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20일 금요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마태6,19-23)
제1독서<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나를 짓누릅니다.>(2코린11,18.21ㄷ-30)
18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21 누가 감히 자랑한다면, 어리석음에 빠진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24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25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27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28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29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30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화답송>시편34,2-3.4-5.6-7(◎18ㄴ) ◎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복음<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19-23)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제1독서(2코린11,18.21ㄷ~30)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번~ " (24.25)
코린토 2서 11장 24절부터 사도로서 바오로가 당한 수고와 고난이 구체적으로 열거된다.
우선 그는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질을 무려 다섯 차례나 당했다. 신명기 25장 1~3절에 따르면, 유다 사회에서 죄지은 사람에게 한 차례에 가할 수 있는 매질은 최대가 마흔 대이다.
'그를 마흔 대까지는 매질하여도 괜찮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 그것은 마흔 번이 넘도록 너희 동족을 매질하다가, 너희가 보는 앞에서 그가 업신여김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신명25,3)
그렇다면, 유다인들은 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질을 죄인들에게 했을까?
그것은 율법을 자구적으로 알아들어 혹시 율법에서 명한 이 마흔 대의 최대치를 초과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다인들의 구전 율법을 기록한 미쉬나에서도 '죄인에게 몇 대를 매질해야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마흔에 하나 감하여'라고 답변하고 있고,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마흔에 하나 뺀 매는 자유민에게는 가장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런 형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통상 이런 매질은 회당에서 이루어졌는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마태10,17)라고 예언하셨다.
사도 바오로 역시 회심 전에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주도적 인물 중의 하나로 활동하다가(사도22,20; 26,11) 다마스쿠스 도상에서의 극적인 회심 이후 오히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는 자가 된 것이다(마태5,11; 루카6,22).
한편, '유다인들에게'에 해당하는 '휘포 아우다이온'(hypo Iudaion)에서 '휘포'(hypo)는 '압제 아래에서', 또는 '영향력 아래에서'라는 뉘앙스를 나타내므로 본문은 사도 바오로가 유다인들의 의회가 주관하는, 또는 그 의회의 지시에 따라 행해지는 매질을 당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인 세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번~'
마흔에 하나 뺀 매가 유다식 매질이라면, 코린토 2서 11장 25절에 언급된 채찍으로 때리는 매질(태장; 笞杖)은 로마식 매질이다.
'채찍으로 맞은 것'에 해당하는 '에랍디스텐'(erabdisthen)의 원형 '랍디조'(rabdizo)는 '막대기', '지팡이'를 가리키는 '랍도스'(rabdos)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굵고 긴 막대기로 때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볼 때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매질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도 바오로는 어디에서 이 로마식 매질을 당했을까?
사도행전 16장 22~23절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필리피에서 실라스와 함께 이러한 봉변을 당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다른 두 번의 태장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어떤 이는 안티오키아와 리스트라에서 당한 박해(사도13,50; 14,19)가 다른 두 번의 태장의 사례라고 주장하지만, 이것 역시 확인할 길이 없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한번 돌질을 당했다.
사도행전 14장 19절과 20절에는 사도 바오로가 돌에 맞았지만, 간신히 살아났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돌로 치는 관습은 유다인들이 사형을 집행하던 관습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신성 모독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집단적으로 돌을 던졌다.
사도행전 7장 57~60절에는 스테파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역시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으로 돌에 맞아 죽었고, 요한 복음 10장 30~39절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당시 유다인들에게 돌을 맞을 위협을 당하기도 하셨다.
레위기 24장 16절에 통상 신성 모독의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 돌로 쳐서 죽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사도 바오로도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자로 지목되어 유다인들로부터 돌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온 공동체가 그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면 사형을 받아야 한다.'(레위24,16)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보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하여 땅 위에 쌓은 보물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 쌓은 보물입니다.
땅 위의 보물은 좀과 녹으로 훼손되고 도둑이 훔쳐 가기도 하는 불완전하고 순간적인 것이지만, 하늘의 보물은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이 훔쳐 가지도 못하는 완전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삶 전체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 삶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현세의 것과 하느님의 것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찾으려면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투신’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비유를 전하는 마태오 복음 13장 44절에서도 밭에 숨겨진 하늘나라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전합니다.
