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02일 토요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세례자 요한의 죽음 (마태14,1-12)
제1독서<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레위25,1.8-17)
1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11 이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저절로 자란 곡식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저절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 된다.
12 이 해는 희년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해다. 너희는 밭에서 그냥 나는 것만을 먹어야 한다.
13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14 너희가 동족에게 무엇을 팔거나 동족의 손에서 무엇을 살 때, 서로 속여서는 안 된다.
15 너희는 희년에서 몇 해가 지났는지 헤아린 다음 너희 동족에게서 사고, 그는 소출을 거둘 햇수를 헤아린 다음 너희에게 팔아야 한다.
16 그 햇수가 많으면 값을 올리고, 햇수가 적으면 값을 내려야 한다. 그는 소출을 거둘 횟수를 너희에게 파는 것이다.
17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화답송>시편67,2-3.5.7-8(◎4) ◎ 하느님,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
○ 당신이 민족들을 올바로 심판하시고, 세상의 겨레들을 이끄시니,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
○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
복음<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마태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제1독서 (레위25,1.8-17)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8-10)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너를 위하여'(너에게)라는 뜻의 '레카'(leka)라는 말이 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본문의 '너'는 모세를 지적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모세가 80세에 부르심을 받고 120세에 죽었으니, 처음 희년이 될 49년 후에는 모세가 살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기 25장 9절에서도 동일한 '너'가 희년에 나팔을 불어야 할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문의 '너'는 모세 뿐아니라 장차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세대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여기서 '너'(ka)라는 단수 어미가 사용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집합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아야 하며, 본질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이 그날의 연수를 세고 그 날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성경의 '일곱'은 거룩함과 온전함과 이러한 것들의 완성 및 기쁨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더군다나 일곱의 일곱은 가장 거룩하고 온전한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희년이 가르쳐주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희년의 주기가 49년이므로 일찍 죽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인생에 한번은 완전한 기쁨을 상징하는 희년을 맞이할 수 있기에,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은혜가 차별없이 골고루 미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9)
레위기 25장 9절은 희년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를 밝히고 있다.
희년은 제49년 7월 10일 즉 유다 종교력 디스리월 10일에 시작하였다.
디스리월 10월은 유다 민간력으로는 1월에 해당되며,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9,10월경이다.
희년의 시작일인 7월 10일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대속죄일이었다
(레위16,29-34; 23,26-32).
이러한 속죄일은 대제사장이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희생 제물을 바쳤고(레위23,27), 또한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진 아자젤 숫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날이었다(레위16,6-10).
즉 이 날은 이러한 종교적인 행사를 통해 인간의 죄를 속죄함으로써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는 날이다.
이 날에 잃었던 상속(기업)이 회복되고, 종 되었던 자들이 해방되며, 빚진 자들의 부채가 탕감되고, 땅이 안식을 누리는 희년이 선포됨으로써, 하느님과의 진정한 화해를 기초로 해서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까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9)
'너는 ~울려라'로 번역된 '하아바르타'(haabartha)는 '가로지르다'는 뜻의 '아바르'(abar)의 사역형 2인칭 동사로서 '너는 가로지르게 하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팔'로 번역된 '쇼파르'(shopar)는 '뿔' 또는 '양의 뿔'을 가리키는 말이며, 여기서는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이란 뜻으로 쓰였다.
또한 '소리'로 번역된 '테루아'(theruah)는 '소리 높여 외치다'라는 뜻의 '루아으'(ruah)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기쁨의 외침', '부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희년을 선포하는 자가 먼저 온 땅을 가로지르며 나팔 소리를 울리고(haabartha), 그를 뒤이어 온 백성이 따라서 나팔을 크게 불라(thaabiru; 타아비루)는 명령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이 거주하는 모든 땅에 해방과 기쁨이 선포되어야 할 것을 거듭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10)
'너희 땅'으로 번역된 '빠아레츠 레콜'(baarets lekol)에서, '뻬아레츠'(baarets)를 직역하면 '그 땅'으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상속(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말하고, '레콜'(lekol)은 '모든' 이라는 뜻이니, 가나안 땅 전부를 말한다.
또한 '해방'으로 번역된 '떼로르'(deror; liberty)는 그 어원이 '넘쳐흐르다', '빛을 발하다' 라는 뜻의 '따라르'(darar)로서 '자유로운 흐름'이란 뜻을 가진다.
