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에 비유 (루카8,16-18)

2025. 9. 21. 오후 6: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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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2일 월요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등불에 비유 (루카8,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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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주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님의 집을 짓게 하여라.>(에즈1,1-6)

1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3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이제 그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집을 짓게 하여라. 그분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4 이 백성의 남은 자들이 머무르고 있는 모든 지방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느님의 집을 위한 자원 예물과 함께, 은과 금과 물품과 짐승으로 그들 모두를 후원하여라.”

5 그리하여 유다와 벤야민의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과 사제들과 레위인들, 곧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곳에 계신 주님의 집을 짓도록 하느님께서 마음을 움직여 주신 이들이 모두 떠날 채비를 하였다.

6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저마다 온갖 자원 예물 외에도, 은 기물과 금과 물품과 짐승, 그리고 값진 선물로 그들을 도와주었다.

 

<화답송>시편126,1-2ㄱㄴ.2ㄷㄹ-3.4-5.6(3)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복음<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루카8,16-18)

예수님께서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에즈1,1-6)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이제 그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집을 짓게 하여라. 그분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3)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Cyrus)가 정복한 영토 중에는 바빌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온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앗시리아에 의해 끌려온 나머지 지파 즉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도 있었다.

그리고 키루스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남부 유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도 있었다.

 

에즈라기 1장 3절에서 새 성경의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이라는 표현은 애매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암모'(ammo)는 분명히 '그의 백성'(his people) 즉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뜻을 갖는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 해당하는 '빠켐'(bakem; among you)은 키루스의 칙령을 받는 자들, 즉 키루스의 지배를 받는 페르시아의 모든 백성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키루스의 통치 지역에 거주하는 자들 중에 하느님의 백성이면 누구든지 그 지파와 신분을 막론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할 사람에 해당된다는 의미이다.

즉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남부 유다와 북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성전을 건축할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빌론 유배 생활 50년만에 실제 포로 귀환으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 및 선민 공동체 회복에 기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에즈라기에는 키루스의 칙령에 따라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즉 에즈라는 에즈라기 2장에서 무려 70절이나 할애하여 제1차 귀환자들의 가계별 인원수를 정확하게 밝혔으며, 에즈라기 8장에서는 20절을 할애하여 제2차 귀환자들의 가계별 인원수를 정확하게 밝혔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집을 짓게 하여라'

 

여기에 해당하는 원문은 '웨이벤 에트 베트 예흐와 엘로헤 이스라엘' (weiben eth beth yehwa ellohe israel; and build the temple of the Lord , the God of Israel)이다.

그들이 지어야 할 '집'은 하느님께서 간택하시고 계약을 맺으셨던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하느님'이신 주님의 '집'인 것이다.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뻬트'(beth)의 원형 '빠이트'(baith)는 '짓다'(욥기27,18), '세우다'(룻기4,11), '건축하다', '세우다'(민수32,28) 등의 뜻을 지닌 동사 '빠나'(bana)에서 유래하여 건물로서는 '집'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수식을 받으므로,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하느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2열왕16,18; 1역대29,3)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단어가 상징적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가족'(창세5,22), '씨족'(민수1,2)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실 본문에서도 이면적으로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에즈라기 전체는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건 과정을 언급하는데, 그 과정이 표면적으로는 포로 귀환 및 예루살렘 성전과 성곽의 재건으로 나타내지만, 내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즈라기 전반부 1-6장은 즈루빠벨의 주도로 이루어진 제1차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을 다루지만, 후반부 7-10장은 에즈라 주도로 이루어진 제2차 포로 귀환과 신앙 쇄신과 개혁을 다룬다.

따라서 이 모든 내용의 서론적 성격을 지니는 에즈라기 서두에 나오는 키루스의 칙서에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집' 재건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가리키지만,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의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의 하느님꼐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여기에 해당하는 원문은 '예히 엘로하이우 임모'(yehi ellohiau immo; may his God be with him)이다.

원문은 '그들의 하느님'이 아니고 '그의 하느님'('엘로하이우'; ellohaiu)이다.

여기서 3인칭 단수형으로 쓰인 '그'는 하느님의 백성된 사람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키루스는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 하나하나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이 백성의 남은 자들이 머무르고 있는 모든 지방의 사람들은' (4)

 

'남은 자들'에 해당하는 '한니쉬아르'(hannishiar; remainders; survivors)는 '남다'(창세32,8)라는 뜻의 동사 '샤아르'(shaar)의 수동 분사형에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로서 '그 남아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남아 있는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표현은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 남겨진 자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은 범죄한 남부 유다를 멸망시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함으로써 그곳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회복시키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예레27,1-15; 31,1-14), 이를 거부하고 이집트로 피신한 자들이 있었다(예레42-44장).

