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20일 토요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씨 뿌리는 사람 비유 (루카8,4-15)
제1독서<주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1티모6,13-16)
사랑하는 그대여,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화답송>시편100,1-2.3.4.5(◎ 2ㄴ) ◎ 환호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라.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감사하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찬양하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복음<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루카8,4-15)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제1독서 (1티모6,13-16)
오늘 독서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6,14)라는 말씀이 들어 온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6,16)이라는 구절이 들어오는데, 우리가 주님께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거룩하신 분께 가까이 가고 일치하려면, 속된 것에서 벗어나야 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흠없다"는 표현을 들으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묵시록에 29번이나 나오는 어린양(묵시록5,6)과 요한 복음의 어린양(요한1,29.36:참조 1베드1,19;사도8,32)이 떠오른다.
요한 복음에서는 어린양을 'amnos'(암노스)란 단어를 쓰고, 깨끗하고 거룩한 면이 강조된다.
묵시록에서는 'arnion'(아르니온)이란 단어를 쓰고, 이사야 53,7의 "살육당한 것 같았다"의 표현에 나타나듯이, 능력과 노여움을 가지고 적대 세력에 대항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둘다 예수님을 가리키지만, 묵시록에서는 어린양과 짐승의 싸움이 계속 나오므로 강한 인상을 주는 용어를 선택했다.
"살해된 고양",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란 표현은 죄가 없고, 티와 흠이 없고, 깨끗하고 거룩한데, 하느님의 의(義)때문에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천국에서는 가장 가치있는 삶이란 뜻으로 어린양이 "천국을 비추는 등불"(묵시21,23)로 계시되고 있다.
우리가 특별한 축일에 어쩌다가 바치는 미사경문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도 <신앙의 신비여~> 다음에 이런 기도문이 나온다.
"주님, 저희 봉사자들과 주님의 거룩한 백성은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수난과 죽음을 이기신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을 기념하나이다.
저희는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신 선물 가운데서 이 깨끗한 제물, 흠없는 제물, 영원한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존엄한 대전에 봉헌하나이다.
이 제물을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일찌기 주님의 의로운 종 아벨의 제물과 저희 조상 아브라함의 제사와 대사제 멜키세덱이 바친 거룩하고 흠없는 제물을 받아 주셨듯이 이를 받아 주소서~~"
이렇게 우리는 미사때 마다 조금도 흠도 티도 없는 예수님을 인류 구원의 제물로 바침으로 그 구원 효과와 은헤를 입는다.
우리가 예수님께 부쳐지는, 주님의 속성과 본질을 의미하는 이러한 수식어들을 듣고 묵상할 때마다, 우리 자신도 그러한 삶을 지향할 뿐 아니라 성부 하느님 대전에 기뻐하시는 흠없는 제물, 또 하나의 예수님이 되도록 적어도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하느님을 의식할 때 마다 예수님의 구속 성혈로 씻음받은 자신의 양심과 심성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가?를 늘 물어 보아야 한다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좋아하면 사랑하라.
독서(1티모6,13-16)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요한18,33.36) 33 그리하여 *빌라도가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불러,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당신의 피로 씻어 하느님의 생명으로 사는 나라를 완성하시러 오셨다, 세상(世上)의 안녕을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이 아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재림)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먼저 예수님께서 승천(昇天)하실 때~
(사도1,9-11)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 구름은 하느님의 영광, 권능, 현존을 뜻한다.(마태17,5 탈출40,34 등) 구름에 싸여- 곧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오르셨고, 하느님의 영광의 모습으로 다시 오신다(再臨)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뜻한다. 그러니 십자가(十字架)의 대속, 그 진리, 그 사랑의 계명을 잃어버리지 말고 지키라는 것이다.
