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9일 금요일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세례자 요한의 죽음 (마르6,17-29)
제1독서<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예레1,17-19)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화답송>시편71,1-2.3과 4ㄱㄷ.5-6ㄱㄴ.15ㄴㄷ과 17(◎15ㄴㄷ) ◎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
○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당신 의로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저의 입은 온종일 이야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복음<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마르6,17-29)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예레1,17~19)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17)
앞의 1장 11~16절에서 하느님께서 예레미야가 예언자 소명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두 가지 환시를 주셨음을 밝혔다. 이제 17절 이하 19절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도록 촉구하시고, 약속을 통해 그를 격려하시는 내용이 소개된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라고 명하신다.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겉옷은 낮에는 의복으로, 저녁에는 이불로 사용되었다. 저녁에는 펼쳐서 이불로 사용하고, 아침이 되면 다시 그것을 몸에 두르고 허리를 묶어 일상복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 허리를 동여맨다는 표현은 일상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마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허리를 동여맨다는 표현은 상징적으로 전쟁에 나갈 준비가 마쳐졌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에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라는 명령은 영적인 의미로 볼때, 예레미야가 전쟁에서 지휘관으로 소집되어 지휘권을 위임받는 것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을 향해 반역을 일으킨 남부 유다 백성을 진압하기 위해, 어떤 다른 무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통해 그들과 싸우도록 명령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17~19절의 내용은 예레미야에게 주님께서 강력한 주권을 가지고 예언자의 소명을 주시는 8절의 내용을 확대시켜, 보다 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여 명령하는 형태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8절의 '그들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는 권고는 본절에서 그대로 나타나며,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주리라'는 약속은 19절에서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맥으로 볼 때, 8절과 17절이 조금 다른 면이 있다. 8절에서는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소명 앞에 주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자 사명을 사양하는 태도에 대해 하느님 편에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한 의미로 이러한 명령이 주어졌다.
반면에 본절에서는,사명을 받고 그 임무의 막중함을 알고도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능하신 하느님보다 눈에 보이는 권력자들이 더 크게 느껴져서 사명을 그르치거나 뒤로 물러서는 행위를 한다면, 이는 하느님께 대한 불신앙적인 태도임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주어진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18)
본문에서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붙잡아 주시므로, 그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당신의 약속을 견고한 성(城)의 비유를 통해 묘사하신다.
먼저 '요새 성읍'에 해당하는 '레이르 미브차르'(leyir mibtsar)는 '둘러싸다'라는 의미의 동사'빠차르'(batsar)에서 유래한 명사 '미브차르'(mibtsaar)와 '성읍'이나 '도성'을 가리키는 명사 '이르'(yir)를 연결시킨 복합어로서, 산이나 평지를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싼 요새화된 도시를 가리킨다.
'요새 성읍'이 높이 둘러싸인 성 전체를 의미한다면, '청동 벽'은 그 성의 벽면이 견고한 금속성 물질인 '청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리키며, '쇠기둥'은 그 성의 기둥도 견고한 금속성 물질인 '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즉 본문에서는 예레미야를 철로 만든 기둥들과 청동으로 만든 벽면을 갖춘 하나의 견고한 성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를 이처럼 견고한 요새 성읍에 비유하므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가 얼마나 강한 자, 당당한 자로 설 수 있는지, 그야말로 그가 어떠한 성보다도 견고하여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아무리 막강한 지도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성일지라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면, 그 성은 곧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전달한다.
비록 예레미야가 혈혈단신이며 극히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였지만, 이처럼 그를 견고케 하시는 하느님의 역사가 있었기에 그는 40 여년 동안 자신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예레15,20.21).
한편,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강하게 하시되, 이처럼 요새 성읍, 청동 벽, 쇠기둥이 되게 하셨다고 언급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부 유다 백성들의 죄악이 그만큼 완고하고 못됐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19)
8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권고와 함께 계시된 구원의 약속이 19절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다. 특히 본절에서 제시된, 하느님께서 에레미야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과 그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은 예레미야가 고난을 당할지라도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의 근거로 제시된다.
