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9일 화요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열두 사도 (루카6,12-19)
제1독서<주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콜로2,6-15)
6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9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10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권세와 권력들의 머리이십니다.
11 여러분은 또한 그분 안에서 육체를 벗어 버림으로써,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5 권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
<화답송>시편145,1-2.8-9.10-11(◎9ㄱ) ◎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네.
○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복음<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사도라고 부르셨다.>(루카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제1독서 (콜로새2,6-15)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3)
성도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콜로새서 2장 11-15절의 문맥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원받은 성도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11절에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음을 밝혔으며, 12절에서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하였음을 밝혔다.
이제 콜로새서 2장 13절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콜로새 성도들이 전에는 잘못을 저지르고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사실을 밝힌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콜로새 교회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잘못과 육체의 비할례로 인해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던 자들임을 밝힌다.
여기서 '잘못'으로 번역된 '파랍토마신'(paraptomasin; your sins)의 원형 '파랍토마'(paraptoma)는 '~에서부터'란 뜻의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 '파라'(para)와 '넘어지다', '떨어지다'(마태17,15), '떨어지다'(마태10,29)라는 뜻이 있는 동사 '핍토'(pipt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문자적으로는 '정도에서 벗어남','이탈'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성경에서는 주로 추상적 의미로 사용되어 '허물', '과실'(마태6,14), '잘못','허물'(에페2,1), '범죄'(로마5,15), '잘못', '죄'(2코린5,19)등으로 번역되며, 원죄 뿐만 아니라(로마5,15.17) 본죄(갈라6,1)까지 포괄한다.
그리고 '육의 비할례'('테 아크로뷔스티아 테스 사르코스'; te akrobystia tes sarkos; the uncircumcision of flesh)는 유다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하느님과 전혀 관계없는 이방인, 하느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 타락한 본성이 제거되지 않은 자, 하느님 대전에 단죄 및 진노의 대상, 비구원의 실재라는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던' 이방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여기서 '용서해 주셨습니다'로 번역된 '카리사메노스'(charisamenos; forgave ; having forgiven)의 원형 '카리조마이'(charizomai)는 '기쁨','은혜'라는 뜻의 '카리스'(charis)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용서하다', '빚을 면제하다', '은혜로 무상으로(공짜로) 주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베푸는 자의 호의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살려서 그대로 돌려보내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에게 베풀어지는 새로운 생명, 성화은총(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초자연적 은혜)이 베풀어지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용어이다.
사도 바오로는 잘못을 저지른 범죄와 육의 비할례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이미 죽었고, 또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놀라우신 무상의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다시 살리신 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당시 콜로새 교회는 대부분이 비할례자들, 즉 이방인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것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혜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4)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율법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빚문서'로 번역된 '케리오그라폰'(cheriographon; written code; andwriting)은 '손'이라는 뜻의 명사 '케이르'(cheir)와 '쓰다'라는 뜻의 동사 '그라포'(graph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손으로 기록한 문서를 가리킨다.
당시 채무나 노예와 관련된 법률적 계약을 체결할 때 채무자나 노예가 직접 기록하여 자필 증서를 만들었는데, 이 단어가 바로 이러한 관습을 반영한 표현이다.
여기서 '조항들을 담은 빚문서'로 번역된 '케이로그라폰 토이스 도그마신' (cheirographon tois dogmasin; written code; with its regulations)은 '율법'을 가리킨다.
'조항들을'로 번역된 '도그마신'(dogmasin)의 원형 '도그마'(dogma)는 '법령'이라는 의미로서, 여기서는 복수 여격으로 쓰였으며, 이것은 '법령(조항)들을' 이라는 목적격적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조항들을 담은 빚문서'는 '법령들을 쓴 문서'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율법적 행위의 온전한 이행을 요구하는 법적 채무 증서와 같다.
그래서 한글 새 성경은 이것을 '빚문서'로 번역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사도 바오로가 이것을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지적한 사실이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으로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과 요구를 담고 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죄로 인해 타락한 본성을 지닌 우리 인간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율법 준수의 절대성을 그토록 주장하던 바리사이들은 정작 율법을 준수하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들은 온전히 지키는 것처럼 위선을 떨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메도록 강요했다.
율법은 단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로워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게 하는 감시자 노릇을 할 뿐이다(갈라3,24).
그러한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준수하지 못할 때에 죄책감과 절망을 준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율법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단죄하는 이러한 율법을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천명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율법을 지워 버리시고 없애 버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대상은 예수님이신데,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율법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이었다고 선포한 것이다.
여기서 '지워 버리시고'로 번역한 '엑살레입사스'(eksalleipsas)의 원형 '엑살레이포'(eksalleipho)는 '문질러 닦다', '제거하다', '지우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어떤 책의 글씨나 사람의 마음에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도록 깨끗이 지우는 것을 말한다.