흠 있는 인간들의 계명, 곧 선과 악, 도덕과 윤리, 그 법(法)의 심판이 주는 죄의 계명에 정신이 팔려 흠 없이, 더러운 양심(良心)까지 깨끗하게 해주신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계명)으로 얻은 하늘의 용서, 의로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티토1,14-16) 14 유다인들의 신화, 그리고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않게 하십시오. 15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러워진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깨끗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그들은 정신도 양심도 다 더러워졌습니다. 16 그들은 하느님을 안다고 주장하지만 행동으로는 그분을 부정합니다. 혐오스럽고 순종하지 않으며 어떠한 선행에도 적합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로마4,25)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義)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요한13,34-35)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인간의 계명, 내 생각(뜻)을 버리고(죽이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의 죄로 죽으신 그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그 사랑을 서로 하라는 말씀이다, 곧 하늘의 용서, 희망, 평화, 생명을 서로 나누는 그 사랑을 서로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제자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다.
(로마15,1-3)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나약한 이들의 약점을 그대로 받아 주어야 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2 우리는 좋은(토브) 일이 생기도록, *교회의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저마다 이웃이 좋을 대로 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도 당신 좋으실 대로 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제 위로 떨어졌습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나의 존재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 상대방을 품을 수 있는 공간(마음)을 더 많이 마련하는 것이 사랑이다. 우리는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좋아하지 않아도 사랑이 가능하다. 고양이가 쥐를 좋아한다. 맛있으니까. 그러나 쥐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어떤 아는 형제는 개(犬)를 좋아한다. 맛있으니까(補身湯). 자기에게 유익이 되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아는 자매는 개를 사랑한다. 그 개를 키우기 위해 시간도 내야하고, 똥, 오줌도 치워야 하고, 오히려 객관적으로 볼 때, 손해다. 그러나 개의 유익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그들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교회, 가정에서 바로 그 이타의 사랑을 연습하는 것이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공동번역본) 15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친히 정하신 때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고 복되신 주권자이시며 왕 중의 왕이시고 군주 중의 군주이십니다.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 어둠인 인간(人間)이 어찌 빛이신 하느님의 자녀가 되겠는가? 불가능하다. 빛 앞에 어둠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이신 당신 외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어둠인 우리와 한 몸이 되게 하시어(신의 죽음) 어둠인 우리가 빛 속에서 빛이 된 것이다.
그렇게 어둠(없음)이었던 우리가 빛(있음)의 하늘의 존재가 되어 하느님의 백성(百姓),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이루신 것이다.(그 사랑을 알려주는 것이 사랑이다.) 나의 유익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죽으신 사랑이다. 그 사랑을 곧 구원(救援)의 약속을 알려주신 것이 성경(말씀)이다.
그런데 그 사랑의 말씀을 인간의 뜻, 길을 위한 도덕과 윤리의 계명, 말씀으로 받아 버리면, 하느님의 사랑을 잃어버린다. 하늘의 용서, 희망, 평화, 생명을 빼앗긴다. 그러면 시련이 왔을 때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되고,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믿음, 구원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대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용서, 생명을 주신 그 사랑의 계명으로 받으면, 그것이 착한 마음인 것이고, 그 사람은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이 오늘 복음의 비유다.
복음(루카8,11-15)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 길(道. 파라호도스- 길가, 길 옆), 하느님의 길(뜻)을 벗어난 사람의 길(뜻)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범죄(파라토마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 보호자성령님! 우리 모두가 하느님(사랑)이 주시는 그 사랑을 하게 하시어 내안에 미움이 죽어가고 사랑이 자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오늘 복음은 흔히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라고 불리지만, 이 비유의 초점은 사실 씨를 뿌리는 사람보다는 뿌려진 씨와 그 땅에 있습니다.
씨는 ‘하느님 말씀’이기에, 농부가 씨를 뿌리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모습(루카 8,1 참조)을 떠오르게 합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씨가 뿌려지는 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에 나오는 네 유형의 땅이 당신 말씀을 듣는 네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몸소 설명하여 주십니다.
‘길’에 비유되는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믿음에 이르지는 못하여 구원에서 멀어지는 이들입니다.
악한 세력이 그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바위’에 비유되는 둘째 부류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그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아 결국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시련이 오면 그들은 믿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떠납니다.