이러한 약속은 예언자 에레미야의 생애에 만만치 않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가 겪은 여러 고난을 오히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으며,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예레미야의 한숨과 눈물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심정을 토로하는 도구로 바꾸셨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고난과 슬픔 중에도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셨음을 보여 준다.
그가 겪은 온갖 수치와 모욕의 현장, 고난의 현장 가운데서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를 강하게 하셨고, 그를 구원하셨으며, 예언자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으로 역사하셨던 것이다.
08월 29일 금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네 사람이 나옵니다.
이들에 대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첫 번째는 헤로데 임금으로, 한마디로 ‘부패한 사람’입니다.
그는 부정과 부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부도덕함 말고도 많은 부정을 저지르며 권력을 지키고 키우려는 열망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헤로데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입니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앙심(증오)은 암흑의 힘으로, 마귀의 호흡(숨)과도 같습니다. 마귀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집요하게 질투하며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헤로디아는 증오의 영에 사로잡혔습니다.
세 번째는 헤로디아의 딸(소녀)입니다. 그는 허영심에 가득 찬 춤꾼입니다.
술에 취한 헤로데는 그의 춤을 보고 ‘무엇이든 모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하는데, 이는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 한 말과 같습니다(마태 4,9 참조).
이렇듯 이들의 뒤에는 언제나 악마가 있습니다.
여인에게 증오를, 소녀에게 허영심을, 남자에게 부정과 부패의 씨를 뿌려 키워 갑니다.
그리고 네 번째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이 나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자리를 내드리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없어진 위대한 순교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랑과 진리와 다른 이들 안에 온전히 자기 인생을 내줌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갑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하여 살면서 자기 안에 생명을 가두려 하는 사람들, 곧 부패한 임금, 증오에 갇힌 부인, 허영심에 사로잡힌 소녀는 결국 허무 속에 자기 인생을 말라 버리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위대한 증언 앞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봅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제1독서(예레1,15-19)
15 이제 내가 북쪽 왕국들의 모든 족속을 불러들일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들이 와서 저마다 제 왕좌를 예루살렘 성문 입구에 차리고, 그 주변 모든 성벽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 맞설 것이다. 16 그러면 내가 그들(이스라엘)을 거슬러, 그들이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며, 자기네 손으로 만든 것들을 섬긴 모든 죄악에 대하여 심판의 말을 내리겠다.
= 하느님의 뜻인 말씀, 계명을 저버리고 인간의 말, 계명으로 들어 행한, 하느님이 아닌 다른 신(하느님)으로 섬기는 그 잘못된(죄) 신앙을 심판하신 다른 것,
북녘의 재앙을 불러들여서~
앞절 13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나에게 내렸다.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하였다. “끓는 냄비가 보이는데, 그것은 북쪽에서부터 쏟아질 듯 기울어져 있습니다.”
= 끓는 냄비, 모두 멸망의 뜨거운 재앙을 받게된 것(이 시대의 징표로 본다)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 허리를 동여매고~
(에페6,14)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 인간의 중심(허리)의 삶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위한 하늘의 진리, 의로움의 갑옷, 곧 십자가의 복음으로 무장을 하고 그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곧 나무 하나의 희생, 그 하느님의 계명을 (탈출15,25) 사람의 말(계명)로 바꾸어 버린 그 세상의 죄의 심판, 그 모든 것이 죄임을 그 떨 수밖에 없는 힘든 말을 하라 하시는 것이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죽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마르1,14-15)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복음, 말씀이신 분이 인간의 육을 입고 오셨다(요한1,14) 그들의 죄로 죽으시어 다시 살리시기 위해~ 오늘 그 예수님을 진리의 복음, 구원,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늘의 생명을 받아, 하늘을 살게 되는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 지도자, 사제들의 가르침으로 모든 하느님의 백성(성도, 신자)이 인간의 계명으로 헛된 신앙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 묵상했듯이~ 구원은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慈悲) 그 은총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로마3,24) 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은총(은혜)으로 주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지는 선물이다. 곧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구원, 생명, 그 예수님을 받는 것(믿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例 (사도3,6) 6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태생 불구자의 치유는 그 어떤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져 받았다.
(요한5,1이하~ 벳자타 못가의 38년 병자 또한 그의 어떤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냥 치유 받았다.
