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너희를 보낸다.(派送) (마태10,16-23)

2025. 7. 10. 오후 2: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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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1일 금요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너희를 보낸다.(派送) (마태10,16-23)

   


1독서<내가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창세46,1-7.28-30)

1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2 하느님께서 밤의 환시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자, “,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3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4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5 그리하여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났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태워 오라고 파라오가 보낸 수레들에 아버지 야곱과 아이들과 아내들을 태웠다.

6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이 함께 들어갔다.

7 야곱은 아들과 손자, 딸과 손녀, 곧 그의 모든 자손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28 이스라엘은 자기보다 앞서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으로 오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고센 지방에 이르렀다.

29 요셉은 자기 병거를 준비시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요셉은 그를 보자 목을 껴안았다. 목을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너의 얼굴을 보고 네가 살아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화답송>시편37,3-4.18-19.27-28.39-40(39)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주님이 흠 없는 이들의 삶을 아시니, 그들의 소유는 길이길이 남으리라. 환난의 때에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기근이 닥쳐와도 굶주리지 않으리라.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너는 길이 살리라. 주님은 올바른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 버리지 않으신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받지만, 악인의 자손은 멸망하리라.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복음<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16-23)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또는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독서(잠언 2,1-9)와 복음(마태 19,27-29)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제1독서 (창세46,1~7. 28~30)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46,3)

 

 '나'라는 뜻을 가진 일인칭 대명사 '아노키'(anoki; I am)은 주어를 강조할 때 쓰인다.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하신다.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에서 앞의 '하느님'에 해당하는 '하엘'(hael)은 정관사 '하'(ha)를 동반한 단수형이며, 뒤의 '하느님'에 해당하는 '엘로헤'(ellohe)은 복수형이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나는) 그 엘이니 네 아버지의 엘로힘(이다)'이 된다.

 

특히 하느님의 명칭 중 '엘'(el)과 그 복수형 '엘로힘'(ellohim)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엘'(el)은 '능력자'로 번역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는 너의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능력자 하느님이 바로 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시는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필요할 때 이렇게 친히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불안해 하는 야곱에게 능력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과 도움을 베푸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주시려는 사려깊은 배려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야곱의 아버지(이사악)의 하느님'으로 드러내시는 것은 이사악을 돌보시던 동일한 사랑으로 야곱을 돌보시겠다는 암시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로 번역된 '알 티라'(al thira)에서 부정어 '알'(al)은 바램, 소망(창세13,8; 판관19,23)이나 선택(잠언17,12)을 촉구하는 문장에서 사용되는 단어로서 권고적인 금지의 의미가 있다.

즉 강한 금지를 나타내는 '로'(lo) 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부정어이다.

 따라서 '두려워하지 마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불신앙에 대한 책망이라기 보다 위로의 말씀인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원문에는 '왜냐하면'으로 번역되어 이유나 근거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ki)로 시작된다.

 본문의 서두에 '키'(ki; for)로 시작하며, 큰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씀이 야곱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바로 그 이유임을 밝히고 있다.

 

이집트가 야곱의 눈에는 두려움의 땅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이집트의 풍부함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큰'으로 번역된 '까돌'(gadol; great)은 '강하다', '우람하고 크다'(신명2,10), '부유하다'(1사무25,2), '존귀하다', '위대하다'(2사무7,9)로도 번역되는 단어인데, 야곱의 후손들이 단지 그 수효가 많아지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로 위대한 민족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단어이다.

 

과거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창세12,2; 18,18) 이사악에게(창세26,4.24) 내리신 복이었고, 야곱 자신에게도 여러 번 확증시킨 적이 있는, 위대한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는 복에 대한 약속을(창세28,3.14; 35,11), 바로 지금 내려가게 될 이집트에서 이루실 것임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것이다.

 

'그곳에서'로 번역된 '샴'(sham)은 '장소'를 나타내는 부사이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 즉 이방인의 땅에서 430년간 나그네로 살게 될 것이지만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는 그 약속이(창세15,4.5.13.14) 성취될 장소가 바로 이집트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으로 가나안 지역의 남방 경계선인 브에르 세바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야곱에게 이집트가 바로 약속 성취의 장소임을 분명히 지적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야곱에게 있어서 큰 아픔을 주었던 요셉의 실종이나 기근이 하느님의 오묘하신 뜻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가 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믿는 이들은 어려움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발견해야 하고, 바로 '그곳에서'(샴) 하느님의 역사(役事)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세상(사람)을 이길 생각마라우리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뿐.