원문대로 직역하면, '너희들은 그 땅에 사는 모든 자들을 위해 자유로운 흐름을 크게 외치라'이다.
여기서 '그 땅에 ~자유로운 흐름'은 경제적인 부채로 인해 제한된 땅에서 속박된 자로 살아야 하는 자들이 풀려나 자유롭게 자신의 땅과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이동, 실질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10)
'희년'으로 번역된 '요벨'(yobel; a jubile)은 그 어원이나 의미를 쉽게 밝힐 수 없는 단어이다.
어떤 이는 여호수아서 6장 4절, 6절, 8절, 13절에 근거하여 '양각'(羊角; 양의 뿔)이라고 번역된 '하요벨림'(hayobellim)을 레위기 25장 10절의 '요벨'과 동일한 어근으로 보아 본문의 '요벨'을 '양의 뿔'이란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이런 견해는 레위기 25장 9절에 희년이 나팔을 크게 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는 내용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나, 레위기 25장 9절에 이미 '양의 뿔'이라는 '쇼파르'(shopar)가 사용되었으므로, 레위기의 '요벨'과 여호수아서의 '요벨'이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분명한 것은 내용에 있어서 레위기의 '요벨'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처소로 회복될 수 있는 해'라는 의미를 가지는 하나의 고유명사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요벨'의 정확한 어근 추적이 어려우므로, 번역본들은 히브리어 '요벨'의 음을 그대로 빌려와서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영어 성경은 '요벨'의 음을 따서 '희년'을 '쥬빌리'(Jubilee)로, 독일어 성경은 '유벨야르'(Jubeljaar) 즉 '요벨의 해'로 표기했다.
그리고 이 어원을 기초로 해서 '환희', '경축'을 뜻하는 영어 단어들(jubilat; 환호하는,
jubilate; 환호성을 울리다, jubalation; 기쁨)이 파생되었고, 한글 성경은 파생된 의미에 기초해서 이를 '희년'(禧年) 즉 '좋은 해'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그러니까 한글 성경의 번역은 '요벨'의 어원적 의미보다는 '요벨'의 해가 지니는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반영하는 신학적 번역인 것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10)
'너희는 ~돌아가야 한다'로 번역된 '샤브템'(shabthem)은 '돌다'는 뜻의 '슈브'(shub)의 2인칭 능동형 복수이다.
이것은 주인이 종되었던 자들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종되었던 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속했던 곳에서 나오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희년의 해는 자유로운 흐름이 허락된 해였으므로, 누구든지 주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도 자신의 본래의 것을 회복할 수 있었다.
不義한 세상에서 義를 선포하는 사람
※ 분봉왕 ( 分封王 , tetrarch 영주)
왕이나 황제의 휘하에서 한 나라의 일정 지역을 다스리던 군주. 왕보다는 다소 지위가 낮았으나, 때론 왕으로도 불렸다.
신약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는 헤로데 대왕이 죽자, 그의 세 아들 아켈라오, 헤롯 안티파스, 헤롯 필립 세 사람이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아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때 아켈라오는 왕으로, 안티파스와 필립은 분봉 왕이란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마태2,22; 루기3,1)
(테트라아르케스) - ‘테트라’와 ‘아르케스’(다스리는 자)의 합성어로, 원래는 한 나라의 1/4에 해당하는 영토를 다스리는 자를 가리키나 통상 분왕(영주)을 일컫는다.
※ 헤로데( Herod ) - ‘영웅의 아들’이란 뜻.
이두매(에돔) 출신의 이방인으로서 팔레스타인과 그 인접 지역을 통치했던(B.C.47 - A.D.70년) 헤로데가(家)에 속한 자들을 일컫는다.
헤로데 가문(家門)은 ‘헤로데 안티파테르 1세’(Herod Antipater Ⅰ)에 의해 창시 되었다고 본다. 그는 B.C. 1세기 초 하스몬 왕조의 알렉산드로스 얀나에우스에 의해 에돔의 장군으로 등용되었다. 그 아들 ‘안티파테르 2세’(Antipater Ⅱ)가 그의 뒤를 잇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B.C. 47년에 안티파테르 2세를 유대의 행정장관(징세관)으로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유대 지경을 다스리게 했다. 그로부터 ‘헤로데 왕가’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고자 유대교로 개종했으나 그와 그 후손들은 ‘에돔 출신’ 곧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생전에 두 아들(파사엘과 헤로데)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겼는데, 파사엘에게는 예루살렘을 통치하도록 했고, 헤로데(후에 ‘헤로데 대왕’)에게는 갈릴리 총독을 맡겼다.
