하다', '존속하다' (시편89,37)란 뜻의 동사 '쿤'(kun)의 강조 능동형에 접속사 '와우'(wau)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 이렇게 강조형으로 사용될 때는 '준비하다', '장만하다'(창세43,16; 시편147,8)라는 뜻을 지니게 된다.

 

이처럼 엿샛날(제 육일)에 거둔 것을 미리 장만해야 했던 이유는 그 다음 날이 안식일이므로 만나를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안식일에 대한 규정이 율법으로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6일간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신 하느님의 창조의 원리와 질서에 의해(창세2,1-3) 하느님의 경건한 백성들은 제 7일에 안식하는 규정을 지켜왔을 것이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출애굽하며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공식 출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에 관한 규정을 가시화하고 계신 것이다.

 

이처럼 점진적으로 계시가 발전되면서 마침내 탈출기 20장 8-11절에서 안식일 규정이 십계명으로 성문화 된다.

 

'날마다 모아 들이던 것의 갑절이 될 것이다'  (5)

 

'될 것이다'로 번역된 '웨하야'(wehaya; and it shall be)에서 '존재하다', '있다'는 뜻의 동사 '하야'(haya)가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비록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틀림없이 갑절이 될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렇게 갑절이 되는 원인이 엿샛날에 거두는 양을 배로 늘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평상시와 다름없이 거두었는데 결과적으로 갑절의 양이 되었는지 탈출기 16장 5절의 원문상으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엿샛날에 거둔 만나가 그 다음 날이 되어도 다른 때와는 달리 전혀 상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일의 배후에는 하느님의 초자연적 역사하심이 있었다.

 

"엿샛날에는 한 사람에 두 오메르씩, 양식을 갑절로 거두어들였다." (탈출16,22)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13-15)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진영 위로 갑자기 올라오는 메추라기 떼의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더우기 그 메추라기 떼의 규모가 '진영 이쪽과 저쪽으로 하룻길 되는 너비로 떨어뜨려, 땅 위에 두 암마 가량(약 90cm) 쌓이게 하며'(민수11,31) 엄청난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광경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메추라기'를 뜻하는 '셀라웨'(sellawe; the quail)는 짧은 날개와 작고 둥근 머리와 통통한 몸집을 가진 '꿩'과의 철새이다.

이 메추라기는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봄에는 아프리카에서 떼를 지어 북쪽으로 날아왔다가 가을쯤 아바리아와 시리아 쪽으로 이동해 겨울에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간다.

 

이 메추라기 떼가 이스라엘 진영에 내린 것은 단순히 철새 이동에 의한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고, 마치 이집트에 메뚜기 재앙을 몰고 오신 것처럼, 하느님 당신 자신의 초자연적 권능으로 바람을 불러 일으키시어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오신 것이다(민수11,31).

 

그런데 이 메추라기는 40년간 내렸던 만나(탈출16,35)와는 달리 1개월 동안만 내려졌다(민수11,21).

 

'진영 둘레에'로 번역된 '싸비브 람마하네'(sabib lammahane)는 '그 진을 향하여 둘레에'라는 뜻이다.

 

'싸비브'(sabib)는 원래 '~둘레에'(round about)라는 뜻이고, '람마하네'는 '진'을 뜻하는 명사 '마하네'(mahane) '~쪽으로', '~을 향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레'(le)가 결합한 것으로, 진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이슬이 진 둘레에 내렸다는 말이다.

 

메추라기가 진 안에 덮인 것과는 달리만나가 이처럼 진 둘레에 내린 것은 사람의 발에 밟혀서 쓸모없게 되는 것을 미리 방지하신 하느님의 세심한 배려가 있는 것이다.

또한 진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내렸다는 것은 만나를 거둘 때 각 진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깝고 편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연중 제16주간 수요일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의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닿을 수 있는 것을 소재로 삼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주된 활동 무대였던 갈릴래아 호수와 그 주변 지역을 생각하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비유는 이렇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연결시킵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경험으로 하늘나라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갑니다이와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로 가십니다.

군중의 눈에는 집에서 나와 그들에게 가시는 예수님과씨를 뿌리러 나서는 사람이 똑같게 보였을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말씀은 씨처럼 모든 사람에게 뿌려집니다.

이미 선택된 누군가에게만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뿌려집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효과는 크게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는 세 부류의 사람과상상을 넘어서는 많은 열매를 맺는 한 부류를 예로 드십니다.

마치 모든 이에게 백 배예순 배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오 복음서 저자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귀가 있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이해하는 사람입니다더 나아가 그것을 삶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삶으로 옮길 때 하늘나라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밭이 스스로 돌을 걸러내고가시를 뽑아 좋은 땅이 될 수 없지 않는가?.

