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09일 수요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제자 파견(派遣) (마태10,1-7)
제1독서<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창세41,55-57; 42,5-7ㄴ.17-24ㄱ)
55 이집트 온 땅에 기근이 들자, 백성이 파라오에게 빵을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러자 파라오는 모든 이집트인에게 말하였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56 기근이 온 땅에 퍼지자, 요셉은 곡식 창고를 모두 열고 이집트인들에게 곡식을 팔았다. 이집트 땅에 기근이 심하였지만,
57 온 세상은 요셉에게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몰려들었다. 온 세상에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42,5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가는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6 그때 요셉은 그 나라의 통치자였다. 그 나라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파는 이도 그였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그에게 절하였다.
7 요셉은 형들을 보자 곧 알아보았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며 그들에게 매몰차게 말하면서 물었다.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17 그러고 나서 그들을 사흘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
18 사흘째 되던 날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살려거든 이렇게 하여라. 나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19 너희가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너희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만 감옥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굶고 있는 너희 집 식구들을 위하여 곡식을 가져가거라.
20 그리고 너희 막내아우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러면 너희 말이 참되다는 것이 밝혀지고, 너희는 죽음을 면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21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 애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면서도 들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우리에게 닥친 거야.”
22 그러자 르우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하고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말을 듣지 않더니,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23 그들은 자기들과 요셉 사이에 통역이 서 있었기 때문에, 요셉이 알아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24 요셉은 그들 앞에서 물러 나와 울었다.
<화답송>시편33,2-3.10-11.18-19(◎22) ◎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자애를 베푸소서.
○ 비파 타며 주님을 찬송하고,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고운 가락을 내며 환성 올려라. ◎
○ 주님은 민족들의 의지를 꺾으시고, 백성들의 계획을 흩으신다. 주님의 뜻은 영원히 이어지고, 그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진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복음<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10,1-7)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제1독서(창세41,55~57; 42,5~7ㄴ.17~24ㄱ)
요셉은 형들을 금방 알아 보았지만, 모르는 체하고 매몰차게 말한다.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그러고는 사흘동안 감옥에 가둔다.(42,6ㄷ~7.17)
사흘째 되던 날 요셉은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살려 거든 이렇게 하여라. 나도 하느님을 경외 하는 사람이다. 너희가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너희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만 감옥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굶고 있는 너희 집 식구들을 위하여 곡식을 가져 가거라. 그리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러면, 너희 말이 참되다는 것이 밝혀지고, 너희는 죽음을 면할 것이다.'(42,18~20)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 요셉은 17세때, 형들의 미움을 받아 몇번씩 죽음을 경험한다.
깊은 구덩이에 던져지고 이집트에 팔려 간다.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 가장 사랑 받던 아들이 하루 아침에 노예가 되고, 완전히 낯선 이방인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하루 아침에 고아처럼 버려진 요셉은 파라오의 내신이며 경호대장인 포티파르의 종이 되었다가 포티파르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에서 20대를 보내야 했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 속에서 요셉이 30세에 어떻게 이집트의 재상(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을까?
요셉은 어떤 처지에서도 한번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신을 억울하게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요셉에게 하느님은 특별한 은총과 복을 주셨는데, 현명과 지혜가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영이 맑고 깨끗한 요셉에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지혜를 주셨다.
요셉의 지혜가 헌작 시종장(술맡은 관원장)의 꿈과 제빵 시종장(떡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는 기초가 되었고(창세 40장), 파라오의 꿈(창세41장)을 아주 명쾌하게 해석하는 능력의 원천이 되었다.
요셉이 재상이 된 후, 파라오의 꿈이 계시된 대로 7년 대풍년이 왔다.
요셉은 창고를 짓고, 바다의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은 곡식을 창고에 저장해 둔다(창세41,47~49).
꿈의 예언대로 7년 풍년뒤에 7년 흉년이 왔다.
흉년이 오자마자 요셉은 창고를 열어, 이집트 사람들에게 준비한 양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창세41,56).
그런데 이 기근은 이집트 땅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나라에도 동일하게 일어났다(창세41,57).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었기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가는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그곳으로 들어 갔다(창세42,5).
요셉의 형들은 이집트의 통치자요 그 나라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파는 자인 요셉에게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다(창세37,7; 요셉의 곡식단 꿈이 이루어짐).