본문의 인물은 헤로데 대왕과 말다게 사이에서 태어난 ‘헤로데 안티파스’를 말함. 그는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 왕(B.C. 4-A.D.39년)이 되었다.
성경에는 ‘영주(분봉왕) ‘헤로데 왕’으로 언급된다(마태14:1; 마르6:14; 루가3:19).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후 이복형제인 필립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고, 이를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살해했다(마태14:1-12).
교활하고 술수에 능해서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 불렸다(루가13:32).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서 재판을 받고 넘겨진 예수님을 심문했고, 예수님을 희롱한 후 빌라도에게 다시 넘겨주었다(루가23:7-11).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갈릴리 해안에 ‘티베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했고, 갈릴리 바다를 ‘티베리아 바다’로 명명하기도 했다.
탐욕과 병적인 잔혹성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마태14:1-22; 루가23:7).
※ 헤로디아( Herodias ) - ‘영웅의 딸’이란 뜻.
헤로데 대왕의 손녀이며, 헤로데 아그립바의 누이. 살로메의 어머니.
필립에게 출가했다가 버리고 시숙(媤叔)인 헤로데 안티파의 아내가 되었는데, 이 부도덕한 일을 책망하는 세례 요한을 죽게 한 장본인.
후에 남편 안티파가 스페인으로 추방되었을 때, 헤로디아도 동행하였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역사에는 불의하게 권력과 지위를 유지한 통치자가 많다. 그중의 한 사람이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디파이다.
그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분봉 왕이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로데가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의로운 예언자였던 세례자 요한을 죽여 입을 막았지만, 예수님의 출현으로 죄책감이 살아난 것이다. 높은 지위나 권력이 그에게 평안을 주지 못했다. 악이 악을 낳았고, 두려움은 더 큰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실상 가장 두려움이 많고 염려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가진 것 때문에 염려하고, 자신들의 악행 때문에 더 두려워한다.
도리어 가난한 자가 福이 있고, 義를 위해 박해를 받는 이가 행복한 것이다.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공평한 재판관이 계시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은 당당히 헤로데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는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용기를 갖춘 예언자였다.
권력에 굴복하여 악을 방치하거나 동조한다면 땅의 삶은 보장 받겠지만 천국의 삶은 잃게 될 것이다.
윤리가 상대화하고, 불의한 일들이 상식이 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기준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기준을 따라 세상의 불의를 질책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義人의 삶은 불가피하게 苦難이 따른다. 말과 삶으로 세상의 불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의를 동조하지 않는 의인을 비웃고 핍박한다. 하물며 불의하다고 책망하는 자를 그냥 놔둘 리 없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걸어갈 십자가의 길이다.
헤로데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하느님의 역사를 막은 자였다. 예수님은 그를 ‘여우’로 평가하신다.(루가13:32)
헤로데는 惡을 덮으려고 더 큰 악을 저질렀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한 악에다, 그 악을 지적하는 요한을 죽이는 惡을 더했다.
헤로데는 자신의 유익과 체면에 철저히 귀속된 불쌍한 인물이다. 사람들 앞에서 섣불리 한 맹세 때문에 결국 무고한 세례자 요한을 죽였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악한 통치자였다. 그 결과 자신도 평안하지 못했고,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도 불행했다.
자기를 否認하며 인생의 몸으로 오신, 자기를 버려 생명을 주신 참 왕이 계심에 늘 감사하자.
敎會(하느님 백성)는 사회를 향해 제사장적 역할과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은 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해 예배하게 한다. 예언자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공의를 선포한다.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은 불의한 권력자와 그 힘에 대하여, 수난 가운데서도 의연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위대한 사람과 그의 굽히지 않는 힘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이 같은 인생은 어디서 어떻게 올까요?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 대한 복음서의 증언에서 확실한 이유를 한 가지 유추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연결된 하느님과의 견고한 끈입니다.
요한이 기도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특별히 요한이 체험한 하느님은 광야와 연결됩니다.
