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21일 토요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마태6,24-34)
제1독서<나는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코린2,1-10)
형제 여러분,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5 이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내가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6 내가 설사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그만두겠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시편34,8-9.10-11.12-13(◎9ㄱ)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성도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
○ 아이들아, 어서 와 내 말을 들어라. 주님 경외를 가르쳐 주리라. 삶을 즐기고 복을 누리려, 장수를 바라는 이 누구인가? ◎
복음<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6,24-34)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코린12,1-10)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24)
바오로는 코린토 후서 12장 2절부터 자신이 체험한 주님의 환시와 계시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설명한다.
바오로는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라고 언급하면서 코린토 후서 12장 2절부터 6절까지 환시를 체험한 주체가 자신이면서도 3인칭 주어를 사용하여 그 신비한 체험과 자신 사이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에 해당하는 '안트로폰 엔 크리스토'(anthropon en Christo)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보편적 표현이다.
그리고 '안에'에 해당하는 전치사 '엔'(en)은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일치가 곧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격을 규명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바오로는 왜 자신을 '나 바오로'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이라고 지칭했을까?
그것은 자신이 여기서 펼치고 있는 주장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랑에 속한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고, 인간적인 자랑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특히 영광스러운 자랑을 함에 있어서 자신을 숨기고 삼인칭적 서술로 표현했다고 본다.
어떤 이는 '신비 신학에서 경험 가능한 최고의 영역'이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신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이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주축이 되시고 자신은 단지 수동적 위치에 머물렀기에, 이 일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만이 드러나야 한다는 겸손한 생각이 있었기 떄문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 셋째 하늘까지 들러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여기서 '들어 올려진'으로 번역된 '하르파겐타'(harpagenta; was caught up)는 본래 '잡아채다', '강제로 빼앗아 가다'라는 뜻을 지닌 원형 '하르파조'(harpazo) (마태11,12; 요한10,12)의 부정(不定) 과거 수동태이다.(테살4,17참조)
바오로는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주도권에 의해 그분 손에 이끌려 이러한 신비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바오로가 불가항력적인 하느님의 힘에 사로잡혔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끌려 들어 올려진 곳인 '셋째 하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이는 바오로가 이러한 하늘의 수에 대한 관념을 히브리인들의 하늘에 대한 개념이나 유다고 묵시 문학에서 빌어온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유다인들은 하늘이 구름이 머물고 새가 날아다니는 첫째 하늘, 금속판으로 경계가 지워져 궁창 위의 물이 보관되어 있는 둘째 하늘, 하느님과 천사들이 머물고 있는 셋째 하늘과 같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다교 후기 묵시 문학에서는 '칠층천' 혹은 '삼층천' 개념이 등장한다. 에녹2서 7장 1절에서는 "그리고 이 사람들이 나를 데려다가 둘째 하늘에 올려 놓았다"는 언급이 등장하고, 바룩3서 2장 2절에는 "그리고 그는 나를 데려다가 첫째 하늘로 인도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현대 신학자들은 본문의 기록이 '비과학적인 우주 개념'에서 연유된 신화적인 산물로서 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섣불리 바오로의 셋째 하늘 체험을 신화적 사상의 발현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셋째 하늘까지'로 번역된 '헤오스 트리투 우라누'(heos tritu uranu) 에서 '트리투'(tritu), 즉 '삼'이라는 숫자는 최고로 높고 가장 완전한 것을 나타내기 위한 최상의 방법에서 사용될 수도 있고, 그래서 존귀와 영광을 입으신 하늘의 구세주 대전에 들어 올려진 것이며,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일상적 용어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고, 신비적이며 환상적인 황홀경과도 비교될 수 없는 초월적인 체험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에페소서 4장 10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라는 언급이 단순히 승천의 의미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지각의 한계 밖으로 올라가셨다는 의미까지 나타낸다는 점에서 참고가 된다.
