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간음(奸淫) (마태5,27-32)

2025. 6. 13. 오전 7: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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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3일 금요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간음(奸淫) (마태5,27-32)


   


1독서<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하느님 앞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2코린4,7-15)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답송>시편116,10-11.15-16.17-18(17)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나 참으로 비참하구나.” 되뇌면서도 나는 믿었네. 문득 놀라 나는 말하였네.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 주님, 저는 당신의 종.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주님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복음<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마태5,27-3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제1독서(2코린 4,7-15)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룻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7)


앞선 코린토 후서 4장 1-6절에서 예수님만을 진실하게 증거한 사도로서의 기본 직분 수행 자세에 대해 피력한 바오로는, 이제 코린토 후서 4장 7절이하 15절에서 약함 속에서 고난을 무릅쓰고 사도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목 자세 대해 설명한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이 보물(보배)' 이란 무엇을 지칭할까? 어떤 이는 코린토 후서 4장 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직분' 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문맥상 바로 앞에 나오는 코린토 후서 4장 6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이 값진 보물이 값싼 질그릇 속에 담겨 있는 것으로 묘사하며 양자 사이에 극명한 대조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질그릇 비유 로마서 9장 20-23절에서 바오로가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과 피조물의 연약함을 효과적으로 대조하기 위해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사야 29,16; 30,14; 45,9; 64,7; 예레18,6 ; 19,1-11;  애가 4,2; 욥기10,9 등에서도 나타난다.


물론 각각의 비유는 문제의 차이에 따라 그 의미나 강조점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질그릇 비유의 상징어는 그 그릇의 가치가 형편없다는 뉘앙스가 담겨져 있다.


Manson은 바오로가 언급한 질그릇을 두고 '코린토의 잡화점들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값싸고 부서지기 쉬운 도기 등잔' 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이러한 부서지기 쉬운 도기 등잔과 같다.

왜냐하면,그들은 그들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빛의 원천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유래된 빛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해 이 구절의 의미를 확실하게 밝혀준다.


즉 바오로는 질그릇이란 표현을 통해 인간의 육체가 지닌 한계성과 연약성을 설득력있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Hughes는 이 비유를 로마 군대의 승전 행진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코린토 후서 2장 14절이나 코린토 전서 4장 9절과 같이,  로마 군대의 승전 행진의 장대한 광경과 관련된 비유를 사용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무리한 견해는 아니다. 그에 따르면, 로마 군대의 승전 행진에 있어서 금과 은을 질그릇에 넣어 운반하는 것은 당시 관례였다.


B.C.167년 마케도니아 전투에서 Aemilius Paulus가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은화를 담는 750개의 질그릇을 운반한 일이 있었다 (Plutarch).

이러한 사실로, 자신이 소유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이 자신의 연약한 육체에 담겨 있다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을 자각한 바오로에 의해, 얼마든지 차용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견해를 취하든 그러한 사실은, 바오로의 복음 선교 활동이 연약한 자신의 인간적인 본성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지식의 빛을 받아 그것을 전하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울 자로 여기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높이 드러내실 분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과 비천함을 깊이 아는 자일수록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무한하심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0)


코린토 전서 15장 31절에서 바오로는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라고 언급하며 시편 44장 23절의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라는 예언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체험적으로 고백한 적이 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요한 복음 15장 20절에서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라고 말씀하셔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고통에 필연적으로 동참하게 될 것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죽음을' 에 해당하는 '네크로신'(nekrosin)은 단순히 '죽음'(dying or death) 그 자체만을 가리키는데,  본 단락에서는 고난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뿐 아니라 그때 수반된 죽음의 고통까지 말한다.


또한 '짊어지고 다닙니다'에 해당하는 '페리페론테스'(peripherontes)는 '지니고 돌아다니다' 라는 의미를 지닌 '페리페로'(periphero) 현재 분사 능동태이다.

이것은 '항상'으로 번역된 '판토테'(pantote; always)란 표현과 더불어 바오로가 어디를 가든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항상 죽음의 고통을 지니고 다녔음을 말한다.


바오로는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갈라6,17)하고 말한 것처럼 그의 경험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가 당했던 죽음의 고통에 날마다 동참하는 삶 살았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위대성은 이처럼 예수님의 삶을 철저하게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실천한 데 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목적의 의미를 나타내는 '히나(hina)가정법' 구문인 본문은 상반절에 나타난 바오로 사도의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즉 바오로가 날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죽음의 고통에 몸소 동참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 을 그 몸에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예수님' 으로 번역된 '투 이에수'(tu Iesu)는 소유격으로서 바오로 자신의 생명이 바로 예수님께서 구원해 준 생명이며  예수님께 속한 생명임을 강조한다.

