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30일 토요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탈렌트의 비유 (마태25,14-30)
제1독서<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1테살4,9-11)
9 형제애에 관해서는 누가 여러분에게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느님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0 사실 여러분은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에게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더욱더 그렇게 하고,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화답송>시편98,1.7-8.9(◎9) ◎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러 주님이 오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 소리쳐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강들은 손뼉 치고, 산들도 함께 환호하여라. ◎
○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신다. ◎
복음<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14-30)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제1독서 (1테살4,9-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11)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1절과 12절에서 자기 일에 충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라고 권고한다.
사도 바오로는 부지런하게 일할 것을 전에도 권고한 적이 있었는데, 본문과 테살로니카 후서 3장 11절과 12절에서 거듭하여 권고한다.
이러한 거듭되는 권고는 당시 테살로니카 교회에 주님의 재림이 그들 세대에 바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하여 신자들 사이에 생업의 포기와 같은 현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해 준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일상 생활에 매여 있을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과 신앙을 지키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시한부 종말론을 외치는 집단에서 직장과 학교를 버리고 오직 그날만을 기다리며 집단 종교 생활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테살로니카 교회가 시한부 종말론을 믿는 사교 집단은 아니었지만, 당시 팽배해 있던 임박한 종말에 대한 의식으로 말미암아 일부 신자들이 생업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 자들을 포함한 모든 신자들에게 바오로는 자기 손으로 힘써 일할 것을 권고한다.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1절은 등위 접속사 '카이'(kai)로 시작되고, 네 개의 현재 시제 부정사로 구성되어 있어,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0절의 '더욱더 그렇게 하고'라는 부정사와 더불어서 '권고합니다'라는 직설법 동사에 걸리는 문장이다.
따라서 4장 11절은 4장 10절에 논리적으로 연속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조용히 살도록'에 해당하는 부정사 '헤쉬카제인'(hesychazein; to be quiet)의 원형 '헤쉬카조'(hesychazo)는 '고요하다', '잠잠하다'라는 의미이다(사도11,18).
여기에서는 조용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 즉 이리저리 동요되지 않고 차분히 자기 중심을 지키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말하자면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흥분되고 들떠 일상적인 일을 내팽개치는 자들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 일에 전념하고'라는 표현에서 '이디아'(idia)는 '자기 자신에게 속한', 또는 '다른 사람과 조금도 상관없는 자기 자신만의' 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프랏세인 타 이디아'(prassein ta idia; to mind your own business)는 다른 사람의 일에 무례하게 간섭하지 말고 자기의 일에만 전념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당시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일상적인 일을 저버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당시 교회 직원이 아닌 몇몇 형제들이 교회 운영권에 간섭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암시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사도 바오로는 그릇된 종말 사상을 퍼뜨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자들에 대해 '자기 일에 전념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이 표현은 당시 그리스 세계의 노동관을 반영한다.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손으로 일한다는 것은 노예들이나 하는 것으로서 자유민들은 그것을 천박하게 여겼다.
따라서 이교도에서 회심한 자들은 이전의 이런 사상을 버리기 힘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본문은 바로 그런 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권고이다.
더구나 '(제)일을 하십시오'로 번역된 '에르카제스타이'(erqazesthai)가 '힘써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힘쓰며'로 번역된 '필로티메이스타이'(pillotimeisthai)의 원형 '필로티메오마이'(pillotimeomai)는 '좋아하다','사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필로스'(pillos)와 '명예'를 의미하는 '티메'(time)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본래 '명예를 좋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점차 '명예심의 동기로부터 어떤 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하기를 열망하다'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본절은 부정사 목적격을 동반한 명령적 부정사로 쓰였으므로, '~하기를 열망하다'는 뜻으로 번역된다.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지난 이틀 동안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인의 자세에 관한 두 비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을 떠나며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긴 주인에게 충실하였던 종의 모습(그제 복음), 그리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신랑을 맞이하려고 등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였던 다섯 처녀의 모습(어제 복음)은 ‘깨어 있는’ 신앙인의 표상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같은 주제를 심화하는 세 번째 비유 이야기를 듣습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주인의 재산을 맡게 된 종들은 재산을 늘리도록 임무를 받는데, 그 실행 과정이 대조적으로 그려집니다.
탈렌트를 잘 활용하여 좋은 성과를 거둔 종들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에게서 ‘착하고 성실한 종’으로 인정받으며 더 많은 일을 맡게 됩니다.
