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선하신 뜻 (마태11,25-27)

2025. 7. 15. 오후 12:35:45

글자

 

20250716일 수요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선하신 뜻 (마태11,25-27)


   


1독서<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나타났다.>(탈출3,1-6.9-12)

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9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에게 다다랐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억누르는 모습도 보았다.

10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11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12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

 

<화답송>시편103,1-2.3-4.6-7(8)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주님은 정의를 펼치시고, 억눌린 이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네. 당신의 길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네.

 

복음<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마태11,25-27)

25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제1독서 (탈출3,1-6.9-12)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5)

 

'가까이 오지 마라'로 번역된 '알 티크라브'(al thiqrab)에서 '티크라브'는 '접근하다', '멀지 않다', '가까이 오다'(창세27,41), '가까이 나아가다',  '다가가다'(신명4,11)라는 뜻을 지닌 '카라브'(qarab)의 미완료형이며, 여기에 일시적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알'(al)이 결합되었다.

 

히브리어에는 금지를 나타내는 표현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동사의 미완료형에 부정어 '로'(lo)가 결합된 형태로 '절대적 금지'와 '계속적 금지'를 나타내며,  또 하나는 여기처럼 부정어 '알'(al)이 사용되는 '일시적 금지'의 형태이다.

 

여기서 일시적 금지의 표현이 사용된 것은 모세가 선 곳이 그전부터 계속해서 거룩했던 곳이 아니라 지금 하느님의 임재와 현존하심으로 거룩해졌기 때문이다. 후에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도 이와 같은 금지의 명령이 내려졌다.

 

"주님 군대의 장수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네가 서 있는 자리는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는 그대로 하였다."  (여호5,15)

 

'거룩한 땅이니'로 번역된 '아드마트 코데쉬 후'(admath qodesh hu)에서 '거룩한'으로 번역된 '코데쉬'는 하느님의 절대적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묵시4,8).

 

엄격한 의미에서 하느님만이 절대 거룩하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되신다(이사43,3.14). 그러나 '코데쉬'가 피조물과 관련되어 사용될 수도 있다.

 

즉 '코데쉬'가 '장소'(신명23,14-15), '의식'(레위19,2; 21,6.8), '절기'(탈출16,23-26; 이사58,13), '물건'(레위19,24; 27,28; 여호6,19), '제물'(탈출30,32-33; 민수18,32) 등과 관련해서 사용되는 성경의 용례들을 볼 때, 그것들이 비록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하느님과 관계를 가질 때 거룩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들은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도 그 '땅'이 거룩한 이유는 그 땅 자체가 원래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모세가 있었던 시나이 산은 아름다운 숲이나 멋있는 경관이 있는 곳이 아니고 화강암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볼품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 곳에 임재하시니까 거룩한 땅이 되는 것이다.

 

한편, '신을 벗으라'로 번역된 '샬 네알레카'(shal nealleka; put off yout shoes;

take off your sandals)는 '너의 신을 벗으라'는 뜻이다.

 

고대 근동에 있어서 '신' 곧 '나알'(naal)은 발 밑바닥만을 보호하는 간단한 '샌들'(sandal)을 가리킨다. 그리고 '샬'(shal)은 '벗다'(여호5,15)라는 뜻을 지닌 '나샬'(nashal)의 명령형이다.

 

성경을 보면, 거룩한 장소나 상중에 신을 벗었고(여호5,15; 2사무15,30; 에제24,17), 자신의 기업을 포기할 때도 신을 벗었다(신명25,9; 룻기4,7).

 

히브리인들에게 신을 벗고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수치스럽고 비참한 일이었으며 (2사무15,30; 이사20,2), 노예들이나 맨발로 다녔다.

그리고 먼지가 많은 근동 지방의 특성상 신발 더러움과 죄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하느님 대전에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자 자신의 낮고 비천함에 대한 고백인 것이다.