요셉은 형들을 금방 알아 보았지만, 모르는 체하고 매몰차게 말한다.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그러고는 사흘동안 감옥에 가둔다.
사흘째 되던 날 요셉은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살려거든 이렇게 하여라. 나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너희가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너희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만 감옥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굶고 있는 너희 집 식구들을 위하여 곡식을 가져 가거라. 그리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러면, 너희 말이 참되다는 것이 밝혀지고, 너희는 죽음을 면할 것이다.'(창세42,18~20)
요셉의 생애에는 두 가지 숙제가 있었다.
하나는 어떻게 억울한 누명과 고난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어떻게 용서하느냐? 하는 것이다.
첫째 숙제는, 하느님께서 요셉을 이집트의 재상이 되게 하셔서 누명을 다 벗기시고, 영광 가운데서 그에게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심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둘째 숙제는, 재상이 되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은 하나, 형들을 만나는 것이고, 그래서 가슴을 열고 서로 용서를 주고 받아야 한다.
요셉에게 남은 화해의 문제와 형들에게 있는 죄책감은 둘이 만나야 해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기근을 통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인간의 지성과 상식과 머리로는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하느님의 초자연적 간섭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자연 현상을 이용해서 당신의 구원역사를 만들기도 하신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창세42,8)
여기서 요셉이 왜 형들을 모르는체 했을까? 이 부분이 중요하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형님!'하고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오히려 형들을 정탐꾼(스파이)으로 몰기 시작한다.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 형들로 하여금 과거를 깊이 참회하는 축복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이다.
요셉이 형들을 아는 체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회개와 참회를 할 수 있었다.
오늘 독서의 창세기 42장 21~22절을 보라.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 애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면서도 들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닥친거야.'
그러자 르우벤이~~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하고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말을 듣지 않더니,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용서하신다.
그리고 동시에 고난을 통해 우리가 깊이 회개하고 우리 인생에 대해 반성하면서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감동하고 감격하는 과정을 만드신다.
재상이라는 사람이 자기들을 스파이로 의심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비밀을 들춰낼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이 된 것이다.
숨겨 놓은 죄악들을 하나 하나 들추어 내야 했다.
우리의 기억이란 축적된 경험의 창고요, 그 안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들어 있는데, 좋은 것은 끌어내어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되고, 나쁜 것은 드러내어 하느님 앞에 보여 드려 용서받을 때 내적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마태 10,1-7)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권한은 말씀입니다. 앞 절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계명)로 전해~ 사람들이 용서 받지 못하게, 더럽게 하는 그 더러운 말을 하는 그 더러운 영(靈 , 퓨뉴마다이몬), 그 더러운 영의 거짓말로 병으로 허약해진 이들을 모두 하늘나라에 복음 선포로 고쳐주셨다.
그리고 그 더러운 영을 쫓아낼 권한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요한1,1-4) 1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 창조주의 생명(창조)의 말씀을 피조물이 받는 것,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셨듯, 제자들 또한 그 하느님의 말씀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요한6,38 8,28)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 예수님 당신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제자들을 뽑으신 것이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더러운 영의 말을 먹은 유다, 곧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거짓 된 말로 들었기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당신을 팔아넘길 제자를 뽑으셨을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기에 순종하신 것이다.
(요한13,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시편41,10)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의 말로 사람의 뜻, 욕망을 만족 시켜주는 그 더러운 영의 말, 거짓의 길이 아닌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그 길로 가라는 것이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하느님의 나라를 착한 행위의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 그 하느님의 뜻, 그 길을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가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 안에는 다른 민족 사람, 사마리아인 모두 포함된 것이다 다만, 그들의 잘못된 생각, 그 길이 잘못이니 그들의 생각, 그 길을 버리도록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로 주라 하시는 것이다.
7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하늘, 샤마임(거기 물이 있다) 사람들의 생명의 물, 말씀이 오셨다는 것, 곧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 이시다.(요한1,14)
인간이 자기 의로움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찾아오시는 것이 하늘나라이다.
(루가17,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이미 와 있고 죽어 부활한 후 들어가는 하늘나라인 것,
(묵시21,1-4)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첫 창조인 지금 살고 있는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눈물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의 죽음 그 피의 새 계약이 완성하신 것이다.
