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불행하여라, 눈먼 인도자들! (마태23,13-22)

2025. 8. 24. 오전 11:24:43

글자

 

20250825일 월요일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불행하여라, 눈먼 인도자들! (마태23,13-22)


   


1독서<여러분은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섰습니다.>(1테살1,1-5.8-10)

1 바오로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2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며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3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4 하느님께 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 압니다.

5 그것은 우리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하느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곳곳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 사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 계신 참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10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그분의 아드님, 곧 닥쳐오는 진노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화답송>시편149,1ㄴㄷ-2.3-4.5-6ㄱ과 9(4)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복음<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마태23,13-22)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제1독서(1테살1,1~5.11ㄴ~12)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3)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 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4)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5)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3)

 

테살로니카 1서 1장 1, 2절에서 송,수신자 표기 및 축복의 기도를 한 사도 바오로는 1장 3, 4절에서 테살로니카 교회 성도들의 신앙으로 인하여 자신의 감사와 자랑을 기록하고 있다.

 

원문에서 이러한 감사와 자랑의 내용의 서두에 나오는 본문을 직역하면,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하느님께 늘 감사해야만 한다.' (We ought always to give thanks to the God)이다.

 

이렇게 강한 당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우리가 ~해야만 한다'로 번역된 동사 '오페일로멘'(opheilomen)의 원형 '오페일로'(opheilo)가 본래 지불해야만 하는 돈을 빚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마태18,23; 루카7,41).

즉 이 단어는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는 매우 강한 의미를 지닌다(로마15,27).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2장 13절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여 자기가 테살로니카 성도들을 위해 하느님께 항상 감사해야만 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에게 있어 감사를 하나의 의미로 여겼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사도 바오로가 그들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것은 그들에게 대한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의무이며, 테살로니카 성도들의 신앙이 계속하여  아름답게 성장해 가는 것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인해 그 교회의 개척자인 자신이 하느님을 향해 감사하는 것을 하나의 당연한 의무로 여겼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견고하게 성장하게 된 원동력이 하느님께 있음을 알았기에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를 강조했던 것이다.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나고 저마다 서로에게 베푸는 여러분 모두의  사랑이 더욱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hoti)로 시작하는 본문은 테살로니카 교회로 인하여 늘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본절 상반절의 이유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사도 바오로는 감사의 근거로 테살로니카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들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나타내는 가장 근본적인 신앙의 요소이다(1테살3,6).

 믿음은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나타내는 수직적 신앙의 태도요, 사랑은 하느님께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믿음이 성도 및 타인에 대해 나타나는 수평적 신앙의 표현이다.

 

한편, '크게 자라나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휘페라욱사네이'(hyperauxeanei)의 원형 '휘페라욱사노'(hyperauxano)는 '~을 초과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전치사 '휘페르'(hyper)와 '자라다', '번성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욱사노'(auxano)의  합성어로서 '지나치게 증가하다', '엄청나게 자라다'(grow exceedingly)라는 강한 의미를 지닌다.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쓰인 이 단어는 테살로니카 성도들의 믿음을 바라보는 사도 바오로의 벅찬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들은 사도 바오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급속도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동사는 현재 직설법 시제로 쓰였는데, 이것은 그러한 성장이 멈추지 않고 계속 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정체함이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믿음, 그것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며, 하느님 말씀의 봉사자로 하여금 감사를 자라나게 하는 요인이다.

 또한, '더욱더 커지고 있기'로 번역된 '플레오나제이'(pleonazei)의 원형 '플레오나조'(pleonazo)는 남아돌 정도로 풍성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1서에서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테살로니카 성도들의 사랑의 풍요를 위해서 중재 기도를 했었는데(1테살3,12), 이 기도가 응답되었음이 본절에 나타나고 있다.

 더군다나 이 동사 역시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 직설법 사제로 쓰여서 성도 서로에 대한 사랑의 풍성함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 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4)

 

테살로니카 1서 1장 3절에서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신앙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였던 사도 바오로가 1장 4절에서는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모든 교회에 자랑하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본문은 당시 테살로니카 교회가 처해 있던 상황이 어떠한 지를 잘 말해준다.