즉 '생명도'로 번역된 '헤 죠에'(he zoe)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본질적으로 새로운 생명 곧 부활의 씨앗이 되었음을 함축한다.


또한 '드러나게'로 번역된 '파네로테'(phanerothe)는 '분명히 나타내다' 라는 의미를 지닌 '파네로오'(phaneroo)의 수동태이다. 여기서의 수동태는 드러나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에 의해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필리3,10).


예수님께서 질그릇같이 연약한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고통을 담아냈듯이 그와 일치한 그리스도인들 역시 현세에서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 고통의 길은 바오로가 진술했듯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비록 죽음의 상황에 처해지더라도그 고통에의 동참은 결코 무익하지 않다. 이것이 무익한 인내가 아닌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부활의 첫 열매를 쫓아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 것이며 그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부활의 생명이 궁극적으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녹]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하느님께서는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강한 바람에도, 사나운 지진에도, 뜨거운 불 속에도 주님께서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불이 지나간 뒤,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엘리야를 부르십니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에 주님을 위해서 열정을 다하여 험한 길을 걸어왔고, 이제는 홀로 남아 적들에게 목숨마저 빼앗길 위험에 놓인 엘리야의 고백과 한탄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또 다른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길을 돌려 다마스쿠스 광야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거든 …….”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서 끊임없이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예언자는 늘 하느님과 대화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구원을 위해서 죽기까지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예언자의 역할은 오늘날 주님께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선택된 우리를(필리 2,15 참조) 통해서 계속됩니다.

 

오늘 복음은 간음과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단호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이는 여섯 개의 대당 명제(마태 5,21-48 참조) 가운데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드러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탐욕을 경계하십니다. 죄의 충동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속과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이어서, 눈과 손은 마음먹은 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기관인데, 예수님께서는 온몸이 죄를 짓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이 ‘육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키게 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풀 수 없다는 혼인의 불가 해소성의 바탕 위에 남편과 아내가 서로 충실한 신의로 혼인 유대를 계속 이어 가기를 바라십니다.

육의 탐욕이 넘쳐 나고, 거룩해야 할 가정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어지러운 이때에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행복 선언을 떠올리며 용기를 냅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3.8).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마음을 마음대로 못하는게 인간이라면 그 죄는?

 

(마태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죄의 뿌리를 말씀하시는 것, 뿌리는 그 어떤 조건과 상황이 되면 언제나 뚫고 나오기에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아브라함은 기근 때문에 부인 사라를 팔았고, 야곱은 맏아들의 권리 때문에 형과 아버지를 속였고, 모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이집트인을 죽였다. 그리고 다윗은 밧쎄바를 범한후 그 죄를 숨기려 충신 우리야를 죽였고 베드로는 예수님(사형수)의 제자라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모두 자신들의 욕망, 그 죄의 뿌리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 속마음을 숨기려고 종교행위로, 봉사활동 등으로 가리며 착한 척하며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시편53,2-4) 2 어리석은 자 마음속으로 ‘하느님은 없다.’ 말하네. 모두 타락하여 불의를 일삼고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 3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들을 굽어 살피신다, 그 누가 깨달음 있어 하느님을 찾는지 보시려고. 4 모두 빗나가 온통 썩어 버려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 하나도 없구나.

= 왜 이 말씀을 하시는가? 모든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의존해야 하는 곧 그분의 사랑에 의존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피조물임을 깨달아 하느님께 돌아오라 하시는 것입니다.

 

(코헬3,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그 짐승의 먹이통으로 오신 예수님~

(루가2,11-12)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신 것(요한6,35)입니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 눈과 손으로 죄를 지은 여자~

 

(창세3,4-6)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느님처럼’이라는 유혹을 먹고 곧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위해 살고 싶은 유혹을 받고~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 자신의 뜻을 위해 살고 싶은 그 욕망, 그 음욕으로 쳐다본 눈, 그리고 따먹은 손. 그 욕망의 눈을 빼어 던져버려라. 그 음욕의 손을 잘라 버려라. 하시는 것입니다.

오른 눈과 오른 손, 오른 나라 하느님나라를 뜻하는 그 오른 나라를 따르겠다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

다른 나라- 세상은 선과 악이 기준이 되기에 나에게 심판과 죽음을 주지만, 오른 나라- 하느님 나라는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곧 선이신 예수님께서 내 악을 덮으시기 위해 대신 죽으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어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 이혼장- 케리투투(분리하는 책)

그 오른 나라의 하느님의 뜻과 상관없이 하느님 나라를 선악으로 분리시켜 말하게 되면, 하느님의 말씀, 성경책이 이혼장이 되는 것이지요.

