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大)야고보 사도 축일] 내 오른쪽과 왼쪽 (마태20,20-28)

2025. 7. 24. 오후 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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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일 금요일

[()야고보 사도 축일] 내 오른쪽과 왼쪽 (마태20,20-28)


   


1독서<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2코린4,7-15)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답송>시편126,1-2ㄱㄴ.2ㄷㄹ-3.4-5.6(5)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복음 환호송요한 15,16 참조

 

복음<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마태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성 (대)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2코린 4,7-15)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룻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7)

 

바오로는, 코린토 후서 4장 7절이하 15절에서 약함 속에서 고난을 무릅쓰고 사도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목 자세에 대해 설명한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이 보물(보배)' 이란 무엇을 지칭할까? 어떤 이는 코린토 후서 4장 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직분' 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문맥상 바로 앞에 나오는 코린토 후서 4장 6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이 값진 보물이 값싼 질그릇 속에 담겨 있는 것으로 묘사하며 양자 사이에 극명한 대조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질그릇 비유의 상징어는 그 그릇의 가치가 형편없다는 뉘앙스가 담겨져 있다. 즉 바오로는 질그릇이란 표현을 통해 인간의 육체가 지닌 한계성과 연약성을 설득력있게 표현한 것이다.

 

바오로의 복음 선교 활동이 연약한 자신의 인간적인 본성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지식의 빛을 받아 그것을 전하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울 자로 여기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높이 드러내실 분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과 비천함을 깊이 아는 자일수록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무한하심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0)

 

'죽음을' 에 해당하는 '네크로신'(nekrosin)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뿐 아니라 그때 수반된 죽음의 고통까지 말한다.

 

바오로는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갈라6,17)하고 말한 것처럼 그의 경험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가 당했던 죽음의 고통에 날마다 동참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위대성은 이처럼 예수님의 삶을 철저하게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실천한 데 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이 본질적으로 새로운 생명 곧 부활의 씨앗이 되었음을 함축한다.

 

비록 죽음의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그 고통에의 동참은 결코 무익하지 않다. 이것이 무익한 인내가 아닌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부활의 첫 열매를 쫓아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 것이며 그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부활의 생명이 궁극적으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07월 25일 화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오늘의 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이 말씀을 보면야고보와 요한만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 높아지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목받고 싶은 마음높아지고 싶은 마음인정받고 싶은 마음 등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부르심이나 직분을 받게 되면 쉽게 찾아오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쫓아가다 보면우리 안에 하느님을 따르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립니다

하느님 일의 주인이 되어 버려,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기도는 메말라 가고 복음적 판단도 흐려지게 됩니다

시기질투상처미움증오분노교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야 할 부르심 또한 자신을 드러내고 돋보이게 하려는 도구나 권력으로 써 버립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도직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질그릇에 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질그릇은 바오로 사도 자신을 뜻합니다.

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보물을 담을 만한 그릇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사도직이 바오로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볼품없는 그를 통하여 당신 힘을 드러내시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자리는 구유였고마지막 자리는 십자가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볼품없고 낮은 모습으로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부르심과 직분이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려면 우리 스스로가 질그릇이 되고주님의 거처인 구유와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십자가의 의로움이 드러나야 구원입니다.

 

(마태 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길이라는 단어를 굳이 넣은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나라의 의로움을 위한 일, 곧 하늘의 길을 가고 계심을 뜻합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로마3,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하늘의 의로움, 그 진리의 길을 대적하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십니다.

죄인들의 죗값을 치루기 위해 속죄 제물로 가시는 길입니다. 그들에게 하늘의 의로움을 주시기 위해~~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 사흗날~ 창조 사흗날입니다.(창세1,13) 빈 땅을 위해 씨가 들어가 대신 죽어 맺은 열매, 사흗날의 일입니다.

곧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죄인(빈 땅)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예수님(씨)입니다.

 

(로마4,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 그렇게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늘의 일을 하시려 당신의 죽음의 길을 가시는 그때에~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여자가 땅의 길, 예루살렘이 추구하는 인간들의 명예, 욕망을 청합니다. 하늘의 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른쪽- 하늘나라입니다. 왼쪽- 땅의 나라입니다. (땅에 영원히 갇히는 것, 지옥입니다.)

그 의미를 모르는 엄마입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무엇을 청하는지~기도하는지 생각하라’ 하십니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 죽음의 잔입니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 모든 제자들 또한 다른 두 제자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엄마까지 와서 특별히 청하니 불쾌합니다.

