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일꾼 (마태9,32-38)

2025. 7. 7. 오후 2: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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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8일 화요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일꾼 (마태9,32-38)


   


1독서<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창세32,23-33)

야곱은 밤에 23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건널목을 건넜다.

24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25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30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31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33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을 먹지 않는다. 그분께서 야곱의 허벅지 힘줄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기 때문이다.

 

<화답송>시편17,1.2-3.6-7.815(15) 주님,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오리이다.

주님, 의로운 사연을 들어 주소서. 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 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 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당신 앞에서 저에게 승소 판결 내리소서. 당신 눈으로 올바름을 보아 주소서. 제 마음 떠보시고 밤중에도 캐 보시며, 저를 달구셔도 부정을 찾지 못하시리이다.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놀라우신 당신 자애를 베푸소서. 당신 오른쪽으로 피신하는 이들을, 적에게서 구해 주소서.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복음<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마태9,32-38)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제1독서(창세32,23~33)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25~27)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의 삶을 청산하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한다. 말하자면 지금은 타향 생활 20년만에 드디어 다시 고향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야곱이 집에 돌아가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제일 장애가 되는 것이 자신의 형 에사우를 만나는 두려움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야곱의 삶을 보면, 그가 한번 마음 먹은 것은 안되는 일이 없었다.

치사한 방법으로 기어이 장자의 권한도, 아버지 이사악의 축복도 독차지했고, 마음에 둔 여인도 끝까지 참아서 결국에는 아내로 맞이했었다.

 

야곱은 목표를 한번 정해 놓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목표를 반드시 관철시키는 불패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 귀향을 앞두고, 장애와 자기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야곱은 형 에사우가 복수의 칼을 들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형 에사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소위 '뇌물'을 준비하여(창세32,14~23) 미리 보낸다.

야곱은 밤에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이끌어 야뽁 강을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낸 뒤(창세32,24) 이제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야곱은 제일 먼저 형 에사우에게 전령을 보내어 상황을 파악하고, 형 에사우의 마음을 떠 본다(창세32,4~6).

형 에사우가 장정 사백명을 거느리고 마중 나온다니까 야곱은 겁을 내어 살려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한 뒤, 인간적인 방법으로 형을 만날 준비를 한다(창세32,10~22).

 

형 에사우에게 바치는 뇌물의 양이 많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여차하면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도망갈 준비까지 갖춘다.

뇌물을 종들의 손에 한 떼씩 나누어 들게 하는데, 그것을 거리를 두어 행렬지어 가게 하고, 레아보다도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아들 요셉을 제일 뒤에, 야곱의 자신의 곁에 배치하여 가게끔 해놓는다.

 

그렇게 해놓고는, 이제 야뽁 강가에 혼자남게 되는 것이다.

야곱은 분명히 형 에사우를 만날 생각에 불안과 초조에 떨며 고민도 하고, 기도도 했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야곱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게 되었을 때에, 자신의 당면 문제 뿐만 아니라 자신 안의 근본적인 내면의 문제까지 정직하게 들여다 보게 되면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순간을 준비하셨고 기대하셨으며,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이'라고 번역된 '이쉬'(ish)는 '한 사람' 혹은 '어떤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야곱이 그 사람에 대하여 어떤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씨름을 하였다'로 번역된 '와예아베크'(wayeabeq)의 어근 '아바크'(abaq)는 본래 '먼지에 쌓이다', '붙잡다'는 뜻이다.

 

이것은 땅에서 먼지가 일어나 쌓일 정도로 서로 붙잡고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로써 '씨름하다', '맞붙어 싸우다'라는 뜻을 지녔다.

원문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야곱과 하느님의 천사와의 씨름이 매우 격렬했음을 보여준다.

 

야곱이 엉덩이뼈(환도뼈)가 실제로 다치게 된 것과(창세32,26) 호세아 예언자의 말을 종합해 볼 때(호세12,2~4) 실제로 하느님의 사자와 야곱이 씨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씨름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었고, 야곱이 하느님의 사자에게 매달려 울부짖으며 처절하게 간구하는 기도까지 포함된 씨름인 것이다. 

 

야곱은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사자인지 몰랐으나, 그가 곧 하느님의 사자임을 알게 되었고(창세32,27), 자신의 생애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께 복을 간구했던 것이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여기서 '이길'에 해당하는 '야콜'(yakol) '승리를 얻다', '해내다'(1사무26,25) 라는 뜻 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다'(창세13,6), '우세하다', '성공하다'(1열왕22,22) 라는 의미도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패배를 당했다는 말이 아니라 야곱이 매달리는 것을 꺽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필사적으로 매어 달리며 간구 할 때 하느님께서 외면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원문은 '와익가 뻬카프 예리코'(yaigga bekap yereko)로서, 직역하면 '그러자 그는 그의 넓적다리 바닥을 쳤다'이다.