바오로는 자신의 이 체험이 열네 해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학자들이 코린토 후서의 기술 연대가 A.D. 55년경으로 추정하므로 아마도 A.D. 41년 혹은 42년경에 있었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바오로가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 이런 체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고 추정할 뿐이다. 어떤 이는 바오로가 회심 후 고향 타르소에서 은거하고 있던 중이라고 보고(사도9,30-11,25), 어떤 이는 바오로가 안티오키아에서 선교했을 때로(사도11,26) 보기도 한다.
여기서 바오로가 예외적으로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을 하는 것은 자신의 이 신비 체험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역사적 진실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코린토 후서 12장 2절의 내용이 3절에 또 등장하는데,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라는 의미를 지닌 '우크 오이다'( I can not tell ; I don't know)가 2절에서는 두 번, 3절에서는 한 번만 나온다는 차이밖에 없다.
바오로의 셋째 하늘 경험이 몸 안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몸 밖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중복 사용한 것이다.
전자는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5-17절의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라는 표현을 고려할 때 타당하다.
바오로의 신학적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인데, 당연히 주님께서도 당신 재림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늘로 들려 올라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마태24,40.41; 루카17,34.35; 요한14,3).
구약의 경우 에녹과 엘리야가 바로 이러한 예에 해당하고(히브11,5.6; 2열왕2,1-15), 신약에도 예수께서 이런 경험을 하셨다(사도1,9).
그리고 후자는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의 승천을 말하는 것인데, 필리피서 1장 23절이나 루카 복음 16장 19-31절의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에 근거할 때 몸을 벗어난 영혼도 의식적인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바오로는 여기서 자신의 경험이 전자인지 후자의 견해인지 자신은 알 수 없다고 언급하면서, 그 모든 판단에 대해서 하느님께 유보시키고 있다.
이같은 바오로의 태도에 대해, 우리는 바오로가 너무나 신비한 상태에 있었던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말할 수 없었고, 전자이든 후자이든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로는 표현하기 불가능한 영광을 체험했다는 선에서 놓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2코린12,4).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신비한 영적 제험이 바오로로 하여금 그의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고난들을 인내하며 감당할 힘을 얻는데 탁월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마8,18)
[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결국 우리를 다스리고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되며 귓가에 맴도는 주님의 말씀은 “걱정하지 마라.”입니다.
이 말씀의 근거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곧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분께서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당신 자녀들의 어려움과 고통, 눈물과 아픔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에게 몸소 마련해 주시며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 대한 굳은 믿음입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소중한 아드님마저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유한 자녀들이고,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이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을 더욱 닮아 가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날마다 무거운 수고와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은 내일이 걱정하신다.
(마태6,24-34)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하느님을 사랑하면 재물을 사랑할 수 없고 재물을 사랑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갈라5,17)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재물, 돈(맘몬-맘모나스) 신의 이름이다. 곧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축약해 놓은 것이 돈, 재물, 육의 실체이다. 하느님을 인간의 뜻, 욕망을 위해 도와주시는 신으로 섬기고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을 바알(세상 신)로 모독, 모욕하는 것이다.
(열왕상18,21)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호세2,18) 18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 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을 인간의 뜻을 들어주는 '바알'로 그 양다리로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 보이는 땅의 것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신앙이라는 말씀이다.
26ㄱ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 성한 눈, 진리의 눈으로 보라는 말씀이다. 씨. 말씀을 몰라 말씀을 진리로 마음(곳간)에 간직할 수 없는, 간직하지 않는, 간직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새(사탄)이다.(마르4,3.14-15참조)
26ㄴ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 말씀을 하늘의 생명, 빛, 진리로 거저 주신 그 은총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이다.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 진짜 영화로운 옷, 곧 하늘나라의 혼인 예복, 곧 구원의 옷은 하느님께서 예비 하신 그리스도를 진리로 입혀주심을 믿는 것이다.(창세3,21 에페1,4참조) 하느님의 구원의 새 계약인 십자가의 대속, 그 복음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그것이 하늘의 의로움을 입는, 구원의 옷을 입는 것이다.
(묵시19,8)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십자가의 예수님을 하늘의 의로움, 구원자, 그리스도로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다른 민족이 애써 찾는, 곧 육에 필요한 그 곁들여 받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이미 주셨음을 앞에서 말씀하셨다.
