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8일 목요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깨어 있어라. (마태24,42-51)

제1독서<사랑을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기를 빕니다.>(1테살3,7-13)
7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 모든 재난과 환난 속에서도 여러분의 일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 때문입니다.
8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9 우리가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10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1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기를 빕니다.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화답송>시편90,3-4.12-13.14와 17(◎14) ◎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가 기뻐하리이다.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복음<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마태24,42-51)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또는,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1요한 4,7-16)와 복음(마태 23,8-12)을 봉독할 수 있다.>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제1독서(1테살3,7~13)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0)
사도 바오로와 그 일행들이 테살로니카 교인들을 위해 평소에 하는 기도이며, 특히 테살로니카 교인들이 기쁨을 제공해 준 데 대한 감사와 보답의 차원에서 얼마동안 계속된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테살로니카 1서 3장 11~13절에 나온다. 여기서 '밤낮으로'에 해당하는 '뉙토스 카이 헤메라스'(nyktos kai hemeras; night and day)는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에 해당하는 '데오메노이'(deomenoi; praying) 역시 현재분사로서 특별한 시간의 제약없이 계속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테살로니카 교인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사도 바오로와 일행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아주'로 번역된 '휘페렉페릿수'(hyperekperissou; earnestly)는 '~을 뛰어넘어'의 '휘페르'(hyper), '~밖으로'의 '에크'(ek), 그리고 '보통이 아니게'라는 뜻의 '페릿소스' (perissos)의 합성어로서 '보통을 훨씬 초월하여 엄청나게'라는 뜻이다.
이것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을 만큼의 정도를 강조하는 단어인데,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테살로니카 교인들을 위한 자신들의 중재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테살로니카 1서 3장 10절의 후반절은 사도 바오로 일행이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첫째는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이미 테살로니카 1서 2장 17절과 18절, 3장 1절에서도 말한 적이 있다. 사도 바오로와 그 일행은 사탄의 방해가 있는 와중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테살로니카 교인들이 나아갈 좋은 길을 얻도록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믿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부족한'에 해당하는 '휘스테레마타'(hysteremata; what is lacking)은 '휘스테레마'(hysterema)의 복수형으로서 '어떤 상태에 미치지 못하여 부족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사도 바오로는 지금까지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믿음이 마치 완전한 것처럼 말하다가 (1테살1,3.8; 3,6~8) 갑자기 여기서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을 한다.
앞에서의 이야기는 그들의 믿음이 견고하다는 것이었지 완전해서 더 이상 훈련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들의 믿음은 환난과 시험을 극복해 낸 견고한 것이었지만 아직도 성장의 과정에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채워주다'는 의미로 번역된 '카타르티사이'(katartisai; may perpect; may supply)의 원형 '카타르티조'(katartizo)가 훼손된 부분을 수선하거나 남은 부분을 하나하나 채움으로써 온전케 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테살로니카 교인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이 정도면 됐다'라고 안심해도 좋은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누구도 믿음의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많은 성당 제의실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주님, 오늘 제가 드리는 이 미사가 저의 첫 미사이고 마지막 미사인 것처럼 봉헌하게 하여 주소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주인의 집안 식솔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는 종입니다(45-46절 참조).
오늘 복음이 말하는 충실한 그 종은 바로 우리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돌보고 섬길 주님의 “집안 식솔”(45절)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본분을 망각하고 우리에게 그들을 맡겨 주신 하느님마저 잊고 살아갑니다.
하느님을 공경하고, 우리에게 맡기신 식솔들을 돌보는 대신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고 세상의 우상들을 쫓아 살고 싶은 유혹을 겪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으로 ‘깨어 있음’을 꼽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게을러져 일상의 평범함 속에 우리 자신의 영성이 매몰되고 사라지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프란치스코)입니다.
기도는 깨어 있으려고 우리 마음의 등불을 켜 두는 일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웃과 형제들을 돌보려는 마음이 식어 갈 때마다 기도는 차가워진 그 열정을 다시 데워 줍니다.
