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길 잃은 양 한 마리 (마태18,1-5.10.12-14)

2025. 8. 11. 오전 1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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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2일 화요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길 잃은 양 한 마리 (마태18,1-5.10.12-14)

 


1독서<여호수아, 힘과 용기를 내어라.>(신명31,1-8)

1 모세는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을 하였다.

2 “나는 오늘로 백스무 살이나 되어 더 이상 나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또 주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이 요르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 주 너희 하느님께서 친히 너희 앞에 서서 건너가시고, 저 모든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시어, 너희가 그들을 쫓아내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너희 앞에 서서 건너갈 것이다.

4 주님께서는 아모리족의 임금 시혼과 옥과 그 나라를 멸망시키신 것처럼, 저들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5 이렇게 주님께서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시면,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계명대로 그들에게 해야 한다.

6 너희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 그들을 두려워해서도 겁내서도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7 그러고 나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 놓고,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말하였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이 백성과 함께,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저 땅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8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

 

<화답송>신명32,3-4.7.8.912(9) 주님의 몫은 그분의 백성이다.

내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니, 너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라. 그분은 바위, 그 하신 일은 완전하다.

오랜 옛날을 기억하고, 대대로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여라. 아버지에게 물어보아라. 알려 주리라. 노인들에게 물어보아라. 말해 주리라.

지극히 높으신 분이 사람들을 갈라놓으시고, 민족들의 땅을 나누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에 따라,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다.

주님의 몫은 그분의 백성, 그분의 소유는 야곱이었다. 주님 홀로 그를 인도하시니, 그 곁에 낯선 신은 하나도 없었다.

 

복음<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신명기 31장 강하고 담대하라! - 다우리교회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제1독서 (신명31,1-8)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된다."   (8)


앞서 나오는 신명기 31장 6절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인데, 한가지 첨부한 것이 있다면 '낙심해서도 안된다'는  '웰로 테하트'(wello thehath)이다. '낙심해서도'에 해당하는 '테하트'(thehath)는 '깨어지다', '산산이 부서지다'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들은 용기를 잃는 마음을 시각적이고 상징적으로 매우 생생하게 잘 나타내준다.


이 단어 앞에 강력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어 '로'(lo)가 나오므로, 다시 번역하면 '네 마음을 산산히 부서뜨리지 말고 용기를 내어라'(do not be discouraged)고 할 수 있다.


여호수아가 지금까지는 많은 백성들 가운데 그저 한 사람으로 묻혀 용기없이 살아왔지만, 이제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의 뒤를 이어 많은 백성들 앞에 서게 될 때에 그가 지녀야 할 용기는 종전의 것과는 달라야 했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지녀야 할 용기는 모세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의지하며 기도했던 그러한 용기인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마음이 수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고한 불신앙의 행위들(신명14,1-3; 민수11장) 인하여 산산이 부서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으로 인해 굳센 용기를 가졌듯이, 여호수아도 마음이 부서져 내릴 수 있는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의지하여 백성의 지도자로서 용기를 잃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로 번역된 '하홀레크 레파네카'(hahollek lepaneka; goes before you)는 모세를 통해서 보여 주었듯이, 출애굽에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요르단 강을 도강하기 전까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앞서 인도하시고,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며 인도해 주었듯이 여호수아에게도 그렇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너와 함께 하시며'로 번역된 '이흐예 임마크'(yihye immak; will be with you) 이스라엘 백성과 시간적으로는 공간적으로 늘 함께하시겠다는 뜻이다. 신명기 31장 6절에서는 '함께 가시면서'로 표현되어 당신을 '함께 걸어가시는 분'으로 나타내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만남이라는 뜻이며, 이스라엘을 위해 이방 민족들과 직접 전쟁을 치르시는 하느님이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또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의 동반자 관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너를 버려두지도'로 번역된 '아르페카'(yarpeka; he will leave you) '가라앉다'는 뜻이 있는 동사 '라파'(rapa)의 사역형과 남성 단수 2인칭 접미어가 합쳐진 말이다.