즉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악성 때문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의 산물인 율법을 깨끗이 지워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없애 버리셨습니다'로 번역된 '에르켄'(erken)의 원형 '아이로'(airo)는 '들어 올리다', '나르다', '제거하다'라는 뜻으로 세례자 요한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즉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묘사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요한1,29).
세상의 죄를 지고, 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고발하고 단죄하는 율법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것을 '에르켄'(erken)이라는 단어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못박아'로 번역된 '프로셀로사스'(prosellosas; nailing)의 원형 '프로셀로오'(proselloo)는 '못으로 ~에 고착시키다', '~에 못박아 고정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효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율법의 단죄(정죄)가 다 무효화되고 없어진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복음(루카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 ‘산으로 가시어’가 아니라 ‘산으로 나가시어’다.
앞11절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 예수님께서 안식일주인이라 하시니 화(禍)가나 모의(謀議)하려는 그들에게서 나가신 것이다. 그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모의로 예수님을 죽이게 된다. ‘당신의 대속(죽음)을 위한 일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 하시러’ 나가신 것이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 밤, 어둠을 지나 아침, 빛으로 곧 구약(舊約)의 율법(律法), 그 옛 계약으로 죽어야 할 죄인들을 위해 빛의 새 계약, 곧 십자가의 대속, 그 그리스도의 피의 새 계약에 동참(同參)할 구약의 열두지파 시대를 지나, 신약(新約)의 열두사도 시대를 이룰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다.
열둘은 열두지파, 아들, 사도, 하늘백성을 뜻한다. 곧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제자들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수난(受難)때 그분을 배반(背叛)하는 잘못을 했지만,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책임지려 어리석은 선택으로 자살(自殺)을 했기에 그 유다가 빠지고 후(後)에 마티아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활동을 했는지 아무런 기록(記錄)이 없다. 그것은 마티아의 이름, 그 자리에 우리(나)가 들어가야 한다는 뜻임을 알아야한다.
제자들의 모든 잘못은 예수님을 하늘의 복(福)을 주시는 그리스도로 따르지 않고, 땅의 복을 주시는 분으로 따랐기 때문이다. 곧 그분의 말씀을 구원(생명)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자신들을 위한 말로, 인간들의 지혜(知慧), 계명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 열두제자가 그랬듯 양다리 신앙이다. ‘많은 군중(群衆, 큰 무리)’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위ㅏ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소원(訴願)을 위해 따르는 군중, 무리라는 것이다. 그 군중(群衆, 무리)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원(願)함을 들어주지 않음을 알게 되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일조(一助)를하게 된다.
*<미사, 기도 열심히 했는데,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失望)과 섭섭함으로 주님을 원망했던 옛 내 모습이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 어떤 힘? - 앞5장으로 가 보면, 나병(癩病)환자의 살을 깨끗하게 고치시는 힘이다. 중풍병(中風病)자를 고치시는 힘이다. 죄인(罪人)을 불러 회개(悔改)시켜 구원하시는 힘이다. 오그라든 손(마음)을 뻗게 하시는 힘이다.
힘이 나와서 어떻게, 환자(병자)들의 더러움을 죄(罪), 잘못을 예수님께서 가져가시고, 대속(代贖)하신 당신의 깨끗한 피로 씻어 주심으로 치유가 되고 용서(容恕)받게 되는 것이다.(제자들의 배반까지...)
(이사53,3-6)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뜻)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아멘)
= 마음에 새기고 놓치지 말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음은 죽기까지 사랑하신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犧牲), 대속(代贖) 때문임을 잊지 말자. 그분 십자가 앞에서 열심히, 애쓰며 자신의 안녕, 안위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참 신앙인의 모습 같지만 잘못된 모순이다.
예수님은 이 땅의 복을 위해 죽으러 오시지 않으셨다. 자신의 죄로 죽으신 예수님을 안다면(믿는다면), 그분 십자가 앞에서는 감사(感謝)만 나와야 한다,
그래서 오늘 사도(使徒)는 권한다.
(콜로2,6-8) 6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이신 천주 성령님! 당신의 지혜로 말씀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알아 그리스도 안에 살의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 가운데 열두 사도를 따로 뽑으시는 장면을 전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뽑으시기 전에 그분께서 보여 주신 행동은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당신의 최측근이 될 사람들을 뽑으시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것도 밤을 꼬박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자주 조명합니다.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고 계셨고, 그때 성령께서 내리시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3,21-22 참조).
예수님께서는 바쁜 일정 중에도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셨습니다(5,16; 11,1 참조).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장면의 배경에도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9,18 참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도 그분께서는 기도하고 계셨습니다(9,28-29 참조).