 

(마태10,16-23)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 공격할 수 없는 순하기만 한 양을 무서운 이리 들에게 보내심은 그들에게 잡혀 먹히라는 말씀인가? 양은 선이 악을 대속하고 생명을 주시는 그 하느님의 뜻, 진리를 이루시러 오신 예수님이시다. 이리들은 그 하늘의 진리를 선악의 법으로 바꿔 자신들의 뜻, 소원을 위해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

 

(요한1,29)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 진리를 살지 않는 그 죄를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대속)으로 모두 없애셨다. 병행 마르코 복음(6,1-)으로 가보면 예수님은 당신이 고향사람들에게 무시당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 주시고 파견하신다.

그러니까 복음(진리)을 전하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과 무시를 당하는, 그 잡아먹히는 것이 맞는 것이다

 

(마태5,11)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너희는 행복하다!

 

(요한15,18-19)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대속, 그 진리를 믿어(요한14,6)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 입어야만 하늘의 용서, 생명, 평화, 안식,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로마3,24) 세상의 선악의 법, 세상의 힘(돈, 명예, 의)의 원리는 그릇된 것이니(요한16,8-11) 그 모든 것을 부인하고 돌아오라고 말하면 세상은 그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핍박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 핍박, 죽음을 각오하면 하늘의 영원한 용서, 생명,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마태10,39)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예수진리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16,26)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영생)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라고 하신 것이다. 뱀의 슬기는 간교였다. 하느님께서 세워 놓으신 그 간교의 자리다(창세3,1) 왜? 사람 안에 들어있는 육의 욕망, 그 죄를 들춰내어 없애시고 하늘의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그 사람의 욕망이 죄임을 깨닫게 하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뱀의 슬기인 것이다. 죄가 들춰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경험한, 그 진리를 아는 사람이 말씀선포, 선교를 하는 것이다. 또한 비둘기의 순박함이 있어야한다.

옛적 온 세상이 하느님의 진리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뜻, 욕망을 위해 사는 그 불륜(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킨 후, 노아는 땅에 물이 어느 정도 말랐는지 알아보려고 까마귀를 방주에서 내 보낸다. 까마귀는 썩은, 곧 죄(세상)의 고기를 먹느라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비둘기는 그 세상에 발붙인 곳을 찾지 못하고, 곧 세상 죄(선악)의 고기는 양식이 될 수 없음을 알고 방주로 돌아온다.

 

(창세8,10-11)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 이레(7)는 하늘의 안식을, 올리브 잎은 하느님을 뜻한다. 하느님(말씀)으로만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우리가 닮아야 할 비둘기의 순박함이다. 그렇게 뱀의 자리, 비둘기의 자리를 알고하는 선교이다.

그러므로 죄를 들춰내는 뱀의 자리에서, 하늘의 용서, 생명, 그 안식을 주는 비둘기로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선포하라는 말씀이시다.

 

(2티모4,2)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 꾸짖는 선교, 선포인 것이다. 그러니 그 말씀을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나 창조이전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들은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그래요, 맞아요, 그게 맞지요”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규정과 법규, 계명으로 지킨 그 인간의 의로움(개짐)으로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게 맞아요. “하늘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 입어야만 갈 수 있는 게 맞아요.” 하며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교, 말씀선포는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를 찾기 위한 분리, 구별을 위한 것이다.

 

(요한6,37)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요한17,12)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어떻게 말할까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 하느님은 당신백성, 자녀를 당신께서 곧 당신의 성령을 통해 찾아, 구해내신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왜 막아주지 않으셨는지 알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 보다 핍박하는 이들이 더 많다 하여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뿌려야 하는 것이다.

 

23ㄱ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 율법의 고을, 곧 제사와 윤리로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라 요구하면 다른 고을, 구원의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로 피하라는 말씀이다.

 

(로마3,21.23-24)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창조이전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이사25,4) 4 당신께서는 힘없는 이들에게 피신처가곤경에 빠진 가난한 이들에게 피신처가 되어 주시고 폭우에는 피난처폭염에는 그늘이 되어 주셨습니다.