그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의지 한다면, 곧 예수님의 십자가 그 멍에를 내가 맨다면,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 하신 내 십자가임을 믿는다면, 하느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그 하늘나라인 것이다.
그것이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 이전 것들이 사라진 안식의 나라를 이곳에서 부터 살 수 있는 것이다.
(마태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 그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를 통한 구마, 구원, 그 안식의 약속, 그 말씀을 전하라 하신 것이지요. 아멘.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0,1~7)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5ㄴ~6)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의 두번째 가르침(마태10,1~42) 가운데 서론적 내용인 열두 사도의 부르심에 대한 내용(마태10,1~4)을 마치신 후, 이제 마태오 복음 10장 5절에서 부터 본격적인 가르침에 들어간다.
그중에 마태오 복음 10장 5절에서 1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주신 선교 활동의 대상과 내용, 선교사로서의 자세에 관한 교훈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마태오 복음 10장 5절(ㄴ)은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교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부하고 계신다.
이렇게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야로서의 예수님과 유다인과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은 마태오 복음사가가 기록한 복음서의 특징인 것이다.
이것은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6장 8~10절이나 루카 복음 9장 2~4절에는 기록되지 않고, 오로지 마태오 복음에만 나온다.
사마리아인들은 과거 북부 이스라엘이 이방인 아시리아인들과 혼인하여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을 더렵혔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로 매도당하였으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개처럼 취급받았다.
더군다나 이방인들(다른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마태오 복음 10장 5절(ㄴ)은 이러한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을 열두 사도의 선교 대상에서 일단 유보시킴으로써, 예수님의 선교 활동의 일차적인 대상이 마태오 복음 9장 36절에 나온 것과 같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한편, 새성경 한글 번역에는 생략되었지만, 원문인 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는 '~대신에'(instead of), '반드시'(surely), '분명히'라는 뜻을 가진 '말론'(mallon; rather)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것은 마치 복음을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에게 전할 바에는 대신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 낫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마태오 복음사가의 강조점은 당시의 시점에서도 반드시 이스라엘에 대한 복음 전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을 '반드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라고 번역해야 한다.
여기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이라는 구절은 마태오 복음 9장 36절의 '목자 없는 양들'의 이미지와 같은 은유를 사용한 수사적 표현이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시려 오신 예수님의 강생(육화)의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수록한 내용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8장 19절과 20절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명령하신 내용을 보도하고 있으므로, 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서 복음전파의 대상으로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을 일단 유보하고, 그 일차적인 대상으로 유다가 지목되고 있는 사실은, 결국 유다인들의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대한 거부로 인해 필연적으로 선교의 대상이 모든 민족들로 확장되어 가는 논리적인 연결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복음서 전체에서 볼 때 예수님의 이방인들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민이요 소유가 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애착과 우선적 선택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2023년 07월 12일 수요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희망은 ‘흩어진 백성이 다시 모이는 것’입니다.
신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땅을 주시고, 그곳에서 후손이 번창하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땅에서 계속해서 살지 못합니다.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기근이 심한 탓에 이집트로 가게 되고,
그곳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종살이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 사건이 바로 탈출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계획으로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에서 긴 시간을 지낸 뒤 다시 약속의 땅, 곧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임금 이후 왕국은 둘로 나누이고 차례로 이민족에게 점령됩니다.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로니아가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땅을 잃고 유배 생활을 합니다.
유배는 끝이 났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온전하게 독립하지 못하고 주위 제국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역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와서 그들을 다시 한데 모아 약속의 땅에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도록 이끌어 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모습의 메시아셨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그분께서 선포하도록 하신 것은 세상의 왕국이 아닌 하늘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서 이루는 믿는 이들의 나라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주님께서 주신 權限은 새 創造를 이루시는 말씀이다.
(마태10,1-7)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예수님께서 구마의 권한(權限)을 주셨으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사탕아! 귀신아! 물러가라”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게 했다가 봉변당한 사람이 있다.
(사도19,11-12) 11 *하느님께서는 *바오로를 *통하여 비범한 기적들을 일으키셨다. 12 그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그들에게서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들이 물러갔다.
= 바오로의 살갗, 얼굴은 얼(영)이 들어있는 굴이다. 곧 그가 하느님께 받은 영의 치유와 구마(驅魔)인 것이다. 하느님의 영께서 그를 통해 일하셨다는 것이다.