반면에 땅에 그대로 묻어 둔 셋째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비난받고 ‘쓸모없는 종’으로 여겨져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우리는 셋째 종의 태도, 곧 자신이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이유를 주인에게 돌리는 모습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주인이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는 데에서 모으는 모진 사람이기에 두려워서 그러하였다는 그의 항변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주인이 그런 사람인 줄 알아서 정말 두려웠다면, 오히려 어떤 노력이든 더 기울여야 하지 않았을까요?
만일 그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겼다면 결과가 달랐을까요?
어떤 이는 그에게 맡긴 금액이 너무 적어서 성과가 없었을 것이라고 그를 두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한 탈렌트도 노동자 하루 품삯(데나리온)의 육천 배나 되는 굉장히 큰 화폐 단위입니다.
주인은 셋째 종의 태도를 정확히 ‘게으름’으로 지적합니다.
그는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에게 ‘탈렌트’를 주셨습니다.
탈렌트는 우리 분수에 넘치는 큰 능력과 은사들로, 주님께서 활용하라고 맡겨 주시고, 결실을 거두는 도구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게으른 종이 아닌 성실한 종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들보다 너무 적게 받았다는 실망감 때문에 지금 가진 것을 하찮게 여기거나, 그것을 땅에 묻어 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대금업자(貸金業者)-성령(聖靈)
복음(마태25,13-30)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깨어있음이 기름을 간직함이며 그 기름은 말씀의 깨달음과 성령임을 어제 배웠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 하늘나라의 재산, 하느님의 힘, 능력인 당신 영(靈), 말씀을 맡기심이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 능력에 따라~ *다섯 탈란트 - 구약의 모세 오경, 율법이다. *두 탈란트 - 신약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두 계명이다. *한 탈란트 - 사랑, 그 하나의 계명으로 주심이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힘인 사랑을, 말씀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섯, 둘, 하나로 주신 것이다. 병행 루가복음은 열사람에게 똑같이 하나로 주신다.(루가19,13)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 더 벌었다, 다른 차원(次元)의 다섯으로 더 깨달았다는 것이다. 율법의 진의(眞義), 율법 속에 숨겨진 하느님사랑, 그 하나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의 능력이 있기에 다섯으로 주신 것이다.
(2티모2,7) 7 내가 하는 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모든 것을 깨닫는 능력을 그대에게 주실 것입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 같다. 큰 계명인 사랑, 하나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사랑- 사람은 율법으로는 깨달을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외아드님을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 주시시어 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 더러운 우리 죄를 깨끗이 씻어 의롭게 하시어 구원하신 사랑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마음과 정신, 생명, 힘을 다하시어 우리 죄인들을 용서, 구원하신 그 사랑이다. 깨닫는 그 능력이 있기에 주신 것이다.
*능력- 예수님은 어떤 이에게는 청원, 기도를 요구하시고(마태8,2~) 어떤 이에게는 믿음의 고백을 요구하신다.(마태9,28~)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모욕적인 말씀을 하신 후 고쳐 주시기도 하시고(마태15,26~) 어떤 이들은 힘든 시련, 고난을 통해 용서, 치유, 구원을 위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도 하신다.(히브12,6-11)
각자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그분의 힘인 말씀, 성령을 믿는 능력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무조건적 은총(은혜)으로 치유와 용서, 구원을 주신다. 곧 벳자타 못가의 38년된 병자(요한5,1~), 태생소경(요한9,1~)등 그들에게는 능력이 없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고쳐주신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인 사랑으로 하신다. 그 사랑이 한 탈란트다. (고침을 받은 후에는 그 사랑, 말씀 안에 머물며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 사랑, 한 탈란트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사랑 안에 살게 되는 것이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 그 무조건적 사랑을 믿지 못한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저 의롭게 됨을,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짐을, 자신의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해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을 파는 수고로 고이 숨겨놓은 것이다. 곧 귀한 말씀, 성경책이니 집 한구석 좋은 자리에 고이 모셔둔 것이다.