뿐만 아니라 바빌론에 포로된 자들 가운데서는 그곳 이방 문화에 동화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자신들이 포로된 시건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본절에 나오는 '그 남아 있는 자들','이 백성의 남은 자들'인 것이다.

 

참고로 에즈라기는 B.C.538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포로 귀환 칙령으로부터 B.C.444년 느헤미야 주도의 제3차 포로 귀환 직전,즉 제2차 포로 귀환 시대까지를 다루는 책으로서, 제2성전인 즈루빠벨 성전의 건축과 에즈라의 신앙 개혁을 중심으로 한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 성경 전통에서는 에즈라와 느헤미야기는 저자의 이름을 따서 에즈라서로 불리며,

단일작품으로 여겨졌으며, 1세기에 간행된 히브리 성경에서 구분이 이루어졌다.

저자는 바빌론 유배 이후 한 세기 동안의 사건들을 보고한다.

작중연대는 어림잡아 키루스 칙령(BC539년경)부터 아그타크세르크세스 1세(BC464-424) 말년 까지로 잡으면 된다.   

최종 편집은 느헤미야의 공적 활동이 끝난 뒤인 BC400년경에 이루어졌다고 본다.

 

에즈라.느헤미야기의 관심사는 세 가지이다.

성전 건립.예루살렘 도성 복구.하느님 백성의 쇄신이며, 이 세가지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성전 건립과 예루살렘 도성 복구는 이스라엘의 외적 조건을 회복하는 것이다.

외적 조건을 아무리 완벽하게 회복하더라도, 진정한 내적 쇄신을 이루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또 다시 정체성을 잃고, 이민족들 사이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다.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둘 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전 건립과 도성 복구와 더불어 그 옛날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자기네 조상들에게 내려주신 율법을 바탕으로 시나이 계약을 회복하고, 백성을 쇄신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바빌론 유배를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과 도성을 재건하고, 새로운 계약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게 된, 유배 이후의 시대를 '제 2의 이집트 탈출' 이라 부른다.

에즈라('도움'이란 뜻)서는 전반부(1-6장)과 후반부(7-10장)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유배자들의 귀환과 성전의 건립 및 봉헌을 다루고, 후반부는 귀환자들의 쇄신을 다룬다.

 

성전 건축을 명하는 공식 문서인 키루스 칙령은 세 번(1,2-4;,5,13-15;6,3-5)나오는데,

오늘 독서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솔로몬이후 우상숭배와 계명 불이행으로 왕국 분열이 일어나고, 북부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BC 722년에 멸망하고, 남부 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BC 587년 멸망하고, 나라를 끌고 갈 만한 엘리트들이 유배를 간다.

 

이제 때가 차서, 혼종혼과 더불어 야훼 유일신 신앙을 버리고 혼합종교에 빠진 유다는 성전건립을 통해 무너진 주님과의 관계 정립과 회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이 유다 자체의 힘으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하느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씀과 약속은 반드시 이루신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적대국의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바로 유배로 끌려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느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적대국의 왕도, 원수도 주님 손에 들어 있고, 주님이 그들을 유다를 위한 당신 섭리의 도구로 쓰신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과 일련의 역사하심을 깊이 묵상하면서 회개해야 하고, 주님 품으로 빨리 돌아와야 한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를 선포하셨다."(1,1)

 

 


[연중 제25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지난 토요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고 그 비유를 직접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씨가 뿌려진 땅에 비유되던 네 부류의 사람들그들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결국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좋은 땅)만이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8,15) 열매를 맺습니다.

이 비유의 설명에 바로 이어지는 오늘 복음도 말씀을 듣는’ 주제와 깊이 연관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곧 그저 듣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들은 말씀에 기꺼이 응답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잘 헤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등불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행동으로 열매 맺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빛을 내며 집 안을 환히 밝히는 사람들입니다.

들어오는 이들이 그 빛을 보게 한다.’는 것은 아직 말씀에 맛 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발하는 빛을 보게 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으로 열매 맺은 사람들이 아직 어둠 속에서 헤매는 이들의 길을 비추며그들을 참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빛을 밝히는 등불은 그릇 속이나 침상 밑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여 세상을 비출 수 있고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점점 많은 사람에게 퍼져나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가 모두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느님 나라가 실현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비록 지금은 숨겨져 있고 감추어진 듯 보이지만때가 되면 반드시 그 모습을 훤히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의 실천으로 결실을 거두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등경 위에 놓인 등불처럼우리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감추어진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이들을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들곧 당신의 참가족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8,21).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학식 높은 도울이 왜 성경(말씀)그리스도를 반박할까?

 

복음 (루카8,16-1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등경(燈檠)은 교회(敎會)를, 그릇은 사람을, 등불은 교회의 빛, 주인이신 주님을 뜻한다. 그러니까 교회에 들어오는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 의로움, 그 영광의 빛을 보도록 인간들의 의로움, 영광으로 덮지 말라, 가리지 마라는 말씀이다.

