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5,43-48)

2025. 6. 15. 오전 6:59:06

글자

 

20250617일 화요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5,43-48)

   


1독서<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2코린8,1-9)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총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2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3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4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5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티토에게, 여러분에게서 이미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마저 끝내라고 권하였습니다.

7 이제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8 나는 이 말을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의 열성에 견주어 여러분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 확인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화답송>시편146,2.5-6ㄱㄴ.6-7.8-9(1)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내 한평생, 나는 주님을 찬양하리라. 사는 동안, 나의 하느님 찬송하리라.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 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네.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네.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복음<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5,43-4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코린8,1~9)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권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2-5)

 

코린토 후서 8장 2절은 당시 마케도니아 교회의 상황과 더불어 그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풍성한 헌금을 할수 있었던 이유를 언급한다. 마케도니아 교회는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기쁨이 넘쳤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아주 후한 헌금을 했다.

 

실제로 필리피서 1장 29절, 30절이나 테살로니카 전서 1장 6절, 2장 14절, 3장 3절과 4절, 테살로니카 후서 1장 4-10절 등등에서는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당한 환난의 많은 시련들이 거론되어 있다.

 

그들은 실제로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고난가운데 있었기에 다른 지역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인 아주 후한 헌금을 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그들은 결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가난 역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환난과 가난을 자신들의 기쁨과 부요함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았다.

 

코린토 후서 8장 2절에서 '인심'으로 번역된 '하플로테토스'(haplotetos)는 'liberality', 'generosity' 로 번역되는데, '관대함', '헌금', '연보' 라는 뜻이다. 이것은 타인들을 향한 열린 마음과 관대함을 뜻한다.

 

코린토 후서 9장 11절과 13절에서도 이 표현이 '후한 인심', '관대함' 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단연코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자신들이 겪고 있던 물질적 결핍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더 심한 결핍을 겪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그들의 열린 마음과 관대함 그 자체가 구제활동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 동기이며, 또한 그것이 그들 가운데에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중요한 표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태도는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자"(2코린6,10)의 모습을 지닌 바오로 사도의 삶의 태도와 동시에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내놓은 마르코 복음 12장 41절 이하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진정한 관대함이란 넉넉한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참된 자선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선의 가치는 결코 양이 아니라  희생의 기준에 의해서 축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가난한 온갖 시련 가운데서도 관대한 사랑과 열정을 보인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모습은  코린토 전서 16장 1-4절에서 사랑의 결핍이나 인색함을 보이는 코린토 교인들의 모습과 명백하게 대조가 된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헌금의 특성은 두 가지로 나온다.

 

첫째로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내놓았을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내놓았다. '힘이 닿는 대로'(kata dynamin; 카타 뒤나민)란 표현은 일반적인 헌금의 기준이다.

 

즉 헌금은 외부의 강요나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득에 대한 고려와 함께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남겨두고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이상으로'(para dynamin; 파라 뒤나민; '힘에 지나도록')내놓았다는 말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완전히 하느님의 손에 의탁하는 자세로 헌금했다는 것을 말한다(2코린12,9; 마태6,8.25-34; 필리4.19).

 

여기서 '이상으로' 번역된  전치사 '파라'(para)는 '~이상으로'(above), '~을 넘어서' (beyond) 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능력'(dynamis; 뒤나미스)의 범위를 초월하여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로 보냈던 것이다.

