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5-27)

2025. 9. 15. 오전 6: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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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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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화답송>시편31,2-3ㄱㄴ.3ㄷㄹ-4.5-6.15-16.20(17) 주님,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구하소서. 제게 당신 귀를 기울이시고, 어서 저를 구하소서.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숨겨진 그물에서 저를 빼내소서. 당신은 저의 피신처이시옵니다.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주님, 저는 당신만 믿고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제 운명 당신 손에 달렸으니, 원수와 박해자들 손에서 구원하소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 주님은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사람들 보는 데서 그 선을 베푸시나이다.

 

복음<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19,25-27)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제1독서(히브5,7~9)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7)

 

'이 세상에 계실 때'로 번역된 원문에서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없고, '육체'라는 단어가 나온다. '육체로 계실 때' 혹은 '육체를 지니고 계실 때' 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육체'로 번역된 '사르코스'(sarkos)의 원형 '사륵스'(sarx)의 기본 의미는 '살'(flesh) 이지만, '몸', '혈육을 가진 인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인간성' 등 다양한 의미들을 나타내어 쓰인다.

 

본절에서는 이  '사륵스'(sarx)가 '인간 그 자체' 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강생(육화)하신 예수님의 지상 존재, 즉 인격적인 본성 전체를 의미한다.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혈육을 가진 인간이셨던 동안, 그분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실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과 유혹과 고통을 모두 당하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죄가 없었으므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륵스'(sarx)의 생각에 지배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실 때에나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을 때에는 항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마음에 드는) 아들이었다. (마태3,17)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본문은 생명을 독점적으로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보여준다.

여기서 '죽음에서 구하신다' 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예수님을 갈바리아 언덕에서 죽기 이전에 건져내신다는 의미가 된다.

 

'구하실' 에 해당하는 '소제인'(sozein)의 원형 '소조'(sozo)는 어떤 위협을 당하지 않게 미리 건져 내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에크 타나투'(ek thanatu; from death)와 함께 쓰이면, 죽음의 위험에서 건져 낸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에크 타나투'(ek thanatu)와 함께 '소조'(sozo ; to save)가 쓰였다는 사실은 본절에 기록된 기도가 겟세마니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지도록 간절히 바치신 예수님의 기도임을 말해 주며, 예수님은 그때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죽음의 위험에서 능히 건져 내실 수 있는 하느님께 드렸던 것이다.

 

둘째로, 위와 같은 의미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구하신다' 라는 표현이 죽음 이후의 부활 사건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그 기도가 '들어 주셨습니다' 라는 본절에 후반절의 표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겟세마니의 기도를 염두에 두고서 그 기도의 장면을 묘사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신 분이다.

본문을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심한 통곡(요란하도록 큰 부르짖음)과 눈물(울음)로 ~ 드렸고' (he offered up prayers and petitions with loud(strong) cries and tears)가 된다.

 

루카는 예수님의 그 당시 기도 모습을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 (루카 22,44) 라고 기록하였다. 이보다도 더 이상 간절하고 애절할 수 없는 마음으로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디에 나오는가!

 

예수님의 얼굴에서 떨어진 땀이 핏방울 처럼 되었다는 복음서의 기록은 얼굴에 있는 모세 혈관이 터져서 피부 밖으로 나온 피가 땀방울에 섞여 땅에 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 정도로 예수님은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이다.

 

한편, '큰 소리로 부르짖고'로 번역된 '크라우게스'(krauges)의 원형 '크라우게'(krauge)는 '고함', '큰 부르짖음' 이란 뜻이다.

이것은 자신이 억지로 외치려 해서 나는 소리라기보다 극도의 긴장이나 고통의 가운데서 마음을 쓰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소리(통곡)이다.

 

더군다나 '심한'이라고 번역된 '이스퀴라스'(ischyras; strong; loud)라는 수식어가 있다는 것은 그분이 얼마나 큰 고통 가운데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분의 심정을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은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마태26,38)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상처가 깊은 사람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 소리가 터져나오고,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찬 사람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듯이 그 순간 예수님은 그와같은 상태에 빠지셨음이 분명하다.