‘가시덤불’에 비유되는 셋째 부류도 말씀을 새겨듣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살이의 여러 걱정, 그리고 재물과 쾌락이라는 유혹 때문에 복음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비유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처럼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런 이들 안에 깊게 뿌리를 내려 풍성한 결실(‘백 배의 열매’)을 거두게 됩니다.
네 유형의 땅 가운데, 무려 셋이 실패하고 오로지 하나만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좋은 땅’이 되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13,24).
열매를 맺기까지 시련도 찾아오고 유혹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로 열매를 맺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 모두를 견뎌 낼 힘을 겸손하게 청합시다.
씨를 뿌리시는 분께서는 청하는 이의 땅에 기꺼이 거름도 내주실 분이십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가짜(거짓)는 교회(敎會) 안에 있다.
복음(루카8,4-15)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비유의 말씀과 해석의 말씀을 함께 보려 한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말씀)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 길을 직역하면 길가, 길 옆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 말씀을 하느님의 뜻, 길을 벗어난 인간의 뜻, 길을 위한 선악의 행위의 법으로 받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그 구원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지 못했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함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진리를 믿지 못한 구원의 믿음과 상관없는 신앙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뱀의 지혜, 곧 악마의 계략이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 바위이신 그리스도를(창세49,24- 탈출17,6- 1코린10,4), 진리의 물, 곧 생명수로 받지 못하고, 마시지 못해 하늘의 생명, 구원의 믿음과 상관없는 신앙을 살았기 때문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 숨,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력이다.(창세2,7)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담처럼 인간의 욕망을 위한 말씀으로 받아, 하느님 처럼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 만을 의지하여 살 때 쉼(안식)이다.
그러나 거짓(위선)의 말인 뱀의 유혹을 먹고는 스스로 자유, 쉼(안식)을 만들어 내려하니 숨이 막혀 삶이 근심, 걱정이라는 감옥(지옥)이다. 역시 믿음과는 상관없는 신앙을 살았기 때문이다.
8ㄱ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 좋은- 말씀으로 창조를 이루신 “보시니 좋았다‘의 하느님의 창조 언어다.
⁜사제께서
<‘좋았다’고 일반적으로 번역하는 히브리어 ‘토브’는 영어로 ‘good', 혹은 ’in order'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은 말씀으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따라서 ‘좋았다’라는 것은 말씀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들이기에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고 질서가 잡혀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인간의 뜻, 욕망, 영광의 길이 아닌, 사실 그대로 좋은(토브) 하느님의 뜻, 영광, 그 진리를 깨달아 믿음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하느님의 말씀 만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 바르고 착한 마음이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나라를 바라며, 보이지 않는 하늘의 생명, 영광을 믿으며 사는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좋은(토브-창조)뜻으로 깨달아 받았을 때, 말씀이 일하신다. 그래서 누군가는 외친다. ‘목자여! 사제들이여! 자신들의 지식의 말, 생각, 그딴 말 하지 말고, *말씀이 일(창조)하시게 하라!’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8ㄴ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 성령의 귀(耳)로, 곧 성령께 의탁해야 깨닫고 믿을 수 있다. 하심이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 창조 이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그 선택 받은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말씀이다. (에페1,4-5.11) 그리스도 밖에 사람들은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우리가 믿겠다고 세례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믿음을 위해 세례를 받도록 하신 것이다.(요한1,16) 그리고 세례는 세상에 대한 욕망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것을 채워주는 오해 된 하느님으로, 십자가의 그리스도로 헛되게 가르치기에, 그 거짓 가르침에 속아 많은 이들이 구원의 믿음과 상관없는 세상의 의로움, 재물, 영광을 얻기 위해 무거운 짐으로 수고하며 근심, 걱정의 신앙을 살고 있다.
(마태24,24)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세상의 것은 각자의 구원에 알맞게, 이미 주셨다. 기도해서, 졸라서 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마태6,7-8.31참조) 생각해 보자, 하느님과 우리의 뜻, 목적이 다를 때,(굶어가며 9일기도 열심히 하면) 하느님이 우리의 뜻, 목적을 들어주실까? 아니다.(요한16,24)
하느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다. 그것이 영원한 빛, 생명,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세상의 귀로 어떻게 깨닫고 믿을 수 있겠는가.