 

둘째로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타율이나 강제가 아니라 '기꺼이' 헌금했다. 여기서 '그들은 ~기꺼이' 로 번역된 '아우타이레토이'(authairetoi)의 원형 '아우타이레토스'(authairetos)는 '자기 자신' 뜻하는 인칭 대명사 '아우토스'(autos)와 '선택하다' 라는 뜻을 지닌 '하이레티조'(hairetizo)의 합성어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자기가 원한', '자발적인', '독자적인' 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가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궁핍하고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서 일부러 헌금을 부탁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참으로 놀라운 헌금 태도인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이러한 구제 활동 계획에 참여하기를 '간곡히 청했다'는 사실 있다(2코린8,4).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원문의 '메타 플레스 파라클레세오스'(meta polles parakleseos)를  '간곡히' 라고 번역했는데, 여기서 '폴레스'(polles; 심히, 너무도; much)가 포함되어 있어 헌금을 하겠다는 그들의 간청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드러내준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헌금하는 것을 하나의 '특권' (karin; 카린; gift; 선물, 은혜) 으로 생각했으며, 성도가 누릴 수 있는 그 영광스러운 특권에 자신들도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달라고 구했던 것이다.

 

또한 '청하였습니다'로 번역된 '데오메노이'(deomenoi)는 '데오마이'(deomai)의 현재분사로서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간청이 과거에 한번으로 끝난게 아니고 마치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매우 진지하고 지속적이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클라디우스 황제 통치 때, 심한 기근과 유다인들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경험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사도11,27-30)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고 끈끈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애 보여주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린토 후서 8장 5절은 그들의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관대함의 특징이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하느님께 완전히 헌신했다는 데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을 먼저 하느님께 온전히 드린 자는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고, 이로써 하느님의 일을 하는 봉사자들에게도 물질적인 후원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2023년 06월 20일 화요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마지막(여섯 번째대당 명제에 해당하는 오늘 복음은 사랑에 관한 계명을 언급하면서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단락 전체를(5,21-48 참조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풀이를 꿰뚫는 핵심이 바로 사랑임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과 원수를 구분하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모든 이가 사랑의 실천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이 명령은 어떤 면에서 가혹하게 들립니다.

정말 악의적이고 잔인한 행동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백번 양보하여서 그 원수를 용서하는 일까지는 어떻게든 노력하여 본다고 하더라도 그를 과연 사랑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까지 하여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다시 그 근거와 동기를 찾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오른뺨을 때린 자에게 왼뺨마저 내주는 것으로 모자라 그 원수를 사랑까지 하여야 하는 이유,

그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바로 그러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등을 돌리고 온갖 불의를 일삼는 자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푸시고 같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편협한 사랑이 아닌 완전한 사랑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러하다면 자녀들의 사랑도 그러한 완전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루카의 병행 구절은 이를 자비로 바꾸어 표현합니다.

곧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

우리가 감히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완전함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의지를 가지는 것과 가지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함에 가까워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사랑 하라는 말씀은 사랑이신 분을 주어라는 말씀

(마태5,43-48)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잘 안다고 말하자 ‘그렇게 해, 그럼 네가 살 것이다’ 하십니다.

 

(루가10,29.-30)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착한 사마라아인 비유를 주신 후~“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로 율법사의 질문을 바꾸어 물으십니다. 비유 말씀을 보겠습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 옷을 벗기고 초주검으로 만든 강도?

 

 (잠언25,18) 이웃에게 해로운 거짓 증언을 하는 자는 방망이와 칼과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고 묵상햇듯이~

=율법을 선억의 법으로 주어 진리의 옷을 벗기고 구원의 생명을 빼앗긴 그 죽음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 그 율법의 가르침이 강도인 것입니다.(요한10,1참조)

그 율법의 법은 구원, 생명을 줄 수 없기에~ 율법자들은 그 강도만난 자를 피해 가버리는 것입니다.

 

(루가10,31.-36)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생명의 옷을 줄 수 있는 진리의 반대 쪽으로~~~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예수님의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상처에 기름(메시아)과 포도주(피)로 돌보아 주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 이웃, 하면 우리들은 먼저 율법사들 처럼 내가 돌봐줘야 할 그 어떤 다른 이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도움을 받아야 할 이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법의 신앙으로 진리의 옷, 구원의 생명을 빼앗긴 강도만난 자로~ 이땅에 사마리아인으로 오신 당신의 도움을 받아야 할 너희가 이웃임을 알아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지요.