이처럼 기도는 언제나 우리를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다시 데려가 줍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살고자, 그리고 언제나 깨어 있고자 오늘도 기도합시다.
사랑으로 형제들을 돌보며 기쁨으로 만나 뵐 주님을 기다립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영원히 기억해야 할 하느님의 약속,
(마태24,42-51)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 사람이 생각하는 때, 곧 사람의 방법(길)으로 기다리는 그때에 오시지 않으신다는 것, 그러니 깨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생각, 그분의 뜻을 잘 아시는 성령을 모시고(믿고) 그분께 의탁하는 삶인 것입니다.
(1코린2,10-11)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마태25,1-13) 다섯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준비했고 다른 다섯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준비 못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잠들어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깨어 있었다고 하신다.
그것은 등잔, 곧 교회를 다니면서 기름-성령을 받은(믿는) 그들이 깨어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듯 성령께 의탁하는 삶이 깨어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 성령을 받아들이지 못한, 믿지 못하는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로마8,9)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 구원의 양식을 주라고 하시는 것, 곧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양식을 주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것이 야고보서 2,14-18의 말씀의 양식을 주는 그 믿음의 실천인 것이다. 세상의 양식, 곧 인간의 사랑은 구원의 양식이 될 수가 없기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말씀)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 영적 생명을 위한 신앙생활이 아닌 육적 삶을 사는 , 곧 사람의 영을 죽이는(때리는) 그 세상에 섞여 그 세상에 취해 산다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세상의 양식, 공갈빵, 그 헛된 것으로써 씹을 것이 없어 이빨끼리 부디치는 그 지옥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거룩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짐을 말씀하신다.(1코린1,8-9참조) 곧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을 전가 받아 이루어지는 것, 그 십자가의 복음을 새김질 (씹는)하는, 기억하는~ 죄인들에게 거룩한 생명을 주신 그 하느님의 말씀(약속), 그 자비(慈悲),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로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것이 하늘나라인 것이다.(이사43,7참조)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새김질 할, 영원히 씹을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양식으로 간직하는 신앙을 삽시다. 아멘.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24,42-51)
"깨어 있으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2~44)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 지를 교훈하는 내용이다. '깨어 있으라'에 해당하는 '그레고레이테'(gregoreite; stay awake!)는 '지켜보다', '주의하다', '경계하다'라는 뜻을 가진 원형 '그레고류오'(gregoreuo)의 현재 명령형이다.
여기서 '지켜 보다'의 뜻은 단지 심판의 날을 눈을 뜨고 지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차리고 주의하여 그날을 예비하라는 의미이다.
무관심과 나태,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서 그날을 갑작스럽게 당황해 하며 맞이하지 말고 (1테살 5,3) 영적으로 각성하여 언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든지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된 상태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동사가 현재 명령형이라는 것은 그러한 상태를 항상 현재처럼 유지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도 항상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처럼 예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명심하여라'에 해당하는 '에케이노 데 기노스케테'(ekeino de ginoskete; but understand this; but know this)에서 '기노스케테'도 원형 '기노스코'(ginosko)의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보아 '그러나 너희들은 이것을 알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에 해당하는 '포이아 퓔라케'(poia phylake; at what time of ight; the hour of night when)에서 중요한 단어는 '퓔라케'(philake)이다.
