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6일 월요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오5,38-42)
제1독서<우리를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2코린6,1-10)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6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9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10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화답송>시편98,1.2-3ㄱㄴ.3ㄷㄹ-4(◎2ㄱ)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복음<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오5,38-4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코린6,1-10)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 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후서 6장 2절에서 자신이 전개하는 논리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약 성경을 인용한다. 여기서 인용한 구약 성경은 이사야서 49장 8절이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이것은 본래 주 하느님께서 예언자 이사야에게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 생활이 종식될 것이라는 의미로 주신 말씀이다.
바오로 사도가 이 구절의 인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 하느님의 구원이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은혜의 때라는 것이다.
코린토 후서 6장 2절 후반부의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서 '은혜로운'으로 번역된 '유프로스덱토스'(euprosdektos)는 '잘'(well)을 뜻하는 접두사 '유'(eu)와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프로스데코마이'(prosdechomai; accepted)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잘 받아들여지는', '받아들일 만한' 이란 의미이다.
원문상으로는 '성도들이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을 받으실 만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베드로 전서 2장 5절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라는 구절에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과 같은 의미이다.
코린토 후서 6장 2절 상반절의 인용구인 '은혜로운 때'에 해당하는 '카이로 덱토'(kairo dekto) 역시 '받으심의 때'로서, 후반절의 '카이로스 유프로스덱토스'(kairos euprodektos)와 구조와 의미가 동일하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지금'(nyn; 뉜; now), 즉 '복음으로 화해하게 만드시는 때'는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때이며, 하느님께서 친히 정하신 구원을 베푸시는 날인 것이다.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께서 받으시는 바로 이때에 그분의 화해의 요청을 듣고,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는 영혼은 복된 자인 것이다.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여섯 가지 대당 명제(지난주 목요일 묵상 참조) 가운데 다섯 번째 가르침에 해당하는 오늘 복음 말씀은 복수에 관한 규정을 다룹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탈출기의 전체 구절은 이렇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21,24-25).
동태 복수법이라 일컫는 이 규정은 잔인한 보복을 강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법의 취지는 지나친 보복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상해를 입은 사람이 복수심에 불타서 자신이 입은 피해 이상의 보복을 벌일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합당한 보복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규정임에도,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지닌 폭력성을 지적하시며 아예 복수를 포기하라고 주문하십니다.
오히려 자신의 오른뺨을 친 사람에게 다른 뺨마저 내주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오른손잡이임을 감안하면, 누군가의 오른뺨을 때리는 것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는 대단히 모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런 참기 힘든 모욕을 당하고도 그 사람에게 왼뺨마저 내밀라는 것은 상대방의 의사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고, 천 걸음을 함께 가자고 강요하는 자에게 이천 걸음을 가 주라고 하십니다.
달라는 대로 주고 바라는 만큼 꾸어 주라시니, 아니 그보다 더 얹어 주라고 하시니,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여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바라시는 모습이고, 그러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바로 하늘나라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주문의 밑바탕에는 어제 우리가 함께 묵상한 말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10,8).
거저 얻었기에 남에게 주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저 주는 사람이 세상에서는 호구 취급을 받을지언정, 하늘나라에서는 큰사람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오늘은 ‘짝을 찾아라’ 하신다.
(마태5,38-4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 레위기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讎法)이다. 무조건 참으라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악인- 하느님의 뜻인 덮으심, 그 진리의 생명의 말씀을 사람의 뜻, 욕망의 눈으로 보고 선악의 말로 하는(창세3,5) 그 거짓 말(혀, 이)을 하는 아담과 그의 후손들 이다. 그 거짓말에 넘어가 하늘의 진리, 생명의 말씀을 잃어버린다.
(잠언25,18) 18 이웃에게 해로운 거짓 증언을 하는 자는 방망이와 칼과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시편57,5) 5 저는 사자들 가운데에, 사람을 집어삼키려는 것들 가운데에 누워 있습니다. 그들의 이빨은 창과 화살,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입니다.