 

참을 수 없는 긴장과 고통 가운데서 그분은 흘러 나오는 신음 소리만 낸 것이 아니라 울기까지 하셨다. 그분은 아버지께 울면서 기도와 탄원을 드린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한 인간으로서 두려움과 혼란, 절망감에 싸여 우리와 마찬가지로 내적 혼란을 겪으셨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 진지하고 애절하고 뜨겁게 기도하셨으나 저자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기도와 탄원'을 올렸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탄원'에 해당하는 '히케테리아스'(hiketerias)는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과 원통함을 탄원하는 자'를 의미하는 '히케테스'(hiket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탄원', '간청' 이라는 뜻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그 기도와 탄원의 내용을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로 전해주고 있다 (마태26,42; 마르14,36; 루카22,42).

 

예수님은 그 기도를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하셨다(마태26,44). 히브리 사상에서 '세 번'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횟수이다.

히브리인들의 공식 기도가 하루 세 차례였다는 사실도 그들이 하느님께 온전한 기도를  드린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예수님께서 같은 내용으로 세 번이나 동일하게 기도하셨다는 것은 더 이상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고도 완벽하게 기도했음을 나타낸다.

 

'그 경외심 때문에'

 

본서 저자의 관점에서 본 예수님의 기도와 탄원의 응답을 받은 결정적인 동기와 배경에 대한 언급이다. 하느님께서 중시하시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경건에서 우러나오는 복종 때문에 그의 기도가 아버지께로부터 응답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

 

'경외심'으로 번역된 '율라베이아스'(eulabeias)는 '두려움', '경건'을 뜻한다. 기원전 3~4세기 이후부터 사용된 이 단어가 처음에는 '신중함', '세심한 주의', '사리분별'등을 의미했으나 후기 희랍어에서는 '공경'을 뜻하게 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명사가 나타나는 곳은 본절과 히브리서 12장 28절 뿐이다. 라틴어 성경은 이것을 '존경', '경외'(reverentia), 그외 다른 성경은 '경건'(piety), '공손한 복종'(reverent submission)등으로 번역했다.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아버지 앞에 엎드릴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태도이다.

그분의 이러한 복종은 비굴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공경하고 신뢰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들어 주셨습니다'

 

'들어 주셨습니다'로 번역된 '에이사쿠스테이스'(eisakustheis)의 원형 '에이사쿠오'(eisakuo)는 방향 또는 진입의 의미를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eis)와 '듣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쿠오'(akuo)의 합성어로서 '요구에 따르다', '요구를 들어주다' 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는 과거 분사 수동태로 쓰였으며, 영어로는 'he was heard'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무슨 기도가 어떻게 응답받았는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는 기도는 '대속의 십자가 죽음'으로서 응답받았고 '죽음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는 십자가 죽음 후 '부활'을 통해서 응답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죽으셨고, 또한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부활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탄원이 들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09월 15일 목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을 곁에서 지킨 유일한 제자입니다.

십자가 아래 성모님께서 함께 계셨음을 증언하는 유일한 이 또한 요한 복음사가입니다.

군사들이 당신 속옷을 놓고 제비를 뽑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계셨고,

그 절박한 순간 그분의 마음은 어머니에게로 향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카나에서 처럼 어머니에게 한 번 더 “여인이시여”(요한 2,4) 하고 부르셨습니다.

이렇듯 카나의 그날과 예수님의 마지막 날은 맞닿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셨던 당신의 ‘때’가 충만하게 된 이때, 예수님께서는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그리고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예수님께서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요한 2,4),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하고 어머니께 하신 말씀이 냉정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십자가 위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온전히 드러내시고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예언자 시메온이 말한 대로, ‘영혼이 칼에 꿰찔리신’(루카 2,35 참조) 성모님의 생애는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성부께 부르짖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셨고, 숱한 고난을 겪으시면서 성부에 대한 순종을 배우셨던 예수님을(제1독서 참조) 닮으시어, 성모님께서는 고난으로 가득하였던 삶 가운데서,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아래에서도 아드님과 함께 성부께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머니로 세워 주신 성모님을 모시고 십자가 아래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삶에 우리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

 

(강수원 베드로 신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하느님을 본()받자가 신앙(信仰)이다.

