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5일 월요일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루카7,1-10)
제1독서<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1티모2,1-8)
사랑하는 그대여, 1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3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4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6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제때에 드러난 증거입니다.
7 나는 이 증거의 선포자와 사도로,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할 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8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화답송>시편28,2.7.8-9(◎6) ◎ 간청하는 내 소리 들으셨으니 주님은 찬미받으시리라.
○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당신 지성소로 두 손을 들어 올릴 때, 간청하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
○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방패, 내 마음 그분께 의지하여 도움을 받았으니, 내 마음 기뻐 뛰놀며, 내 노래로 그분을 찬송하리라. ◎
○ 주님은 당신 백성의 힘이시며, 당신 메시아에게는 구원의 요새이시다.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당신 재산에 강복하소서. 그들의 목자 되어 영원히 이끄소서. ◎
복음<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7,1-10)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제1독서 (1티모2,1-8)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8)
티모테오전서 2장 1-7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만인(萬人)과 위정자(爲政者)를 위하여 중재 기도를 명령하며, 중재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어지는 티모테오 전서 2장 8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공적 예배(禮拜) 때 남녀 성도의 품행 및 창조원리에 근거한 남여 상호간의 기본 질서에 대해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그러므로'로 번역된 '운'(un; therefore)은 새로운 문장으로 내용을 전환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문장 전환 접속사이다.
그리고 '바랍니다'로 번역된 '불로마이'(bullomai; I will; I want)는 '원하다', '소원하다', '열망하다' 라는 뜻을 지닌 단어인데, 여기서는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도자요 사도이며, 이방인의 스승으로서의 권위가 포함된 다소 권위적인 명령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권고하는 대상을 '남자'로 국한시키고 있다.
이것은 여자가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본절이 남자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단지 회당에서 남자들이 기도를 인도했던 관례에 비추어 볼 경우에 그렇게 생소한 것은 아니다.
공적 예배 때 원로(장로)들이 자연스럽게 기도 순서를 맡았던 교회의 역사적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전서 2장 8절 이하에서부터 교회의 질서를 염두에 두고 공적 예배 때 준수해야 할 규범(規範)에 대해 계속 권고하고 있다.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사도 바오로는 당시 그리스도인 회중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남자들이 대표로 기도하는 것을 전제하고 본문의 권고를 주고 있다.
이들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기도의 태도를 특별히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성을 내거나 말다툼이 없어야 한다.
성 요한 금구는 "당신은 당신의 형제에게 불리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그러나 당신의 기도는 그에게 불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 불리하게 된다.
'그에게도 꼭 같은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있게 해 주십시오. 그를 쳐주십시오. 그에게 보복하여 주십시오'라고 경건하지 않은 말로 기도를 드리면, 당신은 하느님의 분노를 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라고 말해 여기서 말하는 분노의 기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말해 준다.
'말다툼'으로 번역된 '디알로기스무'(diallogismu; doubting; disputing)는 본래 '대화하다'라는 뜻을 지닌 '디알로기조마이'(diallogizomai)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의논', '의아하게 생각'(루카5,22), '변론', '논쟁'(루카9,46)등의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며, '시비', '따지기'(필리2,14)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트집잡기 좋아하는 이들의 공연한 시비'를 말한다.
둘째, 이들은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에는 고개를 숙이고 하는 기도, 하늘을 향해 눈을 들고서 하는 기도,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하는 기도 등 많은 자세가 있지만, 여기서는 보다 보편적인 기도 자세로서 일어나서 손을 들고 하는 기도를 말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손을 들고 하는 기도, 즉 기도의 외적 자세로서의 손의 위치가 아니라 '거룩한' 손을 들고 하는 기도, 즉 기도의 영적 태도에 관한 것이다.
'거룩한 손을 들어'로 번역된 '에파이론타스 호시우스 케이라스' (epairontas hosius cheiras; to lift up holy hands; lifting up holy hands)는 흠이 없고 정결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기도하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거룩한'으로 번역된 '호시우스'(hosius; holy)는 일반적으로 '부정한 것과 단절된 상태'를 뜻하는데, 단적으로 말해 살인이나 간음, 도둑질 등과 같은 추악한 범죄에서 분리된 상태, 즉 '부당한 행위로 말미암아 더럽혀지지 않은 상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티모테오 전서 2장 8절은 만일 기도하는 자가 이러한 부정한 범죄로 자신을 더렵혔다면, 결코 공적 예배 때에 대표(代表)로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시편24,3-4; 마태5,23-24).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 (시편24,3-4)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하느님의 말씀을 쓰는 두 단어는 ‘로고스’와 ‘레마’다.
