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손을 뻗어라. (루카6,6-11)

2025. 9. 7. 오전 11: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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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8일 월요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손을 뻗어라. (루카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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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콜로1,24-2,3)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화답송>시편62,6-7.9(8) 내 구원, 내 영광 하느님께 있네.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희망이 오리니, 내 영혼아, 그분을 고요히 기다려라.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백성아,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이시다.

 

복음<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루카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콜로1,24~2,3)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4)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서 1장 24~29절에서 복음의 일꾼이 된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음을 전하면서 콜로새 교회 내의 복음의 일꾼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먼저 콜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겪는 고난을 기뻐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사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 교회를 직접 설립하거나 사목을 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로 말미암아 받았던 직접적인 괴로움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는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이방인 출신 교인들을 위해서 유다인들로부터 받는 고난을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러한 고난 역시 이방인인 콜로새 교인들을 위해 고난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고난을 기뻐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기뻐합니다'로 번역된 '카이로'(chairo)는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라는 뜻으로서 행복과 번영, 평화와 평안에서 오는 감정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는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였는데, 놀라운 것은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처했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사도16,25; 2코린11,16~33; 로마5,3; 필리2,18).

 

사도 바오로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기쁨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를 구속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희망을 가질 성도들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평화 때문이었다.

 

본 서간을 쓰는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사도 바오로는 투옥이라는 암담한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사도 바오로의 내면을 감싸고 있던 것은 성령 하느님의 충만한 영이었다.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 채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복음을 전하다가 겪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혹은 '모자란고난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모자란'으로 번역된 '휘스테레마타'(hysteremata; which is behind; what is still lacking)의 원형 '휘스테레마'(hysterema)는 '부족', '모자라는 것'으로서 부족함이 보충되어야 할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고난이 인류를 구원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도의 고난을 경험하심으로써 완전한 구속(救贖; Redemption)을 이루셨다(요한19,30).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또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고난이 사도 바오로 자신에게는 물론이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남겨져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 사업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맏기셨다(마태28,18~20).

 

사도 바오로는 이 점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도로서 복음 선교를 감당한다는 자부심을 가졌고, 또한 복음 선교 도중에 자신이 고난 겪는 것은 곧 자신과 영적으로 일치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겪으시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복음 선교 과정에서 겪었던 그 모든 고난의 흔적을 예수님의 흔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갈라6,17).

 

사도 바오로는 마지막 날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바오로야, 참 수고했다. 나를 위해 겪은 너의 고난은 바로 나의 고난이다'라고 말씀하실 예수님의 이 한마디를 늘 염두에 두고 고난을 기뻐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확신을 가진 사도 바오로는 고난 가운데 기뻐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성적으로 사도 바오로 시대의 콜로새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 공로를 헛되이 돌리는 죄인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수 없으시니까, 사도 바오로 자신이 또 하나의 그리스도 예수가 되어 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적 고난을 바쳐야 된다는 믿음과 충성에서 나온 말씀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한편, '채우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안타나플레로'(antanapllero; fill up)의 원형 '안타나플레로오' (antanaplleroo)는  그 자체로서 이미 '번갈아 채우다'라는 뜻이 있으며, 특히 여기서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 계속적으로 새로운 고통으로 가득가득 채운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것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에 비하면 매번 새로운 고통이 자신의 육신에 와도 부족하며, 날마다 고난을 극복하는 생활을 계속한다는 고백이다.

 

더구나 그 고난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신으로' 혹은 '자신의 육신 안에'(in my flesh) 채우고 있다는 것은 그 고난이 아무런 목적없이 당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복음으로 인해 겪는 사도 바오로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한 고난이었다.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사목이 무엇인지를 알아듣고, 하느님의 은총을 깊이 깨달았던 사도 바오로는 교회에 맡겨진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 절대 명령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 사목중에 겪게 되는 고난을 상급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감당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사도 바오로와 같은 복음의 신실한 일꾼들을 교회안에서 찾고 계신다고 보아야 한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 한가운데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여기서 좋은 일과 목숨을 구하는 것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는 행위를 가리키고남을 해치는 일과 죽이는 것은 그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이라서 그를 고쳐 주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이는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를 해치고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들에도 좋은 일을 하는데거룩한 안식일에는 더더욱 그러한 일곧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사람의 안식휴식을 위한 날로 제정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지나친 노동에 시달릴 수 있는 이들의 딱한 처지를 고려하신 하느님께서는당신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 쉬셨던 것처럼사람들에게 휴식할 수 있는 날을 따로 마련하여 주신 것입니다(탈출 20,10-11 참조).

엄격한 규정으로 사람들이 정말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게 하거나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하는 것이 안식일 법의 본디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한 일이나 생명을 구할 기회가 생기면그것을 하는 것이 오히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십니다. “손을 뻗어라.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 안에도 그 나름의 규정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내규를 잘 지키려는 의지와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한 규정의 취지나 목적을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그 규정을 올바로 지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였던 율법 학자들처럼단순히 규칙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모습또는 규칙이니 무조건 따르라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모습은 경계하여야 합니다.