당신을 따라 오려면 그 땅의 욕망, 그 자신을 버리고 따르라 하셨는데(마태16,24) 제자들 모두는 버린 척, 아닌 척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제자(죄인)들이 예수님 당신의 사흗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하늘의 생명을 얻도록 그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그럼 우리도 똑같이 하라는 말씀? 그런데 그렇게 대신 죽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섬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주어 이웃이 하늘의 생명을 얻도록 도와주는 그 섬김입니다.

낮은 종의 자세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그 복음을 깨달아 간직해야 합니다.  성경(구약, 신약)의 모든 말씀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로마1,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요한5,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래서~~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의로움을 받으라는 말씀이지 우리 스스로 의롭게 되라는 책이 아닙니다. (물론 구원을 위한 의로움입니다.)

♡ 아멘 

 

 

 

 

 

성 대 야고보 사도 축일 복음 (마태20,20-28)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기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26~28)

 

'너희 가운데에서'에 해당하는 '엔 휘민'(en hymin; among you)이란 표현은 제자들을 다른 대상과 구분짓는 말로서, 이미 제자들은 이 세상 나라와는 구별되는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처럼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겸손, 섬김이 기본이 되는 천국의 본질과 관련해서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치신다.

 

여기서 '섬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디아코노스'(diakonos; minister; servant)는 '심부름을 가다'라는 뜻이 있는 '디아코'(diako)에서 유래하여 '일꾼', '하인'(요한2,5.9), '하인'(마태22,13)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초대 교회 때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는 자를 가리키는 '봉사자', '집사'(필리1,1; 1티모3,12)라는 호칭이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한편, 마태오 복음 20장 27절에서 '첫째가'에 해당하는 '프로토스'(protos; first; chief)는 장소나 시간에 대해 '~보다 앞에'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프로'(pr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여기서는 지위나 계급 등에 있어서 '제일 높은 자'를 가리킨다.

 

반면에 '종'에 해당하는 '둘로스'(doulos; servant; slave)는 '묶다'(마태13,30), '묶다', '결박하다'(마태12,29)라는 뜻이 있는 동사 '데오'(deo)에서 유래하여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된 '노예'(slave)를 의미한다.

종은 자신이 아니라 주인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야 한다.

 

사랑과 겸손, 섬김이 기본이 되는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상대방을 섬기는 자기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위의 마태오 복음 20장 28절의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신 목적만을 밝히시기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니고,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을 본받아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로서 합당한 자질을 갖도록 촉구하는데 있다.

 

여기서 '몸값'에 해당하는 '뤼트론'(lytron; a ransom)은 '풀다'(마태16,19), '벗다'(사도7,33) 등으로 번역되는 '뤼오'(lyo)에서 유래하여 '의무나 속박에서 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타인의 속박아래에 있는 노예나 죄수에게 자유를 부여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죄와 죽음의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여 참된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러한 죄와 죽음과 사탄의 속박을 끊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무죄하신 당신 자신의 목숨을 그들을 대신하는 제물로 바쳐야 했다.

 

인간들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의노를 풀어드리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와 위격이 같으신 무죄하신 예수님이 죄지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상에서 대속(代贖; Redemption)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대속물로서 죽으신 것은 '많은 이들'을 위해서이다.

 '많은 이들'로 번역된 '폴론'(pollon; many)의 원형 '폴뤼스'(polys)는 수적으로 많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길다는 뜻과 정도에 있어서 광범위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특히 여기서 우리는 '모든'이라는 뜻이 있는 '파스'(pas)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데에 유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지만, 모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20250725일 금요일

[()야고보 사도 축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 어머니를 통하여 앞으로 올 예수님의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염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마태오 복음서 16장에서 베드로를 대표로 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였고 그들의 바람은 메시아께서 영광을 받으시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를 너무나 세속적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 잘못된 인식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사람”, “”(마태 20,26.27)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과, 당신께서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20,28)라는 말씀으로 메시아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더욱이 오늘 복음이 예수님의 수난 예고 바로 다음에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수난의 뜻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모습은 나중에 실현될 무엇이 아니라,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이제 곧 그 수난이 시작될 예루살렘 입성(21,1-11 참조) 바로 앞에 있습니다.

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분 곁에서 그분을 지켜보고 느끼고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분을 모르니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을 호통치시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가까이”(20,25) 부르시고 부드럽게 타이르십니다.

그분께서는 으로서, ‘섬기는 사람으로서 계시기에 제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그들 수준에 맞추어 온화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신의 죽음에서 가장 잘 드러날 것입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7월 25일 [(대)야고보 사도 축일]

 

나는 주님께 무엇을 하는가?