 

(요엘4,16) 16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린다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가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새가 되어 주신다.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 심판의 긴박성을 뜻한다.

 

(묵시1,1)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말씀)입니다.

 

☨ 영원한 도피처, 피난처가 되어주신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 저희 모두가 감사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4주간 금요일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라는 경고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를 예고합니다.

유다인들은 제자들을 박해하지만이것은 역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박해에도 그리스도교는 많은 이에게 전해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박해는 점점 거세어지고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라는 미카서 7장 6절을 떠올립니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근간입니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불행은 다른 어떤 고통보다 더 크고 무겁습니다.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이러한 결과는 그만큼 박해가 심해질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런 표상은 종말론적인 재앙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깝게는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에서 시작하여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름은 그 사람 전체를 나타냅니다.

내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박해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 책들이 많습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종말을 강조합니다그리고 머지않아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리라고 예고합니다.

이럴 때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꼭 박해가 아니더라도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이러한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응급 상태는 119. 상대를 모를 땐 114.

(마태10,16-23)

16ㄱ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 뱀의 말을 먹은 그 이리 떼에 물릴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

그래서~

16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 뱀에 물리면 그 뱀의 독으로 치유하는 것, 뱀의 슬기.

뱀의 유혹으로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창세3,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 먼지, 어제 묵상했듯이 하느님의 말씀(뜻)을 거부하는 그 죄인을 뜻하는 것.

그 후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 으로 들어가기 위해 광야 생활을 할 때,

그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양식을 무시하며 투덜대고 원망하는 그 죄를 짓자~

(민수21,6.8)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그 때 모세가 중재기도를 한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 뱀에 물리면 그 뱀의 독으로 치유하는 것이 슬기이듯, 기둥 위에 뱀을 보며 자신이 왜 물렸는지 깨닫게 되면 살게 되는 것.

기둥(스타오로스)은 십자 나무로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약속의 말씀, 계명)을 뜻한다.

기둥 위에 뱀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저주(뱀)가 되시어 십자나무 기둥에 달리신 예수님이신 것(요한3,14참조)

그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을 깨달으라 주신 것.

 

그것이~

(지혜16,5-7.11-12) 5 사나운 동물들이(죄) 무서운 기세로 당신 백성들에게 들이닥쳐 백성들이 그 구불거리는 뱀들에게 물려 죽어 갈 때 당신의 진노는 끝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6 그들은 *경고의 표시로 잠깐 괴로움을 겪고 나서 당신 법의 계명을 상기시키는 구원의 표징을 받았습니다. 7 눈을 돌린(하느님의 뜻으로) 이는 자기가 본 것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신 당신 덕택에 구원된 것입니다. 11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들은 이빨에 물렸다가 곧바로 구원되었습니다. 깊은 망각에 빠지지 말고 당신의 선행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들을 낫게 해 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 주님, 그것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

= 십자나무 기둥의 예수님을 구원, 용서(치유)의 말씀으로 보지 못하고 그 하느님의 뜻이 아닌 육의 욕망을 위해 경배하는 것. 죄인인 것이다.(2열왕18,4참조)

오늘날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 인이라 하면서~ 이리 떼(뱀)에 물려 다른 민족들과 똑 같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규정과 교리를 의지하는 그 먼지로 살기에 온갖 질병과 마음의 병에 시달리며 산다.

그러기에 모두 뱀의 슬기로움, 그 뱀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그 지혜가 필요하게 되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하신 말씀임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러나 그 뱀의 슬기는 비둘기의 순박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곧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썩은 고기가 좋아 배로 돌아오지 않은, 곧 자신의 뜻, 입맛에 맞는 땅(고기)의 양식을 찾는 그 까마귀와 달리 하늘의 양식, 하느님의 말씀(올리브 잎)만을 바라고 찾는 그 비둘기의 순박함을 닮아야(창세8장참조)~

기둥 위에 뱀을 , 아니 우리에게 닥친 모든 시련을 하느님의 뜻, 구원의 말씀, 약속으로 볼 수 있는 것.

