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소문에 들리는 사람 (루카9,7-9)

2025. 9. 24. 오전 7: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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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5일 목요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소문에 들리는 사람 (루카9,7-9)

 




1독서<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리라.>(하깨1,1-8)

1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3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4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5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6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7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화답송>시편149,1ㄴㄷ-2.3-4.5-6ㄱ과 9(4)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복음<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루카9,7-9)

7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제1독서 (하까이1,1-8)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4)

 

하느님께서는 강조적 의미를 전달하는 수사 의문문을 사용하여 성전 재건을 중단하여 무너진 채로 내버려둔 선민 이스라엘의 영적 무관심과 나태함을 꼬집고 계신다.

 

즉 하느님께서는 무너진 성전과 번듯하게 서 있는,  판벽으로 된 이스라엘의 집을 비교하시면서, 그들이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이기적인 태도로 자신들만을 생각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하까이서 1장 4절의 표현은 주어가 강조된 형태이다. 여기서 '주님의 전이'가 원문에는 '이 전이'에 해당하는  '웨합바이트 핫제'(wehabbaith hazzeh)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서술어에 선행하여 강조되어 있으며, 이 표현 자체도 정관사 '헤'(he)와 더불어 지시 대명사(hazzeh; this)가 사용되어 특별히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하느님의 집, 바로 그 성전이 이처럼 무너져 있는데'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고 본다.

 

여기서 '무너져 있는데'에 해당하는 '하레브'(hareb; remains a ruin; lies waste)는 가뭄으로 타버리거나 바싹 말라 아무런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철저히 파괴되어 인적마저 완전히 끊긴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다(느헤2,17; 예레33,12).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적들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기초만 놓였기 때문에(에즈4,1-24; 4,12) 여전히 무너진 상태로 놓여 있다고 언급되는 것이다.

 

당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전 재건이야말로 신앙 공동체의 회복의 첫 걸음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처럼 성전이  무너진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신앙이 회복되지 못하고  무너진 상태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원문은 '하에트 라켐 앗템 라쉐베트 뻬밧테켐 쎄푸님'(haeth lakem athem lashebeth bebathekem sepunim; Is it a time for you yourselves to be living in your paneled houses)이다.

직역하면 '너희들이 너희 자신들을 위해 지붕이 있는 반듯한 집들에서 살 때이냐?' 이다.

 

본문에서는 '너희들'이라는 표현이 거듭 사용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강조되고 있다.

즉 '라켐 앗템'(lakem athem)은 문자적으로 '너희들은 너희 자신들을 위해'라는 의미로서 주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이 무너져 내버려져 있는 상황에서 좋은 집에 거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부각시켜 그들의 이기적인 행태를 힘주어 책망하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리고 본절의 첫 단어인 '하에트'(haeth; Is it time)는 하까이서 1장 2절의 '때'(시기)에 해당하는 명사 '에트'(eth)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처럼 동일한 단어를 거듭 사용한 것은 성전이 무너진 채 방치된 상황에서 그것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동일한 시기에 자신들은 판벽으로 된 , 즉 지붕과 벽이 완벽하게 구비된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거주하는 당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태가 얼마나 불신앙적이며, 얼마나 하느님을 향한 헌신과 봉헌과는 거리가 먼 것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선민 이스라엘의 행태는 과거 자신은 향백나무 궁에 살면서 하느님의 궤는 천막 가운데 있음을 안타까워 한 다윗의 모습(2사무7,2)을 떠올리게 하며, 그들이 하느님께 대해 그리고 선민 공동체의 신앙적 재건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 자들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한편 '판벽으로 된'에 해당하는 '쎄푸님'(sepunim)의 원형 '싸판'(sapan)은 빈 공간을 덮어서 가리는 행위를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본문에서는 지붕을 덮는 행위를 의미한다(1열왕6,9; 7,7; 예레22,14).

대다수의 영역본들은 이것을 지붕과 사방 벽을 모두 평평한 것으로 덮어 가린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로 번역했다(paneled; cieled).

 

당시 포로 귀환 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기 거주하던 집들이, 완전히 파괴되어 비와 서리를 맞고 무너져 내버려져 있는 하느님의 성전의 모습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그들이 얼마나 하느님을 향해 무관심하며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현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연중 제25주간 목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요한)

 

오늘 복음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우리에게 전하여 줍니다.

어떤 이들은 그분을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보다 앞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요한의 활동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큰 성공을 거둡니다.

많은 이가 그를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알아보았지만헤로데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목을 베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 뒤 예수님께서 마찬가지로 놀라운 행보를 보이시자 일부 사람들은 헤로데가 죽인 그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죽지 않고 회오리바람에 실려 승천한 매우 특별한 예언자였습니다(2열왕 2,1-18 참조).