 

 복음(마태13,1-9)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 하늘에서 나와 땅(세상)으로 오심을 다시 보여 주심이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 완성되지 않은 교회(敎會)의 모습이다. 곧 앞12장에서 예수님 밖에 서 있는, 분리(分離)된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되지 못한 모습인 것이다. 예수님과 분리된 모습으로 남으면 안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구원(救援)의 복음(福音)인 씨, 말씀을(마르4,13) 밭(세상)으로 뿌리시러(선포) 나가셨다. 곧 창조 사흗날에 땅을 위한 씨(제라-후손)의 희생의 죽음이며, 원시(元始) 복음(福音)인(창3,15) 여자(땅-죄인)를 살리는 여자의 후손(씨)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창세1,11)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땅을 스스로 절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그래서 땅을 위해 씨가 들어가 썩어(죽어) 맺은 열매다. 곧 땅(흙)의 존재들의 구원을 위한 약속된 후손(後孫),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다.

 

(마태12,40)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갈라3,16) 16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그런데 많은 사람을 뜻하는 후손들에게가 아니라한 사람을 뜻하는 너의 후손에게라고 하셨습니다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래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구원, 생명의 길, 진리(眞理)이신 것이다.(요한14,6참조) 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구원의 복음말씀이다.

 

그가 씨(말씀)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파라호오도스)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다.(다음19절에서) 그리고 (파라호오도스-길가길옆) (파라토마이-범죄곧 하늘의 대속그 진리의 길에서 벗어난 땅인간들의 길인간들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떨어진 것이다그래서 새(사탄)가 하늘의 의(), 생명을 뺏어버린 것이다.(마르4,15) 그 상태가 범죄인 돌밭가시덤불이 가득한 마음인 것이다.

성경은 모든 밭(사람)이 그 쓸모없는 밭이 되었다고 한다(로마3,10-16참조)

 

(로마3,17.20)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 믿음(뿌리)이 없어서’ 라고 하신다.(다음 21절) 흙에는 하느님의 생명력, 숨이 있다.(창세2,7) rthe Tl(제라-후손)인 그리스도의 썩어짐으로 얻는 생명을 깨닫게 되면 하느님께서(하늘) 내리 쬐는 시련, 불평, 불만을 하지 않고, 그 시련이 교육, 훈육이 되어 하늘의 평화, 거룩, 구원의 의(義)의 열매를 맺게 하심에 감사(感謝)할 수 있게 된다.(히브12,5-11참조)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 씨,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렸다.(뒤 22절) 곧 말씀 안에 사람들의 생명의 빛을 막은 것이다.(요한1,4) 하느님의 진리(眞理)의 말씀을 사람의 선악(善惡)의 말로 받아먹었기 때문이다.

 

(창세3,17-18)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善惡果)를 따 먹었으니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 그러니까 선악의 도덕과 윤리의 말씀을 먹고 내어 놓은 인간들의 모든 과학, 문명, 경제발전의 소산들이 모두 가시와 엉겅퀴인 것이다. 구원의 힘인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사7,23-25) 23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값이 은전 천 닢이나 되는 포도나무 천 그루가 있는 곳이 모두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덮이리라. 24 온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여 살과 활을 가지고서야 그리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25 괭이로 일구어 오던 모든 산에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서워 너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다만 소나 먹이고 양이나 밟고 다니는 곳이 되고 말리라.

 

(로마8,22)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어떤 것은 백 배어떤 것은 예순 배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좋은 땅,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다.(다음23절)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 좋은 땅이다. 그러면 말씀이 그의 안에서 활동하셔서 열매(믿음)를 맺으신다.(1테살2,23참조)

 

(로마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은혜)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1베드1,23)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 말씀을 깨달아, 군중(群衆)에서 주님의 참 가족(家族)으로 남아야한다.

 

(로마9,25-27) 25 이는 바로 호세아서에서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자(돌밭가시엉겅퀴)들을 내 백성’(좋은 땅)이라 부르고 사랑받지 못한 여인(돌밭)을 사랑받는 여인’(좋은 땅)이라 부르리라. 26 그들에게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 하던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27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군중같다 하여도 남은 자(깨달은 좋은 땅)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의 대속씨의 죽음그 생명의 말씀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16주간 수요일복음(마태13,1~9)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았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3ㄴ~8) 

 

마태오 복음 13장 1~52절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7가지 비유'의 말씀이며,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스런 성격을 매우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등을 말씀하신 이유 중에 하나는 말씀의 씨를 뿌려도 바리사인들과 같이 완고하고 사악한 무리들의 마음은 말씀을 거부함으로인해 결실을 하지 못하는 밭인 반면에, 말씀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듣는 제자들과 같은 무리들의 마음은 결실을 맺는 밭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비유'로 번역된 '파라볼라이스' (parabolais)의 원형 '파라볼레'(parabole)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음으로써 비교한다는 뜻을 지닌 명사이다.