(마태7,15)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말로 착하게 양의 옷차림을 한 사람이 하느님의 오른 말씀, 진리를 말하면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 핍박한다. 때린다. 그때 다른 뺨, 곧 진리로, 예수님으로 돌려대라는 말씀이다.
선악의 그 양의 옷차림을 한 이들이 재판을 건다.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속옷,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으로 받고~
(창세3,7)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 알몸(부끄러움, 죄)을 가리려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 입은 옷, 무화과나무 잎이다. 아담의 그 선악의 행위를 자기열심, 의, 율법의 옷, 속옷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개짐, 더러움, 죄라고 한다. 부끄러운 죄를 가릴 수,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이사64,5 마태6,33 로마10,1-참조) 모든 죄는 깨끗하고 흠 없는, 정결한 피로만 씻겨 진다. 없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씻긴 이들을 거룩하다, 의롭다 하신다. 피의 권위, 능력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담에게 정결한 흠 없는 어린양을 죽여 피의 새 계약인 겉옷을 입혀주신다.(창세3,21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곧 예수께서 십자나무에 대속으로 달리시어 죽으시고 입으셨던 옷(아마포-요한19,40) 그것이 의로움의 옷, 혼인 예복, 겉옷이다.
(묵시19,7-8)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생명, 구원의 길임을 그 하느님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도의 의로운 행위, 행실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담(사람)의 무화과나무 옷, 그 자기 의로움, 착한 행실을 요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나무의 의로움, 그 겉옷으로 주어라 하시는 것이다.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 *천 걸음(밀리온 에이스) 밀리온-천. 에이스-하나. *이천걸음( 듀오-짝) 직역을 하면, “누군가가 하나의 천(1000) 안에서 억지로 하게 하거든 그 천의 짝으로 가 주어라” 앞에 밀리온 에이스(천)의 짝으로, 그 짝의 천으로 가 주어라 하시는 것인데, 천(1000)은 하나(1)를 뜻하고 하나는 하느님을 뜻한다. 그리고 억지로 하는 이들의 대표가 종(從)이다. 하느님의 진리, 그 하나의 말씀을 인간들의 선악의 두 법으로 받아 그냥 해 버리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라 하신다. 그래서 선악의 기준으로 열심히, 자기 의로움을 위해 살았던 그 유대인들에게 종이라 하셨던 것이다.(요한8,31-36참조)
그러니까 율법(제사와 윤리)을 “천으로, 억지로 하게 하거든 짝인 진리(십자가의 예수)로 가주어라, 인도해라” 하시는 것이다.
(이사34,16) 16 주님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아라. 이것들 가운데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제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그분께서 친히 명령하시고 그분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기 때문이다.
= 그것이 또한 창조의 원리이다. 저녁(율법)이 되고 아침(진리)이 지나니 날(생명)이 되었다. 저녁의 짝이 아침이다.
(신명32,1-2) 1 하늘아, 귀를 기울여라. 내가 말하리라. 땅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라. 2 나의 가르침(말씀)은 비처럼 내리고 나의 말(말씀)은 이슬처럼 맺히리라. 푸른 들에 내리는 가랑비 같고 풀밭에 내리는 소나기 같으리라.
