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1일 목요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자비(慈悲)로운 사람 (루카6,27-38)
제1독서<사랑을 입으십시오.>(콜로3,12-17)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화답송>시편150,1ㄴㄷ-2.3-4.5-6ㄱ(◎6ㄱ) ◎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 거룩한 성소에서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웅대한 창공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위대한 일 이루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크시오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
○ 뿔 나팔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비파 타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손북 치고 춤추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거문고 뜯고 피리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
○ 바라 소리 낭랑하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라 소리 우렁차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
복음<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27-3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콜로3,12-17)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6)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서 3장 12-15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사람으로서 성도가 실천해야 할 덕목을 말하면서, 하느님의 성품에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12-14절)과 더불어 평화와 감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권면을 주었다(15절).
이제 이어지는 16절과 17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전례와 영적 친교와 생활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권면을 준다.
이러한 내용을 지닌 16절과 17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현재 명령형으로서 직역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풍부히 머무르게 하여라'(Let the word of christ in you richly)이다.
그리스도께서 전례와 영적 친교와 생활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 속에 풍성히 간직해야 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번역된 '호 로고스 투 크리스투'(ho logos tu hristu; the word of christ)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또한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것은 곧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서(요한6,68) 곧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성경을 가리킨다(2티모3,16).
무엇이 옳으며, 어떤 일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별하는 자리인 마르코의 다락방에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요한17,8)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없이 이 세상에서 복음 선교를 감당해야 할 제자들에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주신 것이다.
한편 '머무르게 하십시오'로 번역된 '에노이케이토'(enoikeito; let dwell)의 원형 '에노이케오'(enoikeo)는 '~안에'라는 뜻의 전치사 '엔'(en)과 '살다', '머무르다'라는 뜻의 동사 '오이케오'(oike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안에 머무르다'라는 뜻이다.
실제적으로는 '~안에 거하여 그에게 영향력을 끼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성도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리잡아 그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또한 '풍성히'로 번역된 '플루시오스'(pllusios; richly)는 부족함이 없이 흘러 넘치는 모습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머무르게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도의 내면에 자리잡아 때에 따라 부족함이 없이 방향과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전에 머물렀던 속되고 불순한 모든 생각과 말들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그 대신에 생명의 말씀이 자리잡아 언어 생활 뿐 아니라 사상과 지식까지 새로워진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콜로3,10).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시편119,105)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성도들 속에 풍성히 머무르게 해야 할 시점이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할 때이고, 그리고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할 때임을 밝히고 있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친교할 때와 하느님께 예배할 때에 그리스도의 풍성한 말씀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편'으로 번역된 '프살모이스'(psalmois)의 원형 '프살모스' (psalmos; psalm)는 '문지르다'는 뜻의 동사 '프살로'(psalo)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수금을 문질러 탈 때 나는 '수금의 소리'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진다.
본문의 시편이 다른 노래들과 구별되는 요소가 있다면,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면서 드리는 찬송이라는 말이다.
특히 '프살모스'는 구약의 시편(the Book of Psalms)을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어(루카20,42; 사도1,20) Psalm으로 번역되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유다인의 전통을 이어 받아 예배에 모였을 경우, 하느님을 찬양하는 찬송시를 지어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기도 했을 것이다(1코린14,26).
그리고 '찬미가'에 해당하는 '휨노이스'(hymnois)의 원형 '휨노스'(hymnos)는 영어에서 '찬송'이라는 뜻의 단어 'hymn'의 어원이다.
'시편'(Psalmos)은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단어인 반면에 '찬송'(hymnos)은 이방 세계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즉 이방 종교에서 어떤 신이나 신화적 인물들을 칭송하는 노래를 '휨노스'(hymnos)라고 불렀다.
이방 종교를 위해 사용되던 노래를 가리키는 용어를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곡들을 빌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영가'(신령한 노래)에 해당하는 '오다이스 프뉴마티카이스' (odais pneumatikais; spiritual songs)는 일반적인 성가곡을 가리킨다.
예배 때에 사용되는 송시(頌詩)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도 바오로가 시편, 찬미가, 영가로 구분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개별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향해 가져야 할 찬양의 마음을 극대화 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도 '성령충만'과 마찬가지로 '찬양'은 의무 사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 2인칭 복수 현재 분사 명령형이 사용되었는데, 그리스어에서 현재 시제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을 의미하므로, 찬양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복음(루카6,27~38)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29)
루카복음 6장 27절과 28절에는 2인칭 복수 인칭 대명사 '휘민'(hymin)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명령의 대상을 '너희'라고 하는 데 반해, 루카복음 6장 29절부터 31절까지는 2인칭 단수 인칭 대명사 '세'(se) 즉 '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2인칭 복수에서 단수로 전환한 것은 이 말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개인을 보다 깊게 성찰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리고 '뺨'에 해당하는 '시아고나'(siagona; cheek)는 정확히 사람 얼굴의 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턱' 또는 '턱뼈'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39절에서는 '오른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근동에서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쳤을 경우나 뒤에서 손바닥으로 쳤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대 풍습으로 볼 때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렸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의의 공격을 받은 것이 된다.
