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2일 금요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사랑’ (마태22,34-40)
제1독서<나오미는 모압 출신 룻과 함께 돌아와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룻기1,1.3-6.14ㄴ-16.22)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4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화답송>시편146,5-6ㄱㄴ.6ㄷ-7.8-9ㄱ.9ㄴㄷ-10ㄱㄴ(◎1ㄴ)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 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네. ◎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네.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복음<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22,34-40)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제1독서 (룻기1,1-3.6.14ㄴ-16.22)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니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니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니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니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6.16)
과부 나오미가 두 아들과 함께 이방인의 지역인 모압 땅에서 십년 쯤 살았고, 그곳에서 모압 여인들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는데, 두 아들이 죽어 버리게 된다.
그래서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본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첫째 며느리인 오르파는 자기 겨레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오로지 다른 며느리 룻만이 시어머니 나오미와 끝까지 함께 할 의지와 효도를 드러낸다.
'다그치지'로 번역된 '티프께이'(thipqei; intreat)의 원형은 '파가'(paga)로서 '~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심하게 재촉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으로 매우 심한 압박을 느꼈음을 '파가'(paga)라는 동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를 두고'로 번역된 '레오즈베크'(leozbek; to leave you)의 원형은 '아자브'(azab)로서 '~을 버리고 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따라서 '아자브'(azab)동사는 새 성경의 '두고' 보다는 훨씬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며느리 룻이 모압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곧 시어머니 며느리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음을 며느리 룻은 결코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며느리 룻이 부정어 '알'(al; not)과 미완료 2인칭형 동사 '티프께이'(thipgei; urge)를 사용하여 대화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금지 명령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는 며느리 룻의 단호한 결의와 의지를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어머니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니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본문은 이유 접속사 '키'(ki; for)로 시작되는 문장으로서, 앞 문장 즉 '알 티프께이'(al thipgei; don't urge)로 시작되는 금지 명령문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따라서 본문은 앞 문장에 이어 단순한 병렬식으로 배열한 새 성경의 번역과 다르게 '왜냐하면 (당신이 가는 곳에) 제가 갈 것이고 (당신이 유숙하시는 곳에) 저도 머물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가시는'(thelleki; 텔레키; you go)과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thallini; 탈리니; you stay)에 해당하는 원어의 첫 문자는 둘다 '타우'(thau)이며, '저도 가고'(ellek; 엘레크; I will go)와 '저도 머물렵니다'(allin; 알린; I will lodge)에 해당하는 원어의 첫 문자는 둘 다 '알렙'(allep)이다.
며느리 룻은 '타우'(thau)와 '알렙'(allep)의 반복을 통해 시어머니 나오미를 철저히 따르겠다는 자신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돌아가려무나 ~ 가거라'(룻기1,12)는 시어머니의 충고에 대해 며느리 룻은 '어머니가 가시면 저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면 저도 머물겠다'고 하는 표현을 통해 '죽어고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며느리 룻은 '평생'을 그녀 자신을 위한 길이 아니라 시어머니 나오미의 길을 따라 '어디든지' 함께 가겠다는 결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머물다'는 '룬'(lun)동사는 '불편한 상태로 밤을 지샌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이것 역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겠다는 뜻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며느리 룻의 이런 감동적인 표현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문을 막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겨례가 저의 겨례요, 어머니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암메크 암미 웨로하이크 엘로하이'(amek ammi welohaik ellohai; you people will be my people and your God my God)가 원문인데, 직역하면 '당신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며) 당신의 하느님(이) 저의 하느님(입니다)'이다.
'당신'을 나타내는 2인칭 여성 소유격 접미어 '에크'(ek)와 '저'를 가리키는 1인칭 소유격 접미어 '이'(i)가 '백성'(am; '암')과 '하느님'(ellohim; '엘로힘') 뒤에 번갈아 반복되고 있다.