복음서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 1,80)라고 합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의 고향으로 알려진 ‘에인 카렘’(Ein Karem, 포도밭의 봄)은 이름처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입니다.
그런 그가 황량한 광야로 나간 까닭은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을 배우려고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광야는 유혹과 시련의 장소지만, 물질의 궁핍 속에서 하느님의 보호와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는 삶을 배우는 곳입니다.
무엇보다도 광야는 침묵 가운데 기도하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세상의 수많은 소음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말이 넘쳐나고, 많은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두려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침묵 가운데 우리를 찾아오시고 고요 속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세상에 증언하는 삶입니다.
삶 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증언하는 용기는 어디서 얻겠습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게 하시며 당신을 증언할 용기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마태 3,3)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연결 고리를 생각하여 봅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땅(인간)도 하느님께서 빚어 만드신 하느님의 것이다.
제1독서(레위25,1.8-17)
1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 福音 宣布다.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 우리의 소유지는 하늘이며 하느님의 자녀로 돌아가야 한다.
11 이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저절로 자란 곡식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저절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 된다. 12 이 해는 희년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해다. 너희는 밭에서 그냥 나는 것만을 먹어야 한다.
= 하느님께서 주시는 양식, 곧 ‘하늘의 양식(말씀)으로만 살라’ 하시는 것이다. 그래야 하늘을 내 소유로 되찾을 수 있다.
13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14 너희가 동족에게 무엇을 팔거나 동족의 손에서 무엇을 살 때, 서로 속여서는 안 된다. 15 너희는 희년에서 몇 해가 지났는지 헤아린 다음 너희 동족에게서 사고, 그는 소출을 거둘 햇수를 헤아린 다음 너희에게 팔아야 한다. 16 그 햇수가 많으면 값을 올리고, 햇수가 적으면 값을 내려야 한다. *그는 소출을 거둘 횟수를 너희에게 파는 것이다. 17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 땅도, 인간도 하느님께서 빚어 만드신 하느님의 것이다. 인간은 땅을 소유할 수 없다. 땅에서 나오는 소출을 사고파는 것뿐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희년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땅과 사람(나와 이웃)을 돌려드리고 돌아가 아버지 하느님 사랑 속에서 근심, 걱정 없는 자유, 안식을 누리는 것이 희년이다.
그 모든 것을 알리는 복음 선포, 나팔 소리다. 나팔 소리는 뿔 나팔 소리로 어린양이 죽어 남긴 그 뿔 나팔 소리다. 곧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빚(죄)을 다 갚으신 그 十字架의 복음이다.
(골로2,14)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그 십자가 복음 선포로, 그 소리로, 거저(무상으로) 의롭게 되어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이 희년이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또한 희년의 정신이 용서(容恕)다.
(마태18,21-22)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7☓7=49 뿔 나팔소리,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 그 희년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을 내 소유지로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한 신앙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인 계명, 말씀을 먹어야한다.
세상 힘의 원리인 남을 이겨야하는, 그리고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그 사람의 뜻인 말(가르침)을 먹으며 만족해하면 안 된다. 그 인물이 오늘 복음의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는 헤로데, 그리고 헤로디아와 그 딸이다.
복음(마태14,6-12)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 성경은 ‘헤로데 그 나쁜놈’ 하지 말고 헤로데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의 뜻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의 뜻을 죽이는(무시해 버리는) ‘그런 존재 구나’를, 그런 우리의 솔직한 모습을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변하지 않는 이기적인 나를 보고, 인정하는, 그래서 ‘하느님께서 나 같은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실 수밖에 없으셨구나.’를 깨달아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罪性을 인정하는 것, 내 自我(뜻)를 죽이는 그 勝利다.
(로마7,22-25)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세례자 요한, 왜 머리가 잘려 죽었으며, 그의 제자들은 왜 그 사실을 예수님께 알렸을까? 당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 곧 신앙의 主, 머리로 알았다. 그러니 모형인 그의 메시아, 主, 머리가 잘려야 팜 메시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체들을 살리시는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13절 이하에서 부정한 빵(5)과 물고기(2)를 당신이 받으시고 대신 하늘의 빵(양식)으로 먹이시어 열둘(12)로, 곧 하늘의 존재, 하느님의 자녀로 살리시는 일을 하시는 그 희년의 복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보호자 성령님! 하늘로, 하느님의 자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 죄인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먹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복음(마태14,1~12)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8~11).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에서 '부추기는 대로'에 해당하는 '프로비바스테이사'(probibastheisa; being before instructed; prompted)는 '~앞에'라는 뜻을 지니는 전치사 '프로'(pro)와 '폭력을 사용하다', '강제로 들어가다' 등의 뜻을 지니는 '비아조'(biazo)가 결합되어 '앞으로 내세우다', '선동하다'라는 뜻을 지닌 '프로비바조'(probibazo)의 분사 수동형이다.