 

44ㄱ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사랑(아가페)을 주어라

 

(필리3,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도움이신 십자가의 피, 그 구원의 진리를 믿지 않는 것, 예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1열왕21,20)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이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 나봇의 포도밭은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인 것, 그곳 하느님의 듯인 생명의 말씀을 자신의 뜻을 위해 듣는 것, 뺏는 것. 그렇게 자신들의 뜻을 위해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이들은 모두 아합이며 하느님의 원수인 것. 그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아합과 같은 나, 그 웬수인 나(이웃)에게 그 죄인들의 죗값으로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그 아가페 사랑을 들려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박해 할 것이니~~

 

44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기도, 프로쉬콤마이(흘려주다) -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흘려주라는 것, 그들도 그 진리로 하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도록~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 떠오르게,아나텔로스 - 아나(위) 텔로스(완성)

위에 발광체- 해(빛-예수)를 비추어 ~ 善인, 義인 그 모든 이를 해, 말씀으로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이사60,19) 해는 너에게 더 이상 낮을 밝히는 빛이 아니고 달도 밤의 광채로 너에게 비추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너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고 너의 하느님께서 너의 영광이 되어 주시리라.

 

(말라3,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니 너희는 외양간의 송아지들처럼 나와서 뛰놀리라.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 세리-(텔로네스) '완성(안식)을 값을 주고 사는 자' 라는 뜻, 그것이 죄인 것.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 세리와 다른 민족들의 그들이 하는 일의 댓가인 상(償)이 아닌 그리스도인이 받는 상, 복(福)은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하늘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아버지처럼 되는 것, 그러니 나와 이웃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죠.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아버지처럼, 아버지(하느님의 성전) 하느님의 듯을 담아 그분의 성전이 되면 하늘의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릇보다 담긴 내용물이 참인 것처럼 하느님의 완전하심, 그것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모르지 않는가?

그분은 창조주시며 우리의 생명이신 진리이시라는 것밖에는~~ 아멘.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복음(마태5,43~48)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43~45ㄱ)

 

마태오 복음 5장 43절 '그리고'라는 접속사를 두고 완전한 대칭을 이룬다.

즉 '사랑해야'와 '미워해야' 대칭을 이루고, '네 이웃을' '네 원수는'  대칭을 이룬다.

 

문장 구조를 보면,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같은 비중을 지니는 가르침이라는 뉘앙스를 준다.

하지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레위기 19장 18절에 나오지만,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표현은 모세 오경이나 예언서에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후자는 성경의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당시 유다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보편적인 교훈이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은 로마의 압제하에 있었고, 이민족과 반민족적인 동족들의 압제를 받고 있었기에, 이들을 공동의 적으로 생각하고 증오심을 갖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당시의 시대상을 지적하시며, 이웃 사랑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계신 것이다.

 

마태오 복음 5장 44절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에서 '사랑하여라'에 해당하는 '아가파테'(agapate; love)의 원형 '아가파오'(agapao)는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 단어로서, 자기 희생적인 순수한 사랑을 나타낸다.

 

사실 인간 본성적으로 생각하면 원수를 결코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대상이 원수라 할지라도, 계산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라고 요구하신다.

 

그런데 이런 사랑은 누가 베풀 수 있는가?

 

하느님 대전에 죄를 지어 사탄의 노예가 되어 하느님과 원수가 된 자신을 하느님 몸소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찾아오셔서 십자가상에서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조건없이 사랑하셔서 자신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그 사랑을 확신하고 체험한 자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체와 말씀 앞에 아담과 하와의 이기적이고 본성적인 자아를 내려 놓았을 때, 비어진 우리 자신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러한 원수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에서 '기도하여라'에 해당하는 '프로슈케스테'(proseuchesthe; pray)의 원형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는 '~을 위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스'(pros) '기도하다', '원하다'는 뜻의 '유코마이'(euchomai)의 합성어로서 '~을 위하여 간구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쓰여 지체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원수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영적 수준까지 이르러야, 완덕(完德)의 근원이시고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고, 하느님의 속성을 본받는 것이 된다는 말씀이다.