앞에서는 두운(頭韻)을 사용하여 '당신'과 '나' 사이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룻기1,15)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권면에 대한 며느리 룻의 이러한 반응은 자신의 민족(겨레)이나 신(神)조차도 자신으로 하여금 시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돌아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 나오미의 백성이 자신의 백성이 될 것이고, 시어머니 나오미의 하느님이 역시 자신의 하느님이 될 것이라는 며느리 룻의 이같은 발언은 사실 엄청난 희생과 모험을 각오한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족, 친척, 믿는 신(神)까지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지금까지 보호해 왔던 울타리와 같은 모든 보호벽과 영역을 뛰쳐 나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어머니 나오미의 겨례(백성)와 그 하느님께로 간다는 것은 언어, 풍습, 사고 방식, 가치관이 전혀 다른 환경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그로 말미암아 초래할 수도 있는 모든 위험과 부담을 떠안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율법의 바탕이 되는 십계명은 ‘-하여라.’는 계명과 ‘-하지 마라.’는 계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은 ‘-하지 마라.’는 계명입니다.
그 반면 ‘-하여라.’는 계명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탈출 20,8)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탈출 20,12)가 있습니다.
사실 이 두 계명은 십계명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계명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하지 마라.’가 아닌 ‘-하여라.’는 긍정형으로 끝납니다.
‘-을 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계명보다 적극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을 하기’가 훨씬 지키기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을 묻는 질문에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적극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이 정하는 여러 계명을 잘 지켜 죄를 피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인생의 의미를 새롭고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는 사랑에 전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1독서의 말씀은 율법을 올바르게 지키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것은 룻의 모범입니다.
기근이 들어 이방인이 살던 모압 지방으로 남편과 함께 이주한 나오미는 그곳을 떠돌며 두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결국에는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두 며느리 오르파와 룻과 함께 남습니다.
오르파나 룻이 생계 문제로 자신의 친지와 친척들이 있는 모압인들에게 돌아가더라도 율법에 따른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오르파와 달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 곁에 남기로 결심합니다.
룻은 자신도 과부이면서 연로한 과부 나오미의 남은 생을 염려하며 사랑으로 대하려는 것입니다.
룻은 법의 영역을 넘어 사랑으로 선택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이 하느님과 우리의 연결 고리입니다.
계명들이 아니라 그 계명들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선택하고 지키며 살아갑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성경에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이 54,000번 있다.
구약,신약 그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캅-실행)하는것이 신앙이다.
(마태22,34-40)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 부활, 영생이 없다고 하는 사두가이들의 말을 막으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바리사이~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하느님을 사랑 한다는 것, 그분의 뜻,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사55,8-9)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 땅(사람,세상)의 생각 곧 사람의 목숨(육)을 위한 길이 아닌 하느님의 뜻, 하늘의 생명을 위한 그분의 길을 바라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은 예수님이시다.
(요한17,3)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세상의 죄인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의 죄 값으로 당신 외 아드님을 그들의 속죄 제물로 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요한3,16), 그래서 죄인들이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영원하게 살게 하신 것이다.
그 참 사랑, 참 진리의 한 분이신 하느님과 그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둘째도 첫째와 똑같다는 말씀, 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예수님, 그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 그분들의 말씀, 복음을 이웃에게 전해주어~ 그 말씀으로 이웃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 그것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없다. 혹 있다 하더라도 그 인간의 사랑으로 감동을 시켜도 그 사랑으로는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 율법(십계명)은 하늘의 대속 그사랑 그 하나의 계명인 것이다. 그 사랑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열 개의 계명을 인간의 법, 인간의 사랑으로 지켰다면 하늘의 생명인 말씀, 곧 생명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이 오늘 독서에 마른 뼈들인데~ 구원의 물(생명수-말씀)이 없는 마른 뼈들인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인 말씀이 없는 죽은 뼈들인 것이다.
그 마른 뼈, 죽은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영)으로만 살릴 수 있다.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하늘의 생명을 살릴 수 없다.
(에제37,14)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여기서 영(靈)은 앞36장의 새 영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에제36,25-26)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 부정한 것, 죄를 깨끗하게 하는 정결한 물은 새 계약의 말씀인 피와 영, 성령을 뜻한다(1요한5,6-8) 곧 성령의 증언으로 더러운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로마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갈라2,16) 16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대속의 죽음, 그 제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졌음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미사(감사의 축제, 잔치)를 제사로 드리는 그 열심인 행위, 그리고 십계명을 열 개의 법, 인간의 계명으로 받아 지킨 그 인간의 가치를 세우는 것, 그것이 구원의 말씀과 상관없는 행위의 신앙인 것이다.
