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31일 목요일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그물속 고기 비유 (마태13,47-53)
제1독서<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탈출40,16-21.34-38)
16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7 마침내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성막이 세워졌다.
18 모세는 성막을 세우는데, 먼저 밑받침을 놓은 다음 널빤지를 맞추고 가로다지를 끼운 뒤, 기둥을 세웠다.
19 또 성막 위로 천막을 치고 천막 덮개를 그 위에 씌웠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20 그런 다음 증언판을 가져다 궤 안에 놓았다. 그 궤에 채를 끼우고 궤 위에 속죄판을 덮었다.
21 또 궤를 성막 안에 들여놓고 칸막이 휘장을 쳐서 증언 궤를 가렸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34 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35 모세는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그 천막 위에 자리 잡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36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모든 여정 중에, 구름이 성막에서 올라갈 때마다 길을 떠났다.
37 그러나 구름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 구름이 올라가는 날까지 떠나지 않았다.
38 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보는 앞에서,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화답송>시편84,3.4.5와 6과 8ㄱ.11(◎2) ◎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
○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이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
○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
○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은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리이다. ◎
○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 ◎
복음<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태13,47-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또는, 성 이냐시오 기념일 독서(1코린 10,31―11,1)와 복음(루카 14,25-33)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제1독서(탈출40,16~21.34~38)
"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34) 모세는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그 천막 위에 자리잡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35) 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보는 앞에서,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38)
탈출기 40장 34절의 '만남의 천막'에 해당하는 '에트 오헬 모에드'(eth ohel moed; the tent of meeting)에서 '만남의 천막'은 '천막'(tent; 장막)을 뜻하는 '오헬'(ohel)과 '만남'을 뜻하는 '모에드'(moed; meeting; congregation)의 합성어이다.
'성막'이라고 표현된 '미쉬칸'(mishikan; tabernacle)이 '만남의 천막'(ohel moed; 오헬 모에드)이라고 언급된 이유는 이곳이 바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는 장소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성막'이 완성되자 간택한 백성들을 만나시기 위해 친히 찾아오셨고, 모세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남의 천막'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로 번역된 '우케보드 예흐와'(ukebod yehwah; and the glory of the LORD)에서 '카보드'(kabod)는 '영광', '존귀', '위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무겁다'(욥기6,3; 애가3,7)는 뜻을 가진 '카바드'(kabad)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용례로 쓰이는데, 첫째는 하느님께서 받으시는 존경이나 영광, 영예(탈출15,11; 시편66,2; 이사40,5)를 가리키며, 둘째는 하느님의 가시적 현현을 가리킨다(탈출16,10; 24,16; 2역대7,1).
탈출기 40장 34절의 표현은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명령에 따라 지어진 성막에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친히 임재(현존)하셔서 그들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세는 만남의 천막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야콜 ~ 레~'(yakol ~le ~)는 '~할 수 있다'라는 뜻인데, 여기에 강한 부정이나 금지의 의미를 지니고서 주로 율법이나 계명과 관련해 사용되는 부정어인 '로'(lo)가 결합되면, '절대 ~할 수 없다'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모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영광이 임한 성막 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으므로 결코 들어갈 수 없었고, 또한 하느님께서 그를 들어 오지 못하게 강력하게 막으셨다는 사실을 추측케 한다.
이처럼 모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갔던 위대한 영도자요, 율법과 계명을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던 최고의 예언자였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영광이 머문 장소에는 자의적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천하의 어떤 인간도 죄인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은총으로 부르시고 의롭게 해 주시지 않으면, 존귀와 영광으로 가득 찬 하느님의 옥좌로 나아갈 수 없음을 계시해 준다(로마8,30).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원문은 '웨에쉬 티흐예 라일라 뽀'(weesh thihye lailla bo; and fire was in the cloud by night)이다.
여기서 '뽀'(bo)는 '~안에'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뻬'(be)에 3인칭 대명사 어미가 붙은 형태로, 직역하면 '그것 안에'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낮의 구름 기둥이 밤에는 빛과 열을 내뿜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어 불 기둥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아침과 저녁으로 급변하는 중근동의 기후 환경에 맞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살펴 주셨다.
팔레스티나나 중근동 지역은 무려 50도의 일교차를 보이기도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시원하게 하였고, 밤에는 그 구름 기둥에서 나는 불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성경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낚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만나실 때도 세리였던 자캐오와 식사하실 때도 니코데모와 대화하실 때도 수많은 이들을 가르치실 때도 그분께서는 그물을 던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4,19 참조).
고기 잡는 방법 가운데 그물을 던지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방법입니다.
어부는 자기가 잡고 싶은 물고기만 잡을 수도, 잡고 싶지 않는 물고기를 그물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습니다.
그저 그물에 걸리는 대로 물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교회는 어부이신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아 그물을 던지고 복음을 선포할 뿐입니다.
최종적으로 물고기를 가리는 일은 하느님과 그분의 천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분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같은 그물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을 가리고 판단하고 외면하고 손가락질한다는 것이 정녕 어리석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불완전합니다.