(마태8,5이하~ 백인대장의 종(아들)의 치유 또한 그의 어떻한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한 말씀이 치유(용서) 하심을 믿는 그 믿음 때문이였다.
(마르2,1이하~ 중풍병자의 용서, 그 또한 그의 어떤 행위가 아닌 그를 데리고 온 네사람의 믿음으로 용서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듯 인간은 하느님의 선물 곧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의 용서로 생명을 받아야 할 존재이지, 스스로의 열심이 용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레13,23) 23 에티오피아 사람(흑인)이 자기 피부색을(희게), 표범이 자기 얼룩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럴 수만 있다면 악에 익숙해진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 인간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다. 성경은 ‘세상이 악하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라고 한다.(시편141~ 53,2~ 로마3,12~)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왜?)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 하느님(성령)께서 일 하십니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멘.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복음 (마르6,17-29)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28~29)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 살로메는 드디어 참수당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가져다가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준다.
여기서 '그것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 it)은 3인칭 단수 대명사 여성 목적격이다. 이 대명사의 성(姓)이 여성인 것은 잘려나간 '머리'를 가리키는 명사 '케팔레'(kephale)가 여성 명사이기 때문이다.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헤로디아에게 갖다 줌으로써 그렇게도 세례자 요한에게 분노하며 죽이고자 했던 헤로디아의 소원은 마침내 성취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쟁반에 담겨져 있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보자마자 헤로디아는 그녀의 긴 머리핀(바늘)을 뽑아 세례자 요한의 혀를 수없이 찔러서 뽑아 버렸다고 한다. 사악한 여인은 자신의 비행을 고발하는 진리와 정의의 혀를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의(義)를 말하다가 비록 참수당했지만, 세례자 요한의 그 정신은 복음에 그대로 기록되어 대대로 칭송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의 시체를 거두어 무덤에 모셨지만, 제자들은 사랑하는 스승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목이 잘려나가고 없는 몸뚱아리만 장사지내야 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선구자이며 최후의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루카7,28)은 30여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공적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성 요한 세례자
문장은 가냘픈 십자가(Slender Cross)이며,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God is gracious)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1월 7일), 요한 탄생 대축일(6월 24일), 수난(8월 29일), 요한의 잉태(9월 24일)등을 축일로 지내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에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수난 축일이 언제부터 탄생 축일과 분리되어 기념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성 예로니모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하루거리 떨어진 세바스테에 그 유해가 안장되고 성전을 세움으로써 공식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성 요한 세례자는 사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아들이며, 예수의 사촌(루카1,36)이다. 세례자로 불리는 것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권위에 의해서 세례의 새로운 의식, '회개의 세례'를 가르쳤기 때문이다.(마태 3,13-17, 마르1,9-11, 루카 3,21 이하).
그의 출생, 석녀(石女)의 잉태, 어머니 태내에서 이미 성령이 충만함, 할례(割禮), 명명(命名) 등이 천사(가브리엘)에 의해 성전(聖殿)에서 그의 부친 즈카르야에게 고해졌다(루카1).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서 예수에 의해 증명되고(루카 7,28) 태어나면서 부터 평생을 나지르 사람으로서 바쳐진 수행자(修行者)이며, 메시아의 선구자(先驅者), 선지자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루1,17, 마17,12 이하).
청년시절에 황야에서 기도와 고행으로써 자신을 준비하고 부름 받을 때를 기다렸다(루1,80).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재위:14∼37)의 재위 15년째인 28년에 하느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베타니아의 요르단 계곡으로 갔다(요한 1,28).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마태 3:2), 죄를 용서받기 위해(루카 3,3) '회개의 세례'를 받을 것을 전달하였다.
요한의 세례에는 원죄(原罪)를 사해줄 힘은 없다. 이 세례는 내심의 영성(靈性)을 상징한 것이며, 이것을 받으려면 내심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이 세례는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회개에 의한 준비단계로서, 죄의 고백도 포함되어 있었다(마태 3,6).
그는 선교(宣敎)의 초기부터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면서, 장차 오게 될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다(루카 3,15-18, 요한 1,19-28). 그는 장차 오게 될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마련하였다.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사양 한 요한에 대해, 그리스도는 "모든 정의는 완수해야 한다"(마태 3,14) (예수는 죄인인 인류의 대표자로서 죄인처럼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것은 구세주로서 완수해야 하는 의무라는 뜻)고 말하고 요르단 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영세하였다.
