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15일 화요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회개하여라 (마태11,20-24)
제1독서<물에서 건져 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탈출2,1-15ㄴ)
1 레위 집안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
3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4 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5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여종 하나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6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7 그러자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
8 파라오의 딸이 “그래, 가거라.” 하자, 그 처녀가 가서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9 파라오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였다.
10 아이가 자라자 그 여인은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11 모세가 자란 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가, 그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12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서 모래 속에 묻어 감추었다.
13 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자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모세는 “이 일이 정말 탄로 나고야 말았구나.” 하면서 두려워하였다.
15 파라오는 그 일을 전해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였다.
<화답송>시편69,3.14.30-31.33-34(◎33) ◎ 가난한 이들아, 하느님을 찾아라.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발 디딜 데 없나이다. 깊은 물속에 잠겨, 급물살이 저를 덮치나이다. ◎
○ 주님,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은총의 때이옵니다. 하느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은 참된 구원이시옵니다. ◎
○ 가련한 저는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하느님, 저를 도우시어 보호하소서. 하느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감사 노래로 그분을 기리리라. ◎
○ 가난한 이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
복음<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또는,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에페 3,14-19)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제1독서 (탈출2,1-15ㄴ)
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자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2,13-14ㄱ)
'잘못한 사람'에 해당하는 '라샤'(rasha)는 '죄인', '악인'(창세18,23), '살인자'(민수35,31), '악인', '악을 행하는 자'(시편75,5; 잠언24,19)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단순히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악한 행동을 한 '악인'을 일컫는 말이다.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동족'에 해당하는 '레아'(rea)는 '친구'(창세38,12; 신명13,6), '여인', '연인'(예레3,1.20; 호세3,1)으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서 '매우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모세가 서로 싸우고 있던 두 히브리인들에게 '본토인'(레위18,26)이라는 뜻의 '에즈라'(ezra)라는 말 대신에 특별히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같은 동포, 동족간의 관계가 '친구'와 '연인'처럼 친밀한 관계이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세는 지금까지 왕궁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이 당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히브리인들에게 뜨거운 민족애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탈출기 2장 9절에 나오는대로, 모세의 어머니 요케벳(민수26,59; 남편은 아므람 :1역대6,3; 23,13)이 단순히 수유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유아 교육까지도 맡게 되었고, 모세가 '주님 신앙'을 갖게 되고 40년에 가까운 궁중생활에서도 히브리인으로서의 민족 의식을 잃지 않았던 것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요케벳을 통한 히브리식 교육의 덕택이라고 본다.
히브리인들은 보통 3살 정도에서 젖을 떼었으므로(창세21,8; 1사무1,22-24 ; 2역대31,16) 탈출기 2장 10절에서 아이가 자랐다는 말은 젖을 먹지 않아도 될 만한 나이인 서너 살이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세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이집트의 궁전으로 들어간 때는 그의 나이가 3,4세 정도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3-4년을 어머니의 젖을 먹고 양육되었으니, 모세의 피속엔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는 것이고, 적어도 어머니의 무릎팍에서 전수된 성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과 선민의식과 민족애는 40년간의 이집트 궁중에서의 고등 교육에서도 지워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집트 궁중에서 왕자 교육을 받으면서 더욱 더 자신의 민족에 대한 의식과 사랑이 확고부동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시각으로 자신의 동족(동포)들을 바라보는데, 같은 혈통을 가지고 동일하게 이집트인으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주님 신앙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해하며 사랑하기는 커녕 서로 때리고 하는 모습을 보자 모세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여기서 '지도자'로 번역된 '사르'(sar)는 '다스리다', '주관하다'(에스텔1,22; 잠언8,16)라는 뜻을 지닌 '사라르'(sarar)에서 유래한 단어로, '우두머리', '주관자'(잠언28,2), '관리', '사람'(1열왕5,16)이라는 뜻인데, 탈출기 1장 11절에 나오는 '감독'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 히브리 사람은 자신들에게 고역을 부과하기 위해서 이집트인들이 세운 관리 제도를 기준으로 해서 모세가 자신들의 일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도무지 없음을 말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집트 왕자의 신분이었던 모세는 히브리인들의 눈에 동포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기 혼자 궁중에서 호의호식하는 민족 배반자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결국 히브리인의 이러한 반감어린 말로 인해, 같은 동족으로서 동족의 문제에 과감히 끼어든 모세의 동포애는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리고 '판관'으로 번역된 '쇼페트'(shophet)는 '판가름하다', '판결하다'(민수35,24) 뿐만 아니라 '징벌하다', '심판하다'(2역대20,12)는 의미도 있는 '샤파트'(shaphat)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판장', '판관'(신명1,16)이란 뜻만이 아니라 상벌을 시행하는 '관원', '통치자'(시편2,10), '방백', '판관'(1사무7,16)의 뜻도 있다.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방법이 아닌 모세 자신의 방법과 자기식의 의(義)로 모세가 스스로 자기 힘으로 동족 이스라엘을 구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것이 바로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웠다는 말이요?' 의 내면적 뜻이다.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고을은 코라진과 벳사이다입니다.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는 것’은 구약 시대부터 악행에 대한 참회와 회개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행위입니다.