 

(묵시22,18-19) 18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보태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보태실 것입니다. 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에서 무엇을 빼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거룩한 도성에서 얻을 그의 몫을 빼어 버리실 것입니다.

= 하느님의 덮으심, 대속의 계명을 인간들의 도덕과 윤리의 계명으로 만들어 버리면 재앙, 지옥입니다. 그것이 분륜입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 분륜으로 이혼한 여자, 곧 남편이신 하느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여 이혼당한 그 간음녀와 혼인하는 남자 역시 그 여자의 간음을 받아들인 것이니 똑같이 간음한 것입니다.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의 뜻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던 그 간음, 그 여자가 이혼당할 불륜녀라는 것입니다. 그 여자의 간음을 받아들인 남편 아담 또한 간음을 한 것이지요

 

그 남편 아담은~(창세2,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신 말씀을 듣고 뱀의 유혹도 받지 않았는데~ 왜 여자의 간음죄를 받아 먹었을까요?

두가지로 묵상할 수 있겠어요 ➀하나는 아담 또한 여자와 같은 욕망의 우리의 모형이라는 것과 ②다른 하나는 간음으로 죽어야 할 여자를 살리기 위해 그 여자의 간음을 머고 대신 죽으시는 예수님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前者의 자신의 욕망(음욕) 그 뿌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後者의 대속의 피로 살리시는 분을 따라야 하는 것(히브10,19-22 참조)이지요.

 

(1코린15,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필리2,15-16 참조) 

아멘.

 

 

 

 

 

 




20250613일 금요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마태오 복음서 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계명을 선포하실 때의 의도를 바탕으로 계명을 다시 풀이하시면서 법의 문자보다는 그 정신과 목적을 상기시키시고 인간을 위한 가치를 옹호하십니다.

어제 복음에서 살인하지 마라.’라는 계명을 새롭게 밝혀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간음해서는 안 된다.”(마태 5,27)라는 계명을 새롭게 읽으십니다.

죄는 행동에 앞서 마음에서 먼저 동의가 이루어지지요.

죄를 짓기로 마음먹고 나서 실행에 옮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회 예절에서 말과 행위에 앞서 생각으로 지은 죄를 고백합니다.

실정법은 행동의 결과를 따지지만, 신앙의 법은 마음과 의도를 더 중요시합니다.

훌륭한 심리학자이기도 하신 예수님께서는 행동에 앞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간음을 단죄하시면서 죄의 겉모습에 매이시지 않고 그 뿌리를 보십니다.

뿌리를 잘라 내지 않으면 죄의 나무는 계속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 간음으로 이끄는 유혹은 흔히 자신의 쾌락만을 좇아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정결한 마음에 깃든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유롭게 합니다.

죄짓게 하는 눈이나 손을 잘라 버리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죄의 무서움을 기억하고 계명에 대하여 더욱 진지한 태도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새롭게 풀이하시면서 외적인 행위보다 내적 상태, 곧 순수한 마음과 진실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시대의 현실 안에서 전통을 본뜻과 본목적에 맞추어 해석하는 창의적 충실성은 지금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십계명을 初等學校 수준으로 격하시키지 말자.

 

복음(마태5,27-3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 마음에 음욕(淫慾)을 품지 않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너희는 간음(姦淫)한 자들이고 간음을 하고 있는 자들이다’ 라는 말씀이다. 직역을 하면, ‘여자 안에 음욕을 향해 그것으로 보는 자 마다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이다.

간음(姦淫 모이코스), 행동적인 간음뿐 아니라 불신앙(不信仰), 불경건(不敬虔)을 뜻한다.(묵시2,20-23참조)

어제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형제가 되시어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속죄 제사가 ‘단 한 번에 다 이루어졌는데’도 내 소원, 의(義)를 위하여 계속 습관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살해하는 살인죄(殺人罪)라고 공부했다.

간음 또한 마찬가지다.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新婦)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하느님나라를 아들의 혼인잔치에 비유하신 것이다.(마태22,2) 성경(聖經) 또한 혼인으로 시작해서 혼인(婚姻)으로 끝을 맺는다.

 

(창세2,21-23)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 잠은 죽음을 뜻한다. 남자의 죽음이 여자를 낳는다.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 생명을 얻는 우리다. *‘너는 나다’로 한 몸이라는 것이다.