1독서(히브5,7-11)​

예수님께서는 (육으로이 세상에 계실 때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苦難)을 겪으심으로써 순종(順從)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히브9,11-12)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11 이것에 관해서는 우리가 할 말이 많지만여러분이 알아듣는 데에 둔해진 까닭에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 앞8절에 고난(苦難)을 겪으심으로써 순종(順從)을 배우시고 비로서 완전(完全)하게 되셨다는 말이 아니다. 배우다(마드)와 고난을 격다(파드)는 음성학적으로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수사학적 관용구로 함께 자주 쓰이는 단어이다. 이 말을 정확히 번역하자면 “예수님은 순종하는 과정 속에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메시아로써의 완전함을 보여 주셨다”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뜻에 이끌려가는 약속의 당사자들의 삶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받드시 순종이 전제되어야 된다는 것이고, 그 순종의 삶은 고난을 출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열심히 참고, 인내하고 있는 사람이 “너는 내 아들이 맞아”하는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인 것이다. 하느님이 고난, 시련을 끝까지 참게 만드신다. 끝까지 참고 인내하게 만드시고 ‘너는 내 아들이다’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인내(忍耐)다.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 끝까지 인내하신 분이 성모님이신 것이고, 예수님의 순종과 고난과 완전하심으로 생명의 화관(花冠)을 받으신 우리의 모형(模型)이시다.

 

복음(루카2,33-35)

33 아기(예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요셉이 아닌 마리아에게 한 말임을 기억하자.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아버지 요셉은 하느님을 모형(模型)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으로 이 땅에 온 아기를 낳은 마리아에게 말한 것인데, 그 아기를 낳을(깨달을) 모든 마리아들에게 한 말인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자아(自我)를 부수심, 쓰러지게 하심으로 하늘의 존재로 다시 일으키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심을 깨달으라’고 한 말인 것이다. 그러니 육(肉)의 욕망(慾望)을 위해 신앙(信仰)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반대를 받으실 수밖에 없으신 아기(예수)인 것이다.

성모께서는 그들에 의해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수난(受難) 당하시고 죽으셨을 때,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칼에 꿰찔리듯 아프셨을 것이다.

그러나 성모님의 아픔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내 모든 죄(罪)를 대속하신 구원의 진리, 생명임을 깨닫고 믿어, 그분과 하나 되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히브4,12-14)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14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 인간의 모든 행위는 죄를 가릴 수 없는 벌거숭이라는 것, 예수님께서 대속(代贖)으로 십자가에서 셈을 다 하시고 하늘에 오르셨다. 그러니 말씀으로, 육의 욕망을 위한 그 속셈이 헛된 죄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자기 부인, 쓰러짐으로 하느님의 듯에 죽기까지 순종 하신, 안전하신 그 그리스도의 고난(苦難), 수난(受難)의 십자가로 와 하늘의 생명을 얻으라는 것이다. 하늘로 일어나, 하늘이 되라는 것이다.

 

복음(요한19,19,25-27)

그래서~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 성경(聖經)은 십자가 곁에 마리아(쓴물)들만 소개(紹介)한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나무 하나의 계명, 곧 십자 나무로 쓴물(마리아- 땅, 죽음)이 단물(하늘, 생명)이 된 하느님의 은총(은혜)을 입은 마리아들이다.

 

(탈출15,25)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율법(律法)의 모든 법, 계명을 사랑(용서), 그 하나의 계명으로 완성하신 십자(十字) 나무다.

 

(요한3,17)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복음(요한19,25~2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6~27)

 

요한 복음 19장 25절과 19장 27절에는 '어머니'라는 뜻의 '메테르'(meter)가 사용되었다.

19장 25절에서는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님과 마리아와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했고, 19장 27절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사도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하면서 당신과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어머니'라는 뜻의 정감있는 '메테르'(meter)란 표현을 했다.