수난을 앞두고 올리브산에 가셔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22,42).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는 중에도(“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23,34]),
심지어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에도(“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23,46])
아버지께 기도드리며 그분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셨습니다.
따로 기도하실 필요가 없어 보이는 그 전능하신 분께서 그토록 많은 기도를 올리신 것입니다.
특히 중대한 일을 앞두시고서는 늘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습니다.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도, 거룩한 변모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도, 붙잡히시기 전에도, 그리고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도, 아드님께서는 아버지와 끊임없이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기도하셨는데, 나약한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하여야 하겠습니까?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중요한 결정을 하여야 할 때,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아버지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섬기는 데는 道가 텄는데, 깨달음은?
복음(루카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 밤(저녁)을 지나 날이 새자, 곧 아침(빛)이 되자 열둘을 뽑으셨다. 밤을 빛으로 주어 날이 되게 하심이다. 날(욤)은 ‘진리를 주다.’ 라는 뜻이다. 곧 첫 창조의 모습이다.
(창세1,5.8.13. 2,1-2) 5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8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그리고 나흗날, 닷새날, 엿새날이 지났다.) 2,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 말씀으로 모든 창조를 다 이루시고, 쉼(안식)인 그 진리를 주시기 위해 열둘(12)을 뽑으신 것이다. *숫자 열둘(12)은 12아들, 12지파, 12사도로, 진리가 다 이루어진, 쉼(안식)을 누리는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을 뜻한다.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아직 안식이, 진리가 되지 못한 열둘(12)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구원자로)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 12사도와 많은 군중인 제자들, 큰 무리를 이룬 백성, 모두 아직 진리가 되지 않은, 말씀으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 문자대로, 말씀을 듣고, 병을 고침 받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병 고침은 뱀의 유혹인 더러운 영의 거짓말, 거짓 가르침으로 병든 영혼이 고침을 받는 쉼(안식), 구원의 모형이다.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아 믿는 것이 신앙이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자 살아난 아들을 떠나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는 것이다.
(1열왕17,23-24) 23 엘리야는 그 아이를 안고 옥상 방에서 집 안으로 내려와, 아이 어머니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당신 아들이 살아 있소.” 24 그러자 여자가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야 저는 어르신께서 하느님의 사람이시며, 어르신 입으로 전하신 주님(야훼)의 말씀이 참(진리)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계실 때에 말씀으로 안식, 구원을 받은, 진리가 된 사람을 없었다. 예수님께서 저녁, 밤(어둠, 죄)을 품고 죽으시고 사흗날에 빛(아침)으로 되살아나신 후, 어둠(죄)의 존재들에게 당신의 빛(생명)을 주심으로 그때 영원한 안식(생명)인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 모든 일이 내 안에서 일어났을 때, ‘믿었을 때 이루어짐’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붙잡으려고) 애(哎)를 쓰면 안 된다는 말이다. 곧 내 밖에 예수님을 열심히 섬길 것이 아니라(마태20,28)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고, 깨달아, 하느님의 뜻, 진리의 길로 돌아와, 그리스도 예수님과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깨닫고, 믿게 해 주실, 약속하신 다른 보호자 성령을 ‘청하고 구하고 두드려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진리를, 안식을 다 이루신 삼위 하느님께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 영광을 드리는 기쁨의 축제(미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20,17) 부활하신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아멘)
=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 하시고 흘리신 피,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새롭게 새 창조하심으로 더러웠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창조 주 하느님을 아버지로, 곧 그리스도 안에서 빛, 안식, 진리가 됨을 전하는 기쁜 소식, ‘복음 말씀과 그 모든 것을 증언(보증)하실 성령을 붙들라’ 하심이다.
(시편104,29-30) 29 당신의 얼굴(뜻, 말씀)을 감추시면 그들은 소스라치고 당신께서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30 당신의 숨(영)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십니다.
*성모님께서 말씀으로 첫 아들을 낳았듯이, 우리 또한 말씀으로 첫아들 그리스도를 낳아야 한다. 곧 깨달음을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교회)를 낳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낳는, 한 몸의 관계. 진리가 됨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맏아들)가 되게 하셨습니다.
(에페1,10)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히브12,22-23)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 안식을 이루려 했던 그 자신의 머리를 부인하고, 곧 육신을 부정하고, 죽이고, 첫아들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분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의 맏아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하나인 곳이 하느님 나라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말씀을 깨닫는 낳음의 신앙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6,12-1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2~13)
루카 복음 6장 12절에서 16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임명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공관 복음서(마태10,1~4; 마르3,13~19)에 다 나오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제자들의 사명이 복음 전파에 있음을 보여 주는 문맥에서 12사도의 명단이 나오는 반면에,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서는 제자들을 택한 이유가 예수님께 임박한 고난과 핍박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이 부각된다.