그러나 본문은 이때에 오히려 '다른 뺨'도 돌려대라고 말한다.
이것은 실제로 왼편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라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교훈이다.
원수들의 경멸적인 폭행을 당하더라도, 같이 대적하여 맞서기보다는 사랑의 원리로 무저항, 무보복의 행동을 보이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하여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말이다.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라'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5장 40절은 루카 복음 6장 29절의 후반절과는 달리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사가는 속옷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을 수 없다는 율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탈출22,25~26).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 것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므로, 전당 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이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양도하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조차 취하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다.
반면에 루카복음은 중요한 것을 달라는 이에게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주라는 의미로 겉옷을 먼저 언급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2025년 09월 11일 목요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원수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원수’를 아주 좁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없을 수 있겠지만, 내가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원수라면 저마다 주위에 그런 사람은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가족이 원수인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소극적으로는 피하거나 상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는 뒷담화를 하거나 나쁘게 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구체적 모습까지 제시하십니다. 잘해 주고 축복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루카 6,27-28 참조).
솔직히 미운 사람에게 그렇게 해 주면 그들이 잘될 것 같아서 싫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모른 체하거나 거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우리는 늘 미움이라는 마음속 감옥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건강까지 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싫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차츰 그 마음에는 미움 대신 사랑이 자리 잡아 자신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바로 우리 자신의 해방과 기쁜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은총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 내용을 제가 이해한 대로 표현하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은총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데는 은총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당신 말씀을 따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주님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우리의 응답도 있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말씀이 일하시게 하라.
복음(루카6,27-38)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이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하나. 먼저 하느님께서 선택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기억하자. 곧 주님께 받은 그 말씀으로 하는 것이다. 나의 원수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고 죽으신 그 십자가의 복음, 새 계명, 새 계약으로 용서(容恕)하고 하늘의 생명을 받도록 기도(祈禱)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1요한2,2)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그러기 위해서 먼저 내가 ‘주님의 십자가로 용서를 받았음’을 믿어야 한다. 곧 그리스도의 피로 나의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하게 씻겨 거룩한 사람이 되었음을, 되게하신 그 하느님의 새 계약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간직했을 때, 내 안에 주님의 용서, 사랑이 자라나 이웃에게 진실되게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전해주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사도(使徒)는 권한다~
독서(콜로3,12-17)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 사랑과 평화이신 예수님을 입으십시오. 믿으십시오.’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주님의 말씀, 사랑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여 그 말씀, 사랑이 내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해야 한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 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용서, 사랑이다.
우리의 보호자이신 성령께 의탁한 말씀 묵상과 기도로만 가능한 것이다. 곧 내 힘으로 하지 말고, 높으신 힘, 성령께 의탁해서 하라는 것이다.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성령)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 내가 전하는 말(새 계약)이 틀렸다고 하면 성령의 법으로 응하라는 말씀이다. ‘속옷(율법- 옛 계약)의 실체가 겉옷(진리- 새 계약)임’을 알려주라는 말씀이다.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새 계약으로 깨닫게 해달라고 청하면 주고, 대접 받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씀이다.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 ‘남’은 산상수훈, 황금율에서 성령으로 여러 번 묵상했었다. 곧 성령께서 바라시는 대로 복음을 전하며, 나와 이웃이 함께 하늘의 생명을 얻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 원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원에 이르도록 말씀을 전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주님의 십자가(十字架)로 용서받아 거저 의롭게 된 나(우리)다. 그렇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이다. 나의 수고(愁苦)에 가치를 두지 말고, 생색내지 말고, 하라는 말씀이다.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 곧 구원의 진리, 새 계약의 말씀을 믿는다면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판단이 계속 나온다면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새 계약(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율법(祭祀와 倫理) 그 옛 계약을 사는 것이다. 그 삶은 도덕과 윤리, 그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의 힘(용서)으로 살라고 하시는 오늘 말씀이다.
(로마8,1-3) 1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무죄(無罪)를 우리의 영(靈)에게 증언(證言)해 주시는 은총(恩寵)이신 천주의 성령님!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