 

여기서 '넓적다리' 해당하는 '야레크'(yarek)는 '넓적다리'(창세24,2.9: '샅'; 탈출28,42; 민수5,22: '허벅지')외에 '허리'(탈출32,27; 시편45,4)로도 번역된다.

허리나 넓적다리는 다같이 인간의 생식기관과 관련된 부분이며, 생(生)의 원천을 상징한다(히브7,5).

 

또한 손바닥으로 치는 것은 깊은 슬픔과 수치와 애절한 회개의 표시였고(예례31,19; 에제21,12), 서약을 행할 때에는 넓적 다리 아래에 손을 넣고 서약함으로써 서약에 대한 보증과 신실성을 표현했다(창세24,2; 47,29).

그리고 '바닥'에 해당하는 '카프'(kap)는 '우묵한 곳', '바닥', '구멍'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넓적다리의 우묵한 부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의 엉덩이뼈(환도뼈)의 정확한 부위는 둔부 아래쪽에 있는 좌골 (坐骨)로 엉덩이의 골반을 형성하는 좌우 한 쌍의 뼈(창세24,2)이다.

 

한편 '쳤다'에 해당하는 '나가'(naga)는 '닿다', '만지다'(창세3,3; 레위5,3; 다니8,5), '건드리다'(잠언6,29)라는 뜻으로서 본문에서는 하느님의 사자가 야곱을 때린 것이 아니라 단지 만지기만 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사자가 만지기만 했는데도 야곱이 무기력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능력의 위대성을 보여준 것임과 동시에 인간의 무능과 한계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다치게 되었다'

 

'다치게 되었다' 해당하는 '왓테카'(watheqa)의 어근 '야카'(yaqa)의 기본 의미는 '찢어지다', '탈골되다'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뼈가 살을 찢고 빠져 나가 탈골된 상태나 뼈가 부러진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다치게 하신 이유는 육신을 믿고 살아온 야곱에게 육신의 나약함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야곱이 하느님을 상대로 씨름할 때 버텨진 힘의 근원을 치심으로써, 더 이상 하느님을 경쟁자로 여기지 못하게 하셨고, 꺾인 다리를 통해 그가 붙들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신 것이다.

 

또한 생식과 관련된 엉덩이뼈를 다치게 한 것 앞으로 태어날 야곱의 후손들, 즉 계약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느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나를 놓아 다오'라고 번역된 '샬레헤니'(shalleheni; let me go)는 직역하면 '너는 나를 가게 하라'는 뜻이 있는 '샬라흐'(shallah)의 강조 능동 명령형이다.  

하느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자신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명령한 것이다.

 

하느님의 사자가 얼마든지 야곱을 뿌리치고 떠나갈 수 있음에도 굳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육신이 망가진 야곱이 과연 하느님을 의지하고 있는지 시험하시고자 함이다.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로 번역된 '로 아샬레하카'(lo ashallehaka)는 '절대 당신을 보내지 않겠다' 뜻인데, 강한 금지를 나타내는 '로'(lo)와 '샬라흐'(shallah)의 강조형 능동 미완료가 사용된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야곱은 축복하여 주지 않는 한, 결코 보낼 수 없다는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여 전달한 것이다.

이러한 야곱의 억지에 가까운 요구는 자신과 씨름한 상대가 하느님의 사자이며, 하느님의 사자의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14주간 화요일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의 구마나 기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경우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의미를 전달합니다.

오늘 복음도 그 대표적 예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주인공은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그러자 그가 다시 말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입니다.

군중은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놀라워합니다.

마귀를 쫓아낸 데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예수님께서 말을 못 하는 사람을 다시 말하게 하신 데 대한 반응으로 보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이와 반대되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서 마귀를 쫓아낸 것에 더 집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업적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적어도 그들의 말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셨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귀가 들린 것과 그 때문에 말을 못 하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군중은 말을 못 하던 이가 말을 하게 된 사실에 더 놀라고바리사이들은 마귀를 쫓아낸 것을 확인하여 줍니다.

