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22일 화요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마리아야!” (요한20,1-2.11-18)
제1독서<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아가3,1-4ㄴ)
신부가 1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2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3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또는<이제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2코린5,14-17)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화답송>시편63,2.3-4.5-6.8-9(◎2ㄷ) ◎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
○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고, 성소에서 당신을 바라보나이다. 당신 자애가 생명보다 낫기에, 제 입술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
○ 이렇듯 제 한평생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 부르며 두 손 높이 올리오리다. 제 영혼이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러, 제 입술이 환호하며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
○ 정녕 당신은 저를 도우셨으니, 당신 날개 그늘에서 환호하나이다. 제 영혼 당신께 매달리오면,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드나이다. ◎
복음<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12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제1독서 (아가3,1-4ㄴ)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1)
아가서 2장 8절~17절은 오랜만에 재회한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두 연인이 서로에 대한 연모의 노래를 부르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아가서 3장 1~5절까지는 꿈 속에서 솔로몬을 찾아 헤매다 만난 술람미 여인의 애틋한 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앞의 내용은 실제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찾아온 현실 가운데 이루어진 일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아가서 3장 1~5절은 꿈 속에서 있었던 일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이다.
저자가 술람미 여인의 꿈속에서 있던 일까지 기록한 것은 오페라 형식의 사랑의 찬가인 아가서의 다양한 배경 중의 한 부분을 차지하여 그 무대와 등장 인물의 활동 영역의 다양성을 넓혀준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처녀는 혼인식을 올릴 때까지 외부 출입을 삼갔기 때문에 이 글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 속의 이야기이다.
밤에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가 있다면 매춘부(잠언7,8~10)로 밖에 볼 수 없고, 아가서 3장 4절에 나타난 대로 이스라엘에서 여인이 남자를 자기 어미의 집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경우는 오직 그 남자가 결혼한 남편일 경우에 국한되므로 이것은 꿈 속의 이야기인 것이다.
꿈에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사건도 이루어지고, 그녀가 연인을 찾기 위해 밤마다 돌아다니는 것도 꿈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잠자리에서'로 번역된 '알 미쉬카비'(al mishikabi)는 '나의 침상에서' (on my bed)라는 전치사구인데, 본래 동사가 문장의 첫 머리에 배치하는 히브리어 문장 구조와 비교할 때 특별한 강조의 의미로 앞에 나온 것이다.
또한 '밤새도록'으로 번역된 '빨렐로트'(ballelloth)는 전치사 '뻬'(be)에 정관사 '하'(ha), 그리고 '밤'을 의미하는 '라일'(lail)의 복수형이 결합된 형태이다.
이렇게 '밤'을 복수형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 어떤 번역본은 '밤마다' (night after night), 또 어떤 번역본은 새 성경처럼 '밤새도록', '온 밤에' (all night)로 번역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연인 솔로몬을 '밤마다' 혹은 '밤새도록' 계속해서 찾았음을 나타내준다.
'마음에'에 해당하는 '나프쉬'(napsh)의 원형 '네페쉬'(nepesh)는 '목숨', '생명', '영혼'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히브리어에서 '마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는 '레브'(leb)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페쉬'가 사용된 것은 술람미 여인의 솔로몬에 대한 사랑이 생명을 건 사랑이며,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참 사랑임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앞의 '찾으려 하였건만'에 해당하는 '삑카쉬티우'의 원형 '빠카쉬'(baqash)는 강조 능동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강한 열망과 염원과 밀착되어 무언가를 알기 위해 '묻다', '찾다', 그리고 물건이나 정보를 확보하거나 획득하기 위해 '찾다', '요구하다'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찾아내지'에 해당하는 '메차티우'도 '찾다', '발견하다' 라는 뜻을 지닌 '마차'(matsa)의 완료형이다.
두 동사가 모두 3인칭 어미 '우'(u)로 끝맺고 있으며, 3인칭 어미가 한 번만 사용되어도 되는데 두 번 사용된 것은 발음상의 대구를 이룸과 동시에 '그를' 찾고자 하는 술람미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은 그를 부르시는 그분의 ‘목소리’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은 ‘들음’을 통하여 힘을 드러냅니다.