(마태5,45)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 그러니 하늘의 진리, 의로움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내일 걱정은 내일이, 곧 내일(하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맡기라는 말씀인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마태6,11)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일용 할 양식이 아람어로 마헬- 내일의 양식, 곧 말씀의 구원, 그 내일의 양식임을 배웠다. 그 말씀을 먹고 의탁 하라, 믿어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본 6장의 시작 말씀이, 말씀을 땅(육)의 것을 위한 땅의 말로 받아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구원)을 받지 못한다.”(1절)로 시작하셨던 것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오늘의 목숨을 연장 시키는 노후 준비를 하지만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준비하신 그 내일, 사후 준비가 이미 된 사람이다.
독서(2코린12,2.4.10)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세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 셋째 하늘- 내일의 하늘, 나라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말씀)이었습니다.
= 인간의 뜻, 지혜로 누설할 수,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으로 깨달으면(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다) 그 말씀에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 말씀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로 깨달았을 때, 그 모든 시련 들이 땅의 것을 부인(否認)시켜 하늘을 향하게 하여 내일의 구원으로 이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야고1,12외 다수) 땅의 것을 부인할 때, 약해 졌을 때, 말씀이 강하게 일하신다. (에페3,20 필립2,13테살1서2,13참조) 그러니 말씀을 사람의 지혜, 생각, 계명 으로 들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신 것이다.
(티토3,5-7)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아멘)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내 안에 늘 함께 하시며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복음(마태6,24~3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4)
마태오 복음 6장 24절은 하늘 나라의 시민된 자가 재물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를 기록한 마태오 복음 6장 19~24절의 결론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재물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길 것인지 양자택일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여기서 '섬기다'에 해당하는 '둘류에인'(douleuein; serve)의 기본형인 '둘류오'(douleuo)는 '종', '노예'라는 뜻을 지닌 '둘로스'(doulos)와 같은 어근에서 비롯된 단어로서, '종으로서 예속되다', '노예처럼 섬기다'는 뜻을 갖는다.
즉 노예는 그 목숨이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으며, 주인의 명령에 대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당시 상황을 염두에 볼 때, 이것은 종이 목숨을 바쳐 섬길 대상은 절대로 하나 이상이 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한편, '재물'에 해당하는 '마모나'(mamona; mammon; money)의 원형 '맘모나스'(mammonas)는 히브리어로 '믿다', '신뢰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멘'(amen)과 같은 어근을 갖는 아람어에서 유래하여 '신뢰하는 자'라는 뜻을 갖는다.
고대로부터 재물은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며 집요하게 추구하여 왔던 것 중에 하나이므로, '맘모나스'(mammonas)는 '재물'과 동의어으로 쓰였다.
영어의 '재물'을 뜻하는 '맘몬'(mammon)이 이 단어에서 나왔다.
여기서는 이 '재물'이라는 단어를 의인화시켜 섬김의 대상으로 삼아 '재물'이 충분히 사람들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2025년 06월 21일 토요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걱정 자체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걱정들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섭리’에 대한 신뢰를 가르치시면서 우리를 이런 무의미한 걱정에서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하늘의 새들, 들에 핀 나리꽃들, 그것들을 사랑스럽게 돌보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만들어 내는 목가적인 분위기의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날마다 신경 쓰는 일들, 곧 먹고 마시고 입을 것들에 대한 염려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세상의 현실은 오늘도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이들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들이밀며 이 말씀에 도전합니다.
어찌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토록 소중히 여기시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받지 못한 채 죽어 가게 내버려두실까요? 이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분노 어린 물음만이 아니라 우리 신앙인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하는 물음입니다.
그에 대한 답은 어쩌면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마태 6,33)을 찾는 일에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드러내야 하는 나라이고, 그 나라의 바탕이 되는 ‘그분의 의로움’은 형제들을 돌보는 일도 포함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실존적 문제나 고통에 직접 개입하시기보다 당신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에게 형제들의 목숨을 지키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줄 책임을 맡기십니다.