여기서 '라파'(rapa)의 사역형은 '가도록 만들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장 서두에 강력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어 '로'(lo)가 사용되어, 하느님께서는 적대자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멸망의 죽음을 향하여 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이것은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이 온전히 하느님의 주도권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저버리지도'로 번역된 '야아즈베카'(yaazbeka; forsake you)의 원형'아자브'(azab)동사는 '홀로 두다', '떠나가다'라는 뜻이다.

이것 또한 계약의 관계를 강조한 표현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버리지 않는 이상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홀로 두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야아즈베카'(yaazbeka)에도 앞의 '아르페카'(yarpeka)에 있던 남성 단수 2인칭 접미어가 결합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에게 신명기 31장 6절과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심으로써, 이 본문의 내용을 듣고 있는 모든 믿음의 자녀들에게도 하느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과 요구 사이의 긴밀한 결합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마치고 여호수아에게 자리를 물려줍니다.

 그러나 변함없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몸소 이스라엘 사람들과 계속해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들을 두려워해서도 겁내서도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안에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에는 강력한 요구가 뒤따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희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 하시고, 여호수아에게도 “힘과 용기를 내어라!” 하고 이르십니다.

우리는 참된 희망이 피동적이지 않음을 봅니다. 참된 희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며 용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에 따르면,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모든 것을 기다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희망은 우리 나름대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기를 기다리면서 게으르고 한가하게 머무르기 위한 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오늘 복음이 보여 주는 것처럼 겸손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정확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를 하지 말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이 업적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깨달으면서 하느님의 업적을 위하여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가장 큰 사람

반영억라파엘신부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18,4).하시고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 하여라”(마태1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어린이를 중심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결국 어린이와 같은 단순함과 순수한 마음을 지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미아발생으로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보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 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아이가 길을 잃고 헤맵니다. 그러니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많이 소유한 것이 위대하게 보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진 것 없는 사람, 자신을 낮추어 비우는 사람이 위대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애당초부터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자꾸만 더해서 많이 갖고, 현명한 사람은 자꾸만 덜어서 많이 갖습니다”(이규경). 

노자도 “성인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고, 자기를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빛나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고 자기를 뽐내지 않으므로 윗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루카18,17).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할 때 우리는 하늘 앞에서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지니고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사랑이 담긴 일을 보시고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한 일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1고린14,20). 주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기억하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사제는 하느님 안에서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큰 사람이었습니다.


큰 사람은 키가 커서 큰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커서 큰 사람입니다. 하루를 허물로 누벼 놓았어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주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자비를 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주님 품에 안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큰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복음(마태18,1-5.10.12-14)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0)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14)


'주의하여라'에 해당하는 '호라테'(horate; take heed)의 원형 '호라오'(horao) 일차적으로는 '눈으로 보다'(요한8,57)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알다', '조심하다', '유의하다'라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두어 유의해서 반드시 지켜야 함을 뜻한다.


특히 여기서는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되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단순한 권고 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실천적 명령이며, 또한 현재 명령형이기에 희랍어에서 현재는 일회성이 아닌 계속적으로 유념해야 할 사항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업신여기지'에 해당하는 '카타프로네세테'(kataphromesete; look down; despise)의 원형 '카타프로네오'(kataphroneo) '업신여기게 되다','가볍게 여기다'(마태6,24), '업신여기다', '멸시하다'(로마2,4)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세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부정(不定) 과거 가정법으로 사용되었으나, 여기에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메'(me; not)와 함께 쓰여서 강력한 금지를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 18장 10절은 5~9절에 뒤따라 나오지만, 내용상 14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10절에서 14절까지의 한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18장 10절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14절) 이루기 위해서는작은 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멸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들의 천사들이'에 해당하는 '앙겔로이 아우톤'(anggeloi auton; their angels)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아우톤'(auton; their) 앞서 나온 '작은 이들'을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수호 천사를 임명해 두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사도12,15).

히브리서 1장 14절에서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라고 계시되어 있다.


이 천사들의 기능과 역할 및 활동의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는 것은 '작은 이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특별 대우를 받아야 될 존재들임을 나타낸다.