‘로고스를 그릇으로’ 보면 ‘레마는 내용’이다. ~
(요한1,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여기에서 ‘말씀’이 ‘로고스’다. 그러니까 보이는 예수님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 은총, 은혜, 진리, 영광, 사랑이 ‘레마’인 것이다. 이 선(先)지식을 가지고 오늘 복음으로~
복음(루카7,1-10)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병행복음 (마태8,8)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예수님(로고스)께서 친히 오시지 않아도 말씀(레마)이면 된다는 믿음이다.
치유 피정(治癒 避靜) 같은 곳에 갔을 때,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선포(宣布)되는 주님의 말씀’보다 사제(司祭)나 치유 은사자(隱事者)의 안수(按手)를 받는데, 곧 그분들의 손이 직접 닿는 것에 더 열을 올렸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주님의 한 말씀이면 됩니다.”한 백인대정의 모습이 정말 놀랍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아멘)
*2022년 9월 11일자 서울주보 ‘그리스도교의 중심은 무엇일까?’를 보면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시고 이분의 현존은 성경과 성전(성스러운 전통, 전승)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셨는데,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록한 것이 성경(聖經)이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이다. 아니다. 맞다.’ 굳이 분리(分離)할 차원(次元)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요한21,25) 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 그래서 요약(要約)하여 주신 것이 성경(聖經)이다. 성경 한 권(券), 한 말씀이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백인대장의 믿음이다.
성경(聖經) 전체(全體)는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기록(記錄)한 ‘말씀’ 책(冊)이다.(루가24,27) 예수님(로고스) 안에 하느님의 뜻(레마)이 담긴 것이 성경이다. 곧 성경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신앙(信仰)이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그 많은 성전(聖傳, 전통, 전승)들이 다 진리(레마)라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오히려 말씀을 폐기(廢棄)시킬 위험이 있을 뿐이다.(마르7,13) 그러니 성경(聖經)만으로 안 되고 성전(聖傳)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난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또 <성경은 계시를 충실히 전달되고 있지만 글자로 된 성경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아무나 해석하고, 뜻풀이를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통해, 사도들의 후계자들에게 전달되었기에 그 후계자들, 즉 교회의 교도권이 성령의 빛을 받아 그 말씀을 충실하게 보존하고, 올바르게 해설하며 온 세상에 전파할 수 있습니다.> 하셨는데~
그러면 성경(聖經)은 일반신자(信者)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사제(司祭)들만이 성령의 빛을 받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사제께서는 ‘자신은 성경이 전공이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놀라 자빠질 뻔 했는데 이 말은 더욱 놀라 자빠질 일이다.
곧 ‘그리스도인(人)은 모두가 사제단(司祭團)이다.’ 성령(聖靈)을 받은 모든 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1베드2,5참조) 그리고 해석(解釋), 해설(解說)? 혹 ‘어리석다’하신 ‘사람의 지혜(知慧)로?(1코린3,19) 해석(解釋), 해설(解說)이 아니라 ’깨달음‘이어야한다.
곧 글자, 문자(로고스) 안에 하느님의 뜻(레마)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 ‘레마’는 ‘인간(人間)의 지혜(知慧)’로는 도저히 알 수 없기에(1코린1,21) 성령(聖靈)께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신다.
(1요한2,27) 27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성령)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깨닫)하게 해 주실 것이다.
(1코린2,9-10)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聖靈)을 찾고, 구하고, 두드려라”하신 것이다.(루가11,9-13)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나를 붙들자 마라”하신 것이데(요한20,17) 더군다나 사람들의 구전(口傳)으로 내려온 성전(聖傳)을?
