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목요일]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 (마태13,10-17)

2025. 7. 23. 오후 3: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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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4일 목요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 (마태13,10-17)

   


1독서<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탈출19,1-2.9-11.16-20)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바로 그날,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2 그들은 르피딤을 떠나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진을 쳤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그곳 산 앞에 진을 쳤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다가가겠다. 그러면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이 듣고 너를 언제까지나 믿게 될 것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주님께 그대로 전해 드리자,

10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에게 가거라.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11 셋째 날을 준비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16 셋째 날 아침,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영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

17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

18 그때 시나이 산은 온통 연기가 자욱하였다. 주님께서 불 속에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마치 가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연기가 솟아오르며 산 전체가 심하게 뒤흔들렸다.

19 뿔 나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말씀을 아뢰자, 하느님께서 우렛소리로 대답하셨다.

20 주님께서는 시나이 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모세를 그 산봉우리로 부르셨다.

 

<화답송>다니3,52.52.53.54.55.56(52) 세세 대대에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주님,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당신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거룩한 영광의 성전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거룩한 어좌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커룹 위에 앉으시어 깊은 곳을 살피시는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하늘의 궁창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복음<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마태13,10-17)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제1독서(탈출19,1~2.9~11.16~20ㄴ)

 

 "백성에게 가거라.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셋째 날을  준비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19, 10ㄴ~11) 

 

탈출기 19장은 시나이산 계약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계약'이란 말은 히브리말로 '베리트'(berit) 이고, '베리투'란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그 뜻은 본래 '묶는다'(bind)는 뜻이다. 즉 둘 사이를 연결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약을 맺는다'고 했을때, '맺는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카랏'(karat)이란 동사를 쓰는데, 직역하면 '자르다'는 뜻이다. 예레미야서 34장 18절을 참조하고,'신부님 묵상글'에서 '계명준수'를 참조하기 바란다. 

 

어쨌든 둘이 연결되고 계약을 맺으려면 쌍방이 만나야 되는데, 이 계약이 맺어진 시기가 이집트 땅을 떠난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달 바로 그 날,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탈출19,1) 

 

계약 체결의 장소가 시나이 광야 혹은 이다. 광야와 산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시나이 산에서 계약 체결이 이루어졌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산으로 올라가고, 하느님께서 하늘로부터 친히 영으로 강림하셔서 시나이 산에서 서로 만나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사실, 계약의 기초인 사랑, 계약의 조건인 순종, 계약에 약속된 축복이 들어 있는 계약 체결을 약속하시는 말씀(탈출 19,4~6)은 오늘 독서에서 다 생략되었다. 

 

오늘 독서는 계약 체결을 준비하는 말씀(탈출19,9~11)과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나타나신(theophany) 장면이 나온다(탈출19,16~20ㄴ). 

 

오늘 독서의 근본 주제는 하느님의 신현(神現)도 아니고, 하느님과 모세의 만남도 아니며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이다. 즉 '계약 당사자끼리의 직접 대면'(direct meeting between covenant partners)이다. 

 

그래서 탈출기 19장 17절이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 

 

구름은 당신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고 행동하시는 하느님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계약을 맺기 위해 하느님께서 짙은 구름속에서 (탈출19,9.16) 다가갈 때, 세째날에 있을 것으로 예고된, 하느님의 현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조건이 무엇인가?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셋째날을 준비하게 하여라'(탈출19,10~11)는 것이다. 이것은 제의에 있어서 관습적으로 행하는 제의적 정결 행위를 명하는 것이다. 이 명령은 '금욕'에 대한 요청으로 특별히 의복의 세탁이 언급된다. 

 

창세기 35장 2절에서 야곱이 하느님의 지시로 베델에서 제사를 지내기 전에 가족들과 자기에게 딸린 모든 사람에게 명을 내린다. 여기서 옷을 빠는 것을 제외하고는, 탈출기 19장 10~11절과 유사한 내용을 발견한다. 

 

1) 이방신상을 제거함, 2) 제의적인 성결, 3) 베델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인간은 특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약한 계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강한 계약 당사자인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이런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 독서에는 안 나오지만, 제의적 성결 기간 동안 성적 접촉을 금지하는 것은 (탈출19,15) 구약에서 예를 발견할 수 있고(레위15,16~33; 1사무 21,5~7), 레위기 15장 16~18절에 남자의 정자가 묻은 옷이나 가죽을 씻는 의무가 등장하는 것처럼, 탈출기 19장 10ㄴ절과 14ㄴ절에서 주어진 옷을 빠는 것과 탈출기 19장 15절의 규정이 공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렇게 탈출기 19장 10~11ㄱ절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의 준비를 가리키는 반면, 탈출기 19장 12~13ㄱ절은 하느님의 현현 장소인 산 주위에 경계를 치는 것, 즉 산에 대한 준비를 가리킨다.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제의적 정결'의 영성적 의미를 묵상해 보자.  

 

'계약 당사자끼리의 직접 대면'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상대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을 대표하는 제1속성은 '거룩함'이니 이스라엘 백성은 '제의적 정결'로 다가가야 한다. 