이것은 어린 살로메가 간교하고 사악하며 잔인한 어머니 헤로디아의 강압에 가까운 권유에 따라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에서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도스'(dos; give)는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부정 과거 명령형은 반복되는 동작이 아니라 단 한번에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동작을 요구할 때 쓰인다.
또한 '이리'라는 뜻의 부사 '호데'(hode; here)가 사용되어 바로 잔치가 벌어진 그 장소에서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살로메는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른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세례자 요한의 즉각적인 처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임금은 괴로웠지만'에서 '임금'('호 바실류스'; ho basileus; the king)이라는 말이 세례자 요한의 순교 기사가 수록된 마태오 복음 14장 1~12절 가운데서 여기만 나온다.
1절에서 그의 신분을 나타내는 '분봉왕'('테트라아스케스'; tetraarches; tetarach)이라는 표현이 한 번 나온 후, 계속 '헤로데'(Herodes)란 이름이 나오다가 본문에서 '분봉왕'이 아니라 '임금','왕'이라는 직함이 등장하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처형 결정의 기로에 놓인 이러한 시점에서 특별히 '임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임금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가 임금으로서의 권한만을 행사하는 데 대한 조롱과 고발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웠지만'에 해당하는 '뤼페테이스'(lypetheis; was sorry; was distressed)의 원형 '뤼페오'(lypeo)는 여기서 수동형으로 쓰였는데, 이럴 경우 '슬퍼하다', '마음이 상하다', '고민스럽다'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닌다.
당시 헤로데 안티파스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의로운 이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상했을 것이고, 또한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세례자 요한을 처형한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소요 사태에 대하여 고민도 하는 혼란 가운데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원문 성경에는 '맹세'에 해당하는 '투스 호르쿠스'(tous horkoos; the oath's sake; of his oaths)가 복수형으로 나와 있어서 헤로데 안티파스가 그 자리에서 여러 차례 맹세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맹세를 되돌릴 수가 없었다.
당시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6장 21절에 의하면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이었다.
자신의 그릇된 맹세와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에 불의(不義)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례자 요한의 처형을 명령한 이러한 행동에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비열함이 잘 나타난다.
한편, '소녀'에 해당하는 '코라시오'(korasio; girl; damsel)의 원형 '코라시온'(korasion)은 '처녀'를 뜻하는 '코레'(kore)의 지소어(指小語)로서 '작은 소녀'라는 뜻을 가지며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소녀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shalom)에서 파생한 '살로메'이며, 당시 나이는 15세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평화'였으나 그녀는 전혀 평화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정의를 외치던 위대한 예언자를 죽게 함으로써 역사에서 악녀로 길이 기억되고 있다.
특히 마태오 복음 14장 11절을 보면, 죄와 쾌락에 눈이 어두워 실로 주어서는 안되고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을 태연스럽게 주고 받는 비극의 역사가 연출되고 있다.
2025년 08월 02일 토요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독서는 희년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세상 창조 때 하느님께서 엿샛 날까지는 일하시고 이렛 날에는 쉬셨습니다.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보시며 흐뭇해하시고 기뻐하셨는데,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1,10.12.18.21.25)라는 표현을 반복합니다.
이를 근거로 일주일의 마지막 날을 주님의 날인 ‘주일’로 정하여 창조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마찬가지로 칠 년에 한 번 안식년이 돌아옵니다. 일곱 번째 안식년을 보낸 다음 해, 오십 년이 되는 해를 거룩하고 기쁨에 가득 찬 ‘희년’으로 선포합니다.
희년에는 하느님 창조 질서대로 세상 만물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분께서 자비로우시고 정의로우신 것처럼 인간도 자비롭고 정의롭게 살도록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을 경외하며 정의롭게 살던 세례자 요한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였는지가 잔혹 동화의 한 장면처럼 소개됩니다.