복음(마태20,20-28)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하시려 우리의 죄(罪)값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심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자신들의 죗값으로 죽으실 주님(주인) 앞에서 좌의정, 우의정, 높은 자리를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다른 제자들 위에 서겠다는 것이다. ‘세상 힘의 원리’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 예수님의 잔?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죽으심, 그 피의 잔이다. 예수님의 그 진의(眞義)는 못 알아듣고 ‘높은 자리에 오를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23ㄱ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자기(自己) 버림, 부인(否認)의 삶, 곧 육(肉)의 죽음으로 십자가의 주님과 하나 됨을 뜻하신 말씀이다. 그래야 하늘의 새 사람으로 살아난다.

 

23ㄴ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 왼쪽에 앉으면 큰일 나는 것이다. 성경(聖經)에서 왼쪽은 영원(永遠)한 멸망(滅亡)을 뜻한다.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달린 회개하지 않은 좌도(左盜)처럼 말이다. 그러니 주님의 뜻을 모르면 생명을 주시는 분 앞에서 죽음을 청하게 된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 높은 지위(地位)에 있는 사람이 최고(最高)의 첫째로 인정, 칭찬 받는 세상이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섬기는 사람이 되라?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 첫째가 되려거든 종이 되어라? 그렇다면 결국 좌의정, 우의정, 세상의 통치자, 고관들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방법, 일은 세상 사람들이 더 잘한다. (나도 미사 예물(禮物) 드리며 예수님께 청(請)했었다.) 설마 예수님께서 그런 방법(길)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까? 아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첫째, 높으신 분, 곧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로 들어가 우리 모두가 그분과 한 몸의 첫째가 되라고, 그래서 종의 자세로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우리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한 십자가(十字架)의 죽음이다. 하느님의 구원(救援)의 뜻이다.

 

(1요한4,10)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그러니까 완전하지 못한, 결함 있는 그 인간의 마음, 사랑의 섬김이 아니라, 결함이 없고 완전한, 곧 죄인들을 살리시려 당신 외 아드님 예수를 죄의 속죄 제물로 내어 주셔서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우리 죄인들을 용서, 구원하시는 그 하느님의 마음, 사랑, 복음을 이웃에게 전해주어 이웃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의 용서, 안식,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종으로서의 섬김을 말씀하심이다.

 

 사제의 묵상글 중, <슈바이쳐 박사는 아프리카로 가서 척박한 환경에 있는 주민들과 살았습니다. 의사였던 그는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박사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나의 형제요 어머니다’라는 말씀을 온몸으로 실천했습니다.> 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슈바이쳐 박사는 인간적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훌륭한 분, 맞다.

그분은 박사 학위가 다섯 개나 있었는데 다 버리고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가 있었을까? 정말 놀라운 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을 부인(否認)하는’ 유대주의 신학자였다. 곧 구원의 길인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는, 거부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신학자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슈바이쳐 박사는 인간의 마음, 사랑은 주었지만, 하느님의 참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의 의(義), 사랑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주지 못했기에 정작 그들에게 하늘의 영원한 생명, 구원은 주지 못했던 것이다.

슈바이쳐, 그가 한 일은 하늘의 의(義)가 아닌, 자신의 의(義)로 쌓여 세상 사람들의 추앙(推仰)을 받았다. 교회 사제에게서 까지~~

그래서 인간의 눈으로는 밀(진짜)과 가라지(가짜)를 분별할 수 없기에 ‘하늘의 천사들이 추수(秋收)할 때까지 내버려 두어라’하신 것이다.(마태13,28-30)

 

(루가16,15)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슈바이쳐 박사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의 의(義)로 그분과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로 첫째, 높은 사람이 되었다. 신앙생활은 세상 힘의 원리(原理)로 구축된 나를 버리는, 부인(否認)하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祈禱)가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는 행동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자기를 신뢰하지 않다는 표입니다. 하느님만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한인성당 사제>

*그래서 제자인 우리들 안에서는 ‘우리의 죄(罪)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의(義), 생명’이 드러나야 한다.

 

독서(2코린4,10-12)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십자가)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罪)로 죽으셨고, 그분의 생명으로 살고 있음을 고백한 말이다. 그것이 곧 내 육신(肉身)의 죽음이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곧 죄를 통해서 하늘의 용서를 깨달아 구원을 받는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저희들의 마음귀가 되어 주시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말씀하신대로 말씀이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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