테살로니카 1서 1장 6절에서도 이와 유사한 진술이 있는데, 약 2, 3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첫번째 서신을 썼던 때와 다름없이 그들이 환난 가운데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박해'에 해당하는 '디오그모이스'(diogmois)의 원형 '디오그모스'(diogmos)는 원래 사냥개가 사냥감을 뒤쫓는 모습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사냥개가 표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쫓아가는 것처럼, 적대자들은 테살로니카 교회를 집요하게 박해하였던 것이다.

 또한 '환난'으로 번역된 '틀립세신'(thlipsesin)의 원형 '틀립시스'(thlipsis)는 외적 고통과 더불어 내적 압박감까지 포함하는 고난을 말하는 단어이다.

 

본문에서 '디오그모스'와 '틀립시스'는 의미상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동의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어를 반복하는 것은 그들이 당한 곤경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어려움이 테살로니카 교인들에게 지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겪으면서도 보여준'에 해당하는 '하이스 아네케스테'(hais anechesthe)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이스'(hais; that)는 관계대명사로서 앞의 명사를 수식하며, '아네케스테'는 '아네코'(anecho)의 현재 직설법으로 계속해서 참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여기서 '아네코'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용납함으로써 참는 것을  의미하는데(에페4,2) 이것은 테살로니카 교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박해(핍박)와 환난을 하느님의 허락하에 벌어지는 일들로 해석하고 묵묵히 참았음을 암시한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부로부터 압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 참기 힘든 법이어서 폭력으로 맞서거나 분노와 적개심을 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테살로니카 교인들은 전혀 이와같이 대응하지 않고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오직 인내와 믿음으로 대처하는 성숙한 신앙을 가졌던 것이다.

 여기서 '인내'에 해당하는 '휘포모네스'의 원형 '휘포모네'(hypomone)는 '~아래에'라는 의미의 '휘포'(hypo) '머물러 있다'라는 의미의 '메노'(me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무겁게 내리 누르는 무거운 짐이나 고통 아래에서 굳건하게 머물러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마지못해 견디는 수동적인 뉘앙스가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견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테살로니카 1서 1장 3절에서는 이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 때문에 견딜수 있는 인내라고 표현했다.

 또한 '믿음'에 해당하는 '피스테오스'(pisteos)의 원형 '피스티스'(pistis)는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마음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들의 '믿음'은 평화로울 때 뿐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믿음'이었음이 본절에서 이 단어가 '인내'란 단어와 함께 사용되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

 

원문에는 '여러'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어서 직역하면 '하느님의 그 교회들 안에서' ('엔 타이스 엑클레시아 투 테우'; en tais ekklesiais tu theu)이다.

 여기서 '그 교회들'(tais ekklesiais)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지칭한다. 지금의 그리스의 북쪽(마케도니아)와 남쪽(아카이아)을 말한다.

 그리고 '하느님의'로 번역된 '투 테우'(tu theu)란 소유격의 표현은 교회에 대한 소유권이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6장 16절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라는 표현도 썼다.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교회의 소유권을 지닌 분으로 지칭하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소유권이 삼위일체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교인들에 대한 좋은 소문이 각처에 퍼져나갔던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1테살1,8) 다른 교회의 발전과 성숙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친히 그들에 대해 자랑하며 다녔다.

 

 '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5)

 

테살로니카 2서에서 1장 1~4절의 도입부에 이어 이제 본절인 1장 5절부터 3장 15절까지가 본 서신의 본론 부분이다.

 본론의 첫 단락은 1장 5~12절로서 환난받은 테살로니카 성도들을 위한 격려와 중재기도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1장 5~10절에서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로서의 성도의 환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박해(핍박)와 환난에 처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있는 테살로니카 성도들에게 적지않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의 징표'를 영어로 번역하면 'All this is evidence that God's judgement is right'이다.  '이 모든것은 하느님의 심판이 옳다는 증거이다'라는 뜻이다.

 테살로니카 교인들이 하느님과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 때문에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보여준 것에 대해서 먼훗날 하느님께서 심판 때에 그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실 거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그 다음 구절인 '여러분이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 더 잘 나와있다.

 

본문에서 '합당한 사람이 되게'에 해당하는 '카탁시오테나이'(kataxiothenai)의 원형 '카탁시오오'(kataxioo)는 법적 용어로서 '적합하다고 간주하다', '합당하다고 여기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수동태로 사용되었는데, 합당히 여기는 주체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암시한다.