 

물과 기름이 함게 섞일 수 없듯이 속성이 다른 두 존재가 결코 공존할 수 없기에 이스라엘 안에 하느님의 현존을 지속하려면, 그 분과 같은 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거룩함'(聖性)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코데쉬'(qodesh)로서 '카다쉬'(qadash)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그 뜻은 '구분하다', '분리하다'이다. 이스라엘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장소, 시간, 사건, 사람들 안에서 다른 민족과는 구별되는 무엇인가를 드러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거룩하지 않은 세상에 어우러져 살면서 우리가 거룩함을 유지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 마음안에 거룩하신 하느님을 담고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속화(俗化)된 세상과 사람들과 일들에서 벗어나 무인도에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거룩한 상태로, 즉 하느님을 알고 모시고 사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 땅인 전부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별제된' 태도로 일관되게 살라는게 아닌가!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영광과 일만을 위해 사는 성별(聖別)된 사람이란 누구인가? 

 

세례 성사때의 거룩한 은총지위를 유지하는 사람,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와 지위와 신분을 거룩하게 유지하는 사람, 항상 하느님 대전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는 사람,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성삼위 하느님'의 내주(內住)를 항상 의식하고, 삼위일체 하느님 앞에서 심성(心性)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 11,44; 19,2; 20,7.26; 21,6.8; 1베드1,15)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이 '제의적 정결'을 회복하고 유지해야만 하느님을 뵈올 수 있고, 계약을 맺을 수 있으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연중 제16주간 목요일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복음서는 예수님의 업적을 예언자들의 말씀과 함께 풀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업적이 예언의 성취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하느님의 계획으로 모든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이사야서 6장 9절을 인용하신 이 말씀은 마치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깨닫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처럼 들립니다이것도 하나의 비유로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들어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마음이 무디어진 백성을 향한 경고입니다예언자들의 말씀과 행동은 하느님의 뜻을 표현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백성의 잘못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들은 귀가 있지만 제대로 듣지 못하고 눈이 있지만 감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의 신비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비록 단순한 비유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하늘나라의 신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제대로 보고 있는지우리의 귀가 제대로 듣고 있는지,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께 열려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복음(마태13,10~17)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5) 

 

여기서 '무디고'에 해당하는 '에파퀸테'(epachynthe; is waxed gross; has become calloused)는 '두껍게 만들다', '살찌게 만들다'는 일차적 의미와 '마음을 무감각하게 하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동사 '파퀴노'(pachyno)의 부정 과거 수동태형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이 자기들 스스로가 아닌 제3의 존재에 의해서 무감각해졌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사야서 6장 10절에 의하면,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에게 백성들의 마음을 무디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백성들의 마음을 두껍게 살찌게 만들어 무감각하게 하는 주체는 예언자이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자이다. 그러나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백성들이 자아를 포기하지 못하고, 죄로 기울어지는 인간 본성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그들은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과는 관계없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에 쉽게 길들여지고 타협하며 죄짓는 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그 마음이 더욱 완고해지고 사악해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완고하고 사악하게 만드는 주체는 바로 죄스런 인간 본성으로 가득 차 있는 백성들의 마음에 거슬리는 주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예언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고쳐 주다'로 번역된 '이아소마이'(iasomai; I should heal)는 '치료하다', '(병을)고치다'(루카9,11)는 의미를 지닌 동사 '이아오마이'(iaomai)의 직설법 미래 1인칭 단수이다. 

 

그런데 이 문장 앞에 '결코 ~하지 않도록', '혹시라도 ~하지 않도록'이라는 의미를 지닌 부정어 '메포테'(mepote)가 있어서, 직역하면 '결코(혹시라도) 내가 그들을 고쳐 주지 않도록'이다. 그러니까 백성들을 고쳐 주지 않기를 바라는 주체는 백성 자신들이 아닌 '하느님'이다. 

 

하느님께서 완고한 사악한 상태의 백성들을 고쳐 주기를 거부하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회개의 여지가 없는 완고하고 사악한 그들을 심판의 자리에서 보자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러한 사상은 '그들이 하느님을 알아 모시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분별없는 정신에 빠져 부당한 짓들을 하게 내버려 두셨습니다'라는 로마서 1장 28절의 내용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13장 16절이하에 나오는 데로, 구약의 많은 예언자와 의인들은 천국 비밀의 그림자만 보았을 뿐 실체를 보지 못했으나(히브11,39), 비록 예언자도 의인도 아니지만 예수님 바로 곁에서 그분을 통해 천국의 실체와 그 비밀들을 보고 듣는 제자들은 참으로 복된 자들이 되는 것이다.

 

 


 2016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20250724일 목요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제자들이 예수님께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여쭈어보자, 예수님께서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마태 13,11)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만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만 특권을 주신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실 때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13,15)라고 하신 말씀은 사람들을 내치시는 느낌마저 받게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뜻을 풀이해 주시는 내용을(13,1-9 참조) 보면 씨가 뿌려지는 여러 형태의 땅은 여러 부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듣는 이의 마음 밭 상태에 따라 결실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싹이 나든 나지 않든, 열매를 맺든 맺지 않든 간에 씨는 모든 곳에 뿌려집니다.