입맛에 맞는 땅의 양식(고기) 을 무시하는 비둘기의 순박함을 세상은 어리석다고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어리석은 이를 구원하신다는 것(1코린1,21)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 이리 떼에 물린 그 상태의 사람들을 조심하라 하시는 것, 하느님의 말씀, 십자가를 어리석다 하며 세상이 높이 평가하는 사람의 말, 계명으로 핍박 할 것이라는 말씀.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 사람의 계명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 박해를 하거든 다른 고을~ 곧 하느님의 말씀, 그분의 진리의 계명인 십자가의 복음으로 피신하라는 말씀이신 것.

그러면 보호자 성령께서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진리라 증언 하시며 또 그 사건들을 통해 진리의 깨달음으로 이끌어 하늘에 대한 희망으로 기쁨과 자유, 믿음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

 

(나흠1,7) 주님은 선하신 분 환난의 날에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분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을 알아주시는 분이시다.

(시편116,114) 당신은 저의 피신처, 저의 방패 저는 당신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 아멘.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복음(마태10,16~23)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게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16)

 

열두 사도의 파견과 관련된 '선교 활동 대상과 내용 및 복음 전파자로서의 자세에 관한 교훈'(마태10,5~15)을 마친 후에, 복음 전파자로서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와 고난에 대한 예고 및 교훈(마태10,16~23)이 나온다.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는 유다인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이방의 권력자들로부터도 올 것이다(마태10,17~18).

 

또한 마태오 복음서의 일차 독자인 유다계 크리스챤들에게 이글이 읽히는 시기도 여러 가지 박해 가운데 있을 때였다.

 

그리고 본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박해받는 자를 도우시는 성령과(마태10,20), 구원(마태10,22)과 주님의 재림(마태10,23)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복음 전파자로서 박해 받는 일이 영원하지 않으며, 종국에는 하느님의 축복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이라고 번역된 '에고'(ego) 일인칭 남성 단수 대명사 주격이다.

 

희랍어에는 동사에 주어의 인칭이 포함되므로, 굳이 인칭 대명사 주격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에고'(ego)라는 주어를 사용한 것은 제자들을 복음 전파자들로 파견하시는 일의 주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유다교의 글에서 '양'에 해당하는 '프로바톤'(probaton)은 이스라엘을, 그리고 '이리'에 해당하는 '뤼코스'(lykos)는 이방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서는 '양'은 거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가리키고, '이리'는 신약 성경에서 교회를 해치려는 세력을 상징한다(요한10,12; 사도20,29)..

 

한편 마태오 복음 10장 16절에서 '뱀'으로 번역된 '오페이스'(opheis)는 직역하면 '뱀들'(serpents)이며, 원형 '오피스'(ophis)는 희랍어 구약 성경인 70인역(LXX)에서는 창세기 3장 1절에 나오는 '뱀'과 동일한 단어이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코린토 2서 11장 3절에서도 '뱀'(ophis)이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한 간계와 교활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10장 16절에서는 뱀의 특성 가운데 교활함이 아닌 '슬기', '지혜'(wisdom)를 가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비둘기'에 해당하는 '페리스테라'(peristera; dove)는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분노하지 않는 '선'(virtue) 악에 오염되지 않는 '순박', '순결'(purity)의 상징이었다.

 

여기서는 두 짐승이 모두 '박해'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로마서 16장 19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교훈한 것처럼, 악한 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악에 대해 실제적인 통찰력을 가짐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간교하지 않은

선(善)을 가지고 악(惡)을 이기라는 뜻이다.

 

선(善)이 없는 지혜(슬기)는 간교함이며, 지혜(슬기)가 없는 선(善)은 악한 세력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양자의 균형잡힌 구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지혜(슬기)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이들 안에 계셔서 도우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지혜를 말한다.

  

 

 

 

 

20250711일 금요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제자들은 앞으로 박해를 겪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나를 증언하여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렇게 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고통과 죽음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제자들은 그 순간에 오히려 더욱더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그들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시고, 해야 할 바를 하도록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하기에 죽음조차도 그들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힘으로만 증언할 수 있기에, 인간의 힘만으로 해 보려는 태도를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걱정한다는 것은 자기의 지혜와 힘으로 해 보려는 자세이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미리 알려 주시지 않고 증언해야 할 바로 그때에 알려 주시는 것도, 미리 앎으로써 인간이 자기 지혜와 힘을 섞게 되는 것을 막으시려는 의도라고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 박해받을 제자들에게 미리 당부하시는 뱀 같은 슬기, 증언이 하느님의 몫이며 우리의 몫은 온전히 그분께 의탁하는 것임을 아는 것인 듯합니다.