한 탈란트- 그 무조건적 사랑을 받은 벳자타의 병자와 태생소경이 말씀 안에 머물지 않으면 빠질 수 있는 유혹이다. 그러면 처음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다.(루가11,24-26참조)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작은 일에 성실함? 깨닫기 전 다섯 탈란트는 작은 것, 곧 율법의 활용(공부)한 그 작은 일에 성실함이다. 그 율법(작은)의 완성인 사랑을 깨달았으니 그 하느님의 큰 사랑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종이 주인과 하나가 되는 기쁨이다. 죄인이 의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기쁨이다.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깨닫기 전(前) 두 탈란트, 그 두 계명이 하나, 사랑임을 깨달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사랑(아가페)의 새 계명임을 깨달았으니(요한13,34) 그 새 계명으로 모든 종들이 주인과 하나 되는 기쁨을 함께 나누자 하시는 것이다. (이 두 탈란트를 받은 사람과 병행 복음인 루가의 둘째의 종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심지 않은데 에서 거두시는 분, 창조 사흗날, 씨의 희생, 그 사랑을 오해한 곧 말씀을 공부(활용)하지 않은 게으른 종이다.
창조 사흗날~
(창세1,11)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따에게 씨를 내라고 명령하셨다. 그대로 되었다. 무슨 수로 땅이 스스로 씨를 낼 수 있겠는가~ 씨가 스스로 땅에 들어가 썩어져 열매(씨)를 냈다는 숨은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곧 땅은 사람인 것이고, 씨(제라-* 후손)는 예수님으로 땅인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늘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셔서 죄인(땅)들이 씨를 맺는 것으로 해주신, 곧 우리 죄인들의 구원, 기쁜소식, 복음(福音)인데 공부(工夫)하지 않은 게으른 종은 소문으로 들은, 도덕과 윤리, 상선 벌악의 두려운 하느님으로 오해 하고 있는 것이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 이자(利子)를 받을 수 있는 대금업자? 다른 차원으로 더 깨달을 수 있게 해줄, 곧 이자를 줄 수 있는 대금업자는 성령(聖靈)뿐이시다. 말씀과 함께 맡기신 하느님의 영, 성령이시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1요한2,27)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보호자 성령께 청(請)하지도, 의탁 하지도 않은 것이 악(惡)하고 게으른 종이다. 그러면 인간의 뜻으로 깨닫게 되니 헛 것이 된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한 탈란트, 그 진짜를 가진 것인데, 그 가진 것을 모르면 갖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사랑, 생명, 자비, 용서,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성경 속 그 하느님의 약속, 말씀을 모르니 계속해서 ‘용서해 달라, 구원,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미사하고, 기도하며 헛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도덕과 윤리로 보기 때문이다. 사람의 규정과 교리중심의 신앙을 살기 때문이다. 우리를 살게, 깨어있게 하는 기름, 곧 맡겨주신 말씀과 성령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쫒겨 난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이 부분도 루가복음과 다른 뜻이다)
= 본 25장 시작,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성령으로 배웠고, 마태복음은 기름을 혼인예복으로 전했고, 그 예복을 입지 않은 이가 하늘 잔치에서 쫒겨 났음과 같은 것이다.(금요묵상 참조) 기름- 성령, 예복을 입지 않은 이는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로마8,9)
*말씀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섯, 둘, 하나로 주셨지만 그들(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우리에게 성령이 안 계시면 똥자루에 불과하다“ -박홍사제-
☨보호자 성령님! 함께 하심오로 늘 깨어있게 하시니~ 모든 말씀, 계명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깨달아 생명의 존재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복음(마태25,14-30)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5~29)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주인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주인을 두려워했다. 그는 받은 탈렌트에 대한 상실의 두려움과 투자로 인한 실패의 두려움을 가진 채, 주인에게서 받은 자본금을 투자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진 그에게 남은 것은 자본금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기라도 했더라면, 거기에서 이자라도 얻을 수 있었을텐데, 그는 이자 한 푼 얻을 수 없는 땅에 그 돈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원금을 보존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나중에 빼앗겨 버리고 만다.
그는 25절에서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로 받으십시오'로 번역된 '에케이스'(echeis; here you have)는 '가지다', '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의 현재 2인칭 단수 동사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당신의 것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데, 무슨 불평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라는 뉘앙스를 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주인이 결코 손해 본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통해 자신의 무책임과 잘못을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 내뱉은 무책임하고 무례한 표현이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면책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악하고'로 번역된 '포네레'(ponere; wicked)의 원형 '포네로스'(poneros)는 '도덕적으로 사악한'이라는 의미외에도 '고통과 괴로움을 일으키는'이라는 의미(묵시16,2)를 지닌 형용사인데, 종이 나쁜 관리인 정신을 가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로 인해 주인에게 괴로움을 끼쳤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더군다나 그는 '게으른' 종이었다.