'경점'(更點)으로 번역될 수 있는 '퓔라케'(phylake)는 망루나 성문에서 파수를 보는 병사가 경계하며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퓔랏소'(phylass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경계하는 것', '파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46회 용례 중에서 36회가 '감옥'(prison)으로 번역되었는데, 감옥은 보초병이 죄수들의 동태를 지키기 위해 잠자지 않고 경계 근무를 서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보호병이나 성(城)의 파수병이 경계 근무를 서면서 교대병과 교대하는 시간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하루의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를 '밤'으로 규정한다면, 이스라엘은 이 밤을 세부분으로 구분하였고, 로마의 지배 이후에는 밤을 네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사실 도둑이 들어오는 시간을 현실적으로 아는 것이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 시간은 온전히 도둑의 마음에 달려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재림하시는 시간을 도둑의 시간에 비유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역사의 한 시점을 선택하여 재림할 것인데, 당신이 몸소 심판을 주도하신다는 뜻을 계시한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for at an hour you do not expect, the Son of Man will come)라고 마태오 복음 24장 44절 후반의 동사가 미래적 의미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올 것이기'에 해당하는 '에르케타이'(erchetai)는 원형 '에르코마이'(erchomai)의 현재 시제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긴박한 일이며, 항상 현재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마태오 복음 24장 37절 이하에는 사람의 아들의 재림 때에도 노아 때처럼,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일과 같이 그럴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신의 영혼의 구원 문제나 생명의 말씀에 관심없이 이 땅에만 머리를 박고 세속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영원을 놓칠 수 있는 가능성이 100%이다.
지구가 멸망하든, 태양계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든, 핵전쟁이 일어나든, 어느 분들이 에언한 것들이 그대로 내 눈 앞에서 이 지구상에 이루어지든 우리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처럼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어야 한다.
주님 재림 시기의 불(不)예측성처럼 나의 개인적 죽음의 시간도 불(不)예측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고, 언제 주님께서 오시든지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문제는 그런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났을 때의 나의 영혼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주님 심판 대전에 할렐루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러면 미리미리 우리 영혼이 은총의 지위를 회복하여야 하고, 그 은총의 지위를 잘 관리해야 하고, 먼훗날 우리들의 모습속에서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 예수님의 모습과 성모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뻐하시고 안아주실 수 있도록 그분 뜻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2025년 08월 28일 목요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요?
한곳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운 뒤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오해와 비난, 박해와 매질, 감옥살이와 난파, 강도나 짐승의 습격 등 시련과 환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보람도 느낍니다.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세운 이방인 교회 공동체들이 믿음 안에서 잘 살아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기쁨을 이렇게 나타냅니다.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1테살 3,8-9)
오늘 복음은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기다리는 집주인과, 주인이 맡긴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종의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인은 늘 깨어 준비하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 종말론적 기다림은 저마다 주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 나갈지 고민하도록 이끕니다.
오늘 기념하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삶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방탕한 삶을 살며 마니교에 심취하였던 그는 어머니 모니카 성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덕분에 회개합니다.
그 결과 주교로 서품받고 이단을 물리치며 교회를 수호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맛 나는 곳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거창하고 대단한 업적들을 쌓거나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해서가 아니라, 되풀이되는 소소한 일상 가운데 언뜻 하찮고 작아 보이는 일들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봅시다.
당신 자녀들의 작은 노력을 헤아리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좋은교회] 마태복음 24장](https://search.pstatic.net/common/?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NDA4MTVfMjAg%2FMDAxNzIzNjg4NjQ1MTIy.eYoPZVM6GHpmQ4OT4elektaRHu7bniKTLMJltqpKxwQg._JsSmf72_zAEbv5uVCxMspzHZTGnNIN3A3rpnRSR-1Mg.JPEG%2F%25B8%25B6%25C5%25C2%25BA%25B9%25C0%25BD25%25C0%25E5.jpg&type=a340)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사도여!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싶습니다.
복음(마태24,36-51)
36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
= 인간의 지혜, 의지, 노력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날과 그 시간’이다. 아버지의 뜻을 아시며 통찰하시는 성령님만이 아신다.(1코린2,10)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 일상의 인간들의 삶이다.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 뜻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나라, 뜻에 정신이 팔려 살았다는 것이다.
곧 뱀의 유혹에 팔려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교만으로~, 성경은 그것을 어둠의 헛되고 헛된 삶, 죽음, 죄악이라 한다.