(사도19,13-16) 13 그러자 구마자로 돌아다니는 몇몇 유다인까지도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한다.” 하면서, 악령 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14 그런데 스케우아스라는 유다인 대사제의 일곱 아들이 그렇게 하자, 15 악령이 그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 바오로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 하였다. 16 그때에 악령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모조리 억누르고 짓누르는 바람에, 그들은 옷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어 그 집에서 달아났다.
= 권한은 말씀이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구마하셨다.
(마태8,16)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마르1,39)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 말씀의 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악령(惡靈), 마귀(魔鬼)를 쫓아낼 수가 없다.
(마태17,19-20)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율법)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은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겨자씨와 같이 작고 약해 보인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며(마르4,14) 그 말씀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요한1,14)
곧 구유의 아기, 그 작은 씨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죄로 대신 죽으시고 많은 열매,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신 그 진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뱀(악령, 마귀)이 선악의 법으로 주었던 그 산같은, 힘겨운 모든 짐, 심판에서 자유 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이 구마인 것이다.
(로마5,17-19) 17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은혜)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예수)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씨)이 진리로, 믿음으로 연결이 안 된다. 십자가의 대속, 그 복음이 그들에게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1코린1,23-24)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그 부르심을 받은 사도, 우리들이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둘을 보면 모두 이기적이며 부족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제자들을 예수님은 끝까지, 죽기까지 사랑 하셨다.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전부 다 도망가고, 배반을 했어도 부활하신 후 찾아 다니셨던 주님이시다. 그와 같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끝까지(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니 그 주님의 사랑을 진리로 전해야 한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 우리 죄인들의 죄로, 대신 죽으신 그 구원, 진리의 말씀을 다른 민족, 즉 세상 사람들이 추구 하는 것으로 주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사람의 뜻을 위한 신앙, 우상 같은 말로 주지 말라하시는 것이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이스라엘 집안이란, 민족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창조 이전에 선택받은 영적 이스라엘이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히브4,3)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 그 선택받은, 다 이루어진(완성된) 이들이 이 땅에 온 것이다. 왜?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 안에서 선택되고 완성된 것임을 알라고, 그 믿음을 위해서 이땅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가는 하느님나라이다.
예날 교리문답 중 <질문> ‘사람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느뇨?’ (답)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제 영혼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느니라.’
곧 선이 악을 대속해 생명을 주는 그 진리의 길이 아닌 선과악, 그 법의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길을 잃고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 욕망을 위한 신앙의 길로~~
화답송 (시편33,10-11) 10 주님께서 민족들의 결의를 꺾으시고 백성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신다. 11 주님의 결의는 영원히, 그분 마음의 계획들은 대대로 이어진다.
(에페2,2-5) 2 그래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십자가)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길을 잃은 이들에게 그 진리의 나라가 왔으니 돌아오라고, 선포하라는 말씀이시다. 그 진리로 하느님나라, 말씀으로 오신분이 그리스도이시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1,4) 4 그분(말씀-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 사람의 의지와 계획을 꺾으시고, 흩으시고 영원한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대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25년 07월 09일 수요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처음으로 하신 일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일이었습니다(마태 4,17-22 참조).