(아모8,11) 11 보라, 그날이 온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천주의 성령이시여 의탁하나이다. 아멘.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22,34-4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37-40)
원문과 한글 새 성경의 단어 배열 순서가 다르다.
원문은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너의 온 마음으로, 너의 온 목숨으로, 너의 온 뜻으로'이다.
원문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이 먼저 선언되고, 그 다음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라는 방법론이 제시된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 you shall love; love)의 원형 '아가파오'(agapao)라는 단어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뜻할 때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와 한없는 순종과 내면적 경외심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없는 사랑의 감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신명5,10), 그를 섬기며(신명10,12), 그의 모든 말씀을 실천하는 외적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신명11,22).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이 명령은 죄인을 위해 가장 귀한 외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당신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순종을 의미한다(요한14,15; 14,21; 1요한5,3).
한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서 신명기 6장 5절의 인용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 드릴 때에 이 말씀을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했으며, 이것은 일명 '셰마'(shema)라고 불리웠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외모'를 나타내는 '프로소폰' (prosopon)과 대조되는 단어로서, 가식없는 내면의 진실함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2코린5,12; 1테살2,17).
그리고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psyche; soul)는 '호흡', '생명'이라는 뜻이 있으며,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생명을 가리킨다.
또한 '정신'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dianoia; mind)는 '생각', '뜻', '지각'이란 뜻으로서 이해하고 느끼며 갈망하는 기능으로서의 정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네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전인격(全人格)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가시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여기서 '첫째'로 번역된 '프로테'(prote; the first)는 시간적 순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중요성의 경중에 있어서도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며, 그분의 모상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분과 친교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영적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이 영적, 정서적, 인격적으로 균형있고 충족한 상태로 살아가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하며, 그분의 말씀과 교훈을 성심껏 순종해야 한다.
코헬렛 12장 13절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라는 마지막 결론을 내리면서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계시한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지 않고, 또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영적, 정서적, 인격적 성숙과 삶의 행복을 성취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서 성심성의껏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신명10,13).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와 같다'에 해당하는 '호모이아 아우테'(homoia aute; is like it)에서 '아우테'(aute; it)는 여성 3인칭 대명사로서 22장 38절의 여성 명사 '엔톨레'(entole; commandment), 즉 '계명'을 가리킨다.
'같다'로 번역된 '호모이아'(homoia; is like)의 원형 '호모이오스'(homoios)는 '닮은 사람'(요한9,9), '같은 식'(유다1,7), '같은 곳'(묵시18,18)등과 같이 동등한 두 사물을 비교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여기서 '이와 같다'라는 말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성질이 동일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압축된다는 의미이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 의무를 행하다 보면, 사람, 특히 부모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마태15,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의 핵심이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두 가지 의무는 어떤 면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생활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도 요한은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4,20)라고 말한다.
한편,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 십계명 중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라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문으로서 십계명 가운데 네번째부터 열번째까지의 계명을 요약한 것이다.
'이웃'으로 번역된 '플레시온'(plesion; neighbor)은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이나 친구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모세 율법이 주어질 당시의 이 표현은 동족이나, 함께 거주하면서 유다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외국인들만 가리켰으며,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도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의 범위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인들은 물론(루카10,29~37), 원수까지도(마태5,44) 사랑해야 할 '이웃'의 개념에 포함시켰다.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아가페세이스'(agapeseis)는 마태오 복음 22장 37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했을 때 사용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이다.
따라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여기서 '율법'으로 번역된 '호 노모스'(ho nomos; the Law)는 율법서인 모세 오경 (Torah)을 가리키고, '예언서'로 번역된 '호이 프로페타이'(hoi prophetai; the prophets)는 예언서(Nebim)을 가리킨다.
그러나 '온 율법과 예언서'라는 표현은 단지 율법서와 예언서 뿐만 아니라 모세 오경과 예언서와 더불어 구약 성경을 이루는 구성 요소인 성문서(Kethubim)까지 포함하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정신이~달려 있다'로 번역된 '크레마타이'(krematai; hang)는 '크레만뉘미'(kremannymi)의 직설법 중간태로서 '매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 '의존하다', '요약하다'(summarize)는 뜻이다.