= 아래에 내려주신 말씀(물)으로 위, 하느님의 뜻(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아랫 말에 갇혀버리면 죽음(死亡)이라는 것이다. 아랫것으로 위에 것을 깨닫지 못하고 아래에 갇혀 버리면 그것을 땅, 어둠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아랫것으로 위에 것을 깨달으면 빛, 하늘이 된다. 그래서 짝이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 율법은 하느님을 설명하는 것이기에 법으로 받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과 믿음과 짝하지 못하는 법(제사와 윤리)으로 지키려 했기에 신약이 구약의 율법을 죄라고 하신 것이다.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 속옷을 달라는(아이테오-빚갚아)이에게 겉옷, 진리를 밝히 보여 주라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먼저 약속하신 그 창세전 약속, 빚 갚으세요, 넘겨주세요. 라는 것이다.(에페1,4참조)
(마태21,22)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 하느님의 뜻인 우리 구원의 약속, 계약, 그 복, 선물을 구하면 반드시 들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꾸려는 (다네이조 - 선물) 선물로써의 빚을 달라고 하는 이에게 주어라 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들을 문자 그대로 도덕과 윤리로 받아 말하면 죽음을 주는 거짓말로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비록 뼈를 깎는 희생이 요구 되더라도, 언제나 봉사하고자 하는 열의 속에 살아 가지고, 그래서 이웃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상관없이 사랑한다고 했을 때,
하느님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어 그의 영을 구하는, 살리는 그 사랑의 봉사가 아니고, 인간들의 선악의 말을 짝으로 하여 뼈를 깎는 희생으로 열심한 봉사를 하자고 한다면 거짓말, 거짓행위를 하는 것이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영원한 호자이신 성령님! 저희 닫힌 눈과 입을 열어주시어 율법과 세상과 짝하여 사는 저희를 진리의 말씀과 짝하여 살게 하소서. ~아멘!!!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복음(마태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38~41)
마태오 복음 5장 38절에서 구약의 형법 규정(탈출21,24; 신명19,21; 레위24,20)과 고대 형법의 근간을 이루었던 '동태복수법'(lex talionis)의 내용이 소개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절대 불변의 율법이며, 고대 세계에 널리 통용되던 정의 구현의보루라고 생각되었던, 악(惡)을 행한 자에 대하여 동일하게 보복을 가하여 징계하는 '동태복수법'을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해석해 주신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에서 '맞서지'로 번역한 '안티스테나이'(antistenai; resist)의 원형 '안티스테미'(anthistemi)는 '반대하다', '대신하다'는 뜻이 있는 전치사 '안티'(anti)와 '두다', '세우다' 등의 뜻이 있는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로서 '~에 대항하여 일어서다'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복수와 더불어 법정에서의 공방까지 가리킨다.
그리고 '악인'으로 번역된 '포네로'(ponero; evil person)의 원형 '포네로스'(poneros)는 마태오 복음 5장 37절에서 '악'으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단어로서 '악을 행하는 자', '비열한 자'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신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비열한 상태에 대해 그 어떠한 복수도 삼가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피해 보상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교훈으로서 '동태복수법'을 절대 진리로 알고 있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29절에서 '치다'로 번역된 '라피조'(rapizo; strike; smite)는 막대기로 '때리다'(마태26,67)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비록 손으로 때리는 것이지만, 큰 고통을 줄 만큼 매우 세게 쳤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치거나 뒤에서 손바닥으로 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대 풍습에서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린다는 것은 상대방이 모르게 불의의 공격을 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럴 경우 다른 뺨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실제로 왼쪽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함으로써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는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40절의 '너를 재판에 걸어'에서 '재판에 걸다', '송사하다'로 번역되는 '크리노'(krino; sue at the law)는 '재판하다'는 뜻도 있고, '비난하다', '헐뜯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반드시 재판을 염두에 둔 상황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이 구절은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까지 가지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애덕을 베풀라는 뜻이다.
그 당시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 것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기에 전당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없이 양도하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마태오 복음 5장 41절에서 '억지로 ~가게 하거든', '가자고 강요하거든'로 번역된 '앙가류세이'(anggareusei; force~to go; compel~ to go)는 페르시아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강제로 봉사하게 하다'는 뜻을 지닌다.
즉 페르시아 국왕이 조서를 전달할 때 사람들을 징발하여 짐을 지게 만들거나 문서를 전달하게 한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양민 징발 규정이 적용되었고, 로마의 식민지 유다에서도 시행되었다.
마태오 복음 27장 32절에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천 걸음'에 해당하는 '밀리온 헨'(milion hen; one mile), 즉 '오리'를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기꺼이 '오리'를 더 동행해 주는 너그러움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오늘 말씀은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여야 할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그것을 묵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2025년 06월 16일 월요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바보!” 오늘 복음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듣게 될 말입니다.
