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3일 토요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반석 위에 집 (루카6,43-49)
제1독서<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1티모1,15-17)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7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화답송>시편113,1ㄴㄷ-2.3-4.5ㄱ과 6-7(◎2) ◎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
○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주님은 모든 민족들 위에 높으시고, 그분의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네. ◎
○ 누가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 같으랴?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 억눌린 이를 흙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
복음<너희는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루카6,43-4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제1독서(1티모1,15~17)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5ㄴㄷ)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사명이 죄인들의 구원인데, 자신이 바로 그 구원의 첫번째 대상인 가장 큰 죄인이라 고백한다.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을 때 저지른 예수님께 대한 모독과 박해와 학대에 대하여 자신은 예수님의 자비하심으로 용서받아야 할 첫번째 대죄인이라 고백한다.
자신이 저지른 과거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한량없으나 이렇게 자랑하는 것은 자신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가 너무 큰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이고, 자신도 이런 엄청난 죄를 용서받고 주님의 복음의 도구가 되고 본보기가 되었으니, 다른 모든 죄인들도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도록 하느님 자비의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들어오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자신을 '첫째가는 죄인', '죄인들의 우두머리(괴수)'라고 고백하는 사도 바오로의 겸손을 묵상하면 좋겠다.
아브라함도 소돔을 위해 기도할 때, 하느님 대전에 자신을 먼지와 재와 같다고 고백했다.'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주님께 감히 아룁니다.'(창세18,27)
요셉도 형들에게 버림받고 구덩이에 던져지고 이집트로 팔려가 포티파르의 집에서 종살이(창세37,12~36), 감옥에서 옥살이(창세39,1~23)하는 수모를 겪으며 땅바닥까지 내려갔다.
모세도 소명을 받기전(탈출3,7이하), 미디안 지방 이드로 장인 밑에서(탈출2,15이하) 자기식의 의(義)와 혈기를 버릴 수 있도록, 40년동안 양치는 목동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윗도 목동에서 시작하고(1사무16,11; 17,34~39) 젊은 날을 바닥에서 보낸다. 그리고 시편22장 7절에서 '그러나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라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귀하게 쓰기 원하는 사람들을 먼저 쓰러지게 하고 철저하게 실패하게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는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배우게 한다. 자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무력한지, 하찮은 존재인지, 큰 죄인인지를 배우게 한다.
진정한 힘이란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아는데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보잘 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왜 귀하게 쓰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닥을 거쳐가게 하시는가?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이 놀라운 하느님의 특은이요, 무상의 선물임을 깨닫고 겸손하게 소명을 완수하게 함과 동시에 바닥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의 굴로 간다(1사무22,1~2). 거기서 곤경에 빠진 이들, 빚진 이들, 그 밖에 불만에 찬 사람들이 모여들어 400명 가량되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다윗이 바닥에서 이처럼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그가 섬길 백성들의 실상을 알게 된다.
그런 까닭에 백성들과 소통할 수 있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으며, 그들의 아픔과 생각을 알기에 잘 섬길 수 있었다.
훌륭한 요리사가 되려면, 설거지부터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자고로 스승에게 배우려면, 제자는 먼저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면서 가르침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테니스 선수가 되려면, 시합을 참관하며 공줍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유도 선수로서 성공하려면, 쓰러지는 법(낙법)을 배워야, 즉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육화의 신비에 대해서 필리피서 2장 6~9절에서 '겸손의 하강과 상승의 신비'로 묘사한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발을 닦아 주어야 하고, 먼저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표양으로 보여 주셨다(요한 13,1~20). 영성적으로 세족례와 성체성사의 정신과 십자가 사건은 동일한 사건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평지 설교(6,17-49 참조)의 마지막 단락에 해당합니다.
이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행복과 부유한 이들의 불행을 선언하셨고(6,20-26 참조), 원수를 사랑하고 아버지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하셨으며(6,27-36 참조),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 하지 말고, 용서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6,37-42 참조).
그리고 설교를 마무리하시는 오늘, 이 모든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시려고 비유를 하나 들어 설명하십니다.
강가에 집을 짓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땅을 깊이 파서 반석을 찾고 그 위에 기초를 놓아 집을 짓습니다.
홍수로 불어난 강물이 들이닥치더라도 단단한 기초 덕분에 그 집은 끄떡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런 기초 공사 없이 맨땅에 집을 짓습니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여기서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은 예수님 말씀을 듣지만 행동에 옮기지 않는 자를, 단단한 기초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예수님 말씀을 행동에 옮기는 이를 가리킵니다.
말씀을 듣는 일은 모든 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사람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물과 같은 말씀들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요?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남이 나에게 하여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하여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땅을 깊이 파서 반석을 찾고 그 반석 위에 기초를 놓아 집을 짓는 일은, 사실 대단히 번거롭고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입니다.