 

마태오 복음 5장 45절(ㄱ)의 '너희 아버지의 자녀'에 해당하는 '휘오이 투 파트로스 휘몬'(hyoi tou patros hymon; the children of your Father)에서 '아버지의'로 번역된 '투 파트로스'(tou patros)는 소유격이다.

 

희랍어에서 소유격은 그 속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어서, 여기서 '아버지의 자녀'는 '아버지를 닮은 자녀', '아버지의 속성을 가진 자녀'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로 우리가 천국 시민으로서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림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속성을 본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죄인)을 위해 가난을 택하신 사랑

(마태5,43-48)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 구약의 율법입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문자로만 보고 ‘내 밖에 이웃을, 원수를 사랑해야지’ 하면 안 된다. 본문- ‘그러나 나(진리)는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은 예수님으로, 진리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 원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하느님의 듯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살았던 그 하느님의 원수로 살았던 나 자신이며(로마5,10참조), 그렇게 살도록 거짓말, 가르침을 주었던 거짓 사도, 지도자들이다. 그 거짓 가르침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잃어 하느님의 원수로 살게 한 것이 박해다.

*박해(필립시스)- 엉뚱한 말을 주어 헛된 삶을 살게 하는 것. 그 자신과 모두를 진리로 사랑하고 진리로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곧 죄인, 원수들을 위해 죽어주신 그 십자가의 복음, 그 진리의 말씀을 흘려주어(기도) 그 원수들이 하늘의 용서와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나게 하는 그 사랑을,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다.

*기도(프로쉬콤마이)- 어디 어디를 향해 원하다. 흘려주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독서(2코린8,9)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혜)을 알고 있습니다그분께서는 부유(의로움)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대속으로 죄인이되시어여러분이 그 가난(대속)으로 부유하게(의롭게되도록 하셨습니다.

 

45ㄱ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 하늘이 아니라 하늘들, 복수다. 하늘이 복수로 쓰이면 하늘의 진리를 깨달은 자를 가리킨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깨달은(낳은) 그 하늘이 된 성도(聖徒)들이다.

 

(요한1,12)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진리)을 믿는(깨달은)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45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 해는 빛의 발광체로 빛 자체이신 하느님을 뜻한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이다. 곧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생명의 빛, 말씀은 악인, 선인 모두에게 똑같이 주신다. 그러니까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자신부터 그리고 모든 이들(원수)에게 십자가가 주시는 용서로 하늘의 생명, 의로움을 주시는 그 빛의 말씀을 전해주어 살리라는 말씀이다.

 

(이사60,19-20) 19 해는 너에게 더 이상 낮을 밝히는 빛이 아니고 달도 밤의 광채로 너에게 비추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너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고 너의 하느님께서 너의 영광이 되어 주시리라. 20 다시는 너의 해가 지지 않고 너의 달이 사라지지 않으리니 주님께서 너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고 이제 네 애도의 날들이 다하였기 때문이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 모든 이는 하늘의 빛(생명, 말씀)으로 살아간다. 그렇듯 그 빛을 생명의 말씀으로 주어 참 삶을 살게 하는 그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숨은 뜻이 있다. 곧 자신의 좋은 모습, 다른 이들도 좋아하는 그 자신만을 사랑한다면 무슨 상(償)을 받겠느냐?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상(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구원, 그 상(償)만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구원(상)은 죄인이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 원수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러 오셨다.

