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2일 화요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루카4,31-37)
제1독서<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1테살5,1-6.9-11)
1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화답송>시편27,1.4.13-14(◎13)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복음<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제1독서(1테살5,1~6.9~11)
"주님의 날이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2)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4)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5)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6)
여기서 '주님의 날' 즉 '헤메타 퀴리우'(hemeta kyriu)는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 '그리스도의 날'이라는 다른 표현으로 사용되는 말이며(필리1,10; 2,16), 구약에서는 '야훼의 날', '주님의 날'로 표현되는 말이다.
이 날은 주님을 대적하는 악인에게는 심판의 날인 반면에 주님을 사랑하는 의인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사도 바오로가 구약의 '야훼의 날'이라는 표현을 끌어와 사용하면서 '하느님의 날'이라고 하지 않고, '주님의 날' 또는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표현한 것은 종말의 그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시 오실 것(마태24,30)을 확인해 줌과 동시에 그 종말의 심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관이 되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마태25,31~46).
그리고 이 구절은 주님께서 시간적으로 밤에 재림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말은 사람들이 방심하는 밤에 도둑이 예고도 없이 침입하는 것처럼, 주님의 날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때에 도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은 원문의 '호스 클렙테스 엔 뉙티 후토스 에르케타이'(hos klleptes en nykti hutos erchetai)에서 '호스 ~후토스'(hos ~hutos; as ~so)라는 표현으로 잘 드러난다.
'호스'(hos)는 '~처럼'이며, '후토스'(hutos)는 '그와 같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도둑'(klleptos; 클렙토스; a thief)이 밤에(en nykti; 엔 뉙티; in the night)
오는 것과 같이 그처럼'이라는 뜻이다.
즉 '밤'이라는 시간이 강조된 것이 아니고 밤에 오는 '불예측성'이 강조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오 복음 24장 44절에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도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묵시록 16장 15절에도 '보라, 내가 도둑처럼 간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4)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5)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6)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1서 5장 1~3절에서 주님의 재림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불시에 올 것을 밝힌 데 이어서, 테살로니카 1서 5장 4~5절에서는 빛에 속하며 어두움에 있지 않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결코 갑작스럽게 오지 않을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테살로니카 1서 5장 4절의 '있지'에 해당하는 '에스테'(este)는 현재 시제로서 어두움에 있지 않은 상태의 지속성을 나타내준다.
또한 '어둠 속에'에 해당하는 '엔 스코테이'(en skotei)에서 '엔'(en)은 '~안에' (in)라는 뜻의 전치사로서 영역의 안쪽을 말한다.
그 영역은 바로 '어둠'에 해당하는 '스코테이'(skotei)인데, 이것의 원형은 '스코토스'(skotos)로서 구약 히브리어의 희랍어 번역성서인 70인역(LXX)에서 히브리어 '호쉐크'(hoshek; 창세1,2)의 역어로 쓰인 단어이다.
본래 자연 상태의 어둠을 뜻하지만(마르15,33; 사도2,30), 본절에서는 비유적 의미로 쓰여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 하느님의 영을 받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 하느님을 적대하는 자리에 있는 것, 드러난 진리를 배척하는 자리에 있는 것 등을 의미한다.
'빛'과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어둠'에 대한 비유적 표현은 신약의 곳곳에 나타나 있다 (요한3,19; 사도26,18; 로마13,12; 2코린6,14; 에페5,8).
'그 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덮치지는'이라는 의미로 번역된 '카탈라베'(katallabe)의 원형 '카탈람바노' (katallambano)는 장소와 관계되어 쓰일 때에는 '뒤에서'라는 뜻의 전치사 '카타' (kata)와 '덮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람바노'(lambano)의 합성어로서 본절에서는 '위에서 내리덮치다', '엄습하다'라는 강한 의미로 쓰였다(요한8,3; 12,35).
따라서 도둑이 한밤중에 자고 있는 사람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사한 선악들에 대해 심판하실 주님의 날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매우 갑작스럽게 돌발적으로 엄습할 것이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한편, 테살로니카 1서 5장 5절의 '빛'(포토스; potos)과 '낮'(헤메라스; hemeras)는 동일한 개념을 전달하는 것으로서 후반절에 나오는 '밤'(뉙토스; nyktos)과 '어둠'(스코투스; skotus)의 반대 개념이다.
테살로니카서 1서 5장 5절의 '빛의 자녀'는 빛이신 하느님을 닮은 자들을 가리키며, 바로 하느님의 뜻인 '거룩'(1테살4,3)의 길에 서 있는 성도들을 말한다.