당시 랍비들은 도덕 법규들을 세분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율법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누며, 거기에서 공통적 성격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전통에 입각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모든 율법의 근본 정신이요, 원칙이라고 천명하셨다.
실제적으로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의 성품과 본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근본 정신이기에 사랑이 결여된 율법 준수는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며 위선일 따름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로마13,10), 사랑의 법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했다(로마13,9; 갈라5,14).
'경천애인'(敬天愛人) 혹은 '애주애인'(愛主愛人)의 계명은 전체 구약 성경의 기둥이요, 핵심인 것이다.
2025년 08월 22일 금요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 22,36)라고 묻는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대답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22,37-40).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머릿속 계산기를 돌려 이익과 손해를 따져 결정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둘째, 믿음은 실천으로 커 갑니다.
내 삶을 바꾸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기도만 더 한다고 하여 하늘에서 굳센 믿음이 ‘툭’ 떨어질까요?
믿음과 신앙생활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이웃 사랑이라는 구체적 실천은 언제나 꼭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는 믿음과 실천이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비록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성장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믿음이 부족하거나 신앙생활이 회의적으로 느껴진다면, 내 마음속 믿음과 실천이라는 성적표가 현재 몇 점 정도일까 고민해 봅시다.
반드시 거창하고 훌륭한 것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소박하게 실천해 봅시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내 못남을 맡은 이웃
복음(마태22,34-40)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의 말을 막아버리신 것이다.
앞절로 가보면~
(마태22,31-32) 31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않았느냐?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부활은 육적 자아가 죽어 영적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고, 그들이 산 이들이고 그들의 하느님이시다.
(요한11,25-26)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 예수님의 부활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죽음)의 열매다.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진리로 믿는 것이 부활이요 영원한 생명이다. 내 죄의 대속(죽음)으로 부활이다.
(1코린15,21-22.42-43)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42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로마6,4)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 아버지의 영광,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사랑(아가페)으로 곧 십자가로다
(로마6,5)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내 죄로 대신 십자가를 지셨음을 깨닫고 육적 나를 버리고(죽이고) 십자가의 주님과 한 몸이 되면 부활이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 율법학자는 부활과 관련된 큰 계명을 묻고있는 것이다.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 하느님의 뜻(사랑)으로, 더러워졌던 마음, 정신, 목숨이었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새롭게 살아난, 부활한 새 마음, 새 생명, 새 정신이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죄인인 나(우리)를 위해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신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아가페)으로 당신 생명을 버리신 그 ‘예수님의 마음, 정신, 생명으로 살겠습니다.’ ‘그분만이 구원의 길, 진리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마음, 정신, 목숨입니다.’ 하는 것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존재하는 나(우리)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웃이 나 자신처럼 새 마음, 새 정신인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죽음(대속)과 부활로 살아난 그분의 지체들이다. “너‘가 ’나‘라는 것이다. 모두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 큰 계명이다.
(1코린12,12-13.14-15)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 이웃이 ‘나’라는 것이다.
(1코린12,16-27)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약하고 점잔치 못한(모자라는), 그 부분이 내 몫일 수도 있었다. 다른 지체가 맡았음이다. 그것을 인정할 때 다툼(분열)이 없게 된다. 그래서 다른 지체, 그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큰 계명이다. 그러나 육(肉)을 입고 있는 나는 못한다. 성령께 의탁 해야 한다. 성령께서 덮으시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다.
남자(씨)를 모르는 처녀에게 아기(씨- 말씀)를 잉태하게 하시어 구원자를 낳게(깨닫게)하신 분이 아니신가....
(루가1,35.37)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 그러나 사랑은 잘못을 꾸짖어 하느님께 돌아와 새 마음, 새 정신, 하늘의 생명을 얻게하는 것임을 놓치면 안 된다.
(루가17,3)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 진리로 이끌어 자유롭게 하시는 보호자 성령님!
잘못된 길을 가는 이웃이 새 생명을 얻도록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