초대(初代)교회 때에는 가르침을 받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성경(聖經)을 연구(硏究) 했다는데(사도17,11), 그러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성전(聖傳)을 받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옳은 진리(레마)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2티모3,14-15) 14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5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하셨는데 어찌 이런 일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일’만 하셨고. 그 ‘한 가지’를 깨달아 믿으면 되는 것이다.(어제 묵상참조) 그 깨달음은 성경(聖經)으로 충분(充分)하며 성전(聖傳)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깨닫고 믿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은 성전(聖傳)까지? 성경을 보고, 깨닫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그러니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 땅(세상)의 것이 허무요 헛된 것임을 깨닫고, 세상적인 나를 버리고, 부인(否認)하는 그 죽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체로 그분과 한 몸(하나)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성경, 곧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안되면 성경(聖經), 성전(聖傳), 모두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성경(聖經)의 마지막, 묵시록(黙示錄)에~
(묵시3,5.15-16. 20,15) 3,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20,15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하느님의 지혜, 은총,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을 성령의 가르침, 이끄심, 보호하심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무요 헛된 무용지물이기에 예수님이 아닌 성령님을 ‘청하고 구하고 두드려 붙들라’ 하셨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살 수 있도록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7,1-10)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2-3)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마태8,7)
'저는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에 해당하는 '우크 에이미 히카노스'(ouk eimi hikanos; i am not worthy; i do not deserve to)에서 '히카노스'(hikanos)는 '가치 있는', '적합한', '알맞은'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7절에서 '유다인인 내가'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거나 합석하지 않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유다인임을 밝히셨는데, 이것은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시험하신 거라고 볼 수 있다.
'유다인인 내가 굳이 너에게 가서 그를 고쳐야 하느냐?'의 질문에 대해,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저는 주님께서 저희 집에 들어오실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등의 교제를 금지하는 유다인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 백인대장의 사려깊은 배려이기도 하며, 또한 마태오 복음 15장 25절과 27절에서 가나안 여자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 달라는 겸손과 믿음의 모습과도 비슷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렇게 이방인 백인대장의 겸손하고 믿음있는 모습을 강조하여 마태오 복음의 독자인 유다계 크리스챤들에게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저'로 번역된 '모논'(monon; only)는 수식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한하거나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 부사로서 '단순히', '오직'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logo; the word)는 '말씀'이라는 뜻의 '로고스'(logos)의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만 한 말씀으로 하옵소서'이다.
백인대장은 구약의 나아만 장군과 같은 이방인이면서도 주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병을 고쳐 주기를 바라는(2열왕5,11) 주술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방인 백인대장이 바라는 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처럼 주문을 외거나 주술적 기원을 하는 행위가 아니었고, 스스로의 이름과 신적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고침(치유; 나음)을 입으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이방인 백인대장은 주님의 한 '말씀'(logos)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은 참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이다(루카4,26; 히브1,3).
연중 제24주간 월요일복음 (루카7,1-10)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만 한 자격이 없습니다(6)
오늘 복음에서 로마의 백인대장이 자기 종을 고쳐 주십사고 청한다. 그 종은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 병은 예수님만이 고쳐주실 수 있는 병이다.
영적인 의미로 보면 이 종은 치명적인 욕정으로 병들었거나 세속의 노예로 묶여 주님께서 깨끗하게 해 주시고 계시다. 하느님을 모르는 그래서 하느님과 거리가 먼 이방민족들의 구원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백인대장을 칭찬하고 있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4-5절)
주님께서는 그 백인대장의 정신을 인정해 주셨다. 아직 교회가 탄생하기 이전에 회당을 지어 주었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쓸 교회도 더욱 잘 지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회당을 지었지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백인대장의 집으로 가신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사람을 보내어,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6-7절)
이 말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감탄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9절)
백인대장의 이 말은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의로움의 태양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습니다. 한 줄기 작은 빛살도 어둠을 물리치듯이 이 병도 주님의 한 말씀으로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의 원로들과 그 친구들에게 모두 백인대장과 같은 믿음이 없다고 꾸짖으시고 계시다. 백인대장의 믿음은 이방 민족들에서는 첫 번째의 신앙인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마태 8,11)라고 말씀하셨다. 백인대장은 스스로 자격없는 자라고 고백함으로써 합당한 사람으로 바뀌고 있으며, 그의 종이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이 사화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면 국적을 불문하고 구원하시는 구원의 보편성을 말하고 있다.
백인대장이 주님께 자기 종을 위해 간청한 이 말은 우리가 미사 중에 성체를 영하기 전의 기도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한 이방인의 예수님께 간청한 말이 기도가 되었다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지 생각해보고 우리도 하느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그러한 신앙 고백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다.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루카 복음서에서 백인대장의 종을 고치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대상으로 처음 일으키신 기적입니다.