아마도 복음은 군중의 반응과 함께 바리사이들의 반응을 전하면서 한편으로 말을 하게 만드신 예수님의 업적을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마귀를 쫓아내신 능력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업적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든 말을 못 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 

(마태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마귀를 사탄(적대자), 더러운 영으로 혼용한다사탄은 하느님의 일()을 사람의 일뜻으로 주는 뱀이며 또 하느님의 말씀(계명)을 사람의 말(계명)로 전하는그래서 사람을 더럽게용서받지 못하게 하는 그 더러운 말을 하는 더러운 영(퓨뉴마다이몬), 그래서 하느님의 뜻계명그 하느님의 말씀을 할 줄 모르는 그 말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그런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반대하는 엉뚱한 곳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루가4,6-7) 6 사탄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예수님을 유혹한 사탄이 인간이야 얼마나 더 쉽게 넘어뜨리겠는가?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으로 그 자신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기에,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힘이 아닌 마귀의 힘을 빌렸다고 우기는 것예수님은 하느님의 힘말씀으로 쫓아내신 것입니다.

마귀의 말은 거짓어둠의 빛으로 하느님의 말씀참 빛 앞에 사라지는 법입니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하느님의 뜻그분 말씀으로 마귀를 쫓아 내셨듯 마귀의 말로 구원의 힘믿음이 허약해진 병자들을 말씀복음 선포로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듯~

 

(루가4,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쫓겨난 마귀는 오늘 우리를 거짓 유혹으로 넘어뜨리려 하지요.

십자가로 얻는 하늘의 의로움을 얻지 못하도록자기 의로움을 위한, 얄팍한 신앙인으로 살게(2코린11,14) 또한 헛된 신앙으로 세상의 것을 얻도록빈말 기도를 많이 하도록 유혹 합니다그래서 정작 말씀을 묵상해야 할 시간까지 빼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상의 노예로그리고 법의 신앙으로 용서(구원)의 힘을 잃어 기()가 꺾여있습니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일꾼은 성령이신 것하늘의 수확물은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걷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어떤 것이 밀()인지 가라지()인지 제자들은 분별을 할 수가 없기에 뽑지 말고 내버려 둬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13,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인간의 말(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계명)으로 추수할 천사하느님의 영성령 이십니다그 성령께서 하느님의 계명인 나무의 대속 그 복음으로(탈출15,25) 믿는 이의 무죄를 선언하시며 단물로말로의인으로 추수해 주십니다.(로마3,32) 그러기에 반드시 그 우리의 보호자 성령을 청해야 하는 것이지요그 성령을 의지 못하는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로마8,9-10)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십자가의)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아멘.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복음(마태9,32~38)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3~34)

 

'말못하는 이'에 해당하는 '코포스'(kophos; dumb)는 '둔한', '무딘'이라는 뜻을 지니며, '벙어리'(마르9,25; 루카11,14) 뿐 아니라 '귀머거리'(마태11,5; 루카7,22)도 가리킨다.

 

여기서도 귀먹고 말못하는 복합 장애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 적이 없다'에서 '본'에 해당하는 '에파네'(ephane; it was seen; has been seen)는 '보다'라는 뜻의 '파이노'(phaino) 3인칭 단수 직설법 과거 수동형이다.

 

그래서 직역하면 '이스라엘에서 이런 일이 보여진 때가 없었다'이다.

 

희랍어 성경에서 수동형이 사용될 때, 행동의 주체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행위로 볼 때가 있다.

 

여기서 '에파네'(ephane)도 수동태로서, 마귀를 쫓아내고 벙어리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은, 하느님께서 예수님 이전에는 일어나도록 하신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은 이사야 예언자가 이사야서 35장 5절, 6절에서 오실 메시야께서 행하실 일에 대해서 예언한 내용과 같다.

 

한편, 앞절에서 '군중'에 해당하는 '호이 오클로이'(hoi ochloi; the multitudes; the crowd)가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경이롭게 생각하고 놀라움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마태오 복음 9장 34절 '바리사이들'에 해당하는 '호이 파리사이오이'(hoi pharisaioi; the Pharisees)가 오히려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 즉 '베엘제불'(마태10,25)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와 접촉하는 자로 모함한 사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자체에 대해 반박할 수 가 없게 되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원천에 대해서 비방한 것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눈먼 두 사람'( 마태9,31)이나 '군중'(마태9,33)과는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인 이러한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마태오 복음사가는 '믿음'이란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자각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마태오 복음 8장 1절부터 시작되어 마태오 복음9장 34절로 마무리되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드러낸 9가지 기사에 대한 바리사이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종교 기득권자들의 반응을 총체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250708일 화요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를 8장과 9장에 모아 두었는데, 그 끝자락에 자리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치유 활동을 요약하고 수확할 밭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10장의 파견 설교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자 사람들은 놀라워하고 경탄하기도 하고, 이제까지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바리사이들은 질투로 중상과 비난과 적대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나요? 보통 나를 반기는 사람들과는 같이 있고 싶어 하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더 인기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피하고 싶고 똑같이 비난으로 대응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그분께서는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곧 당신을 반기고 환호하는 곳이라 해도 계속 머무시지 않았고, 당신을 거부하는 곳에도 다가가셨습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요? 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9,37).