그리고 본절에 표현된 '하느님의 나라'(tes basileias tu theu)는 하느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며, 예수 재림시 완성될 나라이다.

 

따라서 본문은 고난을 이긴 성도들이 최후 심판 이후 하느님 나라의 완성사에 하느님의 영광의 나라로 들어가기에 적합한 자로 간주되어진다는 의미이다.

 '사실 여러분은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라고 번역된 '휘페르 헤스 카이 파스케테' (hyper hes kai paschete ; for which you are suffering)에서 본동사 '파스케테(paschete)는 현재 직설법 동사로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변치않는 진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관계 대명사 '헤스'(hes; which)는 '하느님 나라'를 지칭한다. 성도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는 존재인데, 이것은 고난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의무라는 소극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더 나아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능동적으로 고난을 받는다는 의미까지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여러분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에 해당하는 '파스케테'(paschete)가 능동태로 쓰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도의 고난이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더욱 빛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무슨 큰 뜻을 위해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희망의 인내와 믿음의 역사(役事)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받는 고난이 우리를 구원하실 하느님과 그 나라를 위해, 또한 하느님을 믿는 독특한 신앙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알때, 우리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그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으며, 고난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않는 믿음의 역사(役事)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부터 사흘 동안 마태오 복음서 23장을 읽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하여그들이 말하는 것은 실천하되 그들의 행실을 따라 하지 말라고 하시며(마태 23,2-3 참조예수님께서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는 내용입니다.

세리와 창녀온갖 죄인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보여 주시고그들을 하늘 나라의 잔치에 초대하시는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는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거의 가장 강한 비판이 이 장에 들어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23,13).

그들은 하느님의 모습을 왜곡합니다.

누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누가 들어갈 수 없는지하느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들의 기준을 내세웁니다.

그리고 거룩한 구실을 내세우기 때문에그들만큼 율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처럼 사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위선이라는 것겉으로는 선하여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이중적인 태도이지요.

율법을 잘 지키는 충실한 삶처럼 보이지만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믿도록 만들지만사실은 그 안에서 다른 무엇을 쫓고 있습니다.

성전보다 성전의 금을 중시하고제단보다 제단의 예물을 중시하는 것이 그들의 속마음입니다.

달리 표현하면그들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전의 거룩함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구실을 내세울 때그것은 숨김없이 드러나는 죄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씨와 소금에 비유하신다.

씨는 땅에 들어가 썩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사람에게 양식을 준다. 소금은 만물 중에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물질이다. 그래서 부패를 막아주며 음식에 맛을 낸다.

 

* 씨(제라)는 후손, 아들을 뜻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외아들 그리스도를 모형한다.(갈라3,16) * 소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契約)이다.(민수18,19)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외아들의 썩어짐, 곧 사람(땅)들의 죄(罪)로 썩어지고, 죽으셔서 사람들에게 하늘의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계약, 약속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지혜, 진리다.

그 하느님의 지혜, 진리의 말씀이 자라나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 새 것으로 새 창조하신다.(야고1,18) 그래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 것이다.(신명8,3)

그런데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은 인간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뜻, 의(義), 영광을 위해 생명을 주지 못하는 법으로 만들어 변질시켰다. 그리고는 그 법을 잘 지킨 자신들의 의로움이 진리라 우긴다. 그들이 율법학자 들이며 바리사이들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내 뜻, 소원, 곧 가족의 건강, 높은 지위, 등을 위해 미사(제물, 예물), 기도, 봉사, 등으로 열심을 부렸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하는, 하느님의 진리를 못 보는 눈 먼 자로, 하늘 문을 잠가 버리는 지옥행이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거저 주시는 하늘의 복을 걷어차는 불행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자~ 

복음(마태23,13-22)

13ㄱ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 제사(祭祀)와 윤리로 종교 행위에 충실한 이들이다.

 

13ㄴ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15ㄱ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봉사, 선교활동에 열심했다. 그러나~

 

15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 자신들의 뜻을 위해, 자신들의 열심히 바친 금이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무엇이 더 중요하냐금이냐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 자신들의 뜻을 위해 자신들의 열성으로 드린 예물이다. 모두 눈 먼 것이다.