말라키서는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곧 종말이 오기 전에 그가 돌아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들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예언합니다(말라 3,23-24 참조).

이 말씀 때문에 엘리야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유다인들 사이에 강하게 생겼는데일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엘리야로 오셨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을 구약의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위의 세 의견은 모두 예수님을 예언자적 인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 안에서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정확한 인식은 아닙니다예수님께서는 예언자의 신분을 훨씬 뛰어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 그분의 본모습을 베드로 사도는 제대로 알아보았습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9,20).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바로 그분을 따르는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 가운데오직 제자들만이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부터 그분의 모든 것을 목격한 유일한 인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알아보려면 그분을 따르는 제자 여정에 제대로 참여하여야 합니다.

따르다 말다를 되풀이하다 보면예수님을 띄엄띄엄 알아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대충 비슷하니까 괜찮다고 주장하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도 엘리야도 옛 예언자도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루카 9,7-9)

7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 하늘의 길로 이끌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지적했던 요한을 죽인 헤로데~ 그가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 한다? 왜요?

자신이 죽인 요한이 살아났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일까? 두려웠을 텐데~~~그러나 그 두려움 보다 자신의 욕망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호수의 풍랑을 잠재우시고, 마귀 들린 이를 치유하신, 또 하혈병 여인이 치유를 받고 죽은 소녀가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 능력의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나는? 헤로데처럼~ 내 뜻, 내 욕망을 위해 예수님을 믿으려 했다, 처음에는~~지금은 누군가 나에게 헤로데처럼 예수님을 믿으려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면 ‘아니오’ 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하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 하는지~~

 

 바오로 사도의 기도로 확인 하고자 한다.

(에페3,14-21) 14 나는 아버지(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존재)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주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주님 마음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완전)하게 되기를 빕니다.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말씀)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 그분께(하느님께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 사도의 하늘의 것을 위한 기도가 아닌~ 땅의 것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면 헤로데와 무엇이 다른가?

 

(마태6,7.9-10) 7그러니~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곧 세상의 것을 위한 기도는 ‘빈말기도’인 것이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느님의 뜻인 세상에서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다른 민족들처럼 주문 외우듯 하여 헛된 세상의 것을 위한 헛된, ‘빈말기도’로 만들어 버렸다.

 

 (코헬렛1,2-9)에서 알려주지 않는가?~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 땅의 모든 영광도 영원히 당의 것일 뿐, 인간의 모든 의로움도 영원한 흙으로 돌아갈 뿐, 하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5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6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7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8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 인간의 말로 , 듣고, 보는 모든 것이 구원을 주지 못하는 헛되고 헛된 것이기에~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하늘의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도처럼 예수님의 기도로 하늘을 담아야 새로운 것이 돼야 하는 것이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로마5,21 8,1-4)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멘!!!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복음(루카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 9장 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열두 제자를 불러 갈릴래아 여러 고을로 파견하시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열두 제자들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어서 그들의 복음 선포는 많은 사람들의 주의와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그 당시 갈릴래아와 베레아를 통치하던 분봉왕 헤로데 안티파스 (B.C.4~A.D.39)에게 까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미치면서, 헤로데 안티파스 영주는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풍문으로 인해 예수님을 한번 보고 싶어 한다.

 

여기서 '영주' 해당하는 '테트라르케스'(tetrarches; tetrarch;  the fourth- hief)는 분봉왕으로서 4분 영주(고대 로마의 한 주(州)의 4분의 1을 다스린 영주)나 작은 나라의 왕을 말한다.

 

헤로데 대왕이 10명의 부인이 있어서 자신의 배다른 왕자들에게 이스라엘의통치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게 한 것이다. 

 

루카 복음 사가는 9장 7~9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복음 선포가 왕궁 안에서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두루 퍼져 나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한다.

 

동시에 그 당시 메시야 시대가 도래하면, 먼저 엘리야 예언자나 다른 예언자들 중의 한 분이 온다는 사상이 퍼져 있으므로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께 대해서 이러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헤로데 안티파스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에, 자신이 예전에 죽인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복 동기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는 세례자 요한의 진언 때문에 그를 죽였으므로 예수님께 대한 여러 소문을 듣고 일말의 양심이 있어 불안해졌고, 그래서 더욱더 예수님을 확인하고 싶어했다고 본다.

 

 

 

20250925일 목요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은 헤로데가 몹시 당황하는 모습과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보여 줍니다.