맨땅에 지은 집과도 겉보기에 큰 차이가 없어서 우리는 이 기초 작업을 건너뛰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듭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기초 없는 집이 속절없이 무너지듯, 우리가 듣기만 한 말씀도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바위에 떨어진 씨앗의 운명을 기억합시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8,13).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
(루카 6,43-49)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 먼저 어제 37절의 말씀 묵상을 통해 말하지면, 좋은 나무는 용서의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심판으로 죄라는 열매를 맺고 주는 것이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 나무는 하느님의 계약(스타오로스-기둥), 곧 십자나무의 희생(대속의 죽음)으로 얻는 그 구원의 계약, 하느님의 계명을 뜻한다.(탈출15,25참조)
그 십자나무(기둥)를 구원의 진리로 믿어 그 나무와 하나가 되면 용서, 곧 포도(생명)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아닌 아담처럼 선악의 그 사람의 계명으로 먹고 지켜,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한다면 가시나무의 열매인 심판과 죄, 먼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창세3,18~ 참조)
좋은 나무, 곧 십자나무의 희생으로 맺는 열매는 죄인을 의인으로, 하늘의 생명을 주지만 나쁜 나무, 곧 사람이 스스로 지킨 그 신앙(나무) 의 열매는 심판을 줄 뿐이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성경은 사람의 마음은 모두 악하다 하신다.( 창세8,21 마르7,20~ 로마3,10~ 시편141,1~ 등) 그러니 인간 중에 선한 사람, 선한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마태19,17)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 선하신 하느님의 뜻으로 오신 그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선한 마음의 선한 사람인 것이다.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질 그릇인 내 마음에 예수님의 희생, 죽음 그 선한 마음, 곧 죄인들을 위한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구원의 진리로 마음에 담으면~ 그 선한 것이 입 밖으로 나가 죄인들을 구원으로 살리게 되지만,~ 선악의 법, 도덕과 윤리로 담으면 법의 열매로 사람을 판단하고 죽이는 악한 말로 나간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깨달아 믿고 마음 안에 간직하는 그 킵, 실행인 것이다.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 반석~(시편18,3) 3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이십니다.
= 하느님의 뜻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의 말씀을 내(땅) 마음 깊은 곳에 담고 그 말씀 위에 내 집(신앙, 성전)을 지으면, 어떤 시련 속에서도 희망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시련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임을 알기에~(히브12,7 야고1,12 등) 그래서 어떤 처지에서든 감사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 예수님의 말씀,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이 없는 맨 땅, 사람 스스로의 열심히 짓는 집(신앙, 성전)은 시련이 오면 하느님의 뜻을 모르니 원망과 불평으로 절망하게, 무너진다.
* (1데살5,18)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아멘.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6,43-49)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5)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스'(kardias; heart)의 원형 '카르디아'(kardia)는 원래 동물의 몸 속에 있는 혈액 순환의 중심이 되는 기관, 즉 심장을 뜻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점차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명의 자리와 중심으로 여겨졌던 '마음'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여기서도 감정, 생각, 판단의 중심 자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으며, 이곳이 또한 말(언어)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또한 '넘치는 것'으로 번역된 '페릿슈마토스'(perisseumatos; abundance; overflow)의 원형 '페릿슈마'(perisseuma)는 '일정한 수나 양을 초과하고 넘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 '페릿슈오'(perisseu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철철 넘칠 만큼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생각과 감정의 중심 자리인 마음에 어떠한 생각이 넘칠 만큼 가득차게 되면,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생각이 입을 통해 흘러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면서 즉각적으로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한 것은 그들이 평소에 그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무리 좋은 행동을 하더라도, 나쁘게만 보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곳간'으로 번역된 '테사우루'(thesauru; treasure)의 원형 '테사우로스' (thesauros)는 명사이며, '물건들과 귀중한 것들을 모아 두고 보관하는 장소', 즉 '금고', '창고'의 의미와 '저장소에 보관된 귀중품 자체', 즉 '보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가 다 적용된다.
여기서 '선한 곳간'이란 타고난 성품, 또는 오랜 시간을 거쳐 가꾸어 온 좋은 인격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신이 가꾸어 온 마음의 보물이 어떠한 것이냐에 따라 그가 하는 말과 행위도 달라지는 것이다.
2025년 09월 13일 토요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집을 짓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십니다.
하나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루카 6,48) 다른 하나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6,49)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집을 짓는 데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들 것입니다.
저는 건축을 잘 모르지만, 잘 아시는 분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공사에서 시간과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은 기초 공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반석 위에 기초를 놓는 사람이 한창 집을 짓고 있을 때, 맨땅에 집을 짓는 사람은 이미 완성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더 적은 비용으로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비교가 됩니다.