또한 '낮의 자녀'란 영적으로 깨어 근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의미하는데, 사도 바오로는 '빛의 자녀'와 '낮의 자녀'라는 반복된 표현을 사용하여 성도들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에서 '밤'(뉙토스; nyktos)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무감각한 상태를 말하며, '어둠'(스코투스; skotus)은 빛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소외된 상태,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을 모시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테살로니카 1서 5장 6절에 '잠들지'라는 '카튜도멘'(katheudomen)의 원형 '카튜도'(katheudo)는 비유적으로 자신의 구원에 무관심하고, 다가오는 심판의 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에 해당하는 '알라 그레고로멘 카이 네포멘' (alla gregoromen kai nepomen; but let us be alert and self-controlled)에서 '깨어 있도록'에 해당하는 '그레고로멘'(gregoromen)의 원형 '그레고류오' (gregoreuo)는 영적 측면에서 '정신을 차리고 주의하다'라는 비유적 의미인데(마르13,35; 사도20,31; 1코린16,13; 1베드5,8; 묵시3,3), 이러한 상태는 의지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맑은 정신으로'에 해당하는 '네포멘'(nepomen)의 원형 '네포'(nepo)는 본래 '술 취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인데, 비유적으로 심령이 고요하고 침착하며 냉정을 유지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이 두가지 상태는 모두 '빛과 낮의 자녀'에게는 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이지만, '밤과 어둠의 자녀'에게는 부자연스럽고 실천하기 힘든 어려운 요소들이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루카 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 카파르나움(나를 위한고을, 성전) 곧 자신을 위한 자기 의로움으로 지은 그 헛된 신앙이 있는 곳에, 하늘의 구원의 의로움인 참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오늘 독서(코린토1서2,10ㄴ-16)에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의 영께서 알려주신 그분의 지혜, 그 권위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말, 뜻이 아닌 아버지의 말씀만 하셨다.
(요한12,49)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 말씀의 권위~ 말씀 안에 숨겨있는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힘, 능력, 그 권위를 느꼈던 것이다.
(에페1,11)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 창조주의 뜻대로 그 하느님의 결정과 뜻을 따르는 신앙을 사는지?~ 하느님의 규정(계명)을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만든 그 신앙은 구원의 권위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규정은 나무 하나의 희생(탈출15,25)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죽음으로 얻는 용서, 구원, 하늘의 생명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능력의 하느님으로만 알고 섬기는 그 종교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곧 구원의 권위가 없는 신앙이 된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인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그들의 죄값으로 십자나무에 달려 희생 제물로 죽으러 오셨던 것이다.
우리의 죄로 죽으신 구원자, 나의 주인 되시는 그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예수님의 대속 그 의로움과 상관없는 자기 의로움의 그 카타파르나움(나를위한 성전)이 마귀 들렸다는 것이다. 그 카파르나움의 의로움은 하늘이 아닌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 하셨다.(루가10,15)
사람이 의롭게 착하게살아야 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희생, 그 의로움에는 구원의 권위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 우리의 삶에서 내동댕이쳐지는 시련이 일어나지만 구원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마귀의 해꼬지도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 일어나는 것이다.(욥1,12 2,6참조)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자기 의로움으로 교만했던 욥을~ 사탄의 온갖 시련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 그 의로우심을 깨달아 하늘의 의인으로 만드셨듯(욥기42,1-6참조)~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 喜怒哀樂을 통해 善, 救援을 이루신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뜻, 그분의 지혜로 말씀을 받아 간직한다면 그 하느님의 말씀이 일하시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힘을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기적의 예수님으로 , 소문으로만 퍼져나간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성당에 나왔다.
그래서 반드시 성경 말씀 속에 하느님의 뜻, 지혜를 깨닫는 신앙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문 그대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에 맞춘 신앙을 산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신앙을 사는 것이다..(마르7,7참조)
성경의 구약은 물론 신약의 말씀안에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얻는,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그 말씀을 찾아 깨닫고 믿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루가11,24-26)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자기 의로움으로 예수님의 의로움이 치워진,그 정돈인 상태)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말씀을 깨달아 마음에 간직하는 것, 신앙인이 반드시 해야 할 실천, 실행인 것입니다. 아멘.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설교에서(어제 복음) 앞으로 펼치실 구원 사업의 성격을 미리 드러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공생활 여정을 시작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서에 나타나는 첫 번째 기적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기적으로 구마를 하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직무를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다시 말해 초자연적이고 종말론적인 배경에서 그분의 활동을 이해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세상의 권세를 휘어잡던 사탄의 세력은 큰 위기에 부딪습니다.