헤로데가 왜 당황하였을까요? 그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소문으로 듣고 그리 된 것인데, 무슨 일이었는지는 문맥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 바로 앞 단락인 어제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러 분부를 내리시며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셨고, 제자들은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는 정작 복음을 선포하고 병을 고쳐 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하였습니다.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루카 9,9)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궁금해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복음 선포 활동은 사람들이, 심지어 이 악한 통치자마저 예수님을 뵙고 싶게, 그분을 알고 싶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복음 선포를 통하여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알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적을 알렸습니다.

자신은 물러나고 예수님만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사도의 표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먼저 이를 실천하셨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볼 때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느님 아버지만을 드러내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곁에 머물렀던 제자들도 그분을 닮아 갔습니다.

우리도 늘 예수님 곁에 있지만 자신은 물러나 있으며 그분을 드러내는, 내가 아니라 주님께 사람들을 이끄는 참사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복음(루카9,7-9)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요한과 엘리야. 구약의 끝(마지막) 장, 절을 보면~

(말라3,23-24) 23 보라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엘(하느님), 야(야훼). 야훼- “내 말을 네 말로 줄게(쓸께)”라는 뜻이다. 곧 모든 예언서, 문자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크고 두려운 날에 구원을 받는다 하심이다.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 마음을 돌리고 돌려 파멸을 내리치지 않으신단다. 곧 하느님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리고 자녀들의 마음을 하느님 아버지께 돌려 파멸이 아닌, 구원을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돌려 구원하신다? - 구약의 인물들은 뱀의 선악의 유혹을 먹은 이후, 선악의 주관자로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하느님을 배반하여 하느님의 뜻, 마음, 말씀을 떠나 살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말라기서를 끝으로 말씀을 닫아 버리셨다. 하느님께서 자녀들에 대한 마음에서 ‘돌아섰다.’는 의미다. 그러면 남은 것은 파멸의 심판 뿐이다. 그런데 사랑의 하느님께서 그대로 자녀들을 버리실 수가 없으셨다. 당신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릴 용서가 필요하셨다.

그래서 구약을 닫으시기 직전, 마지막에 다시 구원하시기로, 곧 다시 구원의 말씀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400년후 신약이 열린다. 마태오복음을 시작으로~~, 곧 용서를 위한 속죄 제물로 죽으실 그리스도의 족보와 탄생(마태1장), 생명의 책이 열린 것이다.

 

(요한1,1.6-14) 1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 한 처음- 빛, 물, 땅, 사람을 창조하신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 엘리야로 온 세례자 요한이다. 이들의 예언을 예수께서 다 이루신다.(마태17,12-13)

그는 증언하러 왔다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 피조물은 빛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다시 오신 구원의 빛, 말씀이다.

10 그분(말씀)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세상)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구언)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 하느님의 친 아들, 자녀라는 뜻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구원의 뜻인 하느님의 말씀이다. 곧 자녀(죄인)들의 죄를 대속 하시고, 아버지의 진노의 마음을 풀어드려 자녀들에게 마음을 돌리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죄 됨을 깨닫게 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하느님께 돌리게 하심으로, 하느님께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게 하시기 위해 기쁜 소식, 구원의 복음, 생명의 말씀이 오신 것이다.

곧 파멸의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자녀들, 모든 죄인들의 죄 값을 치루시고,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시어 대신 죽으러 오신 것이다.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이루시려 오셨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새 계약- 예레31,31-34. 루가22,20 요한19,30- 히브10,15-22)

 

(에페2,13) 13 이제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 그렇게 죄의 세상, 영원한 어둠속에서 받은 용서, 구원이다. 뱀이 약속한(창세, 루가4,6-7) 인간의 욕망, 의로움, 영광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니다. 우리의 죄로, 죄의 고난 속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신 분 앞에서 뱀이 약속한 세상의 것을 구하는 신앙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 모두가 죄에 갇혀있다.

 

(갈라3,22-25)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제사와 윤리아래 갇혀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옛계약)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옛 계약으로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대속(代贖),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주신 것이다.

 

⁜사제께서 <헤로데가 확인하기를 원했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만나고 싶어 했던 당시의 예수님이, 한참 전성기의 예수님이셨다면, 정작 자신이 만났을 때의 예수님은 가장 비참한 예수님 이였습니다. 자신 앞에 죄인으로 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보이는 모습에 따라서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만남의 태도가 아닌, 한 인격체로 차별없이 만나는 마음가짐과 믿음이 중요합니다.>

다른 말로 모든 기적, 능력의 예수님과, 죄인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하나의 뜻을 위한 구원자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이 아닌 죄의 대속으로 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진리로, 구원자로 항구하게 믿었을 때, 하느님의 진노의 마음에서 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1코린1,23-24)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깨달음과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는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안식의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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