한편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던 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주님을 떠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리 몸 전체를 비추고 이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이기적인 욕심에 빠진 탐욕스러운 눈은 우리 몸을 어둡고 병들게 하며 우리를 고립시킵니다.
반면에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애덕과 나눔으로 가득한 맑은 눈은 우리 몸을 밝고 따뜻하게 하며 주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더욱 충만하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지,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내 눈은 어디를 쫓고 있는지 곰곰이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하느님은 어둠을 통해 빚을 보게하신다.
(마태6,19-23)
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 오늘은 6장의 결론이다. 1절이 ‘보이는 의로운 일은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니 조심해라’로 시작하셨다. ‘보이는 것을 위해 보이는 것으로 준비하는 모든 것은 헛된 것이니 조심해라’ 하셨던 것이다. 곧 사람이 자신의 뜻을 위한 열성, 그 자기 의로움을 진리로, 보물로 갖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이사33,6) 6 그분께서 너의 시대에 안녕(안식)을 주시리라. 지혜와 지식은 풍성한 구원이 되고 주님을 경외함은 시온의 보화가 되리라.
= 하느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이 보물이라는 말씀이다.
(1코린1,30)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2코린4,6-7) 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뜻, 말씀, 지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빛, 보물이신 것이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독)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좀은 자신의 배설물로 집을 짓는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스팩들, 자신이 열심히 지킨 자기 의로움까지 모두 자신에게 독이 되는 배설물, 쓰레기로 여겼다.
(필립3,7-9) 7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 율법을 제사와 윤리로 열심히 지킨, 쌓은 그 자기 의로움이 자신을 보호하는 선(善)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독이되는 배설물 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둑질(카바- 덮어버리다),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드러내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것, 가려버리는 것, 하느님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법으로 이해하여 행하고 있는 이들은 이미 도둑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진리를 덮어버린, 도둑질한 그 거짓말을 듣고 땅의 것으로 보물을 쌓으면 이미 도둑에게 보물을 빼앗긴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다. 우리가 열심히 성취해야 할 법(法)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땅에서 죽고(부인하고) 하늘로 연합이 되어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선이다. 그래서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너희 마음이다라는 말씀이다. 그 마음으로 심판이다. 선한 말(보물)을 갖고 있느냐 악한 말(보물)응 갖고 있느냐에 대해 심판받는다. 어떤 보물을 어디에 갖고 있느냐에 의해 그것은 마음이 되는 것이고, 그 마음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요한5,43-44)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 사람의 영광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원하지 않는 것, 좀, 독이다.
(필립2,21) 21 모두 자기(땅)의 것만 추구할 뿐 예수 그리스도의 것은 추구하지 않습니다.
(골로3,1) 1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옳음)에 앉아 계십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 원문을 직역하면 “몸에 등불은 눈이다. 눈이 성하면 다른 것을 밝혀주는 온전한 몸이다”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 성한 눈, 깨달음(호라우)의 눈이다. 눈으로 보는 단계 - ➀ 옵타노마이- 보이는 대로 보는 것. ② 에이도오- 있으니까 보는데 그것을 껍데기로만 보면 에이돌(우상)이 된다. 곧 예수님을 겉으로만 보아 섬기면 ‘우상 섬김’이다. 십자가와 예수님을 자신의 뜻을 위해 열심히 섬기게 되며 헛된 신앙, 우상이 된다는 것이다. ③ 블랙보우- 눈에 보이는 것을 진짜 내용으로 보기 위해서 만져보고 먹어보는 등, 여러 가지로 시험하는 단계. 그래서 ④ 호라우- 제대로 깨달아 보는 것, 성한 눈이다.