혹시 맹목적인 율법주의가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성경은 우리를 꾸짖어 살리시려는 계약의 말씀

 미사를 매일 제사로 드리며 도덕과 윤리의 계명을 지키려 열심을 부렸던 내가인본주의율법주의 였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아주 많이 놀랬다

 

복음(루카6,6-11)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 율법의 회당이다. 율법 신앙을 사는 이들이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라는 것이며, 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다.

*오른 손- 오른쪽, 올바른 나라, 하느님의 진리, 의로움이 오른 안식인 나라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자기의 의(義)로 안식을 이루려 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 받는 용서, 자유, 쉼, 평화, 그 하느님의 오른 안식을 마음에서 오그라 뜨린 영적 불구자라는 것이다.

곧 창조 이전 세우신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의로움의 죽음을, 그리고 그 피의 새 계약으로 거저 얻는 의(義), 거룩을 자신에게 오그라뜨려, 묶어 버리다는 것이다. (로마3,24 히브10,10)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거저 얻는 평화, 안식을 이웃에게 전해 주지도 못하고, 계속 율법을 지키도록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 지우게 했던 종교 지도자들이다.

 

(루가11,52) 52 불행하여라너희 율법 교사들아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생각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그가 일어나 서자

= 가운데에 계신 ‘오른 안식’의 당신 앞에 서라는 말씀이다.

 

(루가17,21) 21  ‘보라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보라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마태12,8)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곧 창조이전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자, ‘오른 안식의 그리스도 당신 앞에 서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율법, 그 옛 계약으로는 절대 오른, 올바른 안식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을 살리는 ‘올바른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율법, 그 묵은 옛 계약의 가르침은 사람을 해(害)쳐 영(靈)을 불구자로 죽일 뿐이다.(로마3,20) 

그 옛 계약을 완성하시고, 옛 계약이 요구하는 의로움을 전가시켜 살리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만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다. (로마8,3-4)

그 모든 것을 계획, 계약하는 사랑, 자비의 삼위 하느님께 제사가 아닌 감사, 찬양을 드리는 축제의 미사(missa)가 올바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1코린5,7-8)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십자가의 대속)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순결과 진실(진리)이라는 누룩 없는 빵(피의 새 계약)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 하느님께서 창조 때, 이미 올바른 손(마음)을 주셨는데, 사악한 뱀의 유혹인 선악의 논리로 안식이 아닌 두려움, 죄악을 마음에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창조의 말씀이 다시, 그 사람의 손(마음) 안에 ‘오그라든, 묶여 있었던 오른 안식‘을 풀어 다시 성하게 해 주신 것이다. 이제 오른(올바른)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

비로서, 이웃과 나누는 이웃 사랑도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의지도, 노력도 없었다. 하느님의 은총(은혜)의 말씀이 하신 것이다.

 

(묵시22,17) 17 성령과 신부(교회)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목마른 사람은 오너라.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받아라

= 거저 주신다는 것은- 제사와 윤리, 인간의 열심, 노력, 의로움, 그 어떤 것으로도 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저 은총, 은혜로, 선물로 주실 수밖에 없으신 것이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먹고 인간의 의를 가치로 여기는 이들은 그 거저 주심의 하느님 은총, 은혜를 믿지 않는다.

 

11 (그래서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인간 중심의 사람들, 그 인본주의는 사람의 생각(뜻)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른(올바른), 그 주님의 가르침을 들어 먹지 않는다. 그리고는 성령을 받기 전에 베드로처럼, 가족을 떠나면서 까지 온갖 열심, 자기 열의로 영들을 죽이는 일에 힘을 쓴다.

 

(마태23,15) 15 불행하여라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너희가 개종자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생기면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그래서 성경말씀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곧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보내주신 하느님의 지혜, 거룩한 영,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옛 계약의 가르침, 곧 사람의 말로 자신 안에 이미 거저 주어진 오른 안식을 오그라뜨려, 묶어 놓고는 오른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두려움의 신앙을 살게 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믿겠다는유다인(인본주의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것이다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이신 진리의 성령님!

거저 주신 말씀 안에 머물러 묶여있는 안식이 깨어나 오른 안식의 삶을 누리며 하느님께 감사영광 드리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올바른 미사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루카6,6~11)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8)

 

루카 복음 6장 8절의 서두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와 마태오가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그들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아셨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아시고'로 번역한 '에데이'(edei; knew)는 '알다'라는 동사 '오이다'(oida)의 과거 완료로서 이미 완료된 동작의 남은 결과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엿보고 있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이미 아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루카 복음 6장 7절에 밝혀져 있듯이 예수님을 책잡아  고발하려는 불순한 음모였다.

 

루카 복음사가는 아마도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 신적인 통찰력으로 간파하고 계셨음을 강조하고 싶어서 독자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고 말씀하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구실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무리들 가운데에 자신들을 숨기고 있는 반면에, 이 사실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병을 고치는 행위를 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그를 사람들이 있는 한가운데로 서게 하신다.

 

악한 목적을 가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선을 행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행하신다. 

예수님께서 공개적 치유를 행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일의 올바른 의미를 깨닫도록 가르치시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러한 행위가 적대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을 알고 계셨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하실 일을 당당하게 행하셨다.