여기서 '게으른'으로 번역된 '오크네레'(oknere; slothful; lazy)의 원형 '오크네로스'(okneros)는 진보가 늦고 지체되며 나태한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니까 이 게으른 종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주인이 기대한 진보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아르귀리아'(argyria; money)의 원형 '아르귀리온' (argyrion)은 '은'(silver)을 의미하는 명사 '아르귀로스'(argyros)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은전', '은조각'을 의미한다(사도3,6; 루카19,23).
그 당시 화폐는 주로 은전이었는데, 주인은 그 은전으로 된 탈렌트를 '대금업자들에게' 맡겨두었다가 이자를 받게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트라페지타이스'(trapezitais)의 원형 '트라페지테스'(trapezites)는 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거나 고객의 예탁금을 보관한 후 이자를 지불하는 사람, 즉 '환전상'이나 '은행가'를 뜻한다.
또한,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단어와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단어 둘 다 복수형으로 쓰였으므로, 주인인 한 탈렌트나 되는 많은 돈을 여러 대금업자들에게 분산 투자했기를 내심 바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탈렌트'에 해당하는 '탈란타'(talanta; talents)의 원형 '탈란톤'(talanton)은 원래 중량을 다는 '천칭', '저울'이라는 뜻의 단어였지만, 중량의 측정 단위와 화폐 단위로 발전했다.
탈렌트는 무게로는 약 34kg에 해당하며(탈출38,25), 돈으로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에 해당된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1탈렌트는 노동자가 약 20년 동안 벌어야 하는 거액이었다.
그리고 영어에서 '재능'을 의미하는 'talent'라는 단어가 희랍어 '탈란타'에서 유래한 것이며, 여기서의 '탈란타'는 '재능'보다는 '사명'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이자'로 번역된 '토코'(toko; interest; usury)의 원형 '토코스'(tokos)는 '산출하다', '낳다'를 의미하는 동사 '티토'(tit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원래 '출산된 것'이라는 뜻이다.
돈의 이자를 '토코스'(tokos)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은 원금에서 증식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자율은 연리 8%에서 48%의 고리(高利)까지 다양했다.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돈을 빌려주더라도 이자를 받지 못하게 규정했지만(신명23,19), 타국인과의 거래에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하였다(신명23,20).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동족간의 거래에서도 이자를 받는 일이 거의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예로 들어 '이자' 이야기를 한 것이며, 동족간 돈 거래에 있어서 이자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또한, '돌려받았을 것이다'로 번역된 '에코미사멘 안'(ekomisamen an)은 현재의 의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의미로 '받았어야 했다'(should have received)는 뜻이다. 그러니까 실제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서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겠다'
이 구절의 선언은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이 악하고 게을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데 대한 응당의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종은 적극적으로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혹한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주인이 원래 의도했던 목적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 의해 실현되지 않았어도, 그 목적을 다른 방법을 통해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사명을 성실하게 잘 완수한 자에게는 당연한 보상 외에 또 다른 기대치 않았던 보상을 더해 준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조리한 현상 가운데 하나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옹호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28절의 징계적 선언이 주인의 자의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영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마르4,25).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다.
각 종들에게 맡겨진 탈렌트는 그들에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양이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기에 알맞은 탈렌트를 맡기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받은 사명과 재능과 은사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적든 많든, 자기비하나 열등감에 빠지거나 교만해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1코린15,41).
하지만, 우리는 때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어떤 열매를 원하신다고 잘못 판단해 버리고, 하느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를 사용한번 해보지 못하고 묵혀두지는 않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결과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부여된 봉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활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그의 은혜가 넘쳐나며 그의 심령도 성령충만으로 부요해질 것이지만, 반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주어진 봉사의 기회를 하찮은 것이라고 무시하며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그 은사를 상실해 가며, 더 이상 영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간다는 것이다.
2025년 08월 30일 토요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마태 25,15)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씩 맡깁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종들과 정산을 합니다.