 

하지만 요한 복음 19장 26절에서는 '메테르'를 사용하지 않고, 셈족 계통의 언어로서 어떤 거리감을 두는 표현인 '귀나이'(gynai)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여인', '부인'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어떤 여인을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2장 4절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향해 '귀나이'(gynai)라고 불렀고, 지금 자신의 사명을 마무리하는 십자가 형틀 위에서도 어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하느님의 계획하에 치밀하게 이루어진 구원 사업 안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둘째 하와이신 마리아의 성소와 역할을 규정지어 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마리아가 예수님과 피와 살을 나눈 혈육적 관계 안에서의 모친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고, 공적으로 첫 기적을 베풀어 당신의 신성(神性)을 드러내야 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 자리와, 인류 구원 사업이 완성되는 십자가의 형틀의 자리와 거기에서 모든 은혜가 내려져서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와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그 자리가, 혈육과 육정의 관계를 넘어 각자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자신의 성소와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신, 구약 성경을 통틀어 첫 복음이라고 불리워지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에 해당하는 '잇샤'(isha) 70인역(LXX)에서는 '귀네'(gyne)로 번역되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단지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를 걱정하여 사랑하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에게 맡기기 위해 부르는 호칭으로만 '귀네'(gyne)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의 초기에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여자의 후손'이라는 모티프(motif)를 사용한 것이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출산하기 전(前)이나 출산시, 그리고 출산 후에도 평생 동정이시라는 교리를 신덕 도리로 이천년 동안 믿어온 가톨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대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개신교는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이 요셉 양부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고종 사촌들이나 마리아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이종 사촌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복음에 나오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adelphos)라는 희랍어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촌 형제들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의 친형제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를 친형제들에게 맡기지, 왜 이종사촌인 제자에게 맡겼겠는가!

 

루카 복음 1장 38절에서 마리아는 구세주의 모친, 교회의 모친,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수락하셨는데, 그 수락한 모성이 요한 복음 19장 26~27절에서 인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를 상징하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에서 루카복음 23장 34절, 루카복음 23장 43절에 이어서 세번째 말씀인 요한복음 19장 26~27절은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사도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로 선포하심으로써 이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당신께 나아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시는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오는 것이 가장 구원과 완덕에 이르는 쉬운 길이며 빠른 길이고, 가장 완전하고 완벽하며 안전한 길이라는 말이다.

 

마리아론 학자들은 이 길은 바로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봉헌하는 것과,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신 마리아의 성덕(聖德)을 본받는 것, 그리고 묵주의 기도로서 마리아의 강력한 중재와 전구에 의탁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완전한 하느님이셨지만(요한1,1), 보통 여느 사람들처럼 이성과 감정을 지니신 온전한 인간이기도 하셨다.

 

자신의 손과 발이 못박혀 몸이 찢기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요한19,18.28)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눈물로 지키고 있던 자신을 낳고 길러준 육신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무죄한 당신이 고통받고 죽어야만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이 아루어지기에, 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는(요한19,25) 아들로서의 심리적, 영적 격정은 그의 온 심장과 오장육부를 파고들어 타는 듯한 안타까운 심정이 되게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이 친어머니처럼 섬겨주기를 바랬던 마리아는 바로 자모이신 성교회, 죄인들의 피난처이신 교회를 상징하는데(십자가의 길 13처), 주님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성사적인 인간 집단인 교회는 믿음의 모델이며 은총의 전구자이시고, 예수님의 첫 제자이기도 한 마리아를 통해 구원과 성화와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것이다.

 

 

 

09월 15일 금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에 그 누구보다 깊이 동참하셨던 성모님을 기억합니다.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러 성전에 오신 성모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이 예언에 성모님께서는 어리둥절하셨을 것입니다.

분명 가브리엘 천사는 이 아기가 큰 인물이 되고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릴 분이자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불리리라 말하였는데(1,31-35 참조), 이 사람은 어째서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운명을 말하는 것일까?’

시메온의 예언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맙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셨고그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아들을 바라보셔야 하였던 성모님께서는 마치 칼에 꿰찔리는’ 듯한 아픔을 겪으셔야 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시며 그 고통에 깊이 동참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길에서 넘어지실 때마다 비통하게 우셨고그분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는 마치 자신의 몸에 못이 박히듯 아파하셨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하염없이 울고 계시는 성모님애간장이 다 녹아내린 그 어머니에게 아들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곁에 있던 제자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모님께서 제자들의 어머니곧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 순간입니다.