 

(이사64,5)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이사57,12) 12 내가 너의 의로움과 너의 행실들을 밝혀내리니 그것들은 너에게 소용이 없으리라.

 

(이사45,24)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시편143,11) 11 주님당신 이름을 보시어 저를 살리소서당신의 의로움으로 제 영혼을 곤경에서 이끌어 내소서.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 성경(聖經) 말씀 안에 숨겨진, 그리고 그 말씀을 인간들의 법(法)으로 받아 감추어진 하느님의 진리(眞理)는 드러나고,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말씀이다. 또한 인간의 의로움 속에 숨겨진, 감추어진 속셈, 이타의 사랑이 아닌 이기적 자기 사랑도 나타나고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말씀이다.

 

(히브4,13)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피조물의 모든 행위는 하느님께 벌거숭이, 곧 없음이라는 것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어떻게 들어야 하나 - 인간들의 의로움을 위한 말씀으로?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문자 그대로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문자(文字)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으로? 구약의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신약의 진리(眞理)로?

 

(루가8,25)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셨다그들은 두려워하고 놀라워하며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

= 믿음이, 율법(律法)에 의한 것이냐? 깨달은 진리(眞理)의 있는 것이냐? 물으신 것이다. 제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에 두려워한 것이다.

 

큰 계명(誡命)을 묻는 율법(律法)교사에게~

(루가10,26)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 율법(律法) 그대로 읽었느냐? 율법의 실체인 진리(眞理)로 읽었느냐? 물으신 것이다.

 

(묵시3,3)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悔改)하여라.

= 구약(舊約)은 신약(新約)의 예표(豫表)요 신약은 구약의 실체(實體)라 했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그 새 계약(契約)의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받아들여 지키라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로 받은 하늘의 생명(生命)을 지키는 것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2베드1,21) 21 예언(말씀)은 결코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한 것입니다.

= 인간의 지혜로는 절대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학식(學識)이 뛰어난 도울 김용욱씨가 성경 말씀을 반박(反駁)하는 이유다) 그래서 하느님의 영(靈), 성령(聖靈)을 우리의 보호자로 보내주신 것이다.

 

(1코린2,12-16)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도울 김용욱의 지혜로는 하느님의 말씀이 어리석음이니 반박할 수밖에~)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흙의 티끌, 고기 덩어리일 뿐이다. 다시,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 곧 성령께 의지하지 않으며 그분의 이끄심, 도우심을 청(請)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로마8,9참조)

 

(시편51,12) 12 하느님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다윗의 기도 응답~

(예제36,26)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이루심~

(히브10,16-17)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하느님의 계획, 약속을 그리스도께서 대속(代贖)으로 다 이루시고 새 계약, 새 계명으로 우리 마음과 생각에 넣어 주시어 우리가 새 마음, 새 영의 사람이 되었다.

 

☨ 보호자 성령님! 오늘 말슴과 가르침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저희를 가르치시며 탄식(歎息)으로 기도(祈禱)하시어 새 마음(영)을 주시어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복음(루카8,16~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8)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8,4~15)와 등불의 비유의 결론으로서 예수님께서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원리를 빗대어 말씀하시며, 복음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의 자세를 촉구하신다.

 

또한 이 말씀은 탈란트의 비유의 결론 부분에도(마태25,29), 미나의 비유의 결론에도(루카19,26), 그리고 본절과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의 등불의 비유에도 등장한다(마르4,25).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가진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를 비교하신다. 여기서 반복하여 나오는 '호스 안'(hos an)은 '~하는 자는 누구든지' (whosoever)라는 의미로서 '가진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진 자'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것을 환영하고 잘 활용하여 실천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마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루카8,15)  계속적으로 삶의 더 많은 기쁨과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에 '가진 것이 없는 자'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리고 그 말씀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경시하고 하찮게 여기며 실천하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함정은 자신들에게 분명히 없는데, '가진 줄'로 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마태오 복음 25장 29절과 마르코 복음 4장 25절, 그리고 루카 복음 19장 26절에는 빼앗기게 되는 대상이 모두 '가진 것', 즉 '호 에케이'(ho echei)로 되어 있다.

즉 루카 복음 8장 18절의 '~줄로 여기는'에 해당하는 '도케이'(dokei)가 없다.