2025년 08월 29일 금요일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마르코 복음서에서 유일하게 예수님과 관계 없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마태오 복음서는 이 이야기를 예수님과 연결하는데,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마태 14,12)라고 전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와 견주어 보면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마르코 복음서에서도 요한의 죽음은 중요합니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마르 9,12-13)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의 관점에서 구약의 엘리야는 신약의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러나 그는 화해의 직무를 완성하지 못한 채 비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은 신약의 인물이면서 구약의 인물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헤로디아, 헤로디아의 딸을 살펴봅시다.
평소 요한을 의인으로 생각하여 그의 바른말을 불편해하면서도 의식하던 헤로데는, 생일잔치 때 춤을 춘 헤로디아의 딸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한편 교활하게 자신의 딸에게 요한의 머리를 청하라고 이른 헤로디아는 목표를 이루려고 온갖 수단을 정당화하는 인물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요한의 목이 베이는 데 자기 잘못은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 참극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6,16)라고 읊조리는 헤로데는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우유부단함과 두려움이 특징인 비겁한 인물입니다.
오늘날 헤로데와 헤로디아, 헤로디아의 딸은 누구인지요? 이 셋 가운데 내 안에서 누구를 찾을 수 있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8월 29일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
요한의 목을 베어, 머리를 쟁반에 담아
복음(마르6,17-29)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 그러나 마음에 품은 것은 기회, 곧 조건과 환경에 따라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집회37,16-17) 16 말은 만사의 시작이고, 모든 행동에는 계획이 앞선다. 17 마음은 변화의 뿌리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 품고 있던 앙심이 세상의 힘, 권력을 위한 욕망이 자녀를 이용하는, 자식을 망치는 결과로 드러난다. 오늘날 하느님을 알게 하는 공부보다 세상의 힘을 얻는 공부를 더 많이 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아 당황하며 들었던 두려운 말씀을 해결하지(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살다보면, 곧 성당에만 왔다갔다 하다 보면 결국엔 자신의 뜻으로 멸망으로 기울게 된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 헤로데도 그의 아내 헤로디아도 그리고 그의 딸도 모두 영원한 멸망,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 안에 앙심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두려워 당황하며 들었던 말씀’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숨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구원, 그 하느님의 십자가의 계약, 약속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씀 안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땅, 그 능력 없고, 힘없는 빈 땅을 위한 창조 사흗날의 씨의 죽음으로 얻는 구원, 안식, 자유, 그것이 진리다. 즉 죄인들 속으로 씨(후손)이신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그 죄인들의 죄, 곧 마음속 앙심, 속셈, 두려움을 모두 품고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심으로, 그 죄인들에게 의, 거룩, 생명을 주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께서 진리시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세상의 힘,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세상의 재물을 제일 많이 가진 ‘빌게이츠’도, 세상의 물질문명을 발전시킨 과학자들도, 세상이 모두 존경하는 노벨상을 받은 그 모든 위인들도, 그 누구(아무)도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피로 씻기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진리’로 믿지 않고, 세상의 힘인 재물, 권력, 의로움, 영광을 선, 진리, 십자가의 원수로 살고 있기에 그 세상의 힘을 부수신다. 그래서 두렵고 황당한 말씀이다.
(마태10,34.)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루가12,51)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하늘의 평화를 주시기 위한 칼(刀)이며 분열이다. 살리시기 위한 자비다. 그 자비에 감사, 찬송 드리는 것이 성모신심이다.(루가1,46-55) 나는 품은 앙심, 두려움을 밖으로 드러낸다. 더럽고 추한 죄인임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 처럼 나도 심판하지 않는다. (1코린4,3-5참조) 내 속에 내 죄를 대속하신 그 진리의 씨, 말씀 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믿기에......
(에페5,13-16)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15 그러므로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 두려움을 주는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유를 주시는 말씀 안에 머물라’는 것이다.
(1베드1,23)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지극히 높으신 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한 낮아짐으로 하늘의 안식, 평화가 현실이 되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