두 종은 재산을 두 배로 불렸지만, 세 번째 종은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25,24-25)라고 대답하는 종은 주인에게 꾸지람을 듣습니다. 오늘 비유는 재산을 불리는 이야기도, 갑질하는 직장 상사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는 명확하게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주어진 탈렌트는 그리스도인들 저마다에게 주어진 능력과 재능, 선한 의지와 장점을 가리킵니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누가 나보다 앞선다고 경계하며 열등감이나 패배 의식에 젖어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고자 저마다 오늘 충실하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을 격려합니다.
“더욱더 그렇게 하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1테살 4,10-11).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온 신경을 쏟는다면, 제아무리 잘해 보아야 나 또한 그들 정도의 수준에 머물 것입니다.
하향 평준화이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저마다 맡기신 탈렌트만큼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주어진 탈렌트를 두 배, 네 배, 열 배로 불려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탈렌트의 비유(比喩)
어제의 ‘어리석은 처녀와 성령을 간직한 슬기로운 처녀의 다른 比喩다.
복음(마태25,14-30)
14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 現世의 삶 속에서 ‘주님이 안 계신데 계신 것처럼 살고 있니?’ 오늘 물으신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 시간을 들여 일을 했다는 것이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리들은 주님 앞에서 셈을 하게 된다. 나를 포함하여 전부~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더 벌었습니다.’ 곧 다른 차원의 것으로 ‘더 깨달았다’는 것이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작은 일, 곧 땅(육)의 것을 활용(일)하여 큰 일, 하늘의 영(靈)의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은 실체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말씀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더 벌었다. 다른 차원의 것으로 깨달았다’의 의미다. 그것이 이미 ‘주인(주님)과 하나 된 기쁨의 상태’인 것이다.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모두 ‘슬기로운 종’들이다.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 대금업자? - 주님의 재산을 불려줄 대금업자가 누굴까? 다른 차원으로 더 벌게, 더 깨닫게 해 주시는 성령(聖靈)이시다.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실체를 깨닫게 해 줄, 말씀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진리)을 깨닫게 해 줄 성령이시다.
그러니까 한 탈란트를 땅 속에 숨겨 두었다는 것은 성령도 모르고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모르고, ‘성령께 의탁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聖經)은 책장 속에 고이 모셔 놓고 자신의 소원을 위해 열심히 성당에만 다녔다는 것이다. 곧 시간을 내서 말씀 안에 머무르지도, 공부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고 악하고 게으르다’ 하신 것이다. 땅(육신)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일과 공부를 하지 않는가.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 숫자 하나(1)는 숫자 열(10)과 함께 “충만, 완성”을 뜻한다.
그러니까 한 탈란트를 받은 것이 ‘충만, 완성’임을 깨달았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활용하는 일,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충만, 완성’의 한 탈란트를 간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 ‘한 탈란트의 능력, 힘’을 모르고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하느님의 뜻을 더 ‘넉넉히 깨달아 간다.’는 말씀이며~ 갖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갖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빼앗긴, 없는 것’임을 말씀하심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땅의 것으로 하늘의 재산, 곧 말씀(씨)을 깨달아 간직하지 못했으니 씹을 말씀이 없어 이(齒)를 갈 뿐이다. 성령(聖靈)의 일하심을 모르니 , 믿지 못하니, 하느님도 올바로 알지 못하고 엉뚱한 왜곡된 다른 하느님을 알고 있는 것이다.
곧 심지 않은데 에서 거두시는 모진 분으로, 뿌리지 않은데 에서 모으시는 분으로, 그래서 두려운 하느님으로, 창조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창세1,11)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사람의 눈으로, 문자로만, 보면~ 땅, 능력, 힘없는 그 빈 땅에게 씨는 주지도 않으시고,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내라고 명령하시니 ‘모진 하느님’으로 보인다. 그래서 ‘보호자 성령 ’께 의탁 해야 한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면 능력, 힘없는 땅 속으로 씨가 땅을 위해 스스로 들어가 썩어져서 푸른 싹을 돋게 하고 나무로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곧 씨(후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으로 땅의 죄인들을 위해 그들의 죄로 십자 나무에서 죽으시고 하늘의 용서, 생명이라는 열매를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자비, 구원의 복음으로 깨닫게 된다.
(1요한3,9) 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 하느님의 씨(그리스도)가 사람의 죄를 품어 삼켜 없애 버리셨기에 그 사람에게는 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 이래 모든 죄악보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사랑, 자비가 더 크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만 믿을 수 있는 하느님의 지혜, 구원의 진리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저희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희 안에 용서, 생명의 씨가 계심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