그는 누구나 이용하려 드는, 이른바 ‘밥’이나 ‘봉’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 원리에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논리로는 바보로, 모자란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자신을 “바보야!”라고 부르셨지요.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그렇게 모두에게 밥이 되어 주시다가 악한 자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께서 세상을 이기신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무력함이 악을 이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마태 5,38)라는 ‘탈리오의 원칙’을 뛰어넘어 악의 고리를 끊으십니다.
동태(同態) 복수법을 동태 포기법으로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악에 악으로 대응하면 결국 악만 남기 마련이니 상대의 악에, 몰염치한 요구에 선과 관대로 대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비폭력은, 비겁하고 무기력한 순응이 아니라 용감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한 군인에게 뺨을 맞으셨을 때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요한 18,23) 하신 말씀에서도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과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이 말씀은 당신께서 겪으신 부당함에 맞서 정당하게 항의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단순히 인내하고 양보하라는 것이 아니라, 용감하게 나서서 정의와 진리를 옹호하고 약자들을 위하여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라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물러섬이 비겁함이 아니라 사랑이 되고, 우리의 저항이 폭력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를 지키는 수단이 되도록 식별과 지혜의 은총을 청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복음(마태5,38-4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 동태(同態)보복(報復)법(法)-☞ 동일한 방법으로 보복(報復)하는 것,
(레위24,19-20) 19 동족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은 자기가 한 대로 되받아야 한다. 20 골절은 골절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자신도 상해를 입어야 한다.
= 19절 동족(同族 아미트), 말씀을 가지고 교제하는 동족. 이웃에게 상해(카탄 뭄)를 입힌 사람은 ,<카타-넘겨, 뭄- 점, 흠, 더러움> 곧 말씀을 점, 흠으로 넘겨준 사람은 그대로 되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점’은 날때부터 가지고 나온, 생전의 것, ‘흠, 더러움’은 태어난 후, 그 생전의 것으로 만들어낸 것을 말한다. 하느님은 그 점과 흠, 더러운 제물은 안 받으신다.
그러니까 사람(아담)으ㅟ 본능인 선악 구조에 의해, 후에 만들어 낸 것들을 하느님은 받지 안으신다는 것이다. 19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동태보복법이 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에 관한 언급이다. 곧 깨끗한 것이 아닌, 더러운 것을 가진 자가 그 더러운 것을 이웃에게 넘겨주는 자들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실까를 설명하는 말이다.
죄‘를 알게 하는 선악의 율법주의’로 넘겨주면 그대로,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눈은(아인)- 샘, 말씀을 뜻한다.
(묵시5,6) 6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 일곱은 안식(安息 싸바스-일곱번 말하다)의 말씀이다. ‘눈에는 눈으로’-네가 한 말, 그대로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곧 점, 흠 있는 눈의 말을 하면, 더러운 그대로 점. 흠 없는 말을 하면, 깨끗한 그대로 해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보고, 듣고, 말한 대로 된다는 말씀이다.
선악의 말씀으로 보고, 말하면 심판으로,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으로 보고, 말하면, 하늘의 용서, 구원으로 갚아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잠언25,18-19) 18 이웃에게 해로운 거짓 증언(진리의 말이 아닌 것)을 하는 자는 방망이와 칼과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19 환난을 당할 때(진리)에 배신자를 믿는 것은 부서지는 이요 비틀거리는 발과 같다.
(마태8,11-12)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율법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행위를 가치로 여기며, 진리의 말씀을 지키지(킵-마음에 간직)않는 그 율법 자들은 씹을 말씀(씨)이 없어 이빨끼리 부딪치게 되는, 그 이를 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 악인(惡人 포노레스)- 율법의 수고로 고통스러워 아파하는 자, 그 악인에게 맞서지 말고, 그가 너의 오른 뺨(오른-올바른), 곧 네가 간직한 오른 그 진리의 말을 치거든, 다른 뺨, ‘참 진리이신 십자가의 예수께로 돌려 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대신 맞으시고 살리시겠다는 것이다.
