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토요일] 人子는넘겨질 것 (루카9,43ㄴ-45)

2025. 9. 26. 오전 6: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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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7일 토요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人子는넘겨질 것 (루카9,43-45)

 



1독서<정녕 내가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즈카2,5-9.14-15)

5 내가 눈을 들어 보니, 손에 측량줄을 쥔 사람이 하나 있었다.

6 내가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 그가 나에게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러 간다.” 하고 대답하였다.

7 그때에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앞으로 나가자, 다른 천사가 그에게 마주 나와 말하였다.

8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일러 주어라. ‘사람들과 짐승들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

9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화답송>예레31,10.11-12ㄱㄴ.13(10)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민족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정녕 주님은 야곱을 구하셨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산에 올라와, 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그때에는 처녀가 춤추며 기뻐하고, 젊은이도 노인도 함께 즐기리라. 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 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

 

복음<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루카9,43-45)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제1독서(즈카2,5-9.14-15)

 

즈카르야는 하까이보다 성전이 주는 혜택을 더 많이 강조한다. 성전을 통하여 유다는 좋은 방향으로 완전히 변형되고, 세상은 이상향으로 바뀔 것이다. 

제1즈카르야서의 저자는 이 변형을 여덟 개의 환시를 이용하여 묘사한다. 즈카르야서의 환시들은 성경 묵시 문학의 기초를 놓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오늘 독서는 세번째 환시(2,5-9)의 내용이 들어있다. 예언자가 직접 환시의 장면으로 들어간다.

 

예언자는 측량줄을 잡고 있는 어떤 사람을 만나는데, 곁에 있던 천사가 다른 천사를 시켜 그 사람에게 예루살렘을 측량할 필요가 없다고 일러준다.

 그곳에 주민과 짐승이 너무 불어나서, 경계를 지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불벽이 되어 이 도성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도 있다.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일러 주어라. '사람들과 짐승들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2,7-9.14-15)

 

'내가 에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의 '불 벽'이 무엇일까?  불의 의미가 무엇일까?

 

창세기 3장 24절에도 '하느님께서 사람을 내쫓으시면서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이 있고, 히브리서 12장 29절에는 "우리의 하느님은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 (탈출24,17참조)라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외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며,초월적인 대상이라는 말이다.

동시에 접근하면 태워버리고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튼튼한 방어벽과 보호벽이 되어준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예루살렘을 측량줄로 재는 세번째 환시는 에제키엘의 성전을 재는 환시(에제40-48장)와  아모스의 다림줄 환시(아모7,7-10)와 흡사하다.

세번째 환시가 끝나고 신탁(2,10-17)이 하나 끼어드는데, 주님께서 온 천하 사방에 흩어진 당신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시고, 시온과 백성 가운데에 머무르시어 이스라엘을 온전히 회복하실 것임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4)

 

즈카르야서 2장 14절은 이미 즈카르야서 2장 10절에 나온 말씀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즈카르야서 2장 10절 이하 13절에서는 주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할 것과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의 회복 및 주님께서 임재할 것이 예언된다.

그 가운데 서두에 나오는 즈카르야서 2장 10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가 다 끝나고, 그들과 하느님이 원래 처음 맺었던 계약의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을 암시하는 예언이다.

 

여기서 '시온의 딸' 번역된 '치욘 빠트'(tsiyon bath; O Daughter of Zion)는 구약의 관점에서는 예루살렘 성읍의 거주민들 지칭하고, 신약의 관점에서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

 

많은 주석가들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해 준 메시지 안에(루카 1,28.30.31~33.49.54~55)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한 후에 예언자 즈카리야(즈카 2,14-15; 9,9-10), 스바니아(스바 3,14-17), 요엘(요엘 2,21-27)이 '시온의 딸'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신탁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도시('시온의 딸'이라 불리우는 도시)는 약속의 땅에 거주하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기뻐하라는 초대 받는다.

 

그토록 기뻐해야 하는 동기는 유배의 어두운 시기 가 지난 후,  하느님께서 재건된 성전 안, 성도 한 가운데에 거처하러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있다.

 두려움에 떨 이유가 전혀 없다. 실제로 주님께서 그들의 왕이고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실제로 마리아를 '시온의 딸' 묘사하려 하였다.

복음사가의 눈에 동정녀 마리아는 자신의 인격안에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백성을 종합한다.

온 이스라엘이 동정녀 마리아안에 총괄된다. 동정녀 마리아야말로 이스라엘을 가장 훌륭하게 나타낸다. 나자렛의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앞서 실현하셨다(루카1,49ㄱ.54-55참조).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이유 접속사 '키'(ki; for)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시온의 딸이 노래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새 성경에 단순히 '정녕 내가' 번역된 '힌니'(hinni)는 문자적으로 '보라 내가'라는 의미이며, 이 예언을 읽는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표현이다.