특히 ‘들음’은 ‘착한 목자의 비유’(요한 10장 참조)에서 예수님의 양들이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그분의 양들은 ‘들음’을 통하여 착한 목자와 깊은 일치의 관계를 맺습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10,3-4).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면 가장 먼저 ‘들음’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이야기하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사에 참여하였어도 그분의 말씀이 들리지도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고백처럼 우리 믿음도 들음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여 참으로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웃어야 할 여자가 울고 있다.
(요한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 주간 첫날, 안식일 다음날 곧 지금의 주일인데- 모든 이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날이다.
2ㄱ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 갑자기 성경은 마리아를 여자라는 표현을 한다. 에덴동산에서 여자에 의해서 하느님의 뜻이 허물어졌고, 그 여자는 첫 남자(아담)에게 버림받는다.(창세3,12)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죽어야 할 죄인 창녀 그 여자가 자신의 죄를 대속 하신 두 번째 남자(예수)의 그 의로움으로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어 구원 받는 은총(은혜)의 복음을 얘기하고 싶으신 것이다.
(1코린15,45) 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2ㄴ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 예수님의 무덤은 우리의 모든 죄가 죽어 없어진 무덤이다. 그러니 마리아(쓴물-고통의 죄인), 그 여자는 울고 있을 일이 아니라 의인(단물)이 된 것을 기뻐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부활하셨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현상 만을 보고 울고 있는 마리아, 우리들의 한계라는 것이다. 웃어야 할 우리가 울고 있다는 것이다. 근심, 걱정으로 울고 있다면, 십자가가 주시는 하늘의 용서, 자유, 그 진리의 말씀이 선과 악, 도덕과 윤리, 사람의 규정과 법규, 계명에게 먹혔기(가리워졌기) 때문이다.
12 (마리아가) 들여다 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신 위쪽, 아래쪽에 있는 모습은 구약의 속죄 판의 모습이다.(탈출25,17-22참조) 곧 증언(계명) 판으로 우리의 죄를 심판, 고발 할 그 죄를 대속하시고(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심판의 죄를 덮고 있는 속죄 판의 모습인 것이다. 하느님의 심판권을 갖은 두 천사가 죄인 우리에게 죽음의 심판을 할 수 없음을 보여 주심이다.
(히브10,10)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히브13,12)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그러니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왜 우니?” 하는 것이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여전히 보이는 능력의 예수님을 찾는(우리의) 모습이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 자기 뜻, 생각의 눈으로 찾고, 보았지만 몰라 봤다는 것이다.
15ㄱ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 ‘능력의 예수님을 찾느냐?’ 아니면 ‘너의 죄로 죽어 너를 거룩하게 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느냐?’ 물의시는 것이다.
15ㄴ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여전히 모르는 ‘마리아’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 “마리아야!”하고 부르신 것은 쓴물(마리아)이였던 네 자신의 실체를 다시 보라는 말씀이다.
17ㄱ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 그 마리아(쓴물)를 거룩하게 하신 곧 자신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고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영(성령)을 붙들어야지, 능력의 예수 선생을 붙들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17ㄴ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제자들은 알아들었을까?
병행 복음으로 가보면~
(루가24,11) 11 사도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우리(나)는? 용서, 구원의 말씀 앞에 웃어야 할 우리가 울고 있는 것은 아니지?.....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복음(요한20,1-2.11-18)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7)
'나를 붙들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무 합투'(me mu haptu)에서 '붙들지'에 해당하는 '합투'(haptu)는 현재 명령형이고, '메'(me)라는 부정어가 사용되어서 현재 이미 진행되고 있는 행위를 금지시킨 것이다. 그리고 '합투'(haptu)의 원형 '합토마이'(haptomai)는 '비끄러 매다', 즉 서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매다라는 매우 강한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계속해서 강하게 붙들고 있는 마리아에게 이제 그만 놓을 것을 명령한 것이다. 아마도 부활하기 전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뒤의 예수님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마리아에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일 것이다.