더러운 마귀에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소리칩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마귀는 예수님과 자신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당신’(예수님)과 ‘저희’(마귀들) 사이에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거룩함’과 마귀의 ‘더러움’입니다.
성경에서 거룩함은 하느님의 고유한 특성으로 이해됩니다.
이야기 속 마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특성을 공유하시는 분(‘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시자 자기들을 멸망시키러 오신 분이심을 알고 극도로 경계하며 그분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무엇보다 더러운 악의 속박에서 인류를 해방하시고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구마 행위는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리라.’(4,18 참조)는 나자렛 설교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얼룩진 더러움의 세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어 거룩한 나라, 곧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거룩하신 예수님과 더러운 악령들 사이에 어떠한 접점도 찾을 수 없듯이,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도 악의 세계와 어떠한 것도 공유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며 온전히 거룩하게 됩시다”(2코린 7,1).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독서(1테살5,9)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 십자가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다.
복음(루카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 하느님(성자)께서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려 이 땅, 세상으로 내려오신 그 구원자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심이다. 오늘은 카파르나움(자기)를 위한 성전 곧, 자신의 힘으로 안식을 누리려는 그 잘못된 믿음으로 억압받는 이를 해방시키려 하신다.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하느님께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의 권위다. 곧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권위다. 하느님의 말씀이 듣는 가운데서 해방을 이루신 권위다.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당신을 죽이려는, 죄인들을 살리시려 대신 죽음 속을 지나가시는 사랑의 권위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 마귀의 영이 들렸다는 것은, 뱀(마귀)의 유혹을 먹은 아담 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선악의 말로 듣고 있었음을 뜻한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마귀의 영이 들린 이가 알고 말하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우리도 예수님을 그렇게 알고 믿지 않는가? 무슨 차이일까?
선악의 하느님으로 알고 있는 것과, 선(예수)이 악을 대속하시고 용서, 생명을 주시는 그 진리의 그리스도로 믿는 것과의 차이다. 말씀을 선악의 법으로 아는 것과, 대속, 그 진리로 믿는 것과의 차이다.
(루가8,25)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셨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놀라워하며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
= 자신의 모든 것, 목숨을 책임져 주실 그 능력의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바다의 풍랑으로 죽을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너희 믿음은 어디 있느냐?”
앞뒤 문맥상 말씀을 어떻게 듣고, 어디에 두었느냐? 곧 말씀을 하느님의 뜻, 진리로 듣고, 그 진리이신 하느님께 믿음을 두었느냐? 사람의 선악의 말로 듣고 사람의 의지, 노력을 믿는 그 자신에게 두었느냐?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느냐? 어디에 믿음을 두었기에 두려워하느냐? 물으시는 것이다.
(갈라5,4) 4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 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 마귀는 거짓 사도(사제)들을 통해 사람의 의로움도 꼭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구원의 길로 정해진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 그 피의 새 계약을 헛되게 하려는 계략이다.
*하나 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믿음이냐? 땅의 목숨, 육의 만족을 위한 믿음이냐를 물으신 것이다.
내 뜻, 내 소원, 육의 만족을 위한 예수님으로 믿는다면, 그 역시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러 오셨다. 또 마귀는 자기에게 육의 만족을 위해 청하면 들어준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약속하며 유혹한다.(루가4,3-6 참조)
우리를 주님과 상관없는 자로 만들려는 마귀의 계락 이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이 십자가를 통하여 얻는 하늘의 생명이 아닌, 율법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열심, 노력을 의지하는, 그리고 육의 만족을 위한 신앙, 믿음 이라면 (다음구절) 예수님의 명령을 내 것으로 받아야 한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아멘)
= 한가운데 내동댕이침, 마음 한가운데에, 믿음이 아닌, 아는 지식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구원, 희년, 해방의 말씀이 그 자리(마음) 한가운데에 *이미 계셨기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것이다.(앞21절 참조)
이 체험을 한 사람은 절대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믿음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건다.(나의 체험이다) 그러니 우리의 시련, 고난이 나쁜 것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건너야 할 과정일 뿐이다.(로마5,20-21 참조)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소문으로 나갔다. 예수님께서 율법(제사와 윤리)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에 묶여 무거운 짐의 신앙으로 억압받고 있던 이를 해방시켰고, 십자가의 대속, 그 정해진 구원의 진리를 못 보는, 눈 먼 이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신 그 구원의 복음으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구마를 하신 주님으로만 퍼져나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날까지 정해진 구원의 진리, 십자가, 그 새 계약을 믿음으로 차지하지 못해 구마 등, 여러 은사자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종교 활동, 선행으로 자기 의로움을 세우려고 무거운 짐 같은 신앙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하시니까 어떤 이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쫒아 내고,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한다.