씨를 뿌리는 농부라면 열매를 기대하기에 적절한 곳에만 뿌리는 것이 당연지사이지만, 이 비유의 씨 뿌리는 이는 모든 곳에 씨를 뿌립니다.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똑같이 하느님 말씀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허락에는 하느님 편에서의 허락도 있지만, 말씀에 대한 인간 편의 응답도 포함되는 듯합니다.

주님께서는 일방적이시지 않고 관계 속에서 반응하시고 행동하시는 관계의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 곧 주님께 온전히 열려 있는 이들은 주님께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도 더 주시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받아들인 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

 

복음(마태13,10-17)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 표징 안에 감추어진 구원의 뜻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뜻, 만족을 위해 보이는 표징만을 원하면(12,38) 표징의 실체이신 구원자 예수님 밖에 서서 열심을 부리는, 곧 주님과 한 몸의 참 가족이 되지 못하고 분리된(12,46-), 그래서 말씀을 깨닫지 못해 좋은 땅이 되지 못하고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한, 곧 아담처럼 내 뜻, 소원을 위해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열심히 지키는 삶을 참으로 알고 사는 그 돌밭으로 남아있는 군중들이다.(마태13,4 창세3,4 참조)

그들(군중), 곧 인본주의자들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 감추어진 구원의 은총인 십자가의 대속(代贖), 그 은혜, 자비, 사랑보다 자신의 열심, 의로움을 더 믿고 의지하기에 비유로 말씀하심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신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주님의 참가족)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미스테리온비밀)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저 사람들(군중인본주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인간의 뜻, 길을 위한 하늘나라의 감추어진 비밀(秘密)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루가18,32-34) 32 사람의 아들(예수)은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질 터인데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침 뱉을 것이다. 33 또 채찍질하고 나서 그를 죽일 것이다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34 제자들은 이 말씀 가운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였다이 말씀의 뜻이 그들에게 *감추어져 있어서말씀하신 것을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에페3,9) 9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콜로1,27)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비밀)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아멘.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깨달은 자는 믿음으로 자라날 것이고, 깨닫지 못한 자는 이미 받은 말씀과, 말씀 안에 있는 은총의 구원이 힘을 쓰지 못하는(잃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군중)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 군중(群衆), 인간의 뜻, 소원을 위한 말씀으로 보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하늘의 의(義), 생명, 자유, 평화, 안식, 그 하늘나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이시다.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믿음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과의 차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군중)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인본주의)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인본주의)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 예수님 밖에 ‘서 있는(분리된)’ 곧 인본주의(人本主義)의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마음에는 믿음도, 깨달음도 고쳐(용서, 구원)주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말씀이다.

 

16 그러나 너희(참가족좋은땅)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많은 예언자와 의인(율법옛계약)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 구약(舊約)에서 신약(新約)을 봐야한다. 율법, 그 옛계약에서 하늘의 대속, 그 새 계약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제사(祭祀)가 아닌 미사(혼인잔치)에 들어가야 한다. 모두 보호자 성령(聖靈)께서 이끌어 주셔야 깨닫고, 믿게 된다.

 

(묵시2,17) 17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승리하는(믿는사람에게는 숨겨진 만나를 주고 흰 돌도 주겠다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새 사람)이 새겨져 있다.’”

= *숨겨진 만나 - 만나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 말씀이다.(신명8,3) *흰 돌 - 새하얀 빛이신(마르9,3)희고 깨끗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곧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 된다.(2코린5,17 1베드1,23)

 

(에페1,11)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13,48)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영원한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새 계약의 비밀신비반석이신 그리스도 안에 들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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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토요일] 가라지의 비유 (마태13,24-30)25.07.25조회 10[성 (大)야고보 사도 축일] 내 오른쪽과 왼쪽 (마태20,20-28)25.07.24조회 10[연중 제16주간 목요일]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 (마태13,10-17)25.07.23조회 12[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씨뿌리는 사람릐 비유 (마태13,1-9)25.07.22조회 11[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마리아야!” (요한20,1-2.11-18)25.07.21조회 46[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요나의 표징 (마태12,38-42)25.07.20조회 10[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성경 예언을 이루시려고 (마태12,14-21)25.07.18조회 12[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태12,1-8)25.07.18조회 11[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안식을 주겠댜. (마태11,28-30)25.07.16조회 15[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선하신 뜻 (마태11,25-27)25.07.15조회 15[연중 제15주간 화요일] 회개하여라 (마태11,20-24)25.07.14조회 10[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0,34-11,1)25.07.14조회 27[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마태10,24-33)25.07.11조회 10[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너희를 보낸다.(派送) (마태10,16-23)25.07.10조회 10[연중 제14주간 목요일] 거저 주어라 (마태10,7-15)25.07.09조회 11[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제자 파견(派遣) (마태10,1-7)25.07.08조회 16[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일꾼 (마태9,32-38)25.07.07조회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