교회에는 성인도 있고 죄인도 있습니다. 성인도 죄지을 수 있고 죄인도 회개할 수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떤 이들인지를 놓고 낙담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 안에 있고 그분의 나라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오늘도 자기 문제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입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드러낼 은총의 시간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듯 그분의 제자인 우리도 사람 낚는 그물을 세상에 던져야 합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복음(마태13,47~53)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47~50.52ㄴ)
마태오 복음 13장에서 전개되는 하늘 나라의 비유 가운데 마지막 일곱번째 비유인 '그물의 비유'이다.
'그물의 비유'의 핵심은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에 있지 않고, 물가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여 나쁜 것은 버리는 데에 있다.
마태오 복음 13장 24~30절의 '가라지의 비유'처럼,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종말론적인 심판은 의인과 악인을 구별해 내어 악인은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여기서 '그물'로 번역된 '사게네'(sagene; a net)는 저인망을 가리킨다.
즉 떼 지어다니는 고기를 대량으로 잡기 위해 두 배 끝에 그물을 고정시켜 놓거나 이러한 저인망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움직이는 배로 그물을 끌어 그곳을 지나가는 고기들을 잡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물이 지나가는 곳의 거의 모든 종류의 고기들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고기'로 번역된 '판토스 게누스'(pantos genus; all kinds)에서 '판토스'(pantos)는 '모든'(all)을 의미하는 형용사 '파스'(pas)의 소유격이며, '게누스'(genus)의 원형 '게노스'(genos)는 '종족', '민족', '자손', '혈통', '같은 종(種)'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고기를 비롯하여 바다 속에 서식하고 있는 각종 생물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판토스 게누스'(pantos genus)는 각종 고기 뿐만 아니라 바다 속에서 그물로 잡을 수 있는 각종 모든 생물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것은 예인망에 잡다한 모든 바다 생물들이 걸려드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인종과 성별, 악인과 의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에서 '좋은 것'으로 번역된 '타 칼라'(ta kala; the good)는 '적합한 것들', '쓸모있는 것들'이라는 의미이며, '나쁜 것'으로 번역된 '타 사프라'(ta sapra; the bad)는 '썩은 것들', '무가치한 것들' 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갓 잡아올린 고기 및 바다 생물들이 썩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무가치한 것들'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까 '타 사프라'(ta sapra)는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의미가 아닌, 사람의 사용 용도에 미치지 못하는 '무가치하고 쓸모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종말론적인 심판의 맥락에서 '악한 자'로 적용되고 있다(마태13,49).
이런 의미에서 49절의 '심판받을 악한 자'는 도덕적인 차원보다는, 하느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나라에서 전혀 쓸모없는, '사용 가치적 차원'에서의 '악한 자'라고 볼 수 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도 최후에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져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되는 자는 바로 '쓸모없는 종'이었다(마태25,30).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이것은 어부가 쓸모있는 고기만 그릇에 담고, 쓸모없는 고기는 내버리는 것처럼, 세상 종말의 때에 있을 심판의 양상도 똑같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여기서 '종말'로 번역된 '쉰텔레이아'(synteleia; end)는 '완료', '완성', '끝', '종결'을 의미하는 명사이므로, 여기서의 심판의 때는 세상이 그 사명을 완성하고 종결되는 그 종말의 때를 말한다.
따라서 이 본문은 종말론적 심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장면이다.
종말론적 심판의 때에는 무엇보다도 '가려내는 작업'이 있게 된다.
여기서 '가려내다'는 의미로 번역된 '아포리우신'(aphoriusin; sever; separate)의 원형 '아포리조'(aphorizo)는 '경계를 지어 어떤 것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하다', '분리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뒤엉켜 존재하고 있던 악한 자들은 이제 의인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의인과는 영원히 다른 운명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악한 자'로 번역된 '투스 포네루스'(tus ponerus; the wicked)는 물가에서 버려진 '나쁜 것' 즉 '타 사프라'(ta sapra; the bad)와 일맥상통한 것으로서, 적극적인 악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가치있고 쓸모있는 '의'(義)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 자들을 말한다.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여기서 '던져 버릴 것이다'로 번역된 '발루신'(balusin; throw)의 원형 '발로'(ballo)는 48절의 '던져 버렸다'로 번역된 '에발론'(ebalon; threw)의 원형과 동일한 동사이다.
어부가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고기들을 인정사정없이 던져 버리는 것처럼, 최후 종말의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소용되는 '의'(義)가 결핍되어 있는 악한 자들을 향해 조금도 동정을 보이지 않고, 영원히 타오르는 불구덩이(the firey furnace)속에 던져버릴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의 마음은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지만, 일단 세상이 끝나고 마지막 심판 때에 이르게 되면, 악한 자들을 향해 결코 열리지 않는 것이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옛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여기서 '자기 곳간'으로 번역된 '테사우루 아우투'(thesauru autu)는 '그의 보물', '그의 창고'(his storeroom; his treasure)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축적한 지식의 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구절은, 집주인이 그의 창고에서 필요에 따라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자유롭게 꺼내 사용하며 가족 구성원들에게 마음껏 나누어 주는 것처럼, 하늘나라(천국)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들은 옛 진리, 즉 구약의 가르침과 새 진리, 즉 율법의 근본 의미와 정신을 바르게 해석해 주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025년 07월 31일 목요일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하늘 나라는 온갖 종류의 고기가 들어 있는 그물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일러 주시듯이 세상과 공동체 안에는 ‘좋은 것’인 의인들과 ‘나쁜 것’인 악인들이 있습니다.