말씀을, 예수님을 어느 단계로 보느냐에 따라 어둠(땅)의 빛이냐 하늘의 빛(진리)이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을 호라우 그 깨달음의 눈이 아닌 다른 눈으로 100번을 읽고 외우고 필사를 해도 소용이 없다. 아니 오히려 나를 죽이는 좀, 독이 된다. 눈에 보이는 그것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참 뜻, 진리를 깨달았을 때 그를 빛, 진리라고 한다. 그래서 반드시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는 그 내용을 들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묵시21,22-23) 22 나는 그곳(새 하늘)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 보이는 성전으로, 빛으로 보이지 않는 참 성전, 빛이신 하느님(주님)을 깨닫는. 아는 것이 선(善)이다. 그러나 보이는 성전, 빛을 열심히 섬기면 좀, 독이 된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보이는 분을 섬기는 신앙이 아닌 보이지 않는 분을 아는, 그 앎을 위한 성한 눈으로 보고 깨닫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 하느님의 진리를 통찰하시어 가르치시며 완성하시는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저희를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6,19-23)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19)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밝으면 온 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22~23)
'좀'에 해당하는 '세스'(ses; moth)는 의복을 갉아 먹는 해충이다. '녹'에 해당하는 '브로시스'(brosis; rust)는 구리를 부식시키는 푸른 녹을 말한다.
'보물'에 해당하는 '테사우로스'(thesauros)는 '저축하다', '보관하다'라는 뜻의 '티테미'(tithemi)에서 유래했는데, '어떤 물건이 보관되어 있는 곳', '창고', '보배함', '보화'등을 통칭한다.
우리 인간은 육신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기 때문에 '보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자신을 위하여', '너희를 위하여'만 보물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신다.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은 영적인 일이 아닌, 이 땅의 일에만 현세의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일에만 집착하여 보물을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시는 말씀이다.
그것은 마치 '좀'과 '녹'이 의복을 갉아먹고 구리를 부식시켜 못쓰게 만들듯이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또한 보물 혹은 재화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말씀에 나오는데로 '도둑들'에 해당하는 '클렙타이'(klleptai)가 가리켜 주듯이, 단수가 아닌 복수의 '도둑들'이 땅에 쌓아둔 재물을 끊임없이 넘보게 되는 불안감과 위기가 있게 된다.
우리 인간의 수명은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대다수 100년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는 태어날 때처럼 '빈손'으로 가고, 그래서 시신을 두르는 수의는 주머니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6장 20절에 나오는데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도 말씀하신다.
이 마태오 복음의 병행 구절인 루카 복음 12장 33절에서는 구체적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행위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타인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성경은 형제들의 부족함과 결핍을 헤아리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선행은 하느님의 응분의 갚음과 상급을 받음을 이야기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드리는 이 그분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잠언19,17)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마태19,21)
우리는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기 위해 가진 것을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의 선익을 위해 올바로 쓰고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물질적인 재화이든, 재능(탈렌트)이든, 신앙이든, 은사이든 무엇이든지간에 우리의 도움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어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밝으면 온 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마태오 복음 6장 22절과 23절은 사람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를 밝히고 있다.
즉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어두움 가운데 머물 수 밖에 없으므로, 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림으로써 마음의 눈을 밝혀 온몸을 밝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밝으면'(성하면)에 해당하는 '하플루스'(haplous; good; single)는 건강하다는 뜻이며, 윤리적으로는 '관대하다','너그럽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재물에 대하여 관대하며 인색하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재물의 노예가 되어 저지르는 잘못을 범하지 않고, 비로소 '온몸이 환할 것'이 뜻하는 내용, 즉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선항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는 말이다.
또한 '성하지 못하면'에 해당하는'(나쁘면)에 해당하는 '포네로스'(poneros; bad; evil)는 육체적으로 '허약한'이라는 뜻과 더불어 '악한'이라는 뜻도 있다.
여기서도 형제의 필요를 생각하기보다는 재물에 대하여 집착하고 인색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는 것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 인색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마치 어둠속에서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악한 일을 일삼으며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임을 뜻한다
2025년 06월 20일 금요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이들에게 맞서 자신을 변호합니다.
그가 하는 자기 자랑은 허영이 아니라 듣는 이를 깨우치는 수단으로써 교육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는 적대자들이 내세운 자격을 뛰어넘는 자신의 인간적 자격을 내세우고 그리스도를 위한 사도직에서 자신이 겪은 모든 고난을 설명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겪은 긴 시련과 고통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위하여 감내한 것들로서 그의 적대자들은 이러한 헌신과 희생에서 결코 그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무수히 겪은 옥살이와 매질, 돌질과 죽을 위험 등을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도직에 진정으로 임해 왔다는 증거로 제시하며 거짓 사도들과 자신을 구별합니다.