'작은 이들'을 지키는 천사가 항상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있다는 것은'작은 이들'이 하느님께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사실은 '작은 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 이들' 즉 예수님께 속한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잃어버리는'에 해당하는 '아폴레타이'(apoletai; should be lost; should perish)의 원형 '아폴뤼미'(apollymi)는 돌보는 사물 혹은 짐승 등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잃다'(마태15,24)라는 뜻만이 아니라, 일이 어그러지거나 실패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망하다'(마태26,52)는 뜻과 그리고 영원한 생명(구원)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하는 '멸망하다'(요한3,16)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잃어버리다'는 것은 영원히 하느님 품을 떠나 죄의 길에 머물다가 영원한 참 생명을 얻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볼 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선택하신 자들 가운데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나타낸다.




   

20250812일 화요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신명기 31-34장은 구약 성경 오경의 결론을 제시하며 여호수아기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모세는 온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이 요르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신명 31,2).

또한 여호수아를 앞에 세우며 말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31,8).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한 위대한 지도자인 예언자 모세는 약속의 땅에 발을 딛지 못합니다.

그는 사십 년 광야 생활에 고통과 두려움, 의심과 번뇌를 겪었을 테지만, 하느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은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까지였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에 서운해하거나 섭섭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까지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에 관한 논쟁을 다룹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마태 18,4), 다시 말해서 스스로 우쭐거리거나 자기 잘난 맛에 살기보다 회개하고 겸손한 이가 되라는 초대입니다.

아울러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18,14)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화려하고 위대하며 길이 남을 것 같은 역할이나 업적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그저 초라하고 덧없으며 짧은 한때의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자연스러운 욕구이겠지요.

그런데 이 욕구 충족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간에게서 오는 위로와 인정은 영원할 수 없고, 하느님만이 우리의 전부이시며 온전히 채워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어린이 하나가 예수님을 비유(比喩)하심이다.


복음(마태18,1-5)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시어 하느님 아버지만을 의지하여 살아야 함을 말씀하심 인데, 그 자신을 낮추는 것이 당장에는 배의 쓰라림, 고통, 슬픔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평화, 기쁨을 낳는다. (히브12,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한 사람이 있는가? 성경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러 오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 한 분만이 ‘어린 아이’로 오셨고, 순종 하셨다. 

곧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인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신 예수님, 그분의 지체로 한 몸이 되었을 때,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된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1코린1,30)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오늘삶의 쓰라림한숨슬픔이 내일의 영원한 평화기쁨큰 사람이 되게 오늘 말씀이 저희 안에서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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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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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용서(容恕) (마태18,21─19,1)25.08.13조회 28[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18,15-20)25.08.12조회 48[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길 잃은 양 한 마리 (마태18,1-5.10.12-14)25.08.11조회 11[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전 세(稅) (마태17,22-27)25.08.11조회 22[연중 제18주간 토요일] 간질병(癎疾病) 치유 (마태17,14ㄴ-20)25.08.08조회 29[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6,24-28)25.08.07조회 51[연중 제18주간 목요일] 하늘 나라의 열쇠 (마태16,13-23)25.08.06조회 25[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루카9,28ㄴ-36)25.08.05조회 11[연중 제18주간 화요일] 호수 위를 걸으시다 (마태14,22-36)25.08.04조회 14[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마태14,13-21)25.08.03조회 14[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세례자 요한의 죽음 (마태14,1-12)25.08.01조회 19[연중 제17주간 금요일] 목수의 아들 예수 (마태13,54-58)25.07.31조회 24[연중 제17주간 목요일] 그물속 고기 비유 (마태13,47-53)25.07.27조회 22[연중 제17주간 수요일] 밭에 묻힌 보물과 진주 비유 (마태13,44-46)25.07.26조회 18[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 기념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11,19-27)25.07.26조회 26[연중 제17주간 월요일]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마태13,31-35)25.07.26조회 12[연중 제16주간 토요일] 가라지의 비유 (마태13,24-30)25.07.25조회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