 

장차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에 머무를 것이다.

'머무르리라'에 해당하는 '웨샤카느티'(weshakanthi; I will dwell)의 원형 '샤칸'(shakan)은 어원상 여행자가 장막을 쳐서 머무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창세9,27; 탈출25,8; 여호18,1).

본문에서 이 단어는 단지 얼마 동안 임시적으로 머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장막을 치시고, 그들과 함께 거처할 것임을 나타낸다.

 

희랍어 구약 성경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카타스케노소'(kataskenoso)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장차 종말의 날에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 하느님께서 친히 장막을 치시고, 그의 구원받은 백성들과 거처하실 것을 예언하는 묵시록 21장 3절의 내용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예언이 종말론적 성취를 지향하고 있음 암시한다.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묵시21,3)

 

한편, 하느님께서 당신백성과 함께 거처하신다는 표현 애초에 히브리 민족을 계약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 베푸셨던 계약의 본질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주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계약의 기본 내용이었다(탈출6,7; 레위 26,12).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의 효력을 결코 중단하거나 계약을 폐기하시는 법이 없다.

  

비록 바빌론에 의한 멸망과 성전의 파괴로 인해 그 계약이 중단되는 듯이 보였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다시 고향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고, 성전 역시 재건하게 하셨다.

그리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근거로 세워진 교회를 통해 계약의 백성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게 하셨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의 백성들 가운데에 친히 임재하셔서 그들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그들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이러한 계약은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루카 9,43ㄴ-45)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 말씀 안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감추어진 진실?

 

(판관2,12-14) 12 그들은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이신 주님, 저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저버리고, 주위의 민족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따르고 경배하여, 주님의 화를 돋우었다. 13 그들은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는 풍요의 신이다.) 14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겨 버리시고 약탈당하게 하셨다. 또한 그들을 주위의 원수들에게 *팔아넘기셨으므로, 그들이 다시는 원수들에게 맞설 수 없었다.

= 하느님은 죄를 지은 그들을 죽음(시련)에 넘기신 것, 아니! 어떻게 사랑의 하느님께서 그러실 수 있어?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원칙이며 정의, 규정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그 죄의 존재가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창세2,16-17)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판관기는 이집트(세상)의 노예생활에서 구출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살았던, 곧 세상으로부터 구출되어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말씀)을 받은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게 시련에 빠진 그들이 부르짖으면 하느님께서 판관을 세우시어 원수들에게서 건져, 평온하게 해 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또 죄를 지어 하느님의 진노를 사곤 하였다.

 

(판관6,1) 1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을 일곱 해 동안 미디안족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

= 그들이 또 부르짖으면 또 판관을 세워 원수를 물리쳐 주셨다. 그렇게 그들은 12판관이 다 있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우상을 섬겼다.

판관기는 계속 인간들의 죄와 하느님의 용서, 그 이야기인 것이다. 인간들이 하느님 당신만을 바라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당신 (사랑)만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고,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찾으시기 위한 것이다.

 

(판관21,25) 25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

= 판관기 마지막 장,절이다. 끝까지 임금, 곧 왕이신 주님의 뜻, 그분의 길이 아닌 자신들의 뜻인 사람의 길로 살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똑 같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로마1,20-32참조)

그렇게 끝까지 고집부리는 그 인간들에게 구원자는 필요했다. 그래서 판관기 다음 룻기에서 보아즈(구원자)가 나오고 그가 아들 오벳을 낳는다.

 

(룻기4,22) 22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

= 오늘 예수님께서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인간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다시 살리시려고 그 인간들의 죄로 팔아 넘겨지시는 것이다.

 

(로마4,25) 25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다.

 

(루가10,22)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하느님을, 그분의 뜻을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감추어져 있기에~~~

그래서 성령을 찾고, 그분의 이끄심을 받아야 한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 그리스도교란 나의 환경을 바꾸어 평안을 얻어내는, 곧 나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만사형통의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환경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말씀)이 자꾸 확인됨으로 내가 변하는 것, 곧 내 생각이 바뀌는 것, 버리는 것이다.(마태16,23-27참조)

그래서 하늘을 담아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코헬1,3. 14-15)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14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15 구부러진 것은 똑바로 될 수 없고 없는 것은 헤아려질 수 없다.

 

*하늘아래 땅, 그 세상의 모든 것은 없음이다. 아멘~!!!