 

 '도케이'(dokei)는 '사실은 그렇지 않는데 그러하다고 독단적으로 생각하거나 잘못 믿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루카 복음 8장 18절의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사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없으므로 빼앗길 것도 없다.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는 8장 18절에서 그것조차도 빼앗길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사실은 없는데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결국 그 마음이 완고해지고 사악해져서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길에서 더 멀어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는 전에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은총과 말씀을 깨닫는 통찰력, 그리고 풍성한 은사들을 받았지만, 그후 말씀에 부주의하고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사는 중에 그러한 것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자신 안에 그러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줄 알고, 계속해서 하느님께서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 결국에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에서조차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본주의의 부조리요 모순인 경제적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지고서, 복음에 대한 자세가 결국 내적(內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원인이 될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20250922일 월요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사람들과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해서 끊어 버리면 우리는 점점 죽어 갑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꽃피우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다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름에서 오는 문제를 자기 기준으로만 보면서 저것은 틀렸다.”라고 할 때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소통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너와 만날 때 우리는 두 명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여섯 명이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내 안에는 내 부모님의 생각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나가 있고, 사랑받은 경우도 있고 상처받은 경우도 있는 어릴 적의 나가 있으며, ‘어른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이 세 가지 자아를 다 인식하지도 못해서 자기 자신마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 여러 자아 때문에 관계와 소통이 얽히고설키게 됩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관계를 맺고 소통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관점으로 보고 듣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똑같은 모습으로 같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저마다 자기 관점으로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고 듣지 않고 해석합니다’. 이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행복에 행복을 더해 갈 수도 있고, 불행에 불행을 더해 갈 수도 있습니다.

내 관점, 곧 해석의 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루카 8,18).

 

(김태훈 리푸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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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월요일]2

 

질그릇은 깨져야

 

<입당송>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독서(에즈1,1-6)

1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이루시는데 이방인의 임금 키루스의 마음도 움직이신다.

 

3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이제 그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집을 짓게 하여라. 그분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 하느님의 집을 짓다? 하느님의 영광, 빛을 비추는 집, 곧 성전(聖殿)이다.

 

5 그리하여 유다와 벤야민의 각 가문의 우두머리들과 사제들과 레위인들, 곧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곳에 계신 주님의 집을 짓도록 하느님께서 마음을 움직여 주신 이들이 모두 떠날 채비를 하였다. 6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저마다 온갖 자원 예물 외에도, 은 기물과 금과 물품과 짐승, 그리고 값진 선물로 그들을 도와주었다.

 

<화답송>(시편1261-6) 1 주님께서 시온의 운명을 되돌리실 제 우리는 마치 꿈꾸는 이들 같았네. 2 그때 우리 입은 웃음으로, 우리 혀는 환성으로 가득하였네.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께서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3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4 주님, 저희의 운명을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5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6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아멘

 

 

복음(루카8,16-18)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등경은 교회, 등불은 교회의 주인, 빛이신 그리스도시다.(묵시21,23)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태워내는 빛을 그릇, 침상, 곧 사람의 것(빛)으로 덮어 가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교회에 들어오는 이들, 곧 교우, 이웃들에게 사람의 의(義), 빛이 아닌 그리스도의 의(義), 빛으로 선포하라는 말씀이다.

 

(2코린4,5-9) 5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빛)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 그릇, 질그릇인 우리의 몸이 깨졌을 때 그리스도의 빛이 드러나시기에 어둠인 절망(切望)도, 멸망(滅亡)도 없다.

 

(2코린4,10-11)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질그릇)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질그릇(肉身)에 치장, 도금을 하지 마시오, 질그릇이 깨져야 합니다.” 그래야 산다.

 

(마르8,35) 35 정녕 자기 목숨(질그릇)을 구(치장)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그리스도의 빛) 때문에 목숨을 잃는(깨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자신(목숨)의 깨어짐, 오늘날의 순교(殉敎)가 아닐런지요?

* 현대 사회풍조 안에서 세속(世俗)의 거대한 삶의 흐름에 역행하여 세상에서 빛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이 바로 현대사회에서의 순교(殉敎)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순교가 바로 감추인 것을 드러나게 하는 삶인 것입니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사람(그릇)을 위한 말씀으로 들을 것인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말씀으로 들을 것인가? 사람의 영광을 위한 말씀으로 듣는다면 이미 받아 가진 생명의 말씀은 없음이 된다.

 

(요한5,43-44)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그릇)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빛)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 하느님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十字架)에 있다. 곧 자신의 영광을 부인(否認)하고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十字架)에 함께 달릴 때, 하느님의 영광, 생명, 빛이 된다.

*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가장 큰 고통(苦痛)을 겪는다. 곧 여자의 몸이 깨지는 것이다.

 

(루가2,5-7)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 구유에 누우신 아기- 짐승들의 먹이로, 곧 죄인들의 생명의 빛으로 나신 예수님이시다. 질그릇이 깨져야 아들을 낳을 수 있음이다.

 

☨주님!

제 안에 하느님의 영광,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해산 날이 되게 하소서. 그날이 빛으로 평화임을 알게 하소서. 하느님의 빛을 드러내어 이웃에게 생명을 비추는 오늘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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