당시 마리아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꼭 붙들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곧 만져질 수 있는 상태에서 만져볼 수 없는 상태로 바뀌어야 했다.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과 계속해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승천하셔서(사도1,9) 영이신 성령을 보내셔야 했기 때문에, 계속 육신을 지닌 채 머물 것을 강요하는 듯한 마리아의 행동을 자제시킨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당신의 부활이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며, 나머지 사명들을 그들에게 위임하신 후에 아버지께로 가실 것이라는 사실과 가신 후에는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님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점진적으로 깨달아 갔다. 특히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라는 구원사적 계시를 깨닫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이 요한복음 20장 11~18절에서 사도 요한이 강조하는 바이다.
첫번째 부활에 대한 깨달음은 16절에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시는 부름에 의해서, 두번째 승천에 대한 깨달음은 17절에서 '나를 붙들지 마라'는 교훈에 의해서 암시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을 말씀을 통해 조금씩 더 풍부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자신의 영적인 귀를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개방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진보는 없다(묵시2,7).
한편, '올라간다'에 해당하는 '아나베베카'(anabebeka)는 '아나바이노'(anabaino)의 완료형 동사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기 위해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강조함으로써 이렇게 당신이 마리아와 머물러 있는 것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본문은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하는데, 나의 사명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예수님께서 부활과 승천을 서로 단절된 별개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구원 사업의 연속선상에서 당신 자신이 이루어야 할 구원사업의 마지막 마무리로 보고 계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아나바이노'(anabaino)가 미래형이 아니고 현재형으로 기록된 사실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승천할 것이라는 것이 아니고 지금 승천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이며, 이 사실을 망각하고 당신 자신을 이 땅에 계속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17절의 마지막 문장은 '(너는)가서 ~전하라'('포류우 ~에이페'; poreuu ~eipe; go ~say)라는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부활하심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얼마있지 않아 승천해야 할 예수님을 붙들고만 있는 마리아에게 지금 바로 그녀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예수님 공생활 초기를 묘사하고 있는 요한 복음 1장 39절의 '와서 보시오'(come and see)라는 명령과 서로 대구를 이룬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사업은 '데리고 와서 보여 주는 일'로 시작되었고, '내보내서 전하게 만드는 일'로 마친다고 볼 수 있다(요한20,21). 우리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보고 들은 것으로 자족하지 말고, 그것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사도1,8).
2025년 07월 22일 화요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은 주님을 애타게 찾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을 전합니다.
우리가 누구 또는 무엇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으면 ‘내’ 동생, ‘내’ 물건이라는 표현을 쓰듯이, 주님에 대한 막달레나의 깊은 사랑과 간절함은 ‘저의’ 주님이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납니다.
오늘 독서도 그러한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막달레나처럼 마음이 오직 주님께만 향한다 해도 그분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복음에서도 주인공들은 애를 태우고 태우다 사랑하는 이를 겨우 만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막달레나에게 당신을 바로 보이시지 않고 뒤에서 한참 지켜보시다가, 질문도 하시고 답변도 들으시고 나서야 드러내 보이셨을까요?
그레고리오 성인은 “거룩한 욕망은 그 성취가 지체될 때 더욱 커진다.”라고 말하면서 마리아의 열망이 더욱더 커지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러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에 대한 사랑이 한층 더 크게 불타오르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우리 또한 주님을 체험하는 행복 속에 있다가도, 그분을 느끼지 못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 헤맬 때가 있습니다.
게을러서 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처럼 우리의 탓일 때도, 이는 우리가 잘못을 알아차리고 고치게 하시는 그분의 교육 방법입니다.
그런데 충실히 기도해도 그분의 부재를 느낀다면, 우리는 이 부재 체험이 그분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더 불태우게 하는 그분의 배려라는 것을 믿으면서, 우리를 만나 주실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다림 뒤에 오는 만남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예수를 붙들지 말고 성령을 붙들라”는, 그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다.
복음(요한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예수께서 묻히신)에 가서 보니,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 증언판(탈출25,10-21), 곧 심판의 십계명을 넣은 계약 궤(櫃)를 속죄판이 덮고 있어, 계명을 근거로 심판할 수 없는 두 천사(커룹)이다.
(탈출25,22) 22 “내(야훼 하느님)가 그곳에서 너를 만나고, 속죄판 위, 곧 증언 궤 위에 있는 두 커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일러 주겠다.”