(이사50,6)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1베드2,21-25) 21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22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23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25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푸람나우- 속았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 ‘돌아왔습니다.’- ‘에피 스트레퍼.’ 본문,‘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와 같은 단어다.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 속 옷, 아담(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고,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판단(判斷)해, 그 알몸을 가리려 스스로 만들어 입은 ‘무화과나무 잎’이다. (창세3,7) 아담의 그 행위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신의 알 몸, 곧 하느님의 창조 일을 부족한, 부끄러운 것으로 스스로 판단한 교만(驕慢)인 것이다. 그것이 율법주의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를 무화과나무 열매에 비유하신 것이다.
‘씨도, 열매도 아닌 것이 열매인 척’하는 위선(僞善), 교만(驕慢)을 뜻한다. (우리가 먹는 무화과는 열매가 아닌 꽃이다.) 곧 아담(사람)이 선악의 눈으로 보고, 따 먹고, 스스로의 수고(愁苦), 의(義)로 만든 옷은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는 속옷이다. 그래서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판단하여 부끄러운(죄) 존재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담에게, 그의 부끄러움(죄)을 하느님께서 덮어주신다.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아담(사람)을 살리시려, 어린양을 죽이시고 남긴 가죽으로 만든 옷이다. 곧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우리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벗어 놓으신 그분의 수의(囚衣), 아마포 옷이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는, 덮을 수 있는 겉옷, 가죽 옷이다.
(요한20,6-7)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 예수님의 수의(壽衣) 아마포를 입는 것이 의(義)이다.
(묵시19,8)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선교(宣敎)는, 이웃 사랑은, 이 아마포 옷을 진리의 옷, 겉옷을 주는 것이다. *진리(眞理)는 우리의 말로도, 율법으로도, 자연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이 속옷과 겉옷을 함께 주는 것이다. (로마1,20참조)곧 선악과(善惡果)로 생명을 설명하고, 악으로 선을 설명하며, 죄로 의를 설명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시(啓示) 방법이다.
이 땅에는 의(義), 선(善)은 없고(마태19,17), 악(惡), 죄(罪)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 죄로 선, 의를 깨달았다면, 받았다면 왜 죄악(罪惡)이 나쁘냐? 하는 것이 사도 바오로의 논리(論理)다. 그래서 바오로가 ‘율법은 나쁜 것이다.’ 하다가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 좋은 것이다’.(로마7,7-13)_
죄가 철저히 죄가 될 때,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늘의 용서, 생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모든 것을 생명 하나로 갖는 것이 ‘모노게네스’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그 하나를 가질 수 없기에 ‘하나’를 가지신 하느님의 외아들(모노게네스)을 겉옷으로 입는 것이다. 그분 안으로 들어가 ‘하나를 갖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를 전해주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 천(밀리온)+ 하나(에이스) 이천(듀오-뛰엣, 짝), 곧 “율법을 갖은 이가 율법을 강요하거든 그 율법의 짝인 진리 하나를 주어라“ 하시는 것이다. 곧 사람이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만들어 입은, 그 자기의(自己義)의 옷, 그 속옷을 요구하거든, 짝인 ‘그리스도의 의(義)의 겉옷,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어 살리라’는 말씀이다.(로마3,20-24참조)
(이사34,16) 16 주님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아라. 이것들 가운데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제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그분께서 친히 명령하시고 그분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기 때문이다.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 ‘자신의 알몸인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이 입혀주신다’. 그것이 신앙생활(信仰生活)의 핵심(核心)이다. 지옥(地獄)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간다. 그러니 ‘생명, 구원의 말씀을 달라는 이’를 물리치면 안 된다.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이시며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천주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저희 모두가 그리스도의 겉옷,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말씀)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