기초 공사를 하는 사람은 이미 완성된 다른 사람의 집을 보면서 자기가 택한 방식에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 반면 기초 공사를 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더 현명하다고 우쭐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완성된 그 두 집에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련이 닥칠 때입니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칠 때 기초 공사를 한 집은 여기저기 부서질 수 있지만 금방 고칠 수 있으며,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초 공사를 하지 않은 집은 완전히 무너져 버려서, 그 주인이 이제까지 한 일이 모두 헛되고 맙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말씀을 따르는 이는 삶이 그리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어렵고 고생스럽고 내적 갈등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반면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더 빨리, 더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련에 부딪힐 때 어떤 삶이 옳은지 드러납니다. 멀리 내다보아야 하겠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을 알고, 믿고, 누리는 것이 실행.
복음(루가6,43-49)
43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 좋은 나무- 하늘의 대속, 그 하느님의 진리. 나쁜 나무- 그 좋은 하늘의 진리를 인간의 뜻, 법으로 받는 것. (나무는 기둥을 뜻하며 기둥은 하느님의 계약을 뜻한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에댄의 나무를 보자~
(창세2,8-9)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모두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나무다. 곧 두 나무를 한 나무로 봐야(깨달아야)한다. (원어로 보면 한 나무로 쓰였듯)
선이 악을 품고 하나가 되어 악에게 생명을 주는 그 한 나무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나무인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뱀의 유혹으로,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선과 악, 그 둘로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본 선과 악은 하나가 될 수가 없다.
사람은 스스로 선과 악을 하나로 할 능력이 없기에 그 선과 악이 법이 되어 아담 자신부터 심판한 것이다. 그래서 그 선악의 아담이 힘들여서 한 모든 것의 결과가 죽음이다.
(창세3,17-18)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 아담이 먹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나쁜 나무다. 생명을 줄 수 없는 가시덤불 만 내는 가시나무다. 그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무화과는 구약으로 율법(제사와 윤리)을 뜻하고, 포도는 신약으로 진리를 뜻한다. 곧 하느님의 지혜인 십자나무의 예수 그리스도다.(요한14,6)
(로마3,20-24)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율법으로 자신의 죄(악)를 깨닫고, 그 악을 대속하신 ‘십자나무의 그리스도로 건너와 생명을 얻으라’는 에덴동산과 성경 전체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이다. 그래서 죄를 알게하는 율법(무화과)과 그 죄를 대속해 생명을 주는 진리(십자 나무), 모두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나무인 것이다.
그런데 율법(제사와 윤리)에 멈춘 그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게 되면 하늘의 용서, 생명을 얻지 못하기에 그 자신이 가시나무, 나쁜 나무가 된다.
인간의 의로움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인간의 의(義)는 도리이지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율법, 그 옛 계약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시고 치워버리신 그 새 계약의 그리스도께로 건너와야 한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옛 계약의 나를 비우고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를 담는 것, 좋은 나무로 좋은 열매를 맺는 선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착하게 사라고 가르치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대속하신 당신으로 하늘의 용서, 생명을 받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그래서 무지랭이 같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그 사랑을 절절히 깨닫고 믿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착한 삶이다. 인간의 계명을 지킨 착함, 선함과는 다른 것이다. 그 착함, 선함은 구원의 힘이 없다, 무력하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구원의 능력인 새 계약의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는 것, 선한 것이다. 그 선한 마음에서는 하늘의 생명을 주는 십자가의 복음이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 나온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착하게 살자고, 살라고 종교 행위에 열심하라.’고 권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 하늘의 용서로, 거저 의로움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 실행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착함, 선함이다. 선(그리스도)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착하게 사는 것만이 신앙의 목적이었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다. 예수님의 대속은 창조 이전부터 구원의 계획, 계약 안에 있었음을 기억하자(에페1,4~)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 사람이 자신의 본질, 곧 땅(흙), 그 없음(죽음)의 존재임을 알고, 반석(생명의 물)이신 예수님만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아 그 예수님 위에 집(나)을 지을 때, 곧 그분과 하나가 될 때 그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그 끝은 영원한 승리, 생명임을 믿기에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믿음, 누림이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다.
(요한6,68)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 땅, 그 사람의 의로움, 곧 구원의 힘, 능력이 없는 열심한 활동(행위), 그 위에 집(나)을 지으면 시련이 왔을 때, 절망에 빠지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사람(흙- 없음)의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못되어 허물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자신의 열심, 의로움의 자신을 믿는 것,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말씀)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로마10,4) 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보호자 성령님! 오늘 주신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죽으러 오셨음을 알고, 그분 십자나무의 열매인 용서, 자유, 생명을 누리는 그 말씀을 실행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