 

어제 독서 탈출기 2장 14절을 보면,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이제 히브리인들 끼리의 싸움을 말리는 모세에게 잘못한 자가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하고 따진다. 사실은 이 말속에 모세가 지금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가 들어 있다.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고, 어머니 무릎에서 신앙과 민족 교육을 받은 모세는 이집트 궁중에서 40년을 보내며, 입양된 공주의 아들로서  최고의 고등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집트 궁중 교육을 받았고, 모세안에는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인권이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애국과 독립, 해방과 자유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자기 힘으로 히브리인 동족의 지도자와 판관 노릇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힘으로 동족의 해방과 자유를 추구했을 때 실패하고, 그것이 탄로나 미디안 지방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40년을 보낸다. 하느님은 이렇게 모세의 자기식의 의와 혈기와 힘을 무장해제 시키고, 소명의 시기가 오자,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인도하셨다.  

 

탈출기 3장 1-6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다.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아, 저 떨기가 왜 타버리지 않을까? 하고 모세가 생각하며 그것을 보러가는데, 주님께서 그걸 보시고 떨기 한 가운데서 "모세야,모세야!" 부르신다.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모세가 대답하자,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하신다.

 

사실 하느님이 발현하셨다는 호렙산 자락의 떨기나무를 순례 가서 보면, 별 볼일이 없다.

그러나 그 별 볼일 없는 것이 별 볼일 있는 것으로 되는 이유가 하느님이 그곳에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함께 하시면, 모세의 막대기도 기적의 도구가 되듯이 불타는 떨기가 있는 그 장소도 거룩한 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왜 불꽃 속에서 하느님은 현현하실까? 불은 사랑,열정,심판,정화를 의미한다.

히브리서 12장 29절에는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 버리는 불이십니다."  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런 의미일 것이다. 

루카복음 12장 49절에는 예수님이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라는 말씀을 하신다.

집회서 48장 1절에는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서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불>은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는 소명의 말씀을 전하시는 하느님은 불꽃속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말씀을 건네신다. 

 

거룩한 곳에서는 "신을 벗어라" 고 하느님이 말씀하신다.

나이 40세에 자기 힘과 능력과 지혜로 이스라엘을 구제하려다 살인을 하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간 모세가,

40년동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 밑에서 양떼를 돌보다 양보다 못한 인생을 살며~~자기식의 의와 혈기를 다 뺀 나이 80세 먹은 노인네 보고, 하느님께서는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오라고 하신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오라>는 말씀은 기존의 모세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과 태도와 자세, 자기식의 의와 혈기를 완전히 버리고 와서 당신이 주시는 새로운 말씀을 받으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당신의 온전한 도구로 쓰시기 위해 모세로 하여금 40년 광야 생활 뒤에 또 한번 자신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며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신다. 

 

 



 

[연중 제15주간 수요일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의 감사 기도는 아버지하늘과 땅의 주님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요한 복음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그보다는 적지만 예순네 번 가량 이 호칭을 씁니다.

아버지로서 하느님은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친밀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은 성경에서 드물게 사용되지만 창조된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을 분명히 드러냅니다(사도 17,24 참조). 그분의 신비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이사야서 29장 14절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혜와 슬기는 하느님의 선물로 여겨지지만 스스로 지혜롭거나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신비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당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신비는 어린이와 같은 철부지들에게 드러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군중일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하느님께서는 선별적으로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이에게 드러납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아버지께 의탁하는 자세로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서 있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본기도>

  

복음(마태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하늘과 땅의 주님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 하느님이 감추신 ‘이것’, 앞23절 이하에서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 곧 하느님의 뜻, 새 계약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義)를 구원의 진리로 밎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제사와 윤리, 그 인간들의 행위의 열심, 계명을 잘 지킨, 그 인간의 의(義)로 자신의 뜻을 이루며 또 하늘에 까지 이르려는 이들은 소돔, 고모라처럼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라 하신 ‘이것’이다.

 

(예레23,14) 14 나는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에게서도 *망측한 일을 보았다그들은 간음을 하고 거짓 속을 걷는다또 악을 저지르는 자(세상)들의 손을 거든다그리하여 *아무도 제 악에서 돌아서지 않는다그들은 모두 나에게 소돔처럼 되고 그 주민들은 고모라처럼 되어 버렸다.

=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세상)의 법(法), 계명(誡命)으로 가르치는 것이 하느님과 분리, 이혼시키는 간음(姦淫), 악(惡), 거짓, 곧 죽음의 길이다.