 

19 눈먼 자들아무엇이 더 중요하냐예물이냐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 보이는 제단, 성전, 하늘 그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곧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하늘의 생명, 그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계약, 약속을 깨달아 믿고,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신앙의 삶,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신앙의 목적지(目的地)이며 구원이다.(이사43,7)

 

(필리2,16)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있게  것입니다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복음(마태23,13~22)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3~14)

 

마태오 복음 23장 1~12절은 예수님께서 군중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로 대표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본받지 말라고 경계하신 내용이 실려 있다.

 

이제 이어지는 마태오 복음 23장 13~36절에는 예수님께서 보다 직접적으로 이들이 범한 죄악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시며 저주를 선언하시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저주의 선언은 7가지나 되며, 점차 그 강도를 더해 점층법적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먼저 '불행하여라'로 번역된 '우아이'(uai; woe)는 슬픔과 분노, 절망을 나타내는 의성적 감탄사이다(잠언23,29; 1사무4,7; 1열왕13,30; 이사1,4; 예레10,19).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해 심한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계셨으며, 혹독한 심판과 저주의 메시지를 던지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우아이'(uai)라는 감탄사에는 분노와 저주의 감정만이 담긴 것이 아니라, 슬픔과 애통의 감정도 역시 담겨져 있다.

 

한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저주받은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위선에 있다. '위선자'에 해당하는 '휘포크리타이'(hypokritai; hypocrites)의 원형 '휘포크리테스'(hypokrites)는 고대 희랍 극장에서 자주 쓰이던 단어로서 '배우', '연기자'라는 의미의 명사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래적인 의미에서부터 이 단어가 '가장(假裝)하는 자', '위선적인 자'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발전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23장 13~36절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여섯 번이나 '휘포크리테스'(hypokrites)로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행하는 거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신앙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만 경건한 체하는 위선과 다른 사람들의 눈에 거룩하고 경건하게 보이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행하는 것들임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이다.

 

마태오 복음 23장 13절 후반부와 14절은 위선적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일곱 가지 저주 선언의 구체적인 이유 가운데 첫번째 죄목이다.

이들의 위선과 가장이라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모습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고, 들어가려는 이들마저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그들이 율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조상들의 전통을 율법보다 더 권위있는 것으로 가르침으로써 본말을 전도시켰기 때문이다.

 

'너희가 ~잠가'로 번역된 '클레이에테'(kleiete; you shut)는 '문을 닫다'는 의미를 지닌 원형 동사 '클레이오'(kleio)의 현재 시제이다. 시제가 현재라는 사실은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또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천국문을 닫는 일에 '항상 매달려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그릇되이 해석하고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율법의 정신에서 떠난 삶을 살도록 만들었으며, 또한 자신들도 천국의 입구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20250825일 월요일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 평일 미사 독서로 테살로니카 1서를 읽습니다.

신약 성경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이고 그리스도교 최초의 문헌인 이 서간은 기원후 51년 무렵 집필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속주인 마케도니아의 주도 테살로니카에 바오로 사도가 처음 도착한 것은 제2차 선교 여행을 하던 50년 무렵입니다.

이 도시는 그가 방문한 유럽 대륙의 첫 대도시입니다.

테살로니카에 살던 유다인들이 그의 활동에 어깃장을 놓았기에,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한밤중에 그 일행을 베로이아로 보냅니다.

그곳까지 쫓아온 유다인들은 바오로 사도의 선교를 방해합니다.

새로 생겨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두고 떠나야 하였던 바오로 사도의 마음은 갓난아기를 집에 남겨 둔 채 떠나야 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요?

1독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1테살 1,1)라는 인사는 바오로 서간의 전형적 특징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신자들에게 빌어 주는 은총과 평화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속합니다.

둘째,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모두 기억”(1,2)한다는 내용은 서간의 발신인과 수신인들의 유대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기도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지요.

셋째,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희망의 인내”(1,3)라는 표현도 인상적입니다. 신망애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로 풀이됩니다.

넷째,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1,10)라는 이 구절은 주님께서 다시 오심이 가까이 왔다는 생각에 불안해하였을 신자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반영합니다.

테살로니카 1서를 읽으면서 바오로 사도가 품었을 부모의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들아!