이러한 그의 자기변호는 결국 자신의 “약함”(2코린 11,30)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의 약함은 오히려 하느님 능력이 드러나는 자리가 됩니다.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길이 늘 순탄하지는 않음을 우리도 체험합니다.
큰 희생을 봉헌하면서 주님과 공동체에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가까운 이들에게서 오해와 방해를 받고 비방과 모함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참된 제자의 증거입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을 따라 우리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해 봅시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땅에서 나오면 하늘이다.
복음(마태6,19-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 나를 위해 땅에 쌓은 보물? - 사라질 것이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 하늘에 쌓은 보물? - 영원한 것이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음에 쌓은(담은) 것이 ‘나’라는 말씀이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 빛을 어둠으로 보고 담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창조 하셨다. 모든 창조물은 하느님의 말씀(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곧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빛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말씀을 보물로 간직하면 빛인 것이다. 그런데 보이는 대로 보고 담으면, 땅(욕망)으로 갖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다. 곧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해야 할 세상법이 아니라, 말씀을 먹고 땅에서 죽어 하늘이 되어 하늘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선(善)이고, 선의 상태, 마음이다.
(마태12,35.37) 35 선한 사람은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진리)을 꺼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율법)을 꺼낸다. 37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 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
= 진리(피의 새 계약)의 말을 하면 생명이다. 율법(옛 계약)의 말은 심판(審判), 죽음이다.
(마태13,52)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 마음에 담은 성경 말씀, 그 안에 옛 것에서 새 것을 깨달으면 보물이 된다는 것이다. 곧 죽음의 옛 계약으로 생명의 새 계약을 깨달으면 보물(寶物), 진리(眞理)다.
*그리스도교(敎)는 이 땅에서 강(强)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진리로 내 마음에 가져 세상에서 없음으로 사라져가는 것이다. 하늘로~~~
진리가 되면 내 말이 없어지게 된다. 내 말이 다른 이에게 걸림돌이 될까봐, 인간은 모든 계명(말)을 법으로 듣기 때문이다. 못 알아듣는 사람들 앞에서는 실(實)없는 사람, 인기 없는 사람이 된다. 참 신앙인으로 보지 않는다.
(이사33,6) 6 그분께서 너의 시대에 안녕(평안)을 주시리라. 지혜와 지식은 풍성한 구원이 되고 주님을 경외함은 시온의 보화가 되리라.
= 하늘의 지혜, 지식, 주님을 경외(敬畏)함이 보물을 갖는 참 부자(富者)다. 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福)받는 땅에 가난한 사람이다. (마태5,3)
(잠언20,15) 15 금이 있고 산호가 많다 하여도 더욱 값진 것은 지식(지혜)의 입술이다.
*지식(知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分別)하는 은사(隱事)
(골로2,2-3)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복음 본문으로 다시~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자기 배설물로 집을 짓는 것)과 녹이 망가뜨리고(아파니조- 흐릿하게, 못보게)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 좀은 자기의 열심히 쌓는 헛된 의(義)를 뜻한다.
바오로는 배설물을 쓰레기로 표현했다.~
(필리3,5-9)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계명)으로 ‘자기 의(義)’를 쌓는 이는 하늘의 의(義)를 도둑질 당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늘의 것을 땅의 것으로 받으면, 하늘을 도둑질 당한 것이니까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從)으로서 사도(使徒)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해서 선택받은 바오로’(로마1,1)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스테파노가 순교할 당시 적극적으로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울의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이제는 스테파노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체험한 후에 바오로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보물(寶物)을 쌓던 사울의 모습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바오로는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성령 안에서 ‘충만함’을 찾았습니다. 비록 세상이 주는 영화(榮華)를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영원(永遠)을 추구합니다. 영원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질그릇인 우리는 이미 진리를 보물로 갖은 하늘들임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보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진리로 기쁨의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