‘신학(神學)이 믿음의 신앙을 망쳤다’는 말이 있듯이 본문 25절은 하느님의 말씀은 학위(學位)받는 박사(博士)들 보다 철부지들이 더 잘 받아들인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26 그렇습니다아버지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사29,14) 14 나는 이 백성에게 놀라운 일을놀랍고 기이한 일을 계속 보이리라그리하여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는 사라지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는 자취를 감추리라.”

 

(1코린3,19) 19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27ㄱ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 하느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세상의 권한을 넘겨주셨다.(창세1,28 2,15-19참조) 그러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뱀(악)의 유혹에 넘어가 그 세상의 권한을 빼앗기고, 넘겨주고 말았다.(창세3,1-8 루가4,6참조) 그래서 모든 인간들(세상)은 악마(죄)의 지배(거짓 가르침)를 받다가 끝내는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그냥 계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당신의 백성, 자녀들을 구(求)하시기 위해그들의 모든 죄(罪)를 예수님께 넘겨주셨고, 그 넘겨받으신 우리 죄(罪)의 목숨 값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신(代身) 죽으심으로 믿는 우리가 새 생명, 구원을 넘겨받게 된 것이다.

 

(1코린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갈라3,22)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7ㄴ 또 아들 외에는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 ‘말씀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

 

(요한6,37)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 하느님께서 미리 선택(選擇), 정(定)하신 이들을 넘겨주심이다.

 

(에페1,11)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 한 몫, 믿음으로 얻는다.

 

(1베드1,2) 2 하느님 아버지께서 *미리 선택하신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룩해져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고또 그분의 피가 뿌려져 정결하게 되었습니다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 성령(聖靈)의 이끄심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 깨끗해진다.

 

(로마8,29-30)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하느님께서 의롭게, 영광스럽게 만들어 가신다. 그때 필요한 것이 우리의 살이 되어버린 세상의 힘들을 떼어내는 자기 버림, 부인(否認)의 고통, 시련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구원(救援)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신의 뜻을 위한 행위의 길을 가는 자식 들에게 사랑(생명)의 매(枚)를 드시는 아버지시다.

 

(히브12,7)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 하느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탄(마귀)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看過)해서는 않된다.(마태24,24) 그러나 하느님의 고집이 더 세시다.

그러니까 하늘의 의(義), 생명을 위한 믿음의 신앙이 아닌, 세상의 명예, 의(義), 재물(才物) 등을 내는 것으로 ‘쌓기 위한’ 결함있는 옛 계약(히브8,7) 그 율법(제사와 윤리)의 행위신앙(行爲信仰)을 고집하면 할수록 힘들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1,25~27)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한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5~26)

 

원문은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여기서 '아버지'에 해당하는 '파테르'(pater)는 호격이다.

 

사실 예수님만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는데, 그 이유가 마태오 복음 11장 27절에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아버지의 독특한 친밀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마태26,39.42).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빌미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죽이고자 했다(요한5,18).

 

'아버지'라는 호칭은 그만큼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성을 드러내는데 적합한 용어였지만, 무지한 유대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하느님을 망령되이 부르는 신성모독적 언행으로 비쳐진 것이다.

 

한편,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는 말은 사도 바오로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사도17,24).

그리고 창세기 14장 19절에도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이라는 표현이 발견되는데, 여기에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Maker of heaven and earth)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흥미롭게도 창세기 14장 19절에서 이 말을 했던 사람은 살렘 임금 멜키체덱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멜키체덱의 반열을 따른 영원한 대사제였다(히브6,20).

 

멜키체덱보다 이천여 년 뒤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예표하는구약의 인물인  멜키체덱과 같은 말로써 하느님을 호칭함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주되심을 다시 한번 확증하셨던 것이다.

 

창조주이시기에 당신이 가지는 창조물에 대한 주권(이사64,8)을 높여 표현한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는 호칭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께 바쳐야 할 또 하나의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신' '이것'은 무엇인가?

 

원문은 단수가 아니고 복수('타우타'; tauta; '아우타'; auta; them)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한 가지 사실이나 가르침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건과 가르침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의 주된 관심사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이며, 앞의 마태오 복음 11장 20~24절의 예수님의 책망과 심판 경고의 주된 이유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 즉 복음을 의미한다.