(마태7,23)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 구마, 예언, 기적 등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셨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믿는 것이 죄인이 의인이 되는 기적이며, 그것이 곧 구마, 예언의 완성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율법-제사와 윤리)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10,19)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총의 천주 성령님! 그리스도께서는 선인이든 악인이든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돌아가셨다. 하시니 저희 모두가 그 사랑을 차지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복음(루카4,31~37)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4)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드러나신 후에 출신지인 나자렛도 존귀한 지명이 되었다(사도3,6).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았던 때에 나자렛은 유다인에 의해 경멸받던 지명이었다(요한1,46).
따라서 마귀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나자렛 출신이라는 사실을 크게 떠든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이며, 이것은 갈릴래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도시였던 카파르나움 고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간교하고 사악한 방법이었다.
'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귀들린 사람의 화두에 있는 감탄사 '에아'(ea; Ah!)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유일하게 쓰인 독특한 용어이며, 두렵고 위협적인 존재이신 예수님의 출현으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위협을 받게 된 마귀의 놀라움과 두려움, 혐오감과 적대감 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원문의 '에아, 티 헤민 카이 소이'(ea, ti hemin kai soi)는 'Ah, what do you want with us?'(당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는 뜻이며, '에아'(Ea; Ah!)를 굳이 번역하자면 '우리들을 홀로 두소서'(Let us alone)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더러운 마귀의 영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다(여호22,24; 판관11,12; 1열왕17,18).
또한 여기서 더러운 마귀의 영은 자신들을 가리켜 '저희'(우리)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 표현에 대해 마귀가 마귀들린 자와 자신을 복수 위격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는 마귀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이것은 문법적으로 의문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고 조롱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투의 문장으로 보아야 한다.
영적으로 상당한 지력을 지녔던 마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를 꺾어서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마르코2,10; 1요한3,8).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메시야가 오시면 모든 악한 영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여기에 해당하는 '호 하기오스 투 테우'(ho hagios tu theu; the Holy One of God)는 루카 복음 4장 33절의 '더러운 마귀의 영'('프뉴마 다이모니우 아카타르투'; pneuma daimoniu akathartu; an unclean devil spirit)과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정학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이 하느님께 대해 사용한 '거룩하신 분'(이사40,25; 57,15)이라는 표현과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께 대해서 사용한 '거룩하신 이'(사도21,27; 3,4; 4,27)라는 표현과도 통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영적 지각력을 갖추었던 마귀들은 이미 이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예수님 앞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자는 예수님을 '안다'고 소리친다.
여기서 '압니다'에 해당하는 '오이다'(oida; I know)는 능동태 완료 동사이다.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마귀는 예수님을 알되, 예전부터 그리고 능동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영적 존재인 마귀는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시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직접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기초하여 정확한 고백은 했지만, 본질적으로 부정하고 더럽고 악한 존재인 마귀는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순종하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오늘날도 적지 않은 신학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마귀의 지식과 유사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연구와 배움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식이 어떻게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며 영신적 유익을 주겠는가?
야고보서 2장 19절에는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라고 나온다.
그리고 잠언 1장 7절에도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업신여긴다.'라고 나온다.
우리는 신앙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고, 주님을 경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앎을 기초로 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마음으로부터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도록노력해야만 한다.
2025년 09월 02일 화요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나자렛 회당에 이어 카파르나움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은 이들은 놀랐습니다.
그분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루카 4,32)이라고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권위를 지니셨을까요?
우리말로 ‘권위’라고 옮긴 이 그리스 말은 ‘권한’ 또는 ‘권능’으로도 옮겨지는 낱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도 내쫓는 능력을 지니셨기 때문에,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권능을 지니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기 전에도 사람들은 그분 말씀에 놀랐습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것은 그분 말씀에 담긴 권위를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1,22)라고 말합니다.
율법 학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권위자들이었음에도 마르코 복음서는 마치 이들에게 권위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권위는 참된 권위를 뜻할 것입니다.