 




  

20250908일 월요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 우리말로 약혼”(마태 1,18)이라고 옮긴 낱말은 당시 유다인 사회에서 증인들 앞에서 하는 정식 혼인 전 예식을 가리킵니다.

이 예식으로 남녀는 공식 이혼 절차를 밟지 않고서는 깰 수 없는 정식 부부의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두 당사자는 이미 정식 부부이기 때문에 배우자가 죽으면 홀아비나 과부라고 불리고, 상대가 간음을 하면 그 행위가 이혼 사유에 해당됨은 물론 간통죄로 다스려졌습니다.

마리아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심을 알게 되자 기꺼이 자신을 내놓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자신만의 푸른 꿈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듣게 된 하느님 전갈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꿈을 포기하고 불명예를 떠안고 죽을 위험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에는 주님께서 첫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자신보다 주님을 더 소중히 여긴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마리아가간통죄로 처벌받는 것도, 공개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그를 사랑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간음한 여인과 혼인할 수는 없기에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알림을 받자, 그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동정 잉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느님 뜻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두 구원하시고자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놓으신 것은 그분께서 하느님을 무척 사랑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는 마리아와 요셉의 모범을 가정에서 배우셨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이미 주셨음에 감사하는 신앙 생활

 

복음(루카6,6-11)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 오른손은 오른, 올바르다의 하느님의 뜻, 진리를 뜻한다. 곧 오른 안식(일)에 대한 생각,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아담 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선악과로 따먹은 손이다.

 

(창세3,4-6)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그도 그것을 먹었다.

= 뱀의 유혹을 먹고, 뱀의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뜻(말씀)을 자신의 욕망을 위한 선악과로 따먹은 손이다. 곧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은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선악을 자신이 주관하게 되었으니,

즉 선이 악을 품고(대속) 생명(안식)을 주시는 그 하느님의 약속, 계약의 말씀에서 떨어졌으니 스스로 선은 행하고, 악은 짓지 않는 그 스스로의 열심, 의로움으로 안식(安息)에 이르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열심히 지켜야 했기에, 

쉼, 안식을 누려야하는 안식일에, 법을 지켜야하는 그 안식일 법(교리)에 매여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사는, 오른 안식의 의미, 정신을 잃어 다른 안식(일)을 살았던 그 생각,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된 그 안식의 의미, 신비를 올바로 깨달았다면 주일이 어찌 짐 같이 느껴지겠는가. 안식이신 주님과 함께하는 그 시간(주일)을 고대 하며 기다릴 것이다.

 

독서(콜로1,27)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 오늘 안식이신 분 앞에서 그분을 몰라보는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 그들이 마음(생각)이 오그라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그가 일어나 서자

= 뱀의 유혹을 먹고, 창조주 하느님의 자리에 앉은 욕망의 자리, 그래서 스스로 선악을 판단(주관)하는 자리, 그래서 아담 처럼 스스로 ‘부끄럽다’. 자신을 판단한 자리, 그래서 늘 죄의식에 시달렸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 가운데 있는 너희의 죄악을 대속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 앞에 ‘서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안식일에 너희 선악의 법으로 사람에게 부끄러움(죄)을 주는 그 심판으로 남을 해치는(죽이는)것이 합당하냐? 하느님께서 선이 악을 대속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그 진리로 부끄러움(죄)을 없애는 그 용서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합당하냐?‘ 물으시는 것이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 말씀은 듣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루가4,21) 신비다. 그 신비(미스테리온-비밀)의 말씀으로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을 사는 것이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말씀을 진리로 받으면 하늘의 용서, 생명, 평화, 그 안식을 받지만 율법(제사와 윤리)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 도덕과 윤리로 받으면 늘 부끄러움, 곧 죄 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율법(제사와 윤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그 완성된 안식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많은 이들이 그것을 놓치고 있다예수님의 다 이루어졌다” 하심을 잊고 놓친그 잘못된 생각(마음)으로 오그라든 신앙을 살고 있는 것이다.

 첫째는 성경(聖經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른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기도하느님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미사를 드리면 안 된다.

그래서 하느님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로 기도하며 미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그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달라고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그래야 오늘의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성령께 의탁해서 말씀을 열심히 보고, 묵상 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요한14,26 15,7참조)

미사(Missa)는 물론성사 생활묵주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말씀을사람의 지혜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진리로 가르치며 그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묵상하고기도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화답송으로 드리는 시편의 기도(62,6-9) 또한 이미 다 이루어졌음을(받았음을) 아는, 시편을 그렇게 보는 실력(實力)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예수님 처럼 실천하자!, 실천하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예수님의 실천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런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안식)을 내가 먼저 받았을 때, 오른 사랑(안식)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선악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인간들의 선악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래서 다른 하느님, 다른 사랑(안식)을 이웃에게 전한다면 모두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게 되는 것이다.(마태15,14 참조)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입당송> 하느님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당신의 법규는 바릅니다.(시편119,137)

 

☨천주의 성령님! 우리 가운데 계신, 안식이신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손을 뻗어라”하신 말씀이 우리 마음에 아루어지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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