루카는 마르코와 같은 관점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산으로'에 해당하는 '에이스 토 오로스'(eis to oros; into a mountain)라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열두 사도를 택하기 직전의 장면을 다르게 소개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의 임명 전에 홀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셨다는 사실은 루카 복음사가만이 기록하고 있다.
루카 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은 특히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종종 나타난다(루카3,21; 9,18.28.29; 11,1; 22,41).
그렇기 때문에 열두 사도를 뽑기 전에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는 것은, 열두 사도를 선택하는 일이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이루는 너무나 중요한 일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동고동락하며 예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강림 이후에는 복음 전파의 주역이 되며 또한 교회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기도하신 후 그 다음 날에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이들 중에서 열두 제자를 뽑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다수의 제자들의 무리 속에서 열두 제자를 특별히 구별하신 것이다.
여기서 '뽑으셨다'에 해당하는 '에클렉사메노스'(ekleksamenos; he chose)의 원형 '에클레고마이'(eklegomai)에 남성 단수 주격 접미어가 붙어 있어서 예수님 당신 자신이 택하심의 명백한 주체임을 보여 주고 있다.
특별한 자격 요건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예수님의 깊으신 뜻과 은총으로 부름받은 열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도'라는 직책을 주셨다.
'사도' 즉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단어는 '어떤 자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어 파견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아포스텔로'(apostello)의 명사형이다.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파견되는 전권대사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람에게 붙여졌다.
루카 복음사가는 '사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루카9,10; 11,49; 17,5; 22,14; 24,10), 이렇게 사도직에 대한 잦은 언급은 예수님의 지상 선교 활동과 예수님 구원 사업의 동역자로 부름받은 제자들에 의한 교회 시대의 연속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뜻이 들어있다.
2025년 09월 09일 화요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서 열두 명을 뽑아 사도로 세우십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을 뽑으신 데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자 하는 뚜렷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많은 지파가 소멸하고, 남은 지파도 서로 합쳐져 겨우 두 지파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이라는 상징적 숫자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회복시키시어 이스라엘 구원에 관한 하느님 약속을 실현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두 제자들에게 사도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사실 첫 번째 사도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적용되는 이 직분을 제자들에게도 주시면서 제자들을 당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주십니다.
또한 여기에는 당신의 구원 사업을 혼자가 아니라 제자들도 함께 하기를 바라시며, 이 사업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열두 사도를 선택하신 것에는 큰 뜻이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시고 이 일이 하느님 뜻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열두 사도 가운데는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 있고, 다른 제자들도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점차 드러냅니다.
완전하신 하느님 뜻에 따른 선택이지만 우리 눈에는 완전해 보이지 않습니다.
완전함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 그분의 개념이 다른 것은 아닐까요?
이 열두 사도의 부족함과 잘못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시거나 그들을 포기하시지 않고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이로써 사랑이신 하느님의 완전하심이 오히려 더 드러납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점차 그 사랑을 닮아 갑니다.
하느님의 완전하심은 사랑이 아닐까요?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재(再) 창조(創造)의 힘
복음(루카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 할 그 무렵이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요한15,16)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 언제나 길이 남아있을 열매를 청하는 것, 곧 무한이 아닌 유한인 하늘의 것을 청하면 주신다 하심이다. 무한이 유한을 담지 못하면 생명을 공급 받을 수 없다.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모두 주님의 수난 때 도망간 사도들이다. 곧 시몬(땅의 물을 내는 조약돌)들을.....베드로, 곧 하늘의 물을 내는 사도로 만드셨음이다. 실수와 실패 속에서 키워가셨다.
어제 묵상 했듯, 우리가 만족해 했던 땅의 물을 버려야, 부인해야, 끊어야 하는 고난의 시작인 것이다. 그것이 세례의 모형이다.
(골로2,12)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갈라3,27)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 나를 벗고, 부인하고 입는 것, 나의 죽음이다.
(로마8,17-18.29-30)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 많은 군중-큰 무리. 후에 자신들의 뜻을 위한 그리스도가 아님을 알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했던 ‘많은 군중, 큰 무리’다.(마태27,15-23참조) 곧 예수님 수난 중에 도망간 제자들 역시 많은 군중, 큰 무리 중 하나다. (우리들 모습이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 힘, 재 창조의 힘이다.
(2코린5,17)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1코린1,18.21-24.30)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시편119,49-50) 49 당신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당신께서 그것에 희망을 두게 하셨습니다. 50 당신 말씀이 저를 살리신다는 것 이것이 고통 가운데 제 위로입니다.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내 주셨으니 그분 안에서 살게 하소서. 가르침을 받은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서 나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소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