(갈라3,22) 22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들에서 농사지어 맷돌질로 일용 할 양식을 구하는 일을 할 때, 곧 구원의 양식을 구하는 신앙을 살 때 선과 악, 그 두 법으로, 곧 옛 계약을 행하며 ‘의롭다’하면 땅속에 놔두시고, 선과 악을 하나로, 곧 선이 악을 품고 죽어 용서, 생명을 주시는 ‘피의 새 계약’을 믿어 ‘의롭다’하면 ‘하늘로 데려 가신다’는 말씀이다. (로마3,20-25 10,1-4참조)
(히브10,9-10) 9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새 계약)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옛 계약)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새 계약)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 성령(聖靈)께서 증언(證言)하신다.(로마8,1-5 히브10,15-18참조)
42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때에 오시는 주님을 인간의 지혜, 능력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무슨 수로 깨어있겠는가? 불가능하다. 하느님의 뜻, 생각을 통찰하시는 성령께 의탁하면 된다.
곧 피조물인 인간들이 뱀의 유혹으로(거짓, 헛된 가르침) 자신들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자리에 앉아 하느님처럼 되어(창세3,5) ‘자신이 주인 노릇했던 그 교만의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영원한 보호자로 오신 성령께 내어 드리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시편121,3) 3 그분께서는 네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그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신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되새기며 믿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 제때의 양식, 구약의 때가 아닌 신약을 지나 성령의 때다. 성령께 의탁하여 선악의 옛 계약, 율법과 인간들의 계명,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용서, 생명, 구원의 양식, 진리로 깨달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은총 자체이신 성령님께 믿음을 낳게 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다.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인(1코린1,20) 세상의 의(義), 논리, 지혜를 가르침으로 주지도, 받지도 말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훌륭한 말, 지혜의 가르침을 해도 그 안에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들어있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이다. (1코린1,8 2,1-7참조)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 하느님의 모든 말씀을 구원의 진리, 지혜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신 것이다. 슬기롭고 충실한 종으로 이웃에게 올바른 양식, 곧 하느님의 말씀을 ‘도덕과 윤리의 사람의 말이 아닌 생명(生命)의 양식으로 먹여 살리도록’말이다.(요한4,14 1테살2,13참조)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 술(酒)은 밀과 누룩이 섞어져 나온다. 곧 하느님의 말씀에 인간들의 말, 도리를 섞어 인간들의 입맛에 맞춘 가르침으로(마르8,15) 인간의 마음을 만족하게, 취하게 하는 술같은 말씀으로 준다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헛된 죽은 씨의 말씀, 곧 살아있는 씨(진리)의 말씀이 없으니 이(齒)를 갈게 할 뿐이다.
(1베드1,23.25)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 말씀을 받아 진리로, 마음에 간직한 사람이 의롭고 정결한 사람이며, 그 에게 만이 새김질 할, 씹을 양식이 있는 것이다.(레위11,2 에페5,26참조)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하느님과의 만남이며 기도요 신자들의 특권이다.
그래서 가르침 중,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 해도 그 ‘사람의 의지, 노력, 열성을 본 받자’고 한다면 앞서 확인했듯, 인간의 능력 밖이기에 깨어있음이 될 수 없으며 ‘구원의 믿음과도 상관없는 헛것’이 된다. 신자들을 헛 갈리게 할 뿐, ‘무거운 짐으로 헛된 신앙을 살게 하는 것’이다.(로마10,1-3 에페2,7-9참조)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2티모4,3) 3 사람들이 건전한(진리)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1요한,4,1) 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말)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말)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사도17,11) 11 그곳 유다인들은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보다 점잖아서 말씀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 말씀을 모르면 헛된 가르침을 받아도 분별할 수가 없다. (*저희와 나누는 복음을 매일 받으면 가능하다.)
(요한12,21)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 “신부님!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제님! 교회 밖에서 이미 배우고 듣는 세상이야기, 정치, 경제,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 말고,(그런 이야기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싶습니다. 갈급(渴急)합니다. 목이 마른 줄도 모르는 영(靈)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의 마음과 삶에 충만 허소서. 아버지의 나라(진리)가, 아버지의 뜻(더 큰일)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