☨ 진리의 성령님!
하느님의 은총, 은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구원의 복음을 진리로 믿어 뱀의 유혹인 세상 힘의 논리로 구축된 나를 부인하고 믿음으로, 인내로 하늘의 안식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8,4-15)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았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4~8)
루가 복음 8장 1~56절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의 말씀이며,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스런 성격을 매우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등을 말씀하신 이유 중에 하나는 말씀의 씨를 뿌려도 바리사인들과 같이 완고하고 사악한 무리들의 마음은 말씀을 거부함으로 인해 결실을 하지 못하는 밭인 반면에, 말씀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듣는 제자들과 같은 무리들의 마음은 결실을 맺는 밭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비유'로 번역된 '파라볼라이스'(parabolais)의 원형 '파라볼레'(parabole)는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음으로써 비교한다는 뜻을 지닌 명사이다.
즉 '파라볼레'는 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례에 빗대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야기 진행 방법이다.
'씨뿌리는 사람'에 해당하는 '호 스페이론'(ho speiron; a sower)에서 '씨뿌리는'으로 번역된 '스페이론'(speiron)은 '씨를 뿌리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페이로'(speiro)의 현재분사로서 앞에 있는 관사 '호'(ho)와 함께 분사의 독립적 용법으로 쓰였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씨뿌리는 사람'(파종하는 자) 즉 농부(a farmer)를 가리킨다.
농경사회에서 밭에 파종하는 자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인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농경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 전파와 그것의 결실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가리키고, 씨 뿌리는 네가지 밭은 복음을 전해 받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네가지 밭은 별개의 각각의 밭이 아니라 한 밭에 있는 다양한 땅의 상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원래 팔레스티나에서는 밭을 경작하기 전에 씨 뿌리는 풍습이 있었으며, 씨가 떨어지는 밭은 대부분 돌이나 가시도 섞여 있었고, 잡초도 어느 정도 나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자신이 뿌리는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씨앗을 이곳 저곳에 뿌린다.
그러던 중 씨앗의 일부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게 된다.
여기서 '길에'에 해당하는 '파라 텐 호돈'(para ten hodon; along the path)인데, 씨앗의 일부가 밭 사이의 길 내지는 밭을 가로지르는 딱딱한 길을 따라 뿌려진다.
말하자면, 여기서 '길'이란 밭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이나 농부들이 밭일을 하기 위해 자주 걸으면서 다져져 길과 같이 된 땅을 말한다.
그래서 밭 사이에 나 있는 다소 딱딱한 좁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땅을 뚫고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의 기대와는 달리 결실은 커녕, 뿌리 한 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하고, 그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새들'('타 페테이나'; ta peteina; the birds)의 눈에 띄게 되고, 결국 그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새들은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는 악한 자를 상징한다(8,12).
또한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은 '흙으로 얇게 덮인 바위가 많은 밭'이라는 말인데, 밖으로 싹이 돋지만, 곧바로 무섭게 뜨거운 태양이 솟아올라 그 열기와 빛으로 말미암아 메말라 죽게 된다.
이 비유에서 '솟아오르는 해'는 '환난이나 박해'로 상징되고 있다.(8,13)
우리의 내면이 마치 돌밭과 같이 깨어지지 않는 완고한 자아로 가득 차 있으면, '환난이나 박해'가 신앙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가시덤불'로 번역된 '아칸타스'(akanthas; thorns)는 '가시'나 '가시덤불'을 뜻하는 명사 '아칸타'(akantha)의 목적격 복수형으로서 '가시들' 내지 '가시덤불'을 의미한다.