그러니 마음에 안 드는(싫은) 그 자신 안에 들어있는 더러운 부끄러운 죄를 가지고, 그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서 그리스도의 피(새 계약)로 자신을 깨끗이 씻는 그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늘의 상, 구원을 받는 그 사랑을 하라는 말씀이다.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진리를 깨달아 하늘이 된 이들의 아버지처럼 이다. 곧 빛이신 하느님을 받아 들여, 어둠인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 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빛이 어둠을 품어 빛이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요한17,23) 23 (예수님께서)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 진리(빛)이신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니 내 안에 진리(빛)가 있는 것이다. 그를 아들, 하늘이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마태5,13~) 하신 것이다.

 

매일미사 (박형순 바오로 신부) 묵상글을 참조~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들려주시는 사랑이 바로 ‘아가페’입니다. 오늘 복음이 전해 주는 사랑은 이웃에게도, 원수에게도, 곧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출발점이 내가 원하는 사랑, 내가 좋아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사랑의 전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떠오르는 태양을 통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조건 베풀어 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어렵지요. 그럼 우리 함께 하늘의 태양을 보면 좋겠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함께 맞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의 눈을 부시게 만드는 태양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하느님께서 무조건 베푸시는 사랑임을 기억해 봅시다.

태양을 보면서, 비를 맞으면서, 그 사랑을 나와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하여 원수에게까지 전달할 수 있다면, 우리의 부족한 사랑은 하느님의 완전함을 향하여 움직일 것입니다.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늘 함께 하시며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250617일 화요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모금하면서 가난의 신학을 펼친 바오로 사도의 편지는 복음적 가난의 본질을 잘 드러내 줍니다.

오늘 독서의 9절에서 가난하게 된다.’라는 그리스 말은 구걸하려고 손을 내밀어야 할 정도의 절대적 가난, 곧 극빈을 뜻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스스로 그런 상태로 되셨음을 강조합니다.

반대로 부유하게 된다.’라는 그리스 말은 풍족함을 넘어서서 차고 넘친다는 뜻입니다.

결국 당신의 부유와 우리의 가난을 스스로 맞바꾸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교적 가난의 본질입니다.

재화를 나누는 것은 형제자매들 가운데 궁핍한 이가 없게 하는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성금은 예루살렘 교회와 다른 지역 교회의 친교 표시요 도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가난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스스로 낮아지시고 가난해지신 그리스도의 신비복음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가난은 바로 복음 한가운데 있습니다. …… 여러분의 아주 큰 이 부유함이, 곧 열정, 애덕,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호주머니에 이르게 하세요. …… 신앙이 호주머니에 이르지 못하면 참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 그리스도교적 가난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의 것을 주는 것인데, …… 그 가난한 사람이 나를 부유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 가난한 사람이 나를 부유하게 할까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가난한 사람 안에 계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성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 2015.6.16.).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복음(마태5,43-4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ㄱ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직역하면 ‘가장 가까운 이웃’이란다.

 

43ㄴ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박해(迫害 미쎄오)- 어뚱한 말(인간의 뜻, 욕망을 위한 선악의 말)로 주어 헛된 신앙의 삶을 살게 하므로 하느님의 미움을 박게 만드는 것, 박해(迫害)다. *기도(祈禱 프로콤마이) 흘려주다.

이웃사랑은 큰 계명(誡命)이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이며, 원수는 누구인가?

 

큰 계명의 말씀에서 예수님께 율법교사가 ‘제 이웃이 누굽니까?’ 하고 묻자, 비유(比喩)로 강도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이 율법의 사제, 레위인의 외면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원수로 생각했던 사마리아인에게 도움을 받는 이야기를 하신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개 추급했다)

 

(루가10,36-37)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율법의 사제, 레위인이 강도(强盜)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지 못했듯, ‘율법자인 너는 누구에게도 이웃이 될 수 없어. 네가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그분의 이웃으로 자비(慈悲)를 받아야 해’ 하시는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비유하신 것이다. 그렇듯 원수(怨讐)같은 예수님의 이웃으로 그분의 사랑을 받아 제일 먼저 전해 주어야 할 가장 가까운 이웃이 ‘나 자신’인 것이다.