이 비유를 우리 내면에 적용한다면 우리 안에도 선함과 의로움 같은 것이 있고, 악의와 악습 같은 것도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이든 내 안이든 나쁜 것은 다 없애고 좋은 것만 남겨 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둘 다 있게 하십니다. 여기서 모두를 포용하시는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이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같이 놓아두시지는 않고 가려내시어 저마다 걸맞은 장소에 두심은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저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다양한 면을 모두 인정하고 품는다면, 그 자체로 덕을 넘어서 하느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마태 13,49)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인들에게 초점을 두시는 것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품더라도 좋은 것에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닮아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 안에 무엇을 담고 버릴지 식별한다면 그 자체로 주님을 닮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어부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고자 그물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듯이, 우리도 숨은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꺼내 놓아 마주해야 합니다.
그 생각과 시선과 행동이 늘 그분을 닮기를 바랍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옛것으로 새것을 깨닫는 것이 하늘나라.
복음(마태13,47-53)
예수님께서 47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 그물- 물고기를 잡는 도구다. 곧 말씀으로 세상에서 사람을 낚아 올리는 ‘하늘나라’라고 하심이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 말씀을 이미 받은 그 의인들이(말씀이 곧 생명, 빛, 의로움), 그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의 계명(誡命)으로 받아 행(行)하고는 그 행함을 자기 가치와 의로움으로 챙기는 것이 악(惡)이다.(로마3,20참조)
50 그 악 한자들은,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말씀을 깨달아 마음에 간직하지(지키지)못해 되새겨야(씹어야)할 구원(救援)의 말씀이 없어 절망(絶望)으로 울며 이(齒)를 가는 것이라 했다.
본문48절 말씀은 물고기가 물에서 끌어 올려지면 물고기는 죽는다. 그렇게 물에서 죽는 것이 좋은 것, 구원이라는 말씀이다. 곧 사람을 세상에서 끌어올려, (세상에 대해서 죽이고) 좋은 것으로 ‘하늘나라에 들여보내신다’는 말씀이다.
(루가17,33) 33 제 목숨(옛 계약의 세상의 것)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버리는, 否認하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 악(惡)한, 나쁜 것은 옛 계약(契約), 의(義), 세상의 것을 물고 있는 것이고, 그는 땅속에 영원(永遠)히 갇히게 된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성경말씀)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 옛 것, 세상의 자기 의(義), 영광을 위한 율법(제사, 윤리), 그 옛 계약이다. 새것-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義)로 거저 의롭게 되는 새 계약이다. 곧 옛 계약으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을 깨달아 옛 계약의 자신을 죽이고(罪와 義, 모두 否認하고) 새 계약의 그리스도로 하늘의 의(義), 선(善), 그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구원(救援)이다. (2코린5,17)
그러나 자신의 뜻(소원, 의)을 위해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열심을 부리게 되면 말씀이 인간의 법, 심판의 계명이 되어 영원한 멸망(惡)에 이르게 된다.(로마10,1-3참조)
앞 12장 35절에서 ‘선한 사람은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꺼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꺼낸다.’ 곧 새 계약의 사람은 곳간(성경, 마음)에서 하늘의 용서, 의, 생명, 그 선을 꺼내고, 옛 계약의 사람은 곳간에서 죄, 심판, 그 악을 꺼낸다.
그래서 다음 12장 37절에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 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 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斷罪) 받기도 할 것이다’
(잠언3,1) 1 내 아들아, 너는 내 가르침을 잊지 말고 너의 마음이 내 계명을 지키게 하여라.
= 옛 계약, 계명을 새 계약의 말씀으로 마음에 간직하라(지켜라) 하심이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도덕, 윤리)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히브8,7.13) 7 저 첫째 계약(율법)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새 계약)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제사와 윤리, 율법)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 주님께서 떠나 찾아가신(54절) 고향사람들, 곧 앞장(12,46이하) 예수님의 육(育)의 혈육들처럼 예수님 밖에 서서 옛 계약(제사와 윤리, 율법)으로 스스로 열심을 부리는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은 비유의 말씀을 못알아들어 못마땅하게 여기게 된다(마태13,57)
그렇게 12장 46절 ‘예수님 밖의 가족들’과 13장 54절 ‘비유말씀을 못 알아듣는 고향사람들’ 그 중간에 ‘하늘나라 비유말씀’이 들어있음이다. 곧 누구든지 율법(제사, 윤리), 그 옛 계약의 자신을 버리고(부인하고)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代贖)하신 그 피의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로 들어가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 ‘하늘나라’라 하심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갈라3,23-26)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제사, 윤리)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옛 계약)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새 계약)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