 

즉 '파라볼레'는 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례에 빗대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야기 진행 방법이다.

 

'씨뿌리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스페이론'(ho speiron; a sower)에서 '씨뿌리는'으로 번역된 '스페이론'(speiron)은 '씨를 뿌리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페이로'(speiro)의 현재분사로서 앞에 있는 관사 '호'(ho)와 함께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쓰였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사람'(파종하는 자) 즉 농부(a farmer)를 가리킨다.

 

농경사회에서 밭에 파종하는 자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인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농경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 전파와 그것의 결실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키고, 씨 뿌리는 네가지 밭은 복음을 전해 받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네가지 밭은 별개의 각각의 밭이 아니라 한 밭에 있는 다양한 땅의 상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원래 팔레스티나에서는 밭을 경작하기 전에 씨 뿌리는 풍습이 있었으며, 씨가 떨어지는 밭은 대부분 돌이나 가시도 섞여 있었고, 잡초도 어느 정도 나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자신이 뿌리는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씨앗을 이곳 저곳에 뿌린다.

 

그러던 중 씨앗의 일부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길에'에 해당하는 '파라 텐 호돈'(para ten hodon; along the path)인데, 씨앗의 일부가 밭 사이의 길 내지는 밭을 가로지르는 딱딱한 길을 따라 뿌려진다.

 

말하자면, 여기서 '길'이란 밭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이나 농부들이 밭일을 하기 위해 자주 걸으면서 다져져 길과 같이 된 땅을 말한다.

 

그래서 밭 사이에 나 있는 다소 딱딱한 좁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땅을 뚫고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의 기대와는 달리 결실은 커녕, 뿌리 한 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하고, 그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타 페테이나'; ta peteina; the birds)의 눈에 띄게 되고, 결국 그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새들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는 악한 자를 상징한다(마태13,19).

 

또한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은 '흙으로 얇게 덮인 바위가 많은 밭'이라는 말인데, 밖으로 싹이 돋지만, 곧바로 무섭게 뜨거운 태양이 솟아올라 그 열기와 빛으로 말미암아 메말라 죽게 된다.

 

이 비유에서 '솟아오르는 해'는 '환난이나 박해'로 상징되고 있다(마태13,21).

 

우리의 내면이 마치 돌밭과 같이 깨어지지 않는 완고한 자아로 가득 차 있으면, '환난이나 박해'가 신앙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가시덤불'로 번역된 '아칸타스'(akanthas; thorns) '가시'나 '가시덤불'을 뜻하는 명사 '아칸타'(akantha)의 목적격 복수형으로서 '가시들' 내지 '가시덤불'을 의미한다.

 

이 '가시덤불'위에 떨어진 씨앗은 그보다 먼저 높이 자라버린 가시에 찔리고 그 그늘에 막혀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내면을 기도와 말씀과 성체로 일구고 돌보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내면은 이미 선점하고 있는 가시와 같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무성해질 것이다(마태13,22).

 

그래서 그 마음에서 복음의 씨앗은 자라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좋은 땅'에 해당하는 '에피 텐 겐 텐 칼렌'(epi ten gen ten kalen; on good soil; into good ground)에서, '좋은'으로 번역된 '칼렌'(kelen)의 원형 '칼로스'(kalos)는 기타 다른 것보다 더 우수하고 좋은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씨앗이 자라기에 '적합하고'(suitable),'쓸모있는'(useful) 땅을 말한다.

 

이 땅은 위의 세 가지 종류의 땅보다 훨씬 우수하고 좋은 땅으로서 씨앗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식물 경작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한다.

 

여기서 '어떤 것'에 해당하는 '호'(ho; some)는 지시 대명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호스'(hos)의 주격 중성 단수로서, '어떤 것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은 각각의 씨앗들이 좋은 땅에서 나름대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또한 씨앗들의 조건이 동일한 땅에 떨어져도, 그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質)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씨앗이 아무리 부실해도 열매맺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과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0250723일 수요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의 여러 형태 가운데에서 비유를 선호하셨습니다.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약 3분의 1 정도입니다.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간결하고 생생한 이야기로 꾸며집니다.