 

 내 뜻, 욕망을 위해 하느님의 원수로 살았던 ‘아합’이 도리어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를 원수로 부른다.

(1열왕21,20-21) 20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내 원수또 나를 찾아왔소?”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또 찾아왔습니다임금님이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 왜? 인간의 뜻, 욕망을 부린, 그 자신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듯 내 욕망을 부수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이가 원수가 된다.

 

(마태10,34)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이 원수 같은 하느님을, 말씀을 사랑해야한다. 그래야 세상의 ‘흠 투성’이고 ‘사라질 평화’가 아닌 ‘완전한 하늘의 평화’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이웃, 다른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받아야 한다.

 

(요한3,16-17)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원수)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요한4,9-10)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원수)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원수를 위해 외아들을 속죄 제물로 내주신, 인간의 지각(知覺)으로는 알 수 없는 그 하느님의 사랑을 내가 먼저 흘려 받아, 채워야(믿어야) 이웃에게 흘려 줄 수 있다. 이웃을 살리는 ‘큰 계명의 이웃사랑’을 할 수 있다. 기도(祈禱) 또한 사람을 완전하게 하는 그 올바른 기도(祈禱)를 할 수 있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십자가에서 내 죄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 완전한 사랑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지난날 하느님의 원수로 살았던, 더러웠던 그 ‘죄악의 부끄러운 나’를 사랑해야 한다. 곧, 나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사랑, 말씀을 계속 들려주어 옛 죄에 대한 죄 의식에 빠지지 않고 완전히 자유하게 하는 그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죄(罪)를 통해서 ‘용서(容恕), 생명(生命)’의 하느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적의 부끄러웠던 나를 통해,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

 

(마르2,17)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 하느님의 ‘해, 비’는 모두 우리의 생명인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시는, 완전하게 하시는 사랑으로 모든 이들의 생명의 양식으로 똑같이 내리신다.(이사55,10-11참조)

 

(요한1,1.4) 1 한 처음에 말씀이계셨다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해, 비, 말씀’을 흘려 주셨듯이, 이웃에게 말씀을 흘려주는 삶이 완전하게 되는 길이라는 말씀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나 자신과 이웃의 죄, 잘못을 용서하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그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 말씀을 주는 것이다.

매일, 자주 흘려주어야 한다. 나의 부인(否認), 버림, 비움으로 받아들이면(담으면) 완전하신 분 안에서 완전한 사람이 된다.

 

(골로1,28)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요한1,12-13)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48절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세상 어둠()에서 건져 내시어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게하신 아버지의 마음사랑을 굳게 지켜 이웃에게 흘려주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6월20일(화)]조명연(마태오)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6,7-15)25.06.19조회 11[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마태6,1-6.16-18)25.06.18조회 12[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5,43-48)25.06.15조회 12[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오5,38-42)25.06.15조회 11[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아예 맹세하지 마라. (마태5,33-37)25.06.13조회 11[연중 제10주간 금요일] 간음(奸淫) (마태5,27-32)25.06.13조회 13[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먼저 화해하여라. (마태5,20ㄴ-26)25.06.10조회 12[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거저 주어라 (마태10,7-13)25.06.10조회 20[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5,13-16)25.06.09조회 21[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기념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19,25-34)25.06.09조회 55[부활 제7주간 토요일] 참된 증언 (요한21,20-25)25.06.06조회 29[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나를 따라라.” (요한21,15-19)25.06.05조회 21[부활 제7주간 목요일] 하나 되게 (요한17,20-26)25.06.04조회 11[부활 제7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 (요한17,11ㄷ-19)25.06.03조회 10[부활 제7주간 화요일] 영원한 생명이란 (요한17,1-11ㄴ)25.06.02조회 16[부활 제7주간 월요일]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한16,29-33)25.06.01조회 11[부활 제6주간 토요일]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요한16,23ㄴ-28)25.05.29조회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