= 속죄판, 곧 대속의 속죄 제물(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덮으시는 그 구원의 계약,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두 천사가 “왜 우느냐?‘고 한 말은 ”예수님께서 너의 죄를 덮으시기 위해 죽으셨고, 의롭게 하시려고 부활하셨으니 기뻐할 일이지, 울 일이 아니다“라는 의미다. 그런데 마리아는 엉뚱한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그러니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몰라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 사람의 눈은 보면서도 모른다. 곧 사람의 관점으로는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말이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마리아는 스승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의 가르침, 곧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되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들었으면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상상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의롭게 하시려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원, 생명의 진리로 믿는다 하면서도 정작 그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내 육(肉)의 뜻(소원)을 채우기 위해 제사와 윤리의 그 율법을 지키기 바쁘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은혜)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요한6,29)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 죄의 속죄 제물로 보내신 구원자, 우리 구원의 선물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이시다. 그분을 믿지 못하기에 늘 운다. 곧 나의 열심, 행위를 더 믿고 의지하기에 늘 근심, 걱정 속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ㄱ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 ‘스승 예수님’은 붙들지 말라는 말씀이다. 곧 승천하신 후, 다른 보호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영(靈), 성령님’을 붙들라는 말씀이다.
(요한14,16-18) 16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 지금까지 보호하셨던 예수님이 아닌 부활, 승천 후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받아야 산다.
17ㄴ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 흙의 먼지일 뿐인 우리가 겉만이 아니라 속(양심)까지 더러운 내가 주님의 ‘나의 형제’, 전능하신 사랑이 가득하신 ‘하느님이 내 아버지’란다. 속죄 이신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우리(나) 모든 죄(罪)가 깨끗이 ‘다 씻겼기’ 때문이다.
*나의 하느님 아버지! 나의 힘, 나의 빛, 평화, 의지, 사랑이신 나의 하느님 아버지!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마르16,14) 그러나 다른 보호자 성령께서 오신 후, 그 성령의 이끄심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주님의 길을 따랐다.’ 그래서 기적과 은력의 예수님을 붙잡고 섬길 때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졌다” 하시고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 승천하신 뒤 *다시 오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과 하나 되어 그분의 이끄심을 받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의 눈, 관점이 아닌, 하느님의 관점으로 성경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올바로 믿을 수 있다.(1코린2,9-10참조) 믿어야 할 것(지혜)과 믿지 말아야 할 것(지혜)을 분별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다.
(1코린2,4-5)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8,9-10) 9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 제사와 윤리로 착하게, 의롭게 살았어도 성령을 믿지 못하고, 의탁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죽었다는 말이다.(갈라3,10) 인간의 관점으로 하느님을 ‘생각하고, 본다.’ 하기 때문이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아멘.
☨영원한 생명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은 저희가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게 하소서. 사랑이 미움을 덮도록, 먹을 수 있도록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 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사랑)가 아버지의 뜻(생명)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멘!
신약의 아가서 “마리아야! 라뿌니!”(요한 20,16).
|
아 가 서 |
요한복음 |
|
친구들↘ |
천사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 20,13). |
| 여 자↘ “나의 연인은 눈부시게 하얗고 붉으며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이랍니다.”(아가 5,10). |
마리아↘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13). |
| 친구들↘ “그대 연인은 어디로 갔는가?”(아가 6,2) |
예수님↘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 20,15). |
| 여 자↘ “나는 내 연인의 것, 내 연인은 나의 것. 그이는 나리꽃 사이에서 양을 친답니다.”(아가 6,3). |
마리아↘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요한 20,15). |
| 남 자↘ “나의 애인이여!”(아가 6,4) |
예수님↘ “마리아야!”(요한 20,16). |
| 여 자↘ “오셔요!”(아가 7,12). |
마리아↘ “라뿌니!(스승님)”(요한 20,16). |
| 남 자↘ “그대여, 친구들이 그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구려.”(아가 8,13). |
예수님↘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7). |
| 여 자↘ “일어라, 북새바람아! 오너라, 마파람아! 불어라.”(아가 4,16). |
마리아↘ (제자들에게)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