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어 공동체를 형성하셨고 그 가운데에서 특별히 열두 명을 뽑아 사도라는 칭호를 주시며(루카 6,13 참조)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것은, 본디 열두 지파로 이루어졌으나 유배 후에 사라진 지파들도 많아서 지금은 그 명맥조차 잇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재건하시려는 의도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는 공동체가 중요하였습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들을 하나하나 곰곰이 살펴보면 이들의 공동체 삶이 녹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유다의 독립을 위하여 무장 투쟁마저 마다하지 않았던 열혈당원 시몬은 로마 제국을 위하여 일하였던 세리 마태오와 관계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뚫린 손과 발, 옆구리를 보고 손가락을 넣어 보아야 믿을 수 있다고 할 만큼 신중하고 의심 많은 토마스는 성급하고 충동적이던 베드로와 다혈질이던 제베대오의 아들들과(루카 9,54; 마르 3,17 참조) 같이 지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신중하게 공부하던 지식인 나타나엘은(요한 1,48 참조) 많이 배우지 못한 어부 출신 제자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거짓이 없는 그는(1,47 참조) 공동체 지갑에서 자주 돈을 빼내 가던 부정직한 유다 이스카리옷을(12,6 참조) 보면서 분통이 났을 것입니다.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묶어 주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핵심을 잃으면 우리의 공동체는 바로 서지 못합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義는 찾는 것이지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음(마태10,1-7)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왜 열둘을 뽑으셨을까? 숫자 12는 열두 명 이라는 의미보다 하늘의 완전수로 ‘하늘의 아들들’을 뜻한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완전 수 12, 그런데 열 두 제자 모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 못해 두려워 숨어 지냈다. 곧 우리의 모습이다. 완전하지 못한 그들을 하느님께서 계시의 영, 성령(性靈)을 보내시어 하늘나라의 완전한 아들로 만들어 내신다.(사도2장) 그것이 구원(救援)의 모습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만 가라’는 말씀이 아니다. ‘창조(創造) 이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選擇)받은 온 세상에 퍼져있는 하느님의 자녀, 백성들에게 가라’는 말씀이다.(에페1,4-5)
그 하늘 백성들에게 그들의 본향(本鄕), 하늘나라 소식을 알리라는 말씀이다. 곧 이 세상은 그들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이 세상의 힘의 논리, 법의 지배를 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종(從)살이 하지 말라는 ‘기쁜소식’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세상의 물질, 문명이 너무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그 매혹(魅惑)적인 것이 영(靈)을 병들게, 허약하게 만들어 영원한 죽음으로 끌고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 하늘을 날 수 있는 백조가 자신의 존재, 신분을 잃어버리고 오리로 땅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꼴이다. 하늘의 왕자, 공주가 자신의 하늘존재, 신분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거지, 종(從), 노예로 살아가는 격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첫째는 성경(聖經)말씀을 모르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더러운 영들의 지배를 받는 거짓 도사들의 거짓 가르침 때문이다. (마태24,24 2베드2,1참조)
곧 많은 사람들이 성경(聖經)을 문자 그대로,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의 계명(誡命) 정도로 보고(티토1,14) , 또 가르침도 그 계명 수준이기 때문이다. 문자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전(傳)할 줄 모르니 모두 ‘눈 먼 소경, 말 못하는 벙어리’ 신앙을 살고 있다. 예(例) 제사를 자주 드리며 도덕과 윤리로 착하게, 강도짓 안하며, 십일조 바치며, 단식하는 사람을 우리는 의롭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롭지 않다’하신다. (루가18,11-14) 또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키며 훌륭한 은사(隱私)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법이라고 하신다.(마태7,22-23)
예수님을 모셔 들이고 열심히 섬기는 ‘마르타를 본받자’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신다.(루가10,38-42) 모든 사람들이 훌륭한 은사다. 의롭다. 필요하다. 하는 것을 왜 예수님은 불의, 불법, 필요없다 하실까?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1코린15,19) 이 세상에서 하늘 백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늘의 그림자일 뿐이다.(골로1,26-17) 그 그림자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믿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2코린4,18 히브10,1)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제 십자가, 우리의 모든 것이 그릇되고 필요없는(요한16,8), 곧 불의, 불법임을 인정하는 그 자기 버림, 부인(否認)을 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저주의 십자가에서 대속 하시고 죽으신 그 새 계약의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님의 십자가(十字架)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곧 주님께서 말씀하신 ‘제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義), 거룩이다.(로마3,24 히브10,10)
내 모든 죄(罪)가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었기 때문이다.(골로2,14) 그 대속(代贖)의 십자가가 주시는 하늘의 용서, 의, 거룩의 힘, 능력은 영원하기 때문이다.(히브10,14)
물론 현실의 내 십자가를 열심히 지고 살아갔을 때, 내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나의 죄악을 보고 죽을 죄임을 인정했을 때, 곧 자기 부인(否認)을 했을 때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로 갈 수 있다.
(마태11,28-30)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은총이신 진리의 성령님!
하늘가는 길도, 하늘의 신분도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줄도 모르고 사는 저희들입니다. 세상을 다스려야할 하늘의 존재인 우리가 세상의 지배로 종(노예)으로 살고 있음을 자각하게 하소서. 잃어버린 신분을 찾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