 

(창세2,24-25)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둘이 한 몸이 된다. 25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 아담은 부모가 없다. 곧 외아들인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를 떠나 죄인(罪人)들인 우리와 혼인을 하신다는 말씀이다.

 

(묵시19,7-8)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우리의 인생, 역사 동안 신부의 모습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아마포 옷을 입는 것이 성도(聖徒), 곧 신부인 우리의 의로운 행위다. 내 이름을 빛내려 했던 그 ‘나를 버리는, 비우는 작업’이 ‘신부 수업’이며 신앙생활이다. 아마포 옷은 대제사장 옷이며 대제사장으로 죽으신 예수님의 수의다.(탈출28,39 요한20,5-)

그러니까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예수님을 입고, 곧 그분만을 믿고 사랑하며 그분의 뜻, 말씀, 길을 따라 함께하는 것이 의로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뜻, 의(義), 그 길을 떠나 내 뜻, 욕망인 현세(現世)의 것을 탐하는, 곧 나를 사랑하는 길을 간다면, 그것이 우상(偶像)을 섬기는 간음인 것이다. (에페5,5 콜로3,5)

곧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존재가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이 간음이다. 그 다른 존재가 결국은 ‘우리, 나 지신’이다. 모든 인간은 나 자신만을 사랑한다. 하느님의 것을 얻어내기 위해 사랑하는 척, 경배하는 척하는 간음자(姦淫者)들이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던 사이였는데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뱀의 유혹 때문이다. 그래서~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 하느님처럼 살고 싶은, 곧 선악의 판단을 스스로 하여 내 뜻, 의로움을 위해 살고 싶은 욕망(慾望) 때문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따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창세3,5-6) 5 너희가 그것(善惡果)을 먹는 날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그도 그것을 먹었다.

하느님의 말씀계명을 인간들의 뜻슬기욕망을 위한 선악(善惡)의 기준으로 보고먹지말라는 말씀이었는데 뱀의 유혹(誘惑)을 먹었다간음을 먹은 것이다.

그런데 왜 오른손오른 눈일까오른 쪽은 올바른옳은의 하느님의 뜻나라를 의미한다그러니까 하느님의 흉내를 내는 가짜곧 뱀(사탄)에게 받은 거짓 가르침간음하게 하는 그 잘못된 말을 던져 버리라는 말씀이다.

 

(2코린11,14-15) 14 놀랄 일이 아닙니다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15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2티모4,3-4)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티도1,14) 14 유다인들의 신화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 하느님의 말씀을 초등(初等), 세상 수준으로 격하(格下)시켜 보고, 먹은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의 말, 계명을 버리지 않으면, 곧 부인(否認)하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地獄)이다. <도덕과 윤리, 계명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 이혼장(케리투투-분리하는 책), 성경을 인간 수준의 선악의 책으로 보고, 먹으면, 성경(聖經)이 이혼장(離婚帳)이 된다. 말씀이 심판의 법이 되어 구원에서 분리 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이 악을 품고 생명을 주는, 선이신 예수님께서 악인들의 죄를 품고 죽어, 당신의 생명을 주는 ‘진리의 책’으로 보면 성경이 ‘생명의 책’이 된다. 성경은 그 예수님만이 기록되어 있다. (루가24,44 오 다수)

 

(묵시13,8) 8 세상 창조 이래 땅의 주민들 가운데에서살해된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믿지않은 자들은 모두 그(사탄)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 뱀, ‘나하쉬’의 뜻- 말이 없음, 아랫것으로 곡해(曲解)해서 말하다. 곧 하느님의 말씀, 진리가 없어 세상의 말, 법으로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모르는 이들에게 사탄의 말은 천사의 말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달콤한 말은 예수님과 ‘분리(分離)’시킨다. 그 말이 불륜, 간음으로 끌고 간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 예수님과 분리되어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사는 그 불륜(不倫)은 그 자체가 버려진 것이며, 이미 이혼인 것이다. 그 외에 ‘이혼은 간음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인데, 예수님과 분리되는 것이 간음이듯, 혼인으로 분리시키는 그 자체가 간음하게 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뜻을 떠난 그 간음 녀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간음으로 간음을 맺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간음하지마,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은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나는 너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야, 너도 나를 떠나지 마”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유언(遺言)~

(요한15,4)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심판인 율법과 어둠인 세상에 묶여 살 수 밖에 없는 저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빛의 나라하늘을 현실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저희 모두의 마음에 성령이 불을 놓으시어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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