 

복음(마태23,13-22)

13 예수님께서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 본 23장 시작이 2-3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율법의 진의, 곧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진리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열심을 부렸던 그 자신을 부인하는 낮은 자가 되는 실행을 하지 못하고, 율법을 613가지로 늘려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의 높은 자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그 행실을 따라하지 말라 하셨던 것이다.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속의 속죄 제물로 구원자로 오실 수밖에 없으셨다고 묵상 했다.(로마3,20-21참조)

율법(제사, 윤리), 그 인간의 의로움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는데, 종교지도자들은 그 인간의 열심, 자신들의 의로움을 고집했기에 그들을 위선자라고 하신 것이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린 것이고, 지도자들 자신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신자들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제사와 윤리의 법으로 묶어 놓았다는 말씀이다.

 

(14)·15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대단한 열심이다. 모든 것 다 버리고 오지의 어려운 나라로 가서 말씀을, 신앙을 제사와 도덕과 윤리, 그 사람의 열심, 의로움을 위한 가르침으로, 또 사람의 소원(뜻)을 위한 말로 개종시키면 결국, 지옥 자식으로 만들 뿐이라는 말씀이다.

 

16 불행하여라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 성전은 예수님을 금은, 헌금, 예물을 뜻한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헌금, 예물 등 여러 전례, 종교 행위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눈먼 지도자들이다.(이사1,11-14참조) 그렇게 어리석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무엇이 더 중요하냐금이냐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 하느님의 뜻에는 관심도 없고, 자신들의 뜻, 욕망 때문에 눈이 멀어 분별력을 잃은 것이다.

 

18 너희는 또 제단(祭壇)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 제단,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단으로 희생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제물의 희생보다 예물을 더 중시하며 드리라는 눈먼 자들이다. 그 제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당신의 목숨을 예물로 바치셨기에 이제 제사와 죄 때문에 바칠 예물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히브10,10-18참조)

 

19 눈먼 자들아무엇이 더 중요하냐예물이냐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 예물을 드리는 사람과 그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말씀하심이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할 뿐이다. 다른 말로 우리의 구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그 사랑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사43,7)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 제단 위, 희생제물 예수님이시다. 그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양식 입니다.'를 고백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 보이는 성전(예수)이 허물어지고(죽으시고) 세 번째로 세우실(보내실) 성전인 성령을 (요한2,19-21) 나의 보호자로 믿나이다를 고백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 하느님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에페1,4-), 성자 예수께서 그 아버지의 계획을 십자가에서 이루셨고(요한19,30) 보호자 성령께서 그 십자가의 주님을 진리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다.(로마8,1-)

 

(로마8,8-10)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의로움(십자가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보호자 성령님! 

오늘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님의 힘과 큰 확신으로 전해짐을 믿기에 감사와 희망으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1 - 1:12 /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 참사 후에도 “국가는 없다” / 외나무다리 위 검찰과 이재명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회칠한 무덤 (마태23,27-32)25.08.26조회 13[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잔속을 깨끗이 (마태23,23-26)25.08.25조회 15[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불행하여라, 눈먼 인도자들! (마태23,13-22)25.08.24조회 16[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실행하고 지켜라 (마태23,1-12)25.08.22조회 13[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사랑’ (마태22,34-40)25.08.21조회 16[연중 제20주간 목요일] 하늘나라 혼인 예복 (마태22,1-14)25.08.20조회 44[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품삯 한데나리온 (마태20,1-16)25.08.19조회 15[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마태19,23-30)25.08.18조회 44[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마태19,16-22)25.08.17조회 45[연중 제19주간 토요일] 하늘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 (마태19,13-15)25.08.15조회 15[연중 제19주간 금요일] 간음죄(姦淫罪) (마태19,3-12)25.08.14조회 20[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용서(容恕) (마태18,21─19,1)25.08.13조회 28[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내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18,15-20)25.08.12조회 48[연중 제19주간 화요일] 길 잃은 양 한 마리 (마태18,1-5.10.12-14)25.08.11조회 10[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전 세(稅) (마태17,22-27)25.08.11조회 22[연중 제18주간 토요일] 간질병(癎疾病) 치유 (마태17,14ㄴ-20)25.08.08조회 29[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6,24-28)25.08.07조회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