카파르나움에 주둔하던 백인대장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죽을병에 걸린 자기 노예를 살려주십사 간청합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몸소 찾아가지 않고, 유다인 원로들을 보내어 대신 청하도록 합니다.
우리 정서에는 예수님을 몸소 찾아가는 것이 더 진정성과 예의를 갖춘 청원일 터인데,
이방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유다인들의 정서를 헤아려 보면,
오히려 그러한 간접적인 청원이 훨씬 예를 갖춘 방식이라고 생각하였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유다인 원로들은 그 백인대장을 극찬합니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유다인들이, 그것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원로들이 이방인을 칭찬하는, 매우 드문 경우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집으로 향하고 계실 때, 그가 다시 친구들을 보내어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부정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유다인의 정서로 볼 때,
백인대장은 정말로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감히 제집에 그분을 모실 자격도 없고 이방인으로서 그분을 만나 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며 스스로 한껏 낮추는 자세는,
그의 청을 들어주실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긴 유다 원로들의 높은 평가와 대비되며 백인대장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만으로 제 종이 나으리라는 믿음은 주님께서 지니신 권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는 차별 없이 당신을 믿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기에,
이방인 신분인 우리도 그분을 주님으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성체로 주님을 실제로 우리 안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도 감탄하신 백인대장의 세심한 배려와 겸손한 마음과 굳건한 믿음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는 그분을 어떻게 모시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영성체 전에, 백인대장이 지녔던 마음으로 주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말씀 안에 진리(眞理)를 모르고 열심히 성체(聖體)를 모셔서 될 신앙(信仰)이 아니다.
복음(루카7,1-10)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 앞 6장의 말씀으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신 것이다. *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집, 고을, 성전)은 앞 절에서 말씀하신 반석(성전- 말씀)이신 예수님 위에 집(성전, 나)을 지은 것이 아니라, 맨 땅, 곧 자신의 수고와 열심 위에 지은, 그래서 시련(試鍊)이 오자 흔들리는 자기를 위한 집(신앙)을 뜻한다. 그곳 사람들을 고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 로마의 백인대장이다. 자신의 나라의 속국(屬國)인 이스라엘, 그 유대인 예수님을 알아보고 청(請)한 것이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 맨땅인 흙(없음), 그 사람의 열심, 의로움의 집(카파르나움)의 그 자신은 주님 앞에 합당하지 않음, 자격이 없음을 아는 백인대장이다.(11일 묵상참조) 예수님이 주인(主人) 이시며 그분 말씀만이 사람(흙-없음)의 생명, 빛임을 아는 이방인(異邦人)이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 예수님께서 ‘죽을 병을 일으키는 병마(病魔)는 나가라’ ‘병(病)이 나아라’ 등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죽을 병이 없어진 것이다. 쫒겨난 것이다. 곧 생명, 빛이신 분(말씀) 앞에서 말씀이면 된다는 그 믿음이 죽을 병(病)에서 종(從)을 살리신 것이다.
*믿음은 그분에 대해 잘 알아야, 곧 성경(聖經)을 통(通)해 알았을 때 생긴다. 말씀은 깨닫지 못하고 매일(每日) 성체(聖體)를 모신다고 생기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갈증(渴症)만 날 뿐이다.
말씀 안에 진리를 깨달았을 때 갈증이 해소되고(의식의 변화로) 믿음이 자란다. 말씀을 받아 들여 곰곰이 생각하고, 되새기고, 묵상하고, 기도(祈禱)하는, 산고(産苦)의 고통을 겪어야 깨닫는 진리(眞理), 믿음이다. <나의 체험이다>
(요한1,9-13)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말씀-* 예수)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 카파르나움, 그 육(肉)의 욕망(慾望), 그 자기버림, 부인(否認)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權限), 곧 아버지 하느님의 권한을 받는 것이다. 오늘 그 말씀을 원(願)하고, 받아들인 백인대장(百人隊長)이다. 하느님의 자녀의 권한, 그 백인대장의 믿음으로 종이 살아난 것이다.
병행복음~
(마태8,13)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 성체를 매일 모신다고 생기는 믿음이 아니다. 왜 이런 글을 쓰는가? - 매일 미사책, 묵상글에서 ‘말씀을 깨달음 보다 성체를 중요시하여’ 쓰셨기 때문이다.