 

 

 

 


[연중 제25주간 토요일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요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겪으실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런데 수난을 예고하시는 상황이 그런 암울한 미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특히 어떤 아이를 사로잡고 있던 강력한 영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놀라워하는(9,37-43 참조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으로 수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에게서 환영을 받으셔야 할 사람의 아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는 운명을 겪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베드로야고보요한에게는 더욱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곳은 산 밑입니다.

그들은 조금 전산 위에서 매우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변하고옷이 하얗게 번쩍이며갑자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심지어 그들을 덮은 구름 속에서는 이러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9,35).

예수님께서 지니신 거룩함과 영광의 극치를 선보이는 이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제자들이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으셔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루카 복음서 저자는 이러한 제자들의 몰이해가 감추어진 신비 때문이라며 그들의 책임을 조금 덜어 주는 듯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잘못을 명확히 지적합니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음을 의미합니다.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묻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신앙의 길이 내가 바라는 바와 크게 다를까 보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감추어진 신비를 열어 주시는 분께 끊임없이 그 뜻을 찾고 이해를 바라는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복음(루카9,43-45)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 예수님께서 하신 일, 곧 더러운 영이들린 아리를 고쳐주신 그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워하는데, 사람들의 배반으로 당신이 죽게 될 것을 예고하신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감추어져 있는 뜻, 먼저 본 9장 시작으로 가보자.

 

(루가9,1.6)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모든 마귀를 쫓아 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 제자들은 신이 나고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루가9,16-17) 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을 따르며 그 예수님의 힘이 자신의 것인 양, 자부심(自負心)도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까지 한다.

 

(루가9,20)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베드로가 고백(告白)한 그리스도는-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으실 것을 예고(豫告)하신다. 베드로가 생각지도 못한 그리스도의 모습인 것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자신이 생각했던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의 목숨 곧 자신의 욕망(慾望)을 이루려했던 제자(弟子)들에게 그 자신들의 목숨을 위한 욕망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인 우리의 구원(救援)을 이루러 오신 그 그리스도의 죽음, 대속(代贖)으로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 ‘따르라’ 하신 것이다.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는 그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모(變貌), 영광(榮光)의 모습을 보게 된다.

 

(루가9,33) 33 그 두 사람(모세엘리야)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하나는 모세께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베드로이다. 지금까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 일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받았음에도 자신들의 사심(私心), 욕심(慾心)이 들어가 더러운 영이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다.

 

아이 아버지가~ (루가9,39-41) 39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영은 아이를 뒤흔들어 거품을 물게 합니다그리고 아이에게 온통 상처를 입히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40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지만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41 그러자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으면서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 믿음이 삐뚤어진 세대(世代), 곧 아이가 더러운 영이 들리도록 키운 아버지나 그 더러운 영을 쫓아내지 못하는 제자들,

그리고 놀라워하는 사람들, 그 모든 이들이 다 자신의 욕망(慾望)을 위한 그 삐뚤어진 그 헛된 믿음을 갖게 하는 더러운

영의 유혹에 넘어가 있다는 말씀이다.

 

(루가9,42-43) 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ㄱ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

(그리고 오늘 복음이다~)43ㄴ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지 못하고 놀라워하는 것, 삐뚤어진 믿음이다. 그러니 보이는 놀라운 일은 믿음과 상관(相關)이 없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인식(認識)이지 믿음이 아니다.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깨닫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오늘 보이는 것으로 놀라워하는 사람들, 그들이 예수님을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죽게 한다’는 예고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기적(奇蹟) 등 놀라운 일이 계속 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완악해진다.(요한11,47-50 루가16,31 참조)

성경(聖經) 또한 보이는 문자(文字) 그대로 보고 하는, 행위 신앙(信仰)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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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로마8,24)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코린4,18)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 그래서 문자 그대로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착하게, 의롭게 살았던 사제(司祭)와 율법(律法)자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현세(現世)는 어떤가?~

(1코린2,4-8)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창조이전 계획된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다(에페1,4)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 하느님의 지혜(智慧)를 깨닫지 못한 인간의 지혜에 의한 제자들 이었기에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 두려움을 갖고, 각오하고 말씀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지혜,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그 사랑을 찾아 진리(眞理)로 깨닫고 믿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1코린1,24) 24 그러면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오늘도 내 안에 머무르시며 ‘기뻐하라, 안심하라’ 해 주시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9,43ㄴ-45)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4)

 

루카 복음 9장 44절의 '이 말'에 해당하는 '투스 로구스 투투스'(tus logus tutus; these sayings)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은 복수형이고, 희랍어 지시 대명사는 바로 앞의 내용을 받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루카 복음 9장 43절에서 찾아야 한다.

