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0일 수요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幸福)과 불행(不幸) (루카6,20-26)
제1독서<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콜로3,1-11)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6 이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7 여러분도 전에 이러한 것들에 빠져 지낼 때에는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8 그러나 이제는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화답송>시편145,2-3.10-11.12-13ㄱㄴ(◎9ㄱ) ◎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네.
○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그분의 위대하심 헤아릴 길 없어라.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복음<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6,20-26)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콜로새3,1-11)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5) 이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6)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서 3장 5절에서 5가지로 제시한 성도들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성품들은 인간의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을 때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먼저 '불륜'(음란)에 해당하는 '포르네이아'(porneia; immorality)는 신약에서 명사의 형태로 25회 나오는 단어이다. 이것은 영어에서 '도색'을 의미하는 '포르노'(porno)의 어원이 되는 단어로서 온갖 종류의 비정상적인 성행위 및 불법적인 성관계를 망라하는 표현이다.
그 다음으로 '더러움'(부정;不淨) 에 해당하는 '아카타르시아'(akatharsia; impurity)는 부정 불변사 '아'(a)와 '정결케 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다이로'(kadair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정결치 못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신약에서 명사의 형태로는 10회 나오지만, 형용사 '아카타르토스'(akathartos)의 형태로 32회나 사용되어 우상 숭배나 제의적 혹은 도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세번째로 '욕정'(사욕)에 해당하는 '파토스'(pathos; passion)는 신약에서 3회 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로마1,26; 콜로3,5; 1테살4,5), 고전 희랍어 문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스토아(Stoa)철학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이것은 이어 나오는 '나쁜 욕망'(정욕)으로 번역되어 주로 능동적 측면에서의 악한 욕구를 가리키는 '에피튀미아'(epithymia)와 동의어이지만, 그와 구별되어 수동적 측면에서 제어하기 어려운 욕구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네번째로,'나쁜 욕망'(정욕)에 해당하는 '에피튀미아'(epithymia; evil desire)는 앞에 말한 '욕정'(사욕)과 동의어이지만, 능동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서 신약에서는 명사의 형태로는 38회, 동사의 형태('에피튀메오'; epithymeo)로는 16회 사용된 단어이다.
마지막으로 '탐욕'(탐심)에 해당하는 '플레오넥시아'(plleoneksia; greed)는 비교급으로서 '더 많은', '더 큰'이란 의미의 '플레이온'(pleion)과 '가지다', '소유하다'라는 뜻의 동사 '에코'(ech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자신이 이미 지닌 것과 상관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를 가리킨다.
신약에서는 이 단어가 10회 밖에 사용되지 않았으나 고대 희랍 문헌에서는 자주 사용된 단어이다.
이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성도들이 버려야 할 옛 사람의 성품들인 5가지를 언급하고 난 뒤에 '탐욕은 우상 숭배(idolatry)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탐욕이 바로 5가지의 근원이 되는 욕구이며, 아담과 하와의 인간성 깊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이성(異性)에 대한 탐욕의 드러남이 '불륜'(immorality)과 '나쁜 욕망'(evil desire)이며, 돈에 대한 탐욕의 드러남이 '더러움'(impurity)과 '욕정'(passion)이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다른 것을 더 탐하는 탐욕(greed)은 그야말로 모든 죄악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야고1,14.15).
이러한 탐욕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면, 하느님 대신에 탐욕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고 우상이 되는 것이다. 우상은 하느님과 나 사이에 있는 그 무엇으로서, 하느님을 잘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체의 모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성(異性)이나 명예가, 또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이나 지식 등이 우상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상이 커지게 되면, 그것이 하느님을 가리워서 결국 하느님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세적인 것들(the parts of you that are earthly)을 죽이라는 강한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있어야만 가능한데, 그것도 일회적인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늘 성령 충만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사도 바오로는 현세적인 것들, 즉 땅에 있는 지체의 탐욕을 죽이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곧 불순종의 사람들이며, 이들 위에 하느님의 진노가 내릴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에페소서 5장 6절과도 조화를 이룬다.
"여러분은 어느 누구의 허황한 말에도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에페5,6)
'진노'로 번역된 '오르게'(orge)는 과일의 즙이 꽉 차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격체에 사용되먼, 좋지 않은 감정이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나타내게 된다.
여기서는 하느님 안의 '공의로운 분노'(의로운 분노; 의노)가 가득 차 올라있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나타내기 위해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의노는 복음과 하느님의 가르침에 대항하는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이다.
여기서 '내립니다'로 번역된 '에르케타이'(erchetai)는 '에로코마이'(erochomai)의 현재형인데, 이것은 장차 내릴 하느님의 진노가 확실함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제는 먼 장래만이 아니라 죄를 짓는 현재의 삶 속에서도 하느님의 진노가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때로는 우리가 죄 때문에 살아가도, 진노를 내리시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거나 유보하신다(로마2,23.24). 이 죄에 대한 침묵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현재적 심판의 일종이다.