이스라엘 북쪽 해안에 자리한 티로와 시돈은 교역으로 큰 경제 발전을 이룬 이방인들의 도시입니다.
성경에서 티로와 시돈은 자주 나오는데, 하느님을 거부한 이방인의 세상을 대표합니다(이사 23장 참조).
회개하지 않는 고을은 이제 이방인의 도시와 비교됩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보다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한 비판입니다.
오늘 복음은 ‘기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기적이라는 말은 ‘힘’이나 ‘능력’을 뜻합니다.
일상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현상이자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의 힘이 세상의 순리를 넘어선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기적은 그 사람의 능력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기적의 다른 면을 소개합니다. 복음서에서 기적은 회개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면서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뛰어난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기적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기적 자체에만 관심을 둔다면 복음이 말하는 기적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합니다.
기적이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사건이라고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기적의 참뜻을 깨닫고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으면 카파르나움이 된다
(마태11,5. 20-24)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 위에 여섯(육체-땅)의 질병은 하늘(영)의 복음을 들음으로 치유(용서)되는 것임을 예고하신 것.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기적으로는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니 회개도 못하는 것. 그러나 성경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한다.
(요한2,23-24) 23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 그들의 속마음, 속셈을 아시는 것,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을 위해, 자신의 원함을 위해 말씀을 믿는 그 속셈을 아신 것.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ㄱ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 그래서 자신이 드리는 제사, 곧 자신의 열심, 희생 그 의로움의 성전(신앙), 그 자기 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르려는 이는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말씀.
하느님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그 의로움으로 들어가는 곳.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느님나라가 왔다고 선포하신 곳이며(마태4,13~)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병자가 없었는데 말씀으로 병자를 치유한 곳이며(마태8,5~) 더러운 영을 예수님 당신의 말씀으로 쫓아내신 곳이며(마르1,26)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시며 그 용서의 권한(말씀)이 당신께 있음을 보여주신 곳이다.(마르2,9)
그런데도 믿지 않으니~
23ㄴ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아람(아시리아)과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를 침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임금과 백성들의 마음이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 듯 떨자.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사7,4-9) 4 ‘진정하고 안심 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 나무가 흔들릴 만큼 큰 두려움에 쌓인 이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 말씀은 ‘無’에서 ‘有’를 창조하신 전지전능의 말씀이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8 아람의 우두머리는 다마스쿠스요 다마스쿠스의 우두머리는 르친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순다섯 해만 있으면 에프라임은 무너져 한 민족으로 남아 있지 못하리라. 9 에프라임의 우두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우두머리는 르말야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 그들의 우두머리는 인간이요 우상일 뿐이나 남 유다의 우두머리는 전능하신 약속의 하느님이시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것.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약속을 의지하는 것이다.
내가 드리는 제사, 매일 드리는 기도의 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약속)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히브11,1)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인 것,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인 것. 내가 원하는 것, 곧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신앙이 아닌 것이다.
(로마8,24-26)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 *인내(휘포모네)- 경험이라는 뜻이 포함된 *견딤. 그 인내, 견딤을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하는 것,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 천주의 성령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들을 위해 간구해 주소서~아멘.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11,20-24)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24)
카파르나움(gapernaum)은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마태4,13), 특히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베푼 곳이었다(마태8,5~12; 14~17; 9,1~8).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많이 체험하고도 완고하고 사악하여 그들의 교만이 하늘에 닿았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심판을 선언하셨다.
여기서 '아니'(not)라는 뜻을 지닌 부정(否定) 불변사 '메'(me)는 부정적인 대답이 예상되는 질문에 쓰인다.