 

한편, 본문에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 '철부지'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슬기롭다는'에 해당하는 '쉬네톤'(syneton) '이해력을 가진', '신중한', '학식이 있는', '지성을 갖춘'이란 뜻이다.

 

보통 자칭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를 가리킨다고 말한다(마태23,24).

그러나 단지 그들만이 아니고, 마태오 복음 11장 16절에 나오는 '이 세대', 즉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을 받고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든 불신자들을 언급한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에 '철부지들'로 번역된 '네피오이스'(nepiois)는 '젖먹이','경험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의 제자들' 혹은 '순박한 사람들'을 말한다.

 

결국 본문은 많이 배워서 자기 스스로 사리분별에 신중하고 학식있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지혜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제 젖먹이처럼 경험없고 순박한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지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의 아이러니같은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누구에게 당신의 진리를 나타내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얻어 입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끝으로, '그렇습니다,아버지! 아버지의 선한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에서 '아버지'로 직역된 '호 파테르'(ho pater)에서 정관사 '호'(ho)가 사용된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이 일반적인 부자(父子)관계가 아니라 유일하고 특이한 부자(父子)관계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요한10,14.15).

 

더군다나 '뜻'으로 번역된 '유도키아'(eudokia)는 '좋다', '잘되다'는 뜻의 부사 '유'(eu)와 '생각'이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도키아'(dokia)의 합성어로서 원래 '선의'(good will), '기쁘신 뜻'(good pleasure),  '은혜로운 뜻'(gracious will)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고 자비로운 뜻을 알고 있는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감격적인 표현이 잘 담겨져 있다.

 

즉 하느님께서 누군가에게 당신의 뜻을 감추든지 감추지 않는지는 순전히 하느님의 기쁘신 뜻에 달려 있음에 대한 예수님의 전적인 동의가 나타나고 있다.

 

 


 

 

20250716일 수요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독서는 하느님의 드러나심과 모세의 파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모세의 모습을 보면, 파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작음, 무능함, 아무것도 아님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탈출 3,11)

탈출기 앞부분에는, 이집트의 온갖 훌륭한 교육을 받고 군사 지휘 면에서도 전문가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려는 열의로 가득 찬 모세가 나옵니다.

그러나 사십 년이 지나서(사도 7,30 참조) 이미 노쇠해 있고, 어쩌면 낙심, 절망, 그리고 일상에 자신을 적응시킨 무기력한 지금의 모세가 백성의 해방을 위하여 파견됩니다.

자신의 능력과 열의를 신뢰하는 모세가 아니라 자신의 무능을 잘 알고 있는 나약한 모세를 주님께서 파견하십니다.

구약 성경 전체의 뿌리가 되는 탈출 체험의 시작인 이 하느님의 나타나심도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모습, 곧 그 자체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 만큼 평범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모습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비로소 작은 이, 곧 무력한 모세가 볼 수 있었습니다.

높은 이에게는 낮고 평범한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이에게만 그것이 보이며, 그 작은 사건이 큰 일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작은 존재가 가장 큰 일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하느님을 알고 의지하십니까?

 

(마태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하늘과 땅의 주님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 그때에,- 앞 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그분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제사와 윤리로 받아 열심히 살았던, 그리고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지켰던 그 자기 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르려 했던 이들은 하늘이 아니라 저승으로 떨어질 것이라 말씀하신 그때이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1코린2,9) 그 하느님의 뜻, 말씀이다. 그러니 사람의 지혜, 슬기로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사람의 지혜로 이해되어지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1코린1,19.21)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지혜로 들으면(받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알아듣는 이들이 있다. 하느님께서 알아듣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감사를 드린 것이다.

그런데 철부지 같은 우리에게 알려주신 일이 예수님께서 감사드릴 일인가?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일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늘 나와 하나, 한 몸이신 내편 이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영원히, 보호자로 함께 하신다.

 

26 그렇습니다아버지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 하늘과 땅의 주인, 주님이신 하느님의 선한 뜻, 곧 세상 창조 이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이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안다.