씨 뿌리는 이야기, 물고기를 잡아서 고르는 어부 이야기, 포도원의 일꾼들 이야기, 진주 상인 이야기, 잃어버린 양 이야기, 누룩 이야기 등 갈릴래아의 민중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하시어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소재들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농부, 어부, 일용직 노동자, 상인, 목자, 심지어 당대 가르침에서 소외된 여자들도 당신 말씀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친밀한 소재이기에 청중들을 생생하게 끌어들였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소외감이나 열등감 없이 하느님과 그분 나라의 현실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비유가 보여 주는 현실을 추구하며, 그것을 향하여 나아갈 결심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본질적으로 비유는 듣는 사람의 반감을 극복하고자 사용되었던 문답식 형태였기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 율법 학자들, 사제들 같은 당신의 반대자들에게서도 공감을 끌어내고자 비유를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방어하는 데 급급하시지 않고, 직선적이지 않게, 마음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존재 양식과 행동 양식을 알려 주시고 그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판단하여(마태 18,12; 21,28 참조) 결론을 끌어낼 수 있게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려 깊게 사람을 이끄는 방법을 알고 계시면서 그 누구도 복음의 대상에서 제외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씨 뿌리는 이처럼 모든 마음에 복음의 씨를 뿌리십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것

 

(마태13,1-9)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 예수님은 배에 계시고, 군중은 예수님 밖에서 서있다. 어제 묵상한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모습이다. 곧 선악의 내 생각, 지혜를 부인하지 못해(버리지 못해) 예수님과 분리된 모습이다. 악을 대속하시고 용서, 생명을 주신 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진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모습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씨는 말씀이며, 씨를 뿌리시는 분은 그리스도시다.(마태13,38참조)

 

(복음 환호송씨앗은 하느님의 말씀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사탄)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 씨(말씀)를 길, 곧 사람의 길(뜻)을 위한 말씀으로 받으면, 하느님의 길(뜻)인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사탄의 거짓 가르침으로 빼앗기게 된다.(마르4,1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 자신이 흙의 먼지일 뿐임을 모르고 아담 같이 자신의 눈의 욕망을 위한 그 고집, 돌 같은 마음으로 인간의 말, 계명으로 받으면 말씀이 일을 못하신다.(창세3,5-7참조)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 가시덤불-세상 것들에 대한 걱정이다. 말씀을 인간의 길(뜻, 욕망)을 위한 윤리로 받으면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고, 온갖 근심 걱정으로 말씀이 주시는 하늘의 평화,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

 

(요한14,27)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마태12,8)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어떤 것은 백 배어떤 것은 예순 배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하느님의 뜻을 통찰하고 가르치시는 성령의 귀로, 곧 하느님의 지혜를 성령께 의탁해서 들으라는 말씀이다. 인간의 귀, 지혜로 듣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좋은 땅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분의 뜻으로 받는 것이고, 그러면 말씀이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립2,13)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에페3,20)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1코린1,30) 30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요한15,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백배, 예순배, 서른배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오늘독서 중에서(탈출16,12-15)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저녁은 구약의 율법으로 육을 위한 고기 음식인 것이고, 아침은 신약의 말씀으로 육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는 진리, 새 계약을 뜻한다.

구약, 율법의 제사와 윤리로 육을 위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새(사탄)에게 아침양식, 곧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의 말씀(씨)을 빼앗긴다. 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새 계약의 말씀 양식은 우리 육적 인간들에게는 입에 맞지 않아 쉽게 빼앗기기 쉽다.

 

(갈라5,17)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말씀이 우리의 소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시니 싫다. 맛이 없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ㄱ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 성체(그리스도의 몸, 새 계약의 말씀)를 비유한 만나의 뜻이 “이게 무엇이냐?”라는 뜻이다. 곧 말씀(성체)를 먹었다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면, “이게 뭐야?”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핍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입맛(뜻)에 맞지 않아 “이게 뭐야?”하는 것이 하늘의 생명을 주는 참 양식임을 놓치면 안 된다.

 

화답송 (시편 78,24) ◎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15ㄴ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 하느님께서 씨를, 곧 씨의 희생, 대속, 그 죽음을 진리로, 양식으로 주셨다.

 

(창세1,29)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 씨는 말씀이다. 그리고 말씀은 우리의 생명,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요한1,1-4.14참조) 곧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하늘의 용서, 구원을 주시는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용서, 생명, 구원의 양식인 것이다. (루가2,7.10-12참조) 예수께서 먹히시고, 예수를 먹어, 한 몸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교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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