 

한글 새 성경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라고 전한다. 말하자면,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사람들의 놀란 말들'을 뜻한다.

풀이하면, 예수님께서 '나의 가르침과 기적으로 인해 놀라서 떠들어대는 이 사람들의 소리를 잘 기억해라. 왜냐하면(gar; '가르') 내가 바로 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넘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 속에는 예수님께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한탄하고 계심이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단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게 될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당신의 말씀과 영적을 보고 '하느님의 위엄'이라고 할 정도로 따랐던 그들이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들을 위해 당신 자신의 몸을 내놓으셔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더 예수님을 상심케 했을 것이다.

루카 복음 사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9장 43절과 44절을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다.

 

 

     

20250927일 토요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김태훈 리푸죠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 들린 아이를 고쳐 주시는 것을 목격한 군중은 몹시 놀랍니다.

같은 구절에서 놀라다.’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쓰이면서 강조됩니다(루카 9,43 참조).

여기에 쓰인 동사들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강한 충격에 압도당한 듯 정신이 멍하고 넋을 잃은 상태와, 거룩함과 경외심을 느끼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제자들과 군중은 하느님께서 위대하시고 두려운 존재이시라고 느낍니다.

바로 이 상태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일반 대중이 아니라, 앞으로 당신을 선포해야 하기에 당신을 잘 알아야 할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나시는 하느님께서는 권능을 지니신 분이지만, 이 권능은 사람들을 돌보고 섬기는 사랑에서 나오며, 이 사랑은 수난으로 절정을 맞이할 것이라는 뜻을 담으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여쭙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때가 이르기 전에는 그 말씀의 뜻이 감추어져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9,44)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여 들은 말씀을 마음에 담지 않으면 그 말씀은 나에게서 사라지지만, 알아듣지 못해도 소중히 여기며 기억하면 언젠가 나에게 생명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성모님께서 이러한 본보기셨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성모님을 모든 제자의 본보기로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예수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죽어서 사는 그리스도인

 

(코헬11,9)

젊은이야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복음(루카9,42-45)

42 아이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마귀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뒤흔들어 댔다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랐다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놀라워하는- ‘엑스타시스’(자기만족을 위한 희열 같은 것) 신기한- ‘파라독스’(속 내용은 모르고 겉만 보는 것)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 하느님의 위대(偉大)하심에,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엑스타시스’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음에 손에 넘길 것이라는 말씀이다.

곧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일 안에 구원의 뜻, 진리는 깨닫지 못하고 감탄하며 놀라워하게만 되면, 그 놀라우신 예수님으로 내 소원, 뜻을 채우려 그분을 섬기는 헛된 신앙을 살게 되고, 그러다 자신들의 뜻, 소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율법(律法)의 손에 넘겨 심판(審判)하여 죽인다는 말씀이다.

(기도(祈禱)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예수님으로 판단(判斷), 원망(怨望)하게 된다.)

 

(루가22,22) 22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그러나 불행하여라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예수님은 뱀의 유혹을 먹고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뜻, 욕망을 위해 사는 우리를 부수신다. 우리의 재물, 명예, 영광을 부수시고, 또 뱀의 유혹을 사는 그 죄(罪)에서 구(求)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罪)로 죽으러 오셨다.

곧 여전히 뱀의 유혹(誘惑)인 선악(善惡)의 법을 고집(固執)하는 이들에게 정(定)해진 대로 팔아넘겨져 죽으러 오셨지 육신의 뜻, 소원을 들어주시기 위해 오신 구원자가 아니다.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 “다 이루어졌다”- ‘테텔레스타일’ (팔고 살 때 쓰는 영수증을 뜻한다) 곧 우리의 죄값을 당신의 죽음으로 다 치루신, 계약의 완성인 “테텔레스타일”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말씀을 들으면 먼저 두렵다. 육신의 욕망을 들어주는 말씀이 아닌, 부수시는(죽이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씀으로 모든 것에서 자유(自由)하게 된다. 말씀은 우리를 부수심으로 다시 세우신다. 부수심은 하늘로 살리시기 위한 자비(慈悲)다. (루가1,50-55참조)

내 열심, 지혜를 섞어서 지은 공든 바벨(탑), 카파르나움(성전)을 부수셔서 세상과 율법, 그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 자유(自由)-‘엘리데레오’ (모든 법의 심판에서 풀려나는 것)

 

(야고2,12) 12 여러분은 장차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 세상의 재물, 명예, 영광을 위한 제사와 윤리의 그 옛 계약의 신앙은 사람을 세상의 종살이, 노예(奴隸)로 만들뿐이다.

 

(갈라5,17-18)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하느님의 영원한 보호자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 안식자유가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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