물론 이 죄에 대한 최종적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하느님의 진노가 내린다는 말이, 미래적 개념과 더불어 믿는 자를 죄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한 현재적 진노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오늘 예수님께서는 행복과 불행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서가 아홉 가지 행복 선언을 전하는데(5,3-12 참조), 루카 복음서는 네 가지 행복 선언에 이어서 네 가지 불행 선언을 함께 나열합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 선언들 각각은 서로 대칭을 이룹니다.
곧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첫째 선언), 지금 굶주리는 이들과 지금 배부른 이들(둘째 선언), 지금 우는 이들과 지금 웃는 이들(셋째 선언), 그리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이들과 환대를 받는 이들(넷째 선언)이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자의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겪고 있는 암울한 상황과는 정반대로 밝은 미래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며 울지만 하느님 나라가 올 때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고 배부르게 되며 웃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후자의 사람들을 두고는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현재 누리는 것과 정반대의 암울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부유하고 배부르며 웃는 사람들은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은 것이며, 하느님 나라가 오면 오히려 굶주리고 슬퍼하며 울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여 모은 재산으로 여유롭게 사는 것, 먹고 싶은 것을 사 먹고 좋아하는 취미나 여가 활동을 즐기면서 그 나름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소소한 행복도 느끼면서 살아야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달콤함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 곧 지금의 삶에 만족하려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이 말씀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에게 경고합니다.
이와 비슷한 경고의 말씀도 귀담아들읍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마태 6,2.5.16).
현실이 주는 위로가 크면 클수록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위로가 설 자리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참 행복은 바로 하느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것을 차지하려면 현세에서 누리는 달콤함과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루카 6,20-26)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행복 아니다. 바라크(하늘의 생명력) 복이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하신 말씀 산상수훈이다. 마태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 했다.
앞17절 이하에서 큰무리, 군중이 자신의 뜻과 병(육)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을 찾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의 치유, 곧 사람의 영을 구원하려 오신 그리스도 이신 것, 사람의 눈으로 보고 말한 계명을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의 그 부자가 아닌~그 사람의 의로움은 구원의 권위가 없음을 깨닫고 그 자기 의로움을 부인하는, 버린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 마음의 가난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의지하게 되어 하늘의 생명을 얻는 그 복을 받는 것이다.
21 행복하여라,(복이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 세상의 의로움을 否認하는 그 마음, 그 굶주린 마음. 그 우는 이는 하늘의 생명, 구원의 의로움으로 배불러 웃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다.
세상 사람들보다 믿는 이들, 곧 자신의 뜻을 위해 사람의 말(계명)로 예수님을 따르는 큰 무리, 군중 같은 신앙인들에게~~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복이다)
= 하느님의 뜻을 위한 신앙인은 사람의 뜻인 그들을 거슬러 말해야 하니 미움과 모욕은 당연한 것이다.
(필리1,29) 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 자기 의로움, 명예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그 큰 부자인 것이다. 그가 지금, 세상에서는 웃지만~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 하늘의 의로움, 곧 십자가의 복음으로 얻는 하늘의 의로움, 그 하늘의 예복을 입지 않는 이는 하늘에서 하늘의 양식인 말씀(씨)이 없어 먹을 것, 씹을 것이 없는 굶주림으로 이만 갈게 된다.
(마태22,12-14)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하늘의 혼인 잔치)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 도덕과 윤리의 그 자기 의로움 그 옷이 더 좋다고, 십자가의 의로움을 입지 않는, 곧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신앙인, 그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는 첫째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꼴찌로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루가16,15)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어느분의 노파심,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 맞다. 그렇게 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으로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는, 미워하는 그를 사랑할 수도 용서도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 그 하느님의 은총, 은혜로 얻는 자유 쉼 안식을 깨달아 감사하는 삶, 그것이 신앙 생활이다. 기도와 내 의지를 꺽으려는 눈물 나는 그 노력 없이 어떻게 깨닫겠는가~~
(갈라5,13)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아멘.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루카6,20~26)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2~23)
루카 복음사가에 의하면 네번째로 소개되는 이 축복은 마태오 복음의 여덟번째 축복에 이어 나오는 보충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오 복음 5장 11~12절과 상응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주어질 박해에 대해 네 가지로 표현한다.
첫째는 미워하는 행동이 나타날 것으로 예고한다.
'미워하면'에 해당하는 '미세소신'(misesosin; hate)는 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 뿐만 아니라 풀기 어려운 적개심을 뜻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여기서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해서 강한 적개심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적개심은 믿는 자들을 쫓아내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쫓아내고'로 번역된 '아포리소신'(aphorisosin; separate; exclude)는 '내쫓다', '배척하다' 라는 뜻이며,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믿는 자들을 소속된 공동체로부터 추방하거나 소외시켜 버렸다(요한9,22참조).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하여 모욕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욕하고'에 해당하는 '오네이디소신'(oneidisosin; reproach; insult)은 깔보고 욕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중상하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원문에는 '에크발로신 토 오노마 휘몬 호스 포네론'(ekbalosin to onoma hymon hos poneron; reject your name as evil)이다.