이런 원어의 뉘앙스를 살려 해석하면,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겠느냐? 그러나 결코 높아지지 못할 것이다'라는 뜻이 된다. 즉 카파르나움이 하늘에까지 높아질 수 없음을 반어법적으로 강조해 주는 것이다.
특히 이 구절은 구약의 이사야서 14장 13절과 14절에 나오는 '나는 하늘로 오르리라. 하느님의 별들 위로 나의 왕좌를 세우고 북녘 끝 신들의 모임이 있는 산 위에 좌정하겠다. 나는 구름 꼭대기로 올라가서 산 위에 좌정하리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이 구절은 역사상 바빌론을 가리키며, 영적으로는 사탄의 교만을 나타낸다.
당시 카파르나움의 교만함이 역사상 대제국 바빌론의 교만과 영적으로는 사탄의 교만에까지 비교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11장 23절의 후반부 역시 하늘까지 교만했다가 저승으로 떨어졌던 사탄의 세력에 대한 이사야서 14장 12~13절의 묘사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저승'에 해당하는 '하두'(hadou; hell; the depths)의 원형 '하데스'(hades)는 '보다'(to see)라는 뜻을 가진 '에이도'(eido)에 부정 접두어 '아'(a)가 붙어 보이지 않는(not to be seen) '지하의 깊은 세계'라는 뜻을 가진다.
신약에서 '저승'은 무신론자들이 벌을 받는 장소로 여겨졌다. 특히 마태오 복음 11장 23절과 24절의 문맥을 볼 때, '저승'은 '소돔'(sodom)에 비유된다.
성경은 소돔(sodom)이 하늘의 유황불이 내려 멸망했다고 말한다(창세19,1). 그런데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소돔 부근의 아스팔트(역청) 구덩이(창세14,10)이 있어 지진에 의해 땅이 함몰했고, 석유와 가스의 폭발 때문에 불바다가 되어 사해 속으로 사라졌다고 본다.
마치 땅이 입을 벌려 코라에게 딸리 모든 사람과 모든 재산을 삼켜 버렸으므로 그들이 저승에 빠졌던 것처럼(민수16,31~33), 소돔도 땅속으로 꺼져들어가 멸망했던 것이다.
실제로 소돔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해 저지대에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중해보다 해발 392m가 더 낮은 지중해의 해수면 아래에 잠기게 된 소돔은 지구상의 저승과 같은 곳이다.
그러니까 마태오 복음 11장 23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하고 사악한 죄를 저지른 카파르나움이야말로 지상의 저승인 소돔보다 더 깊은 저승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엄정한 심판의 선언이 담겨져 있다.
한편 마태오 복음 11장 24절의 '견디다'는 뜻으로 번역된 '아네크토테론'(anektoteron; more tolarable; more bearable)은 '지속할 수 있는', '참을 수 있는'이란 뜻을 가진 '아네크토스'(anektos)의 비교급이다.
이러한 비교급의 뉘앙스를 가지고 다시 번역하면, '소돔 땅의 사람들이 카파르나움 사람들보다 심판을 더 잘 견디고, 더 잘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심판에도 등급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본문은 심판의 차별성에 강조점이 있다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카파르나움 사람들의 죄가 참으로 크며, 심판 날에는 반드시 처벌받게 될 것이라는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025년 07월 15일 화요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카파르나움은 예수님 활동의 거점입니다.
코라진은 카파르나움에서 북쪽으로 삼 킬로미터 떨어진 아주 가까운 도시이고 벳사이다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필립보의 고향입니다.
이 세 도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과 활동을 아주 가까이에서 자주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꾸짖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에게 하신 것처럼 먼저 사랑의 표징으로 치유의 기적을 이 고을 사람들에게 베푸셨고, 그들은 기쁨과 해방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면서 자기에게만 머물러 있다면, 이는 하느님 없는 삶, 죄의 삶으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불행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꾸짖으신 것입니다.
단죄와 저주는 내치는 행위이지만, 꾸짖음은 행동을 고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불행하여라.”(마태 11,21)라고 하실 때 사용된 낱말은 장례식 때 슬픔과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는 낱말입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은 죽음의 상태이기에, 예수님께서는 대단히 슬프고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11,23)라는 말씀에는 마치 떼쓰고 고집부리는 아이를 무섭게 겁주는 듯한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잘못된 고집을 버리기를 바라서 엄하게 말을 하지만 실제로 그대로 하려고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바라봅시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내 罪로 하늘이 대신 죽어 내가 살아나는 기적보다 더 큰 奇蹟이 있는가?