우리는 권위자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표현이 아닌 경우가 꽤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 직위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 앞에서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권위는 그의 인격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사랑이나 선과 같은 인류 보편 가치를 훌륭하게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그분 존재에서 나오며, 그 권위는 사랑에서 나오는 권위가 아닐까요?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그릇은 귀한 것을 담았을 때 비로서
복음(루카4,31-37)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 카파르나움- 자신을 위한 고을(성전)이라는 뜻이다. 곧 인간 스스로의 열심히 안식을 얻으려는 그 고을에, 안식일의 주인, 안식일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마태12,87) 자유, 쉼, 그 안식에 대해서 가르치셨음이다.
우리의 죄로 저주(詛呪)의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시고 하늘의 의(義), 거룩을 은혜로, 선물로, 거저 주시는 그 자유, 쉼, 안식이다.
(마태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예수님의 멍에, 우리의 죄로 죽으심으로 죄를 없애신 십자가(十字架)다.(골로2,14) 귀하고 귀한 복음 말씀이다. 배워보자.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 말씀(빛)이 선포되는 곳에는 어둠, 악이 드러나는 법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마귀의 믿음이다.
(마르5,6-7) 6 (더러운 영이 들린)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 마귀(더러운 영)가 고백한 예수님과 같지 않은가?
분명 다르기에~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 마귀는 절대로 사람을 파괴, 해칠 수 없음이다.
(히브11,28) 28 믿음으로써, 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피를 뿌려, 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 마귀의 믿음을 다시보자, 마귀의 믿음- 뱀의 지혜다. 곧 뱀의 지혜를 받으면 뱀이 되는 것이다. 창조주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안식, 구원에 이르러야 할 피조물인 인간이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의 의(義), 열심으로 안식, 구원에 이르려 하는 것이 마귀의 믿음이다.
마귀는 거짓 예언자들을 통하여 순한 양(羊)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다가온다.(마태7,15)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 기적들을 일으킨다.(마태24,24)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을 부리게 한다.
곧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인 예수님의 십자가로 얻은 의로움은 알지 못한 채, 뱀의 선악의 지혜로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는데 힘을 쓰게 한다.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게 한다.(로마10,2-3) 행위의 신앙에 열심을 부리게 한다.
(루가18,11-14) 11 바리사이는꼿꼿이서서혼잣말로이렇게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다른사람들, 강도짓을하는자나불의를저지르는자나간음을하는자와같지않고저세리와도같지않으니, 하느님께감사드립니다. 12 저는일주일에두번단식하고모든소득의십일조를바칩니다.’ (가장 이상적인 신앙인의 모습 아닌가?)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이는 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품고 죽으심으로 그분 안에서 높아진다.
그러니까 마귀는 인간의 법으로 선하게, 의롭게 살면 복주시는, 곧 세상의 높은 사람, 윗자리에 앉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믿게 한다. 곧 나의 열심, 노력, 의로움을 믿게 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멸망으로 이끄는 넓은 길이다.(마태7,14)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것을 부수셔서, 버리게 하셔서 낮은 자로 만드시기 위해 오셨다. 하늘의 윗자리, 곧 하늘의 영광, 생명, 평화, 안식의 자리에 앉게 해 주시기 위해 우리의 죄로 죽으러 오셨다. 마귀의 믿음과 우리의 참 믿음과의 차이다.
흙의 그릇인 인간은 스스로 귀한 존재가 절대로 될 수 없다. 그리스도를 담았을 때, 그분의 피로 씻겨 졌을 때, 귀한 그릇, 존재가 된다.(히브10,22)
(2코린5,17)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2코린4,7)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보물, 생명의 빛, 말씀으로 담고 있을 때에 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요한1,1-4. 9-14참조) 그때 비로소 자존심, 자존감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의 열심, 의(義)로 자존심, 자존감을 세우자’하는 것이 마귀의 믿음이며 가르침이다.
마귀가 약속한 세상의 재물, 빵, 영광으로 채워봐야 헛되고 헛된 오물그릇(똥통)일 뿐이다.(루가4,6) 절대 자존심, 자존감이 생길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갖추고도 자살(自殺)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뱀은 흙의 먼지, 곧 죄인(아담)들을 먹어 ‘뱀의 집단으로 이 세상을 영원한 죽음의 나라로 이루고(창세3,14), 예수님은 그 죄인(뱀)들에게 발꿈치를 물려, 곧 피를 빨려 먹히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이루신다. (창세3,15- 요한19,30-34 히브10,22) 그래서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 말씀이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은총이시며 우리의 ‘깨어있음’이 되시는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지극히 높으신 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한 낮아짐으로 하늘의 영광이 현실이 되는 귀한 그릇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