 

(이사46,9-10) 9 먼 옛날의 (창조일들을 기억해 보아라내가 하느님다른 이가 없다내가 하느님나 같은 이가 없다. 10 나는 처음부터 장래 일들을 알려 주고 예전부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알려 주며 내 계획은 성사되고 나는 내 뜻을 모두 이룬다.”고 말하는 이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십자가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신 하느님이시다.

=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 그분의 피, 새 계약으로 얻는 하늘의 용서, 의로움, 거룩이다.

 

(로마8,29-30)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또 아들 외에는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 하느님은 당신을 계시해 주셔야 우리가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분의 사랑을 얼마나 알고, 그 사랑 안에서 사는지, 정말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신 그 하느님을 알고 있는지.

 

그래서 (2티모1,9)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죄인인 우리(세상)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 죄의 속죄 제물로 내주시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그 사랑의 하느님을 의지하는지.

 

(히브10,17)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다“ 하신 그 ‘하느님으로 사는가’ 말이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할 때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사도신경)로 시작한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전한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하느님을 창조주로 믿는다. 그런데 그렇게 말은 하면서 믿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온 우주만물이 창조가 아닌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거처 어류에서 양서류로,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진화했다는(진화론) 그 세상 사람들의 말을 더 믿는다. 그 진화론이 틀렸다고 하면 당장 학교 시험에서 점수도 못 받는다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수십억년 동안 진화가 된 것이라면 그 수십억년 동안 진화해 왔다는 증거, 곧 수많은 화석이 있어야 하는데, (반드시 연속적인 중간단계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것이다. (김명헌 교수의 창조 과학 중에서) 검증되지 않은 학설일 뿐인 진화론이 창조론을 먹어버린 것이다. 곧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제 종류별로 창조하셨다.

 

(창세1,11.21.24-25)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곧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25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집짐승을 *제 종류대로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 성경은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을 강조한다. 진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한 치의 오차(誤差)없이 우주 만물을 완벽하게 제 역할에 따라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곧 우리 구원에 필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묵시5,13) 13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우리는 (히브11,3) 3 믿음으로써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런데 그 우주만물은 사라질 것들이다.

(2베드3,7) 7 지금의 하늘과 땅도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같은 말씀으로 보존됩니다불경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날까지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 그 사라질 것을 왜 창조하셨는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소품들인 것이다.

 

(지혜16,24) 24 피조물은 자기를 만드신 당신을 시중들며 불의한 자들을 징벌하는 데에는 그 힘이 팽팽해지고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에게는 득이 되도록 그 힘이 느슨해집니다.

= 하느님의 창조 목적은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의 노력, 노고, 열심, 그 진화가 아닌, 하느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새 창조, 새 피조물, 새 사람으로 완전해 지는 것임을 보여 주심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세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 우리 구원은 그리스도의 대속,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말씀)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 구원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는 것이다.

 

(묵시21,1.22-23)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시련의 풍랑)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2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계획, 그 말씀으로 새 창조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시다.

 

☨천주의 성령님! 모든 피조물들이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듯이 저희도 하느님의 뜻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태12,1-8)25.07.18조회 12[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안식을 주겠댜. (마태11,28-30)25.07.16조회 16[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선하신 뜻 (마태11,25-27)25.07.15조회 17[연중 제15주간 화요일] 회개하여라 (마태11,20-24)25.07.14조회 11[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0,34-11,1)25.07.14조회 28[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마태10,24-33)25.07.11조회 11[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너희를 보낸다.(派送) (마태10,16-23)25.07.10조회 11[연중 제14주간 목요일] 거저 주어라 (마태10,7-15)25.07.09조회 12[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제자 파견(派遣) (마태10,1-7)25.07.08조회 17[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일꾼 (마태9,32-38)25.07.07조회 13[연중 제14주간 월요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태9,18-26)25.07.06조회 17[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증언할 것이다 (마태10,17-22)25.07.04조회 16[연중 제13주간 금요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9,9-13)25.07.03조회 19[성 토마스 사도 축일] “보고서야 믿느냐?” (요한20,24-29)25.07.02조회 55[연중 제13주간 수요일] 마귀와 돼지 떼 (마태8,28-34)25.07.01조회 52[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 (마태8,23-27)25.06.28조회 49[연중 제13주간 월요일] 나를 따라라. (마태8,18-22)25.06.27조회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