연민은 나를 떠나 상대를 향한 움직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에 매이시지 않았습니다. 당신 자신에게서 자유로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명, 곧 영혼들의 구원, 아버지의 일이라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목적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늘 자신을 뛰어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의 사명이라는 목적의식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하느님은 둘을 하나로 주셨다선과 악빛과 어둠죄와 용서구약과 신약남자와 여자모두 짝으로 하나 다우리 몸도 둘로 주셨는데 두 눈으로 보고두 귀로 듣고두 콧구멍으로 숨 쉬며두 손으로 일하며두발로 살라고그런데 입은 하나로 주셨다그 둘의 모든 것은 하나를 뜻하는 것으로 그 둘의 삶으로 하나로 깨달아 말하라는 것이다그리스도인은 둘을 짝 하여 하나로 보고 하나를 말해야 한다.

 

(마태9,32-38)

32 *그들이 나간 뒤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 말 못하는 사람 *하나 다. 그리고 *그들은, 앞27절에서 눈 먼 사람 *둘 이 예수님께 고침을 청했는데~ 

 

(마태9,27-30) 27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그들이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 눈이 열리기는 열렸는데, 그들이 믿는 대로 곧 선악이 둘로 열린 것이다. 곧 선이 악을 품어(대속) 생명을 주는 그 하나를 깨닫는 눈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위한 눈으로 열렸다는 것이다 아담처럼.

하느님은 아담에게 당신께서 주신 열매(말씀)를 선과 악으로 먹으면 ‘반드시 죽으니 먹지 말라’하셨는데... (선, 악은 법이 되어 심판으로 죽음이다.) 뱀은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 하신 것“이라고 거짓말을 준다.(창세3,4-5) <하느님만이 선악을 하나로 아신다. 보신다.>

 

눈이 열린 그들에게 인간의 욕망을 위한 그 선악의 일로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인데~

(마태9,31)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 단순히 눈을 뜨게 해 주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신 그 기적의 주님으로 소문을 낸 것이다. 그렇게 뱀(마귀)의 유혹을 먹고 하는 선악의 말은 하늘의 생명, 진리를 말한 것이 아니기에 빈말로, 말이 없는 말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말 못하는 벙어리인 것이다. 오늘 본문28절에 말 못하는 사람 하나가 입(하나)으로 하늘의 진리, 그 하나를 말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눈 먼 사람을 둘로 소개하셨고, 말 못하는 사람을 하나로 소개하신 것이다.

두 눈을 가지고 하나를 깨닫지 못해 한입으로 두 말(선악)을 하는 그 선악의 심판의 죄로 죽을 사람들을 고치신 것, 살리신 것이다.

 

33ㄱ 마귀가 쫓겨나자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 뱀(마귀)의 유혹으로 인간의 욕망을 위한 거짓 가르침을 듣고 한, 그 거짓말을 쫓아내신 것이다. 그 거짓말의 힘, 심판이 없어진 것이다.

 

33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 인간들은 자신들의 뜻,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이상하다고, 선악으로 판단해 버린다. 마귀의 거짓말,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복음 선포로, 즉 하느님의 말씀이 진리, 그 하나로 들어가자 치유, 고침이 일어난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과 악(도덕과 윤리) 그 둘이 아닌 선이 악을 대속 해 생명을 주는 그 선과 악을 하나로 들으면, 깨달으면, 모든 것이 완성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선악을 하나로 볼 줄도, 말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제사와 윤리(선 악)로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살고 있는 것이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 하나를 주는 그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참 牧者, 사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 다른 민족들이 추구하는, 곧 인간의 뜻, 의로움을 위한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이 난무(亂舞)하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아가페), 의로움보다 인간들의 사랑(페네스), 의로움을 위한 가르침을 더 많이 한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선과 악을 하나로 추수할 수 있는 일꾼은 하늘의 존재다(마태13,39참조) 우리는 씨(말씀)를 뿌리는 일꾼이다. 곧 善이신 예수님께서 惡인,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그 진리, 새 계약으로 추수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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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첫째 계약(율법-제사와 윤리)의 짝인 둘째 계약, 곧 구원의 새 계약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십자가의 대속으로 “다 이루었다”(요한19,30) 하셨기에 죄인들이 하늘의 영원한 상속(생명)을 받는 것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추수(구원)가 되는 것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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