이것은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리면'(cast out)이라는 뜻인데, 믿는 자들이 당하게 될 핍박을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이며 제자라는 그 이름 자체로 말미암아 적대자들에게 악하다고 단죄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열된 네 가지의 경우가 모두, '사람의 아들 때문에, 즉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게 되는 고난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고난을 받는 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신앙인들은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분명 박해와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박해받는 자마다 '생명의 화관', 즉 영광의 상급에 대한 약속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축복이 되는 것이다(묵시2,10).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여기서 '그날'(in that day)는 바로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는 때, 즉 세상으로부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받는 때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기뻐하고 뛰놀아라'를 단순 과거 명령법으로 쓰고 있다.
단순 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어느 특정한 시간에 일시적으로 취해져야 할 것을 표현하는데, '기뻐하고 뛰놀아라'는 명령은 '그날에'라는 시간에 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박해가 지나간 후에 그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핍박의 현장에서 적극적인 기쁨의 행동을 취하라는 역설적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핍박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뛰놀다'라는 역설적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 이유는 하늘에서 박해받는 자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에 해당하는 '미스토스'(misthos; reward)는 선한 행위와 노력에 대해 하느님께서 수여하실 보상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박해를 당하는 그들의 행위가 선한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들이 당했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심으로써, 신실한 종들에게 꼭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똑같이 그렇게 핍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루카복음 6장 26절과 관련지어 보면, 거짓 예언자들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듣고 칭찬을 듣는 자는 거짓 예언자라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하나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기뻐 뛰놀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1베드4,14; 로마8,36).
2025년 09월 10일 수요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 내용인 루카 복음서의 행복 선언은 군중을 대상으로 한 마태오 복음서의 행복 선언과(5,1-12 참조) 달리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가난한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가난하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가난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기로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가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내주시는 하느님, 참으로 가난하시고 그래서 행복하신 하느님을 닮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형제들에게 부족한 것을 자신들에게도 필요한 것으로 여기기에 배고픈 이들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선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배부름, 곧 삶의 충만함을 알며 그것을 누리기에 행복합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며 겪는 제자들의 지금 상황은 기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퍼하고 웁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흘리는 눈물이기에 위로가 따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승리로 이끄실 것이라는 희망이 그들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복음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상을 제안하고 그것을 위하여 노력할 때, 세상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안정을 유지하고자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며 모욕하고 중상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박해와 미움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박해받는 것은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뜻임을 깨닫고 기쁨을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십자가(十字架)의 복음을 진리(眞理)로 믿어
복음(루카6,20-26)
20ㄱ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 오신 그리스도시다. 곧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하신 말씀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안됨을 뜻한다. 그래서 ‘눈을 들어’ 를 빼도 아무 문제가 없음을 말씀을 넣으신 것이다.
20ㄴ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 행복, ‘바라크’- 복으로 창조 ‘바라’에서 나온 말로 하늘의 생명력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루가4,18)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배부르고 웃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미움을 받게 된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주님께 복을 받는 사람들을 찾아봤다. ~
(루가18,13)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주님께 의탁하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받았다. 복을 받은 것이다.
(마태15,26-27)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말씀을 꼭 먹어야 할 ‘강아지(犬)’로 낮춘 사람이다. ‘큰 믿음’으로 인정 받았다. 복받은 것이다.
(마태8,8)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인간의 것이 아닌 주님의 ‘한 말씀’이면 됨을 아는 사람이다. ‘가장 큰 믿음’으로 인정받았다. 복받은 것이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 복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이다.
(루가18,11-12)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인간의 계명, 교리)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마태7,22-23)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예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루가16,15)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마르7,7-8)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인간의 도리)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 요점(결론)의 말씀~
(마태21,31-32)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제사와 윤리를 열심히 지키며 착하게 살아, 의롭게 산 사람이 아닌,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흘리신 피로 씻어 ‘의롭다, 거룩하다’ 하신 그리스도, 그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로 믿어 그리스도와 하나.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모두 하느님의 지혜이신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깨달을 수도, 믿을 수 있는 말씀이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인간들의 생각, 관점인 세상의 선악, 곧 도덕과 윤리의 죄, 의(義), 심판을 부수심이다.
하느님의 뜻을 적대한 그 살인죄로 감옥(세상)에 갇힌 죄인을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시고, 꺼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은 이들은 ‘그럴 수 없다’며 ‘내 죄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 도리지’ 하며 감옥(세상)에서 열심히 착하게 살려고 수고하며 애쓴다. 그러나 그 곳의 열심, 의로는 절대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율법이 아닌, 하느님의 율법에 따르면 모든 것이 피(血)로 깨끗해지고,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의 피’로다.(히브9,11-22)
*오늘날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세상(감옥)으 감투로 만족)해하며, 영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는 불행한 이들이 많다.
(1코린7,31)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페2,1-5)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십자가)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 청합니다. 저희들의 눈과 귀, 마음에 충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