그리고 비둘기 같은 순박함, 순박함이라는 단어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함과 외곬, 단순함을 뜻한다는 점에서 오직 하느님과 그분 뜻만을 바라보는 단순한 자세를 일컫는 듯합니다.

하느님과 그분 뜻만을 바라보면서 그분께 의탁하는 자세가 참제자의 모습입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

 

복음(마태10,16)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 제자들을 양(羊)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보내시면서 왜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하셨을까? (9절) 조심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조심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리떼 가운데서 죽으라는 말씀이다. 곧 어린양으로 오셔서 율법과 세상의 힘에 맞아 죽으신 예수님 처럼 말이다.

세상에서는 율법의 자기 의로움이 진리처럼 보이고, 세상의 힘의 원리가 이긴다. 곧 인간의 의(義), 명예, 영광이 이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원리인 자기 버림, 부인(否認)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구원의 진리’라 말하는 이들을 세상은 어리석다며 비난하고 박해한다. (요한15,18-19)

그래도 이리떼(세상의 힘)를 이기기 위해 양(羊)의 자리, 본분을 지키고 사자로 변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淳朴)하라.’고 하신 것이다.

*뱀의 슬기- 뱀에게 물리면 뱀의 독으로 치료한다. 곧 죄악으로 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을 때, 모세의 중개기도로 기둥에 달린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았듯이(민수21,7-9) 십자나무(기둥)에 죄인들의 대속으로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호라우-깨달으면) 살아나는 그 슬기다.

 

(요한3,13-15)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지혜16,5-7.11-12) 5 사나운 동물들이 무서운 기세로 당신 백성들에게 들이닥쳐 백성들이 그 구불거리는 뱀들에게 물려 죽어 갈 때 당신의 진노는 끝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6 그들은 경고의 표시로 잠깐 괴로움을 겪고 나서 당신 법의 계명을 상기시키는 구원의 표징을 받았습니다. 7 눈을 돌린 이는 자기가 본 것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신 당신 덕택에 구원된 것입니다. 11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들은 이빨에 물렸다가 곧바로 구원되었습니다깊은 망각에 빠지지 말고 당신의 선행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들을 낫게 해 준 것은 약초나 연고가 아닙니다주님그것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는 당신의 말씀입니다. (~아멘)

 

* 비둘기의 순박함- 어떤 처지에서든 하느님을 찾는 것이다.

 

(창세6,11) 11 세상은 하느님 앞에 타락해 있었다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그래서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방주(方舟)를 만들어 그의 가족들과 온갖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데리고 들어가게 하신 후 사십일 동안 밤낮으로 비를 내리셔서 온 땅이 물에 잠기게 하셨다. 사람을 비롯해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생물들은 모두 죽었다.

백오십일 동안 물이 불어나다가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노아는 까마귀를 방주 밖으로 내 보낸다. 그러나 까마귀는 물위에 떠있는 썩은 고기를 먹느라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노아는 비둘기를 보낸다.

 

(창세8,9-11) 9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 배(船)- 하늘 교회를, 올리브나무- 하느님을 뜻한다. 곧 비둘기는, 하느님 앞에 타락한 썩은 고기를 양식으로 않겠다는 순박함이다.

 

(요한6,26-29)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호라우하느님의 뜻으로 깨달음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 자신들의 뜻,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부리며 찾아온, 곧 깨달음(믿음)이 없는 행위의 신앙인들을 모형한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그러니까 사자로 변하지 말고 뱀의 슬기, 비둘기의 순박함으로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해 죽는 것, 곧 힘의 원리로 사자, 이리가 된, 세상(世上)화 된 나를 버리는, 부인하는 죽임, 그것이 선교며 신앙생활의 시작이며 끝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기 버림, 부인의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가 이끌고 가신다.

 

(루가1,50-53)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가 이리(사자)로 변한 우리에게는 시련, 고난으로 다가온다.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믿는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 우리의 승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견디는 것, 신앙생활이다. (잠언4,20-22 1코린15,57 1요한5,4)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절대 시험을 통과할 수도자기 부인의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그런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성령님!, 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조명연신부님 복음묵상. 2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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