이 '가시덤불'위에 떨어진 씨앗은 그보다 먼저 높이 자라버린 가시에 찔리고 그 그늘에 막혀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내면을 기도와 말씀과 성체로 일구고 돌보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내면은 이미 선점하고 있는 가시와 같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무성해질 것이다(8,14)
끝으로, '좋은 땅'에 해당하는 '에피 텐 겐 텐 칼렌'(epi ten gen ten kalen; on good soil; into good ground)에서, '좋은'으로 번역된 '칼렌'(kelen)의 원형 '칼로스'(kalos)는 기타 다른 것보다 더 우수하고 좋은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씨앗이 자라기에 '적합하고'(suitable),'쓸모있는'(useful) 땅을 말한다.(8,15)
이 땅은 위의 세 가지 종류의 땅보다 훨씬 우수하고 좋은 땅으로서 씨앗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식물 경작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한다.
여기서 '어떤 것'에 해당하는 '호'(ho; some)는 지시 대명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호스'(hos)의 주격 중성 단수로서, '어떤 것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은 각각의 씨앗들이 좋은 땅에서 나름대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또한 씨앗들의 조건이 동일한 땅에 떨어져도, 그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質)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씨앗이 아무리 부실해도 열매맺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과 결실의 양은 씨앗의 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025년 09월 20일 토요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아름드리나무도 손톱만 한 씨앗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씨앗도 자기를 품어 주는 흙이 없으면 자라날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하느님 말씀도 엄청난 힘이 있지만, 열매를 맺으려면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함께 도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네 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씨가 길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이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주위의 여러 요인으로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표면이 딱딱한 길이라면 씨가 속으로 파고들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길은 하느님 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따르기에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둘째로, 씨가 바위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이 씨는 싹이 자라기는 하지만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지만 묵상하지 않는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묵상을 하며 말씀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게 한다면 내 삶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잘못된 선택을 뉘우치며, 새롭게 살아갈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진 경우입니다. 이 씨는 뿌리를 내려 자라기는 하지만 이내 가시덤불 때문에 숨이 막혀 버립니다.
가시덤불은 씨보다 더 빨리, 더 크게 자랍니다. 삶에서 만나는 걱정과 재물과 쾌락 등이 삶에서 마주치는 가시덤불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묵상하며 하루를 어떻게 살지를 결심하지만, 정작 생활에서 이런 가시덤불을 만나면 말씀을 잊고 거기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들은 이 말씀이 내 삶 안에서 때마다 필요한 답을 준다는 것을 온전히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넷째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의 경우로 말씀을 자신의 생각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잘 받아들이고, 삶에 잘 적용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말씀을 삶에서 되새기고 기억하면서 차근차근 실천해 갑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올바른 깨달음을 위해 성령께 의탁하며
복음(루카8,9-15)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 예수의 제자들, 곧 자신을 버리고(否認)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허락된 하느님 나라의 복음, 말씀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파라호오도스-길가)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 진리의 길이 아닌, 그 길을 벗어난 옆길이기 때문이다. 길가, 길옆(파라호오도스)에서 파생된 파라토마이- 범죄.
구원, 생명인 하느님의 말씀을 벗어난 사람의 말, 곧 선악의 법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창세12,16-17참조)
(요한3,17)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 돌같이 굳은, 고집이 센 마음이기에 하느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시련이 오면 사람의 길, 세상의 힘을 찾고 의지하게 된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골로2,6-7) 6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 신앙의 신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1티모3,16.4,1) 16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당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시어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분께서는 영광 속으로 올라가셨습니다. 1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이들은 사람을 속이는 영들과 마귀들의 가르침에 정신이 팔려 믿음을 저버릴 것입니다.
(갈라5,16-17)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로마13,13-14)13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 진리로 간직한 사람이 바르고 착한 마음, 좋은 땅이다. 말씀이 열매 맺는다.
(에페3,20)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필리2,13)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말씀을 사람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 진리로 받아 간직하여 지키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의 뜻(慾望)을 들어주지 않으셨기에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의 반대와 핍박을 받으셨다.
(에페2,3-6)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 그리스도로 살리심 하느님 나라의 원리며 진리다. 우리가 맺어야 할 신앙, 믿음의 열매다.
☨ 성령님!
오늘 주신 말씀이 열매 맺게 하소서. 저희 안에서 살아 활동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