복음(마태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기적(奇蹟)을 믿지 않아서 가 아니라 회개(悔改)하지 않아서 꾸짖으신 것이다. 기적의 의미, 곧 더러운 영(마귀, 악령)들의 거짓말, 거짓 가르침 때문이다.
죽은 이,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을 고치시고(용서), 살리시기(구원)위해 그들의 모든 죄악(罪惡)을 짊어지시고 없애신 그 하느님의 뜻은 깨닫지 못하고, 기적을 일으키신 능력(能力)의 예수님을 따르며 자신들의 뜻, 소원을 이루려 한다면 죄(罪)다. *죄(罪 하마르티아- 과냑을 벗어나다)
그 속셈으로 기적(奇蹟), 능력(能力)의 예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이 죄(罪)다. 그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잘못 된 길, 구원의 길을 잃어버린 그 길에서 돌아 서서 하느님의 뜻, 길(예수)을 믿고 따르는 것, 회개다. *회개(悔改 메타노아-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
(이사53,6)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마태8,16-17)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 이보다 더 큰 기적(奇蹟)이 어디 있겠는가?
21ㄱ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 이곳 말고 성경(聖經) 어디에도 ‘코라진’과 ‘벳사이다’에 대해서 언급(言及)하지 않는다. 왜? ‘코라진, 벳사이다’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께 짊어지게 하심으로 용서(容恕), 구원(救援)하신 그 하느님의 은혜(恩惠)를 모르는 우리 모든 죄인(罪人)을 모형(模型)한 것이기 때문이다.
21ㄴ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티로와 시돈의 잘못은 무엇인가?
(요엘4,5-6) 5 너희는 나의 은과 금을 앗아 가고 나의 값진 보물들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다. 6 너희는 유다의 자손들과 예루살렘의 자손들을 그리스인(세상)들에게 팔아넘겨 제고장에서 멀리 끌려가게 하였다.
= 하느님의 값진 보물, 곧 십자나무를 통한 구원의 계명 말씀 대신,(탈출15,25-26 골로2,3 참조) 인간들의 말, 도덕과 윤리의 법으로 전(傳)해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세상의 종(從)이 되게 한 죄(罪)다.
(필리3,18-19) 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피의 새 계약)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카파르나움의 뜻을 다시 기억하자. *카파르나움- 나를 위한 고을, 집. 곧 나를 위한 성전(聖殿)이다. 카파르나움은 하느님의 뜻, 말씀대신 인간의 힘, 지혜(知慧)로 하늘에 오르겠다고 열심을 부렸던, 그래서 하느님께서 흩으셨던 바벨탑이다. 그 인간의 열심, 의(義)로는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창세11,3-4) 3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 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 4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 주님의 뜻, 이름 대신 인간의 이름으로 하늘에 이르겠다는 것이 죽음으로 이끄는 율법주의, 유대주의, 카파르나움이다.
소돔 땅-
(창세13,10) 10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보니,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 하느님의 눈(뜻)이 아닌, 인간의 눈(뜻)으로 보았기에 가장 힘이 세었던 이집트(세상)를 하느님의 나라와 같다고 잘못 생각한 롯의 소돔이다.
그러니까 기적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새 계약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여 살아온, 그 자신의 길을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돌아와 그리스도와 짝하지 않으면 심판(審判)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기적(奇蹟) 안에 숨겨진 구원의 의미를 깨닫고 돌아와야 하는 이유(理由)’다. *오늘 복음(福音)의 핵심(核心)이다.
* 카파르나움, 곧 자신의 이름(뜻)을 위한 신앙을 살고 있다면 티로와 시돈, 그리고 소돔의 심판(審判)을 받는다는 것이다. 제사(祭祀) 열심히 드리며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착하게 산, 그 자기의 의(義), 이름이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예수님의 의(義), 이름을 모독(冒瀆)한 죄(罪)로 ‘하느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이름’이라는 것이다.(로마10,1-3참조)
(요한14,14. 16,24) 14,14 “너희가 내 이름(뜻)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6,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뜻)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은혜이신 천주의 성령님!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마음이 완고(完固)해질 뿐,(마르6,52) 용서, 구원인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니 저희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듣는 마음을 주시어 보이는 현상들 안에 하느님의 뜻이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