헤로데라는 부정직한 자가 자존심을 내세워 자신의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덮으려고 세례자 요한 같은 의인을 어떻게 박해하며 부정을 일삼는지 볼 수 있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처음에 한 작은 거짓말이 나중에는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것들이 불어나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자존심 때문에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습니까?
다른 이의 시선이 두려워 또는 다른 이 앞에서 생색내려고 부정하고 부적합한 행동을 일삼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희년에 담긴 정의와 자비의 정신, 그리고 헤로데의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떠올리면서 하느님의 정의와 우리 인간의 정의에 대하여 곰곰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세례자 요한은 머리가 잘려야 했다.
복음(마태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 헤로데 자신이 죽인 요한이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 권력(勸力), 세상의 힘을 탐(貪)하는 자는 하느님보다 사람들을 더 두려워한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인식(認識)하지 못한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자식(子息)까지 망친다. 하느님의 힘보다 세상의 힘, 권력을 잡도록 부추킨다. 그것은 하느님께 등을 돌려 자식을 ‘몰록’(火神)에게 바치는 것으로 하느님께서 역겨워하는 무서운 죄악(罪惡)이다.
(레위20,1-2)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누구든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속한 사람이든 이스라엘에 머무르는 이방인이든, 제 자식을 *몰록에게 바치면, 그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 땅의 백성이 그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예레32,33-35) 33 그들은 나에게 얼굴이 아니라 등을 돌렸다. 내가 그들을 줄곧 가르쳤건만, 그들은 순종하지도 훈계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34 오히려 그들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 안에 *역겨운 것들(신상 탈출20,4)을 세워 그 집을 더럽혔다. 35 또한 그들은 ‘벤 힌놈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들을 짓고, 저희 아들딸들을 몰록에게 제물로 바쳤다. 이런 일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적도 없다. 유다에게 이따위 역겨운 일을 저질러 죄짓게 할 생각은 내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 인간의 맹세는 자신의 뜻, 의(義), 체면을 세우기 위한 것이나, 하느님의 맹세는 죄인(罪人)들의 구원(救援)의 약속이다.
(탈출6,8) 8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 차지로 주겠다. 나는 주님이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당시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루가3,15)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머리가 잘려야했다. 메시아 머리는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예수님께 알려졌고, 참 메시아, 주인,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체들에게 구원(救援)의 양식(糧食)을 먹여 살리시려 외딴 곳(에레모스-광야)으로 나가신다.
13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 외딴 곳, 광야(廣野)는 우리의 삶의 여정(旅程), 인생길이다. 광야는 마실 물, 먹을 양식이 없음을 뜻한다. 곧 세상에는 구원의 물, 양식이 없는 곳으로 하늘에서 내리시는 물(말씀)만 바라며 의지해 살아야 하는 곳이다.
(신명8,2-3)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낮추고 굶주리게 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절대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뜻, 입에 맞지 않아서이다.(히브4,12) 말씀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영혼 구원의 양식이다.
그래서 부모(父母)들이 입(뜻)에 맞는 육신(肉身)의 양식을 먹도록 자식(子息)들을 부추킨다. 자신(自身)과 자식(子息)들을 망(亡)치며 죽이고 있는 것이다.
(시편53,4-5) 4 모두 빗나가 온통 썩어 버려 착한(구원) 일 하는 이가 없구나. *하나도 없구나. 5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는가? 나쁜 짓 하는 자들 내 백성을 빵 먹듯 집어삼키는 저들 하느님을 부르지 않는 저들.
= 나쁜 짓 하는 자, 사람의 입맛(뜻, 욕망)에 맞춘 가르침, 곧 사람의 의(義), 소원을 위한 제사(祭祀)와 윤리(倫理)의 가르침으로 하늘의 의(義),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다.
(시편5,10) 10 그들 입에는 진실(진리)이 없고 그들 속에는 흉계만이 들어 있으며 그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그들 혀는 아첨하기 때문입니다.
= 모든 이들이 영원한 멸망(滅亡)에 빠지는 길을 걷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외 아드님을 이 세상에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구원의 양식으로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다음절이 예수님께서 외딴 곳, 광야에서 땅(세상)의 양식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하늘의 양식으로 바꾸어 먹이신다.
곧 빵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먹이신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자식들을 올바로 부추키게 하소서. 우리의 실체, 속셈을 보게 하소서. 구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올바른 기도를 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