아드님의 수난 여정에 동참하신 성모님께서 이제 그분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할 제자들을 위로하시고 힘을 북돋아 주시는 그들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여정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스승을 따르는 여정입니다(9,23 참조).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그 여정에 늘 함께하십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오늘당신께서 직접 보고 느끼신 아드님의 상처를 우리 제자들 마음속에도 깊이 새겨 주십사 성모님께 청하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부속가, 11).

 

(정천 사도 요한 신부)

 

 

 

 

 09월 15일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마리아(쓴물쓰린쓴물),十字架를 받아들여 나오미(은총단물)가 되자.

 

독서(히브5,7-9)

7ㄱ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죽음이다.

 

7ㄴ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 예수님의 눈물의 기도와 탄원에 우리 모든 죄의 용서, 구원이 들어있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예수님의 순종을 모르셔서 배우셨나? 아니다. 직역하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 하시는 가운데 고난을 겪으셨다는 말이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예수님께 순종함은 그분의 십자가, 곧 피의 새 계약이 주시는 영원한 구원의 의(義), 거룩을 받기 위해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자신의 열심, 의(義), 거룩이 구원의 힘, 가치없음을 인정하는 그 자기 버림(부인)이라는 고난으로 이루어진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현세의 삶(십자가)에서 드러난 시기, 미움, 등 내 죄(쓴물)를 대속하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 십자가, 곧 제 십자가로 날마다 지고 따랐을 때, 그 십자가가 거저 주시는 완전한 의(義), 거룩이된다.(로마3,20-24참조)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완전을 받아야 할 마리아(쓴물)들 만 있다. 그래서 성경(聖經)이 ‘마리아’, 그 이름만 소개하신 것이다.

 

복음(요한19,25-27)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마태27,56) 56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 왜 ‘여인’이라 부르셨을까?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왜 제자에게 어머니를 넘겨 드렸을까? 혈육(血肉)의 가족이 아닌, 하늘의 새 가족의 탄생을 보여 주심이다.

 

(마르10,29-30)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누구든지 나 때문에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어머니나 아버지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을 것이다.

= ‘버리면~ 받는다’. 곧 하늘 교회의 새로운 가족을 ‘백 배’ 풍성하게 받으며 하늘의 생명도 받는다. 그래서 받을 것에 ‘아버지(하느님)’만 빠져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두, 아버지의 자녀로 형제, 자매의 관계만 있다.(마태22,30)

 

(요한20,17)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육(肉)의 양식을 위해 이방지역으로 떠나가 살던 ‘나오미’가 두 자식과 남편을 잃고 그 고장을 떠나, 버리고,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자~

(룻기1,19-20) 19 그래서 두 사람은 길을 걸어 베들레헴에 다다랐다그들이 베들레헴에 다다랐을 때에 온 마을이 그들 때문에 떠들썩해지며, “저 사람 나오미 아니야?” 하고 아낙네들이 소리 질렀다.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셔요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너무나 *쓰라리게 하신 까닭이랍니다.

 

그리고 룻이 보아즈의 아들을 낳자~

(룻기4,17)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십자가의 그리스도로 쓴 물(마라-마리아)이었던 여자가 나오미(사랑스러운, 은총)로, 단물로 회복되어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이 된 것이다.

 

(탈출15,23.25-26) 23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그곳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그리하여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다.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26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이집트인들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

= 마라- 마리아,- 히브리, 아람어로 같은 이름이다. 십자나무 그 하나만이 쓴 물이 단물이 될 수 있는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계명, 곧 진리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1티모2,5) 5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 천주의 성령님!

십자가의 그리스도로하느님의 은총단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의 힘의 논리에서 자신을 버릴 수 있는 힘을 주소서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쓰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저흐들 안에 충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5년 09월 15일 월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습니다.

조금 뒤에는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라고 하시면서 숨을 거두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죄의 용서를 위한 커다란 선물임에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는지이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소중한 분을 주시고자 합니다바로 당신의 어머니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 주고 싶어 애달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통하여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라시면서 당신 어머니께 따뜻한 사랑을 받으셨고우리도 그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도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우리를 모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어머니의 모범 안에서 격려와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더 깊은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성모님의 아드님은 예수님 한 분뿐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이 사람도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시지 않고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19,26)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곧 우리를 모두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례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로마 6,3-5 참조).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되었습니다그리고 이 하나 됨은 예수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성모님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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