오늘 복음은 아버지의 섭리에만 의지하여 태평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다른 자녀들인 형제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수고를 하도록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섭리의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길입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재물(財物)은 육(肉)의 힘이 될 수 있는 ‘세상의 스팩(SPAC)’들이다.
복음(마태6,24-34)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재물(財物)은 육(肉)의 힘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사람의 명예, 의, 지혜, 지위 등, ‘세상의 스팩(SPAC)’들이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 사람(아담)이 하느님과 동행했을 때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걱정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시며 돌봐 주셨기 때문이다. (창세2,325)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에덴 나무(말씀)으 열매를 선악(善惡)으로 따 먹은 후에 걱정하게 된 것이다.(창세3,7-10)
하느님의 말씀, 뜻을 떠난 아담들은 이제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곧 세상의 힘을 원하는 신앙을 산다면, 하느님을 떠난 걱정의 신앙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요한6,26-27)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호라우-깨달음으로)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영원한 하늘의 양식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요한27,3참조) *띵, 사람의 모든 것은 *썩어 없어질 것이다.(호폴로스 아폴리옴- 멸망, 파괴하게 하다)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마음)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 새들에게는 씨를 주지 않으셨다. 짐승의 먹이, 풀을 먹이신 것이다. 사람은 귀(貴)하기에 씨(말씀)를 주셨다.
(창세1,29-30)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씨는 하늘의 양식을, 풀은 땅의 양식을 모형(模型)한다. 씨는 영(靈)의 양식인 말씀이며, 풀은 육(肉)의 양식인 사람의 말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을(신명8,3) 생명의 양식으로 마음 곳간에 담으면 되는데, 말씀을 선악의 사람의 말로 먹었기에 아담처럼 ‘부끄럽다’ 스스로 판단해, ‘걱정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 너희 ‘자신의 본질(本質)을 알아라.’ 하신다. 너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흙의 티끌, 그 ‘없음의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 하느님의 뜻을 떠난, 솔로몬이 누린 인간의 온갖 영화(榮華)가 짐승들의 옷보다 못하다는 말씀이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 하느님이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다.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다.
(이사46,4) 4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 죄인(罪人), 아담(사람)에게 무엇을 입혀 주었는지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죄인(罪人), 아담(사람)을 되살리시기 위해, 흠 없는 깨끗한 어린양을 대신 죽이셔서, 손수 만들어 입히신 가죽 옷, 구원(救援)의 옷이다.
(요한1,29)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이시다. ‘씨, 제라’는 후손(後孫), 아들이라 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다.(요한1,14)
그러니까 보이는 예수님 안에 보이지 않는 구원의 말씀, ‘죄(罪)를 덮어주시는 진리(眞理)의 옷’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먹고, 입는 것이다.(로마13,14)
그런데 아담처럼 썩어 없어질 땅의 양식을 위해 헛된 수고(愁苦), 열심, 자기 의(義)로 걱정을 하며 헛된 신앙을 살고 있음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말씀, 씨 없는)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말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하느님의 ‘의(義)의 통치(統治)로 돌아가라,’ 들어가라는 말씀이다. 곧 우리의 의(義), 보물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골로2,3 로마3,24-25 참조)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 내일은 ‘피조물의 시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늘의 시간이다. 곧 하늘의 일은 하늘이 한다는 것이다.(이사46,4) 사람의 수고(愁苦)와 열심(熱心), 의로움으로 가는 하늘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에페2,8-9 로마10,1-3 참조)
(시편103,8-17) 8 주님(야훼)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신다. 9 끝까지 따지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며 10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신다. 11 오히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그분의 자애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굳세다.
12 해 뜨는 데가 해 지는 데서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우리에게서 멀리하신다. 13 아버지가 자식들을 가엾이 여기듯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니 14 우리의 됨됨이를 아시고 우리가 티끌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15 사람이란 그 세월 풀과 같아 들의 꽃처럼 피어나지만 16 바람이 그를 스치면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17 그러나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머무르고 당신의 의로움은 대대에 이르리라, (~아멘)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보물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심을, 우리 안에서 늘 동행하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말씀 안에서 근심, 걱정을 하지 않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소서. 진리로 기쁨의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