성찬례~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예전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모든 죄(罪)를 대속(代贖)하시고 용서(容恕)하신다는,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와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그 새 계약임을 모르고(히브10,6~), 매일 성체를 예수님의 몸(육)으로 모셨다. 그러나 믿음은 자라지 않아 늘 힘들고, 목마른, 무거운 짐 같은 신앙(信仰)을 살았기에~ 성체만을 중(重)시하는 글, 가르침을 들으면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이다.
구원(救援)의 진리(眞理), 새 계약의 말씀으로 먹게 해, 모든 죄에서 자유(自由)하는 신앙(信仰)을 살도록, 왜 이끌어 주지 않는지 도데체 알 수가 없다. 성경(聖經)에 있지도 않는 성사(聖事)라는 교리(敎理), 법(法)에 매이게 하는지 모르겠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요한6,55.63)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진리의 성령님! 주님의 살과 피를 육(育)이 아닌 영(靈)으로, 생명(生命)의 말씀으로, 구원(救援)의 새 계약으로, 먹고, 자유(自由)하게 하시니 감사(感謝)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25년 09월 15일 월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습니다.
조금 뒤에는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라고 하시면서 숨을 거두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죄의 용서를 위한 커다란 선물임에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이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소중한 분을 주시고자 합니다. 바로 당신의 어머니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 주고 싶어 애달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통하여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라시면서 당신 어머니께 따뜻한 사랑을 받으셨고, 우리도 그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도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우리를 모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어머니의 모범 안에서 격려와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더 깊은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아드님은 예수님 한 분뿐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이 사람도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시지 않고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19,26)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 곧 우리를 모두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례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로마 6,3-5 참조).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 됨은 예수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성모님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는 하느님!
복음(루카7,1-10)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 노예였지만 주인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 역시 죄인이지만 하느님께 소중한 사람이다. 곧 당신 외 아드님을 속죄(贖罪) 제물로 내어주시어 구원하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 인간의 존재 가치는 누구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미천하기 짝이없는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十字架)에서 죽게 하셨다는 그 사실이 우리가 얼마나 귀(貴)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한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 이방인(異邦人)인 자신이 주님께 청할 자격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님 앞에 청함, 기도할 자격 있는 우리가 얼마나 복(福)인가.
독서(1티모2,1-8) 사랑하는 그대여, 1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3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4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6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제때에 드러난 증거입니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 백인대장이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어 주어서가 아니라, 병(病)들어 죽게된 노예(奴隸)를 가엾이 여기시어 가셨을 것이다.(에페2,9참조)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ㄱ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 백인대장의 자격 없음, 합당하지 않음,은 겸손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자리에 머물면 안 된다.
하느님 앞에 자격 있음, 합당한 자리, 곧 그분과 인격적인 만남의 자라로 가야한다.
7ㄴ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말씀이, 병자(病者)를 낫게 한다는 믿음을 말씀하심이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병행복음~
(요한4,50-53)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노예)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 말씀은, 살아 계시기에 선포와 동시에 이루어진다. 말씀이 일하신다. 다만 말씀은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에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다.
(루가4,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세상은, 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어 그분의 숨(얼, 영)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아기로 태어나 청년기를 거쳐 성인을 자라난다. 왜 이 긴 시련,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말씀으로 새 사람, 곧 새 창조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피조물로 자라나야 하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에페4,13-15)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 존재(存在)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을 때, 그리스도로 하느님 앞에 존재, 인격이 된다. (1코린8,6참조)
*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成人)으로 자라나야 혼인(婚姻)할 수 있지 않은가.
(시편80,4-8) 4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5 주 만군의 하느님 당신 백성의 기도에도 아랑곳없이 언제까지나 노여워하시렵니까? 6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눈물의 빵을 먹이시고 눈물을 가득히 마시게 하셨습니다. 7 당신께서 저희를 이웃들의 싸움 거리로 만드시어 원수들이 저희를 비웃습니다. 8 만군의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진리의 성령님!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곧 주님과 혼인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출 때까지, 이 시련, 고난의 시간을 잘 건너갈 수 있게 하소서. 눈물의 빵이 아닌 생명, 평화, 안식, 기쁨의 빵을 먹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